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중기·벤처

공 모양 순찰 로봇·지구 형상화 부스…창조적 콘셉트에 시선 집중[中 이번엔 ‘소프트 굴기’]

<상>‘마지막 1㎜’ 노리는 제조강국-현지 무역展 ‘캔톤페어’ 가보니

스마트홈 기업들 부스 디자인에

자사브랜드 철학·정체성 담아내

제품기획 단계부터 통합형 설계

디자인 실험도 활발…성장 견인

15일 중국 광둥성 광저우에서 열린 캔톤페어에서 휴머노이드 형태를 한 ‘로봇 바리스타’가 커피 만드는 과정을 시연하고 있다. 사진=김예솔 기자15일 중국 광둥성 광저우에서 열린 캔톤페어에서 휴머노이드 형태를 한 ‘로봇 바리스타’가 커피 만드는 과정을 시연하고 있다. 사진=김예솔 기자




19일 중국 최대 무역 전시회인 ‘중국수출입상품교역회(캔톤페어)’가 열린 광둥성 광저우 중국 수출입 박람회장. 행사장 중심에 마련된 ‘서비스 로봇 존’에는 관람객이 쉴 새 없이 몰려들었다. 이곳에서 제일 먼저 관람객들의 눈길을 사로잡은 건 공 형태의 감시 로봇이었다. 검은색 원형 로봇이 전시장 바닥을 구르며 관람객 사이를 가로질러 다녔다. 로봇이 빠른 속도로 순식간에 방향을 바꾸며 관람객 사이를 지나다니자 움찔하며 뒤로 물러서는 관광객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해당 제품은 ‘지능형 수륙양용 구형 로봇’으로 사람들이 쉽게 가지 못하는 오지나 물속 등 극한 상황에서도 순찰할 수 있도록 설계한 로봇이다. 카메라 센서로 주행 경로를 스스로 판단하며 최대 10시간 동안 최고 50㎞/h 속도로 주행이 가능하다. 특히 자율주행에 최적화된 원형 디자인으로 구현해 위험한 상황에서도 안정적으로 움직일 수 있도록 했다. 제품 양측에 부착된 카메라가 기존 CCTV의 사각지대를 보완해 360도 전방위 감시가 가능한 형태로 설계했다. 공 모양으로 디자인하면서 험한 지형에서도 빠른 속도로 이동하며 사각지대 없이 순찰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휴머노이드 형태를 한 로봇 바리스타는 요즘 호텔이나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형태와 사뭇 달랐다. 휴머노이드형 로봇 바리스타를 개발한 주링런(47) 씨는 “평범한 로봇이 커피를 만들기보다 사람 형태의 로봇이 만들면 고객들이 좀 더 친근하게 느끼지 않을까 생각해 휴머노이드 형태의 디자인을 고안했다”고 말했다. 아직은 투박한 디자인이지만 이러한 시도가 많은 관람객의 발길을 끌어들인 것이다. 세계 각국의 바이어들은 로봇 바리스타와 함께 개인 취향에 맞게 다양한 색상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한 손가락 관절 로봇을 유심히 살펴보기도 했다.

한국 최대 규모의 컨벤션 센터인 킨텍스보다 15배 이상 큰 155만 ㎡ 전시장에 있는 3만 2000여 기업의 7만 4600개 부스에서는 중국 기업들이 기술력에 디자인 역량까지 더해 시장 경쟁력을 확대하는 모습을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관람객들이 15일 중국 광둥성 광저우에서 열린 캔톤페어에서 전시 관람을 위해 이동하고 있다. 사진=김예솔 기자관람객들이 15일 중국 광둥성 광저우에서 열린 캔톤페어에서 전시 관람을 위해 이동하고 있다. 사진=김예솔 기자



