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묘 앞 세운4구역 등 서울 도심 재개발 지역의 용적률이 600%에서 1000%, 1000%에서 1500% 등으로 이전보다 1.5배 이상 높아진다고 한다. 지금은 논의의 중심에 문화유산 가치와 개발이익의 대립에 있지만 설사 개발이 성사되어도 문제다. 도심부의 한정된 공간에서 마천루 빌딩군에 대한 에너지 공급, 급증할 교통량에 대한 도로 확충, 소방이나 피난 대책, 녹지로 대체한다는 세운상가 철거 보상에 대한 천문학적 비용 등등. 물음표가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그리고 이런 논란이 늘 어떤 그림에서부터 출발한다는 것에 자괴감을 느낀다. 건축가들은 대부분 사무소를 열고 처음 몇 년은 뭔가 해내고 싶다는 의욕과 결기가 넘친다. 집 지을 땅이나 고칠 건물이 있다는 친구, 인척, 아는 사람의 아는 사람 등을 두루 만나 이야기를 듣고 ‘그림’을 그려 준다. 관청에 허가를 내고, 시공자에게 견적을 받고, 건물이 지어져 일이 완료될 때까지, 아직 존재하지 않는 무언가를 세상에 내놓기 위해 애쓴다. 때로는 손으로, 컴퓨터로, 요즘은 인공지능(AI) 명령어로 3차원(3D) 모델링을 하며 실제에 가깝게 표현하려 하는데, 어떤 도구를 쓰던 결과물은 아직 상상 속의 이미지이며 왜곡되기 쉽다.
최근 어떤 사람이 넓은 땅에 사옥과 스포츠센터 등등 아주 큰 건물 설계를 맡기겠다며 찾아왔다. 이야기를 나누다 스케치를 부탁하더니 계약도 하기 전에 일이 급하게 됐다며 ‘조감도’가 필요하다고 했다. 조감도는 최종 결과물이니 기능 프로그램이나 평면도, 재료·외관 등에 대한 계획이 선행되어야 하는데 그런 절차를 무시하고 일단 결론부터 내놓으라는 것이다.
이건 사실 건축가들이 자주 겪는 아주 오래되고 흔한 개발업자들의 수법이다. 아마도 아직 땅을 다 마련하기 전에 미리 은행이나 투자자에게 사업 제안을 위한 그럴싸한 패키지를 만들기 위해 찾아온 듯했다. 물론 잘 안되면 사기지만, 잘 되면 드물게 진짜 사업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매혹적인 조감도와 실제로 지어진 건물 사이의 괴리가 너무 커서 나중에 문제가 되는 경우가 더 많다.
조감도(鳥瞰圖)란 글자 그대로 새가 하늘에서 내려다 본 시점에서 그린 그림(Bird's-Eye View)이다. 누가 봐도 쉽게 이해되는 3차원적 입체로 묘사된 건물과 도로, 녹지 등 주변과의 관계가 표현되기 때문에, 아파트 단지나 주상복합, 문화시설 등 도시 단위 개발 계획을 보여줄 때 필수적이다. 1500년대 초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이탈리아 임올라(Imola) 시의 지도를 하늘에서 내려다본 형태로 그린 것과 야코포 데 바르바리가 그린 베네치아 지도를 조감도의 원형으로 본다고 한다.
프랑스의 역사가이자 철학자인 미셸 드 세르토는 도시를 보고 경험하는 방식을 높은 건물에서 도시를 내려다보는 방식, 도시 안에서 거리를 걷는 방식으로 구분했다. 그는 뉴욕 세계무역센터의 고층 전망대에서 도시를 내려다보는 경험을 통해, 내려다보는 사람은 대중을 떠나 안전한 거리에서 멀리서 훔쳐보는 자(voyeur), 즉 거리를 두는 자라고 보았다.
새의 눈을 가진 자는 대중의 삶에 직접 참여하지 않고 내려다본다. 그는 높은 곳에 위치함으로써, 도시의 일상생활을 실제로 걷고 겪어내는 대중으로부터 물리적, 사회적으로 분리된 채 그저 실재가 아닌 ‘지도’나 ‘텍스트’로 인식한다. 이러한 시선은 도시의 복잡성을 제거하고 통제하고 관리하려는 권력자의 시선이다.
반면 도시의 일상생활은 도시의 길과 골목을 직접 걷고 경험하는 사람들로 인해 이루어진다. 도시라는 ‘텍스트’는 도시를 걷는 사람들 자신이 직접 쓰고 경험한 것이다. 건물 사이를 헤매거나, 예상치 못한 장소에서 쉬거나, 골목으로 가는 등 개인들의 행위가 모여 ‘진짜’ 도시를 살아있게 만들고 도시를 기억하게 만든다. 화려하게 포장된 새의 눈으로 본 그 그림은 사실 어디에도 없다. 인간의 눈으로 볼 수 없는, 사람의 손으로 이루어질 수 없는 그런 그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