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69
  • “웰컴! 라스베가스에 오셔서 마음이 설레시나요? 제 재킷 마음에 드시나요?” 젠슨 황은 청중의 환호를 받으며 발표를 시작했다. 그는 로마시대 전쟁터에 나가는 장수처럼, GPU블록과 반도체 방패를 들고 마치 미래에서 온 록스타처럼 반짝이는 가죽 재킷을 입고 스타디움 무대에 등장했다. 1만 2000 명의 관객이 열광하는 가운데 그는 거대한 LED 스크린을 배경으로 AI 기술이 만들어낼 다이나믹하고 스펙타클한 미래를 발표할 순간을 맞았다. 기조연설 후반부, 무대 앞쪽이 천천히 상승하며 젠슨 황을 중심으로 14명의 AI 휴머노이드 로봇들이 등장했다. 이 로봇들은 마치 미스 유니버스 미인대회처럼 일렬로 서서 한손을 흔들며 젠슨 황의 친구라고 소개되었다. 마치 AI 에이전트 로봇들이 백댄서로 등장한 록스타 콘서트 같았다. 물론, 노래 대신 메시지로 비전을 전하는 형식이었다. 래퍼처럼, 그는 강렬한 메시지를 전하며 미래에 대한 비전을 공유했다. 그는 AI의 진보를 설명하면서 이미지, 단어, 소리를 이해하는 인식형 AI(perception AI)에서 이미지, 텍스트, 소리를 만들어내는 생성형 AI(generative AI)에 이어 이제 우리는 인식, 추론, 계획과 행동이 가능한 물리적 AI(physical AI)의 시대에 접어들었다고 말했다. 화려한 록 콘서트를 보고 있는 착각 속에 몰입하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것이 바로 CES 2025에서 발표된 엔비디아 CEO 젠슨 황의 기조연설이었다. 그가 선보인 야심찬 프레젠테이션은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그 어떠한 가능성에 대해서도 열려있는 가까운 미래의 청사진을 그려낸 놀라운 순간이었다. 그의 발표는 가상 공간에서의 시뮬레이션이 빠른 시간내에 현실 공간으로 확장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이 이야기는 건축적 상상력과 밀접하게 연결된다. 가상 공간인 옴니버스에서 시뮬레이션을 통해 모든 현실 가능성을 실현할 수 있다는 메시지는, 건축이나 도시 설계에서의 상상력이 기술로 어떻게 현실화될 수 있는지를 시사한다. 가상 공간에서 시뮬레이션을 통해 현실을 변화시키는 과정은 AI와 건축의 미래적 가능성에 대한 중요한 논의를 시작하는 기점이 된다. SF영화처럼 펼쳐지는 미래 도시, 상상의 세계가 물리적 AI(physical AI)를 통해 상상력을 현실로 바꾸는 장면을 상상할 수 있다. 자율주행차가 도로 위를 달리고, AI 로봇들은 거리에 자연스럽게 섞여 사람들과 서로 상호작용하며 대화한다. 이들은 단순한 기계가 아니라 주체적인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존재로, 인간과 같은 감정을 경험하고, 상황에 따라 자기 자신의 선택을 할 수 있는 AI의 몸을 입은 존재들이다. 이 도시내에는 AI와 빅데이터가 결합된 거대한 구형의 빛의 건물이 떠오른다. 이 건물은 사람들의 감정을 실시간으로 읽고, 그에 맞는 미디어 아트를 생성하여 도시를 비주얼적으로 변화시킨다. 누군가 우울해하면 하늘의 빛이 부드럽게 변화하고, 행복한 순간에는 찬란하게 빛난다. 이처럼 도시 전체가 그 감정에 반응하며, 단순한 기술의 구현을 넘어서, 도시 전체가 살아 있는 예술 작품처럼 변하는 것이다. 프랑스의 포스트모던 철학자 장 보드리야르는 현대 사회가 점차 시뮬레이션을 소비하고, 현실과 시뮬레이션의 경계가 흐려진다고 설명하면서, 라스베가스를 초현실적 공간으로 해석했다. 그는 ‘하이퍼리얼(hyperreal)’이라는 개념을 통해 현실과 시뮬레이션이 구분되지 않는 시대를 예고했다. 젠슨 황은 바로 그 라스베가스에서 엔비디아의 GPU와 AI 기술이 결합된 새로운 미래를 제시하며, 가상성과 현실의 경계를 허물고자 했다. 젠슨 황이 엔비디아의 GPU를 설명하기에 가장 적합한 도시인 라스베가스에서 발표를 했다는 사실은 매우 상징적이다. 라스베가스는 상상 속 현실이 펼쳐지는 도시로, 인간의 욕망, 환락, 스펙터클, 도피성, 현대성 등이 결합된 초현실적 환경을 제공한다. 젠슨 황이 이 도시에서 발표한 것은 GPU와 AI 기술을 통해 이 가상성을 현실화하겠다는 의도를 담고 있었다. AI 에이전트 로봇을 통해 이를 실현하고자 하는 의지가 강하게 드러났다고 볼 수 있다. 이와 같은 AI와 기술의 융합은 다른 기업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친다. 한국 기업들도 CES 2025에 참여하여 뛰어난 기술력을 선보였다. SK는 AI 데이터 플랫폼을 중심으로, LG는 AI 기반 생활형 스마트홈, 삼성전자는 AI 스마트 기술 및 디스플레이 기술, 현대자동차는 AI 연동 로봇 솔루션을 소개했다. 또한, 서울통합관은 첨단 미디어 기술과 디지털 콘텐츠를 통해 서울의 미래 문화를 알리기 위한 전시 공간을 마련했다. 하지만, 젠슨 황의 감각적이고 스펙타클한 프레젠테이션처럼 AI 전체 생태계를 계획하여 미래를 장악하겠다는 확고한 포부와 아이디어를 제시한 기업들은 여전히 드물다. 일런 머스크, 스티브 잡스와 같은 인물들이 보여준 확고한 철학과 창의력이 한국 기업들에게는 다소 부족한 느낌이 든다. 특히, AI 기술을 기반으로 한 상상력의 적용과 비전은 한국 기업들이 강화해야 할 부분이다. 한국은 여전히 AI 분야에서 아직 갈 길이 멀어 보인다. AI 세계는 상상력과 기술력의 결합이 중요하다. 우리 기업과 문화는 더 확고한 철학과 비전을 가지고, 기술의 발전에 맞춰 상상력을 적용하는 창의적인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한국만의 경쟁력과 고유한 철학을 바탕으로 AI와의 융합은 소프트 파워를 극대화하는 중요한 전략이 될 수 있다. 한국은 기술 혁신, 문화적 가치, 그리고 사회적 책임을 중시하는 나라로서, AI와의 결합은 단순히 기술적 도구를 넘어 한국적 가치와 문화적 유산을 세계에 알리고, 세계인들과의 연결과 공감을 만들어가는 중요한 열쇠가 될 것이다.
    젠슨 황과 '물리적 AI' 상상력   
    by 이경화
    2025.01.25 06:00:00
  • 19. 두 종류의 자랑거리 하얀 죽 한 사발이 가만히 테이블 위에 놓였다. 고개를 드니, 어머니였다. 우리가 꼿꼿하게 토론하는 모습을 멀찍이 바라보고 계셨는데, 어느새 나에게 먹일 죽을 준비한 모양이었다. 나는 1주일 동안 음식도 물도 거의 마시지 않은 상태였다. 입관이 끝난 뒤에야 겨우 일회용 면도기로 수염을 깎으려 화장실에 들어갔다. 나는 거울 앞에서 헉 놀라서 물러났다. 영화 ‘빠삐용’에서, 탈옥을 감행했다가 독방에 갇혀 햇빛도 없이 바퀴벌레를 잡아먹으며 견디다가 축 늘어져 끌려 나오던 스티브 맥퀸의 창백하고 메말라버린 얼굴을 닮은 남자가 거울 안에 서 있었다. 육체적으로도 굶주린 상태였지만, 매일 받던 세상의 관심과 칭찬과 자랑거리의 자양분이 공급되지 않아서 정신도 살아있다고 말할 수 없었다. 다시 거울을 보니, 염을 한 아버지의 하얀 얼굴을 닮았다는 생각이 들어서 내가 죽어버렸다는 생각이 얼핏 스쳤다. 거울 속의 나를 다시 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나는 어머니께 고분고분 말했다. “좀 식으면 먹도록 할게요. 어머니도 좀 쉬도록 하세요.” 여자와 토론을 하자, 내 승부사 기질이 식욕까지 조금씩 깨우고 있었다. 조문객들은 장례식장 음식을 먹으면 코로나에 당장 걸릴 것처럼 아예 식당에 들르지도 않았고, 그래서 음식을 먹어야 한다면 장례식 식당이 가장 안전할 정도였다. 그렇다고 생판 모르는 여자를 앞에 두고 죽을 먹을 순 없었다. 그러고 보니 생판 모르는 여자와 이렇게 성경을 토론하게 된 상황이 이상했다. 누가 저 하얀 가죽 표지의 성경을 나에게 전하라고 했는지 궁금해졌지만 묻지 않았다. 대신에 여자와 토론을 계속 이어가고 싶은 욕심에 미처 풀지 못한 의문을 말했다. “대담에서 프랑스 작가가 말했던 대응 문구 기억하시죠?” 표지 문구를 이해하려면 대응 문구도 함께 이해해야 한다고 프랑스 작가가 주장했고, 그 두 문구는 다시 모순적인 관계여서 난감했었다. 여자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대응했다. “‘너희는 값으로 사신 것이니 사람들의 종이 되지 말라’와 ‘내가 모든 사람에게서 자유로우나 스스로 모든 사람의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기 위한 것이다’ 사이의 모순을 말씀하시는 거죠?” 여자는 내 속을 환히 들여다보는 것 같았다. 나는 두 문장의 모순 관계를 설명해보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성악을 전공한 여자에게는 무리였다. 세계적인 작가와의 대담에서도 이해하지 못했던 부분을 이 여자가 쉽게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내가 침묵을 지키자 여자가 차분하게 말했다. “제 친구가 출판사의 부탁으로 어린이 성경책을 편집한 적이 있어요. 내용은 읽기는 해도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했다고 고백한 적이 있거든요. 대담자 님이나 김아리랑 팀장님뿐만 아니라, 책을 전문적으로 편집하는 사람이나 마찬가지예요. 성경이 어려운 이유는 인간끼리 소통하기 위한 언어가 아니라 신과 소통하기 위한 영의 언어라는 점이에요. 성령없이 영의 언어를 이해하기가 어렵답니다.” “…….” “지금은 아무리 설명해봤자 이해하기 어려우실 테니, 아예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어요. 성경은 책 전체가 모순 언어예요.” 여자는 생각했던 것보다 화술이 좋았다. 두 문장의 모순으로 끙끙대는 나에게, 성경 전체가 모순 언어라고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사람이 신의 언어를 이해한다는 말인가. 나는 여자의 대범한 표현에 조금 매료되어 말했다. “어째서 그런지 설명해보세요.” “신의 언어를 세상의 언어로 이해하려니 전체가 모순일 수밖에 없지요.” “예를 들어보세요.” 성악을 전공한 여자의 리듬감이 있는 목소리가 듣기가 좋았다. “대담자 님은 죄인이신가요?” “뭐, 그렇지는 않습니다. 그랬다면 감옥에 있겠지요.” “대담자 님이 죄인이 아니라고 간단하게 대답한 것은 살인이나 도둑처럼 사회적인 범죄인 크라임(crime)을 저지르지 않았기 때문이잖아요. 그런데 성경에 의하면 대담자님은 죄인이세요. 본인이 아니라고 하고 법도 그렇지 않다고 하는데 당연히 모순이잖아요.” “…….” “성경에서 말하는 죄인은 아담 이후의 모든 인간에 해당해요. 아담 한 사람이 죄를 지어 그 후 모든 인간이 하나님과 분리된 상태가 된 죄를 씬(sin)이라고 해요. 이처럼 아담 한 사람에 의해 모든 인간이 죄인이 되었지만, 다시 예수님 한 분에 의해 모든 인간이 새 생명을 얻고 하나님과 다시 연합할 수 있게 되었어요.” “더 쉬운 예를 들어보세요.” 여자는 처음으로 갸웃하는 표정이었고, 눈망울이 커졌다. “다이아몬드로 예를 들어볼게요. 성경이 쓰여질 당시에는 금강석이라고 불렀죠. 흔히 다이아몬드라는 세상의 가장 아름답고 단단한 보석으로 여기잖아요. 성경에서는 금강석을 마음이 굳어서 말씀을 잘 받아들이지 못하는 닫힌 마음을 비유하기도 해요.” 그런 사람이 나 같은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 같아서, 본능적으로 반격했다. “시인들도 얼마든지 그렇게 비유할 수 있죠.” “성경의 언어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어요. 믿음을 가진 인간이 자랑할 수 있는 가장 큰 것은 재물이나 다이아몬드가 아니거든요. 유일한 자랑거리는 예수님을 통해 새 생명을 얻고 하나님을 다시 만난 거예요. 하나님을 모르면 자신의 재물이나 노력으로 얻은 것들을 세상에 자랑하며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인간이 노력으로 이룬 재물이 죄라는 뜻인가요? 세상 사람의 능력이나 재능이 하나님 앞에서는 죄가 된다는 뜻인가요?” “물론 아니에요. 그리스도인이 되면 자신의 재능이 어디서 왔는지를 알게 된다는 뜻이에요. 다윗 아시죠?” “하나님이 가장 사랑한 이스라엘의 왕이자 예수님이 다윗 왕의 후손이잖아요.” “성경을 상당히 잘 아시네요. 본래 다윗은 당시 천한 직업이었던 양치기였잖아요. 다윗은 양들을 불러 모으거나 외로움을 견디기 위해 수금을 연주하곤 했어요. 수금이 다윗의 세상적인 재능이었던 셈이죠. 그런데 당시 사울 왕이 나쁜 영에 사로잡혀 병이 들게 되고, 다윗의 수금이 유명해서 궁궐로 들어가 수금으로 그 영을 쫓아내고 왕의 사위가 되어요. 게다가 다윗은 새벽에 일어나 하나님과 교제하거나 찬양할 때나 곧잘 수금을 연주하길 좋아했어요. 다윗은 나중에 사울에 이어 왕이 되지요. 양치기 다윗을 왕으로 만든 수금의 재능은 어디서 왔을까요?” “양을 지키려고 수금을 많이 연습했겠지요.” “그렇다면 양을 지키는 수금이 어떻게 왕의 병까지 고칠 수 있었을까요? 다윗은 수금의 재능을 하나님이 주신 것으로 믿었어요. 그래서 수금은 양치기 직업을 수행할 때 꼭 필요한 도구였겠지만, 그것이 하나님의 능력을 덧입어서 사람을 위로하고 치료하는 기술이 되었고, 특히 새벽에 주님을 찬양하는 아름다운 악기로 변하게 된 거예요. 대담자 님의 놀라운 언어 감각이나 대담 능력도 어디서 왔는지 생각해보시면 좋을거예요.” 성경은 수천 년 전의 책이었다. 인간이 수금으로 양을 몰지도 않으며 그것으로 치료를 하지도 않는다. 그리고 현 상황에서 나의 대담 능력을 칭찬받자 도리어 조롱처럼 느껴졌다. 칭찬이 모멸감으로 느껴지는 경험은 처음이었다. 나도 모르게 빈정거리는 어투가 나왔다. “현대에는 과학이 워낙 발달해서 인간의 능력이 점점 신을 닮아가는 정도죠.” “인간의 과학이 대단한 것 같지만, 성경 속 사건과 비교하면 겨우, 바벨탑 정도예요. 구약에서 인간들이 바벨탑이 쌓게 된 계기가 과학적 성과에 의해 벽돌을 ‘발명’했기 때문이에요. 흙이 아니라 벽돌이 가능해지자 이 엄청난 과학적 성과를 통해 하늘에 닿을 탑을 쌓을 수 있다고 여겼죠. 탑을 쌓아 하나님께 도달할 수 있다고 하나님께 도전했던 사건이에요. 인간의 교만이 자라나서 그 탑에 공헌한 인간의 이름을 벽돌마다 새기기로 했던 거예요. 우주에 탐사선을 띄워 보내는 현대 인간의 과학이나 발명이 창조주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그 수준이에요.” 성악을 전공한 여자가 이렇게 말을 잘한다는 것이 신기했다. 나의 의문이나 질문에 막힘이 없어서 이런 언어의 힘이 어디서 나오는지 궁금했다. 여자는 모순의 언어를 설명하면서도 전혀 말에 모순이 없었다. 나는 거의 식은 하얀 죽을 내려다보았다. “저에게 성경을 읽으라면 무엇부터 읽으라고 권해주시겠습니까.” 육체적 시장기와 성경을 알아보고 싶은 시장기가 동시에 느껴져 무심코 말했다.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성경의 소제목들은 왕의 이름이나 업적을 드러내는 제목은 없어요. 창세기부터 구약은 거의 하나님의 언약이나 능력을 그리고 시편도 인간의 재능으로써의 시가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찬양이에요. 신약은 선지자들의 이름으로 되어 있어요. 요한복음, 사도행전처럼. 성경을 읽기 전에 예수님을 구주로 받아들이면 하나님께서 인도하실 거예요.” “성경의 소제목들은 선지자들의 이름뿐만 아니라 지역 이름으로 되어 있는 것도 많지요. 가령, 고린도라거나…….” “아! 좀 전에 말한 대응문장이 고린도 전서 9장 19절이에요. 대담이 끝나고 제가 확인했거든요. 고린도 전도와 고린도 후서는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보낸 서신들이에요. 어떤 이들에게는 고린도가 자신의 재능을 자랑하는 장소가 될 수도 있겠지만, 바울에게는 자기를 낮추고 주님을 자랑하여 복음으로 지경을 넓혀갈 땅이었어요. 그래서 바울이 이같은 대응 문구를 말한 거예요. ‘내가 모든 사람에게서 자유로우나 스스로 모든 사람의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기 위한 것이다.’ 더 많은 사람을 얻는다는 것은 인기나 부릴 종을 얻겠다는 것이 아니라, 복음을 전할 사람을 얻는다는 것이에요. 예수님의 새 생명을 전하기 위해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도 좋다는 뜻이예요.” ▶다음 회에 계속 … 김다은은 ‘당신을 닮은 나라’가 1995년 제3회 국민문학상을 수상하면서 소설가로 등단했다. ‘덕중의 정원’ ‘훈민정음의 비밀’ ‘쥐식인 블루스’ 등 20여권 소설책을 출간하고, 다수 번역돼 해외 소개됐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주관한 폴란드 바르샤바대학 작가 레지던시를 비롯, 청송 객주 문학관, 정선 여량면 아우라지 레지던시, 해남 인송문학촌 토문재 레시던시에 참가했다. 이화여대 불어교육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파리8대학에서 불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추계예술대 문예창작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작권자의 허락없이 무단 부분 혹은 전체 전재, 복사, 배포를 금합니다.)
