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많은 지방 도시는 인구 감소, 청년 이탈, 고령화 등 복합 위기에 직면해 있다. 만약 지역이 지속 발전해 청년이 머물고 싶은 정주 환경을 제공한다면 저출산과 높은 자살률, 지역 불균형 등 우리가 안고 있는 구조적 문제의 상당 부분이 해소될 것이다.
최근 도시발전 연구를 보면 쇠퇴한 도시라도 도시 전체가 공유하는 이야기가 형성되고 시민의 태도가 변하면 재도약이 가능하다고 한다. 이는 세계 여러 도시가 이미 증명하고 있다. 독일 에센, 영국 리버풀, 미국 피츠버그 등은 산업 쇠퇴를 겪었지만 자신의 도시 이야기를 다시 쓰며 재도약에 성공했다.
이들의 공통점은 시민의 의지를 모으고 그 의지를 정책과 사업으로 연결한 리더의 실행력이었다. 즉 성공한 도시들의 결정적 특징은 ‘문화적 사업가(cultural entrepreneur)’의 존재였다. 문화적 사업가란 단순히 문화 예술에 관심 있는 행정가가 아니라 도시의 가능성을 스토리로 만들고 그것을 예산과 조직과 제도로 연결해 실제 변화를 일으키는 리더를 말한다. 이들은 지방자치단체장이나 지역의 리더로서 시장경제에서 기업가가 혁신을 만들듯 도시 행정 현장에서 새로운 시장과 공간·장르·시민을 위한 새로운 경험 등을 창조한다.
국내에서도 그 사례를 찾아볼 수 있다. 부산은 국제영화제·영화의전당·오페라하우스 등 연속된 투자로 ‘국제적 영상·예술도시’라는 서사를 현실화했다. 전주 역시 ‘음식·영화·한지’라는 고유의 스토리를 꾸준히 도시 브랜드로 발전시켜왔다. 이들 도시의 성공에는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고 도시 브랜드를 확장시키는 과정에서 실질적 사업을 설계한 문화적 리더십이 존재한다.
중요한 사실은 도시의 크기가 문화 혁신의 성패를 결정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군이나 구 단위 같은 작은 행정단위도 지역 전체의 변화를 이끌 수 있다. 전국에서 가장 작은 군에 속하는 전남 함평은 나비축제를 기반으로 군 단위 지역에서도 도시경제와 정체성을 새로 만들 수 있음을 증명한 바 있다.
최근 대구시의 수성구 역시 주목된다. 대구간송미술관 개관으로 비수도권 최고 수준의 관람률과 적지 않은 관광 효과를 기록했으며 시각예술 클러스터와 국제 수준의 수상 무대를 조성하고 있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 수성구는 ‘대한민국 문화도시’로 선정됐다. 이는 ‘도시 전체가 무대가 되는 대전환’으로 대구시가 20년간 투자해온 국제뮤지컬페스티벌과 국제오페라축제와 시너지를 내며 도시 전체를 국제 수준으로 업그레이드시킬 것으로 기대된다. 구 단위의 문화적 상상력과 실행력이 도시 전체의 혁신을 이끈 사례다.
이러한 흐름은 ‘작은 단위 조직도 도시 전체의 변화를 이끌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특히 도시재생이나 문화 예술 분야에서 가장 중요한 자산은 건물이나 예산이 아니라 도시를 바꾸는 상상력과 실행력, 즉 문화적 리더십임을 의미한다. 심지어 대기업이나 공공기관이 없고 교육기관도 부족한 소도시나 군 단위 지역이라도 스토리와 방향이 확실하고 이를 실행해 내는 리더가 존재한다면 새로운 전환을 만들 수 있다.
지금 한국의 지방 도시는 기로에 서 있다. 그렇다고 변화와 혁신은 외부에서 찾아오지 않는다. 변화는 도시 안에서 시작되고 혁신의 시작은 새로운 지식과 상상력을 받아들이는 지역의 문화적 분위기에 의해 결정된다. 그것을 최종적으로 현실에 구현하는 것은 지역 리더의 문화적 리더십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