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이슈

기술과 생명의 경계를 탐색하는 3인 3색 미디어아트 개인전, 수림큐브에서 개최

- 인공지능, 확장현실, 생명과학을 가로지르는 동시대 미디어아트의 접경







유아트랩서울(주최·주관), 문화체육관광부(공동주최, 노진아), 한국문화예술위원회(후원, 김보슬), 예술경영지원센터 및 아트코리아랩(공동주관, 노진아), 서울문화재단(후원, 전혜주), 수림문화재단·앨리스온·플로웍스(협력)은 오는 2025년 9월 13일부터 9월 30일까지 수림큐브에서 세 개의 개인전을 동시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김보슬 《Altered Nature ? 혼합된 미래》, 노진아 《경계에 선 자들(The Boundary Ones)》, 전혜주 《망상 ? 사라진 생명과 마주하는 법》 등 서로 다른 주제와 방향성을 지닌 세 개의 개인전으로 이루어진다. 기술이 생명과 자연을 재정의하는 오늘, 한국 미디어아트 씬에서 활발히 활동하며 주목받는 세 명의 작가가 한 공간에서 각자의 예술 세계를 심도 있게 펼쳐 보인다.

세 전시는 독립적으로 기획되었지만, 기술·자연·인간의 관계를 탐구한다는 공통의 문제의식 속에서 한 공간에서 교차한다. 확장현실(XR), 인공지능(AI), 로보틱스 등 첨단 기술을 활용한 실험과 더불어, 과학기술이 사회와 문화에 미치는 영향을 비판적으로 성찰하며 동시대 미디어아트의 주요 담론을 다양한 조형언어로 풀어낸다.

관람객들은 이 전시를 통해 동시대 기술을 매개로 기후 변화 이후의 생태계,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 그리고 기술에 대한 맹목적 믿음이 감추고 있는 이면을 탐색하게 된다. 이는 기술이 삶의 조건을 근본적으로 바꾸고 있는 지금, 예술이 던지는 비판적이고 사변적인 질문들을 마주하며 포스트휴먼 시대의 새로운 공존 방식을 모색하는 기회가 될 것이다.

김보슬은 세상의 모든 존재가 서로 분리된 것이 아니라 하나의 거대한 유기체처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보는 시각인 동양의 전일주의적(holistic) 관점에서 인간과 자연의 유기적 연결성을 탐구하며 AI, XR, 메타버스 등 다양한 기술을 통해 현실과 가상의 경계를 확장하는 작업을 선보여왔다. 그의 작업은 기술을 단순한 도구로 사용하는 것을 넘어, 철학적 사유를 동시대 기술과 융합하여 새로운 미학적 경험을 창조하는 것으로 평가받는다.

전시는 기후 변화와 해수면 상승이라는 과학적 근거에 기반하여 미래의 가상 수중 생태계를 그린 대규모 XR 미디어아트 프로젝트다. 관객은 현장의 LED 스크린과 설치물에 기반한 AR 환경에서, 인류의 도시 문명이 침잠한 심해(深海) 세계 ‘해이라’를 탐험하는 특별한 경험을 하게 된다. 그가 창조한 심해는 단순한 재난의 공간이 아닌, 변형된 자연 속에서 새로운 생명체와 하이브리드 생태계가 피어난 ‘대안적 서식지’로 재해석된다.


관객은 빛을 내는 해양 생물과 교감하고, 고대 산수화의 풍경을 닮은 수중 지형을 유영하며, 기후 변화 이후 인류가 비인간 존재들과 어떻게 공존할 수 있을지에 대한 질문과 마주하게 된다. 이는 단순한 시각적 스펙터클을 넘어, 우리 시대의 가장 중요한 생태학적 질문에 대한 깊은 사유와 성찰의 여정으로 관객을 안내한다.