    종의 기원  <19회>
    by 김다은
    2025.01.13 09:00:00
  • 1900년, 25살의 젊은 정신과 의사인 융은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을 읽고 그의 추종자가 된다. 1907년, 융은 오스트리아 비엔나에 있는 프로이트를 방문하고 그가 명석하고 비범한 인물이라는 사실을 알게된다. 한때 융은 자신의 교수직이 위험에 처할지도 모른다는 경고를 받으면서도 프로이트의 열렬한 지지자가 되었다. 특히, 융은 프로이트가 주장한 ‘억압이론’에 흥미를 가졌다. 심리적 억압(repression)이란 받아들이기 힘든 원초적 욕망이나 불쾌한 경험이 의식으로 떠오르지 못하도록 내면의 무의식 속에 눌러두는 것을 말한다. 억압이 심하면 불안의 원인이 되거나 심한 경우에 히스테리적 신경증이 될 수도 있다. 프로이트는 억압의 원인을 어린시절 받은 성적 학대나 성적인 외상(Trauma)으로 보았다. 하지만 융은 신경증 환자를 다루면서 성욕문제는 부차적인 역할을 할 뿐이며 억압의 중요한 요인으로 사회적응, 비극적인 삶의 정황으로 인한 억압, 체면차리기 등이라고 보았다. 하지만 프로이트는 자신의 확신을 포기하지 않았다. “친애하는 융, 성이론을 결코 버리지 않겠다고 나에게 약속하십시오. 그것은 가장 본질적인 것입니다. 보시오. 우리는 성이론을 가지고 하나의 교리를 만들어야 합니다....” 융은 이점에 관해서 의문을 가지고 있었다. 1909년, 프로이트와 융의 관계가 파국을 맞는 사건이 발생한다. 둘은 미국 클라크 대학의 초청으로 미국에 여행 중에 꿈의 해석에 대하여 토론하면서 융은 ‘프로이트는 독선적이고 권위주의적인 자세를 풀지 않았다’는 점을 알게된다. 결국 융은 프로이트가 주장한 오이디프스 콤플렉스나 성적 발달단계의 본질에 대하여 회의를 품고 프로이트와 결별을 결심한다. 칼 융은 말한다. “현대 물리학자가 모든 힘을 이를테면 열에서만 끌어낼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심리학자 역시 모든 본능을 권력이나 성의 개념 따위로 분류할 수 없다.” 프로이트와 결별을 암시하는 꿈 얼마 후 융은 스위스와 오스트리아 국경의 산악지대의 풍경이 배경으로 나오는 꿈을 꾼다. “저녁 무렵, 나는 오스트리아제국의 세관관리 복장을 하고 있는 연상의 남자를 보았다. 그는 약간 구부정한 자세로 나에게는 눈길 한번 주지 않고 지나쳐버렸다. 그의 표정은 고집스럽고 다소 우울하고 짜증을 내는 듯 했다. 그 장소에는 다른 사람들도 있었는데, 누군가가 나에게 저 노인은 실제로 이곳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몇 년 전에 편히 저승길에 들어가지 못한 망령 가운데 하나입니다"라고 말했다. 이것이 그 꿈의 첫 부분이었다. 융은 이 꿈을 다음과 같이 분석했다. ‘세관’과 관련하여 나는 금방 ‘검열’이라는 낱말을 떠올렸다. ‘경계’와 관련해서는, 한편으로는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를 생각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프로이트와 나의 경계를 생각했다. 국경에서의 아주 엄격한 세관검사는 분석을 암시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국경지대에서는 여행가방들이 열려져 밀수품이 없나 검사를 받게 된다. 이런 검사과정에서 무의식의 가정(假定)들이 드러나게 된다. 늙은 세관관리로 말할 것 같으면, 그의 직업이 그에게 즐겁거나 만족할 만한 것을 거의 가져다주지 않았으므로 그는 세상을 비뚤어지게 보았다. 나는 그가 프로이트의 유사물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융은 이 꿈이 사실상 프로이트와 결별을 예고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그와 결별했음에도 불구하고 융은 프로이트의 업적을 높이 평가했다. 융은 말한다. “그가 우리 문화에 준 충격은 무의식으로 통하는 길을 발견한 것이었다. 그는 꿈을 무의식 과정에 대한 가장 중요한 정보원으로 인정함으로써, 잃어버려 이제는 어쩔 수 없다고 여겨진 가치를 과거와 망각으로부터 되찾아왔다. 그는 자신의 경험으로 무의식적 정신의 존재를 증명했다.”
    융의 프로이트와 결별을 암시하는 꿈
    by 국경복
    2024.12.31 15:40:55
  • 18. 가장 오래 산 인간 무드셀라 “성경을 보면, 가장 오래 산 사람이 969살의 무드셀라였어요. 우리는 그 십 분의 일도 제대로 살지 못해요. 이 세상에서 영원히 살 듯 살아가지만, 누구나 끝이 있음을 알아요. 단지 모르는 척할 뿐이지만…….” 장례식장에 와서 할 말은 아니었다. 인생이 그러하니, 아버지의 죽음이 당연하다는 뜻일까.조문하려면 제대로 할 것이지, 전혀 위로되는 언사는 아니었다. 하지만 항의나 저항을 할 기운이 없었다. “무드셀라의 삶도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너무 짧아요. 우리에게는 더 긴 생명이 예비되어 있답니다. 영원한 생명.” 장례식에 와서 영원한 생명을 논하다니! 자리를 피하고 싶었지만, 그녀는 말했다. “제가 대담장에서 금발이었던 이유는 한 연극에서 역할을 맡고 있었기 때문이에요. 연극 공연이 끝나고 본래 제 모습으로 돌아온 거예요. 이 책은 꼭 전해드리라는 분이 있어서 가지고 왔어요. 『인공낙원의 문』의 표지 문구의 출처가 이 책이에요.” 여자가 내민 하얀 가죽 표지의 책은 그러니까, 성경이었다. 자신의 홍보용 책이 아니었다. 여자는 내가 표지 문구의 의미를 꿰뚫지 못했음을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누가 전하라고 했건 성경을 내민다는 것은 공부 좀 하라는 뜻이었다. “제가 대담장에 간 이유도 표지 문구 때문이었어요. 김아리랑 팀장님이 책의 표지 문구가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며, 저에게 대신 나가는 것이 어떠냐고 물었어요. 교회 다니니 성경을 잘 알지 않겠냐고 하면서요.” “…….” “김아리랑 팀장님은 세계적인 작가들을 상대하니 다섯 개국의 언어를 자유롭게 사용하고 문학을 전공하셔서 문학적인 표현이나 수사법까지 잘 이해하셔요. 하지만 그분도 표지 문구를 이해하지 못하는 자신을 이상하게 생각하셨거든요.” “…….” “팀장님이나 대담자님이 표지 문구를 이해하지 못한 것은 당연한 일이에요.” 그녀가 직설적으로 나의 몰이해를 들추어내는 바람에 몸을 움찔했다. “인간들도 그렇지만, 하나님도 누구에게나 자신의 비밀을 알려주지 않으시니까요.” “그러면 댁은 하나님이 비밀을 알려주어 표지 문구를 이해하신다는 말이군요.” “네.” 너무나 간단하게 대답해서 나는 할 말을 잃었다. 그 당돌함이 나의 맹렬한 토론 기질을 건드렸다. “성경은 교회에서 여자들은 잠잠하라고 말하지요?” 장례식에서도 잠잠했으면 좋겠다고 덧붙이려다가 말았다. 여자는 전혀 흔들림이 없었다. “그 표현은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서 방언과 예언할 때 품위와 질서를 지키지 못한 문제를 지적하기 위한 것이었어요. 여자가 교회에서 잠잠하라는 표현은 역설적으로 여성들이 방언과 예언을 교회에서 했다는 반증이죠. 단지 방언이 하나님에게서 온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서 나온 것처럼 굴었기에 그런 경계를 적은 것입니다. 왜냐하면, 바울이 구약시대의 여자 사사 드보라나 여자 선지자 미리암을 모를 리가 없거든요. 특히 로마서에서 유니아 사도를 직접 소개까지 하고 있으니 바울이 교회에서의 여성의 역할을 비하하거나 부정만을 언급한 맥락은 아니에요. 물론 말씀하신 표현들 때문에 시험에 걸리거나 주변의 반격을 받은 경우가 저도 있습니다. 하지만 성령의 주체가 전달하는 사도나 사람에게 있지 않고 주님에게서 나온 말씀 자체로 넘어왔어요.” 여자와 논쟁을 벌이니 여태 갈피를 잡지 못하던 머리가 조금씩 정리가 되었다. 어머니는 나를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나의 이런 기질을 알고 이 여자와의 자리를 마련한 것은 아닌가 싶었다. 나는 내친김에 말했다. “성경은 여자의 머리가 남자라고 하지요?” 여자는 망설임 없이 반격했다. “그 뒷부분에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시라는 구절이 있어요.” “남자가 여자의 머리라는 구절에 불편해하는 여자들을 본 적이 있거든요.” “머리는 영적 중심이라는 뜻이에요. 머리 역할도 중요하지만, 몸의 역할도 마찬가지로 중요해요. 서열이 아니라 역할이니 그 역할을 잘 하는 것이 중요하답니다.” 그녀는 사람을 거스르지 않는 매우 부드러운 혀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토론의 본질을 놓치지 않았다. “다시 표지 문구에 관해 이야기하면, 성경 욥기에 이런 구절이 있어요. ‘누가 먼저 내게 주고 나로 하여금 갚게 하겠느냐 / 온 천하에 있는 것이 다 내 것이니라.’ 이 말씀처럼, 하나님은 본래 빚진 것이 없는 분이에요.” “그렇다면 표지 문구에서 값으로 사신 주체가 누구입니까? 하나님이지요?” “네.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 맞아요.” “그러니까 모순적이라는 것입니다. 온 천하가 하나님의 것이라면, 인간도 하나님의 것이라면 왜 우리를 위해 값을 치렀다고 하십니까?” “사람이 죄를 지으면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었고, 또한 죄의 삯으로 죽음을 피할 수 없게 되었어요.” “그런데 왜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값을 치러야 했느냐는 것입니다. “사람이 지은 죄가 사라져야만 다시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고 새로운 생명을 얻을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사람의 죄가 사라지도록 대가를 지불한 것이지요.” “하나님이 치른 값이 무엇이라는 것인가요?” “하나님이 자신의 독생자를 내어주시고 우리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시게 했습니다. 예수님의 피로 우리의 죄를 씻은 것입니다. 그래서 다시 우리가 하나님과 다시 연결될 수 있게 된 것이지요.“ “그러면 그 값이 예수님이라는 뜻이군요.” “네. 독생자 예수님!” “어이가 없네요. 내 말이 그 말입니다. 예수가 우리 죄를 위해 못 박혀 돌아가셨다. 이 말은 모르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런데 왜 모순적인 문장으로 사람들을 헷갈리게 했습니까.” “예수님이 못 박혀 돌아가셨다는 사실만으로 구원이 일어나는 것은 아니니까요. 예수님이 내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후 부활한 것을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해야 구원을 받아요. 그래서 하나님이 치른 값은 당신의 독생자이지만, 우리에게는 무상으로 주어지는 은혜랍니다.” 대담장에서 끝내지 못한 대담을 여기서 계속하는 느낌이었다. 구토와 함께 왔던 어지럼증이토론을 하니 조금씩 가라앉았다. 어머니가 그런 나의 변화를 꿰뚫어 보고 저쪽에 서 계셨다. 나는 갑자기 생각난 성경 구절을 꺼냈다. “요한복음을 보면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들을 신이라고 하던데, 유일신을 섬기는 자들이 모두 신들이 된다는 것이 얼마나 모순입니까?” “인간이 신이 된다는 것……은 하나님의 생명을 예수님을 통해 받으면 우리 안에 하나님의 영생이 거하고 사람도 신성을 지니게 된다는 뜻이에요. 아마 그때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하게 되는 것 같아요.” “그러면 댁도 신이고 영생을 살게 되겠군요.” “영생은 단순한 시간적인 개념이 아니라,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에요. 요한복음 5장 24절에 따르면 저에게도 이미 영생의 시간이 시작되었다고 감히 말할 수 있어요. ” “그 많은 죄를 예수의 피로 씻을 수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보혈로 죄를 씻지 못하면 성령의 가르침을 받을 수 없으니 말씀을 이해하지 못한답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성경은 영의 언어예요. 학식이나 지식과는 다른 지혜랍니다. 눈으로 잘 읽는다 해도 그 뜻을 알지 못하고 어찌어찌하여 머리로 일부 이해한다 해도 거기에 함축된 깊은 뜻을 이해하지 못해요. 생명의 빛이 마음을 열어 성령이 함께 마음으로 이해하게 해주셔야 해요. 그러니까 대담자 님이 표지 문구를 이해하지 못한 것이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랍니다.” 그 말을 들으니 왠지 여자에게 내 속마음을 그대로 털어놓고 싶어졌다. “나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나를 지으셨다는 것이 믿기지 않습니다. 나는 수많은 죄를 지었는데, 죄인의 원흉같은 나의 모습이 원래는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어졌다는 것이 믿기지 않습니다. 상상조차 되지 않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형상이 아니라, 죄의 형상을 지니고 있습니다.” 여자가 갑자기 화사하면서도 놀란 표정을 지었다. 내 말을 매우 반기는 표정이어서 도리어 당황스러웠다. 그녀는 처음으로 위로하듯 말했다. “그래서 구원을 받으면 새로운 피조물로 살아가도록 은혜를 주시는 거예요. 누구든지 그리스도를 주로 시인하고 영접하면 새로운 피조물이 됩니다. 이전 것은 지나가고 새것이 됩니다.” “헌 피조물이 새 피조물이 된다는 논리가…… 모르겠네요. 무엇을 전공했습니까?” “성악을 전공했어요.” “무슨 음악을 좋아하세요?” “오페라 라보엠의 ‘안녕, 낡은 외투여!’라는 곡요. 라보엠의 내용을 아시겠지만, 친구의 사랑을 돕기 위해 낡은 외투를 전당포에 맡기며 부르는 노래예요. 예수님을 영접하면 이전의 낡은 죄의 옷을 벗고 새로운 생명의 옷을 입게 될 거예요.” ▶다음 회에 계속 … 김다은은 ‘당신을 닮은 나라’가 1995년 제3회 국민문학상을 수상하면서 소설가로 등단했다. ‘덕중의 정원’ ‘훈민정음의 비밀’ ‘쥐식인 블루스’ 등 20여권 소설책을 출간하고, 다수 번역돼 해외 소개됐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주관한 폴란드 바르샤바대학 작가 레지던시를 비롯, 청송 객주 문학관, 정선 여량면 아우라지 레지던시, 해남 인송문학촌 토문재 레시던시에 참가했다. 이화여대 불어교육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파리8대학에서 불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추계예술대 문예창작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작권자의 허락없이 무단 부분 혹은 전체 전재, 복사, 배포를 금합니다.)
    종의 기원  <18회>
    by 김다은
    2024.12.30 11:19:32
  • 17. 조가대(弔歌隊)의 여자 죽음을 실감할 수 없는데, 조문객을 맞이하는 것은 무서운 일이었다. 아파트에서 1주일간 뒹굴며 거의 먹지 않았기에 기운이라고는 없었고, 대담장에서 도망친 뒤 자존감이 떨어져 정신적으로도 피폐해져 있었다. 가만히 서 있어도 다리와 심장이 후들후들 떨렸다. 장례식장에 허용된 동 시간대 99명의 조문객은 마치 전쟁터에서 훈련받은 전사들처럼, 한결같이 하얀 꽃을 영정 앞에 놓고 예의 바르게 나에게 목례를 했다. 하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죽음의 조문객들이 줄지어 왔다가 사라지는 모습은 마치 깨지 못하는 악몽처럼 반복되었다. 기독교식 장례식이라 다행히 무릎을 꿇지 않아도 되었다. 길가에 떨어져 죽은 참새 한 마리도 내 가슴을 쓰리게 하는데, 아버지의 죽음을 실감하지 못하는 무감각한 상태에서 이런 반복적인 시간을 얼마나 더 견딜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슬픔을 느끼지 못한 채 견디는 것도 힘들지만, 진정한 슬픔이 몰려오면 이곳에 서 있는 것조차 불가능할 것 같았다. 갑자기 성난 짐승처럼 인내의 끈을 끊고 도망치게 될까 봐 공포감이 엄습하곤 했다. 밤 3시가 넘어 빈소에 조문객들이 끊겼을 때, 나는 벽에 기대어 간신히 주저앉았다. 그때까지 한쪽 무릎을 절면서도 꿋꿋하게 사람들을 맞이하던 어머니가 나를 보고 서두없이 말을 건네셨다. “올림픽 선수가 자기 과녁이 아닌 라이벌 과녁에 총을 쏘면 어떻게 되겠니?” 아무래도 어머니가 잠시 실성한 것이 분명했다. 여태 아버지의 죽음을 너무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어머니가 수상쩍었다. 겉으로 아무렇지 않게 보일수록 내면의 고통은 더 크게 느껴지는 법이다. 입관식 때 내가 무의식적으로 소설 속 대사를 큰소리로 내뱉었던 순간처럼, 어머니도 그런 혼란스러운 상태를 지나고 있는 모양이었다. 어머니가 나에게 했던 것처럼 혼란 상태를 자연스럽게 넘어갈 수 있도록 도와드리고 싶었다. 연로한 몸이 생각보다 작고 더 많이 구부러져 보여, 그 모습이 더욱 애처로웠다. “올림픽에서 그런 실수를 범하다니, 귀신이라도 홀린 모양이네요.” 어머니의 슬픔이 왜 올림픽 과녁으로 빗나갔는지 그 맥락이 궁금해졌다. 나는 조심스레 해명하며 반문했다. “입관식 때 제가 엉뚱한 말을 한 건 톨스토이의 단편소설 속 ‘관’에 관한 이야기를 떠올렸기 때문이었어요. 견디기 힘든 마음이 다른 생각으로 흐르고, 그게 무의식적으로 나왔던 거죠. 어머니도 그런 상태인 거죠?” 어머니는 부드럽고 강직한 표정으로, 마치 아버지가 빙의된 듯 말했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 있었던 일이란다. 남자 50m 소총에서 금메달 후보는 미국의 매슈 에먼스 선수였는데, 그가 마지막 1발을 오스트리아 경쟁자 과녁에 쏴버렸다. 선두를 달리던 에먼스는 결국 8위로 추락했지. 아버지께서 병원에서 이 황당한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아버지가 왜 그런 이야기를 하셨는지, 그 상황이나 맥락이 기억하시나요?” “너도 과녁을 잘못 알고 쏘고 있다고 아버지가 말씀하셨다.” 나는 짚이는 것이 있어서 물었다. “혹시 아버지가 제 서울국제도서전 대담 영상을 보셨나요?” “아버지가 마지막으로 본 것이 그 대담이었지.” 온몸에 온기가 빠져나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아버지, 도와주세요’라고 외쳤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아버지의 온화한 영정사진이 보였다. 숨이 제대로 쉬어지지 않아 가슴을 부여잡았다. 은퇴 후에야 아들의 일을 제대로 챙겨보셨던 아버지가, 아들이 가장 비참하게 무너지는 날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보셨다는 사실이 고통스러웠다. 내가 책의 표지 문구 한 줄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세계적인 작가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한 채 대담을 이어가는 모습을 보며, 평생 외교관으로 살아온 아버지가 얼마나 부끄럽고 민망하셨을지 상상할 수 있었다. “프랑스 작가가 인간을 ‘종’으로 만드는 가장 강력한 것이 죽음이라고 했을 때, 아버지는 말없이 눈물을 흘리셨다. 죽음이 두려워서 우신 건 아니야. 그 작가가 죽음의 종에 대해 이야기할 때, 네가 ‘공갈 아기’로 대응하는 모습을 보고 우신 것 같았어. 죽음을 알지 못하니 생명이 무엇인지도 알지 못한다고 하셨지.” 어지러움이 밀려왔다. 아버지를 죽음으로 이끈 결정적인 원인은 지병이 아니라, 내가 대담에서 보여준 진정성 없는 모습이었던 것 같았다. 죽은 대담, 그리고 진정 죽음을 알지 못하는 죽음의 종! 프랑스 작가가 우리 모두 썩어갈 것이라 말했을 때, 내 안에서 일었던 작은 떨림이 다시 느껴졌다. 나는 어머니에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내 어설픈 대답이 어머니까지 충격에 빠뜨릴까 봐 말을 잇지 못했다. “눈물을 흘리시고 나서 뜬금없이 올림픽 이야기를 꺼내시길래, 그저 그런가 보다 했어. 아버지께서 가끔 치매 증상도 보였으니까. 그런데 그 말을 하고 나서 쓰러지셨지.” 몸의 세포 하나하나가 내 몸을 조여왔다. 나는 비로소 아버지가 떠났다는 사실과 더 이상 아버지와 어떤 대화를 나눌 수 없다는 현실을 마주했다. 아버지의 얼굴을 다시는 볼 수 없고, 목소리도 다시는 들을 수 없다는 무서운 사실에 직면했다. 영정 뒤에서 우리의 대화를 들을 수 없는 아버지가 느껴지자 고통과 공포가 이루 말할 수 없이 깊어졌다. “왜 과녁을 비껴간 올림픽 선수의 이야기를 아버지가 마지막으로 하셨는지는, 나도 정확히 알 수 없구나.” 나는 달아나고 싶었다. 내가 구역질을 하는 것을 보고 어머니가 나를 식탁으로 데려갔다. 뭔가를 먹이시려고 했다. 그때 저쪽 테이블에 앉아있던 여자가 어머니를 보고 우리 자리로 왔다. 입관식에서 보았던 여자였다. 아직 돌아가지 않고 있었다. 어머니가 그녀를 소개했다. “아버지와 내가 다니는 교회의 조가대에서 왔어.” “조가대라면?” “장례식장에서 고인을 위해 노래하는 합창단이야.” 어머니는 사람들 앞에서는 나에게도 항상 존댓말을 사용하셨다. 코로나로 장례식장에서 찬송가를 부를 수 없었다. 조가대의 존재가 이 자리에서 무슨 의미가 있는지 묻고 싶었지만, 그런 기운이 나지 않았다. 어머니는 내 마음을 알아채고 그 의미를 설명했다. “저들은 영혼으로도 노래를 부를 수 있어요.” 어머니는 음식을 챙기러 자리를 떴다. 어머니가 왜 이 여인과 나의 자리를 마련했는지 이상했지만, 깊이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그녀는 아버지의 조문객일 뿐이었다. 그 여자의 손에 들린 책을 보니, 입관식에서 내가 놓고 온 책이었다. 하얀 가죽 표지였다. “『인공낙원의 문』의 표지 문구의 출처가 바로 이 책이에요.” “아! 당신은….” 여자가 누구인지 깨달았다. 김아리랑 팀장을 대신해 대담장에 왔던 노랑머리가 흑발로 나타나서 알아보지 못한 것이다. 흔히 자신의 책을 읽어달라고 무리하게 책을 보내오거나 부탁하는 사람이 있었다. 여자가 입관식에서 책을 건넸을 때는 이곳까지 찾아와서 책 홍보를 부탁하는가 싶어서 모르는 척 그곳에 두고 나왔다. 지레짐작으로 괘씸하게 생각했었다. 그런데, 이 여자가 그녀였다. 대담장을 도망 나온 나의 실책을 자신의 것으로 덮어썼던 바로 그 여자! ▶다음 회에 계속 … 김다은은 ‘당신을 닮은 나라’가 1995년 제3회 국민문학상을 수상하면서 소설가로 등단했다. ‘덕중의 정원’ ‘훈민정음의 비밀’ ‘쥐식인 블루스’ 등 20여권 소설책을 출간하고, 다수 번역돼 해외 소개됐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주관한 폴란드 바르샤바대학 작가 레지던시를 비롯, 청송 객주 문학관, 정선 여량면 아우라지 레지던시, 해남 인송문학촌 토문재 레시던시에 참가했다. 이화여대 불어교육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파리8대학에서 불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추계예술대 문예창작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작권자의 허락없이 무단 부분 혹은 전체 전재, 복사, 배포를 금합니다.)
