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18일 발표한 외환시장 안정 추가 대책의 핵심은 은행들이 보유하고 있는 달러를 시장에 풀도록 유도하고 수출기업과 외국인투자가의 외화 자금은 국내에 손쉽게 들여올 수 있도록 각종 규제들을 완화해주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국민연금과 서학개미, 대미 투자 예정 기업 등의 대규모 해외투자로 외화 유출이 확대되고 있는 만큼 이를 상쇄하기 위한 조치들로 수급 불균형을 바로잡아 궁극적으로 환율 안정을 도모한다는 포석이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우리나라가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를 겪는 과정에서 만든 외화 유입 규제를 점차 없애나가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이날 시장에서는 금융회사를 대상으로 한 ‘외화 유동성 스트레스테스트 감독 강화’ 6개월 유예 방안을 두고 환영의 목소리가 쏟아져 나왔다. 외화 유동성 스트레스테스트는 위기 상황을 가정해 각 금융회사의 외화 자금 대응 여력을 평가하는 제도다.
기재부의 한 관계자는 “엄격한 외화 유동성 스트레스테스트 규제를 지키기 위해 은행들이 쌓아놓았던 달러가 있는데 감독상 조치 부담을 덜면서 외화 자금 시장에 나올 수 있을 것”이라며 “이번 조치를 통해 시장에 풀릴 수 있는 달러가 어느 정도일지는 예측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은행연합회에 따르면 KB국민·신한·우리·하나 등 4대 시중은행의 외화 예수금(평균 잔액 기준) 합계는 올해 3분기 말 130조 1000억 원에 달한다.
외국계 은행 국내 법인들의 선물환 포지션(선물 외화 자산에서 선물 외화 부채를 뺀 값) 한도도 확대된다. 선물환 포지션 제도는 은행을 통한 과도한 외화 유입과 외채 증가를 억제하기 위해 2010년 도입됐으며 이 한도가 완화되면 시중에 외화 유동성을 늘리는 효과를 낼 수 있다.
현재 국내 은행은 75%, 외국계 은행 국내 지점(외은 지점)은 375%의 선물환 포지션 비율 규제를 적용받고 있다. SC제일은행·한국씨티은행 등 외국계 은행 국내 법인은 그간 국내 은행과 동일한 75%의 비율 규제를 적용받고 있었지만 영업 구조가 외은 지점과 유사한 점을 감안해 200%로 상향하기로 했다. 기재부의 한 관계자는 “외국계 은행 국내 법인은 본점에서의 차입이 많아 리스크는 국내 은행보다 더 낮다”고 부연했다.
정부는 수출기업에 국내 시설자금뿐 아니라 국내 운전자금 목적의 외화 대출 역시 허용할 계획이다. 기업이 대출받은 외화의 국내 사용을 위해 외환시장에서 매도하는 과정에서 원화 가치를 끌어올리는 등의 효과가 기대되기 때문이다. 정부는 외국인이 별도의 국내 증권사 계좌를 개설하지 않고도 현지 증권사를 통해 한국 주식을 거래할 수 있도록 외국인 통합 계좌 활성화 또한 추진한다. 국내 증권사의 계열사 또는 대주주가 아닌 중소형 현지 증권사도 외국인 통합 계좌 개설이 가능하도록 개설 주체 제한을 사실상 폐지했다.
해외 증시에 상장된 외국 기업은 전문 투자자로 인정된다는 점을 명확하게 안내해 외환 거래 과정에서의 불편을 해소할 방침이다. 기재부는 이번 패키지 조치로 국내 외환시장에 추가 외화가 유입돼 구조적 외환 수급 불균형을 해소하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본다. 특히 외화 자금 시장에 충분한 외화 유동성을 공급함으로써 환 헤지 비용도 절감시키는 효과까지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수출기업들이 요구해온 해외 자회사의 배당금에 대해 비과세를 확대하는 등의 ‘세제 인센티브’가 빠진 점은 아쉽다는 반응이 나온다. 수출 업계의 한 관계자는 “정부 스스로 인정했다시피 원화 용도 외화 대출 허용 확대는 당장 큰 효과를 내기 어려운 데다 세제 혜택 등이 포함되지 않아 한계가 분명하다”고 말했다. 박상현 iM증권 전문위원은 “장기적인 방향성은 맞지만 단기적인 환율 안정 효과 자체는 제한적이지 않을까 한다”면서 “환율이 안정을 되찾기 위해서는 정부 정책은 물론 달러·엔화 등 기축통화의 흐름과 인공지능(AI) 거품론에 따른 외국인의 국내 주식시장 이탈 등이 진정되는 대내외 여건도 뒷받침돼야 한다”고 분석했다.
이 같은 비판이 제기되자 대통령실은 직접 수출기업 달래기에 나섰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이날 삼성 등 7대 기업 관계자들과의 간담회에서 기업들의 어려움을 청취하는 한편 적극적으로 보유 달러 매각에 나서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