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47
  • 최근 글로벌 혁신시장은 기술패권화 흐름과 함께 국가 간 혁신경쟁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글로벌 혁신 강자인 미국은 미래기술을 앞세워 질주하고 중국이 맹렬히 추격하는 G2 중심의 혁신경쟁체제가 펼쳐지는 중이다. 특히 미국과 중국의 빅테크 기업들이 기술력을 앞세워 신산업과 시장을 선점하자 이들과 경쟁에서 밀리고 있는 유럽 및 아시아 선진국들은 파괴적 혁신을 창출하는 첨단기술 확보에 집중하고 있다. 그 돌파구로 각광받는 대안이 미국의 ‘국방고등연구계획국(DARPA·Defence Advanced Research Projects Agency)’ 모델이다. DARPA는 구 소련의 스푸트니크 발사 충격을 계기로 1958년에 설립된 미국 국방부(DOD) 산하의 연구개발 기획평가관리기관이다. 이 기관은 미국의 기술적, 전략적 우위 선점을 목표로 도전적인 과제를 발굴하고 해결해 뛰어난 혁신성과를 창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적군의 레이다망을 피하기 위한 스텔스 전투기를 비롯해 무인항공기, 군사용 로봇과 같은 국방전략기술의 확보뿐만 아니라 기술이전을 통해 인터넷, GPS, 인공지능(Siri), 드론, 자율주행, 의료용 백신 등과 같은 파괴적 혁신기술들을 탄생시켰다. 그로 인해 혁신강국인 미국에서 DARPA는 혁신의 아이콘으로 불린다. 최근 우리나라를 비롯한 영국, 독일, 일본 등 혁신경쟁국들은 미중과 벌어지는 혁신격차를 줄이기 위해 DARPA를 모방한 혁신적인 연구개발제도를 경쟁적으로 도입해 운영하고 있다. 국가마다 구체적인 방식은 다소 차이가 있지만 이들 모두 도전적인 연구개발을 통한 첨단기술 확보와 획기적인 혁신성과 창출을 목표로 한다. 그러나 대부분 기대했던 혁신성과 창출이 잘 보이지 않는다. 원인은 도전적인 연구개발에 집중한 기술 확보만으로는 파괴적 혁신 창출에 요구되는 조건들이 충족되지 않기 때문이다. DARPA 제도를 도입한 국가들은 임무 달성을 위한 도전적인 연구개발 추진이나 연구개발 수행에 전권을 가진 PM(Project Manager) 제도와 같은 연구관리 방식에 주목한다. 정작 중요한 도전 임무의 설정 조건은 간과된다. DARPA는 일반적인 공공수요가 아닌 군사전략적 우위 확보를 위해 현장에서 확보되어야 하는 명확한 필요수요를 도전 임무로 설정한다. 그리고 이를 획기적인 아이디어와 기술로 해결한다. 국방에 필요한 사항이 민간에도 통용되는 것이면 개발된 기술은 민간에 이전되고 거대한 시장수요로 이어진다. 일례로 핵 공격에 대비한 안전한 정보관리를 위해 서버를 여러 곳에 분산 배치해야 하는데 이를 연결하기 위해 개발된 알파넷(ARPAnet)은 민간의 연결 네트워크 수요와 만나면서 전 세계가 하나로 연결되는 인터넷으로 발전되었다. DARPA의 또 다른 특징은 다른 분야와 달리 거대한 조달시장을 통해 혁신적인 제품을 수용하는 것이다. 안정적인 혁신시장은 기업에게 기술혁신 참여를 유인하고 조달가능한 수준으로 신기술의 완결성을 높이는 역할을 한다. 또한 개방적인 연구네트워크는 민간으로 첨단기술의 이전을 촉진하는 매개체 역할을 한다. 이러한 안정적인 혁신시장의 존재와 개방적인 협력 체계, 시장의 혁신 수용이 DARPA의 차별적인 혁신성과 창출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처럼 DARPA는 일반적인 공공연구개발과 유사한 과정을 거치지만 그 내용은 완전 차별적이다. 특히 도전의 필요성과 내용이 명확하고 쉽게 제시되고, 기술개발 및 개발 기술의 사업화 과정은 모두 혁신을 향해 유연하게 움직인다. 그러나 이러한 혁신성과 창출 여건에도 최근의 혁신환경 변화에 대응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어 사업화 성과 창출에 대한 압박을 받고 있다. 첨단기술의 상업화 중요성은 전 구글 최고경영자(CEO)인 에릭 슈미트가 설립한 미국의 민간 싱크탱크인 SCSP(Special Competitive Studies Project)의 미중 간 주요 전략기술분야 경쟁력 분석 보고서(Welcome to the Arena, 2025)에서도 제기된다. 미국이 주요 기술분야에서 앞서가고 있지만 중국은 제조업 역량을 기반으로 상업화에 집중하는 전략을 통해 격차를 줄이거나 우위를 점하고 있다고 평가한다. 첨단 기술혁신 경쟁에서 기술개발 전략 못지않게 상업화와 시장전략이 중요해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기술패권화에 따른 글로벌 혁신경쟁체제에서 혁신 강국들에 맞서기 위해서는 우리의 전략적 위치를 점검하고 재설정해야 한다. 특히 도전적인 연구개발체계를 넘어 시장의 혁신전략 강화를 포함하는 국가혁신체계의 재구성을 추진해야 한다. 나아가 우리 여건에 맞는 독창적인 혁신전략으로 우리만의 혁신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
    G2 잡으려면 국가혁신체계 다시 짜야
    by 이민형
    2025.04.03 11:13:41
  • 변화의 시기, 미래에 대한 예측에 관심이 더욱 커진 시기에 기업들은 순도가 높은 정보에 대한 욕구는 높으나 정보의 홍수 속에서 정보의 옥석을 가리는데 많은 애를 먹는다. 요즘은 누구나 카톡으로 지라시를 받는 세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증권가를 중심으로 미확인된 정보를 지라시라는 형태로 소수에게 돌렸는데 유튜브 등이 활성화되면서 누구나 확인되지 않은 정보를 생성하고 유통시키면서 우리는 ‘지라시 홍수’ 시대에 살고 있다. 과거에는 지라시를 통해 어느 정도 신뢰성 있는 정보를 얻기도 했는데 개인미디어 시대가 되면서 유튜브 등을 통해 접하는 많은 정보가 진실과는 괴리된 허무맹랑한 것들이 많다. 사업 전략을 세우고 규제에 대응하며 사회와 소통하는 데 있어 필수불가결한 자원인 정보를 보다 정제된 형태로 받고자 하는 기업들의 요구는 높지만 현실은 정제된 형태로 제공되지는 않는 경우가 많다. 정책 입안자의 발언, 입법 예고안, 이해관계자의 주장, 언론 보도, 여론조사, 소셜미디어 담론 등 수 많은 형태의 정보들이 올바른 방향성을 제시하는 ‘신호’의 역할을 하기 보다는 ‘소음’에 가깝다. 대니얼 카너먼은 ‘노이즈: 생각의 잡음’에서 인간의 판단이 왜 잘못되는지를 설명하면서 편향(bias)만큼이나 판단의 일관성 없는 변동성, 즉 노이즈(noise)의 위험성을 강조했다. 정부, 의회, 시민사회와의 관계 속에서 기업이 정책 환경을 해석하고 전략적 방향을 설정하기 위해서는, 정보의 양보다 정보의 순도를 먼저 따져야 한다. ‘정보를 얼마나 모았는가’보다 ‘무엇을 걸러냈는가’가 사업의 명운을 좌우하는 시대다. 퍼블릭 어페어즈가 필요한 이유이다. 기업이 정책 대응을 둘러싼 의사 결정을 할 때, 내부 논의 과정에서 얼마나 정밀한 정보가 쓰였는지, 이해관계자들과 대화에서 얼마나 전략적으로 정보를 배열했는지가 중요하다. 규제 환경을 바라보는 분석의 정교함, 정보를 전달하는 언어의 균형감, 그리고 침묵할 때와 발언할 때를 구분할 수 있는 전략적 분별력이 퍼블릭 어페어즈의 품질을 결정짓는다. 그 점에서 독일 화학기업 바스프는 탁월한 사례다. 유럽연합이 도입한 화학물질 규제 REACH는 산업 전반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규제였지만, 많은 기업들이 불확실성과 복잡성에 당황해 소극적으로 대응했다. 무엇보다 기다려보면 산업의 입장을 반영해 충분한 시간을 가질 수 있다고 판단했다. 당시 보고서들을 보면 환경에 대한 EU의 의지를 과소평가했다. 반면 바스프는 초기 단계부터 정책 흐름을 정보로 분석했다. 입법 동향, 추진 세력의 의도, 규제 대상의 세부 범위를 면밀히 해석해 자사 제품의 리스크 수준을 계량화했고, 내부적으로는 전사적인 이행 로드맵을 설계했다. 더 나아가 고객사, 공급망과의 정보 연계를 강화해 ‘규제 대응 선도 기업’으로 신뢰를 확보했고, 결국 경쟁사들보다 앞서 REACH에 부합하는 신제품을 출시했다. 이는 단지 규제를 이행했다는 의미가 아니라, 정책을 전략화하고 경쟁 우위로 전환한 전형적인 사례다. 반면 규제 문서의 복잡성에 휩싸여 아무런 판단을 내리지 못한 채 시간만 허비한 기업들은 시장 내 입지를 잃었고, 일부는 생산 중단까지 경험해야 했다. 미국의 존슨앤존슨(J&J)의 오피오이드 남용문제에 대한 전향적이고 진취적 결정은 제대로 된 퍼브릭 어페어즈 전략의 구사로 기업의 위기가 오히려 도약으로 바뀔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마약성 진통제였던 오피오이드는 뛰어난 효과에도 불구하고 중독성 때문에 오랜 기간 사회문제가 되고 있었다. 미국 전역에서 오피오이드 남용문제가 공론화되면서, 제약기업들은 전방위적인 소송과 비난의 대상이 되었다. 미국의 대표적인 제약회사였던 J&J는 다른 제약사들과 달리 방어적 입장을 취하는 대신 제품 유통 구조, 처방 트렌드, 시장 점유율을 기반으로 자사의 책임 범위를 정확히 분석했고, 이를 바탕으로 뉴욕 주정부와 가장 먼저 합의했다. 제품 판매 중단과 2억3000만 달러의 배상금은 결코 가벼운 결정이 아니었지만, 이 선제적 조치는 존슨앤드존슨을 문제 해결의 주체로 자리매김하게 만들었다. 이 합의에 대해 연방의원들과 전문가를 포함한 사회지도층이 J&J와 뉴욕주의 합의에 지지성명을 내는 등 그 결정을 칭찬했다. J&J는 오랜 기간 유지해 온 명성을 지킬 수 있었음은 물론이다. 바스프, J&J는 ‘정보’를 그저 수집하거나 반사적으로 대응한 것이 아니라, 명확히 판단하고 전략적으로 활용해야 함을 잘 보여준다. 퍼블릭 어페어즈의 본질은 정책 대응이 아니라 정보를 맥락적으로 해석하고 이를 활용하는 것에 있다. 정책 변화의 가능성을 정보로 조기에 포착하고, 이해관계자 간의 정합성을 설계하며, 리스크를 전략으로 치환하는 일이야말로 오늘날 기업에게 요구되는 진짜 정보력이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트럼프의 관세정책도 마찬가지다. ‘미국도 힘들텐데 설마’하는 기대와 정확한 정보의 부족으로 많은 기업들이 플레이어(player)보다는 관중의 입장을 취하고 있다. 사실 이번에 발표된 USTR의 ‘2025 나라별 무역장벽보고서’의 내용은 매년 발표된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트럼프 행정부와 만나면서 그 중요도가 높아졌다. 맥락이 변하면 정보의 중요도도 변한다. 때문에 사실만을 파악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사실을 둘러싼 환경의 변화까지 포괄해서 봐야 소음이 정보가 된다. 정보가 넘치는 시대일수록, 진짜 질문은 단순해진다. 지금 이 정보는 신호인가, 소음인가.