    종의 기원  <17회>
    by 김다은
    2024.12.16 09:00:00
  • 영국 텔레그래프지는 스코틀랜드의 한 지역에서 갈매기들이 ‘치즈 토스트’에 ‘다이빙 폭격’을 가하는 모습을 보도했다. 이 갈매기들은 식당손님들이 이 소문난 토스트와 함께 인증샷을 찍으려 할 때 공중을 맴돌다 마치 배고픈 갱스터처럼 급습하여 먹튀를 한다. 식당은 이제 토스트를 강탈당할 위험에 처한 고객을 위해 ‘갈매기 보험’을 제공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왜 갈매기들이 토스트 조각을 노리는 것일까? 바다위에서 물고기를 찾으며 날아야 하는게 아닐까? 이 갈매기들은 꿈을 꾸고 있는 걸까 아니면 우리의 혼란스러운, 때로는 디스토피아적인 세상에 적응하려 생존 모드에 돌입한 걸까? 올해 제29회 부산국제영화제(BIFF)가 열렸었다. 그곳에서 다큐멘터리 ‘영화 청년, 동호’를 보았다. 이 영화는 한국 영화제의 아버지라 불리는 김동호 명예조직위원장의 삶을 다룬 작품이다. 김 위원장은 ‘문화의 불모지’였던 부산을 ‘영화의 도시’로 변모시킨 인물이다. 공보처 7급 주사관으로 시작해 문화부 차관, 초대 예술의 전당 사장, 영화진흥위원회 위원장 등 다양한 공직을 역임한 그의 행보는, 작가 리처드 바크의 소설 ‘조나단 리빙스턴 시걸’의 주인공과 닮았다. 조나단 리빙스턴 시걸에서 주인공 조나단은 시대의 전통과 관습을 거부하고, 자유와 자아를 실현하기 위해 멋진 비행을 꿈꾸는 갈매기다. 1960년대 미국의 반문화 시대를 배경으로, 그는 먹이를 구하기 위해 분주히 날아다니는 다른 갈매기들과는 달리, 스스로를 위해 밤낮으로 비행연습에 몰두하며 하늘을 날아다닌다. 그는 기존의 관습을 거슬러 자신의 꿈을 향해 나아가며, 결국 자유로운 비행을 통해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어낸다. 이 이야기는 자기 수련과 꿈을 향한 끈질긴 추구가 결국 성공을 넘어 초월의 길로 이끈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부산국제영화제는 설립 30년 만에 김 위원장의 고군분투 덕분에 아시아를 대표하는 세계적인 영화제로 자리잡았다. 하지만 최근 코로나19와 정부의 치명적 수준의 예산 삭감 등으로 영화제의 운영이 어려워졌고, 부산은 레임덕에 빠진 상황이다. 정부가 부산 영화제의 문화적, 경제적 가치를 제대로 인식하고 있는지 의문이 든다. 케이팝과 함께 한류의 두 축을 이루는 케이시네마, 그 위상을 쌓아올린 부산영화제의 중요성을 간과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된다. 그동안 남다른 자부심을 보여온 한국영화가 칸 영화제 등에서 올해는 특별한 성과가 없었던 것도, 정부의 지원 부족과 문화에 대한 인식부족이 그 원인 중 하나로 지적된다. 정부의 예산 삭감은 젊은 영화감독들에게 영화를 창작하고자 하는 의지를 꺾었고 그 결과 실험적 예술적 창의성에 중점을 둔 영화가 나올 수 없는 구조로 만들어 버렸다. ‘독립, 다양성 영화 속 재능있는 영화인을 발굴해 소개한다’라는 부산국제영화제 본래 취지를 이어받아 영화 창작자들이 자유로이 창의적 작품을 만들 수 있도록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세계적으로 일궈온 K-시네마의 질적 향상을 위하여 실험성과 창의성을 중심으로 하는 작품들이 나올 수 있을때 케이시네마가 지속 가능할 것이다. 현재 영화 산업은 ‘극장의 암흑기’를 맞이했다고 한다. 요즘같이 디지털과 트렌드에 익숙한 컨템포러리 시대에 극장에서 OTT로 영화 소비 형태가 바뀌고 있는 지금, 영화제는 어쩔 수 없이 OTT와의 상생 방안을 고민해야만 한다. 새로운 시도와 창의적인 접근이 요구되는 시점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시도로 올해는 넷플릭스의 ‘전,란’이 최초 OTT 영화로서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선보였다. 부산은 영화의 꿈이자, 부산국제영화제는 예술가와 시민들이 함께 영화창작을 실험하는 살아있는 실험실이자 생태계이다. 축제의 일환으로 열리는 부대행사와 파티는 영화제의 열기를 더한다. 한때 해외 집행위원장들과 영화 평론가들이 신문지를 깔고 술판을 벌였던 명물 스트리트 파티는 전설이 되었고, 벽에 휴지를 던져 붙이며 폭탄주를 즐기던 왕가위 감독과 쥴리엣 비노쉬가 춤을 추던 파티도 유명했다. 문화적 불모지였던 부산, 특히 남포동과 해운대 거리들은 세계적 스타들과 영화 창작자들의 파티장이 되었다. 2021년 이후, ‘동네방네 비프’를 창설하여 부산 전역이 영화의 거리로 확장되고, 지역 주민들이 참여하는 영화제를 만들어가고있다. 이처럼 부산국제영화제는 K-시네마의 성장을 이끌며, 지역 문화와 도시경제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하지만 우리 정부는 마치 스코틀랜드 갈매기가 우리의 ‘셀카’ 습관을 먹이로 삼는 것처럼, K-시네마의 경제적 이점을 최대한 활용한 후, 다이빙 갈매기처럼 먹튀하는 상황처럼 보인다. 정부와 부산시는 부산국제영화제를 통해 관광객을 유치하고, 경제적 소비 촉진과 외화 유입을 이끌어내며, 도시 경제 발전과 고용 창출, 인프라 구축을 통해 관련 산업의 부가가치를 창출한 바 있다. 또한, 국제 교류와 도시이미지, 정체성 확립 등의 많은 이점을 누렸다. 영화는 마치 꿈처럼, 눈을 감으면 펼쳐지고, 눈을 뜨면 사라진다. 프랑스 칸 영화제와 미국 오스카상을 꿈꾸며, 전 세계의 젊은 영화 감독과 배우 지망생들이 칸과 할리우드에 구름처럼 모여드는 것처럼, 부산과 영화제는 한국과 아시아 영화를 위해 중요한 곳이며 행사이다. 부산국제영화제는 OTT와의 상생을 꿈꾸며 정부의 적극적 지원하에 활기찬 영화의 날개를 다시 펼쳐야 한다. 30년의 전통과 컨템포러리가 공존하는 영화제, 조나단 갈매기처럼 자유로운 비상을 꿈꾸는 영화제는 사람, 도시, 문화가 하늘과 전 세계 ‘구름Cloud’처럼 연결되는 새로운 장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부산국제영화제는 단순한 영화제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한국 영화의 실험과 발표의 장, 그리고 국제교류의 장으로서 그 중요성을 더욱 강조해야 한다. 창의적 영화 창작과 영화제 운영, 정부의 적극적 지원, 도시와 한국 문화를 전 세계로 확장할 수 있는 잠재력으로서 케이시네마는 더욱 생명력을 가져야 한다. 부산은 살아있는 유기체와 같은 도시로, 한류의 정체성을 강조하는 영화제를 통해 우리 삶과 소통하며 진화해나갈 것이다. 다시 멋지게 날아오르는 활기찬 부산 국제영화제를 기대한다
    한국 영화와 갈매기의 꿈
    by 이경화
    2024.12.05 10:52:21
  • 넷플릭스의 ‘흑백요리사’는 재야의 고수 ‘흑수저’ 셰프들이 최고의 스타 셰프 ‘백수저’들에게 도전장을 내밀며 치열하게 경쟁하는 내용으로 전세계 시청자들을 사로잡았다. 현재도 프로그램에 출연했던 셰프들이 방송과 유튜브에 출연하며 계속 인기를 이어가고 있다. 시즌1의 인기에 힘입어 시즌2 제작도 확정되었다. 흑백요리사에 대한 인기는 셰프들이 운영하는 식당으로 이어졌다. 방영 초기부터 식당 리스트가 퍼져나갔고, 대부분의 식당들은 이미 예약이 어려울 정도로 그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흑백요리사 우승자의 파스타바는 예약에 11만명이 몰리며 예약 앱이 다운되기도 했다. 흑백요리사는 잘 알려진 유명 셰프들을 ‘백수저’로, 그리고 이들에게 도전하는 무명 셰프들을 ‘흑수저’로 계급을 나눠 서로 경쟁 시켰다. ‘흑수저’셰프들은 대부분 유명하지 않은 재야의 고수들이지만, AI는 이미 그들이 명성을 얻고 있었음을 알고 있었다. 흑수저 1라운드 생존자 20명 중 11명이 국내 최대 맛집 플랫폼 식신의 별 맛집(스타 레스토랑)에 선정된 매장이었는데, 레스토랑을 운영하지 않은 5인을 제외하면 정확도는 약 73%에 이른다. 식신 별 맛집은 국내 약 75만개의 음식점 중 약 0.9%인 6000여 개에 인증을 수여한다는 점에서 비춰봤을 때 이미 인기있는 셰프들이었던 것이다. 나폴리 맛피아의 ‘비아 톨레도 파스타 바(1스타)’를 비롯해 트리플 스타의 ‘트리드(1스타)’, 요리하는 돌아이의 ‘디핀(1스타)’ 등 상위권 성적을 기록한 셰프의 레스토랑과 야키토리왕의 ‘야키토리 묵’(1스타), 영탉의 ‘남영탉’(1스타), 장사천재 조사장의 ‘을지로 보석’ (1스타), 철가방 요리사의 ‘도량’(더테이블), 셀럽의 셰프의 ‘부토’ (1스타), 고기 깡패의 ‘군몽’ (더테이블), 간귀의 ‘에다마메’(더테이블) 등 대부분의 레스토랑은 이미 대중에게 주목받고 있었다. 식신은 모바일앱과 웹사이트를 통해 국내외 음식점 정보와 리뷰를 제공하는 맛집 플랫폼으로 월간 방문자수(MAU)는 약 3~400만명에 이른다. 이중 사용자들의 활동 데이터를 AI로 심층적으로 분석해 가장 사랑받은 맛집을 ‘식신 별 맛집(스타 레스토랑)’으로 선정해 발표하고 있다. 2024년 별 맛집은 총 6,007개로 △3스타: 그 분야 최고의 레스토랑 △2스타: 지역에 방문하면 가봐야 할 레스토랑 △1스타: 인기 있고 추천할 만한 레스토랑 △더 테이블: 방문객들의 만족도가 높은 레스토랑으로 구분된다. 매경헬스에 따르면 소비자들이 맛집 정보 수집시 가장 많이 활용하는 경로는 검색포탈·블로그(73%)였고 이어서 SNS(48%), 방송(24%) 등의 순이다. 그러나 94%의 소비자들이 추천 맛집을 갔을 때 실망했고, 가장 실망한 이유로 '맛(83%)’을 들었다. 소비자들이 생각하는 맛집의 조건으론 '음식의 맛(71%)'이 압도적으로 1위를 차지했다. 새롭게 발견한 맛집만큼 우리에게 반가운 것은 없다. AI가 우리의 마음을 읽어서 신뢰성 높은 정확한 맛집을 알려주는 시대가 이미 도래했다. 앞으로는 열심히 검색한 맛집에 가서 실망하지 않고 맛있는 음식을 온전히 즐길 수 있기를 희망해 본다.
