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23일 중국 화웨이 ‘연구개발(R&D)의 심장’으로 불리는 광둥성 둥관 ‘시춘캠퍼스’에 도착하자 광활한 부지에 자리 잡은 이국적인 캠퍼스가 눈길을 사로 잡았다. 서울 여의도의 절반이 넘는 180만 ㎡ 부지에 유럽 12개 도시의 건축물을 콘셉트로 조성한 100여 개의 건물과 호수를 둘러본 전 세계 취재진들 사이에서 “이곳에서 일하고 싶다”는 탄성이 절로 터져 나왔다. 미국의 화웨이 제재가 본격화된 2019년 문을 연 이곳에서 화웨이는 막대한 규모의 R&D 투자를 통해 중국을 대표하는 ‘기술 굴기’를 뽐내고 있다. 화웨이는 둥관의 ‘기술 전사’ 약 2만 5000명에 만족하지 않고 글로벌 인재를 확보하기 위한 투자에 적극 나서고 있으며 최근에는 한국의 고급 두뇌들에게도 손짓을 하고 있다.
24일 선전 샹그릴라호텔에서 열린 화웨이의 ‘2024~2025 정보통신기술(ICT) 경진대회’는 전 세계 48개 국가와 지역에서 결승 라운드에 참여한 179개 팀의 학생과 교수들로 장사진을 이뤘다. 화웨이가 2015년 중국 학생을 대상으로 시작한 ICT 경진대회는 이듬해부터 글로벌로 확장돼 올해는 참가 국가와 지역이 100여 개로 늘었고 2000여 개 대학에서 21만여 명의 학생과 교수들이 참여했다. 이들은 인공지능(AI)을 활용해 네트워크, 클라우드, 컴퓨팅 트랙 등 최첨단 기술 분야에서 8시간에 걸친 종합 평가를 수행해야 한다. 분야별 수상자들은 호명될 때마다 올림픽에서 메달을 딴 것처럼 환호하며 국기를 흔들었다.
경진대회에 참가한 국가의 대부분이 중국의 일대일로(一帶一路·육상 해상 실크로드) 사업에 협력하는 동남아시아·중앙아시아·중동·아프리카·남미 등이다. 해당 국가의 우수 인재들에게는 화웨이에서 일할 기회가 제공되고 팀에는 스타트업 창업 지원도 이뤄진다. 중국 기술 굴기의 첨병인 화웨이가 미국과 기술 전쟁을 벌이는 중국을 대신해 ‘글로벌사우스’ 국가들을 중심으로 ‘기술 연합군’을 꾸리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는 배경이다. 실제로 2021년 네트워크 분야 1위를 차지한 파키스탄 메란공대의 바그찬드 씨는 파키스탄 대통령이 X(옛 트위터) 계정에 언급할 정도로 국가적 영웅으로 떠올랐고, 이후 화웨이에 몸담았다. 나이지리아 아마두벨로대(ABU) 팀은 2023년 대회에서 스마트 폐기물 로봇으로 대상을 수상했다. 이 중 일부는 나이지리아 해양생태계를 개선하는 시스템을 개발했으며 또 다른 일부는 화웨이의 일원이 됐다. 에릭 두 한국화웨이 부사장은 “지난해 대회 때 한국에서 1등을 차지했던 학생도 화웨이에 입사했다”고 귀띔했다.
화웨이는 ICT 경진대회를 비롯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전 세계 ICT 인재들에게 교육 기회를 제공하는 한편 자질이 뛰어난 학생들을 선발해 화웨이 ‘기술 전사’로 키우고 있다. 특히 최근 들어 한국에 대한 투자를 부쩍 늘리고 있다는 점은 주목된다. 두 부사장은 “전 세계적으로 ICT 인재 부족이 심화되고 있는 가운데 한국 내 교육기관의 문의가 늘고 있다”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제주회의에서 서울대·연세대 등 담당자들과도 ICT와 교육을 연계해 인재를 양성하는 방안을 논의했다”고 말했다. 프랭크 황 화웨이 최고기술책임자(CTO)도 “올해 전 세계적으로 ICT 인재 2억 명이 필요하지만 6000만 명이 부족한 상황”이라며 인재 확보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화웨이는 전 세계 교육기관들과 손잡고 운영하는 ICT 아카데미를 서울대, 한국과학기술원(KAIST), 한양대, 이화여대 등으로 확대하고 있다. 해당 학교 학생들은 화웨이의 교육 플랫폼을 통해 ICT 지식을 습득하고 취업 진로 멘토링, 화웨이 본사 방문 기회 등을 제공받는다. 2018년부터 화웨이 ICT 아카데미에 참여하거나 장학금을 받은 학생들이 국내에만 6000명이 넘을 정도다. 화웨이는 ‘화웨이 장학생’과 경진대회 참가자 등을 ‘화웨이 동문’으로 묶어 체계적으로 관리해나가겠다는 방침이다. 특히 지난해 말 중국의 경제 수도 상하이에 문을 연 ‘롄추후캠퍼스’를 둥관을 넘어설 글로벌 인재 육성 기지로 키운다는 구상도 내놓았다. 올해 말까지 롄추후캠퍼스에는 약 3만 5000명이 입주해 화웨이의 기술 개발을 주도할 것으로 관측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