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문화

억압받던 여성들, 심장을 깨우다 [북스&]

■하트 램프(바누 무슈타크 지음, 열림원 펴냄)





다섯 아이를 둔 엄마이자 딸인 메룬이 9개월 된 젖먹이 막내 딸을 품에 안고 오전 9시 친정 집 문을 들어서는 순간 친정 식구들은 벼락이라도 맞은 듯 얼어붙었다. 인도에서 기혼 여성이 남편과의 불화를 이유로 친정에 돌아온다는 것은 집안에 큰 불명예가 되기 때문이다. 점잖은 인도 여성이라면 남편이 간호사와 눈이 맞아 집을 나가더라도 참고 견디며 남편이 옳은 길로 돌아오도록 사랑으로 노력해야 한다.



친정 식구들의 비난 속에서 메룬은 묻는다. “어머니 저에겐 심장이라고 불리는 것이 없나요?” 어머니는 답한다. “그는 남자야. 진창을 좀 밟았다 해도, 물 있는 곳에서 진창을 씻어내고 집으로 돌아오겠지. 그러면 어떤 오물도 몸에 묻어 있지 않을 거다.” 그녀가 믿고 의지했던 두 오빠도 한 목소리로 말한다. “너한테 우리 집안의 명예를 떠받칠 정도의 분별이 있다면, 분신자살을 했겠지. 넌 여기 오지 말았어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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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룬의 이야기를 담은 표제작 ‘하트 램프’를 포함해 책에 실린 열두 편의 단편소설은 모두 현대 인도를 살아가는 여성이 주인공이다. 그러나 생생한 문장으로 포착한 여성들의 초상은 대체로 행복하지 않다. 이들은 뻔뻔한 할머니와 폭력적인 친정 식구, 우스꽝스러운 율법 학자, 무책임한 남편들 사이에서 너무나 큰 희생을 강요당한다.

이 책으로 지난해 단편집 최초의 인터내셔널 부커상을 받은 작가 바누 무슈타크는 남인도에 뿌리내린 종교 근본주의와 가부장제를 타파하기 위한 운동가이자 변호사로 33년간 활동하며 비판과 실천의 방법으로 문학을 택했다. 주변부로 밀려난 인도 여성들의 서사를 길어 올림으로써 할머니와 엄마, 딸로 이어지는 연대와 저항을 일깨우는 것이다.

그녀의 이런 시도가 지역 담론에 그치지 않고 보편적 가치를 획득해 세계 문학상을 수상하고 한국에서까지 번역 출간된 사실은 무척 고무적이다. 작가의 고향 토착어인 ‘칸디나어’로 처음 쓰여졌다는 소설은 쉬운 구어체 표현과 깊은 감정 묘사로 책장이 순식간에 넘어가는 매력도 대단하다. 1만 9000원.


김경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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