    흑백요리사와 AI
    by 안병익
    2024.12.05 10:36:59
  • 넷플릭스의 ‘흑백요리사’는 재야의 고수 ‘흑수저’ 셰프들이 최고의 스타 셰프 ‘백수저’들에게 도전장을 내밀며 치열하게 경쟁하는 내용으로 전세계 시청자들을 사로잡았다. 프로그램에 출연했던 셰프들이 방송과 유튜브에 출연하며 계속 인기를 이어가고 있고, 시즌1의 인기에 힘입어 시즌2 제작도 확정됐다. 프로그램의 인기는 출연 셰프들이 운영하는 식당으로 이어졌다. 방영 초기부터 식당 리스트가 퍼져나갔고, 대부분의 식당들은 이미 예약이 어려울 정도로 그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흑백요리사 우승자의 파스타바는 예약에 11만명이 몰리며 예약 앱이 다운되기도 했다. 흑백요리사는 잘 알려진 유명 셰프들을 ‘백수저’로, 그리고 이들에게 도전하는 무명 셰프들을 ‘흑수저’로 계급을 나눠 서로 경쟁 시켰다. ‘흑수저’셰프들은 대부분 유명하지 않은 재야의 고수들이지만, AI는 이미 그들이 명성을 얻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흑수저 1라운드 생존자 20인 가운데 11인이 국내 최대 맛집 플랫폼 식신의 별 맛집(스타 레스토랑)에 선정된 매장이었는데, 레스토랑을 운영하지 않은 5인을 제외하면 정확도는 약 73%에 이른다. 식신 별 맛집은 국내 약 75만개의 음식점 중 약 0.9%인 6000여 개에 인증을 수여한다는 점에서 비춰봤을 때 이미 인기있는 셰프들 이었던 것이다. 나폴리 맛피아의 ‘비아 톨레도 파스타 바(1스타)’를 비롯해 트리플 스타의 ‘트리드(1스타)’, 요리하는 돌아이의 ‘디핀(1스타)’ 등 상위권 성적을 기록한 셰프의 레스토랑과 야키토리왕의 ‘야키토리 묵’(1스타), 영탉의 ‘남영탉’(1스타), 장사천재 조사장의 ‘을지로 보석’ (1스타), 철가방 요리사의 ‘도량’(더테이블), 셀럽의 셰프의 ‘부토’ (1스타), 고기 깡패의 ‘군몽’ (더테이블), 간귀의 ‘에다마메’(더테이블) 등 대부분의 레스토랑은 이미 대중에게 주목받고 있었다. 식신은 모바일앱과 웹사이트를 통해 국내외 음식점 정보와 리뷰를 제공하는 맛집 플랫폼으로 월간 방문자수(MAU)는 약 3~400만명에 이른다. 이중 사용자들의 활동 데이터를 AI로 심층적으로 분석해 가장 사랑받은 맛집을 ‘식신 별 맛집(스타 레스토랑)’으로 선정해 발표하고 있다. 2024년 별 맛집은 총 6007개로 ▲3스타: 그 분야 최고의 레스토랑, ▲2스타: 지역에 방문하면 가봐야 할 레스토랑, ▲1스타 레스토랑: 인기 있고 추천할 만한 레스토랑, ▲더 테이블: 방문객들의 만족도가 높은 레스토랑으로 구분된다. 매경헬스에 따르면 소비자들이 맛집 정보 수집시 가장 많이 활용하는 경로는 검색포탈·블로그(73%)였고 이어서 SNS(48%), 방송(24%) 등의 순이다. 그러나 94%의 소비자들이 추천 맛집을 갔을 때 실망했고, 가장 실망한 이유로 '맛(83%)’을 들었다. 소비자들이 생각하는 맛집의 조건으론 '음식의 맛(71%)'이 압도적으로 1위를 차지했다. 새롭게 발견한 맛집만큼 우리에게 반가운 것은 없다. AI가 우리의 마음을 읽어서 신뢰성 높은 정확한 맛집을 알려주는 시대가 이미 도래했다. 앞으로는 열심히 검색한 맛집에 가서 실망하지 않고 맛있는 음식을 온전히 즐길 수 있기를 희망해 본다.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흑백요리사' 먼저 찾은 AI
    by 안병익
    2024.12.01 08:00:00
  • 꿈에 대한 심리학적 분석에서 프로이트 만큼이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인물이 있다. 그는 칼 융(Carl Gustav Jung, 1875~1961)이다. 그도 프로이트와 같이 꿈을 해석하고 꿈 꾼이에게 그 내용을 통찰시킴으로써 정신치료가 가능하다고 보았다. 하지만, 융은 이 같은 꿈의 심리적 기능뿐만아니라 예지적 기능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지고 연구했다. 융이 직접 예를 들은 다음 두 개의 예지적인 꿈 사례를 살펴보자. ‘처가쪽의 한 사람이 죽었다. 그 시각 나는 아내의 침대가 벽으로 둘러 쳐진 깊은 구덩이가 되는 꿈을 꾸었다. 그것은 어딘지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풍기는 무덤이었다. 그때 나는 어떤 사람이 혼을 내뿜는 것과 같은 깊은 한숨 소리를 들었다. 내 아내와 닮은 부인의 형상이 구덩이에서 몸을 일으키더니 위로 떠올랐다. 그녀는 흰 옷을 입고 있었는데 그 옷에 이상하게도 까만 표지가 찍혀있었다. 내가 깨어나 아내를 깨우고 시계를 보았다. 새벽 3시였다. 그 꿈이 하도 기이하여 한 사람의 죽음을 예시하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아침 7시에 아내의 조카가 3시에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융이 예를 든 또 다른 꿈이다. ‘한번은 내가 가든파티에 참석하고 있는 꿈을 꾸었다. 나는 누이동생을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 왜냐하면 그녀는 이미 몇 해 전에 죽었기 때문이었다. 나의 죽은 친구도 거기 있었다. 나머지 사람들은 아직 살아있는 친지들이었다. 누이동생은 내가 잘 아는 여인과 함께 있었다. 나는 꿈 속에서 벌써 그 여인의 죽음이 임박했다고 추정하면서 그녀는 그렇게 되도록 정해져 있다고 생각했다. 몇 주 후 나는 가까이 지내던 여인이 사고로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나는 그 여인을 꿈에서 보았으나 기억이 나지 않던 바로 그 여자라는 사실을 금방 알아차렸다. 융은 이 꿈을 꾸고 나서 그가 알고 있던 여인이 조만간 죽을 거라고 짐작했다. 왜냐하면 그녀가 죽은 이들 가운데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의 추측대로 그 여인은 몇 주 후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는다. 융은 이와 유사한 체험들을 통해서 하나의 결론을 내린다. ‘나는 무의식의 암시를 기초로 얻을 수 있었던 견해가 나에게 빛을 밝혀주고 예감의 영역을 내다보는 눈을 열어주는 것을 경험했다.’ 정신현상인 꿈과 외부의 현실적 사건이 의미상으로 일치하는 이같은 현상을 융은 동시성 현상(synchronicity phenomena)이라고 이름을 붙인다. 즉, 동시성 현상이란 ‘인과적으로는 설명이 안 되지만,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분명히 의미상으로 연결되는 현상’을 말한다. 이 동시성 현상은 한 천재 물리학자와의 우연한 만남에 의해서 보다 구체화되었다. 그의 이름은 볼프강 에른스트 파울리(Wolfgang. E. Pauli, 1900~1958)이다. 1930년, 융과 파울리는 정신과 의사와 환자로 처음 만났다. 이후에 둘은 심리학자와 물리학자로 지적인 대화를 나눈다. 1952년, 스위스 취리히에서 융과 파울리는 공동으로 ‘자연의 해석과 정신 (The Interpretation of Nature and The Psyche’을 발간하는데, 이 책에서 동시성 현상을 밝힌다. 파울리가 아인슈타인의 추천으로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1945년에서 7년이 지난 해의 일이다.
    칼 융 ‘꿈은 무의식이 전달해 주는 메시지’
    by 국경복
    2024.11.30 06:05:00
  • 16. 한 인간에게 필요한 땅 누군가가 나에게 검은 옷을 덧입혔다. 유리 창문 안쪽에서 한 여자가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동그란 눈이 안면이 있었다. 누군지는 생각나지 않았다. 그녀가 어머니께 나의 도착을 알리는 듯했다. 어머니가 고개를 돌려 나를 발견하기 전에, 나는 옆의 좁은 문으로 스며 들어갔다. 나를 보자 사람들이 주르르 자리를 비켰다. 누워있는 이는 분명 아버지였다. 두 다리가 꼼짝없이 포박당해서 묶인 것이 여느 때와 달랐다. 어머니는 나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누나는 …… 미국에 사는 누나가 보이지 않았다. 코로나로 출국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평소 잘난 척하는 여동생이 저렇게 눈이 뭉개질 정도로 울은 모습이 생경했다. 나를 보자마자 몸이 꼿꼿해진 여동생은 칼날 같은 날카로운 눈빛을 내비쳤다가 숨겼다. 어린 조카 미미가 그 곁에 서 있다는 것도 말이 안 되었다. 6살 어린 아이에게 주검을 보여줄 잔인한 어른이 우리 집안에는 있지 않다. “마지막으로 하시고 싶은 말씀을 하시면 됩니다.” 키 작은 남자 직원이 어머니께 말했다. 나는 어머니를 만류하고 싶었다. 아버지가 입원한 기간에도 어머니는 수없이 아버지께 마지막 말을 했을 것이다. 고문하는 것도 아니고, 사람들 앞에서 마지막 고통스러운 단어들을 뱉어내는 쇼를 펼칠 필요는 없어 보였다. 어떤 마지막 언어가 인간의 관을 장식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여느 때와 다르게 내 생각을 주장할 수가 없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는 시간에 아파트에서 쓰레기처럼 뒹굴었던 장남의 말이 먹혀들 것 같지 않았다. “당신이 그렇게 기다리던 우리 아들이 왔어요. 당신이 그토록 간절하게 기다리던 아들처럼, 하나님도 우리를 그렇게 기다리신다는 것을 알았어요. 우리 하나님 곁에서 곧 만나요.” 어머니의 짧은 두 마디에 내 몸이 휘청 뒤집혔지만,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내가 멀쩡했다. 장례식장 직원은 상주인 나에게도 마지막 말을 하라고 했다. 나는 욕설이 튀어나올까 봐 입을 앙다물었다. 아버지는 내가 딛고 섰던 땅이었고, 언제나 기댈 수 있는 등받이였으며, 아버지의 후광만으로도 나는 세상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존재였다. 아버지는 내가 바라는 것들을 이루어주는 사다리였으며, 그동안 내가 지녔던 것들의 보증이었다. 그런데 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듣는 순간부터, 모든 것이 서서히 변했다. 아파트 관리실 소장조차 혀를 쯧쯧 차는 것이 인터폰을 끊기 전에 들렸다. 나를 찾아내어 이곳으로 데려온 아버지의 새 기사인 이무진도, 시선도 마주치지 않으려는 여동생도, 이곳의 모든 이들이 아버지의 죽음도 지키지 못한 인간말종으로 나를 보는 듯했다. 나는 아버지께 마지막 말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었다. 입술이 붙어서 떨어지지 않았다. 충격을 받은 탓인지 말이 나오지도 않았다. 설령, 말할 수 있다 해도 소리내어 말하고 싶지 않았다.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집안의 서열이 무너졌는지, 허락없이 내 차례를 무시하고 여동생이 아버지께 마지막 말을 조곤조곤 시작했다. 여동생은 잠들려는 아기에게 자장가를 혹은 잠든 연인에게 속삭이듯이 읊조림을 계속 이어갔다. 나는 아버지의 얼굴을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염의 과정에 곱게 단장한 화장 아래로 검은 기운이 올라오고 있었다. 최근 1주 동안 내가 세상의 명예를 위해 싸우는 동안, 아버지는 나보다 수백 배나 많이 가지고 있던 명예를 모두 내려놓았다. 내가 자존감을 회복하기 위해 뒹굴며 곡선의 시간을 사는 동안, 아버지는 자신은 물론 가족 그리고 당신의 품 안에서 지키던 모든 것들을 내려놓은 시간을 사셨다. 내가 대담장을 빠져나와 달아나던 시간에, 아버지는 이 세상에서 저 세상으로 빠져나가는 시간을 겪고 계셨다. 죽음은 그 누구도 피해갈 수 없다! 프랑스 작가가 인간은 죽음의 종이라고 했던 말이 갑자기 떠올랐다. 딴생각하면서 무심코 올라온 내 표정을 미미에게 들켰다. 외삼촌의 얼굴을 어린 조카까지 외면했다. 나는 장례식장에 조문은 수없이 갔지만, 입관식에 참여하기는 처음이었다. 문학작품 속의 관이 실제 삶에서 드러난 생경한 모습에 눈이 자꾸 그쪽으로 갔다. 톨스토이의 단편소설 ‘한 인간에게 얼마나 많은 땅이 필요할까?’가 떠오른 것은 여동생의 마지막 말이 아직도 계속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주인공 이름이 바흠이었다. 그는 욕심 많은 농부였고 큰 땅을 가진 대지주의 꿈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아주 크고 싼 땅을 살 수 있는 바시키르 마을로 간다. 바시키르 촌장은 1000루블을 내면, 하루에 걸어서 갔다 온 만큼의 땅을 가질 수 있다고 제안한다. 하지만 반드시 해가 사라지기 전에 출발점으로 돌아와야 하며, 돌아오지 못하면 땅도 돈도 돌려줄 수 없다는 조건이었다. 바흠은 종일 달음박질로 땅을 계속 넓혀나간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걸을수록 욕심은 커졌다. 땅을 더 얻기 위해서 발길을 돌리지 못하고 계속 달렸다. 아버지의 얼굴로 몸을 수그린 여동생이 ‘아빠’라고 부르는 소리가 아련하게 들린다. 나는 톨스토이의 이야기 속에서 빠져나오고 싶지만 그러지 못한다. 여동생이 아버지의 얼굴에서 고개를 들었다. 바흠은 드디어 굳은 결심으로 방향을 틀어 출발점을 향해 다시 달렸다. 해가 천천히 지평선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바흠은 숨이 막혀 심장이 터질듯했지만 계속 달릴 수밖에 없었다. 해가 지평선 아래로 사라지기 전에, 바흠은 출발점에 다행히 도착했다. 여동생의 마지막 말이 끝나자 미미가 서슴없이 나섰다. 검은 옷을 입었는데도 몸 전체에 빛을 덧입은 어린 천사처럼 환하게 보였다. 미미는 누가 시킨 것이 아닌데 할아버지 앞으로 나아갔다. 어른들은 아이의 순진무구하고 자발적인 행동을 지켜보았다. 미미가 어떤 말을 할지 기다렸다. 그런데 미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소리 내지도 않고, 소리 내지도 못하고, 닭똥같은 눈물을 흘렸다. 순식간에 참관실의 공기가 바뀌었다. 이곳은 여태 장례식장의 분위기가 없었다. 슬픔은 삭제된 듯이 보였다. 어머니는 독실한 크리스천으로 이 상황을 충격없이 받아들이는 듯했고, 나만 빼고 다른 가족 친지들도 곧 하나님 곁에서 만나자는 약속을 담담하게 했다. 그런데 6살밖에 되지 않은 아이가 소리 내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며 줄줄 눈물을 쏟았다. 평소 떼를 쓰며 울던 아이가 진정 죽음이 무엇인지 아는지 온몸으로 슬픔을 견뎠다. 그런 아이의 모습에 가식처럼 한결같이 담담하던 표정들이 저마다 달리 슬픔으로 일그러졌다. 미미는 울음소리를 참기 위해 더욱 작은 몸을 떨었다. 그러더니 염을 한 할아버지의 얼굴에 자신의 뺨을 비볐다. 장내는 슬픔으로 일렁였다. 나는 쓰러질 것 같았다. 죽을 힘을 다해 달려서 해가 지기 전에 바르키르 마을의 출발점으로 돌아온 바흠은 피를 토하고 쓰러지고 만다. 그때 촌장이 바흠에게 한 말이 내 입을 통해 쏟아져 나왔다. “정말 엄청난 땅을 차지했습니다. 관 하나를 묻을 만큼의 땅을 차지했으니!” 순간, 스스로 화들짝 놀라서 나는 미몽에서 빠져나왔다. 다들 슬픔에 빠져 있다가 내가 한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아듣지 못한 듯 깨어났다. 어머니가 나를 가만히 쳐다보더니 말했다. “아버지가 대담에서 다룬 성경 구절을 들으시고 기뻐하셨다.” 내 입에서 저절로 튀어나온 악마같은 말이 책에서 나온 것임을 어머니는 짐작했다. 이 무례한 아들의 표현을 아버지에게 들려주고 싶은 마지막 한 구절로 해석해서 상황을 무마한 것이다. 어머니는 언제나 별로 당황하는 법이 없었고, 지혜롭고 명철했던 아버지도 어떤 때는 아이처럼 어머니를 의지했다. 그런데 남자 직원은 직업상 기필코 완수해야 하는 자신의 역할을 위해 나의 마지막 말을 다시 부추겼다. “입관시간이 다 되었습니다. 하고 싶은 마지막 말을 하시기 바랍니다.” 나는 드디어 한 마디를 쏟아냈다. “아버지가 가시는 곳으로 찾아가겠습니다.” 딱딱하게 굳어 누워있는 아버지를 관에 넣기 위해, 밑에 깔린 천을 남자들이 안쪽에서 잡아 올리고 여자들은 반대쪽에서 잡고만 있으라고 했다. 그런 식으로 아버지는 관 안으로 옮겨졌다. 작은 천들로 아버지의 얼굴까지 가려졌다. 하얀 생화들이 관 안으로 차례로 놓였다. 그때 참관실에서 처음 나를 알아보고 어머니에게 알렸던 여자가 다가와 책 한 권을 건네며 말했다. “저를 알아보시겠어요? 조가대에서 왔어요.” 관 위로 다시는 열리지 않을 뚜껑이 덜컹 내려앉았다. ▶다음 회에 계속 … 김다은은 ‘당신을 닮은 나라’가 1995년 제3회 국민문학상을 수상하면서 소설가로 등단했다. ‘덕중의 정원’ ‘훈민정음의 비밀’ ‘쥐식인 블루스’ 등 20여권 소설책을 출간하고, 다수 번역돼 해외 소개됐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주관한 폴란드 바르샤바대학 작가 레지던시를 비롯, 청송 객주 문학관, 정선 여량면 아우라지 레지던시, 해남 인송문학촌 토문재 레시던시에 참가했다. 이화여대 불어교육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파리8대학에서 불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추계예술대 문예창작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작권자의 허락없이 무단 부분 혹은 전체 전재, 복사, 배포를 금합니다.)
