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유혜미 칼럼] 치솟는 환율, 경제 지표의 역설

■유혜미 한양대 경제금융대학 교수

내수 회복으로 못 이어진 수출 성장

AX, 청년 고용에 되레 악영향 끼쳐

반도체외 산업·청년 창업 지원 확대

경제 체질 근본적 개선에 사활걸 때

유혜미 한양대 경제금융대학 교수유혜미 한양대 경제금융대학 교수




2026년을 앞두고 경제지표와 체감경기의 괴리가 커지고 있다. 반도체 활황으로 수출액이 역대 최대치를 경신하고 고용률도 역대 최고 수준이지만 시장의 평가는 냉혹하다. 원·달러 환율이 연일 1500원 선을 위협하며 한국 경제의 기초 체력에 대한 의구심을 키우고 있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일까.

무엇보다 반도체 수출 중심의 성장이 내수 회복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에 따르면 반도체 10억 원당 유발되는 취업자 수는 2.1명으로 전 산업 평균(10.1명)의 5분의 1에 불과하다. 또한 반도체 수요 1단위가 다른 산업에서 유발하는 부가가치도 0.09로 자동차(0.49)나 선박(0.45)보다 훨씬 낮다. 결국 반도체 수출이 증가해도 가계의 소득 증대나 반도체 외 기업의 투자 확대로 연결되지 않는 구조다. 이는 내수 기업들의 수익성 회복을 지연시켜 한국 경제의 매력을 반감시킨다. 더욱이 반도체 의존도가 과도하게 높아진 수출 구조 역시 위험 요인이다. 2018년 이후 전체 수출에서 15~21%를 차지하던 반도체 수출 비중은 지난달 28%까지 치솟았다. 글로벌 반도체 업황이 악화되면 한국 경제에 미치는 충격도 그만큼 클 수밖에 없다.



역대 최고 수준의 고용률 또한 부진한 청년 고용의 암울한 그림자를 가리는 덮개에 불과하다. 지난달 15세 이상 29세 미만 청년 취업자 수는 37개월 연속 전년 동월 대비 감소세를 이어갔고 30대 청년 ‘쉬었음’ 인구는 11월 기준 역대 최대치를 나타냈다. 이는 인재 양성의 단절로 이어져 미래 잠재성장률을 갉아먹는 구조적 위험이다. 여기에 정부가 강력히 추진 중인 ‘인공지능(AI) 전환(AX)’이 역설적으로 청년 고용에 독이 되고 있다. 최근 한국은행의 보고서는 AI가 데이터 정리와 기초 분석 등 신입 사원들의 업무를 대체하면서 기업들이 경력직이나 AI 인재 위주로 채용의 문을 여는 현실을 보여준다. AX가 청년을 포용하지 못한다면 청년들의 노동시장 진입을 위한 사다리는 더욱 약화되고 경제의 역동성도 크게 낮아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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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의 고환율은 이런 구조적 문제들이 누적된 결과다. 하지만 정부의 대응은 여전히 단기적인 외화 수급 개선에 그치고 있다. 최근 대통령실은 수출 기업들을 만나 외환시장 안정에 협조를 요청하고 외환 당국은 규제 완화를 통해 국내 달러 유입을 늘리는 조치들을 발표했다. 이런 조치들이 일시적으로 효과를 낼 수 있지만 보다 근본적인 처방이 없다면 환율 불안은 반복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정부의 새해 경제정책은 한국 경제의 체질 개선에 최우선 순위를 둬야 한다.

우선 반도체 수익이 내수 확대로 이어질 수 있게 하는 정책 설계가 필요하다. 예를 들어 반도체 기업들이 관련 소재와 장비의 국내 공급망 투자를 확대하거나 후공정 작업에 국내 중소기업들의 참여를 늘릴 경우 세제 혜택을 주는 등 국내 고용과 투자 확대의 유인을 제공할 필요가 있다. 이와 함께 반도체 외 산업의 경쟁력을 강화할 방안도 마련해야 한다. 자동차와 조선 등 세계시장에서 경쟁력이 있는 산업의 생산성은 더욱 높이고 철강과 석유화학 등 고전하는 전통 산업들은 구조조정을 유도하는 한편 규제 완화를 통해 산업 전반에 기술 혁신의 토대를 마련해야 한다.

또한 청년들이 노동시장에 진입할 실질적 기회를 대폭 확대해야 한다. 청년들이 AX에서 소외되지 않도록 AI와 협업 가능한 인재 양성을 위해 대학 교육에 대한 투자를 늘리고 청년 채용 시 교육 비용을 정부가 분담해 기업의 신규 채용 여력을 늘리는 등의 정책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또한 기존 기업보다 신생기업의 고용 창출 효과가 크므로 청년 창업을 적극 지원해 고용 창출과 산업의 역동성 향상을 동시에 꾀해야 한다.

최근의 고환율은 구조적 한계에 봉착한 한국 경제의 기초 체력에 대한 적신호다. 허울 좋은 경제지표에 안주하지 말고 경제 체질을 근본적으로 개선하는 데 사활을 걸 때다. 정부의 새해 과제가 그 어느 때보다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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