    지라시 그리고 ‘정보 혹은 소음’
    by 이보형
    2025.04.02 14:14:50
  • 디지털트윈(Digital Twin)은 현실 세계의 객체, 시스템, 프로세스를 가상 공간에서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고 시뮬레이션하는 기술입니다. 이를 통해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고 최적의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는 중요한 도구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하지만 디지털트윈의 개념은 단순한 '디지털'과 '트윈(쌍둥이)'이라는 직관적인 단어로 구성되어 있지만, 그 의미를 깊이 이해하지 않으면 오해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디지털트윈을 활용하기 위해서는 그 개념을 명확히 정의하고 정확히 이해하는 것이 필수적입니다. 디지털트윈은 단순한 정보 제공 시스템이 아닙니다. 우리가 흔히 접하는 IT 기반의 정보 시스템은 데이터를 가공하고 전달하는 역할에 그치지만, 디지털트윈은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고 실행 가능한 해법을 도출할 수 있는 ‘지혜의 도구’입니다. 지혜는 단순한 정보의 집합이 아니라, 문제를 해결하고 올바른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돕는 능력입니다. 디지털트윈은 다양한 시뮬레이션과 분석을 통해 단순한 데이터 이상을 제공하며, 궁극적으로 지혜를 구하는 도구로 작용합니다. 디지털트윈 기술은 AI 개발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디지털트윈 기반 가상실험을 통해 AI를 만드는 데 필요한 데이터를 무한정 생성할 수 있습니다. 현실 세계를 가상으로 재현하고 다양한 시나리오를 시뮬레이션함으로써, AI 모델 학습에 필요한 방대한 데이터를 얻을 수 있습니다. 이 데이터는 Agent AI와 Physical AI를 실현할 수 있는 핵심 기술입니다. Agent AI와 Physical AI는 인간의 개입 없이 실제 환경과 상호작용하며 자율적으로 일을 수행하는 AI입니다. 디지털트윈은 현실 세계를 정밀하게 모델링하고 시뮬레이션하며, 그 데이터로부터 AI가 자율적으로 결정을 내리고 행동할 수 있게 해줍니다. 디지털트윈이 제공하는 정확한 현실 재현은 AI가 실시간으로 환경과 상호작용하고 자율적으로 동작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합니다. 디지털트윈을 실제로 구현하기 위해서는 PoC(Proof of Concept, 개념 증명)가 필요합니다. PoC는 디지털트윈 기술이 실제로 어떻게 작동하고 AI 모델을 학습시키는 데 어떻게 활용될 수 있는지를 실험적으로 검증하는 과정입니다. 이를 통해 기술적 실현 가능성을 입증하고, 고객의 요구에 맞는 결과를 도출할 수 있습니다. PoC는 디지털트윈의 실제 적용 가능성을 확인하고, 기술 개발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리스크를 최소화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디지털트윈 기반의 PoC는 AI 모델을 위한 데이터를 생성하고, 다양한 시나리오를 통해 Agent AI와 Physical AI의 구현 가능성을 테스트하는 중요한 과정입니다. 고객의 요구사항을 면밀히 분석하고, 실제 데이터를 활용하여 신뢰성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또한, PoC의 목표는 단순히 기술을 시연하는 것이 아니라, 해당 기술이 실제 문제 해결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결국, 디지털트윈은 AI 혁신의 핵심 기술로, 데이터를 무한정 생성하고 이를 통해 Agent AI와 Physical AI를 실현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이를 실현하기 위한 첫 번째 단계인 PoC는 디지털트윈이 실제 환경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검증하고, 기술적 실현 가능성을 입증하는 과정입니다. 디지털트윈을 통해 AI 혁신을 가속화하고, 실질적인 문제 해결을 위한 지혜를 제공하는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습니다.
    디지털트윈은 ‘지혜의 도구’
    by 양영진
    2025.03.31 14:51:41
  • 우리도 그렇지만 일본 또한 개천에서 용 나던 시절이 있었다. 메이지유신을 즈음해 궁벽한 시골에서는 내로라하는 인물들이 쏟아졌다. 경제적 불평등과 양극화가 심화되기 전까지는 시골 출신이라도 신분상승을 꿈 꿀 수 있었다. 이제 ‘개천 용’은 옛말이 됐다. 일본에서 ‘개천 용’이 많이 난 지역은 하나같이 외진 시골이다. 가고시마 가지야초(加治屋町)와 야마구치 하기(萩)가 대표적인데, 모두 도쿄에서 멀리 떨어진 깡촌이다. 이곳에서 메이지유신을 전후해 기라성 같은 인물들이 무더기로 나왔는데, 총리대신은 물론이고 해군대장과 육군대장, 교육‧정치 사상가가 줄을 이었다. 남쪽 끝 가지야초에서는 ‘유신 3걸’ 중 오쿠보 도시미치(총리)와 사이고 다카모리(참모 총장)를 비롯해 총리 2명, 육군대장 3명, 해군 대장 6명이 나왔다. 가지야초 ‘유신의 길’에는 이곳 출신 인물 18명을 소개하는 안내판이 있는데 면면이 빼어나다. 모두 반경 500m에서 나고 자랐다. 하기(萩) 또한 마찬가지다. 메이지유신의 사상적 토대를 마련한 요시다 쇼인을 정점으로 이토 히로부미(총리)와 야마가타 아리토모(육군 대장), 기도 다카요시(유신 3걸), 다카스키 신사쿠(회천 대업 주역), 가쓰라 다로(육군 대신과 총리), 데라우치 마사다케(총리와 조선 총독)가 이곳에서 태어났다. 인구 4만 명에 불과한 곳에서 총리 5명과 대신, 육군대장이 배출됐으니 그야말로 ‘개천 용’의 성지다. 인물 경쟁에서 오이타(大分)현 기쓰키(杵築) 시를 빼놓을 수 없다. 구니사키(國東) 반도에 속한 기쓰키 또한 규슈 북동쪽에 위치한 한적한 바닷가다. 그런데도 일본 근대사를 추동한 숱한 ‘개천 용’이 나왔다. 지난주 구니사키 반도를 일주하면서 그 이유가 궁금했다. 지금은 쇠락했지만 한때 일본 근대사를 쥐락펴락한 인물들이 쏟아졌다는 게 좀처럼 실감나지 않았다. 일본인이 자랑스럽게 여기는 ‘인물’ 대부분은 우리와 악연이라서 이를 염두에 두어야 한일관계가 제대로 보인다. 김종필 총리는 “한·일 역사를 넘나들면 영웅이 역도(逆徒)가 되고 역도가 영웅이 된다.”고 했는데, 이를 두고 한 말이다. 앞서 소개한 이토 히로부미와 야마카타 아리토모, 데라우치 마사다케, 가쓰라 다로가 이 경우에 해당한다. 이들은 모두 조선 침략과 직접 연관돼 있다. 오이타가 배출한 최고 스타는 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 1835~1901)다. 게이오(慶應)대학을 설립하고 일본 근대화의 아버지로 불리는 후쿠자와는 뛰어난 계몽 사상가이자 교육자였다. 그는 당대 일본 지식인과 근대화에 절대적 영향을 미쳤다. 후쿠자와는 700여 년 동안 지속된 막부 정치를 끝내고 서양문물을 수용하자고 역설한 선각자였다. 김옥균을 비롯해 유길준, 박영효, 홍영식, 서재필, 서광범, 윤치호 등 조선의 개화파 사상가들도 그를 스승으로 삼았다. 후쿠자와는 갑신정변에도 개입했다. 요시다 쇼인과 함께 일본 근대화를 언급할 때마다 나란히 거론되는 후쿠자와는 얼마 전까지 일본 최고액 1만 엔 권을 장식하기도 했다. 정한론과 주변 국가 침략을 부추긴 죄과가 있지만 그에 대한 오이타 시민들의 자긍심은 대단하다. 오이타가 배출한 또 다른 인물은 시게미쓰 마모루(重光葵, 1887~1957)다. 그는 태평양 전쟁 당시 외무대신을 지냈고 천황을 대신해 항복문서에 날인했다. 10여 년 전 처음 기쓰키 성에서 시게미쓰와 조우했는데 예상치 못했다. 인근 무사마을을 돈 뒤 오른 기쓰키 성에서 전시물 가운데 시게미쓰 유품이 눈에 뜨였다. 윤봉길 의사 사진과 그가 입었다는 혈흔이 묻은 해진 옷, 그리고 항복문서에 서명하는 사진 등이다. 윤 의사가 왜 이곳에 있을까하는 의문은 사진 설명을 읽고 풀렸다. 그는 1932년 4월 29일 상하이 홍커우 공원에서 열린 기념식장에서 윤 의사가 던진 폭탄에 오른 발을 잃었다. 너덜너덜한 옷은 그때 입었던 것이다. 그는 1945년 8월 15일에는 미주리 전함에서 일본을 대표해 항복문서에 날인했다. 유튜브 영상에서 나레이터는 ‘일본 대표단을 이끄는 시게미츠 외무상은 수년 전 상하이에서 한국인 애국자에 의해 부상을 입었으며, 한쪽 다리는 의족이다.(They are headed by Agent Mamoru Shigemitsu, Foreign Minister of the Japanese surrender Cabinet, who was wounded by a Korean patriot in Shanghai years ago and walks on an artificial leg.)’고 소개한다. 기쓰키 시가 시게미쓰 유품을 전시한 의도는 자랑스러운 출향 인사임을 알리기 위해서였겠지만 한국인 입장에서는 불편한 역사임을 부인하기 어렵다. 기쓰키 성에서 ‘상하이 의거’ 관련 유품이나 항복문서 서명 사진은 자취를 감춘 지 오래다. 기쓰키를 찾는 한국인들 감정을 배려한 것인지, 아니면 다른 뜻인지 알 수 없다. 지난주 방문에서도 시게미쓰가 쓴 휘호와 저서, 가족사진으로 새롭게 꾸민 전시물만 확인했다. 이외 기쓰키 출신으로 조선총독을 지낸 미나미 지로(南次郎, 1874~1955)와 연합함대 사령관을 역임한 해군 대장 도요다 소에무(豊田副武, 1885~ 1957), 호세이(法政)대학 설립자 가네마루 데쓰(金丸鐵)와 이토 오사무(伊藤修), 그리고 무라야마 도미이치(村山富市, 1924~) 총리가 있다. 소도시치고는 대단한 인맥이다. 어쩌면 기쓰키 시민들은 이들을 통해 더는 ‘개천 용’을 기대할 수 없는 상실감을 달래고 있는지도 모른다.
    구니사키 반도에서 만난  ‘개천 용’
    by 임병식
    2025.03.31 10:54:57
  • 우리는 지금 초연결, 초지능, 초실감 기술이 급격히 발전하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기술은 새로운 기회를 제공하는 동시에 사회의 불확실성과 복잡성을 심화시키며, 예측의 위험성을 높이고 있습니다. 변화의 속도가 너무 빨라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할 시간조차 부족한 상황입니다. 변동성(Volatility), 불확실성(Uncertainty), 복잡성(Complexity), 모호성(Ambiguity)이 특징인 VUCA 시대에는 기존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선진국의 모델을 따라가고 최적화하는 것이 가능했지만, 이제는 롤모델조차 없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러한 시대에 어떻게 올바른 결정을 내릴 수 있을까요? ◇ 빠른 추격 전략, 지속 가능할까=한국은 과거 선진국을 빠르게 따라잡으며 경제적 기적을 이루었습니다. 검증된 기술을 빠르게 도입하고 효율적으로 적용하는 것이 가능했던 시대였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기술과 시장이 너무 빠르게 변하고 있어 단순한 모방과 최적화만으로는 지속적인 경쟁력을 유지할 수 없습니다. 과거에는 속도가 경쟁력이었지만, 이제는 방향을 제대로 설정하는 것이 더 중요해졌습니다. 기존 데이터만으로 미래를 예측하는 것이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으며, 새로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창의적 접근이 필수적입니다. 무엇보다, 빠른 변화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가치를 지켜야 합니다. ◇ 변하지 말아야 할 가치, 사랑과 지혜=세상이 어떻게 변하든, 인간에 대한 사랑과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노력은 변해서는 안됩니다. 하지만 단순한 의지만으로 세상을 바꿀 수는 없습니다.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지혜가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오늘날의 사회는 다양한 이해관계가 얽혀 있으며, 갈등이 심화되면서 대립과 분열이 가속화되고 있습니다. 마치 봄이 왔지만 봄 같지 않은,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의 시대입니다. 이러한 시대에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우리는 문제의 본질을 이해하고 해결하는 지혜를 찾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지혜를 구하는 도구로서 디지털트윈이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 지혜를 구하는 도구, 디지털트윈=지혜는 단순한 정보나 데이터가 아닙니다. 데이터가 많다고 해서 올바른 결정을 내릴 수 있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잘못된 정보나 편향된 데이터는 판단을 흐릴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실제 환경에서 실험하기 어려운 문제를 가상에서 검증할 수 있는 도구가 필요합니다. 디지털트윈은 현실 세계를 가상 공간에 재현하고, 다양한 시뮬레이션을 통해 최적의 의사결정을 지원하는 기술입니다. 실제 환경에서 실험하기 어려운 문제를 가상에서 검증하고, 다양한 시나리오를 실험해 최선의 선택을 찾아내며, 불확실성을 줄이고, 더 나은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돕습니다. 즉, 디지털트윈은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불확실한 세상에서 지혜로운 결정을 내리기 위한 필수 도구입니다. ◇ 디지털트윈이 필요한 이유=VUCA 시대에서는 기존 방식으로 답을 찾기가 어렵습니다. 이제는 데이터를 넘어, 실제 문제 해결을 위한 가상실험이 필수적입니다. 디지털트윈을 활용하면, 국방에서는 미래 전장을 시뮬레이션하여 최적의 전략을 도출할 수 있고, 스마트시티에서는 도시의 복잡한 교통 문제를 예측하고 해결할 수 있습니다. 또 제조업에서는 공장 운영을 최적화하고 유지보수를 예측할 수 있고, 에너지 분야에서는 효율적인 운영 방안을 찾아낼 수 있습니다. 이처럼 디지털트윈은 단순한 예측 도구가 아니라, Politics(정치), Military(군사), Economy(경제), Society(사회), Information(정보), Infrastructure(기반시설)이 엮여 있는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강력한 지혜의 도구입니다. ◇탁 트인 세상을 향해=VUCA 시대, 우리는 복잡한 문제 속에서도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야 합니다. 디지털트윈은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불확실한 세상에서 지혜로운 결정을 내리기 위한 필수 도구입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더 나은 결정을 내리고, 문제를 해결하며, 지속 가능한 미래를 만들어갈 수 있습니다. 이 칼럼을 통해 디지털트윈이 어떻게 세상과 사람을 이롭게 하는지, 복잡한 문제를 어떻게 지혜롭게 해결할 수 있는지 함께 고민하고 탐구해 나가겠습니다. 춘래불사춘의 시기, 디지털트윈으로 탁 트인 세상을 함께 만들어 갑시다. ▲탁 트윈(Tag Twin) 컬럼을 연재하는 이유 =이 칼럼을 통해, 디지털트윈이 어떻게 세상을 더 이롭게 할 수 있는지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오늘날 우리는 빠르게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 방향을 잃고, 대립과 분열로 인한 갈등 속에서 문제 해결의 길을 찾기 어려운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기술이 발전할수록, 우리는 더 많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도구를 갖게 되었습니다. 디지털트윈은 단순한 시뮬레이션 도구가 아니라, 더 나은 결정을 내리고,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가기 위한 지혜의 도구입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불확실한 세상 속에서도 문제를 해결하며, 지속 가능한 미래를 만들어갈 수 있습니다. 특히, 탁 트윈(Tag Twin)이라는 칼럼을 연재하는 이유는 단순히 디지털트윈 기술을 소개하는 것이 아닙니다. ‘탁 트윈’의 ‘탁(Tag)’은 KAIST 김탁곤 교수님의 40여 년간 연구 성과를 기반으로 하고 있습니다. '탁' 교수님은 디지털트윈을 활용하여 세상과 사람을 이롭게 하고, 복잡한 문제를 지혜롭게 해결하는 방법론을 정립하고 실현해 오셨습니다. 이 칼럼은 이러한 연구 성과를 토대로 '탁 트인' 세상을 함께 만들어가기 위한 노력의 일환입니다. 우리는 불확실한 세상 속에서도 지혜로운 도구를 활용하여 더 나은 결정을 내리고, 문제를 해결하며, 모두가 함께 성장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가야 합니다.
