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태평양의 작은 섬나라 피지에서 호주로, 그리고 다시 한국으로.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4년차 박혜준(22·두산건설)은 파란만장한 골프 여정을 겪었다. 해외에서 골프를 익힌 뒤 2022년 초고속으로 정규 투어에 입성했지만 2부 투어에서 눈물 젖은 빵도 먹었다. 절치부심해 지난해 정규 투어에 재입성했고 올해 드디어 생애 첫 승을 거머쥐었다. 72전 73기다.
박혜준은 6일 인천 베어즈베스트 청라GC(파72)에서 열린 KLPGA 투어 롯데 오픈(총상금 12억 원) 4라운드에서 버디 3개, 보기 1개로 2언더파 70타를 쳤다. 최종 합계 17언더파 271타를 적어낸 박혜준은 2위 노승희를 1타 차로 제치고 정상에 섰다. 이번 우승으로 그는 상금 2억 1600만 원과 함께 10월 하와이에서 열리는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롯데 챔피언십 출전권도 얻었다.
초등학교 2학년 때 골프를 시작한 박혜준은 골프를 배우기 좋다는 얘기에 초등학교 6학년 때 아버지와 함께 피지로 떠났다. 그곳에서 반년을 지낸 뒤 호주로 옮겼고 LPGA 2부 투어에 도전할 생각이었지만 코로나19 여파로 한국에서 프로에 입문했다. 2022년 정규 투어에 데뷔했지만 이듬해 드림(2부) 투어로 떨어졌고 한 차례 우승으로 상금 랭킹 8위에 오르면서 지난해 정규 투어를 다시 밟았다. KLPGA 투어 우승은 73번째 출전 만이다.
1타 차 선두로 출발한 박혜준은 초반 몇 차례 위기를 겪었다. 1번 홀(파4)에서 3.7m의 부담스러운 파 퍼트를 넣었고 3번 홀(파3)에서는 티샷을 그린 옆 벙커에 빠트렸지만 두 번째 샷을 3.6m에 떨어뜨린 뒤 또 파 세이브에 성공했다. 이 퍼트 후 박혜준은 ‘브이’ 세리머니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어 4·5번 홀(이상 파4) 연속 버디로 분위기를 완전히 바꿨다.
박혜준은 전반을 5타 차의 여유로운 선두로 마쳤지만 16번 홀(파4)에서 이날 첫 보기를 범하며 2위 그룹에 2타 차로 쫓겼다. 하지만 17번 홀(파3)에서 천금의 파 세이브 뒤 18번 홀(파5)을 버디로 마감했다. 같은 조 노승희가 이글 퍼트를 넣어 잠깐 동타가 됐으나 박혜준은 30㎝ 짧은 버디 퍼트를 놓치지 않았다.
177㎝ 큰 키로 안정적인 장타를 치는 박혜준은 침착함이 장기다. 경기 뒤 그는 “안주환 프로님께 예전처럼 자신감을 가지라는 말을 들었고 그게 지금 좋은 결과로 이어지고 있는 것 같다. 멘탈적으로 큰 도움을 받았다”며 “올해 목표는 2승”이라고 했다. 스윙 코치인 안주환씨는 “(박)혜준이는 본모습이 자신 있게 치는 선수다. 그런데 최근 약간 부진을 겪으면서 부정적인 생각을 하는 것 같아서 예전의 자신감 넘쳤던 모습에 대해 일깨워줬다. 이렇게 빨리 본모습을 찾아 뿌듯하다”고 했다.
노승희는 최근 6개 대회에서 우승과 2·3·4위를 한 번씩 하면서 무서운 상승세를 이어갔다. 지난 시즌 공동 다승왕(3승) 배소현은 5타를 줄여 15언더파 공동 3위에 오르면서 올해 첫 톱5를 기록했다. 이다연도 5타를 줄여 공동 3위다. 황유민이 공동 13위(9언더파), LPGA 투어 멤버인 김효주와 최혜진은 나란히 8언더파 공동 18위로 마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