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여당이 언론계에서 문제 제기한 독소조항을 그대로 둔 채 ‘허위조작정보근절법’에 속도를 내고 있다. 류신환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 위원장 직무대행은 12일 내년도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허위조작정보유통에 관한 법이 본회의를 통과하면 실시에 만전을 기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민주사회에서 권력 감시 기능을 하는 언론은 입법·행정·사법부에 이은 ‘제4부’로 불린다. 언론이 본연의 기능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나온 의혹 제기조차 가짜뉴스 프레임으로 옥죄고 징벌적 손배를 남발한다면 언론의 자기검열을 강제하고 언론 자유는 위축될 수밖에 없다.
더불어민주당이 주도하는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은 허위조작정보 유포 시 손해액의 최대 5배까지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에 한국기자협회 등 언론단체는 정치인과 고위공직자, 대기업 임원 등 권력자가 비판 보도를 막기 위해 소송을 남발할 수 있다며 징벌적 손해배상청구권을 제한해야 한다며 반대했다. 민주당은 과도한 손해배상 청구를 법원이 조기에 각하할 수 있도록 특칙을 넣었다지만 언론의 소송 부담을 덜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이번 개정안의 가장 큰 문제점은 허위조작정보를 판단하는 기준의 모호성이다. 개정안은 ‘전부 또는 일부가 허위이거나 사실로 오인시키는 정보’를 규제 대상으로 삼고 있다. 하지만 ‘일부 허위’나 ‘오인’이라는 기준은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식의 자의적 해석을 가능케 한다.
이미 언론에 대한 견제 장치는 언론중재위원회 제소, 형법상 명예훼손, 민사상 손해배상 등 차고 넘치도록 많다. 여기에 징벌적 손배까지 더하는 것은 옥상옥 규제일 뿐이다. 오죽하면 언론개혁시민연대·참여연대 등 진보시민단체들조차 개정안을 두고 “표현의 자유에 대한 심각한 역행”이라며 비판하겠는가. 일부 사이비언론이나 유튜브 등에서 유포되는 가짜뉴스는 분명 근절돼야 할 사회적 해악이다. 하지만 이를 빌미로 언론 자유를 침해하고 국민의 알권리를 막는다면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더 큰 해악이 될 수 있다.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은 ‘언론 재갈법’에 다름 아니다. 정부와 민주당은 이 같은 우려를 반영해 개정안의 졸속 처리를 당장 멈춰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