    탁 트인 세상을 위해
    by 양영진
    2025.03.27 17:19:01
  • 저작권법은 창작자의 권리를 보호하는 동시에 공정한 이용을 보장함으로써, 사회적 이익과 문화·산업 발전의 균형을 도모한다. 그러나 AI 기술의 발전으로 대량의 데이터 활용이 필수적이 되면서, 저작권법과 데이터 윤리 사이의 충돌이 심화하고 있다. 기계학습을 위한 데이터의 확보를 위해 텍스트·데이터 마이닝(TDM)을 입법화하거나 또는 실제 소송에 적용되고 있다. AI 모델 구축 과정에서 방대한 데이터를 이용하면서 저작권법이 어떻게 적용될 것인가에 대한 논쟁이 지속되고 있다. 학습 데이터에 적용될 수 있는 범위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요구된다. 데이터 윤리는 AI 모델의 학습과 결과물의 공정성을 보장하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지만, 윤리적 고려가 법적 규제와 어떻게 조화를 이루어야 하는지는 여전히 불확실하다. TDM 규정을 두고 있는 나라는 공정이용 규정을 두고 있지 않기 때문에 입법화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지난해 독일 지방법원에서는 저작권법에 근거하여 학습데이터의 TDM에 대한 무죄판단을 내리기도 했다. 인공지능 학습을 위한 데이터 수집 과정에서 저작권법과 데이터 윤리는 밀접하게 연결된다. 빅데이터 처리와 인공지능 학습 과정에서는 데이터의 복제, 분석 등이 필수적으로 발생하며, 이를 무분별하게 활용할 경우 저작권법 위반 행위가 될 가능성도 있다. 우리 저작권법은 TDM 규정을 두고 있지 않고, 공정이용 규정만 두고 있다. 특히, TDM의 특성상 불특정하게 수집된 데이터 안에 저작물이나 개인정보가 포함될 수 있어 관련 법과 충돌할 가능성이 높다. 이는 단순한 법적 문제를 넘어 데이터 수집의 윤리성, 프라이버시 보호, 그리고 창작자의 권리 존중과 같은 윤리적 문제와도 연결된다. 데이터 수집에서 접근에 제한된 표지(robots.txt)의 강제성이 없는 경우, 이에 대한 접근여부는 저작권법이 아닌 윤리적인 고려를 통해서 판단하여야 할 사항이기도 하다. 나아가 이러한 행위유형을 공정이용으로 볼 수 있는지 여부이다. 공정이용은 법적인 근거를 갖지만, 일반조항이 갖는 성격상 명확한 기준을 제시하는 것은 아니다. 대략적인 방향을 제시하지만, 법원은 이를 바탕으로 최종적인 결론을 내릴 수 있다는 점에서 해석론의 확장이지, 권리창설로 보기는 어렵다. 이에 대해 법원이 권리를 창설하는 것으로 오해할 수도 있을 것이다. AI 윤리나 데이터 윤리가 저작권법에 지나치게 개입할 필요는 없겠지만, 윤리적 고민이 법의 해석과 향후 인간이 아닌 저작자의 등장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은 높다. 다만, 지나친 윤리의 법화(法化)는 지양되어야 한다. 기술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법의 규제적 속성보다는 윤리적 논의가 합리적이다. 다만, 그 논의 방향은 윤리를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법과 함께 균형 있게 고려해야 한다. 데이터 윤리와 저작권법은 모두 기술혁신과 개인의 권리 보호 사이의 균형을 추구한다. 생성형 AI의 학습을 위한 데이터셋이 인터넷에 공개된 정보를 크롤링해 제작되는 과정에서, 이용 허락 조건에 맞지 않게 이용할 경우 저작권 침해나 데이터 윤리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AI 기술 발전이라는 사회적 가치와 창작자의 권리 보호라는 가치 사이의 윤리적 균형점을 찾아야 한다. AI와 관련하여 저작권법과 데이터 윤리는 전통적인 저작권법의 해석과 적용이라는 법적 가치만이 아닌 기술적으로 유연하게 상황을 바라보아야 한다. AI는 사회적 합의를 포함한 윤리적인 고려까지도 필요로 하는 상황이다. 저작권법과 윤리의 관계는 법적인 가치판단만이 아닌 사회적, 공익적 여부라는 비교형량을 통해 결론에 이르러야 한다. AI 모델의 고도화를 위해서는 지속적인 데이터가 공급되어야 한다. 수집된 데이터의 오남용으로 인한 특정 집단에 대한 편견과 차별, 불평등 심화와 같은 다양한 사회적 이슈가 제기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데이터의 중요성과 이에 따른 윤리적, 법적 책임을 강조하는 것이다. 데이터 윤리가 확립될 경우, AI 시스템에 대한 신뢰를 확보할 수 있다. 이는 데이터의 수집 및 이용 과정에서 관련 법을 준수하는 것이 필수적임을 의미한다. 법적 규정을 준수하는 데이터 활용 방식은 AI 개발 기업과 서비스 제공자가 장기적으로 법적 분쟁을 예방하는 데 기여할 수 있으며, 이용자의 신뢰를 얻는 기반이 된다. 데이터의 윤리적 이용은 데이터의 질적 가치를 높이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으며, 데이터 처리 과정에서 적절한 정제 과정을 거치게 함으로써 윤리적 문제를 최소화할 수 있다. 특히, 데이터 편향성 문제를 해결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 AI 모델이 편향된 데이터를 학습하면 알고리즘이 편향된 결과를 내놓을 가능성이 크며, 이는 사회적 불평등을 심화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데이터 편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는 가치중립적인 키워드와 변수를 설정하여 보다 공정한 데이터 선별과 이용이 가능하도록 하는 접근이 있다. 또한, AI 모델이 학습하는 데이터의 다양성을 확보하여 편향성을 줄이는 방법도 고려해야 한다. 예를 들어, 성별, 연령, 국적 등 다양한 인구통계학적 특성을 반영한 데이터 세트를 구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AI 모델이 설명 가능성(explainability)을 갖추도록 연구하는 것도 데이터 윤리 실현의 중요한 방향이 될 수 있다. 몇 년전부터 ‘머신 언러닝(machine unlearning)’에 대한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다. 언러닝은 AI 모델에 학습된 데이터를 제거하는 것이다. 실상 문제되는 생성물이 반복되지 않도록 관련 데이터에 대한 ‘기억’을 지우는 것이다. 필터링은 원천적인 삭제가 아니기 때문에 우회하는 탈옥(jail break)을 통해 또다시 문제되는 생성물을 만들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데이터 윤리를 보장하기 위해서는 법적 규제와 함께 정책적 대응도 중요하다. AI 개발 기업이 데이터 윤리를 준수하도록 유도하기 위해 자율규제 모델을 도입할 수도 있으며, 정부 차원의 데이터 윤리 가이드라인을 강화하는 방안도 고려할 수 있다. 데이터 편향성이 사회적 차별을 고착화하거나 그러한 가능성이 높은 경우, 해당 알고리즘을 개발·운영하는 기업에 대한 강력한 규제가 필요할 것이다. 반면, 의도적이지 않은 데이터 편향에 대해서는 기술적·정책적 유연성을 유지하면서 개선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 AI 모델의 공정성과 신뢰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데이터를 학습하도록 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특정 집단이나 특정 속성만을 반영한 데이터로 AI를 훈련할 경우, 모델이 갖는 편향성은 더욱 심화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다양한 관점과 경험을 반영하는 데이터 세트를 구축하는 것이 필요하며, 데이터 접근성과 품질을 동시에 고려한 법적·윤리적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 이러한 조치를 통해 AI 기술 발전과 저작권법의 조화를 이루고, 기술혁신과 사회적 가치를 동시에 실현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작권과 데이터 윤리
    by 김윤명
    2025.03.26 09:59:33
  • ‘3無 3有’대학으로 강의실과 교수와 등록금이 없고, 창조적 상상력과 통섭 융합력, 그리고 지역 리더십을 공부하는 대학이 우리나라에 있다. 3월 새 학기 국내의 모든 학교는 입학식 후 수업을 진행 중이다. 그런데 이 대학은 3월 마지막 주 토요일 오후 1시, 경남 함양 오도재 정상에서 특별한 입학식을 진행한다. 1, 2, 3학년 전 학생이 1년 동안 공부할 학습 계획을 발표함으로써 ‘들공(공부에 들다)’을 선포하는 것이다. 농촌 혁신과 그린 르네상스(Green Renaissance)를 선도할 핵심 역량을 키운다는 사명으로 2020년 설립되어 2021년 3월 첫 입학생을 맞은 농촌유토피아 대학원, 그동안 1회 졸업생 배출과 함께 올해 5년째 입학생을 맞이하고 있다. 지속적인 인구 감소와 고령화로 인한 쇠퇴의 길을 걷고 있는 농촌에 우리는 어떤 미래를 기대할 수 있을까. 농촌을 살리기 위해 다양한 정책과 지원이 이루어지고 있지만, 그 효과는 미미한 것이 사실이다. 사업 결과 과시를 위한 재정 지원이나 단발성 일자리 창출만으로는 농촌의 지속 가능성을 보장할 수 없다. 핵심은 ‘사람’이다. 농촌을 유토피아로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농촌을 단순한 거주지가 아닌 삶의 터전이자 창조적 공간으로 인식하는 인재들이 필요하다. 현재의 대학 시스템은 도시 중심적이며, 특정 직업군 취업을 목표로 한 교육이 주를 이룬다. 농촌에서 창조적이고 자립적인 삶을 살고자 하는 이들에게 기존 대학은 적합하지 않다. 따라서 농촌유토피아대학원은 기존 대학의 한계를 뛰어넘어, 창조적 상상력과 지역 리더십을 바탕으로 농촌을 혁신적으로 디자인할 인재를 양성한다. 대학은 농촌의 마을과 현장을 학습 공간으로 활용함으로 전국 각지 모든 현장이 캠퍼스이며 강의실이다. 산림청장을 지낸 건국대 산림조경학과 김재현 교수, 전 농업진흥청장을 지낸 민승규 세종대 석좌교수, 윤순진 서울대 환경대학원장 등 각계 다양한 분야 최고 전문가 60여명의 멘토 교수도 있다. 농촌과 지역을 살리기 위한 종합적인 문제 해결 역량을 갖춘 인재를 키우기 위해 농업, 환경, 생태, 경제, 문화, 예술, 의료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인들이 지식과 경험을 나누어 준다. 서로 배우고 가르치는 교학상장(敎學相長)의 관계로 스스로 공부하는 방법을 배우게 하며 인재는 모셔야 한다는 취지에서 등록금을 받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현장학습비를 지급한다. 이는 ‘미네르바 스쿨’(Minerva School), ‘에콜42’(École 42), ‘몬드라곤 팀 아카데미’(Mondragón Team Academy)등 세계적인 대안대학의 사례를 참고해, 이론과 실천을 결합한 혁신적인 학습 모델을 구축하는 것이다. 농촌을 무대로 창조적 상상력을 실행하고 도전하는 이들에게 새로운 형태의 배움터가 되고자 하는 농촌유토피아대학원은 단순한 교육 기관이 아닌, 농촌 혁신을 위한 플랫폼이 될 것이다. 이곳에서 배출된 인재들은 농촌에서 새로운 경제 모델을 창출하고, 자립적이며 지속 가능한 지역 공동체를 만드는 데 앞장설 것이다. 이번 들공식을 준비하는 학교에 아름다운 소식이 전해졌다. 자연 친화적 삶을 지향해 수도권의 오랜 직장생활을 정리하고, 귀촌을 위해 지역을 공부하던 중 농촌유토피아대학원에 입학한 최지혜씨(43세, 경남 함양 함양읍). 그녀는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실행 과제를 수행하던 우수 학생이었다. 학업을 계속 이을 수 없어 안타까웠던 그녀가 들공식 소식에 맞춰 메모를 전해 온 것이다. “29일(농촌유토피아대학원 들공식 날), 저희집 자유롭게 오픈합니다. USB(Utopia Study Box·농촌유토피아대학원)분들 누구라도 하룻밤 주무실 수 있습니다. 5명이 쓸 수 있는 이불과 침낭 있습니다. 개인 이불 가지고 오시면 더 많은 분들 수용 가능하며, 큰방과 마루 등 최대 10명까지 잘 수 있습니다. USB 다니면서 도움을 많이 받았고, 많이 배웠음에 작은 보답을 하고 싶습니다. 잘 곳 필요하신 분들 하룻밤 마음 편히 주무시고 가시면 됩니다. 주소는 함양읍 대실곰실로 ***입니다” 농촌유토피아를 배우고, 농촌유토피아를 향해 나아가며, 농촌유토피아를 실행하는 이를 통해 유토피아 씨앗이 뿌려지고 있음을 직면하는 순간이다. 농촌유토피아는 대단한 혁신을 하자는 것이 아니다. 농촌유토피아는 먹고 사는 걱정이 없고 몸과 마음이 함께 건강한 농촌을 말한다. 깨끗한 자연환경 속에서 문화적 삶을 누리며, 개인의 자아실현을 향한 노력이 공동체의 발전과 함께 자연스럽게 만나는 곳을 말한다. 새로운 농촌을 맞이하기 위해 우리는 어떤 준비를 하고 있는가. 농촌유토피아대학원은 이 시대가 요구하는 혁신적인 교육 모델로, 이를 통해 모두가 꿈꾸는 ‘사람이 사람답게 잘 사는 농촌’을 실현할 수 있는 작은 연장이 될 것임에 부푼 희망으로 들공식을 맞는다.
