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TSMC의 류더인(마크 리우) 전 회장. 정통 기술자 출신인 류 전 회장은 2018년 창업자 모리스 창 전 회장의 후임으로 취임한 뒤 2024년 6월 퇴임할 때까지 TSMC의 매출과 순이익을 약 3배, 시가총액을 약 3.5배로 늘렸다. 류 전 회장은 지난해 3월 미국 마이크론 이사회에 합류한 뒤부터는 마이크론과 TSMC 간 협력의 가교 역할을 맡고 있다. 17일(현지 시간)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따르면 그는 이달 13~14일 마이크론 주식 2만 3200주를 장내 매수했다고 공시했다. 이로써 류 전 회장이 보유한 마이크론 지분은 2만 5910주로 늘었다. EPA연합뉴스대만이 미국에 2500억 달러(약 368조 원) 규모의 자금을 직접 투자하는 대신 대미 상호관세율을 20%에서 15%로 낮추는 무역 합의를 체결한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반도체 시설 상당수를 자국으로 옮길 것을 노골적으로 요구하고 나섰다. 미국은 세계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기업인 TSMC를 비롯한 주요 기업 생산시설 40%를 자국으로 돌려야 한다는 무리한 주장까지 내놓는 상황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미국에 반도체 공장을 지을 경우 생산량의 1.5~2.5배까지는 관세를 매기지 않겠다는 당근책을 선보이면서도, 투자하지 않은 기업에는 100% 세율을 적용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사실상 아직 반도체 관세 협상을 완결하지 않은 한국에도 대미 투자를 더 늘리라고 압박한 셈이다. 한국과 대만은 트럼프 정부의 이 같은 구상을 비현실적이라고 판단하면서도 긴장의 끈은 놓지 않고 있다. 이번 무역 협정으로 한국에 반도체 관련 재협상 여지가 생긴 만큼 삼성전자(005930), SK하이닉스(000660) 등의 주가도 당분간 무역 불확실성의 영향을 받을 것으로 관측된다.
‘TSMC 공장 받고 관세 면제’ 美·대만 ‘빅딜’…“40% 시설 미국 이전”엔 이견
미국 상무부는 지난 15일(현지 시간) 대만의 기술기업들이 미국에서 첨단 반도체, 에너지, 인공지능(AI)의 생산 역량을 구축·확대할 목적으로 2500억 달러를 직접 투자하는 내용의 무역 합의를 맺었다고 밝혔다. 또 대만 정부는 최소 2500억 달러 규모의 신용보증을 제공해 대만 중소기업들의 대미 추가 투자를 촉진하기로 했다. 직접 투자 규모는 한국(3500억 달러), 일본(5500억 달러)보다 작았으나 한미 협정 때와 같은 세부 투자 방안은 제시되지 않았다.
트럼프 행정부는 나아가 미국에 반도체 공장을 건설하는 대만 기업에 해당 시설이 건설되는 동안 생산능력의 2.5배까지 관세를 면제하기로 했다. 2.5배를 초과하는 수입분에도 우대 세율을 적용한다. 미국은 또 신규 반도체 생산 시설을 완공한 대만 기업의 경우도 생산능력의 1.5배까지 관세 없이 수입할 수 있도록 했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미국 애리조나주에 반도체 공장 6곳을 완공·증설하기로 한 TSMC는 이번 무역협정으로 공장 5곳을 더 짓기로 했다.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부 장관은 이날 CNBC 인터뷰에서 “대만의 투자 규모는 직접 투자와 중소기업에 대한 정부 보증까지 합쳐 총 5000억 달러”라며 “TSMC가 애리조나주 인근 땅을 방금 매입했고 미국 생산 규모는 두 배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러트닉 장관은 “수백 개 기업과 함께 대만 전체 반도체 공급망과 생산량의 40%를 미국으로 가져오는 게 목표”라며 “만약 그들이 미국에 공장을 건설하지 않으면 관세는 100%가 될 가능성이 크고 이는 당근이 아닌 채찍”이라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해서는 황런자오(웬들 황) TSMC 최고재무책임자(CFO)도 15일 지난해 4분기 실적발표회에서 2㎚(나노미터·10억분의 1m) 이하급 첨단 신규 공장의 30% 정도는 미국에 세울 것이라고 거들었다. dpa통신 등에 따르면 웨이저자 TSMC 회장도 이날 내년 하반기쯤 미국 내 두 번째 공장이 대량 생산에 돌입할 것으로 전망했다. 웨이 회장은 “미국 애리조나주에 세 번째 공장을 건설하고 있고, 네 번째 공장과 첫 번째 첨단 패키징 시설은 인허가를 받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며 “애리조나주에서 공장 확장 등을 위해 추가 부지도 매입했다”고 알렸다. 대만 매체에 따르면 TSMC가 새로 매입한 미국 애리조나주 토지 규모는 3.65㎢에 이른다.
