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낮엔 광복절빵, 저녁엔 일본 라멘 먹는다"…광복 80주년 앞두고 엇갈린 소비 '온도차' [이슈, 풀어주리]



출근길에서도, 퇴근길에서도. 온·오프라인에서 화제가 되고 있는 다양한 이슈를 풀어드립니다. 사실 전달을 넘어 경제적 가치와 사회적인 의미도 함께 담아냅니다. 세상의 모든 이슈, 풀어주리! <편집자주>


'귀멸의 칼날' 극장판 시구 안내 포스터와 니지모리스튜디오 나츠마츠리 여름축제 홍보 포스터. 사진=LG트윈스 제공, 니지모리스튜디오 공식 홈페이지 캡'귀멸의 칼날' 극장판 시구 안내 포스터와 니지모리스튜디오 나츠마츠리 여름축제 홍보 포스터. 사진=LG트윈스 제공, 니지모리스튜디오 공식 홈페이지 캡




광복절 80주년을 앞두고 일본을 향한 한국인의 양가 감정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일제강점기의 아픔을 기억하며 ‘반일’·‘극일’을 외치는 정서와, 일본을 일상적인 여행·소비 대상으로 즐기는 분위기가 공존한다.

이런 가운데 국내 유통가는 일본 영화·축제·여행 열기와 ‘애국 마케팅’이 뒤섞인, 묘한 온도차를 연출하고 있다.

‘귀칼’ 시구 홍보·축제 강행에 온라인 ‘시끌’…영화는 ‘흥행 조짐’


이달 7일 프로야구단 LG트윈스는 9일 한화 이글스와의 경기에서 일본 인기 애니메이션 ‘귀멸의 칼날’ 캐릭터 시구를 예고했다가 거센 반발에 부딪혀 취소했다. 작품 속 주인공 귀걸이 문양이 욱일기를 연상시킨다는 지적과 “광복절 며칠 앞두고 굳이?”라는 비판이 이어졌다.

하지만 시구 논란과 별개로 오는 22일 개봉하는 극장판 ‘귀멸의 칼날: 무한성편’은 이미 흥행을 예약했다. 14일 오후 2시 25분 기준 예매 관객 수는 38만명, 예매 매출액은 48억원을 돌파했다. 온라인에서는 “문화소비와 정치·역사를 굳이 엮을 필요 없다”는 의견과 “시기상 불편하다”는 반응이 팽팽했다.

이와 비슷하게 경기도 동두천 일본 테마 마을 ‘니지모리 스튜디오’는 광복절이 낀 주말에도 일본 전통 여름 축제 ‘나츠마츠리’를 강행해 논란이 됐다. 주최 측은 “안중근 장군의 ‘동양평화론’ 정신을 존중하는 문화공간으로서 상호 이해와 협력의 장을 만들고자 한다”면서도 “광복절 당일 ‘광복 축하 평화 선언문 낭독’과 ‘평화의 등불 띄우기’ 행사도 함께 진행한다”고 밝혔다. 온라인에서는 “행사 시기만큼은 더 세심했어야 한다”는 지적과 “여름 휴가철 일정상 어쩔 수 없다”는 반론이 맞섰다.

인천국제공항. 연합뉴스인천국제공항. 연합뉴스


논란 속에도 일본行 ‘북적’…광복절 연휴 항공권 ‘매진’ 행렬


논란과는 달리 일본 여행 수요는 여전하다. 지난달 17일 인천국제공항공사에 따르면 일본 노선 여객은 전년 대비 9.3% 늘었다. 항공권 값도 급등했다. 이날 네이버 등 주요 예약 사이트 기준 광복절 연휴 직전·직후 도쿄·오사카·삿포로 등 주요 도시 노선 평균 운임은 60만~100만원대 초반까지 올랐다. 평소보다 30~50% 비싸졌고, 일부 인기 노선은 한 달 전 이미 매진됐다.

앞서 지난해 광복절 연휴(8월 15~18일) 일본 노선 이용객은 26만9000명으로 전년 대비 21.4% 늘었다. 하나투어 관계자는 “일본 예약 비중이 꾸준히 20% 중반대를 유지하고 있다”며 “가깝고 항공편이 많아 수요가 안정적”이라고 전했다.