     아름다운 ‘들공식’
    by 조금평
    2025.03.25 13:54:14
  • 오늘은 오이타 현 벳부에 있는 ‘리츠메이칸 APU’를 이야기해보자. APU는 개교 25주년에 불과하지만 성공한 지방 대학으로 회자된다. 교토에 있는 리츠메이칸 대학이 국제화를 목표로 2000년 설립한 자매 대학인데 인지도에서 이미 본교를 뛰어넘었다. APU는 개교 수년 만에 일본 내 명문 대학에 올라섰다. 영국 TIME이 발표한 2023년 ‘THE 일본대학 상위 200’를 보자. APU는 개교 이래 매년 20위권 안팎에 랭크됐는데, 2023년 역시 22위를 기록했다. 교육품질 1위, 교육 성취도 3위, 교육성과 20위 등 일부 항목에서는 최상위에 속해 있다. 도쿄나 교토, 오사카, 히로시마 등 대도시권이 아닌 지방에 소재한 대학에서 이런 성과를 냈으니 어떻게 가능했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APU는 한국에서도 벤치마킹 사례로 입줄에 오르내린다. 한국이나 일본이나 지방도시는 소멸 위기에 직면한지 오래고, 지방대학은 ‘벚꽃 피는 순서대로 문을 닫는다’는 위기감에 휩싸여 있다. 이런 상황에서 APU는 대학이 지방을 살리고, 지방대학도 최고 자리에 오를 수 있음을 보여줬다. APU는 특화된 경쟁 요소를 바탕으로 명문 대학 반열에 올라 지역경제에 선순환을 가져왔다. 2023년 기준 일본 대학은 국립 86개를 포함해 총 813개에 이른다. 우리나라 409개에 비해 두 배쯤 많다. 우리와 일본은 면적(3.3배)과 인구(일본 1억 2,360만 명, 한국 5,180만 명)에서 두세 배 가량 차이 나는데, 대학 숫자도 얼추 들어맞는다. 일본에 대학이 813개라는 것도 놀랍지만 APU가 2%에 속한다는 건 더 놀랍다. 벳부(別府)는 ‘특별한 마을’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예로부터 벳부가 온천이 풍부한 특별한 곳이라서 비롯된 지명이다. 벳부는 대략 3,000곳에 이르는 온천수원을 보유하고 있다. 일본 전체 온천에서 10% 이상을 차지하며 온천 용출량에서 최대다. 벳부 IC에 들어서면 곳곳에서 피어오르는 흰 수증기가 연출하는 풍광이 이색적이다. 다양한 온천을 체험할 수 있기에 연간 900만 명에 달하는 관광객이 다녀간다. 한국인 관광객은 압도적인데 전체 외국인 가운데 60% 상당을 차지한다. 벳부에 머문 지난주 관광 비수기임에도 적지 않은 한국인 관광객을 만났다. 이들이 골프장과 온천에서 뿌리고 가는 돈이 얼마나 될까 헤아리다 리츠메이칸 APU대학으로 생각이 미쳤다. APU는 도심에서 10여km 떨어진 산속에 있다. 대부분 대학이 도심에 위치한 것과 달리 APU는 위치부터 역발상이다. APU는 산 정상에 있어 학습 환경은 쾌적하다. APU캠퍼스에서 바라보는 벳부 만은 그림처럼 아름답다. 학교 주변에 유흥 시설이 전무하고 도심과 격리돼, 할 수 있는 건 공부밖에 없다. 의도했는지 모르겠지만 유학 보낸 부모 입장에서는 다행이다. 학생들도 자연스럽게 적응하고 있다. 1학년은 기숙사 생활을 하며 2학년부터는 시내에 집을 얻어 통학한다. 40~50분가량 걸리는 통학은 불편하지만 지역경제 활성화와 맞물려 있다. 대학은 스쿨버스를 운행하지 않는 대신 벳부 시는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연간 탑승권을 할인 판매(100만원)한다. 운수회사 입장에서는 고정 승객을 확보한 셈이다. 재학생들이 학비와 생활비로 지출하는 돈은 벳부 지역경제에 효자다. 정도 차이는 있겠지만 학생 1인당 연간 평균 4,000만 원을 쓴다. 전체 학생 수를 고려하면 매년 2,200억 원 이상 돈이 벳부에 뿌려진다. 이 학교는 외국인 학생 비율이 높은 것으로도 유명하다. 전체 학부생 5,516명 가운데 일본인 학생 2,981명, 외국인 학생 2,535명으로 대략 1대 1 규모다. 외국인 유학생의 출신 국가는 90개국에 이른다. 외국인 유학생들은 단순 노동력을 제공하며 또 다른 기여를 하고 있다. 영어가 유창하기에 편의점이나 온천장 등 외국인을 응대해야 하는 곳에서 APU 학생들은 인기다. 벳부에 머무는 동안 아르바이트하는 APU 학생을 여럿 만났다. 거리를 걷는 청년 대부분도 APU 학생으로, 도시에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 APU와 벳부 시는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선순환 상생 모델을 만들었다. APU는 지역이 처한 위기를 타개하려는 벳부 시와 국제화 역량을 확대하려는 리츠메이칸 대학과 이해가 맞아 떨어졌기에 가능했다. 벳부 시는 유치 단계에서 학교 부지와 운영비를 제공하고 행정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APU는 2개 국어(일어와 영어)로 강의를 진행하기에 졸업생들은 취업시장에서 빠르게 팔린다. 100%대 취업률은 APU가 단기간 명문에 오른 비결이다. 학생들은 다국적 문화를 경험함으로써 글로벌 마인드를 익힌다. 좁은 취업문을 뚫어야 하는 우리 학생들을 생각하면 APU가 지나온 길은 부럽다. 유야(湯屋) 에비스 온천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말레이시아 출신 APU 유학생 아흐마드는 “이달 졸업을 앞두고 있으며 도쿄에 소재한 대기업에 취업했다. 지난 4년 동안 APU에서 시간은 행복했다”고 자랑했다. 대학 생활을 행복했다고 추억할 수 있는 리츠메이칸 APU는 ‘특별한 도시’에서 만난 ‘별난’ 대학이다.
