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처럼 빛나는 인간 형상의 조각 두 점이 서로 다른 방향을 바라보며 섰다. 원래는 양팔을 벌려 서로를 끌어안고 있던 한 덩어리의 형상을 작가가 직접 둘로 떼어내 완성한 작품이다. 한때 하나였던 두 사람이 각자의 방향으로 떠나는 순간 서로에 닿았던 팔과 기댔던 흔적들은 마치 지워지지 않는 상흔처럼 금속 깊이 새겨졌다.
서울 인사동 노화랑에서 열리고 있는 김성복(62) 작가의 개인전 ‘그리움의 그림자’에서 만날 수 있는 이 스테인리스스틸 조각은 작가가 부모님을 여읜 후 그 부재에서 오는 슬픔 앞에 오래 서있다 완성한 작품이다. ‘사랑했던 이가 떠난 자리에 남는 것은 무엇일까’ ‘그리움의 실체는 무엇인가’ 같은 질문을 반복하면서 얻어낸 작가의 조형적 답변인 셈이다. 22일 전시장에서 만난 작가는 “나에게 그리움이란 단순한 노스탤지어가 아니라 끌어안고 살아가며 극복하려 애쓰는 삶의 몸짓과 같았다”며 “사랑에서 시작했지만 결코 잡히지 않는 감정은 결국 흔적을 남기게 되는 셈”이라고 설명했다.
그리움의 감정을 탐구한 스틸 조각 연작이 전시의 중심을 잡고 있지만 이번 전시가 ‘그리움’이라는 테마만 다루는 것은 아니다. 전시는 지난해 제14회 한국 미술평론가협회 작가상을 수상한 기념전으로 조각가 김성복의 작품 세계 전반을 두루 조망할 수 있도록 기획됐다.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커다란 발로 힘차게 앞으로 나아가는 스틸 조각 ‘바람이 불어도 가야한다’를 비롯해 우리 민속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한 핑크 대리석의 도깨비 방망이 ‘꿈 나와라 뚝딱’, 상상 속 동물인 해태가 떠오르는 석조 ‘신화’ 등 한 작가의 작품이라고 믿기 어려운 다채로운 형상의 조각 20점이 노화랑 1·2층을 꽉꽉 채웠다.
전시에는 조각가 김성복의 남다른 색채감을 확인할 수 있는 회화 80점도 함께 출품돼 눈길을 끈다. 아크릴로 그린 작품들은 조각 작업의 기초가 되는 스케치들이다. 실제 전시장에는 조각이 되기 전의 스케치와 조각으로 완성된 작품이 함께 자리해 서로 짝을 찾아 비교해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돌 조각’으로 먼저 이름을 알렸고 본인 역시 “지금도 내게 가장 흥미로운 재료는 돌”이라고 말하지만 전시장에서는 청동과 스틸, 나무까지 다양한 재료를 능숙하게 다룬 작품들도 만날 수 있다.
특히 시선을 사로잡는 작품은 대표작 ‘바람이 불어도 가야한다’의 연장선이자 이번 전시의 테마인 그리움을 담은 ‘춤추는 그리움의 그림자’ 연작이다. 손과 발이 몸에 비해 유난히 큰 데 반해 얼굴은 작고 흐릿한 작가의 독특한 인물상이 신작에도 등장했다. 작가는 “나의 인물들은 사유하기보다는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며 “손과 발을 땅에 딱 붙이고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이 내 세계의 주인공”이라고 말했다. 신작에서는 이 인물들이 단단한 땅이 아니라 둥근 반구 위로 올라섰다. 툭 치면 크게 흔들리는 반구 위에서 큰 손과 발을 가진 인물들은 흔들리지만 쓰러지지 않는다. 작가는 “흔들린다는 건 우리가 살아있다는 증거”라며 “삶을 조각하는 조각가로서 우리가 꿋꿋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전시는 2월 5일까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