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로터리] 안녕을 지키는 시민의 안녕을 묻다

최호정 서울시의회 의장





사람들은 ‘슈퍼맨이라 불리는 사나이’에게 열광했다. 위험에 빠진 시민을 구하려고 불길 속으로 몸을 던지는 그의 용기와 정의에 박수를 보냈다. 하지만 그 박수는 오래가지 않았다. 불길이 사그라들자 사람들의 박수도 멀어졌다. 사람들은 망토를 벗은 슈퍼맨에게는 관심이 없었다. 불길 속 영웅에게는 환호했지만 불씨가 꺼진 후 슈퍼맨의 가슴에 남은 그을음에는 시선을 주지 않았다. 사람들은 슈퍼맨의 희생을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슈퍼맨이 우리와 같은 평범한 소시민의 맨얼굴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쉽게 망각했다. 그 탓에 슈퍼맨은 정당한 청구서마저 내밀기 어려워졌다. 그가 요구한 것은 ‘영웅의 보상’이 아니라 평범한 시민이 누려야 할 ‘최소한의 권리’였음에도 말이다.

허구가 아니다. 올해 필자는 소방공무원이 일하는 현장에서 이 진부한 시나리오의 충격적 실체를 몇 번이나 목도했다. 현장에 가보니 편의점 도시락 하나 사기에도 빠듯한 금액인 5000원이 서울시 소방훈련생들의 급식비로 책정돼 있었다. 서울시의회는 지난해 서울시 급식 예산 전반을 재검토해 일반 공무원이 누리는 최소한의 기준 금액(7200원)까지 급식비 인상을 관철해냈다. 문제는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이보다 더 큰 구조적 문제들이 안전을 지키는 이들의 안전을 위협하고 있었다.



서울에 위치한 94개 119안전센터는 1년 365일 24시간 불 꺼질 날이 없지만 센터 내 급식실은 평일 오후 6시가 지나면 불이 꺼졌다. 평균 식사 시간이 ‘8분 29초’에 불과한 소방대원들이 주말이면 조리원이 없는 조리실에서 직접 밥을 해 먹거나 배달음식으로 끼니를 때우고 있었다. 자비를 모아 별도의 조리 인력을 고용하는 곳도 있었다. 부실한 식사뿐 아니라 식사할 시간과 환경 또한 ‘보통’의 기준에 미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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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 현장의 상황은 더 절박했다. 지난해 의료대란으로 ‘응급실 뺑뺑이’가 속출하던 때 응급 환자를 수송하던 현장 대원들은 ‘무간지옥’을 경험해야 했다. 병상은 확보되지 않는데 구급차 속 환자의 바이탈 사인은 떨어지고 쉴 틈 없이 심폐소생술을 시행하던 대원은 탈진하는 일이 일상이었다. 지옥 같은 일상이 매일 펼쳐져도 사회의 시선은 의료 인력 확충에만 머물렀다. 환자를 가장 먼저, 가장 가까이 마주하는 구급대원 증원 논의는 아무런 진전 없이 공회전을 반복했다.

같은 위험을 감수하지만 보상은 달랐다. 구조·구급 업무를 담당하는 소방공무원은 월 20만 원의 구조구급 활동비를 받지만 현장 지휘차와 물탱크차, 고가사다리차 등 1분 1초의 골든타임을 아끼기 위해 함께 동원되는 특수차량 담당 공무원은 받을 수 없었다. 20만 원이 현장의 팀워크를 흔들고 있었다.

필자는 이 모든 과제를 서울시의회 논의 테이블로 가져가 예산 전반을 원점에서 챙겼다. 그러자 많은 이들이 물었다. 서울시의회 의장이 소방공무원의 처우까지 일일이 챙겨야 하냐고 말이다. 하지만 그 질문은 전제부터 틀렸다. 필자가 살핀 것은 단순한 ‘처우’가 아니라 ‘사람을 살리는 시스템’이다.

사람들은 소방차와 구급차의 다급한 ‘사이렌’ 소리를 들으면 안도한다. 사이렌은 사람을 구하는 사회적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한다는 신호음인 까닭이다. 그 소리에 안도했다면 이제 사이렌 속 숨은 영웅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줄 차례다. 슈퍼맨의 고된 일상이 제도로 보답받기를, 그래서 ‘살려서 돌아오고 살아서 돌아오라’는 시대의 명령이 완수되기를 축복의 성탄절을 앞두고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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