    특별한 도시 ‘벳부’에서 만난 ‘리츠메이칸 APU’
    by 임병식
    2025.03.24 16:17:32
  • 박훈 교수가 쓴 ‘위험한 일본책’을 읽다 슬며시 웃음이 나왔다. 일본인의 친절과 관련해 쓴 대목인데 여러 면에서 공감 갔다. 나 또한 일본을 다니면서 일본인들이 이전 같지 않다고 느끼던 차였다. 박 교수는 ‘불친절해진 일본인’이란 글에서 더 이상 일본인은 친절하지 않다며 경험을 소개했다. 일본 유학 시절 일본인의 친절에 감동했다는 박 교수는 시간이 지날수록 의심이 생겼다고 한다. 손님을 대하는 종업원들의 음성 톤과 태도가 너무나 똑같았기 때문이다. 그는 감정이 거세된 친절을 ‘사이보그 친절’로 명명하고, 솔직하지 못한 일본의 국민성을 아쉬워했다. 그랬던 일본인들이 반갑게도(?) 많이 불친절해졌다며 반겼다. 박 교수는 이자카야에서 사케 잔을 가득 채워 달라고 했다가 종업원으로부터 레이저 눈빛을 받았다고 했다. 일본에서 손님을 쏘아보는 눈빛은 처음이었다는 그는 불친절을 긍정적으로 해석했다. 기계적 친절에서 벗어난, 일본 청년세대의 변화는 자연스러운 결과다. 선의를 담은 박 교수의 해석에 공감한다. 하지만 눈살을 찌푸릴 만큼 극단적인 불친절을 겪었던 나로서는 마냥 공감하기 어렵다. 근래 일본을 다니면서 ‘이건 아닌데’라고 느꼈던 게 한두 번 아니었다. 우연도 거듭되면 필연이 되고, 실수도 반복되면 악의가 되듯 연이은 불친절과, 무례함은 ‘일본의 친절’을 다시 돌아보게 했다. 지난해 가을, 도쿄 인근 하코네(箱根)에서 겪은 일은 지금 생각해도 불쾌하다. 유명 온천 관광지인 하코네는 도쿄에서 가까워 연중 관광객으로 북적인다. 하코네 여행은 고라(强羅) 역을 중심으로 이뤄지는데, 모든 버스와 산악열차가 출발하고 도착하는 곳이 고라 역이다. 나는 종점인 고라 역에서 내려야하기에 벨을 누르지 않았다. 버스가 정차하면 자연스럽게 내릴 생각이었다. 종점에 도착해 내리겠다고 하자 버스 기사는 짜증 섞인 얼굴로 “바가야로(멍청한 놈)”라고 중얼거렸다. 순간 나는 “뭐야? 바가야로?”라고 반문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당황한 얼굴로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고 얼버무리며 수습했다. 매일 같은 코스를 운행하는 반복되는 일상에 지친 나머지 무심코 내뱉은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용납하기 어려웠다. 도쿄 긴자에서 공항버스를 탈 때도 비슷한 일을 겪었다. 버스 타는 줄이 맞느냐는 물음에 중년 여성은 “그렇다”며 차갑게 응대했다. 버스가 출발할 때쯤에서야 그의 불손한 언사가 어디에서 비롯됐는지 가늠할 수 있었다. 그는 출발 시간에 임박해 남편과 딸이 오지 않아 초조했던 것이다. 덮어놓고 친절을 기대한 건 아니었지만 불쾌했다. 지난 1월 벳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후쿠오카 공항행 버스 짐칸에 짐을 싣고 탑승하는데 중년 여성은 내가 새치기를 한다며 버스기사에게 격하게 항의했다. 예약석이기에 자신에게 불이익이 없을 뿐더러, 나 또한 새치기하려는 게 아니었다. 그럼에도 사소한 것조차 민감하게 대응하는 그를 보면서 많이 변했구나 하는 생각에 씁쓸했다. 박훈 교수는 일본 젊은 세대의 불친절을 긍정적인 변화로 받아들였지만 내 경우는 다르다. 모두 중년인데다, 불친절과 무례는 정도를 한참 벗어났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도 일본의 지방 소도시에서는 감동어린 친절을 수시로 경험한다. 자칫 호들갑스럽다고까지 여겨지지만 ‘친절한 일본’은 긍정적인 자산이다. 이따금 주변에서 일본인의 친절을 ‘본심(혼네)’이 아닌 ‘겉치레(다테마에)’로 폄하하는 이들을 만난다. 그럴 때마다 나는 “그러는 당신은 흉내라도 내봤느냐”며 반박한다. 그랬던 일본인들이 변했으니 난감하다. 직접 겪은 사례는 퍽이나 당혹스럽다. 도쿄 등 대도시와 유명 관광지에서 유독 흔하다. ‘사는 게 힘들다보니 각박해졌다.’고 이해하면서도 불쾌한 건 어쩔 수 없다. 무한경쟁을 기본으로 하는 자본주의 속성에서 비롯된 변화가 아닌가싶다. 그들에게 외국인은 더 이상 손님이 아니라 평온한 삶을 깨뜨리는 ‘침입자’일 뿐이다. 나아가 돈 벌이 상대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니 친절에 앞서 짜증부터 나는 것이다. 여기에 동양인을 우습게 보는 국민성도 한 몫했으리라 짐작한다. 우리도 그렇지만 일본 또한 백인 앞에서는 다소곳하지만 동양인은 쉽게 대하는 경향이 있다. 더구나 한때 식민지였고, 이제는 많은 분야에서 경쟁상대로 떠오른 한국을 얕잡고 경계하는 일본인도 적지 않다. 일본이 ‘잃어버린 30년’을 지나며 헤매일 때 ‘메이드인 코리아’는 가전제품부터 반도체까지 ‘메이드인 제팬’을 무섭게 대체했다. 그럼에도 일본인의 친절은 여전히 감동적이다. 지난해 가을, 조선 독립운동가 무료 변론에 일생을 바친 후세 다쓰지 변호사와 간토 대지진 와중에 조선인 300여 명을 구한 오카와 쓰네키치 서장을 취재하러 가는 길에 만난 일본인들은 감동적이었다. 그들은 세차를 멈추고, 정원수 손질을 중단한 채 자신들 차로 나를 안내했다. 과도한 친절과 무례한 불친절이 공존하는 일본 사회를 한마디로 규정하기란 쉽지 않다. 친절과 불친절 여부 또한 개인 성향에 따라 다를 수 있기에 선입견 역시 경계할 일이다. 다만 나는 가식적일망정 일본인의 친절이 계속되길 소망한다. 습관도 오래되면 태도가 된다. 일본인의 겉치레 친절도 시간과 함께 감동어린 친절로 바뀌었다고 믿는다.
    예전 같지 않은 ‘불친절한 일본인’
    by 임병식
    2025.03.13 10:07:02
  • 16세기 조선, 일본은 조선을 침략하기 전에 다양한 방식으로 조선의 지도를 확보했다. 왜관에 거주하는 상인, 사신, 밀정 등을 활용해 정보를 수집했고, 이는 조선에 대한 전략적 우위를 확보하는 데 기여했다. 반면, 조선은 명과의 협공을 위해 지도와 해도를 적극 활용했다. 역사는 이를 통해 지도가 단순한 지형 정보가 아니라 국가의 전략적 자산임을 보여준다. 21세기, 지도는 국가 안보뿐만 아니라 경제와 기술 경쟁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특히, 디지털 경제에서 지도데이터는 단순한 공간정보가 아니라 자율주행, 스마트시티, 인공지능(AI) 기반 공간 분석 등의 핵심 인프라가 된다. 그렇기에 구글의 정부에 대한 1대 5000 정밀지도 반출 요청은 단순한 서비스 개선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의 디지털 주권(data sovereignty)과 직결된 사안이다. 디지털 경제에서는 데이터가 곧 시장의 핵심 요소다. 플랫폼 기업들은 소비자의 심리를 파악하고, 문화적 흐름을 분석하며, 이를 바탕으로 서비스를 설계한다. 지도데이터는 단순한 지형 정보가 아니라, 인간의 이동 패턴, 상업적 활동, 도시 구조 등 광범위한 데이터를 포함한다. 현대 사회에서 지도는 단순한 지형의 축소판이 아니라, 국가와 개인의 삶을 담고 있는 디지털 기반 인프라이다. 조선 말, 김정호의 대동여지도는 단순한 지도가 아니라, 각 지방의 생활상을 담고 있는 정보지 역할을 했다. 현재 네이버 지도 역시 단순한 길찾기 도구가 아니라, 지역 정보와 생활 패턴을 반영하는 또 다른 디지털 플랫폼이다. 우리나라의 지도는 한국인이 가장 잘 만들 수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지리적 정보뿐만 아니라, 문화적 맥락까지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2016년, 구글은 우리 정부에 1대 25000 축척이 아닌, 오차범위 3m 이내의 1대 5000 축척 지도를 요청했다. 더욱 정밀한 위치 기반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함이었다. 정부는 국가 안보를 이유로 반출을 허용하지 않았다. 군사시설 보호뿐만 아니라, 세금으로 제작된 공공데이터를 해외 기업이 무상으로 이용하는 것이 타당한가에 대한 논의도 있었다. 절충안으로 군사·보안시설을 보안 처리한 후 반출을 승인하는 방안이 제시되었지만, 구글은 이를 거부했다. 지도데이터의 수정은 기업 방침에 맞지 않으며, 글로벌 클라우드 운영 방식상 국내에 별도 서버를 두지 않는다는 점을 이유로 들었다. 이후에도 구글을 포함한 다른 플랫폼사업자들도 지도 반출 요청을 지속해 왔으며, 2025년 다시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구글에 지도 반출을 허용할 경우, 국내 기업과 산업 전반에 미치는 영향도 고려해야 한다. 네이버, 카카오 등 국내 지도 서비스 제공업체들은 자체적인 데이터 구축과 유지보수에 많은 비용을 투자하고 있다. 구글이 우리나라의 정밀지도를 확보하면, 글로벌 플랫폼을 기반으로 더욱 정교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 되고, 이는 국내 기업들이 시장에서 경쟁력을 잃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또한, 정밀지도는 자율주행차, 스마트시티, 드론 산업 등에서 필수적인 데이터이다. 통신사를 비롯하여, 현대차 등 국내 제조업체들은 독자적인 지도데이터를 구축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구글이 지도데이터를 확보할 경우 국내 기업들의 연구개발(R&D) 의존도가 커질 가능성이 크다. 이는 장기적으로 국내 산업 생태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정부가 정밀지도의 반출을 허용하면, 정부는 자국 내 주요 지리정보를 효과적으로 통제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 공공 데이터를 활용한 서비스는 국가가 일정 부분 통제할 수 있어야 하지만, 글로벌 기업에 대한 정부의 정책 조정력이 약화될 수 있다. 무엇보다, 구글의 정밀지도 요구는 단순한 지도 서비스 개선을 위한 것이 아니다. 지도데이터를 활용해 자율주행, AI 기반 공간정보 분석, 스마트시티 등의 다양한 서비스로 확장하려는 목적이 크다. 이는 결국 메타버스 및 가상현실 사업과도 연결될 것이다. 이러한 사업적 필요에 따라 지도 반출을 지속적으로 요구하는 것이다. 만약, 정부가 이를 허용한다면 다른 글로벌 기업들도 동일한 요구를 할 가능성이 크다. 이는 국내 지도 인프라를 기반으로 운영되는 다양한 기업들의 생존까지 위협할 수 있다. 단순히 플랫폼 사업자뿐만 아니라, 지도를 사용해야 하는 현대자동차와 같은 국내 제조업체에 미치는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정밀지도 데이터는 단순한 정보가 아니라, 국가의 디지털 주권과 산업 경쟁력, 안보가 걸린 중요한 자산이다. 주요 국가들이 자국의 지도데이터를 전략적으로 보호하고 있는 만큼, 정부도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구글의 지도 반출 요구는 산업적·경제적·안보적 측면에서 종합적으로 검토되어야 하며, 장기적인 국가 경쟁력을 고려한 대응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디지털 시대에 데이터 통제권은 매우 중요한 이슈이며, 정부가 지도 데이터를 보호하는 것은 당연한 책무이기 때문이다.
    구글의 지도반출 요청과 데이터 주권
    by 김윤명
    2025.03.10 16:16:27
  • 잘 차려진 음식도 그릇이 부실하면 맛과 멋을 살릴 수 없다. 기업이나 정부가 공들여 만든 정책·시스템·매뉴얼은 훌륭한 요리 레시피나 다름없지만, 결국 이를 담아내고 완성하는 것은 사람이다. 정책과 시스템은 내용이고, 사람은 그 내용을 담아내는 그릇이다. 그릇이 기울어져 있거나 금이 가 있으면 아무리 좋은 음식도 흘러내리기 마련이다. 조직이 높은 비용을 들여 완벽에 가까운 매뉴얼을 만들어도, 이를 운영하는 사람이 제대로 준비되어 있지 않으면 일이 제대로 되기 힘들고, 심지어 위기 상황까지 초래할 수 있다. 2018년과 2019년에 발생한 보잉 737 MAX 추락 사고는 시스템과 매뉴얼이 아무리 완벽해 보여도 이를 운영하는 사람이 제대로 준비되지 않으면 어떤 결과가 벌어지는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보잉은 기체의 기수를 자동으로 낮추도록 설계한 조정특성보강시스템(MCAS)을 도입해, 새로운 엔진 설계에 따른 비행 특성을 보완하려 했으나, 내부 보고 체계가 원활히 작동하지 않았고, 비용 절감에 매달린 나머지 조종사 교육 역시 최소화되었다. 결국 MCAS의 작동 방식과 문제점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은 상태에서 두 차례 추락 사고가 일어나 수백 명이 희생되고 말았다. 사고 원인 조사 보고서와 이후 드러난 사실들을 종합해 보면, 만약 보잉 내부에서 위험 신호가 제대로 공유되고 조종사들이 새로운 시스템에 대해 충분한 정보를 받았더라면, 그토록 참혹한 결과는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점이 분명해진다. 정책에서도 마찬가지다. 2003년 440만명 수준의 비정규직이 2007년 570만명까지 늘어나자 정치권은 불안정한 근로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2009년 2년 이상 초과근무시 정규직으로 전환을 강제하는 비정규직 입법에 나섰다. 당시에도 논란이 많았지만 국회는 결국 이를 통과시켰다. 그러나 2024년 비정규직 근로자수는 845만명을 넘어서면서 실질적인 효과는 거의 나타나지 않고 있다. 당시의 논란을 되짚어 보면, 비정규직 문제의 핵심은 정규직과 비정규직 차별에 있다는 의견이 많았고, 단순히 기간 기준으로만 입법하는 것은 한계가 크다는 점을 여러 전문가들이 지적했었다. 그럼에도 당시 입법을 추진하던 그룹이 표결을 강행하면서 결과적으로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격차는 더욱 심화되었고 비정규직이 정규직으로 전환될 수 있는 길도 한층 좁아졌다. 이처럼 제도를 만드는 과정에서도 목표와 수단을 정확히 일치시키는 사람들의 지혜, 제도를 본래 취지에 맞게 운용하려는 사람들의 합의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제도 자체가 오히려 독소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반면 준비된 사람들이 제도와 시스템을 잘 활용하면 어떤 결과를 보여줄 지 극명하게 대비되는 경우도 있다. 2020년 전 세계를 휩쓴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각국 보건 당국은 감염병 대응 매뉴얼을 이미 보유하고 있었다. 하지만 실제로 이를 제대로 실행한 곳은 그리 많지 않았다. 과학적 권고보다 정치적 이해관계가 앞서고, 현장에 있는 의료진이나 공무원들이 충분히 훈련받지 못한 상황에서 시스템이 아무리 정교해도 소용이 없었다. 반면 한국·일본·대만 등은 달랐다. 전염병 대응 시스템이라는 내용물을 잘 담아낼 만한 그릇이 이미 준비되어 있었다. 이들은 사스, 신종플루, 메르스 사태 등 동아시아 지역에서 잇따라 발생한 감염병들을 겪으며, 일련의 방역 지침과 시민들의 행동 요령을 지속적으로 실험하고 보완해 왔다. 매뉴얼과 숙련된 현장인원은 전세계 치명율이 1%일 때 10분의 1 수준으로 사망률을 억제하여 국민들의 생명을 지켜냈다. 매뉴얼과 시스템이라는 내용물에, 사람이라는 그릇이 견고하게 맞물릴 때만이 훌륭한 결과를 담보할 수 있는 것이다. 결국 기업과 정부가 정책을 효과적으로 운영하고 위기를 극복하는 힘은 사람에게서 나온다. 제도·시스템·매뉴얼이 제대로 작동하도록 하려면 문화가 바뀌어야 한다. 위험 신호를 누구든 눈치 보지 않고 공유하고 논의할 수 있어야 하고, 담당자들이 반복적인 시뮬레이션과 교육으로 실제 상황을 예측하고 이슈가 발생했을 때 즉시 대응할 수 있어야 한다. 아무리 좋은 의도의 제도나 훌륭한 시스템이 마련되어도 올바르게 활용되지 않으면 무용지물이 되고, 반대로 아무리 유능한 인재가 있어도 체계적인 매뉴얼 없이 즉흥적으로만 대처한다면 지속가능한 성과는 요원해 진다.
