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권력자가 민주적 기본질서를 직접 침해…기존 판례 적용할 수 없다"

◆징역 23년 중형 선고 배경은

계엄 형식적 요건 갖추는데 관여

언론사 단전·단수 이행에도 동의

"위로부터의 내란이자 친위 쿠데타

최후진술에서야 사과…진정성 없어"

허위 공문서·위증 등도 유죄 인정

21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한덕수 전 국무총리의 내란 중요임무 종사 혐의 1심 선고 공판에서 이진관 부장판사가 발언하고 있다. 사진 제공=서울중앙지법21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한덕수 전 국무총리의 내란 중요임무 종사 혐의 1심 선고 공판에서 이진관 부장판사가 발언하고 있다. 사진 제공=서울중앙지법




한덕수 전 국무총리에게 징역 23년을 선고한 법원의 판단은 비상계엄 국면에서 국무총리가 부담하는 헌법적·형사적 책임을 분명히 한 판결로 평가된다. 재판부는 계엄이 ‘계몽적’이거나 ‘경고성’ 조치였다는 주장을 모두 탄핵하고 헌정 질서를 파괴하려 한 내란으로 명확히 규정했다. 특히 이번 사태를 국민이 선출한 권력자에 의한 ‘위로부터의 내란’ ‘친위 쿠데타’로 명시하며 기존 내란 사건 판례를 양형 기준으로 삼기 어렵다고 밝혔다. 이런 판단은 검찰 구형(징역 15년)을 넘어서는 중형 선고로 이어졌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3부(재판장 이진관 부장판사)는 21일 한 전 총리의 내란 중요임무 종사 등 혐의 1심 선고 공판에서 징역 23년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했다. 재판부는 “국헌을 문란하게 할 목적의 폭동은 그 자체로 민주주의에 치명적인 손상을 남긴다”며 “국민이 신뢰해 온 민주주의의 기반을 근본부터 흔드는 행위”라고 판시했다.

재판부가 먼저 판단한 쟁점은 비상계엄이 형법상 내란에 해당하는지 여부였다. 법원은 군과 경찰 병력이 대규모로 투입되기 이전 단계에서 이미 내란이 실행됐다고 봤다. 비상계엄 선포와 동시에 발령된 포고령에 국회의 활동 제한, 영장 없는 체포·구금, 언론·출판 통제 등 위헌적 내용이 포함돼 있었기 때문이다. 재판부는 이를 두고 “헌법과 법률의 기능을 소멸시키려는 목적에서 발령된 것”이라며 국헌문란 목적이 명백하다고 판단했다.

내란 우두머리 방조 등 혐의를 받는 한덕수 전 국무총리가 21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1심 선고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조태형 기자 2026.01.21내란 우두머리 방조 등 혐의를 받는 한덕수 전 국무총리가 21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1심 선고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조태형 기자 2026.01.21



재판부가 검찰 구형을 8년이나 초과해 중형을 선고한 배경에는 사건의 특수성이 있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재판부는 이번 비상계엄을 ‘최고 권력자에 의해 위로부터 실행된 내란’이자 ‘친위 쿠데타’로 규정했다. 이어 “이른바 아래로부터의 내란과 달리 국민이 선출한 권력자가 헌법과 법률을 경시하며 민주적 기본 질서를 직접 침해한 경우”라며 “민주주의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뿌리째 흔드는 결과를 초래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재판부는 과거 내란 사건 판례만으로 이번 사건의 형을 정할 수는 없다고 선을 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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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부는 한 전 총리의 책임을 단순 방조나 소극적 관여로 보지 않았다. 국무총리로서 계엄 선포에 필요한 국무회의 심의와 국무위원 부서 등 절차적 외관이 형성되는 과정에 관여했다고 판단했다. 특정 언론사에 대한 단전·단수 조치 논의도 중대하게 평가됐다. 재판부는 해당 조치가 헌법이 절대 금지한 사전 검열 영역에 해당할 수 있음에도 한 전 총리가 이를 중단시키지 않았을 뿐 아니라 관계 장관과 협의하며 이행 방안까지 논의한 점을 지적했다. 재판부는 “국무총리는 헌법 질서를 수호해야 할 지위에 있음에도 오히려 그 침해 과정에 관여했다”고 판단했다.



사후 행위에 대한 평가는 더욱 엄격했다. 재판부는 비상계엄 선포 이후 작성된 사후 계엄 문서를 “적법한 절차에 따라 계엄이 선포된 것처럼 외관을 갖추기 위한 허위 공문서”로 규정했다. 한 전 총리가 서명 과정과 작성일 소급 사실을 인식하고 있었고 이후 논란을 우려해 폐기를 요청한 점 등을 근거로 허위공문서작성과 대통령기록물 손상 혐의를 유죄로 인정했다. 헌법재판소에서의 증언도 “기억에 반한 단정적 부인”에 해당한다며 위증이 성립한다고 판단했다.

이런 판단을 전제로 재판부는 양형 이유를 설명했다. 12·3 비상계엄은 사망자가 발생하지 않았고 수시간 만에 해제됐지만 법원은 이를 결코 유리한 사정으로 보지 않았다. 재판부는 “그 결과는 내란 가담자들의 절제 때문이 아니라 국회를 지킨 시민과 일부 군경의 저항 덕분”이라며 “내란이 성공하지 않았거나 피해가 현실화되지 않았다는 점은 형을 가볍게 할 근거가 될 수 없다”고 밝혔다. 아울러 국헌문란 목적의 내란은 발생 자체만으로도 막대한 재산상·사회적 피해가 뒤따를 수밖에 없고 만약 성공할 경우 이를 회복하는 데 극도의 위험과 비용이 따른다고 지적했다.

선고 말미에는 한 전 총리의 태도에 대한 질타도 이어졌다. 재판부는 한 전 총리가 사후에 자신의 안위를 위해 진실을 은폐하고 책임을 회피하려 했다고 지적했다. 또한 이러한 행위가 민주주의에 대한 사회적 신뢰를 더욱 훼손하고 정치적 갈등을 심화시켰다고 봤다. 재판부는 “범죄 사실이 공판 과정과 증거조사를 통해 드러난 뒤에야 최후진술에서 사과했지만 그 사과의 진정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며 헌정 질서 훼손에 대한 실질적인 반성과 회복 노력이 없었다는 점을 양형에 불리하게 반영했다고 밝혔다.


김선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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