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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십자각] 대기업이 싫다는 이지스 직원들

임세원 마켓시그널부 차장





이지스자산운용 매각이 사모펀드(PEF) 운용사 힐하우스인베스트먼트의 등장으로 무산될 위기다. 중국계인 힐하우스가 국내 1위 부동산 자산운용사를 가져간다면 국내의 부동산 자산과 인프라, 관련 정보까지 한 번에 넘어간다는 우려 탓이다. 힐하우스와 경쟁했던 한화생명·흥국생명은 물론 이지스의 큰손인 국민연금과 일반 국민도 부정적이다. 본입찰 이후 추가로 가격을 높인 힐하우스를 선택한 매각 측의 행위는 돈의 논리로 흘러가는 인수합병(M&A) 업계에서도 좋게 보지 않는다.



힐하우스가 중국계인지 아닌지는 딱 잘라 말하기 어렵다. 창업자가 중국에서 자라 미국에서 학업을 마쳤고 현재 펀드는 전 세계 기관투자가로부터 자금의 95%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힐하우스는 창업자가 싱가포르로 귀화한 중국인이라는 점도 강조한다. 다만 돈을 좇는 투자 역시 국경과 정치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에 경계감을 갖는 건 당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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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정작 이지스자산운용 직원들은 새로운 대주주로 힐하우스를 선호했다고 한다. 힐하우스의 국적이 중국인지 아닌지는 이들에게 크게 중요하지 않다. 인수 후 2년간 전원 고용을 보장하겠다는 흥국생명의 제안도 이들을 사로잡지 못했다. 한화생명에 대해서는 이지스를 인수하더라도 별개로 운영하면 좋겠다는 내부 여론이 있기도 했다. 이들은 오히려 힐하우스가 아시아와 태평양 지역에서 투자 경험을 갖고 일본을 기반으로 새롭게 부동산 사업을 키워가는 전략에 호감을 가졌다. 국내에서는 더 이상 성장 여력이 없는 이지스가 유난히 취약한 부분은 해외 투자였는데 힐하우스는 이를 보완할 수 있다. 결국 이지스자산운용과 가장 이해관계가 맞닿은 직원들에게 중요한 것은 대기업의 안정보다는 이지스의 성장이었다.

투자 의사 결정에 자율성을 주고 수익을 내면 그대로 보상하는 시스템은 이지스를 성장시킨 동력이었다. 이지스를 키운 조갑주 전 신사업투자단장에 대해서는 업계에서 평가가 엇갈리지만 틀을 깬 의사 결정으로 잘하는 직원이 더 잘하도록 이끈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한화생명과 흥국생명 모두 자본과 인력이 탄탄하지만 이들의 우산 속에 들어간 이지스는 더 이상 예전 같은 특색을 갖기 어렵다는 게 직원들의 불안이었다. 오너가 있고 다른 주력 사업이 있는 대기업의 금융 계열사는 그룹 경영에서 소외될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대기업 계열 금융사에서 투자펀드를 만들려다 오너 책상 앞에 가져가지도 못하고 무산된 사례를 들었다.

힐하우스의 이번 이지스 인수 시도는 여러 갈래로 반대하는 힘에 의해 성공하지 못할지 모른다. 그러나 또 한번 이런 시도가 있을 때 ‘중국에 뺏기느니 국내 대기업이 낫다’며 거래를 붙잡을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다. 국적을 이유로 기업의 매각을 막는 일은 점점 더 성공하기 어려운 시장이 됐다.


임세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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