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핵추진잠수함(SSN) 산업은 지금 중대한 변곡점에 서 있다. 최근 중국은 매년 1~2척의 핵추진잠수함을 지속적으로 진수해 왔고 조만간 미국을 넘어서는 건조량을 기록할 가능성까지 제기된다. 이에 반해 미국의 경우 버지니아급 잠수함은 평균 30개월 지연되고 차세대 전략잠수함인 컬럼비아급도 예정보다 16개월 이상 늦어지고 있다. 미국이 목표로 제시한 핵추진잠수함 66척 체제는 현재 속도로는 달성하기 어려운 형국이다.
문제의 근본 원인은 2019년 이후 심화한 조선 업계 인력난, 공급망 단절, 조선소 설비 노후화 등 구조적 요인에 있다. 코로나19 시기를 거치면서 숙련된 조선 인력은 줄었고 원자로 계통, 합금강, 정밀 배관 등 핵심 부품 공급망도 붕괴 단계에 놓여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미국은 최근 한국과 일본의 조선 역량을 공개적으로 거론하며 협력을 요청하고 있다. 한국의 고도화된 조선 능력과 안정된 공급망이 미국의 병목을 해소할 현실적 해법이라는 판단 때문이다. 한미 양국이 합의한 마스가(MASGA·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 협력과 1500억 달러의 미국 조선업 투자는 미 핵추진잠수함 산업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수행할 것으로 기대된다.
한미가 지난달 14일 관세·안보 ‘조인트 팩트시트(공동 설명 자료)’를 발표해 한국의 핵추진잠수함 건조가 공식화됐지만 건조 장소와 시기 등 구체적인 내용들은 팩트시트에 담기지 않아 후속 협상을 통한 줄다리기가 예상된다. 한국의 국익을 우선하면서도 이번 기회를 실기하지 않도록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필리 조선소’ 건조를 언급한 상황에서 이를 지렛대 삼는 협상 전략은 불가피하다. 실제 검증된 기술과 경험 없이 국내 핵추진잠수 건조만을 주장하기보다는 마스가 투자금 1500억 달러를 필리 조선소에 투입해 선체 블록 생산과 조립을 맡기고 원자로와 전투 체계 등 민감 기술은 기존 미국의 핵추진잠수함 건조 조선소에서 담당하게 하는 것이 현실적이다.
미국에서 건조를 진행하지만 동시에 재래식 잠수함 국산화율이 80%를 넘을 정도로 잠수함 설계 건조 능력을 한국이 축적한 만큼 자체적인 핵추진잠수함 도입을 추진하는 병행 건조가 방안이 될 수 있다.
한미 병행 건조 전략은 우리나라가 투자하는 1500억 달러를 재원으로 미국의 핵추진잠수함 건조 및 작전 운용 능력을 바탕으로 신속한 전력화가 가능하고 군함·상선 건조 및 선박 유지·보수·정비(MRO) 관련 K방산의 북미 플랫폼으로 활용할 수도 있다.
이는 한국형 핵추진잠수함 건조를 향해 자체 추진 중인 저농축우라늄(LEU) 기반 핵추진잠수함의 안정적 개발과 운용을 위한 제도적 기반을 갖추는 데 디딤돌이 되고 궁극적으로 핵연료 재처리 및 자체 농축 권한을 획득하는 핵연료 협정을 체결하는 데 지원군이 될 것이다.
마스가 협력은 한미 양국에 중요한 기회다. 미국은 핵추진잠수 건조 역량을 회복할 수 있고 한국은 세계 최고의 조선업 역량을 앞세워 글로벌 안보의 핵심 파트너 국가로 도약할 수 있다.
한미 동맹은 70년 넘게 양국의 도전을 함께 해결하며 발전해 왔다. 마스가 협력과 한국형 핵추진잠수함 개발도 그 연장선에 있다. 한국의 1500억 달러 대미 투자가 양국 모두를 미래로 이끄는 전략적 투자로 자리매김할 때 우리는 새로운 시대의 동맹 협력 모델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