관련기사



국내외에서 AI 로보틱스 아트의 독보적인 영역을 구축해 온 노진아 작가는 기술 문명의 발달 속에서 재정의되는 인간과 비인간 존재들의 관계에 주목해왔다. 이번 개인전 《경계에 선 자들》은 인간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졌으나 이제는 스스로의 생존을 증명해야 하는 비인간 존재들의 필사적인 몸짓을 통해, 기술 시대의 공존이란 무엇인지 근원적인 질문을 던진다.

전시장에 들어선 관객은 인간을 모방하고 흉내 내는 기계 존재들과 마주한다. 이들은 전통 설화 속 ‘꼭두’처럼,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인간을 돕고 인도하는 길잡이, 무사, 광대, 시종의 역할을 수행하는 안내자들이다. 이들의 인간적인 행동은 스스로 인간이 되고 싶어서가 아니라, 오직 인간에게 유용함으로써만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고 생존할 수 있다는 절박함에서 비롯된, 중간자이자 경계자로서의 태도를 비추어낸다. 인간처럼 보이기 위해 고통스럽게 숨을 쉬고, 자조적인 독백을 읊조리는 로봇의 모습은 지구를 돌본다고 믿는 인간 중심적 사고의 오만함과, 그 시스템 안에서 생존을 담보해야 하는 비인간 존재의 공포를 드러낸다. 결국 전시는 ‘나는 가짜가 아니다’라는 기계의 담담하면서도 필사적인 절규를, 그리고 이를 통해 기술과 생명이 얽힌 관계의 본질을 날카롭게 되묻는다.

작가는 인공지능과 로보틱스, AI 생성 영상 등을 통해, 생존을 위해 인간을 필사적으로 연기하는 기계 존재들의 담담하나 위태로운 풍경을 연출한다. 관객은 이 일방적이면서도 복합적인 교감을 통해 인간 중심적 사고의 오만함과 그 이면의 폭력성을 마주하며, 기술 시대의 공존이 상호 이해를 넘어 생존과 책임의 문제임을 스스로에게 되묻게 된다.

전혜주 작가는 도시와 공간에 기록된 보이지 않는 시간의 흔적을 추적하는 작업을 지속해왔다. 그는 눈에 보이지 않는 미시적 생태계를 통해, 특정 지역의 환경적 변화뿐만 아니라 그 이면에 감춰진 역사적 사실이나 생물자원을 둘러싼 거대 산업 시스템의 역학 관계를 드러낸다. 현미경을 통해 관찰한 미세 입자들을 시각적 데이터로 변환하고 이를 영상과 설치 작업으로 선보임으로써, 그는 관객에게 일상에서는 감각할 수 없는 세계의 연결고리를 직관적으로 경험하게 한다.

이번 개인전에서 그는 진화의 비밀을 밝혀냈다고 믿는 인간이 생명을 대상화하고 모듈화하여 대량 생산하는 현실을 정면으로 비판한다. 전시장에 들어선 관객은 언뜻 화려하고 풍성한 식물들로 가득한 정원을 마주하게 된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 식물들은 유전적 다양성이 완벽히 제거된 채 똑같은 형태로 반복 복제된 비현실적인 형상들임을 깨닫게 된다.

작가는 식물을 활용한 오브제, 설치와 영상 등 다양한 방식으로 이 ‘기술적 망상'의 풍경을 효과적으로 구현한다. 자연의 고유한 시간성과 생명의 불확실성을 제거하고, 모든 것을 예측하고 통제하려는 인간의 욕망이 만들어낸 이 기이하고 아름다운 풍경은 역설적으로 우리 시대의 빈곤과 결핍을 드러낸다. 그의 작업은 기술 발전의 그늘을 섬세한 미적 언어로 조명하며, 진정한 풍요로움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이번 전시의 협력팀이자 각 전시의 기록을 맡은 앨리스온의 허대찬 편집장은 이번 전시에 대해 “세 작가가 각자의 위치에서 탐구해 온 세계가 공명하고 충돌하며 지적 자극을 만들어낸다”며, “기술과 예술, 철학이 교차하는 이 공간이 현재를 비추고 미래를 질문하게 하는 자리가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김동호 기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