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통합은 단순한 기업결합을 넘어 대한민국 항공 산업의 체질을 다시 설계하고 국제 경쟁력을 재편하는 국가적 과제다. 이번 통합으로 탄생할 세계 10위권 ‘메가 캐리어’는 규모의 경제와 운영 효율성을 기반으로 한국 항공 산업이 글로벌 물류와 여객 허브로 도약하는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이다.
그러나 통합 과정에서 요구되는 준비는 방대하고 정밀하다. 항공기 등록과 운영 시스템 통합, 국제 인허가 등 수많은 제도적·기술적 요소가 빈틈없이 맞물려 돌아가야 기존 운항 일정에 차질이 없다. 겉으로 보기에는 두 항공사가 오랜 기간 안정적으로 운영돼왔기 때문에 통합 이후에도 별 어려움 없이 자연스럽게 날개를 펼 것처럼 비칠 수 있다. 하지만 국가별 기준 차이, 기술적 요건, 시스템 전환 과정에서 나타나는 변수까지 한 치의 오차도 허용할 수 없는 일들이 산재해 있다.
공정거래위원회나 해외 경쟁 당국의 기업결합 승인으로 통합 절차가 모두 끝났다고 생각되지만 공정위 승인은 두 기업의 결합이 시장 경쟁을 저해하지 않는지를 판단하는 경쟁법적 절차일 뿐이다. 항공기가 실제로 이착륙하고 운항을 재개하려면 완전히 다른 체계, 즉 국제 항공법에 따른 운항 인허가 절차를 다시 거쳐야 한다. 각국 항공 당국은 국제민간항공기구(ICAO)가 정한 기준에 따라 항공기 등록과 운항자 변경, 안전관리 체계까지 전면적으로 다시 확인에 나선다.
영국항공과 스페인의 이베리아항공 통합은 유럽 항공 산업의 대표적 성공 사례로 평가된다. 하지만 내부 이행 절차는 결코 단순하지 않았다. 두 회사는 같은 항공기라도 조종사 훈련 방식, 정비 기준, 비상 상황 대응 방식 등 실무 절차가 달랐고 이를 하나의 기준으로 통합하는 데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다. 또한 각국 항공 당국은 통합 항공사에 대한 판단 기준이 달라 국가별 인허가 절차에서도 차이가 나타났다. 항공사 통합은 결국 국제 규제 체계와의 정합성을 확보하는 일이 가장 큰 과제임을 보여준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간 통합에서도 동일한 맥락이 적용된다. 해외 항공 당국의 인허가는 국가마다 요구 문서, 해석 기준, 심사 일정이 다르기 때문에 철저한 사전 대비가 필요하다. 일부 국가는 통합을 기존 운영의 연장으로 봐 간소한 절차를 적용하지만 다른 국가는 통합 항공사를 법적으로 ‘새로운 항공사’로 간주해 추가 절차를 요구할 수도 있다. 게다가 통합 전까지는 아시아나항공 기체는 기존 명의로만 운항해야 하고 통합 이후에는 즉시 대한항공 명의로 전환해야 한다.
결국 ‘연속적 운항’을 위해서는 국내외 허가 취득 시점과 통합 일정이 완벽하게 맞물려야 한다. 핵심 문서 발급이 특정 시점에 이뤄질 경우 물리적 시간차가 생길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예를 들어 항공기 이전 등록 절차는 관련 법에서 매우 중요한 사안 중 하나다. 이는 단순히 번호판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운항 책임자를 변경하는 것’을 뜻해 다소 복잡한 절차가 필요할 수 있다. 따라서 승인 일정이 단 하루라도 어긋나면 특정 항공기는 법적으로 이륙할 수 없는 ‘운항 공백’ 상태에 빠진다.
이는 어느 한 기관의 책임 문제가 아니라 제도적 문제에서 비롯된 난제다. 따라서 항공사와 정부가 사전에 정밀한 일정표를 공유하고 국가별 맞춤형 협의를 통해 지연 가능성을 최소화해야 한다. 해외 사례에서도 정부와 항공사가 ‘원팀’으로 움직일 때 통합 초기 공백을 최소화할 수 있었다. 특히 해외 항공 당국은 기업의 개별 요청보다 정부의 공식 입장과 보증을 더 신뢰하기 때문에 통합 항공사가 안정적으로 첫 날개를 펴려면 정부가 적극 나서 해외 항공 당국과 소통하고 조율하는 역할이 필요하다.
고객 편익의 증대 역시 통합의 중요한 축이다. 예약·마일리지·시스템 통합 등 소비자가 직접 체감하는 서비스의 완성도는 통합 항공사의 순항 여부를 결정한다. 또 향후 10년간 정비와 운항, 안전, 데이터 기반 운영 등에서 전문인력 수요가 지속될 것으로 예상돼 정부·항공사·학계가 협력해 실무형 인재를 육성하는 기반도 마련해야 한다.
항공 당국은 다양한 글로벌 위기에서도 산업 생태계를 안정적으로 유지해온 경험을 갖고 있다. 뛰어난 위기 대응 능력은 이번 통합 과정에서도 중요한 자산이 될 것이다. 통합의 성패는 ‘절차를 완료했다’는 형식이 아니라 통합 이후 첫 비행이 얼마나 안전하고 안정적으로 이어지느냐에 달려 있다. 국민 이동의 편의를 지키고 우리 하늘길의 신뢰를 유지하는 것, 이것이 진정한 성공 기준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어느 한쪽이 통합을 주도하는 것이 아니라 각 기관이 역할을 분명히 하면서도 긴밀하게 협력하는 운영 체계다. 통합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며 그 첫출발을 얼마나 안정적으로 여느냐가 향후 한국 항공 산업의 국제 경쟁력을 결정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