    사람인가 시스템인가
    by 이보형
    2025.03.08 09:00:00
  • 최근 경제 전문가들은 일본 경제가 잃어버린 30년을 넘어 다시 살아날 것인가에 관심이 높다. 1980년대 최고의 전성기를 달린 일본 경제는 1990년대 초반 급격히 가라앉기 시작해 이후 30년 동안 회복하지 못한 채 초장기의 경제침체를 겪고 있다. 최근 일본 주식시장이 회복되고 일부 기업들의 혁신경쟁력이 살아나면서 경제부활에 대한 기대가 커지고 있지만 가능성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과거 일본은 높은 기술력을 바탕으로 철강, 전자제품, 자동차와 같은 주요 산업에서 세계 시장을 주도할 만큼 강력한 혁신경쟁력을 나타냈다. 그러나 1990년대 초부터 일본경제는 급격히 침체되기 시작한다. 그 계기는 미국이 일본과의 무역 불균형을 개선하기 위해 엔화의 평가절상을 요구한 플라자 합의(1985년)라는 것이 대체적인 의견이다. 급격한 엔고 상황이 일본 기업의 수출경쟁력 하락에 영향을 미치자 경기 부양을 위해 정부는 양적 완화정책을 펼쳤고 넘치는 돈이 몰린 부동산과 주식의 자산버블이 꺼지면서 일본경제가 침체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당시 일본과 함께 플라자 합의의 대상이었던 독일 경제가 2000년대 초반에 회복되었던 것과 달리 일본의 경제침체는 유독 길게 지속되고 있다. 일본 경제가 오랜 시간 침체된 원인으로는 노동생산성 부진, 관치금융의 후진성, 기업의 혁신부족과 같은 경제구조적 문제에서부터 고령화와 저출산 등 사회구조적인 문제들까지 다양하게 제시되고 있다. 그 중에서 혁신이 성장의 원천인 점을 고려할 때 일본혁신시스템의 경쟁력 하락이 중요한 원인일 수 있다. 1980년대 영국의 혁신경제학자 프리만(Christopher Freeman)은 서유럽을 능가하는 일본 경제의 성공 원인으로 일본의 국가혁신시스템 경쟁력에 주목했다. 특히 일본 통상산업성(MITI)이 강력한 산업정책을 통해 전략산업을 발굴하고 해당 기업들의 기술개발을 지원하는 정부와 기업의 긴밀한 협력관계를 강조한다. 이러한 일본의 국가적 협력체계는 국가혁신시스템이라는 새로운 개념 등장의 토대가 될 만큼 긍정적 평가를 받았다. 그런데 혁신환경이 변화하면서 과거 일본혁신시스템이 가진 특징과 장점들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는 단점으로 나타난다. OECD(2006)의 일본혁신시스템에 대한 진단 보고서에 따르면, 1990년대 초까지 일본기업의 기술혁신은 다른 나라의 제품과 공정을 모방하는 공정혁신과 점진적 제품혁신 중심으로 큰 성과를 이루었으며 이런 혁신은 기업 내부에 한정된 폐쇄적 혁신활동으로 이루어졌다. 그러나 2000년대 이후 세계화에 따른 개방형 네트워크 지식 증가에 폐쇄적인 일본 기업들이 대응하지 못했다. 일본은 혁신시스템의 복잡성이 커지면서 정부의 정책개입도 효과적이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2000년대 초반 일본의 혁신시스템은 연구개발 투자가 높지만 성과 창출이 낮았다. 여기에는 산학연 협력의 경직성과 시장의 높은 규제, 서비스 부문의 낮은 생산성 등이 연계된다. 정부정책은 과학과 기술에 집중되고 교육, 제품과 노동시장, 경쟁정책과 연결이 약해 혁신을 강화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일본의 혁신시스템을 지배해 온 사회문화적 관성은 기본 다지기에 충실하지만 변화 대응이 느리고 위험 회피적이라는 특징이다. 여기에 경직적이고 관료화된 조직문화가 기업까지 퍼져있다. 이러한 속성은 소재부품처럼 오랜 시간과 장인정신이 필요한 분야 발전에는 유리하나 파괴적이고 빠른 혁신속도를 가진 기술 분야에는 불리하게 작용한다. 일본이 IT기술 수용에 취한 소극적인 태도와 디지털 전환 지체는 기업경쟁력 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의 혁신 기반을 약화시킨 것으로 보인다. 일본 정부는 20여년에 걸쳐 과학기술 중심에서 혁신까지 확대하는 정책전환을 일관되게 추진해 왔다. 그러나 부분적이고 점진적인 개편 수준에 머물러 실질적인 혁신시스템 변화를 창출하지 못하였다. 국가혁신시스템을 규정하는 구조적 관성에서 벗어나지 못해 과감한 정책혁신과 새로운 환경에 적합한 선도형 혁신으로 시스템 전환을 하지 못한 것이다. 일본 정부의 전략적 혁신 역량과 리더십이 부족했던 것으로 여겨진다. 최근 일본 정부는 혁신정책에 상당한 변화를 보이고 있다. 뒤늦게 디지털사회 대전환을 추진하고 경제안보전략 차원에서 반도체 산업 부활에 적극 나서고 있다. 정부가 혁신리더십을 발휘해 새로운 민관 협력관계를 도모하는 모습이다. 아직 그 성과가 명확하지는 않지만 혁신성과 창출의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우리나라 경제는 이미 저성장의 길에 들어섰다. 우려스럽게도 고령화, 인구감소 등 사회문제뿐만 아니라 혁신 규제, 투자 대비 낮은 혁신성과 등 혁신시스템의 문제들까지 일본과 유사하다. 구조화된 침체에서 벗어나려면 기존의 관성을 깨는 실질적이고 과감한 혁신이 필요하다. 기존 혁신시스템의 한계를 넘는 획기적인 제도혁신과 시스템 전환 창출에 우리의 미래가 달려있음을 유념해야 한다.
    일본의 뒤늦은 혁신, 과연 성공할 것인가
    by 이민형
    2025.03.05 13:48:10
  • 프레임의 시대다. 소셜 미디어 알고리즘과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뉴스가 소비되는 환경은 프레임의 중요성을 더 강조하게 된다. 정부나 정치권이 이슈를 주도하려면 한 방에 꽂히는 메시지가 필수 요소처럼 여겨진다. 프레임은 복잡한 현안을 쉽게 전달해 대중적 인지와 지지를 얻는 데 도움이 된다. 하지만 정책 과정에서는 생각보다 많은 문제가 발생한다.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라는 책으로 유명한 프레임 전문가 조지 레이코프(George Lakoff)는 프레임을 ‘사고 체계를 형성하는 정신적 구조물’로 정의하면서 특정 이슈가 강력한 프레임 속에 자리 잡으면, 이를 부정하려 할수록 그 프레임이 더욱 강화되는 역설적 현상이 나타난다고 말한다. 결국 프레임에 갇힌 대중이나 기업은 대안적 관점이나 다양한 가능성을 배제하고 사안을 바라볼 위험이 크다는 것이다. 이는 곧 실질적인 ‘정책 합의’보다 ‘찬반 양극화’를 부추기는 방향으로 흘러가기 쉽다. 단편적인 프레임이 야기하는 부작용은 다양하다. 첫째, 본질 왜곡이다. 프레임을 통해 이슈를 단순화하면 구조적 원인이나 다양한 이해관계가 생략되기 쉽다. 예컨대 코로나19 초기, 방역 실패의 책임을 특정 집단이나 개인에게 돌리는 프레임이 확산되면서, 방역체계 자체의 한계나 제도적 미비점을 보완하는 논의가 뒷전으로 밀려났다. 대중의 감정적 반응만 남았을 때, 정작 필요한 방역 대책은 부실해질 수밖에 없었다. 둘째, 프레임 경쟁이 조장하는 사회적 갈등이다. 기후변화 정책을 두고 ‘탄소 중립은 불가피하다’와 ‘경제 성장을 저해한다’는 식의 극단적 구도가 대표적인 사례다. 하나의 프레임에 반대 측이 정반대 프레임으로 대응할수록, 정책 전반은 정파적 대립으로 흐르고 대중은 극단화된다. 언론과 소셜 미디어가 이 대립을 부추길수록 건설적인 논의는 점차 사라진다. 셋째, 정책 일관성과 신뢰의 훼손도 큰 문제다. 정치권이 단기적 이익을 노려 프레임을 수시로 바꾸면, 대중은 ‘정책의 진정성’을 의심하게 된다. 예를 들어, 초기에는 ‘국민 모두를 위한 필수 안전망’이라던 복지 정책이 재정 문제가 대두되자 ‘과도한 국가 개입’이라는 프레임으로 전환된다면, 신뢰는 손상될 수밖에 없다. 마지막으로, 지나친 정치화로 인한 합의 어려움이 있다. 정책 논의가 본래의 문제 해결 목적에서 벗어나 정당 간 포지션 싸움으로 치닫는 경우, 건설적 토론과 합의 도출은 힘들어진다. 공공 의료 개혁을 ‘사회주의적 의료 시스템’과 ‘시장 자유 침해’라는 이념 논쟁으로만 몰아가면 의료 인프라 개선과 같은 실질적 고민은 뒷전이 되기 쉽다. 이처럼 단편적인 프레임이 초래하는 부작용이 적지 않은 만큼, 이제는 아젠다 세팅을 통해 다층적 논의를 이끌어내야 한다. 하나의 정책 과제를 ‘경제·사회·환경·제도’ 등 여러 층위로 나누어 종합적으로 접근하는 이슈 트리(issue tree) 방식을 활용하면, 극단적 찬반 구도를 벗어나 합리적 해법을 모색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기업 친화'와 '노동자 보호’ 같은 이분법적인 노동정책을 ‘고용 안정성’ ‘노동시장의 유연성’ ‘재정의 지속 가능성’ ‘산업 구조 변화’ 등 세부 이슈를 체계적으로 살펴보는 식이다. 유연한 프레임 설정도 중요하다. ‘사회적 안전망 확충’처럼 단정적인 표현 대신 ‘미래세대를 위한 지속가능한 복지 개혁’이라는 포괄적·개방적 프레임을 제시하면 협상의 여지가 커진다. 여기에 정책 내러티브(Policy Narrative)를 적극 활용해 ‘문제 정의-해결책-기대 효과’의 구조를 갖춘 이야기로 풀어내면 대중이 문제의 맥락과 해결책, 그리고 그 영향까지 연쇄적으로 이해시킬 수 있다. 실행에 있어서 중요한 부분은 다층적 협상 구조를 설계해나가는 것이다. 각 단계별로 합의 가능한 부분을 도출해 나가는 점진적 접근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시민사회, 전문가, 기업, 미디어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참여를 제도적으로 보장하고, 갈등 조정과 중재를 담당할 수 있는 기제가 마련되어야 한다. 결국, 프레임은 한순간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도구일지언정, 정책이 교착 상태에 빠지거나 사회적 갈등이 심화하는 부작용을 유발할 수 있다는 점을 늘 염두에 두어야 한다. 그렇기에 ‘프레임 전쟁’이 아니라 ‘아젠다 세팅을 통한 다층적 논의’가 정책실행을 위해 필수적인 프로세스로 자리잡아야 한다. 메시지와 이야기는 늘 강하다. 하지만, 현실에서 정책이 실현되려면 프레임을 뛰어넘어 사회적 아젠다를 정책화하는 정교한 과정이 필요하다. 그 과정이 없으면 프레임이 주는 장점은 사라지고 단점만이 남아서 지속가능하고 예측가능한 정책을 만드는 걸 방해만 할 것이다. 결국 좋은 정책은 좋은 프레임에서가 아니라, 충분한 토론과 합의를 통해 탄생한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좋은 ‘프레임'이 좋은 정책을 만드는가
    by 이보형
    2025.02.26 13:41:39