바이어들은 글로벌 기업 제품을 모방하던 기존 중국 기업 이미지에 대한 질문에 “잘 몰라서 하는 소리”라고 일축했다. 오히려 일부 분야에서는 앞서가고 있다는 것이다. 10년째 캔톤페어에 참가하고 있는 한국 바이어 강 모 씨는 “예전에는 중국 제품에서 화려한 색감을 바탕으로 하는 ‘중국향’이 느껴졌지만 지금은 한국 기업과 중국 기업의 디자인을 구분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공정 속도와 가격 경쟁력에서 압도적인 우위를 보이는 중국 기업이 디자인까지 끌어올리며 한국 기업을 추격하고 나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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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기업들이 기술력과 디자인에 자신감이 생기면서 스마트홈 기업들은 부스 디자인에서도 자사 브랜드 철학을 적극적으로 드러냈다. 하이얼은 축구·테니스 등 인기 스포츠 후원사로서의 정체성을 부스 한쪽 벽면에 표현했고 마이디어는 지구를 형상화한 원형 구조물 속에 자연 생태계를 담아내며 친환경 브랜드 이미지를 강조했다. 이곳에 전시된 각종 가전제품들의 디자인에서는 기존 중국 제품에서 보던 투박함과 촌스러움은 찾아볼 수 없었다.

15일 중국 광둥성 광저우에서 열린 캔톤페어에서 사족 보행 로봇이 계단을 올라가고 있다. 사진=김예솔 기자15일 중국 광둥성 광저우에서 열린 캔톤페어에서 사족 보행 로봇이 계단을 올라가고 있다. 사진=김예솔 기자


이 같은 변화는 최근 몇 년 사이 중국 기업들의 기술력이 급속도로 고도화되면서 디자인의 역할이 근본적으로 달라진 흐름과 맞닿아 있다. 과거에는 완성된 기술 위에 외형을 입히는 수준에 머물렀다면 이제는 제품 기획 단계부터 기술과 사용자 경험을 함께 설계하는 통합형 구조로 바뀌고 있다. 특히 로봇이나 전기차·웨어러블 등 테크 산업 전반에서 디자인은 기술 콘셉트를 시각화하는 핵심 과정으로 자리 잡았다. 이러한 공동 설계 방식은 글로벌 기업 전반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추세다. 이러한 모습을 두고 중국 기업들이 이미 글로벌 기업 수준에 도달했다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이러한 변화의 뿌리는 장기적으로 중국 제조업의 질적 전환을 추진하는 중국 정부의 강력한 의지에서 찾아볼 수 있다. 앞서 2015년 당시 중국 국무원 총리였던 리커창은 세계 제조 강국으로의 도약을 목표로 한 장기 산업 발전 계획인 ‘중국 제조 2025(Made in China 2025)’를 발표하면서 “제조업을 고도화하고 단순한 ‘중국 제조’에서 혁신적이고 지능화된 ‘창조 중국’ ‘지능 제조’로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이를 실현하기 위해 제조업 혁신의 중요한 핵심 고리로 산업디자인을 꼽았다.

15일 중국 광둥성 광저우에서 열린 캔톤페어에서 하이얼·마이디어 등의 스마트홈 기업이 브랜드의 특색을 내세운 디자인 설계로 부스를 운영하고 있다. 사진=김예솔 기자15일 중국 광둥성 광저우에서 열린 캔톤페어에서 하이얼·마이디어 등의 스마트홈 기업이 브랜드의 특색을 내세운 디자인 설계로 부스를 운영하고 있다. 사진=김예솔 기자


중국 정부의 이러한 강력한 의지에 더해 중국 기업들은 다양한 도전에 나서며 제품 수준을 끌어올리고 있다. 실제 중국에서는 다양한 디자인 실험이 활발하게 벌어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 대해 디자인 업계는 “중국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입을 모았다. 송봉규 BKID 대표는 “한국은 일정 수준의 성공이 보장된 안정적 디자인을 추구하지만 중국은 다양한 아이디어를 제품화하는 데 거침이 없다”며 “이러한 특성은 중국 디자인이 가진 강력한 무기”라고 강조했다. 불필요한 요소를 덜어내는 ‘미니멀리즘’을 지향하는 한국과 달리 새로운 기능과 형태를 끊임없이 더하는 것 또한 중국 디자인의 특징으로 꼽힌다. 윤홍남 한국디자인진흥원 중국센터장은 “중국에서는 일단 기능이나 디자인을 추가해본 뒤 시장에서 반응이 좋으면 발전시키고 아니면 과감히 다른 방안을 모색한다”며 “이런 태도가 중국 디자인이 빠르게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관람객들이 15일 중국 광둥성 광저우에서 열린 캔톤페어에서 전동 캐리어를 타고 이동하고 있다. 사진=김예솔 기자관람객들이 15일 중국 광둥성 광저우에서 열린 캔톤페어에서 전동 캐리어를 타고 이동하고 있다. 사진=김예솔 기자


광저우=김예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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