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맵부심’을 자극하며 빠르게 성장해 온 매운맛 라면 시장이 최근 들어 속도 조절 국면에 들어섰다. 한때는 더 높은 스코빌지수(매운 정도)를 앞세운 초고강도 신제품이 시장을 키웠지만, 이제는 무작정 매운 맛보다 검증된 브랜드와 취향에 맞는 선택지를 찾는 소비가 늘고 있다.
17일 시장조사업체 엠브레인 딥데이터의 구매 트렌드 분석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기준 최근 1년간 주요 유통채널에서 판매된 매운맛 라면 구매 추정액은 1766억원으로, 전년 동기(1870억원) 대비 소폭 감소했다. 매운맛 라면 시장이 외형 확장 국면을 지나 성장 둔화와 재편 단계에 접어들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시장 변화는 브랜드별 점유율에서 더욱 뚜렷하게 나타난다. 최근 1년간 매운맛 라면 구매 추정액 기준 점유율을 보면 삼양식품의 불닭볶음면(34.9%)과 오뚜기 열라면(33.1%)이 양강 구도를 형성했고, 삼양식품 맵탱(10.7%), 팔도 틈새라면(10.5%)이 뒤를 이었다. 상위 4개 브랜드가 전체 시장의 약 90%를 차지하며 소비가 소수 강자로 빠르게 쏠리고 있다.
이는 ‘누가 더 맵냐’를 겨루던 시기에 대한 소비자 피로가 누적된 결과로 풀이된다. 단순히 스코빌지수를 높인 제품만으로는 더 이상 선택을 끌어내기 어려워졌고, 매운맛의 종류와 먹는 방식, 브랜드 경험이 구매를 좌우하는 단계로 접어든 것이다.
대표적으로 불닭볶음면은 ‘볶음면형 매운맛’이라는 확고한 포지션을 구축하며 시장 조정 국면에서도 전년 대비 구매액이 4.8% 증가했다. 해외 시장에서 쌓은 인지도와 국내 충성 수요가 맞물리며 매운 라면의 ‘기본 선택지’로 자리 잡았다는 평가다.
열라면은 국물형 매운 라면의 대표주자로 ‘마열라면’, ‘더핫열라면’ 등 세분화된 라인업을 통해 안정적인 수요를 유지하고 있다. 여기에 ‘순두부 열라면’ 등 레시피형 소비가 SNS를 통해 확산되며 단순 제품을 넘어 하나의 먹는 방식으로 진화하고 있다.
맵탱은 극단적 매운맛 경쟁 대신 매운 국물라면 안에서 다양한 강도의 선택지를 제시하며 신흥 강자로 떠올랐다. 반면 틈새라면은 1만 SHU에 달하는 강한 매운맛을 앞세워 대중 확장보다는 매운맛 마니아층을 겨냥한 ‘끝판왕’ 포지션을 유지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매운맛 라면 시장의 경쟁 축이 ‘더 센 자극’에서 ‘더 많은 선택지’로 이동하고 있다고 본다. 소비자들은 이제 새로운 도전용 매운맛보다는, 익숙한 브랜드 안에서 자신의 한계와 취향에 맞는 매운맛을 고르는 방향으로 소비 패턴을 바꾸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