    종의 기원  <16회>
    by 김다은
    2024.11.25 09:31:37
  • II장 15. 죽음의 속임수 화들짝 놀란 것은 전화벨 때문이 아니었다. 관리실의 호출이었다. 내가 없다고 여겼는지 한순간 끊기더니, 다시 집요하게 울렸다. 관리실의 이런 질긴 연락은 아파트에 문제가 생겼을 때였다. 수돗물을 며칠째 잠그지 않아서 아래층으로 흘러내리거나, 화재가 발생했거나 비상사태일 경우이다. 며칠 제정신으로 살지 않았기에 내가 실수를 저질렀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나는 관리실 인터폰을 눌렀다. ‘안 받는데 자꾸 그러시니 … 소용이 ….’ 인터폰을 통해 관리실에서 나누는 대화가 들려왔다. 뭔가 심상찮아서, “여보세요”하고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상대방은 어, 하더니 급하게 말했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계신가요? 관리실 소장입니다. 아버님이 편찮으셔서 찾아온 사람이 있습니다.” 순간 제정신이 번쩍 들었다. 급하게 사람을 바꿔 달라고 했다. “대사님의 새 기사 이무진이라 합니다. 아버님이 병원에 계시는데 위급 상황입니다. 모시러 왔습니다. 아버지의 기존 기사는 내가 잘 아는 공식 대사관 직원이었지만, 은퇴 후 아버지가 새로 고용해서 내가 알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기사 이무진은 긴급한 목소리로 서둘러 말했다. “어머님이 옷과 필요한 것을 다 준비해 두었으니 그냥 내려오시면 됩니다. 병원에 가야 하니 신분증과 꼭 마스크를 쓰고 내려오세요.” 나는 구두만 꿰신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갔다. 어지간해서 어머니가 사람을 보낼 분이 아니다. 나는 평소처럼 뒷좌석에 앉으려다가 기사 옆좌석에 올라탔다. 주차장을 빠져나가니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비가 쏟아졌다. 아버지의 상태를 물어보고 싶었지만, 윈도우브러쉬가 매우 빠르게 움직여도 시야 확보가 되지 않아 기사는 앞만 주시하고 있었다. 나는 차가 방향을 잡을 때까지 참고 기다렸다. 아버지가 병원에 입원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이번 국제예술창작재단의 대담만 끝나면 찾아뵙겠다고, 그 대담을 나중에 보실 수 있게 해드리겠다고 자랑까지 했다. 그런데 국제적인 망신을 당할 만큼 죽을 쑤고 심지어 도망자의 신분이 되고 보니 아버지의 얼굴을 볼 용기가 나지 않아 미적거렸다. 자동차가 대로로 접어들었을 때, 나는 서둘러 물었다. “왜 진작 연락하지 않았습니까.” “아무리 전화해도 연락이 되지 않았고 심지어 위치 추적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뿐 아니라 제가 이 아파트에 와서 초인종을 수없이 눌러도 소용이 없었고, 아파트 입구에 적재된 우편물을 보니 아파트에 없다고 여겨서 결국 돌아갔습니다.” 여러 번 초인종을 누르는 남자를 인터폰 화면으로 보긴 했지만, 코로나 방지 마스크 때문에 얼굴을 제대로 볼 수 없는 상황이었다. 새 기사의 얼굴을 알 리도 없었다. 전도 목적이거나 아파트 관리실의 성가신 동의 사인 등 때문이라고 여겨서 대답하지 않았었다. “아버지의 상태가 심각한가요?” 차장을 때리는 빗방울과 바람 소리에 못 들었는지 기사는 묵묵부답이었다. 아버지의 자동차가 서강대교를 넘어 합정동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갈림길에서 얼핏 바깥을 보니,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이라는 교통 안내판이 오른쪽으로 보였다. 다른 상호나 안내판은 빗물에 보이지 않는데, 그것이 눈에 선명하게 들어온 것이 섬뜩했다. 죽은 자를 묻는 묘원! 외국인 선교사들이 아주 작고 가난한 나라 ‘조선’에 복음을 전하려고 왔다가 마지막에 묻힌 곳이다. 전도가 그들의 소명이라니 말할 나위가 없지만, 죽고 나서도 자신의 뼈까지 이 땅에 묻는 그들의 마음이 감히 짐작이 가지 않았다. 하지만 아픈 아버지를 만나러 가는 길에 유독 외국인선교사묘원이 눈에 들어온 것이 불안했다. 나는 더 빨리 달리라고 말하려다가 말았다. 내 차로 가겠다고 우겼으나, 이무진 기사는 반드시 태우고 와야 한다는 지시를 어머니께 받았다고 했다. 이유를 물었더니, 이무진은 망설였다. “과속으로 사고가 생길까 봐 그러신 것 같습니다.”라며 말끝을 흐렸다. 차는 신촌 세브란스 병원 앞쪽으로 가까워지고 있었다. 입원실 주차장으로 들어간다고 여기는 순간, 기사가 세브란스병원 입구를 지나쳤다. 길을 잘못 든 것 같았지만, 다른 입구로 들어가도 병원은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기사도 마음이 급하니 순간적으로 첫 번째 입구를 놓친 모양이었다. 차가 유턴 신호를 기다리더니, 세브란스병원의 다른 입구가 아니라 왼쪽으로 꺾었다. 어! 왜지?, 라는 의문으로 주시하는 동안, 차는 세브란스 장례식장 건물 앞에 도달했다. “장례식장 8호입니다. 지하에서 내리는 것보다 이곳에서 내려서 들어가는 편이 좋을 것 같습니다.” 기사는 나를 내려주고 지하 주차장으로 차를 끌고 사라졌다. 갑작스럽게 친척이 코로나로 죽었을까. 코로나로 죽으면 12시간이 아니라 4시간 안에 화장해야 한다. 그래서 나를 급하게 찾은 것이다. 자존심이 무너지고 수치심에 칭칭 감겨 제대로 먹지도 못한 1주일간을 보낸 뒤라, 갑자기 어지럼증이 느끼며 병원 안으로 들어갔다. 병원은 입장이 엄격하게 제한되고 있었다. 장례식장에는 가족만이 들어갈 수 있다며 신분증과 죽은 가족의 이름을 대라고 했다. 나는 누가 죽었는지 모르기에 신분증만을 제시했다. 직원은 신분증으로 뭔가를 확인하더니 나를 들어가게 했다. 나는 누가 죽었는지 알기 위해 병원 벽면에 계속 올라오는 죽은 자들의 얼굴 리스트를 훑었다. 도대체 누가 죽었기에…. 김담정! 아버지의 온화하고 환한 얼굴이 사진영상에 박혀 나타났다. 상주에 내 이름이 제일 먼저 나왔다. 누나와 여동생의 이름이 보였다. 그 아래 ‘부인’ 어머니의 이름이 보였다. 1주일 동안 칩거하면서 도망가는 악몽을 많이 꾸었고, 과거 잘못한 일도 많이 깨우쳤다. 그런데 이런 악몽까지 꾸는 것은 조금 과하다. 꿈에 시체를 보면 길몽이라고 들었던 기억이 아련하게 났다. 병원 직원은 나에게 병원 지하 1층으로 내려가라고 했지만, 나는 여전히 달아나고 싶었다. 아버지가 아파서 입원실로 가려던 것이니, 장례식장에 가서는 안 된다는 의식이 꿈속에서도 뚜렷하다. 마침 주차장에 주차를 마치고 올라온 기사가 나에게 지하로 내려가는 에스컬레이터를 타라고 권했다. “대사님은 어젯밤에 소천하셨습니다. 그나마 입관을 보실 수 있어 다행입니다.” 기사가 너무나 또렷한 발음으로 말해서, 꿈이 아니라 현실이면 어떡하나 하는 생각이 처음 들었다. “살아계신 아버지를 왜 죽었다고 거짓말을 하십니까.” 나는 힘은 없지만 엄중한 목소리로 물었다. “제가 살아계신다고 거짓말을 했습니다. 어머님의 지시였습니다. 찾게 되면 아버지의 죽음을 말하지 말고 데려오게, 라고 하셨습니다. 충격받아 사고를 염려하셔서 제가 모시게 된 것입니다.” 마음이 급하면 폭주하는 내 성격을 어머니는 잘 알고 계셨다. 그렇다 해도 어떻게 죽음의 속임수를 쓸 생각을 하셨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인공낙원의 문』 대담 후에도 사람들은 한결같이 속임수를 쓰면서까지 나를 보호했다. 여태 이런 방식으로 내가 살아왔다고 알려 주려고 다들 음모라도 꾸민 듯했다. 하지만 최소한 죽음의 속임수만은 쓰지 말라고 소리치고 싶었다. 이무진 기사는 걸음을 서둘렀다. “코로나 사태 때문에 입관을 미룰 수 없는 상황입니다. 입관을 보실 수 있게 된 것이 그나마 다행입니다. 입관이라니! 누구 허락으로 아버지를 관속에 넣는다는 말인가. 누구 허락으로 아버지가 죽었다는 것인가. 누구 허락으로! 나는 기사를 따라 좁은 통로를 걸어갔다. 이것이 꿈이 아니라 현실이라는 선명한 느낌이 든 것은 ‘참관실’이라고 적힌 문 앞에 섰을 때였다. 기사가 문을 열어젖혔다. 검은 옷차림의 가족과 몇 명의 미지인에 둘러싸인, 입구 쪽으로 몸을 뉜 틀림없는 아버지의 허연 머리가 보였다. 그 옆에 좁고 긴 나무관이 기다리고 있었다. ▶다음 회에 계속 … 김다은은 ‘당신을 닮은 나라’가 1995년 제3회 국민문학상을 수상하면서 소설가로 등단했다. ‘덕중의 정원’ ‘훈민정음의 비밀’ ‘쥐식인 블루스’ 등 20여권 소설책을 출간하고, 다수 번역돼 해외 소개됐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주관한 폴란드 바르샤바대학 작가 레지던시를 비롯, 청송 객주 문학관, 정선 여량면 아우라지 레지던시, 해남 인송문학촌 토문재 레시던시에 참가했다. 이화여대 불어교육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파리8대학에서 불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추계예술대 문예창작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작권자의 허락없이 무단 부분 혹은 전체 전재, 복사, 배포를 금합니다.)
    종의 기원  <15회>
    by 김다은
    2024.11.18 09:13:52
  • 14. 곡선의 시간 나는 직선적인 시간의 삶을 사는 사람이었다. 자명종에 맞춰 이른 새벽에 일어나고, 잘 짜진 일정표에 따라 매우 능동적으로 활동하고, 늦게까지 일하고도 밤에는 헬스장에서 근육 만드는 일에 게으르지 않고, 깊은 어둠 속에 지쳐 잠에 빠져들곤 했다. 원하면, 일을 미루거나 심지어 팽개치고 달콤한 휴식을 위해 거침없이 떠날 수도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모든 것을 내려놓고 떠나려고 하는데도 꼼짝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너희는 값으로 사신 것이니 사람들의 종이 되지 말라 어디로 가야 이 한 문장 안으로 들어가는 좁은 길을 찾을 수 있을까. 산 넘고 물 건너 고행을 감행한다고 찾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어쩌면 틀어박혀 성경을 제대로 읽으면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대담장에서처럼 눈에 비늘이 덮여 성경을 제대로 읽을 수 없는 상태다. 그래서 떠날 짐을 제대로 꾸릴 수도 그대로 퍼질러 앉아 있을 수도 없다. 서울국제도서전의 피날레 행사의 초대 링크 오픈 시간이 9분 남았다. 두문불출한 1주일 동안, 여태 무슨 일을 하고 살았나를 계속 돌아보게 되었다. 한번 삼킨 먹이를 다시 게워내듯 계속 반추를 하니, 과거에 이미 끝난 일들과 과거에서 끝나지 못하고 현재로 이어진 것들이 구분되었다. 셀 수 없이 많은 국내외 행사들과 내 사유를 담았다고 여겼던 원고들이 허망하게 거의 기억에 남아있지 않았다. 그때그때 청탁에 맞춘 글들이어서 나에게 큰 의미를 남기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이익 관계에 묶인 수많은 행사와 인간관계도 대부분 일회성이거나 조건적이어서 과거에 종결된 경우가 많았다. 직선의 시간에서는 예의와 친절로 무장하면 탈이 날 것이 별로 없었다. 갈등이 생길 조짐이면 중도를 선택했고, 갈등이 터졌을 때는 침묵을 선택하면 최소한 비겼다. 하지만 과거로 끝나지 못한 사건이나 감정들은 현재의 시간으로 이어져 흘러왔다. 그중에 가장 치욕스러운 『인공낙원의 문』의 표지 문구 사건은 되돌이표의 지시처럼 현재의 시간 위로 자꾸 겹쳐졌다. 이 사건 이후로 나는 직선의 시간을 살 수 없게 되었다. 후회와 자책을 되풀이하는 곡선의 시간을 살 수밖에 없었다. 겹쳐진 시간은 수치심의 넝쿨을 만들며 온몸을 휘감는다. 어떤 친절과 예의나 웃음으로도 빠져나갈 수 없는 소용돌이 시간이다. 침묵도 해결책을 주지는 않았다. 지고 나서도 회복력이 빠른 것이 나의 성품인데, 지금처럼 감정이 바닥이 아니라 지하층으로 끝없이 끌려 내려가는 경우는 처음이다. 김아리랑 팀장을 대신해서 온 노랑머리 직원은 내가 도망을 갔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자기 탓으로 사과했다. 그녀는 어떻게 그런 선의의 결정을 선취할 수 있었을까. 내가 그것이 맞는 말이라고, 당신의 어설픈 설명이나 전달로 대담이 끝난 줄 알았다고, 그래서 아주 유유히 그곳을 나갔다고 수긍했다면, 그녀는 직업적으로 큰 타격을 입을 수도 있었다. 어린 여직원 하나가 감히 나를 위해 자기를 희생하겠다고 결단했단 말인가. 촬영기사는 아무 일도 없었던 척 대담 영상을 마무리해서 서울국제도서전에 올려놓고, 아주 멋진 엔딩 장면이 완성되었으니 염려하지 마시라는 문자를 보내왔다. 확인해 보니, 내가 도망간 빈자리를 시작으로 프랑스 작가의 책 『인공낙원의 문』을 클로즈업하여 표지 문구가 화면을 가득 채운 상태로 영상은 끝나 있었다. 나에게 엿 먹이는 엔딩이었다. 대담자였던 프랑스 작가에게 느끼는 감정은 복합적이었다. 그에게는 수치심이자 존경심을 느꼈고, 굴욕이자 선망을 느꼈으며, 그리고 시간을 되돌려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이자 일생에 만난 가장 충격적인 사람이었으며, 더 빨리 만나고 싶었던 사람이었다. 그를 알기 전, 나는 화려한 빛 속에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그와의 대담으로 인해 내가 믿었던 빛이 도리어 어둠임을 자인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지만, 표지 문구 한 문장으로 한 인생을 가짜 빛에서 진짜 어둠으로 던져 넣은 것이다. 대담 중에 파악한 그의 성품으로는 거짓을 말할 사람은 아니었다. 그가 이메일에서 ‘처음으로 대담다운 대담을 했다’고 적은 것은 어쩌면 진실일지도 모른다. 그 전언이 일말의 안도와 위로가 되었지만, 그 앞에서 고양이 앞의 쥐처럼 아무것도 제대로 생각할 수 없던 시간을 떠올리면 쥐구멍이라고 들어가고 싶다. 반복되는 수치심과 죄의식은 한 단편소설의 스토리를 떠올리게 했다. 한 할아버지와 한 할머니가 등산로 입구에서 우연히 만나 자신의 인생에서 이루지 못한 꿈을 이야기하게 된다. 할머니는 한 번만이라도 해외여행을 해보는 것이 꿈이었다고 말한다. 할아버지는 죽기 전에 같이 여행을 떠나보자고 제안하고, 여행 가는 날 공항에서 만나기로 했다. 할머니는 평생의 꿈을 이루기 위해 여권을 만들고, 필요한 옷가지들을 돈을 아끼지 않고 준비하며 가장 바쁘고 설레는 한 달 반을 보냈다. 그리고 약속 날에 공항에서 할아버지를 기다렸다. 출발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지만, 할아버지의 모습을 볼 수가 없었다. 단 한 번 만난 사람이라 얼굴을 알아보지 못하는가 싶어 할머니는 힘든 다리를 끌며 공항 전체를 헤매기 시작했다. 할아버지는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이 단편소설 스토리를 한 작가에게서 들었을 때는 할아버지의 신의 없음에 분노했던 것 같다. 그런데 지금은 할머니가 느꼈을 꿈의 패배가 너무나 쓸쓸하게 가슴에 와 닿는다. 약속 한마디를 지키지 못해 남의 꿈을 얼마나 잔인하게 찢어버렸을까. 초대 링크의 오픈 시간은 2분 23초가 남았다. 그 무정하고 잔인한 할아버지가 나와 다르다고 말할 수가 없다. 지금 나도 약속을 지키지 않고 달아나려고만 하지 않는가. 어, 그렇다. 내가 다시 달아나면, 나는 개인적인 약속이 아니라 국가적인 약속을 어기게 되는 것이다. 아……아버지! 이 약속을 어기면 나의 이력은 그렇다 치고, 평생 외교관 생활을 해오신 아버지의 삶과 업적에 스크래치를 낼 것이다. 불안한 예감이 찾아들었다. 아버지가 크리스천으로 나에게 참빛을 전하기 위해 평생을 애썼지만, 나는 호탕하게 산 편이었다. 외교관의 아들이라는 타이틀 하나만으로도 인간관계나 일이 매우 수월했고 탄탄대로였다. 아버지는 하나님이 자신을 외교관의 자리에 세워주신 것에 언제나 감사하며 세상과 사람을 섬겼지만, 나는 아버지가 외교관인 것에 언제나 감사하며 사람을 부렸다. 크리스천 아버지는 빛과 어둠의 차이를 정확하게 아시는 것 같았지만, 나는 비로소 내 삶이 어둠이라는 사실을 막 깨달았다. 참빛을 알지 못하니 내 자체가 어둠이다. 수치심과 죄책감에 사로 잡인 죄인이다. 아버지를 생각하니 왜 갑자기 불안한지 알 수 없었다. 최근에 건강이 좋지 않다고 들었는데 찾아가서 뵙지도 못했다. 아버지께 전화해야 할 것 같은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초대 링크의 오픈 시간은 채 1분도 남지 않았다. 49초를 남겨놓고 있다. 그때, 깜짝 놀랄 만큼 큰 소리로 전화벨이 울렸다. ▶다음 회에 계속 … 김다은은 ‘당신을 닮은 나라’가 1995년 제3회 국민문학상을 수상하면서 소설가로 등단했다. ‘덕중의 정원’ ‘훈민정음의 비밀’ ‘쥐식인 블루스’ 등 20여권 소설책을 출간하고, 다수 번역돼 해외 소개됐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주관한 폴란드 바르샤바대학 작가 레지던시를 비롯, 청송 객주 문학관, 정선 여량면 아우라지 레지던시, 해남 인송문학촌 토문재 레시던시에 참가했다. 이화여대 불어교육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파리8대학에서 불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추계예술대 문예창작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작권자의 허락없이 무단 부분 혹은 전체 전재, 복사, 배포를 금합니다.)