  • 겉과 속이 다른 일본인을 이해하는 게 어렵다고 한다. 또 과도한 친절과 모호한 언어습관에 주의해야 한다고 한다. 흔히 회자되는 일본인을 규정하는 국민성이다. 부정적인 뉘앙스로 언급하지만 일본인만의 특성은 아니다. 일본인에게서 유달리 이런 정서가 강하기 때문일 것이다. 상대를 배려한 듯싶지만 애매모호하기까지 한 언어습관과 국민성은 어디에서 비롯됐을까. 우리는 그렇지 않을까. 본심과 겉치레 정도로 쓰이는 ‘혼네(本音)’와 ‘다테마에(建前)’는 일본인의 특징을 설명할 때 쉽게 인용한다. 권력자나 공권력에 순종적인 일본인과 달리 한국인은 저항 기질이 강하다. 경제대국 중국과 일본을 ‘뙤놈’, ‘쪽바리’로 부르는 나라는 한국인이 유일하다. 또 왕조시대 숱한 민란부터 현대사회 대규모 집회까지 한국인은 부당하다고 생각되면 국가권력과도 기꺼이 맞섰다. 숨죽이며 순응하는 일본인과 크게 구분되는 지점이다. 일본 전문가들은 혼네(본심)와 다테마에(겉마음), 그리고 과도한 친절을 이해하는 코드로 ‘사무라이 문화’와 ‘와(和) 문화’에서 찾는다. 일본은 1185년 수립된 가마쿠라 막부부터 1868년 붕괴된 에도 막부까지 무려 700년 동안 사무라이가 지배한 칼의 나라였다. 사무라이 집단은 칼을 상시 휴대하고 걸핏하면 사람을 죽였다. 살벌한 사회에서 목숨을 부지하려면 본심을 감춰야 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하고 싶은 말도하고 장수까지 누리는 사회는 흔치 않다. 직장에서 쫓겨나거나 따돌림 당한다. 하물며 목숨이 오가는 사무라이 시대, 공동체를 깨뜨리는 튀는 언행은 죽음을 의미했다. 공동체에 순응하는 ‘와(和) 문화’ 또한 겉치레에 능한 다테마에로 이어졌다. 촌락 공동체에서 마을의 질서를 어길 경우 가해지는 집단 따돌림을 뜻하는 ‘무라하치부(村八分)’는 가혹했다. 유령인간으로 취급하는 이지메를 피하려면 싫어도 좋은 척, 과장된 친절을 통해 공동체에 자신을 맞추는 수밖에 없었다. 혼네와 다테마에는 이런 문화적 산물이다. 목숨을 부지해야 하는 사무라이 정권, 공동체와 조화를 꾀해야 하는 와 문화는 일본 국민성의 원형질이다. 과도하다 싶은 친절 또한 여기에서 비롯됐다. 칼 든 사무라이 앞에서 살아남는 길은 면종복배와 위장된 친절, 웃음이었다. 본심은 감추고 비위를 맞춰야 생존 확률은 높았다. 일본인들이 입에 달고 다니는 “쓰미마센(미안합니다)”은 정말 미안해서가 아니라 무의식적인 언어습관에 불과하다. 일본인들은 미안해하지 않아도 될 일에도 “쓰미마센”이라고 한다. 40년 전 처음 일본에 갔을 때는 “쓰미마센”을 진심으로 여겨 주변에 ‘일본은 친절한 나라’라고 했다. 언제부터인지 일본에서 듣는 “쓰미마센”은 공허한 울림으로 다가왔다. 이는 혼네와 다테마에가 다른 일본인을 쉽게 믿지 말라는 편견으로 확장됐는데, 일본인조차 “쓰미마센”을 정말로 미안하다는 뜻으로 여기는 이가 있을까 싶다. 혼네와 다테마에를 떠올릴 때마다 잊히지 않는 기억이 있다. 30여 년 전 가나자와(金澤) 시 초청으로 이시카와(石川) 현을 공식 방문했을 때다. 다다미가 깔린 전통 요정에서 만찬이 있었고, 가나자와 시장은 10분정도 늦었다. 그는 만찬장에 도착하기 무섭게 여닫이 문 앞에서 무릎을 꿇고 수차례 허리를 굽혀 “쓰미마센”이라며 사과했다. 그는 6선 시장으로서 머리 희끗한 70대 초반이었다. 누구도 그가 예의를 저버렸다고 생각하지 않았고, 그 정도는 늦을 수 있다고 여겼기에 우리 일행은 다소 당황했다. 당시 ‘일본인들은 예의가 바르다’고 탄복했는데, 훗날 그때 행동은 보여주기 위한 다테마에는 아니었는지 혼동됐다. 정치인으로서 사무라이 관습대로 사과한 것은 아닌지 싶었다. 아마 사무라이 시대였다면 그는 영주가 주관하는 회의에 늦었다는 이유로 죽음을 피하기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좀처럼 속내는 보이지 않는 국민성 때문인지 일본인을 친구로 만드는 것도 쉽지 않다. 중국인은 첫 만남에서도 “따거(형님)”라며 쉽게 마음은 여는 반면 일본인은 좀처럼 곁을 내주지 않는다. 가깝게 지내는 일본인 가운데 주한 일본대사관 소속 외교관들이 있었다. 그들과 나는 매월 돌아가며 식사비용을 부담하며 1년 넘게 만남을 이어갔다. 허물없는 관계라고 여길법했건만 그들과 끝내 호형호제를 못한 채 헤어졌다. 그들은 내 호칭을 “임상”으로 부르는 것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한국을 떠났다. 이따금 SNS를 통해 안부를 주고받지만 끈끈한 인관관계를 중요시하는 한국인으로서는 왠지 허전했다. 대학 시절 연수 때도 느꼈지만 선을 넘지 않는 평행선을 유지는 일본의 국민성을 거듭 확인한 계기였다. 그들이 나를 다테마에로 대했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아쉬움이 남는 건 어쩔 수 없다. 아이보시 고이치(相星孝一) 전 주한 일본대사 또한 기억에 남는 관료다. 그가 대사로 있을 때 정세균 전 총리와 오찬을 주선했다. 아이보시 대사는 리모델링한 일본대사관도 소개할 겸 솜씨 좋은 일본 요리사가 만드는 음식을 대접하고 싶다고 했다. 우리 측은 일본대사관에서 오찬이 불러올 구설을 우려한 나머지 다른 장소를 제안하며 완곡하게 거절했다. 이후 다시 잡자고 했으나 본국으로 귀국하는 바람에 지키지 못한 약속으로 남았다. 한국 근무만 세 차례, 우리말이 유창한 아이보시 대사는 외교가에 이름난 친한파다. 여러 자리에서 한국에 대한 그의 진심을 숱하게 접했기에 나는 한국에 대한 그의 혼네를 의심치 않는다. 오히려 반일정서를 의식해 오찬 장소마저 흔연스럽게 받아들이지 못한 우리가 다테마에는 아니었는지 돌아본다. 한국인의 저항정신과 겉치레 또한 시대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쓰미마센'의 뿌리 '다테마에'
    by 임병식
    2025.02.23 08:07:38
  • 대선 때만 되면 나타났다 사라지는 게 하나 있다. 바로 대선 캠프이다. 대통령의 꿈을 갖고 있는 정치인들은 선거 즈음하여 정책 공약의 개발과 선거전략의 수립을 위해 캠프를 차린다. 캠프라 부르는 이유는 임시로 마련한 조직이기 때문이다. 고산 정복을 위해 등반가가 꾸리는 베이스캠프와 같다. 이런 캠프에 대선 후보가 직접 관여하는 경우는 드물다. 사무실 운영에 소요되는 비용을 조달하고 사람 관리하는 것이 번거로워 후보가 할 일이 아니다. 불나방처럼 자원자가 많이 몰려들어 구성이 잡다한 캠프에 후보가 깊이 개입하면 불필요한 잡음이나 구설에 휘말릴 수도 있다. 어차피 대선 한 철에만 생겼다가 없어지는 소모품인 캠프에 연연할 이유가 없다. 낙선하면 소용이 없고, 당선되면 부담이 되는 조직이다. 그러니 후보로서는 적당히 거리를 두고 측근을 통해 관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통상 한 후보가 여러 캠프를 거느린다. 유력한 후보일수록 캠프가 많이 만들어진다. 주로 국회의원, 장·차관, 교수 출신의 친위계 인사가 좌장 노릇을 하며 하나씩 캠프를 맡아 세력 확대에 기여한다. 대선은 입신양명을 노리는 기회주의자들에게 큰 장이 열리는 ‘대목’이다. 대선 후보와 연분을 쌓아 고속출세할 수 있는 지름길이 대선 캠프에 참여하는 것이다. 대통령으로 당선된 후보의 캠프에 이름을 걸어 놓으면 논공행상에 끼어 한자리 받을 수 있다. 로또보다 당첨 확률이 높다. 당연히 당선 가능성이 큰 후보의 캠프가 늘어나고 문전성시를 이룬다. 유명 브랜드의 인기 아파트 분양 현장에 떴다방이 난립하고 대박을 노리는 투기꾼들이 몰려들 듯이 말이다. 문제는 떴다방과 같은 캠프에서 만들어지는 공약이 날림으로 급조된다는 것이다. 대선 공약은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국가를 어떻게 이끌고 나가겠다는 정책에 관한 약속이다. 당선자의 대선 공약은 차기 정부의 국정과제로 채택돼 우선적으로 추진된다. 부동산, 세금, 노동, 환경, 에너지 등에 관한 공약은 경제정책으로 전환되어 국민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정부 부처와 공공 기관은 대선 공약 과제에 예산과 인력을 집중해 달성도를 높이고자 노력한다. 국민들은 이런 공약과제가 탐색되고 수립되는 과정이 매우 체계적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과거 몇십 년 동안 여러 정부에서 추진한 정책과 해외 사례를 치밀하게 살펴보고 치열한 토론을 거쳐 정교한 공약이 개발될 것이라 여긴다. 하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한 후보를 둘러싼 캠프 간에 연계나 협업이 존재하지 않는다. 아니, 협력보다 경쟁 관계가 두드러진다. 캠프의 인력 구성이나 운영 방침은 좌장에 따라 다르며 좌장들은 후보의 주목을 받아 실세로 떠오르기 위해 경합한다. 대권을 노리는 후보의 주변 캠프들 사이에서도 작은 권력 투쟁이 벌어지는 것이다. 그러니 서로 정보를 공유하지 않고 조율도 하지 않는다. 심지어 캠프 안에서도 경쟁이 치열하다. 공약을 논의할 때 각자 자기가 내세운 정책 과제가 부각되도록 애쓴다. 다른 사람이 새롭고 신선한 정책을 발표하면 마치 논문 심사하듯이 조목조목 비판하며 흠집을 내려 한다. 사실 대선 공약을 개발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작업이다. 이미 알려졌거나 이전 정부에서 이행한 정책은 신선도가 떨어진다. 다른 후보의 공약과 유사하면 차별성이 약하다. 과거와도 다르고 남과도 다르면서 유권자의 관심을 끌 수 있는 공약을 개발하려면 골머리가 아프다. 이미 다 파먹은 금광을 더 깊게 파서 금맥을 찾는 것과 같다. 그래서 캠프마다 정책의 연관성이나 실효성보다 차별성을 더 중요시하며 무엇인가 톡톡 튀는 공약과제를 발굴하는 데 주력한다. 그러다 보니 현실과 동떨어진 공약이 나오기도 한다. 더 재미있는 것은 한 후보가 서로 상충하는 공약을 주장하는 상황이 연출되기도 한다. 요즘 대선 주자 선호도 1위인 원내 제1당의 대표가 ‘기본소득’에서 ‘기업성장’으로 서로 대립되는 정책을 주장해 사람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들고 있다. 원래 전 국민에게 1인당 25만 원을 주는 민생회복지원금을 강조하다 갑자기 첨단기술 분야에서 삼성전자와 같은 대기업 6개를 만들어 경제를 성장시키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주52시간 근무 예외’를 포함한 ‘반도체특별법’도 통과시키지 못하면서 삼성전자급 기업을 육성하겠다는 구호는 코미디라는 취급을 받았다. 지지층의 확장을 위해 새롭고 다양한 메시지를 제시하는 것은 이해된다. 그래도 상충된 공약을 쏟아내 갈팡지팡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이상하다. 아마 기본소득파와 신성장파 등 각기 다른 캠프에서 제안한 공약을 한꺼번에 던지다 보니 충돌이 난 꼴이 아닌가 싶다. 이전 정부에서도 엇나가는 정책들을 동시에 추진해 혼란을 불러일으킨 적이 많다. 박근혜 정부에서는 경제민주화와 창조경제가 혼재되는 양상을 보였다. 문재인 정부는 소득주도성장과 혁신성장 둘 다 추구하려다 어느 것도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 윤석열 정부도 의료, 교육, 노동, 연구개발, 부동산 등의 정책에서 오락가락하다 국민의 지지를 잃고 총선에서 패배해 자멸했다. 결국, 한 정당이 계속 집권하지 못하는 근본적 원인은 어설픈 정책의 실패에 있다. 대통령은 한번 하고 물러나면 그만이다. 정당이야 서로 번갈아 정권을 잡으면 된다. 그러나 그 시행착오의 대가로 경제가 망가져 민생고에 시달리는 국민만 불쌍하다. 한 나라의 명운을 좌지우지하는 대선 공약이 졸속으로 만들어지고 있으니 한숨만 나올 따름이다.