성심당이 선보인 광복 80주년 기념 ‘광복절빵’과 패키지와 CU가 판매하는 광복절 한정 ‘태극기 도시락’ 사진제공=한국조폐공사, CU성심당이 선보인 광복 80주년 기념 ‘광복절빵’과 패키지와 CU가 판매하는 광복절 한정 ‘태극기 도시락’ 사진제공=한국조폐공사, CU


성심당·CU·GS25…‘애국 마케팅’으로 맞불


반면 유통가와 지자체는 ‘가치소비’를 내세운 광복절 한정 마케팅에 힘을 싣고 있다. 제과업계 대표 주자인 성심당은 한국조폐공사와 손잡고 ‘광복절빵’을 출시, 판매 수익 일부를 대전지방보훈청 관할 독립유공자 후손에 후원하기로 했다. 지난해 광복절 주간에만 약 4000만원이 모였으며, 올해는 아이보리 패키지에 ‘데니 태극기’ 디자인을 입히고 광복절 당일 미니 태극기를 증정한다.

편의점 CU는 행정안전부와 함께 ‘태극기 도시락 캠페인’을 연다. 대표 인기도시락 8종을 태극기 도시락으로 지정해 판매 수익금 일부를 구철성 독립운동가 후손에게 기부한다. GS25는 광복 80주년 기념 도시락에 윤봉길 의사 문구를 새겨 수익금 일부를 광복회에 전달한다. ‘대한’, ‘독립’, ‘만세’, ‘태극기’로 각각 디자인된 키보드 ‘키캡’ 4종을 총 20만개 규모로 특별 제작했으며, ‘광복 80주년 도시락’에 1종씩 동봉해 고객에게 증정할 예정이다.

이러한 기대에 힘입어 편의점과 빵집마다 애국 마케팅 상품을 찾는 손님들도 늘었다. 성심당 ‘광복절빵’에는 “이런 건 기념일마다 했으면”, “빵 사 먹으면서 기부까지 된다니 뿌듯하다”는 반응이 달렸다. 태극기 도시락 인증샷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리는 MZ세대도 적지 않았다.

광복절을 나흘 앞둔 11일 정부서울청사(오른쪽) 외벽에는 대형 태극기가, 외교부에는 김구 서명문 태극기가 걸려 있다. 연합뉴스광복절을 나흘 앞둔 11일 정부서울청사(오른쪽) 외벽에는 대형 태극기가, 외교부에는 김구 서명문 태극기가 걸려 있다. 연합뉴스


역사·소비 맞물린 풍경…논쟁은 계속


올해 광복 80주년을 앞두고 진행된 설문조사에서도 이런 시각차가 뚜렷하게 드러났다. PMI 조사에 따르면 광복절을 ‘중요하다’고 인식하는 비율은 전체 87.8%에 달했지만, 같은 기간 일본 브랜드·캐릭터 제품 소비에 대해 “영향 없다”고 답한 비율도 23.7%였다. 일본 여행에 대해서도 “시기가 부적절하다”는 응답(29.8%)이 가장 높았지만, “개인의 자유이며 문제없다”는 의견 역시 19.2%로 집계돼 인식 차이를 드러냈다. 한 누리꾼은 “광복절빵 먹고 저녁에 일본 라멘 먹는 게 요즘”이라며 복합적인 소비 행태를 꼬집었다.

역사적 상징성과 일상적 소비가 뒤섞인 풍경 속에서 ‘예스 재팬’과 ‘애국 마케팅’을 둘러싼 논쟁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광복절 시기 일본 문화나 상품 소비는 세대·경험에 따라 받아들이는 온도차가 크다”며 “특히 역사적 경험을 직접 겪은 세대나 그 영향을 가까이서 본 세대는 부정적으로 인식할 가능성이 높지만 비교적 젊은 세대에게는 크게 영향을 미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다만 “기업들이 광복절에 맞춰 펼치는 애국 마케팅은 가치소비를 중시하는 MZ세대의 관심을 끌 수 있다”며 “단발성 이벤트로 끝나지 않고, 사회적 의미를 지속적으로 전할 수 있는 기획으로 이어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관련기사








조수연 인턴기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