    종의 기원  <14회>
    by 김다은
    2024.11.11 09:00:00
  • 13. 좁은 길 거의 한 주간 두문불출했다. 음식을 제대로 먹지도 않았는데, 수염은 무슨 영양분으로 이렇게 자라났을까. 괴로움을 잊으려고 술을 마시거나 잠을 잔 것도 아니었다. 나는 도리어 맨정신으로 도망자의 사태를 직면하고 있었다. 1주일 전 아파트로 돌아오면서 꺼내온 우편물들은 뜯기지 않은 채 거실에 흩어져 종이 홍수가 난 상태였다. 우편물은 세상과 내가 연결되어 있다는 증거물이었다. 매월 구독하는 문화예술잡지들, 증권사에서 보내온 투자 설명서, 인터넷 쇼핑 광고물, 아파트 관리비 통보 등이었지만 고스란히 그대로 있었다. 1주일 동안 다시 배달된 우편물들이 우편함 입구에서 넘치다 못해 삐져나와 있을 것이다. 나는 흩어진 우편물들을 설렁설렁 살펴보다가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이름으로 발송된 초대장을 뜯었다. 서울국제도서전에 참가한 세계 각국 작가들을 초청하는 온라인 행사의 초대장이었다. 작가들을 위해서 영어와 프랑스어와 스페인어로 축사를 해달라는 부탁을 이미 한 달 전에 받았고, 나는 승낙을 한 상태였다. 날짜를 보니 행사는 오늘이었고 3시간도 채 남지 않았다. 초대계정을 뚫어지게 보다가 초대장을 덮었다. 또 다른 초대장이 눈에 띄었다. 아는 유튜브 스타 S가 보낸 것으로, 온라인에서 남녀 만남을 주선하는데 오프라인처럼 마스크를 쓰고 참가해야 하는 것이 특이사항이라고 했다. 행사 제목은 ‘여자를 안달나게 하는 법’이었고, 마스크는 안날나게 하는 법의 일환이었다. 나는 미친놈처럼 웃어 제겼다. 내가 폭소를 터뜨린 것은 S의 콘텐츠가 우스워서가 아니었다. 여자를 안달나게 하지 못했을 때 남자가 느끼는 굴욕감을 유튜브에서 설명하던 그의 언어표현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굴욕감이란 하필 수업 도중에 화장실에 가고 싶어서 손을 들고 허락을 받았는데, 교실을 나서기도 전에 바지에 오줌을 싸버려서 다른 학생들이 모두 알게 되면서 창피를 당하는 감정 같은 것’이라고 설명했었다. 대담장을 도망 나온 굴욕감이 차라리 그런 감정이라면 견딜만했을 것이다. 오줌을 싼 학생이 교실을 나가도 수업은 진행될 수 있지만, 대담자가 없는 대담은 더는 진행될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당일 몇 시간이나 거리를 헤매면서 타인이 쫓아오지 않는 도망자의 수치심이 어떤 것인가를 뼈저리게 느꼈다. 하지만 굴욕감이나 수치감 때문에 아파트에 1주일이나 나 자신을 감금해 버린 것은 아니었다. 스스로 감금당했다기보다, 아파트를 나설 엄두가 나지 않았다. 지진은 예기치 않게 일어났다. 갑자기 모든 것이 흔들렸고 무너져 내렸다. 내가 여태 단단히 디디고 서 있던 세계로부터 내가 이탈된 듯했다. 이 아파트 안만이 내가 여태 알고 있던 세계를 보존한 느낌이었다. 이전의 세계과 지금의 세계 사이에는 한 문장이 있었다. 수많은 강연에서 나는 ‘언어 한 문장의 힘이 얼마나 강한지를 알아야 한다’고 설파했었다. 그 본보기를 제대로 보여주기라도 하듯, 대담에서 문제가 되었던 한 문장이 나를 이렇게 영혼의 폐허로 내몰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내가 믿었던 지혜와 명철의 세계에서 쫓겨난 느낌이었다. 내 말이 나를 잡는 미끼가 되고 말았다. 나는 순간 쓰레기차 옆 정자에 서 있던 여자가 떠올랐다. 버릴 수밖에 없는 물건에서 마음을 거두지 못해 서 있었던 낭만적인 모습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그것은 자신의 세계가 폐허가 된 광경을 지켜보는 내 모습과 비슷했다. 아니 내 세계의 폐허를 그녀의 눈을 통해 확인하고 있었을지도 몰랐다. 내가 1주일 동안 두문불출하면서도 유일하게 세상 밖으로 머리통을 내민 순간이 떠올랐다. 거대한 철제 집게 손이 사정없이 여자의 머리를 치려던 순간, 나는 놀라서 창밖으로 급하게 고개를 내밀었었다. 어쩌면 그 자리에 있었던 것은 여자가 아니라 나 자신의 페르소나를 환상적으로 본 것인지도 모른다. 서울국제도서전의 휘날레 행사는 30분도 채 남지 않았다. 온라인이지만 제대로 샤워하고 옷도 챙겨 입어야 할 시간이었다. 나는 꼼짝할 수가 없었다. 내가 도망갔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나에게 사과하던 노랑머리도 화면에 나타날 것이고, 자신의 대담자가 말없이 사라져버렸는데도 ‘처음으로 대담다운 대담을 했다’며 장문의 이메일을 보내온 프랑스 작가도 얼굴을 내밀 것이다. 서울국제도서전에 참가한 세계 각국 작가들도 나타날 것이다. 국가 차원의 감사와 축사를 하기 위해 각국의 대사나 문화원장도 참석할 것이다. 이 화려한 행사에서 비열한 도망자가 축사를 말해야 할 판이었다. 나를 부끄럽게 만든 것은 도망 그 자체가 아니었다. 도망조차 하지 못하는 양심을 가졌다면 절망했을 것이다. 나는 대담장을 빠져나오면서, 아니 도망 나오면서, 도망 나오고 나서 한참 헤매면서 그 문장이 성경에서 나온 것임을 선명하게 깨달았다. 그것은 전혀 어려운 추리가 아니었다. 문장의 어투만 보아도 성경에서 나온 것임을 누구나 알아챌 수 있었다. 그런데 대담장에서는 눈에 비늘이 덮인 듯 그것이 보이지 않았다. 그 문구의 출처가 성경이라는 사실을 알고 나서도 달라진 것은 없었다. 나는 성경을 모르는 사람이 아니었다. 유럽권에서 외교관을 지낸 아버지는 모태 크리스천이었고, 출생하는 아이들에게 성경 속 인물의 이름을 주는 서양문화 속에서 유학 생활을 했고, 더구나 유럽의 예술과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성경 통독이 필수였기에 군데군데 뛰어넘으면서 읽은 횟수로 치면 서너 번은 읽었을 것이고, 학문적으로 접근해서 성경의 한 구절이 지니는 가치를 논하는 글을 쓴 적도 있었다. 그래서 문제의 표지 문구가 성경 몇 권 몇 장에 있는지 다시 찾아본다고 달라질 것은 없었다. 지금은 읽어도 읽을 수 없는 문장이기 때문이다. 나는 두려움이 일었다. 진리가 나를 자유케 한 것이 아니라 도리어 어둠 속에 나를 가두어 버린 상태였다. 누군가 숨어서 나를 기다리다가 잡아채서 어둠의 주머니 안에 가둔 듯이 보이지 않았다. 이 어둠에서 계속 발버둥치면서 영원에 갇힐지도 몰랐다. 하지만 구조대의 신호가 반짝이고 있었다. 10분 안에 온라인 행사의 계정 안으로 들어가서 보란 듯이 여러 언어로 축사를 해주면 그것으로 충분할 것이다. 내가 이 초대장에 응한다면, 나는 과거의 나를 아주 쉽게 복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도 우편함을 가득 채우는 세상의 수많은 요청에 응답하며 그전보다 더 큰 명예와 영예를 누릴 수 있을 것이다. 심지어 국제예술창작재단의 실패한 대담도 노랑머리의 잘못으로 치부하면 그만이었다. 그녀의 애매한 전달로 대담장을 떠났다는 거짓말 한마디면 뒷마무리를 충분히 할 수도 있었다. 프랑스 작가가 보내온 ‘대담다운 대담을 처음으로 했다’는 문장을 보여주면, 그 대담이 얼마나 성공적이었는지 주변을 손쉽게 납득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세상을 조금만 속이면 나는 기존의 세계로 복귀할 수 있었다. 세상의 수많은 책의 문장들에 말을 걸며 내 지혜와 명철을 뽐내는 넓은 길을 걸어갈 수 있었다. 세상의 수많은 책을 방패 삼아 세상에서 더 많은 명예와 기쁨을 누릴 수도 있었다. 하지만 무엇이 내 영혼을 혼미하게 하여 그 표지 문구를 이해하지 못하게 했는지 알고 싶었다. 표지 문구, 그 한 문장 안에 내가 여태 만나지 못한 세계가 있다는 것을 이제는 부인할 수가 없다. 나는 우편물들 안에 든 수많은 책과 문장들이 제시하는 넓은 길로 다시 나가기보다, 여태 가보지 않은 길, 프랑스 작가가 선택한 표지 문구 한 문장의 의미 안으로 들어가 보고 싶었다. 그것은 인간적인 경쟁심도, 내 자존심도, 진정한 독서의 신이 되기 위한 결단도 아니었다. 그 한 문장의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 그 한 문장의 세계 속에서 살아보고 싶었다. 나는 그 한 문장 안의 좁은 길로 들어가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 나는 정말 그 문장으로 들어가는 입구를 찾아 떠나기로 했다. ▶다음 회에 계속 … 김다은은 ‘당신을 닮은 나라’가 1995년 제3회 국민문학상을 수상하면서 소설가로 등단했다. ‘덕중의 정원’ ‘훈민정음의 비밀’ ‘쥐식인 블루스’ 등 20여권 소설책을 출간하고, 다수 번역돼 해외 소개됐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주관한 폴란드 바르샤바대학 작가 레지던시를 비롯, 청송 객주 문학관, 정선 여량면 아우라지 레지던시, 해남 인송문학촌 토문재 레시던시에 참가했다. 이화여대 불어교육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파리8대학에서 불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추계예술대 문예창작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작권자의 허락없이 무단 부분 혹은 전체 전재, 복사, 배포를 금합니다.)
    종의 기원  <13회>
    by 김다은
    2024.11.04 10:18:21
  • II 부 12. 쓰레기 연인 어제부터 시작된 쓰레기 분리수거가 오늘 아침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나는 4층 아파트 창가에 서서 플라스틱류나 비닐류로 차곡차곡 채워진 거대한 포대기가 작은 섬들처럼 아파트 앞에 놓여 있는 광경을 내려다보았다. 매주 저렇게 많은 쓰레기가 모이는 것이 경이로울 정도였다. 주민 두 사람이 양손에 겹겹이 접어 담은 종이상자들과 빈 병들을 담은 봉투를 번갈아들며 수거 장소로 가는 모습이 보였다. 아파트 앞으로 대형 쓰레기차가 들어서는 것을 보고, 늦장을 부리던 주민들이 종종걸음으로 서둘러 날랐다. 유학 시절, 프랑스 파리의 한 외곽 아파트에 살 때는 부엌에 쓰레기 수거 우체통이 있었다. 우체통 모양의 구멍으로 무슨 쓰레기건 던져 넣었다. 고층에서 아래로 흘러가서 지하 어느 한 곳에 모이는 것을 수거하는 구조였다. 주민은 어떤 경로로 쓰레기가 처리되는지는 알 필요가 없었다. 그 편리한 시스템에 익숙해 있다가, 한국에 와서 고층에서부터 저층까지 모두 쓰레기를 들고나오는 진풍경을 보았다. 며칠 간의 호텔 생활에서 벗어나 아파트 일상으로 진입하면서부터 그 쓰레기 운반 과정을 나라고 피할 수는 없었다. 게으름을 피우면 집안에서 냄새가 스멀거렸기에 어쩔 수 없이 매주 수요일 밤 11시가 넘어서 어둡고 인적이 뜸할 때 나가곤 했다. 나와 비슷한 부류와 마주치면 아는 척도 하지 않고 빈 깡통 던져넣고 도로 들어갔다. 어쩌면 나보다 더 늦은 시간에 나온 올빼미들도 있었을 것이고, 그 행렬은 새벽까지 계속되어 지금 시간에 이르렀을 것이다. 대형집게 크레인 트럭에서 젊은 기사 한 명이 내렸다. 트럭 뒤쪽의 크레인을 움직이자 거대한 집게 손이 하늘에서 천천히 내려갔다. 마치 거대 스크랩의 붉은 손같은 집게가 종이상자를 한꺼번에 움켜쥐었다. 놀라운 효율이었다. 어떻게 저렇게 많은 쓰레기를 운반해가는지 궁금하던 차였는데, 철제 집게 손은 단번에 수십 개의 상자를 한꺼번에 잡아서 올렸다. 어, 거대 철제 스크랩 손이 나무 정자 옆에 서 있는 한 여자의 머리 위로 떨어지는 모습을 보았다. 너무 놀라서 몸을 창밖으로 내밀었다. 다시 보니, 다행히 집게 손이 여자의 머리를 친 것은 아니었다. 직장인이라면 출근 준비를 하고 주부라면 출근 준비를 시켜야 하는 시간이었다. 여자는 아랑곳없이 정자 옆에 서서 붉은 스크랩 손이 땅의 쓰레기를 트럭으로 운반하는 광경을 지켜보고 서 있었다. 짧은 반바지에 푸른 티셔츠를 걸치고 챙이 긴 모자를 쓴 모습이었다. 집게 차와 나무 정자 사이에 간격이 있었지만, 내 아파트에서는 집게 손이 내려올 때마다 여자를 칠 것 같은 각도로 보여 아찔하곤 했다. 왜 저렇게 쓰레기의 매력에 빠져 넋을 놓고 있는지, 나는 비키라고 여자에게 소리치고 싶었다. 이 바쁜 아침 시간에 스크랩 손의 영웅적인 활동에 빠진 여자의 모습이 한심하다 못해 매력적이었다. 고개를 계속 들고 있는 여자를 계속 내려다보고 있는 내 모습이 더 한심하게 여겨졌다. 그 순간에도, 지각 주민 한 명 나타나 재빠르게 쓰레기를 투척하고 사라졌다. 무슨 연유인지 발길을 떼지 못하는 여자를 보면서, 과거 내가 폐차시켰던 자동차가 생각났다. 10년 이상 타고 나니 수리의 빈도가 점점 잦아지더니, 큰 도로 한가운데에서 갑자기 멈춰 버리는 순간이 왔다. ‘푸’른 조명이 음악과 잘 어울려 마음속으로 아꼈고, 내 분주한 스케줄을 잘 맞춰준 ‘조’력자라는 의미에서 ‘푸조’라는 이름까지 붙여주었던 애마였다. 중고차로 처분하려니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위험한 차를 다른 이에게 넘기는 것도 사람이 할 도리가 아닌 듯해서 폐차를 결정했다. 필요한 절차를 밟고 약속을 잡은 날, 폐차장 직원이 나타났다. 자신의 트럭 꽁무니에 간단하게 내 ‘푸조’를 연결하더니 달리기 시작했다. 살아있는 개처럼 내 하얀 자동차가 끌려갔다. 애처롭게 끌려가는 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꼼짝 않고 서 있었다. 너무나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어쩌면 저 여자도 버려야 할 것을 버려놓고, 차마 마음을 떼지 못해서 서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대한 쇠 스크랩 집게 손에 의해 쓰레기 뭉치가 다시 하늘에 붕 치켜 올려졌다. 하늘 위로 올려진 쓰레기 뭉치는 마치 바쳐지는 제물처럼 신성하게 보였다. 다음 순간 쓰레기 뭉치가 트럭 위로 사정없이 떨어져 내렸다. 마치 ‘푸조’가 나에게 버림을 받고 트럭에 연결되어 끌어가던 순간처럼 애잔했다. 인간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의식주를 기꺼이 제공하고 이제 그 껍데기들만 남아서 결국 쓰레기라는 이름으로 쓰러지는 마지막 순간이었다. 나는 ‘푸조’를 위해 애도의 시간을 가지지 못한 것이 후회되었다. 무엇이 그렇게 바쁘고 중요해서 10년 이상이나 내 발이 되어 주었던 존재에게 작별인사도 제대로 하지 못했나 싶었다. 여느 때 같으면, 나는 메모장에 ‘쓰레기를 위해 애도’라는 메모를 남겼을 것이다. 커피를 마시고, 책상 앞에 앉아서, 내가 오늘 창밖으로 본 풍경과 ‘푸조’에 대한 애도와 그리고 붉은 스크랩 집게 차가 트럭 위에 쓰레기를 부려놓은 후 사정없이 짓뭉개서 부피를 줄이던 광경을 묘사했을 것이다. 쓸모를 다하고 사라져가는 것들을 위해 애도한 시간을 그럴듯하게 적었을 것이다. 그리고 상상력을 발휘해서 짝사랑하는 남자의 쓰레기와 여자의 플라스틱 그릇이나 병들이 쓰리기 수거차 안에서 비로소 만나는 상상을 신나게 적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런 ‘쓰레기 연인’의 이야기를 쓰면서, 쓰임을 다하고 사라져가는 쓰레기들을 마지막까지 모욕하고 싶지 않았다. 뻑뻑한 유리 창문을 닫으면서,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진짜 버려야 하는 것들을 결국 버려야 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물리적으로 거처를 옮길 때 정리해야 하는 많은 물건처럼, 마음도 이사하려면 정리해야 할 것들이 생겨날 수밖에 없었다. 버려야 할 것들이 많아진 이유는 내 삶의 중요했던 것들이 더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기 때문이었다. 도리어 그것들로부터 도망을 가야 하기 때문이었다. 중요한 내용물이 다 빠진 거푸집 상황에 직면했기 때문이었다. 갑작스러운 정신적인 위기감 때문이었다. 이 위기감은 내가 프랑스 작가와의 대담에서 도망쳐 나오던 날 이미 감지한 것이었다. 그날, 잠깐의 휴식시간에 국제예술창작재단의 대담 장소를 빠져나오고 말았다. 화장실에 갔다가 다시 대담장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휴식 후에 대담이 다시 이어질 것을 분명히 알고 있었지만, 나는 알지 못하는 것처럼 그곳을 떠나버렸다. 핸드폰으로 나를 찾는 메시지가 계속 들어오고 있는 것도 알고 있었지만, 알지 못하는 척했다. 그리고 밤거리를 정신없이 헤매다가 집에 돌아왔을 때는 도리어 사과 메시지가 도착해있었다. 노랑머리가 보낸 것이었다. 자신의 미숙한 전달로 내가 대담이 끝난 것으로 착각했을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나는 그 사과문을 받고 더 괴로웠다. 어디든지 달아나고 싶었고, 달아날 곳을 찾아 헤매는 난잡한 꿈을 꾸며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 그다음 날 아침에는 프랑스 작가에게서 이메일이 직접 와 있었다. 덕분에 처음으로 대담다운 대담을 했다는 매우 정중한 감사 인사와 함께, 혹여 자신의 실수나 오해가 있었다면 알려달라고 적은 글이었다. 나는 정말이지 쓰레기차의 플라스틱들이나 빈 종이상자들처럼 짓뭉개져서 산산이 부서지고 싶었다. ▶다음 회에 계속 … 김다은은 ‘당신을 닮은 나라’가 1995년 제3회 국민문학상을 수상하면서 소설가로 등단했다. ‘덕중의 정원’ ‘훈민정음의 비밀’ ‘쥐식인 블루스’ 등 20여권 소설책을 출간하고, 다수 번역돼 해외 소개됐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주관한 폴란드 바르샤바대학 작가 레지던시를 비롯, 청송 객주 문학관, 정선 여량면 아우라지 레지던시, 해남 인송문학촌 토문재 레시던시에 참가했다. 이화여대 불어교육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파리8대학에서 불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추계예술대 문예창작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작권자의 허락없이 무단 부분 혹은 전체 전재, 복사, 배포를 금합니다.)
