오피니언 사설

[사설] 은행에 전세사기 보증금 물라니, 관치금융 선 넘었다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이 10일 금융지주 회장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이 10일 금융지주 회장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와 여당의 관치금융이 도를 넘어서고 있다. 장기 연체자 ‘빚 탕감’과 신용 사면에 은행들을 마구잡이로 동원하더니 이제는 전세사기 피해보증금까지 부담하라고 압박한다.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이 국민연금의 금융사 사외이사 추천을 추진하는 것 역시 금융 당국이 경영에 개입하겠다는 의지를 노골적으로 드러낸 상식 밖의 ‘신(新)관치’ 행태다. 금융사의 사회적 책임 강화와 지배구조 개선이 시대적 요구라지만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금융권을 향한 압박은 역대 정부들에 비해 지나치다는 비판이 적지 않다. ‘관은 치를 위해 존재한다’는 낡은 인식에 머문 금융 당국이 오히려 금융 불안의 원인이라는 지적까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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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사기 피해보증 지원은 당초 1조 원 규모의 배드뱅크를 세워 채권을 일괄 매입하는 방안이었다. 이재명 대통령이 ‘선구제 후구상’을 강조했지만 금융위원회의 반대로 틀이 흔들리면서 부담은 은행으로 넘어갔다. 피해액의 3분의 1을 최소 보증금으로 은행이 떠안고 담보주택 채권도 한국토지주택공사(LH)에 할인해 넘기라는 것이다. 이로 인해 은행권이 부담할 금액은 최소 2000억 원에 이른다. 정책 비용을 은행이 다시 떠안는 구조가 반복되는 데다 경영진 배임 리스크까지 거론된다. 빚 탕감 재원을 마련할 새도약기금 분담금 3600억 원도 아직 정리되지 않았다. 국민성장펀드 출연 규모도 불투명하다. 여기에 금융사 교육세율을 0.5%에서 1%로 높이겠다는 방안까지 제시됐다. 금융권이 한목소리로 반대해도 기획재정부는 요지부동이다. 금융사가 이자 장사로 손쉽게 돈을 버니 정부가 재원을 가져다 써도 된다는 식의 발상이다.

이 원장의 신관치는 선을 한참 넘어섰다. 금융지주 경영권 승계에 칼을 빼 들고, 국민연금 동원도 모자라 소비자 보호라는 명분으로 시민단체의 금융사 이사회 진출까지 허용하려 한다. 금융지주 경영 승계 과정의 투명성 강화는 필요하지만 이는 금융지주와 주주들이 해결할 사안이지 기금 수익률과 전문성이 최우선인 국민연금이 나설 문제는 아니다. 은행의 돈이 ‘제2의 재정’이 될 수 없는 것처럼 정부의 과도한 개입은 금융 산업의 자율성과 건전성을 오히려 훼손할 수 있다. 도를 넘은 관치금융의 비용은 서민과 기업, 미래 세대가 떠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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