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관세 여파로 달러 가치가 크게 떨어진 가운데 무역업체들이 대금을 받을 때 달러를 피하는 경향까지 나타나고 있다.
17일(현지 시간)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미국 은행 US뱅코프의 폴라 커밍스는 각국 수출업체가 미국 수입업체로부터 대금을 받을 때 더는 달러를 원하지 않으며, 대신 유로화, 중국 위안화, 멕시코 페소 등을 요구하는 추세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모든 수출업체가 달러를 ‘신성시’했던 과거와 달리 지금은 달러 익스포저(노출)를 줄이려 하며, 현지 통화를 원하는 분위기라는 것이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미국의 한 목재업체는 최근 들어 유럽산 목재 수입 대금 결제를 위해 달러를 유로로 환전하고 있다. 해당 유럽 업체가 유로화 결제 시 대금의 2%를 할인해주는 것도 영향을 끼쳤다. 미국의 한 가정용품 소매업체는 중국 수출업체와 계약 조건을 재협상해 위안화로 결제할 계획이고, 미국의 한 식품업체는 이탈리아 공급업체에 유로화로 대금을 지급하기로 했다. 국제 결제업체 코페이의 칼 샤모타 수석 전략가는 “이러한 변화를 실시간으로 정량화하기는 어렵지만, 동아시아에서 남미에 이르는 시장에서 갈수록 많은 수출업체가 유로·위안 등을 택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는 달러의 지배력을 위협하고 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관세로 달러 가치가 약해지고 있으며 이에 따라 미국의 자금 조달도 어려워지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달러는 약세를 이어가고 있다. 주요 6개국 통화(유로화·엔화 등) 대비 달러 가치를 보여주는 달러인덱스는 올해 들어 9%가량 하락한 상태다. ‘월가 채권왕’으로 불리는 제프리 건들락 더블라인 캐피털 최고경영자(CEO)는 최근 “심판의 날이 오고 있다”고 말했고, 헤지펀드 업계 ‘큰손’ 폴 튜더 존스는 향후 1년간 달러 가치가 10% 추가 하락할 가능성을 점치기도 했다. GSFM의 스티븐 밀러는 “트럼프 대통령이 분명 불장난을 하고 있다”면서 점진적 통화가치 하락이 겉으로는 문제없어 보이지만 미국처럼 해외 자금에 의존하는 나라의 경우 순식간에 통화가치 폭락으로 바뀔 수 있다고 지적했다.
유럽과 중국은 세계 금융 시스템에서 유로화와 위안화의 영향력 확대를 꾀하고 있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유럽중앙은행(ECB) 총재는 16일자 파이낸셜타임스(FT) 기고문에서 “글로벌 통화 지배력의 변화는 과거에도 일어난 바 있다”면서 “이 변화의 순간은 유럽에 기회다. ‘글로벌 유로’의 순간”이라고 강조했다.
판궁성 중국 인민은행장은 18일 “향후 글로벌 통화 시스템이 몇몇 주권 통화가 공존·경쟁하고 상호 견제와 균형을 이루는 방향으로 진화해갈 수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