    종의 기원  <12회>
    by 김다은
    2024.10.28 09:00:00
  • 본격적인 푸드테크(FoodTech)시대가 도래하면서 인간은 새로운 방식의 소외(疎外)를 경험하고 있다. 대기업에서 부회장으로 일하시다가 오래전 퇴임한 지인께서 평소 즐겨다니시던 수육 잘하는집을 이제는 안다닌다고 하셔서, 왜냐고 여쭈었더니 테이블오더 때문이라고 하신다. 음식을 기계로 주문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서빙하는 분들이 친절하게 주문을 받아 주고 이런저런 대화도 나누는 정감어린 식당이었는데, 이제 그 기분을 느낄수가 없단다. 이미 키오스크와 테이블 오더(태블릿 주문)는 우리의 일상이 되어버렸다. 거기에 서빙 로봇이 매장을 누비고 로봇이 치킨을 튀기고 커피를 내린다. 배달앱을 모르면 배달을 시킬수 없고, 예약 앱이나 웨이팅 앱을 사용하지 못하면 인기 많은 식당이나 줄서는 식당은 아예 방문조차 할 수 없다. 이런 디지털 소외는 푸드테크 시대의 단면을 잘 보여준다. 최근 외식업계는 푸드테크에 대한 관심과 활용도가 높아지고 있다. 코로나 이후 비대면 문화가 본격적으로 자리 잡으면서 소비자의 욕구는 더욱 섬세해지고 개인화되었다. 거기에 전반적인 외식경기 불황과 인력난까지 더해지면서 푸드테크 활용은 급속도로 증가되고 있다. 이러한 외식업 사장님의 이해와 소비자의 경험이 녹아들면서 푸드테크 도입은 점차 가속화 될 전망이다. 그러나 여전히 장벽을 느끼는 사람들도 많다. 로봇과 디지털 기기들이 인력을 대체하며 생겨나는 인간소외라는 근본적인 문제가 대두되고 있는 것이다. 두산백과에 따르면 '소외(疏外, alienation)' 혹은 일반적으로 '인간 소외'라고 하는 개념은 인간이 자신을 둘러싼 환경, 노동 및 노동의 산물 또는 자아로부터 멀어지거나 분리되는 것을 가리킨다. 인간 소외에 대한 학문적인 관심은 산업화가 급속히 진행된 19세기에서 20세기 초반에 이르러 본격화되었다. 앞으로는 디지털을 통한 주문/결제는 물론이고 기름에 치킨을 튀기거나 화구에서 웍으로 고기를 볶는 등의 위험한 조리, 커피를 내리고 홀서빙을 하는 단순하고 반복적인 노동을 대부분 로봇들이 대체할 전망이다. 경기불황과 인력난이 심해지면서 그동안 외식업 분야에서 인간이 해왔던 위험하거나, 힘들거나, 단순 반복적인 일들을 자연스럽게 로봇과 기계가 대체하는 과정이 빠르게 확산될 것이다. 얼마전 플랫폼 시대에 데이터로 전락한 인간들의 모습을 조명하는 연극(‘자본3: 플랫폼과 데이터’)도 등장해 화제를 모았다. 연극은 배달 서비스 기업 아우토반이 만든 플랫폼에서 비인간적 처우를 받는 라이더들의 모습을 그린다. 아우토반은 수익을 높이기 위해 라이더들을 위험에 몰아넣고 사고에 대한 책임도 지지 않는다. 주인공은 프로그래머를 꿈꿨던 배달 라이더다. 그의 친구는 소시지 공장에서 일하다 기계에 끼어서 사고로 죽었다. 연극은 플랫폼 시대에 소외되는 인간들을 그린다. 인간의 표정에서 감정을 읽을 수 있는 AI는 소시지 공장 사고로 죽은 친구의 얼굴 감정과 유사한 감정을 가진 사람들을 세계 곳곳에서 찾아낸다. “친구의 감정과 유사한 얼굴들입니다. 데이터 라벨러로 일하는 사람들,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들, 우버로 운전하는 사람들, 배달하는 사람들...” 세계적인 언어학자인 조지은 교수는 그의 저서 ‘미래 언어가 온다’에서 “플랫폼과 AI의 언어를 이해하지 못하면 결국 21세기의 문맹자가 될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미래 언어’는 문화와 기술이 융합된 새로운 소통 방식으로, 이 미래 언어의 도래가 단순한 학문의 영역을 넘어 경제, 경영, 그리고 사회 전반에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 예측한다. 미래 언어를 모르면 점차 의사소통에서 소외되어, 급변하는 직업 생태계에서 도태 된다는 것이다. 지구 환경을 지키는 것, 조리 시 어렵고 고된 일을 대체하는 것, 신선하고 좋은 음식을 빠르고 싸게 구입하는 것, 요리를 맛있게 즐기도록 하는 것, 건강한 음식을 섭취 하는 것. 이런 것들을 모두 지속 가능케 하는 것이 바로 푸드테크다. 우리나라의 푸드테크 도입율은 전세계에서 최고로 높다. 아마도 미래의 푸드테크를 가장 선도하는 국가중 하나가 될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푸드테크가 발전할수록 인간의 소외는 점점 깊어질 전망이다.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푸드테크 시대의 인간소외
    by 안병익
    2024.10.27 10:52:51
  • 11. 사람이라는 이름 “아기의 이름 ‘라비’는 생명이라는 뜻이지요?” 내 질문에, 지중해 건너편에 있는 작가의 푸른 눈이 샘물처럼 맑아졌다. “오! 맞습니다. 라비는 죽음의 관에서 나와 새로운 생명을 얻는 인간을 상징화한 것이지요.” “라(La)+비(vie)! 프랑스어를 모르는 독자들은 눈치채지 못할 수도 있어요.” 작가는 이런 말에 민감하기 마련이었다. “책 속의 단어들이 숨바꼭질한다고 여겨주세요. 첫눈에는 안 보여도 중요한 것은 독자들이 찾아내고 말지요. 작가는 일부러 숨길 때도 있답니다.” 순간, 작가가 일부러 숨겨놓은 다른 것을 나는 보았다. 지도에 없는 나라라고 설정되어 있지만, 프랑스어를 계속 키워드로 사용하는 것으로 보면 소설 속 나라는 암암리에 프랑스를 지칭했다. 당장 밝히기보다 마지막 카드로 남겨두고 싶었다. 그가 계속 표지 문구의 의미를 스스로 풀어놓도록 유도했다. “아기의 이름을 왜 홉이 아니라 단테가 짓도록 했나요? 이름을 짓는 것은 보통 그것의 주인이 하는 일인데요.” “오! 예리한 발견입니다. 새 자동차를 개발하면, 그 자동차를 개발한 회사가 이름을 주는 것과 같은 것이지요. 단테가 이름을 붙인 것은 당분간 아기의 주인이 그라는 뜻이지요.” “당분간? 작가님의 이름은 누가 주셨나요? 부모님이 주셨나요?” “오! 아닙니다. 저는 부모님이 누군지 모르고 자랐습니다. 나에게 처음 이름을 준 자가 누구인지 잘 모릅니다. 자라면서 우여곡절로 이름이 여러 번 바꿨고, 지금은 제가 지은 필명으로 살아갑니다.” “그랬군요. 제가 실례되는 질문을 한 것 같군요.” “혈육의 부모는 없었지만, 저의 주인은 따로 있습니다.” “자유로운 작가가 그런 말씀을 하시니…….” “작가로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으로 말하는 것입니다. 대담자 씨! ‘사람’이라는 이름을 누가 우리에게 주었을까요? 그 이름을 준 자가 우리의 주인이 아니겠습니까.” 대담을 시작하기 전에 주최 측으로부터 나는 한 가지 당부를 받았다. 종교적 혹은 이념적 논쟁을 벌이지 말아 달라는 것이었다. 그런 논쟁은 몇 시간이고 각자 자기주장만 되풀이하다가 끝난다고 했다. 지금 종교적인 논쟁을 시작하려는 것은 상대방이었다. 내가 대답하지 않자 작가가 말했다. “아시겠지만, ‘아담’이 사람이라는 뜻이지요. 아담이라는 이름을 누가 주었을까요?” 작가가 원하는 대답은 하나님이었다. 크리스천의 논리에 따르면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사람의 주인이다. 하지만 그 대답은 표지 문구의 모순을 푸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값으로 사신 것이니 사람들의 종이 되지 말라 하나님이 답이라면 표지 문구의 의미는 더 꼬여버린다. 하나님이 사람의 주인이라면, 하나님은 사람을 팔 수 있는 쪽이지 살 수 있는 쪽이 아니다. 자동차를 만든 회사가 자동차를 팔 듯이 말이다. 누가 하나님에게 무엇을 치르고 사람을 살 수 있단 말인가. 누가 팔고 누가 사건, 값으로 팔릴 수 있다면 사람은 결국 종의 상태를 벗어날 수 없다. 나나 작가나 서로 말이 없자, 촬영팀에서 내 쪽을 힐끗 쳐다보았다. 출판사 편집자도 기자들의 반응을 살폈다. 기자들도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는 작가의 질문에 더는 꼬박꼬박 대답할 의지를 상실했다. 대신에 다른 공격 도구를 준비해서 나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갑자기 떠오르는 책이 있습니다. 19세기 프랑스 시인 샤를 보들레르가 쓴 책입니다. 그는 당시 파리의 생활에 심한 우울증을 앓았고, 글도 잘 쓰지 못해 방황합니다. 안면이 있던 의사를 찾아가지요. 그가 건넨 약물은 대마초 해시시였습니다. 보들레르는 처음에 거절하지만, 다시 제 발로 찾아갑니다. 그렇게 환각의 공간인 해시시 클럽에 들어가서, 대마초에 절어 글을 쓰게 됩니다. 해시시 클럽에서 작가 발자크와 위고, 화가 들라크루아 등과 환각의 교제를 이어갑니다. 마약은 매춘으로 이어졌고……그리고 보들레르는 시집 외에도 해시시 클럽의 경험을 담은 산문책 『인공낙원』을 썼습니다.” 보들레르는 파리의 아름다운 풍경 뒤에 숨은 어두운 절망과 우울의 색깔을 포착한 탁월한 시인이었다. 그런데 대담을 하면서 나의 취향이 갑자기 달라진 것이다. 그의 걸작들이 마약의 힘에 의한 것이라는 생각이 든 것이다. 동시에 그의 작품들에 열광했던 시간이 후회스러웠다. 국제예술창작재단의 노랑머리 여자가 고개를 가로젓는 모습이 내 눈에 희미하게 들어왔다. 멈춰달라는 뜻인데, 나는 무시하고 계속 말했다. “작가님의 소설 『인공낙원의 문』도 보들레르의 마약 클럽을 본뜬 것은 아닌지요?” 작가는 앞서와 달리 약간 주춤하는 모습이었다. 작가의 대답을 들으려고 물은 것은 아니었다. 아무 의미 없는 표지 문구에 스스로 코가 꿰서 여태 혼자 발버둥을 친 것이 억울했다. 나를 이렇게 만든 작가에게 회심의 일격을 가하고 싶었다. “흔히 소설 주인공은 작가의 페르소나라고 볼 수 있습니다. 작가님도 단테처럼 마약의 피해자거나 마약과 관련된 경험이 있으신 것이 아닌가요?” 모든 스텝이 일제히 긴장하는 분위기가 피부 세포로 느껴졌다. 나는 더 개의치 않았다. 작가가 보들레르처럼 마약에 절어 표지 문구를 뽑아냈을 것 같았다. 알 듯 말 듯 어리석고 모순된 문장으로 전 세계 독자를 홀리고 싶었을 것이다. 그는 단어들의 환각을 이용하여 사람들을 취하게 하고 싶었을 것이다. 작가라면 어리석은 독자의 눈을 열어주어야 하는데, 도리어 그는 명철하고 지혜롭던 ‘독서의 신’의 눈을 감겨버렸다. 나는 읽어도 읽지 못하는 장님이 되고 말았다. 이런 상태로 독자들에게 책을 안내하는 것은 한 장님이 장님의 무리를 인도한다는 것과 같았다. 순간, 촬영기사가 벌떡 일어났고, 조명이 꺼졌다. ▶다음 회에 계속 … 김다은은 ‘당신을 닮은 나라’가 1995년 제3회 국민문학상을 수상하면서 소설가로 등단했다. ‘덕중의 정원’ ‘훈민정음의 비밀’ ‘쥐식인 블루스’ 등 20여권 소설책을 출간하고, 다수 번역돼 해외 소개됐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주관한 폴란드 바르샤바대학 작가 레지던시를 비롯, 청송 객주 문학관, 정선 여량면 아우라지 레지던시, 해남 인송문학촌 토문재 레시던시에 참가했다. 이화여대 불어교육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파리8대학에서 불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추계예술대 문예창작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작권자의 허락없이 무단 부분 혹은 전체 전재, 복사, 배포를 금합니다.)
    종의 기원  <11회>
    by 김다은
    2024.10.14 09:01:55
  • 넷플릭스의 ‘흑백요리사’는 2주 연속 넷플릭스 글로벌TV 부문 1위에 오르면서 단기간에 국내외 최고의 화제를 모았다. 재야의 고수 ‘흑수저’ 셰프들이 최고의 스타 셰프 ‘백수저’들에게 도전장을 내밀며 치열하게 맞붙는 흥미진진한 내용도 재미있었지만, 다양한 식재료를 사용하는 K-푸드의 매력에 전세계 시청자들이 흠뻑 빠져들게 만들었다. 푸드테크(Food-Tech)는 ‘음식(Food)’과 ‘기술(Tech)’의 합성어로 식품 연관 산업에 소프트웨어(SW), 인공지능(AI), 로봇, 사물인터넷(IoT), 메타버스(AR·VR) 등 첨단 4차 산업 기술을 접목한 새로운 산업이다. 푸드테크는 음식의 검색·추천·주문·예약·배달·결제 등을 포함해 배양육, 로봇, 스마트키친, 스마트팜, 전자식권, 레스토랑 인프라, 스마트공장, 간편식, 정밀식품, 헬스케어 등을 포함하는 포괄적인 개념이다. 푸드테크는 기존산업에 더해져 신종 서비스를 만들어내고 새로운 수요와 공급을 창출한다. 전통적인 식품 연관 산업을 디지털 및 첨단 산업으로 확장한다는 점에서 푸드테크는 가장 주목해야 할 미래 산업이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경계가 허물어지면서 푸드테크는 무한한 성장 가능성을 갖게 되었다. 한국푸드테크협의회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세계 푸드테크 시장 규모는 약 5542억 달러, 국내는 약 61조 원이다. 매년 40%를 넘는 높은 성장률을 보이고 있어 향후 약 600조원으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에 따라 농림축산식품부는 푸드테크 특별법을 제정하고 2027년까지 푸드테크 유니콘 기업 30개 육성, 융복합 인재 3000명 양성, 1000억 원 규모 푸드테크 전용 펀드 조성도 추진하고 있다.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It's the economy, stupid)". 1992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빌 클린턴 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조지 H. W. 부시 공화당 후보를 이기고 대통령이 될 수 있었던 유명한 슬로건이다. 우리나라가 집중적으로 육성하는 반도체 산업의 전세계 시장 규모는 2023년 기준 약 700조원에 불과하다. 2023년 기준 국내 식품 연관 산업은 약 560조원에 이른다. 국내 식품산업이 전세계 반도체 시장과 비슷한 규모인 것이다. 식품산업과 첨단기술이 접목된 푸드테크 시장 규모는 국내시장이 약 600조, 세계시장은 반도체 산업보다 약 50배 많은 4경 정도로 전망되는 미래 유망 성장 산업이다. 정부와 정치권이 가장 관심을 갖고 육성해야 할 산업은 반도체가 아니라 바로 푸드테크인 것이다. 2022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매년 개최되는CES는 우주기술과 더불어 푸드테크를 새로운 카테고리로 매년 CES 행사에 초대하겠다고 선언했다. 다양한 국내외 로봇회사들은 로봇 바리스타, 치킨 로봇, 조리 로봇, 서빙 로봇, 배달 로봇 등 10여 종의 푸드테크 로봇을 개발해 현재 보급중이다. AI가 만들어가는 푸드테크 산업의 핵심은 로봇, 스마트 자동화와 생성형 AI를 통한 초개인화 맞춤형 서비스다. 스마트 자동화는 스마트팜, 스마트공장, 스마트물류 등 식품의 생산과 유통 전 과정에 적용되고, 첨단 AI푸드테크 로봇은 식품의 생산, 가공, 조리, 배달, 서비스에 이르는 모든 분야에서 사용 될 전망이다. 또한 AI로 개인 맞춤형 식단, 맞춤형 정밀식품, 헬스케어까지 가능해질 전망이다. 지금 K-푸드는 한류를 넘어 전세계로 질주하고 있다. 뉴욕의 미쉐린식당 71곳 중 한식당은 프렌치 레스토랑 보다 많은11곳이 선정되었고, 지난해 미국 대형마트에서 판매를 시작한 K-김밥은 SNS 상에서 인기를 얻으며 품절대란까지 이어졌다. 미국과 유럽은 올해 2024년을 주도할 음식 트렌드로 단연 K-푸드를 꼽고 있다. 넷플릭스 시리즈 흑백요리사가 최고의 인기를 얻는 배경에도 k-푸드가 한몫하고 있다. 이제 푸드테크는 K-푸드 결합을 통하여 더욱더 빠르게 성장될 전망이다. 흑백요리사도 못 피하는 첨단 미래 음식, 푸드테크! 푸드테크 산업을 K-푸드와 함께 대한민국의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만들고 우리앞에 다가온 미래를 한층 더 앞당겨야 하겠다.
