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귀질환 신약 개발의 가치가 시장성이 떨어진다는 그간의 평가를 뒤로 하며 재조명되고 있다. 시장 규모가 작게 추산되던 신약이 막상 출시 후에 급성장하는 사례가 여럿 등장한 데다 희귀질환 신약의 특성상 가격도 높게 책정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희귀질환 신약 개발을 장려하며 신속한 품목허가 방안들을 마련해 둔 것도 장점이다. 여기에 최근 인공지능(AI) 기술의 발달은 희귀질환 신약 개발의 기폭제가 되고 있다.
10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메드팩토(235980)는 최근 신약 후보물질 ‘백토서팁’의 골육종 환자 대상 임상 2상 환자 모집을 시작했다. 메드팩토가 기존에 대장암 중심이던 백토서팁의 개발 방향을 희귀질환인 골육종 중심으로 전환했다는 점이 눈에 띈다. 시장조사업체 글로벌데이터에 따르면 미국·유럽·일본·중국 등 8개국 대장암 치료제 시장 규모는 2021년 기준 158억 달러(약 22조 원)에 달하지만 골육종 환자는 서구에서 인구 10만 명당 약 0.3명이 발생할 정도로 희귀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메드팩토는 백토서팁을 골육종 타깃으로 개발할 때 잠재력이 더 크다고 판단했다. 메드팩토 관계자는 “희귀질환은 환자 수가 워낙 적기 때문에 시장 규모를 미리 가늠하기 어렵고, 혁신신약이 등장했을 때 블록버스터(연매출 10억 달러 이상)가 되기도 한다”며 “희귀질환 신약으로 품목허가를 받으면 약가 우대를 받아 고가에 팔리기 때문에 환자 수가 적어도 매출은 예상보다 커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노바티스의 유전자치료제 기반 척수성 근위축증 치료제 ‘졸겐스마’는 2020년 출시 후 1년 만에 매출 10억 달러를 돌파하며 블록버스터 의약품 반열에 올랐다. 희귀질환을 대상으로 하지만 1회 투여 비용이 약 20억 원에 달한다는 특징이 있다. 더 나아가 글로벌 의약전문매체 피어스파마에 따르면 7월 기준 전 세계에서 가장 비싼 의약품 10개 중 8개가 희귀질환 치료제다. 시장조사업체 이밸류에이트파마는 글로벌 희귀의약품 시장규모가 지난해 기준 1850억 달러(약 257조 원)에서 2028년 2700억 달러(약 375조 원)로 4년간 약 46% 커질 것으로 보고 있다.
FDA로부터 희귀의약품 지정(ODD)을 받으면 신속하게 허가를 받을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희귀의약품으로 지정되면 임상 2상 결과만으로도 품목허가를 받아 시장에 조기 진입할 수 있다. 백토서팁을 비롯해 이엔셀(456070)의 샤르코마리투스병 치료제 ‘EN001’, 온코닉테라퓨틱스(476060)의 췌장암 치료제 ‘네수파립’, 젬백스(082270)앤카엘의 진행성 핵상마비 치료제 ‘GV1001’ 등이 FDA로부터 희귀의약품 지정을 받았다. 일동제약(249420)의 계열사 아이디언스가 전날 700억 원 규모의 라이선스 계약을 발표한 ‘베나다파립’도 FDA에서 위암 분야 희귀의약품 지정을 받았다.
최근에는 AI 기술이 발달하면서 희귀질환 신약 개발을 촉진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GC녹십자(006280)는 최근 지질나노입자(LNP) 플랫폼을 기반으로 한 희귀질환 신약 비임상 연구를 과학기술논문인용색인(SCIE) 국제학술지에 게재했다. 회사 관계자는 “AI 분석으로 기존 LNP 기반 치료제의 간 독성과 과도한 면역반응 문제를 극복했다”며 “AI를 활용해 지질 라이브러리를 구축하고 최적의 LNP를 선별하는 플랫폼을 구축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