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로터리] 웰컴, 새로운 지방자치

최호정 서울시의회 의장





‘빨리빨리’는 ‘양날의 검’이다.



우리는 ‘빨리빨리’라는 속도를 무기로 전쟁으로 폐허가 된 땅을 전 세계가 주목하는 기회의 도시로 바꿔냈다. 그러나 ‘빨리빨리’를 가능하게 한 중앙집권 체제는 지방 소멸, 기후변화, 저출생과 같은 도시의 ‘가속 노화’를 불러왔다.

근래의 ‘저속 노화’ 열풍이 보여주듯 시민이 바라는 건강한 삶을 위해서는 새로운 속도를 찾아가야 한다. 지방자치라는 ‘오래된 미래’에서 새롭게 주목해야 하는 분명한 이유가 생겼다.

문제는 대한민국의 지방자치가 서른 살 성인이 된 지금까지도 제 몸에 맞지 않는 어린아이의 옷을 입고 있다는 데 있다. 지방자치에 대한 기대와 역할은 나날이 커지고 있지만 권한은 30년 전과 다르지 않다.



일단 재정의 첫 단추부터 어긋나 있다. 현재 지방세는 국세의 25%에도 못 미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주요 국가의 지방세가 국세의 40~50% 수준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한계는 더욱 뚜렷하다. 특히 지방자치 부활의 원년인 1995년, 지방 재원의 약 3분의 2를 차지했던 지방의 자체 수입은 지금 3분의 1로 줄었다. 지방의 자율성이 확대되기는커녕 되레 쪼그라든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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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재정만이 아니다. 정책을 추진하려면 조례가 있어야 하는데 조례는 상위법의 근거가 있을 때만 만들 수 있다. 지방의 입법기관인 지방의회를 만들고 자치입법권을 주지 않은 탓이다. 현장의 요구가 정책에 반영되기까지 시간 차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지방자치의 구조 안에 있었다.

서울시의회는 헌법의 빈자리에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았다. 헌법은 시대를 담는 그릇이다. 그러나 현행 헌법 속 지방자치는 단 두 줄뿐이다. 지방의 고유 권한, 재정의 범위, 입법 자율성 등 핵심 원리 모두가 비어 있다. 더 오래가는 미래를 준비하기에는 지나치게 좁고 낡은 틀이다.

서울시의회가 새로운 시대의 답안을 먼저 제시했다. 헌법 1조 1항이 ‘대한민국은 지방분권국가’라는 규정으로 시작되는 새로운 얼개의 지방분권형 개헌안을 마련한 것이다. ‘보충성의 원칙’도 분명히 했다. 현장에서 가까울수록 더 많은 권한을 갖고 일하되 국가는 보충적으로만 개입하도록 설계했다. 시차 없이 현장에서 정책 결정과 실행이 이뤄지는 지방분권의 새 모델을 개헌안에 담았다.

역대 대통령 모두 지방자치에 미래가 있다고 역설했다. 하지만 누구도 한 번 쥔 권한을 쉽사리 내려놓지 않았다. 11년간 지방자치에 몸담아온 대통령의 선택은 다를까?

그 답은 국회와 정부가 손에 쥔 ‘지방의회법’에서 확인될 것이다. 지난 30년, 지방의 행정부인 집행기관과 지방의 입법기관인 지방의회는 지방자치법이라는 하나의 법안에서 더부살이를 하면서 역할의 충돌을 빚어왔다. 집행기관이 지방의회의 예산편성권·조직권·감사권을 관할하면서 지방의회 본연의 견제·감시 책임이 무력화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지방자치 내 교통 정리를 끝낼 지방의회법이 절실했다. 필자는 대한민국시도의회의장협의회 회장의 책임감으로 지방의회의 총의를 모아 법 초안을 만들었고 국회에 건의했다. 그러나 책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정부가 공언한 ‘내년 지방의회법 제정’ 시기를 상반기로 앞당겨야 하는 과제가 남았다.

좋은 정원사는 자신이 보지 못할 나무를 기꺼이 심는다. 비록 필자는 누리지 못하더라도, 지방선거로 선출될 새 지방의회만큼은 지방의회법이 작동하는 새로운 지방자치의 시대의 출발선에 설 수 있도록 오늘도 정부와 국회의 문을 두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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