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의료인인 A 씨는 의사인 친척 B 씨 명의를 빌려 ‘사무장 병원’을 차렸다. 병원 수익금은 딸의 차량 할부금, 카드 대금 등에 사용했다. 그러던 중 A 씨와 B 씨 사이에 병원 운영을 놓고 불화가 생겼다. A 씨는 내연 관계인 C 씨와 짜고 새로운 사무장 병원을 열었다. C 씨에게 연봉 1억 8000만 원을 주기로 하고 운영하다 결국 제보에 덜미가 잡혔다. A 씨가 두 곳의 병원을 운영하면서 챙긴 돈은 무려 211억 원. 국민건강보험공단은 A 씨의 행각을 제보한 신고자에게 올 5월 역대 최대 포상금인 16억 원을 지급했다.
비의료인이 의료인의 명의를 빌려 병원이나 약국을 개설해 수익을 챙기는 ‘사무장 병원, 면허 대여 약국’은 수십 년째 근절되지 않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불법 개설 기관들이 국민 건강을 위협한다는 점이다. 사무장 병원들은 수익을 높이기 위해 입원 강요, 항생제 과다 처방, 과잉 진료 등을 일삼는다. 환자 입장에서는 사무장 병원 여부를 구분하기 어렵다. 불법 의료로 피해를 입어도 이미 사망하거나 상태가 악화된 환자를 원상 회복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2018년 화재로 47명이 사망하고 112명이 부상 당한 경남 밀양의 세종병원은 아직도 트라우마로 남아 있다. 사무장 병원으로 드러난 세종병원은 병상을 늘리기 위해 불법으로 건물을 증축했고 유독가스 배출이 안 돼 더 큰 피해를 일으켰다. 오로지 돈을 벌기 위해 불법으로 남의 면허를 빌려 개업한 병원이 환자 건강을 챙길 리 만무하다.
또 다른 문제는 국민건강보험 재정을 갉아먹고 있다는 점이다. 건보공단에 따르면 2009년부터 올 10월 말까지 사무장 병원과 면대 약국의 부당 청구 금액은 2조 9183억 원에 달한다. 내부자의 제보가 아니면 적발하기 어려운 행태를 고려하면 실제 누수 금액은 이보다 훨씬 클 것이다. 3조 원에 가까운 부당 청구 금액을 힘들게 적발했지만 회수율은 고작 8.67%에 불과하다. 범죄가 갈수록 지능화하고 있는 데다, 수사기관의 우선 순위에서 밀려 평균 수사 기간이 11개월로 오래 걸리기 때문이다. 범죄자들은 수사가 길어지는 사이 병원을 폐업해 징수를 어렵게 하고 들키지 않는 곳에 재산을 숨길 충분한 시간을 갖는다.
이재명 대통령은 이달 16일 보건복지부와 관련 기관 업무보고에서 건보공단의 특별사법경찰에 대해 “필요한 만큼 (인원을) 지정하라”고 지시했다. 특사경은 형사소송법에 따라 관할 검사장이 지명하는 일반직 공무원이 특정 직무 범위 내에서 수사를 계획·실행하는 제도다. 사무장 병원, 면대 약국 수사의 핵심은 자금 흐름 추적이다. 면허를 빌려 준 의료인과 사무장과의 자금 흐름을 강제 조사할 수 있다면 수사 속도를 훨씬 높일 수 있다. 건보공단은 특사경 권한이 주어지면 전문성을 살려 수사 착수·종결 기간을 3개월로 대폭 단축해 연간 2000억 원 규모의 건보 재정 누수를 차단할 수 있다고 자신한다.
대한약사회는 찬성 입장을 밝히면서 “과잉 수사를 막을 수 있는 제도적 안전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반면 대한의사협회는 “의료인의 정당한 진료권이 위축될 수 있다”고 반대 입장을 밝히면서 국회 앞에서 1인 반대 시위에 돌입했다.
의협의 논리를 이해하기 어렵다. 집단행동이 아닌 1인 시위를 선택한 것을 보면 의료계 전체를 대표하는 의견인지도 의문이다. 의협은 건보공단이 의료기관과 수가 계약을 맺고 진료비를 지급·삭감하는 당사자인 만큼 수사권 부여는 불공정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당사자인 만큼 가장 정확하고 신속하게 불법 청구 사안을 파악하고 대처할 수 있다. 건보공단이 이미 현지 조사를 하고 있어 충분하다는 의협의 주장도 받아들이기 어렵다. 불법행위를 하지 않으면 그만이다. 또 건보공단의 조사가 그렇게 효율적이라면 징구율이 8.7%에 불과하겠는가. 다만 의협이 제안한 사전 차단 방안은 합리적이다. 사무장 병원은 처음부터 생길 수 없도록 예방하고, 그 틈을 뚫고 생겨버린 암세포에는 메스를 대야 한다.
사무장 병원이 철퇴를 맞으면 그 병원을 다니던 환자들은 정상적인 병원으로 옮겨간다. 선량한 의사와 병원의 가치가 더 높아진다는 얘기다. 의협은 지금이라도 반대 주장을 거둬들이고 보다 건설적인 논의에 참여하기 바란다. 의협이 의사들의 불법 수입원인 사무장 병원을 옹호하는 것처럼 국민 눈에 비춰질까 걱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