    흑백요리사도 못 피하는 푸드테크
    by 안병익
    2024.10.13 17:29:29
  • 우리는 지금 K-팝과 K-드라마가 세계 여러 곳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 있다. 때로는 한국의 팝과 드라마가 세계 문화의 주류가 될 것이라는 의견도 접한다. 이에 대해 생각해 보자. 세계에 알려지고 있는 한국의 드라마들은 TV 드라마이고, 그 주제는 잘 사는 가정이나 궁중 이야기들이다. 쉽게 말하자면, ‘이야기-즐기기’의 드라마들이다. 한국의 TV 드라마는 과거의 진실을 파헤치는 역사·사회적 또는 인간에 대한 근원적 질문, 현실에 대한 반성 등의 지성적 문제를 다루지 않는다. 영화 역시 비슷하다. 이념 선전에 치우친 영화들이 대부분이다. 역사적 사실을 추구해야 하는 다큐멘터리 마저 사실 규명을 소홀히 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20세기 중반 이후 대중문화가 전통 상류문화를 밀어내고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된다. 대중문화가 귀족문화를 밀어낸 것은 대중시대의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대중문화가 전적으로 오락에만 빠져든 것은 아니다. 유럽에서는 진지함을 추구하는 지성적 작품이 이어져 온다. 체코 태생의 헝가리 감독인 벨라 타르(Bela Tarr)의 ‘사탄 탱고’(1994년)와 ‘토리노의 말’(2011년)이 좋은 예일 것이다. 대단한 작품들이다. ‘사탄 탱고’의 상영 시간은 439분으로, 내가 본 영화 중 가장 긴 시간의 영화였다. ‘토리노의 말’은 한국에서도 상영되었고 벨라 타르 감독은 부산 영화제에도 참여했었다. 아시아를 보자. 이슬람의 종교적 족쇄 하에서도 이란은 ‘올리브 나무 사이로’(1994)와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1987)와 같은 아름다운 영화를 발표한다. 이들과 어깨를 겨룰 수 있는 한국의 영화가 있는지 모르겠다. 나는 2000년 이후 제작된 한국의 영화를 끝까지 본 것이 거의 없기 때문에 자신 있게 말하지는 못 하겠다. 욕설과 폭력으로 뒤덮힌 초기 장면을 견디기 어려워 초반을 넘겨 본 영화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K-팝은 어떤가? 노래는 멜로디와 가사로 이루어져 있다. 멜로디에는 좌우의 이념이 없다. 정치적 이념에 무관심한 대중이 몰두하는 곳이 스포츠와 음악이 아닐까? ‘푸른 곰팡이’(BTS)와 ‘사건의 지평’(유하)은 항생제와 블랙홀의 용어를 가사로 사용한다. 이념에 무관심하다는 제스처다. 음악 이야기를 하면, 애호가들은 “클래식은 그 후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해 한다. 베토벤, 브람스에 이어 20세기 초, 바르톡, 스트라빈스키로 이어진 클래식이 어떻게 변모했는지 궁금한 것이다. 음악과 미술은 20세기 중반 이후 개념 예술로의 길을 간다. 개념화된 예술이 무엇인지, 대중이 떠나 버린 그림과 음악을 살펴 보기로 하자. 그림은 기억 속의 남아 있는 모습을 그리는 작업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암각화가 그렇고 성당의 벽화와 성화가 그러했다. 이들에게는 멀리 있는 사물을 작게 그려야 할 이유가 없었다. 기억 속의 그림은 크기의 구별이 없기 때문이다. 르네상스 시대를 지나면서, 원근법이 등장해 그림을 지배한다. 원근법에 의하면 멀리 있는 것은 작게 그리고 가까이 있는 것은 크게 그려야 한다. 현실을 분석한 것이다. 19세기에 이르면 색채 역시 분해해서 그린다. 지적인 분석이다. 이 모든 변화는 그려야 할 대상을 지적으로 분석한 결과다. 대상에 대한 과학적 접근인 셈이다. 그후 관심은 대상에서 주체로 옮겨 온다. 19세기의 문화적 특징이다. 그림의 경우, 한 시점이, 두 시점으로 분산된다. 앞에서 본 얼굴과 옆에서 본 얼굴을 겹쳐 그리게 된 것이다. 두개의 객관이 하나의 주관 안에 들어온 것이다. 대상을 보는 ‘내’가 탈-시간화된 것이다. 그후 지적 관심은 “그림이란 무엇인가”로 도약한다. 1917년 마르셀 듀쌍은 소변기를 ‘Fountain’(샘)이라는 이름으로 전시하고, 1929년 르네 마그리뜨는 ‘La Trahison des Images’(이미지의 배반)을 발표한다. 그림 안의 문구인 'Ceci n'est pas une pipe'(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의 메시지는 “이것은 그림, 즉 파이프의 기호이지 입에 물 수 있는 실물 파이프가 아니다”이다. “그림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인 셈이다. 그림은 대상의 미적 표현을 넘어선다. 화가의 철학적 신념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변모한 것이다. 그림이 철학적 의견이 되었다. 다음의 세 그림은 미국의 마크 로스코(1903-1970)의 추상화다. 첫 그림은 ‘세계는 검은 색 속의 오랜지 색’이라는 철학적 견해로 해석될 수 있다. 그런 상징적 해석이 싫다면 색 자체의 아름다움으로 보아야 한다. 이때 색은 사물을 벗어난 색, 즉 추상이다. 이 그림을 보고 “이런 그림이라면 나도 그리겠다”고 이견을 제기한다면, “콜럼버스의 달걀을 생각하세요”라는 답을 들을 것이다. 음악에 대해서 살펴보자. 바로크 시대 이후, 제1주제와 제2주제를 각각 tonic(으뜸조)과 dominant(딸림조)의 두 조 위에 얹은 것은 ‘아랫 마을과 윗 마을’이라는 두 공간을 도입해 음악적 공간을 확대하기 위함이었다. 그후 바그너는 이 기법을, 짧은 시간 동안 여러 조를 정신 없이 드나드는 기법으로 확산시킨다. 쇤베르크는 그렇게 하느니 차라리 옥타브의 열두 음 하나하나를 독립된 공간으로 생각해, 열 두개의 공간 연속체를 만들자고 제안한다. 12음 음열이다. 시간 흐름에 의해 파악되는 공간 에서 시간을 빼앗은 것이다. 음악의 진행이 공간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공간이 시간을 먹어버린 결과를 낳는다. 음악의 시간적 청취가 없어진 것이다. 쉽게 생각해보자. 쇤베르크의 12음 음악은 멜로디를, 12개의 음열로 대체한다. 이는 대상, 즉 각 성부의 수평적 진행의 아름다움인 멜로디의 포기한 것이다. 감성적 판단의 자리를 수학의 아름다움이 빼앗은 것이다. 다르게 말하면, 하나의 물체를 창조한 것이다. 그곳에 ‘들음’, 즉 청취는 없다. 음악 듣기에는 음들의 상하 관계가 있었다. 음열 음악에서는 그러한 으뜸-딸림의 위계가 없어진다. 멜로디가 없어진 추상-음악이 된 것이다. 1960년 이후, 한국 대학의 클래식 작곡가들은, 쇤베르크가 내다 버린 ‘대상의 감성적 아름다움’를 가슴에 안은 채, 12음 기법으로 아름다운 음악을 만들려고 매달린다. 모순된 일이다. 지금도 여전하다. 이처럼 개념화된 그림과 음악이 대중들의 관심 밖으로 밀려남은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여기에서 화가와 작곡가들의 기괴한 행동과 포퍼먼스가 등장한다. 호기심을 자극해 대중을 갤러리와 콘써트홀로 유도하려는 시도였다. 화가들의 기괴한 행동은 널리 알려져 있으므로, 여기서는 현대음악 작곡가의 기괴함을 보기로 한다. 슈토크하우젠(1928-2007)은 9.11 테러 당시 언론을 향해, "이런 사건에서도 나는 음악적 영감을 얻는다"고 공언한 후 언론의 맹렬한 질타를 받는다. 이어 그는 며칠 전 안드로메다 성운을 다녀 왔다고 주장한다. 기자들의 여러 번의 질문에도 끝까지 자기 주장을 부정하지 않았다. 그는 연주자에게 기하학적 그림을 제시하며, 보고 생각나는 대로 연주하라고 요구한다. 지금까지 유럽의 지성적 예술이었던 그림과 음악의 개념화 과정을 살펴보았다. 몰락에 가까운 변질이다. 20세기의 문화는 지성과는 무관한 대중이 소비자인 문화다. 전통 예술의 입장에서 보자면, 음악과 미술이라는 한 쪽이 죽어버린 가지 사이에서 새로운 싹이 솟아나는 현상으로 비유해야 할 것이다. 음악의 경우, 대중음악이 그 자리를 차지한다. 미술의 경우, 설치미술, 환경미술, 액션페인팅 등의 여러 모습으로 변모한다. 세계의 여러 나라의 경우를 보자면, 드라마와 영화는 여전히 지적 작품을 생산하고 있다. 넓게 보자면 문학, 즉 이야기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도 이제 시간 때우기를 넘어선 인간과 역사 그리고 경험하는 모든 것에 대해 이야기에 근거한 질문을 던지고 이를 추구해야 한다. 그것이 문화가 가야 할 바른 길이기 때문이다. 1900년 이후 우리는 민주주의와 공산주의가 마주하는 지정학적 조건 아래 살아 왔다. 20세기 후반, 놀라운 경제 발전을 이루었고, 우파들이 경제에 열중하는 동안, ‘종북 가짜 진보’들이 대중 문화를 뒤덮어 왔다. 이제 가짜의 세계를 벗고 진실의 시대를 열어야 한다. 진정한 질문을 할 수 있는 시대를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K-팝과 K-드라마가 세계적으로 유행하고 있다는 말에 취하지 말고 미래의 올바른 문화를 생각해야 한다는 뜻이다. ‘토리노의 말’을 한번 보기를 권한다. 보고 나면 잠시 생각에 잠기게 될 것이다. 긴 시간 동안 수레를 끄는 말의 몸 구석구석을 관찰하면서 역사적 팩트를 직시해야 함을 느끼기 바란다. 우리도 이제 이런 드라마를 만들어야 한다. *외부 필진의 기고 내용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약력]서울대 명예교수 [저서]시와 리듬(1981, 개정판 2011), 음악을 본다(2009), 세계의 음악(2014) 등 [번역]기호학 이론(U. Ecco, 1984), 서양음악사(D. J. Grout, 1997)
    K-팝과 K-드라마
    by 서우석
    2024.10.12 08:26:56
  • 10. 사라진 아기 삐이, 이름 모를 새가 하늘을 가르며 울었다. 내리막길을 내려가면서 큰 걸음을 떼다가 미끄러졌을 때, 단테는 한 이름을 반사적으로 불렀다. 라비! 그러고 보니 하늘에서 도토리 하나가 떨어지면서 단테의 머리통을 톡 건드렸을 때도, 촉촉한 땅 위를 거닐던 달팽이를 무심코 밟을 뻔했을 때도, 달팽이를 피하려다 삐끗, 발목을 삘 뻔했을 때도 라비를 불렀다. 단테는 라비의 이름을 자꾸 중얼거리는 자신을 발견하고 웃음이 나왔다. 평지에 내려오니, 언덕 위에서 혀처럼 갈라지던 붉은 햇살이 포근하게 내려앉은 모습이 보였다. 더워지기 전에 감자꽃을 따야만 한다. 삐거덕, 나무계단에 발을 올리자마자 통나무의 신음이 나왔다. 오늘따라 유난히 크게 들려 흠칫했다. 단테는 까치발로 살금살금 몇 계단을 올라갔다. 출입문에 가만히 귀를 기울여보았다. 아기가 아직 깨진 않은 듯했다. 아기는 생과 사를 넘나드는 시간을 견뎠다. 어른보다 몇 배 힘들었을 것이다. 막 출입문을 열려는데, 주변을 맴도는 검은 길고양이가 보였다. 문득 그에게도 이름을 지어주어야겠다는 쓸데없는 생각이 들었다. 삐익, 출입문은 계단보다 더 큰 소리를 질렀다. 안으로 들어가니, 로깡과 안드레가 코 고는 소리가 여전히 들려왔다. 두 사람이 화음을 맞추며 골아댔다. 아기가 깨지 않는 것이 이상할 정도였다. 단테는 서둘러 침실 옆의 임시 아기방으로 들어갔다. 어, 단테는 작은 비명을 질렀다. 깨끗한 이불을 골라 뉘어 놓았던 아기가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이불만 텅 비어 있었다. 라비, 단테는 얼음처럼 온몸이 굳는 것을 느끼며, 신음처럼 이름을 뱉어냈다. 단테가 그 이름을 반복하며 기분 좋게 언덕을 내려오던 시간에, 라비는 누군가의 손에 탈취당했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위급함을 알리려 자신의 이름을 떠올리게 해준 것이었는데, 단테는 깨닫지 못하고 즐거워했었다. 마치 형의 이름이 자꾸만 입에서 중얼거려지는데, 바깥에서 다른 일에 빠져 늦게 돌아온 날과 비슷했다. 늦게 도착해서 형을 구하지 못했던 생각이 솟구쳤다. 옆방으로 뛰어가서 녀석들을 흔들어 깨우려다가 멈칫했다. 라비가 잠든 곳은 분명히 이 공간이었다. 로깡이나 안드레가 자다가 일어나서 다른 장소로 옮기진 않았을 것이다. 로깡은 몽유병이 있지만, 간밤에는 그런 증상을 보이지 않았다. 아기를 옮기지 않았다면……침입자가 있다! 단테는 소리를 지르려던 자신의 입을 틀어막았다. 가만가만 서랍 깊숙이 숨겨놓은 총을 찾아냈다. 그리고 깨우지 말라는 듯 더 심하게 코를 고는 녀석들을 지나 집안을 구석구석 살폈다. 그래, 잠들어 있는 편이 났다. 잠들어 있어야 범인의 얼굴을 보지 않을 것이고, 그래야 살아남을 수 있다. 단테는 집안의 구석을 천천히 살폈다. 커튼 뒤도 장롱 안에도 없었다. 그는 통나무집의 뒷문을 살그머니 열었다. 뒷문으로는 확장한 실내창고가 이어진다. 주인이 돌아온 것을 알았다면 침입자가 이곳으로 피신했을 가능성이 높다. 감자의 가루를 말리는 곳인데, 지금은 수확 철이 아니어서 비어 있다. 이곳에는 지붕도 있고 비닐로 되어 있어 바깥이 환하게 보인다. 오른쪽 햇살이 내리쬐는 곳을 보니, 홉이 아기를 안고 우유를 먹이고 있었다. 평안하고 그림처럼 아름다워서, 단테는 욕설이 튀어나올 뻔했다. 아기를 들여다보다가 고개를 쳐든 홉의 온화한 표정이 조금 굳어졌다. “대체, 아기를 굶기고 태평하게 잠을 자다니요. 단테 씨는 어디 갔다 오셨어요? 세 사람이 사람이에요?” 이 정도의 강경한 표현은 홉에게는 욕설 이상이었다. 단테가 사라진 아기 때문에 놀란 것보다 아기를 굶긴 세 사람의 인성에 홉이 더 놀란 듯했다. 단테는 총을 뒤로 숨기며 다가갔다. “오늘 오후에나 올 줄 알았는데.” “새벽에 아기에게 우유 먹이라고 몇 번이나 일러주었는데…….” 로깡과 앤드류에게만 맡겨두고 아기를 굶긴 것을 단테는 속으로 자책했다. 자신도 화가 나니, 홉이 화가 나는 것은 당연했다. 아기는 홉의 가슴에 안겨 한 방울씩 입가에 흘러 넣어주는 우유를 받아먹었다. 아직 우유를 빨 힘이 없어서 이렇게라도 공급해야 한다고 했다. 아기가 너무 연약해 보였다. ‘내가 왔어, 눈을 떠 봐.’ 단테는 아기에게 은밀한 전언을 시도했다. 아기는 순순히 눈을 뜨지 않았다. 단테는 더 강하게 다시 시도했다. ‘라비! 힘을 내 봐!’ 다시 우유 한 방울을 가까스로 흘러 넣은 후, 홉이 단테에게 말했다. “어른은 하루에 두 끼나 세 끼 먹지만, 아기는 더 여러 번 먹어야 해요.” 단테의 귀는 홉의 말에 순종적이었지만, 단테의 입은 반항적으로 튀어나왔다. “아기를 어떻게 하면 좋겠어?” “아기를 어떻게 하다니요?” “여기서 계속 키울 수는 없잖아.” “그럼 어디에서 키워요? 아기가 어디서 왔는지 단테 씨는 설명할 수 있으세요?” “그래도 대책이 있어야지. 이곳에 누군가 불시에 올 수도 있고.” 조금 전 상상 속의 침입자가 아직 단테의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아서인지, 아기를 잃을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단테를 사로잡았다. 빈틈없이 대책을 세워 놓지 않으면 어른도 아기도 보호할 수 없을 것이다. 꽃들이 보기 좋다고 남겨두면 감자는 영양분을 빼앗겨버리듯이, 아기의 운명도 비슷해서 계속 데리고 있으면 모두의 약점이 되고 위태로워질 것이다. “아기를 안느에게 맡기면 안 되겠지?” “그런 말씀 하실 줄 알았어요. 안느 곁도 안전하지는 않아요.” “아니 왜?” “하여간 안 돼요. 여기가 더 안전해요.” 우유 방울을 먹이는 홉과 받아먹는 아기를 번갈아 바라보며 단테는 기다렸다. “감자 농사만으로도 충분히 먹고 살 수 있잖아요. 관 속을 뒤지는 일을 꼭 해야 해요?” “자네가 내 속사정을 다 아는 것은 아니잖은가. 사람마다 말할 수 없는 사연이 있는 법이지. 꼭 복수해야 하는 사람이 있다네.” “저도 복수……해야 하는 사람이 있어요.” 홉의 입에서 복수라는 단어가 나오니, 신선하다 못해 속은 느낌이었다. “무슨 사연이 있는지 모르지만…….” “안느는 내 여자가 아니라 여동생이에요. 나쁜 놈들이 안느를 집단강간했지요. 안느를 숨기기 위해 이곳에 왔어요. 그 죽일 놈들이 안느를 찾아내면 안느의 아기도 가만두지 않을 거예요. 안느 곁은 절대 안 돼요.” 홉이 너무 간단하게 놀라운 비밀을 털어놓았다. 홉도 안느의 아기 때문에 매우 위태로운 심정이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그의 남자인 척했군.” “로깡과 안드레에게는 말하지 말아 주세요. 그들도 남자잖아요. 여동생이라고 하면 여자로 볼 수도 있으니까요. 문제는 항상 가까운 주변에서 일어나니까요.” “그럼, 나는 괜찮아?” “믿으니까요.” 갑자기 단테의 가슴에서 뜨겁고 뭉클한 것이 솟구쳤다. 이 나라에서 누군가를 믿는다는 것은 목숨이 내놓는다는 표현과 같았다. 상황이 나빠지면 안느의 아기도 여기서 보호해주겠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라비가 살아날 때까지는 여기서 돌보도록 해주세요.” “아직 살아난 것이 아니라는 말인가.” “방치되었던 시간이 있으니 갑자기 어떤 부작용을 보일지도 몰라요. 아기는 시시때때로 달라요. 정말 변화가 많고……. 아! 이것 봐요. 아기가 단테 씨의 목소리를 들었나 봐요. 우리 말이 들리는 것처럼 얼굴을 꿈틀거려요. ” “미소를 짓네. 보이지. 봤지?” “네. 아직 엄마 배 속에 있다고 착각하며 꿈을 꾸는 상태지요. 배냇짓을 하는 거예요. 배냇짓!” ▶다음 회에 계속 … 김다은은 ‘당신을 닮은 나라’가 1995년 제3회 국민문학상을 수상하면서 소설가로 등단했다. ‘덕중의 정원’ ‘훈민정음의 비밀’ ‘쥐식인 블루스’ 등 20여권 소설책을 출간하고, 다수 번역돼 해외 소개됐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주관한 폴란드 바르샤바대학 작가 레지던시를 비롯, 청송 객주 문학관, 정선 여량면 아우라지 레지던시, 해남 인송문학촌 토문재 레시던시에 참가했다. 이화여대 불어교육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파리8대학에서 불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추계예술대 문예창작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작권자의 허락없이 무단 부분 혹은 전체 전재, 복사, 배포를 금합니다.)
    종의 기원  <10회>
    by 김다은
    2024.10.07 09:11:50
  • “꿈은 무의식에 이르는 왕도(a loyal road)이다.” 이는 프로이트(Freud)가 꿈을 분석하면서 한 말이다. 프로이트에 의하면 잠자는 동안 꾸는 꿈은 무의식적 정신활동의 결과물이다. 1895년 여름, 프로이트는 일머(Irma)라는 젊은 여성의 정신 분석을 맡았다. 그녀는 프로이트의 가족과도 매우 친한 사이였다. 그런데 그녀에 대한 치료는 부분적으로만 성공적이어서 그녀의 신경증적 불안은 없어졌으나, 신체에 나타나는 증상이 모두 제거되지는 않았다. 어느 날 밤(아마도 새벽녘이었던 것 같다) 프로이트는 다음과 같은 꿈을 꾸었다. [큰 홀에서 우리는 많은 손님을 접대하고 있었다. 그 가운데 일머가 보이기에 나는 그녀를 한쪽으로 데리고 가서 그녀의 편지에 대한 답을 준 다음, 내가 제시한 ‘해결 방법’을 아직도 수용하지 않는 것을 비난했다.” 프로이트가 말했다. “(신체적 증상이) 아직 완쾌되지 않는 건 사실 당신 탓이오” “지금 내가 얼마나 아픈지 알기나 해요? 목과 위와 배가 졸리는 것 같아요”라고 일머가 대답했다. 나는 놀라서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창백하고 부어 있는 것 같다. ‘그럼 역시 무슨 내장 기관의 장애가 있었던 걸까?’하고 생각한다. 그녀를 창가로 데리고 가서 목 안을 진찰한다. 그녀는 싫은 기색을 보인다. 마치 의치를 한 여자들이 그러하듯이. 나는 싫어할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그리고 크게 벌리라고 했다. (참고로 현실에서 프로이트는 일머의 구강을 진찰한 일은 한 번도 없었다). 꿈속의 이 과정으로 얼마 전에 진찰했던 여자 가정교사가 연상되었다. 이 여자는 첫 인상이 매우 아리따운 미인으로 생각되는데, 내가 입을 벌리게 하자 곧 치열을 감추려고 했다. 싫어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것은 아마 일머에 대한 것이었는데, 그것 말고 또 다른 뜻이 있었던 것 같다.···] 이 꿈에서 프로이트는 자신이 치료하고 있는 환자가 완치되지 못함에 대한 걱정, 자책감과 치료의 실패가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는 무의식적인 방어기제를 발동시키고 있다. 또 꿈에서 프로이트는 환자에 대한 자신의 감정과 걱정 그리고 환자의 상태를 알고 싶어하는 의도를 드러내고 있다. 그는 꿈에서 여태껏 한 번도 진찰한 적이 없는 일머의 입안을 진찰하면 질병의 단서를 파악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을 한다. 필자는 환자를 완전히 치료시키지 못한 프로이트의 자책감과 자기 책망의 심리적 기제가 이 꿈을 만들어 냈다고 본다. 또 현실에서는 서로 관련이 없는 두 명의 여성 환자를 구강 진찰을 매개로 자유로운 연상이 이루어진다. 그가 밝힌 ‘또 다른 뜻’에 관해 프로이트는 명확히 밝히고 있지는 않지만, 필자는 일머에 대한 성적 호기심이나 욕구가 은유적으로 표출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때 프로이트의 열렬한 추종자였던 융(Jung)은 다음과 같이 평했다. “그가 우리 문화에 준 충격은 무의식으로 통하는 길을 발견한 것이었다. 그는 꿈을 무의식 과정에 대한 가장 중요한 정보원으로 인정함으로써, 잃어버려 이제는 어쩔 수 없다고 여겨진 가치를 과거와 망각으로부터 되찾아 왔다. 그는 자신의 경험으로 무의식적 정신의 존재를 증명했다.”
    꿈은 무의식에 이르는 왕도
    by 국경복
    2024.10.02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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