대만 언론은 다만 러트닉 장관이 언급한 40% 미국 이전 계획에 관해서는 실현 가능성에 의문을 표시했다. 대만중앙통신 등 중화권 매체는 17일 러트닉 장관의 발언이 현실화될 경우 대만의 반도체 산업 자체가 공동화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궁밍신 대만 경제부장(장관)은 16일 5㎚ 이하 첨단 공정으로 추산하면 대만과 미국의 산업 능력 비중은 2030년 85% 대 15%, 2036년 80% 대 20%일 것으로 예상했다. 그는 “러트닉 장관이 어떻게 계산했는지 모르겠다”며 “대만은 여전히 반도체 생산의 요충지이고 미국은 AI 응용에 가장 중요한 국가”라고 평가했다. TSMC의 황 CFO도 같은 날 블룸버그통신 인터뷰에서 “TSMC가 첨단 웨이퍼 제조 기술의 미국 이전 속도를 높이기 위해 노력하겠지만 대만이 여전히 최첨단 제조 기술을 보유할 것”이라며 “최첨단 기술은 대만에서 먼저 사용한 뒤 안정화되면 해외 이전 등을 시도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최신 기술을 해외에 이전하고 대량 생산에 나서려면 최소 1년이 필요하다”고 예상했다.
궈자쿤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이에 대해 16일 정례브리핑에서 “중국은 우리와 수교한 국가가 대만 지역과 주권적 의미와 공식적 성격을 가진 협정을 체결하는 것에 일관되게 단호히 반대했다”고 강조했다. 궈 대변인은 이어 “미국은 하나의 중국 원칙과 중미 3대 공동성명을 실질적으로 준수해야 한다”며 “대만은 불가분의 중국 영토”라고 덧붙였다.
한미 협정 믿고 있던 한국도 날벼락…韓, 반도체 재협상 가능성도
상황이 이렇다 보니 대만이 미국에 공장을 더 짓는 대가로 관세 특혜를 받을 경우 한국 역시 반도체 협상을 다시 해야 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트럼프 행정부가 대만을 지렛대로 사실상 한국 반도체 업계에 추가 대미 투자를 요구한 꼴이 됐기 때문이다. 한국의 반도체 산업은 파운드리가 핵심인 대만과 달리 메모리 중심이다. 문제는 메모리반도체의 경우 미국에 마이크론이라는 경쟁사가 이미 있다는 점이다. 여기에 삼성전자의 경우는 미국 시설을 확장하는 TSMC와 파운드리 업계에서 경쟁 관계에 있다.
앞서 한국은 지난해 11월 한미 관세 협상에서 대만보다 불리하지 않은 반도체 무역 조건을 적용받기로 한 뒤부터는 이를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러다 14일 트럼프 행정부가 중국으로 수출되는 엔비디아의 AI 칩 ‘H200’에 25% 관세를 부과한다고 발표하자 민감하게 반응하기 시작했다. 애초 미국을 방문했다가 14일 귀국하려던 여한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도 반도체 관세가 한국 기업에 미치는 영향을 현지에서 파악하기 위해 출장을 하루 더 늘려 이튿날 귀국했다. 백악관은 14일 팩트시트(설명 자료)를 통해 “트럼프 대통령은 앞으로 가까운 시일 내에 미국 내 제조를 유도하기 위해 반도체와 그 파생 제품 수입에 대해 더 광범위한 관세를 부과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어 “이에 상응하는 관세 상쇄 프로그램도 도입할 수 있다”며 미국 내 생산 시설 건립 시 관세 면제나 우대 세율을 적용할 수 있음을 암시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15일 백악관 당국자도 14일 미국 상무부가 무역확장법 232조에 따라 부과하기로 한 25%의 반도체 관세를 ‘1단계’로 표현하며 국가별로 추가 관세를 물릴 수 있다고 재차 예고했다. 이 당국자는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해 미국에서 생산되지 않은 수입 반도체에 대해 100% 관세를 부과할 수 있다고 수차례 말한 사실도 거론했다. 트럼프 행정부 당국자는 16일에도 ‘미국이 대만과 합의한 반도체 관세 면제 기준을 한국에도 적용하느냐’는 국내 언론의 질의에 “국가별로 별도로 합의할 것”이라고 답했다.
지난해 11월 대만과 최소 동등한 조건으로 반도체 협상을 체결하겠다고 미국과 약속한 한국에 이번 협정은 어떤 식으로든 변수가 될 전망이다. 대만의 기업들이 한국이 예상했던 것보다 더 큰 규모의 대미 투자를 단행하기로 하면서 미국이 차별적으로 관세를 부과할 여지가 커진 탓이다. 현재 삼성전자는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에 파운드리 공장을 사실상 완공했고, SK하이닉스는 인디애나주 웨스트라피엣에 첨단 패키징(후공정) 공장을 세우고 있다. 여기에는 AI 칩에 적용되는 고대역폭메모리(HBM) 라인은 극히 드물다. 현재 엔비디아의 그래픽처리장치(GPU)는 전량 대만에서 만들고 있고 한국의 HBM도 이쪽으로 공급되고 있어 TSMC가 생산 거점을 옮길 경우 상황은 복잡해진다. 마이크론 역시 16일부터 1000억 달러(약 146조 원)를 들여 뉴욕주에 미국 역대 최대 규모의 반도체 제조 시설을 건설하기 시작했다. 마이크론은 이날 나스닥종합지수가 0.06% 하락한 가운데서도 홀로 7.76% 급등했다. 한국 정부와 기업은 이에 따라 미국의 반도체 관세 동향을 지켜보면서 필요할 경우 전방위 대응을 펼칠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과 대만의 반도체를 쓰는 미국의 거대 기술기업(빅테크)들의 반응도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판단에 중대한 변수다.
※'트럼프 스톡커(Stocker)'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시대에 투자에 도움이 될 만한 미국의 시장·기업·정책·정치·외교 관련 현장 이야기와 현안 분석을 전달하는 코너입니다. 구독하시면 유익한 미국 소식을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