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경제를 지탱하는 수출 경쟁력이 업종별로 양극화하면서 ‘수출의 질(質)’이 악화되고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한국은행은 16일 ‘주요 품목별 수출 경쟁력 평가’ 보고서에서 “2018~2024년 우리 산업의 경쟁력은 반도체 등 일부 품목 위주로 성장했고 이를 제외한 주요 업종의 수출은 정체된 흐름”이라고 지적했다. 한국 수출이 ‘양극화의 덫’에 빠졌다는 준엄한 경고라고 할 수 있다. 한은은 “한국 수출의 글로벌 점유율은 2018년 이후 추세적으로 낮아지고 있다”는 진단도 내렸다. 지난해 수출이 사상 처음으로 7000억 달러를 돌파하는 등 외형적 성과를 올렸지만 반도체·자동차 등에 편중된 기형적 구조가 고착화되고 있다는 뼈아픈 지적이다.
특히 석유화학과 철강의 경우 중국의 설비 증설과 저가 공세에 밀려 생존조차 담보할 수 없는 처지에 몰렸다. 신성장 동력으로 꼽혔던 배터리도 미국의 전기차 캐즘과 중국의 맹추격에 지난해 12월에만 28조 원의 계약이 축소 또는 취소됐다. 글로벌 전기차 배터리 시장에서 국내 기업의 점유율은 2020년 34.7%에서 지난해 20.2%까지 급전직하했다. 이런 상황에서 일부 업종에 기댄 ‘편식 수출’이 지속된다면 반도체 슈퍼 사이클이 둔화할 경우 우리 경제에 감당할 수 없는 충격을 줄 수 있다.
어느 때보다 강한 경각심과 냉철한 상황 인식을 갖고 불가측한 변수에 대비해야 할 때다. 그런데도 정부는 낙관론 일색이다. 재정경제부는 ‘경제동향(그린북)’ 1월호에서 “우리 경제는 내수 개선과 반도체 수출 호조로 경기회복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며 석 달 연속 장밋빛 전망을 내놓았다. 원·달러 환율이 1500원에 근접하는 엄중한 상황인데도 “수입 물가 상승이나 내수 등 다른 경기 흐름을 제약할 수준은 아니다”라고 과소평가했다.
정부의 낙관론이 금융·증권시장에 불안감을 주지 않겠다는 의도라면 이해되는 측면도 있다. 하지만 미국의 반도체 추가 관세 위협과 중국의 물량 공세 등 복합 위기에 놓인 우리 현실과 괴리된 인식이 되레 시장 혼란을 부추길 수도 있음을 유념해야 한다. 정부는 반도체 수출 호조를 이유로 올해 2% 성장을 자신하지만 메모리칩 슈퍼 사이클에 의존한 ‘반도체 천수답’ 수출과 성장은 지속될 수 없고 바람직하지도 않다. 한은의 ‘양극화 K자 성장’ 경고를 절대로 흘려들어서는 안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