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1기 정부의 핵심 인사와 현직 공화당 하원의원이 쿠팡의 개인정보 유출 사태에 대한 우리 정부의 대응을 두고 “미국 기업에 대한 차별”이라며 공개적으로 문제를 제기했다. 로버트 오브라이언 전 국가안보보좌관은 “한국이 미국 기술기업을 표적으로 삼는다면 매우 불행한 일”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사실상 트럼프 행정부 차원의 개입 가능성을 시사한 발언으로 볼 수 있다. 대럴 아이사 공화당 하원의원 역시 쿠팡과 애플·구글·메타 등을 거론하며 한국의 규제가 미국 기업을 중국과의 경쟁에서 불리하게 한다고 밝혔다. 개인정보 유출이라는 사건의 본질을 외면한 채 사안을 ‘한미 통상 갈등’ 문제로 전환하려는 시도라는 점에서 우려스럽다.
쿠팡 사태의 본질은 명확하다. 내부 시스템 접근 권한을 가진 중국인 직원이 3370만 명의 개인정보를 유출했고 쿠팡은 이를 5개월 동안 인지하지 못했다. 명백한 보안 관리 실패다. 그런데도 쿠팡은 오너인 김범석 쿠팡Inc(쿠팡의 모회사) 이사회 의장의 변변한 사과조차 없이 되레 미국 유력 정치인들이 ‘미국 기업 차별’ 논리로 접근하도록 대미 로비 활동에 나선다는 의심을 사고 있다. 사실이라면 몰염치를 넘어 파렴치한 행태다. 쿠팡은 나스닥 상장 이후 약 5년간 미국 행정부와 의회에 1075만 달러(약 156억 원)의 로비 자금을 썼다.
대통령실이 25일 쿠팡 사태 관련 관계부처 장관 회의에 외교부와 국가안보실 관계자까지 참석시킨 것도 통상 리스크를 의식한 조치로 보인다. 다수의 빅테크 기업들을 보유한 미국은 디지털 규제에 민감하게 대응해왔다. 이런 기류에 힘을 얻은 듯 쿠팡은 이날 보도 자료를 통해 “(유출된 고객 계정 3370만 개 중) 외부 전송은 없었던 것으로 조사됐다”고 주장했다. 아직도 뻔뻔하게 책임을 회피하고 있는 쿠팡에 분명한 법적 책임을 지워야 한다. 쿠팡의 시장 지배력에 따른 부작용을 완화하기 위해서는 대형마트 의무휴업, 심야영업, 새벽배송 등의 규제 합리화와 제도 개선도 필요하다. 아울러 쿠팡 제재가 개인정보 보호라는 본래 목적을 벗어나 한미 통상 마찰의 빌미가 되지 않도록 정부가 치밀한 대응에 나서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