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중국의 무역 갈등 상황에서 미국이 관세 인상 위협을 하면 중국은 희토류 수출통제로 맞서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희토류란 이름 그대로 지구상에 희소하게 존재하는 네오디뮴·디스프로슘·세륨 등 17가지 금속 원소군을 지칭한다. 이 금속들은 반도체·스마트폰·전기차 등 현대 산업의 중요한 생산 요소일뿐 아니라 미사일·드론·항공기·장갑차 등 미국 무기 체계에도 없어서는 안 될 요소다. 따라서 희토류 공급에 문제가 발생하면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 첨단산업 공급망에 큰 문제가 생기게 된다.
그런데 드물게 존재한다는 이름과 달리 희토류는 중국에만 묻혀 있는 것이 아니라 미국·호주·베트남, 브라질 등에도 풍부하게 매장돼 있다. 또한 1990년대 초만 해도 세계 희토류 시장의 구조가 현재와 완전히 달랐다. 미국 캘리포니아 희토류 광산의 채굴량이 전 세계 채굴량의 60%를 차지했고 전 세계 희토류의 정제·가공은 거의 100% 미국 내에서 이뤄졌다. 당시 중국은 희토류 채굴량이 많았지만 정제 기술이 없었다.
하지만 수십 년간 희토류 생산과 정제 기술 확보를 위해 중국은 일관된 육성책을 편 반면 미국은 강한 환경 규제와 더불어 생산 비용 절감을 위해 외주화를 선택했다. 게다가 임금 격차 등의 이유로 미국 내 생산 비용이 높아지자 비용 절감과 효율성을 추구하기 위해 1995년 제너럴모터스(GM)가 영구자석 관련 기술을 보유한 자회사를 중국에 넘기고 희토류 가공 장비를 중국으로 이전하게 되면서 중국의 희토류 영향력이 미국을 추월하기 시작했다.
결국 2000년대 중반에는 미국에서 희토류 산업은 사라졌고 중국은 전 세계 독점을 달성했다. 이후 미국이 희토류 산업을 부활시키려고 할 때마다 중국은 저가로 공급을 증가시키는 방법으로 미국의 희토류 산업 부활을 저지했다. 그 결과 현재 미국은 중국의 도움 없이는 희토류를 확보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또한 중국에는 다수의 야금학 또는 광물 가공 전공 대학이 있지만 미국에는 전무한 현실을 고려하면 단기간에 미국에서 희토류 산업이 재건되기는 힘들어 보인다.
희토류 시장 구조가 바뀌는 과정을 살펴보면 망해버린 미국의 희토류 산업과 활력을 잃어가는 한국의 제조업이 겹쳐지며 씁쓸한 기분이 든다. 국가데이터처에 따르면 올 2분기에만 한국 제조업에서 1만 3000개 이상의 일자리가 사라졌다고 한다. 제조업 중에서도 금속 가공, 섬유, 기계 장비 등의 분야에서 일자리 소멸이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생산 비용 상승 등으로 인한 제조 공장의 해외이전은 오래전부터 국내 일자리 소멸의 단초를 제공했다. 요즘에는 중국 기업의 저가 물량 공세를 국내 제조업이 감당하지 못해 한국 내 일자리 소멸이 가속화하고 있다.
제조업이 경쟁력을 잃어가고 있는 상황에서 최근 정부가 발표한 ‘2035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는 우려를 자아낸다. 정부는 2018년 배출량 대비 온실가스를 최소 51% 최대 65% 감축시키겠다고 한다. 환경·기후를 생각하는 취지는 이해하지만 이 같은 목표 설정은 기업에 추가적인 부담을 줄 수 있다.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서는 우리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미국·중국·유럽연합(EU) 등 큰 시장이 앞장서야 한다. 하지만 미국은 이미 파리기후협약에서 탈퇴했고 EU는 성장의 발목을 잡는 온실가스 목표를 재조정하려는 시도가 커지고 있다. 중국은 2035년까지 배출량을 정점 대비 7~10%만 감축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은 강화된 온실가스 목표를 달성하려면 비싼 전기료, 막대한 탄소 저감 투자 등을 감수해야 하는데 이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돼 있는지 의문이다. 한국만의 노력으로 전 지구의 온실가스가 감소될지도 회의적이다. 한국의 온실가스 감축에 대한 선제적인 기준 강화와 높아지는 제조업 생산 비용이, 1990년대 중반 미국이 희토류 산업에서 경쟁력을 잃기 시작한 상황과 유사하게 느껴진다. 스콧 베선트 미 재무장관이 최근 한 투자 포럼에서 희토류와 관련해 ‘아무도 관심 있게 보지 않았고 모두가 방심했다’며 과거를 반성했다고 하는데 우리도 20년 후에 국내 제조업 공동화를 보며 비슷한 한탄을 하지 않을까 걱정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