    떴다방 대선 캠프의 '급조 공약'
    by 임채운
    2025.02.22 08:00:00
  • 살기 좋은 정주 공간과 쾌적하고 여유로운 농촌다움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농림축산식품부의 농촌공간정비사업이 몇 년째 진행 중이다. 이달초 2025년도 1차 신규 지원 대상 지구 12곳이 선정돼 새롭게 변모할 농촌 공간 조성지역에 대한 기대가 크다. 악취·소음 발생, 오염물질 배출 등 주민 삶의 질을 저해하는 난개발 시설을 정비·이전해 주민들을 위한 쉼터나 생활시설을 조성하도록 지원하는 것이 사업의 핵심이다. 이러한 변화들로 ‘농촌다움’이 보존되고 경관의 시각적 효과와 환경의 쾌적성, 농업의 다양한 가치 부각과 경제적 부활로 생활 서비스는 높아지고, 삶의 질은 향상될 것이다. 이와는 다르게 전남 영광군 묘량면은 또 다른 현재 농촌 모습을 대변한다. 2007년부터 17년간 지역의 고령 농민들과 공동 영농을 통해 소득 분배를 해 온 사회적 농장 ‘여민동락공동체’가 작년 12월 휴경을 결정했다. 설립 당시 평균 연령 72세의 농민들이 2023년 평균 연령 78.5세로 고령화가 주된 원인이었다. 청년층의 유입이 없는 정주민의 고령화는 ‘마을의 절멸’로 이어진다. 농촌 관련 정책 설계에 대한 주도권이 정부에서 지방자치단체와 현장으로 옮겨지면서 ‘농촌 지역 공동체’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지역의 문제를 논의하며 그에 필요한 일을 실행할 귀농·귀촌에 가치 지향적인 젊은 일꾼의 필요성은 절실하고, 이들의 정착에 필요한 안정적인 주거 공간 확보는 큰 숙제이다. 시골에서 집 구하기는 하늘의 별 따기로 정부의 빈집 개보수 정비사업이 시행되고 있지만, 현장 실정은 녹록치 않다. 농촌 공간 정비사업을 통해 기능을 상실한 채 활용되지 못하고 있는 농촌 지역의 각종 시설 공간들을 다양한 규모의 주거 공간으로 재구조화해 부족한 주거 공간 해소로 거듭나야 할 것이다. 이 일에 마을 공간 계획을 성공시킨 독일의 비트브르크의 사례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비트브르크는 농림산업이 주축인 전형적인 농촌 마을로 50년간 농민 90%가 감소했지만, 주민과 정보 교류를 통한 마을 공간계획의 효과로 12년 동안 약 10% 인구가 늘어나는 대반전을 이루었다. 234개 마을 중 180여 개 마을은 인구 500명 이하이고, 전체 마을의 절반은 주민 200명을 넘지 않는다. 이들은 다시 돌아오게 하는 농촌을 만들고 마을을 재생시키기 위해 주민들과 논의하며 할 수 있는 작은 것부터 하나씩 개선해 나갔다. 문화재로 지정된 주택의 전통을 살리면서 시설 이용이 편리하도록 기능 개선에 초점을 맞춰 정비된 도로 등은 쾌적함으로 찾는 이들을 환경에 매료시켰다. 농촌 마을 공간계획 실행으로 뛰어난 정주환경과, 영유아 보육에서부터 양로원 등 노인 돌봄의 사회적 공동체가 활발한 비트부르크 프룀 지역의 사례가 이번 농촌 공간 정비사업의 신규 지원 대상 지구에 선정된 12곳에 선기능(先機能) 요소로 적용되기 바란다. 또한 농업 현장에 AI 신기술이 도입된 상황 속의 농촌다움의 모습과 미래세대가 생각하는 농촌다움의 모습들이 주민의 공감을 통해 반영된 설계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물성매력(Experienceing the Physical: the Appeal of Materiality)의 물성(物性·Materiality)은 사전적으로 '물질이 가지고 있는 성질'을 뜻한다. AI로 인해 힘들이지 않고 쉽게 결과를 도출할 수 있는 간편한 세상, 디지털이 발전할수록 사람들은 오히려 실제 만질 수 있고, 느낄 수 있는 물성에서 감성적 매력을 느낀다. 농촌 마을 공간 재생에 지역 특산 건축 재료들이 활용되고, 건물과 자연환경이 조화를 이루도록 자연 친화적 설계를 적용하여 전통과 현대 기술의 융합으로 마을의 전통과 문화가 이어지고, 생활의 편리함이 증가하는 주거 환경이 조성돼야 한다. 직접 보고 만질 수 있는 다양한 자연의 재료들을 통해 촉각적, 시각적 경험을 제공함으로 물리적 감각을 자연스럽게 연결하는 공간조성으로 농촌에서 거주의 기회를 찾는 사람들에게 매력의 장소가 되어야 한다. 지역 특성과 창조적 상상력이 융합된 농촌다움의 환경 조성은, 봄이면 우리 대한민국 농촌에 살구꽃 복숭아꽃이 만발한 물성매력의 성지가 될 것이다.
    복숭아꽃 살구꽃 피는 '물성매력' 농촌
    by 조금평
    2025.02.19 16:56:34
  • 지난주 미일 정상회담 직후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일본 총리의 ‘아부 외교’가 화제가 됐다. 뉴욕타임스는 “이시바 총리는 트럼프에게 잘 보이기 위해 ‘저항’ 대신 ‘아부’를 택했다”고 보도했다. 트럼프에 대한 첫인상을 묻는 질문에 이시바 총리는 “TV에서 본 유명인을 직접 만나게 돼 기뻤다”면서 “무섭고 강한 성격을 가진 것으로 생각했는데 매우 진지하고 강력하며 미국과 전 세계에 강한 의지를 갖고 있다”며 한껏 치켜세웠다. 외신은 트럼프 대통령의 입은 귀에 걸렸고, 회담 내내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고 전했다. 뉴욕타임스는 ‘아부’라는 단어를 중립적 의미로 사용했다. 국제무대에서 듣기 좋은 말로 환심을 사는 이유는 국익을 위해서다. 칭찬을 마다할 정치인은 없기에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하는 유효한 외교 수단이다. “일본에 전할 메시지는 무엇이냐”는 취재진 질문에 트럼프 대통령은 두 차례에 걸쳐 “일본을 사랑해요”라고 했다니 아부 외교는 남는 장사였다. 외신과 달리 국내언론은 이시바 총리의 외교적 수사를 다소 부정적 뉘앙스로 전했다. 동일한 사안을 전하면서도 일본 이슈라면 무조건 비판부터 하고보는, 국내 정서를 뛰어넘지 못한 관성에서 비롯된 보도였다. 정도를 넘어선 외교적 수사는 자칫 굴종으로 비춰질 수 있기에 신중해야 하지만 국익을 위한 것이라면 어느 정도 용인할 수밖에 없다. 이시바 총리의 ‘아부’는 치밀한 준비를 바탕으로 한 실리외교라는 점에서 많은 걸 시사한다. 일본 외무성은 아베 전 총리의 부인을 지난해 12월 마러라고에 보내 트럼프와 대화 물꼬를 열었다. 이어 소프트뱅크 손정의 회장을 통해 1,000억 달러(약 145조원) 투자 선물 보따리를 제공함으로써 장사꾼 트럼프를 효율적으로 공략했다. 사소한 것 같지만 황금 투구 선물 또한 면밀하게 계산된 결과물이다. 투구를 제작한 곳은 이시바 총리의 고향 돗토리 현이고, 주문 시기는 지난해 11월이니 트럼프 당선 직후부터 준비해 왔음을 알 수 있다. 정상 외교가 멈춘 한국 상황에서 일본이 대미 관계를 선점한 건 아픈 대목이다. 무엇이라도 해야 하는 우리 입장에서 일본의 실리외교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이시바 총리는 미일 정상회담을 앞두고 한 달 전부터 공부 모임을 갖는 등 치밀하게 준비했다. 외무상을 지낸 하야시 요시마사 관방장관은 물론 외무성·경제산업성 간부들과 함께 ‘트럼프 식 맞춤형’ 문답을 만들고, 또 지난 30년 동안 미국의 대일 무역적자가 감소하고 있음을 표로 정리해 제시했다고 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얼마나 설득됐는지는 몰라도 향후 미일관계를 예상할 수 있다. 자세를 낮추는 일본 외교는 일본인 특유의 치밀함을 반영한다. 명예를 지키기 위해 할복도 마다하지 않는 사무라이 문화를 미덕으로 삼는 일본에서 아부는 계산된 행동이다. 오다 노부나가의 부하로 있다가 권력을 손에 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일화가 상징하는 것도 다르지 않다. 겨울날 히데요시가 노부나가의 신발을 품고 있다가 따뜻한 신발을 준비했다는 이야기는 일본사회에서 아부가 아닌 미담으로 회자된다. 히데요시의 행동은 주군을 위한 충성이며, 훗날 히데요시가 권력을 잡은 이유마저 여기에서 찾는 이들도 적지 않다. 이러니 진영을 떠나 이시바 총리의 언행을 시비할 일본인은 없다. 국익을 위해서라면 자존심마저 내려놓는 일본인의 사고방식은 패전 이후 빛을 발했다. 미군정하에서 시게미쓰 마모루 외무상은 맥아더 극동사령관의 비위를 맞춰 미군 직접통치에서 간접통치로 전환시켰다. 이로써 일본은 경제 부흥에 집중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또 일본은 미국과 코드를 맞춰 정상국가로 이행이라는 실리를 취했다. 요시다 시게루 총리는 1951년 미일안보조약을 체결한 뒤 안전보장은 미국에 맡기고 경제부흥에 집중하는 ‘요시다 노선’을 1980년대 초까지 견지했다. 이런 기조 아래서 이케다 수상 재임 당시 일본 경제는 9~10%대 고도성장을 달성하며 GATT와 IMF, OECD에 가입하며 사실상 선진국 반열에 올랐다. 패전 19년 만인 1964년, 도쿄 올림픽까지 치른 배경에는 스스로를 낮춘 외교가 있었다. 일본이 록펠러센터와 콜롬비아 영화사를 매입하고 대규모 대미 무역흑자를 기록하면서 미국이 일본 때리기에 나서자 일본은 다시 엎드렸다. 일본은 ‘플라자 합의’에 이어 1985년 ‘마에다 리포트’를 토대로 10년 간 430조 엔에 달하는 재정지출과 미국 내수 시장 확대를 뒷받침했다. 또 경제구조를 바꾸고 시장을 개방하라는 미국의 압박을 따랐다. 당시 협상 항목만 200개에 달해 굴욕적이라는 비판이 없지 않았지만 일본은 힘의 역학 관계를 인정하면서 보통국가로 보폭을 넓혔다. 이 결과 일본은 미국에 의존하던 국가안보에서 벗어나 자국이 공격 받거나 동맹국이 요구하면 군대를 파견하고 전쟁에 참여하는 보통국가로서 지위를 인정받기에 이르렀다. 일본 외교는 철저하게 실리에 바탕을 두고 있다. 이시바 총리는 정상회담을 앞두고 일본과 협력이 미국의 이익에도 도움이 된다는 점, 트럼프를 추켜세울 것, 이 두 가지를 중심으로 준비했다. 나아가 정적이었던 아베 전 총리의 외교 방식까지 수용했다. 일본을 따라할 필요는 없지만 아부라고 폄하할 일도 아니다. 자신을 한껏 낮추는 일본 외교는 그런 기회조차 갖지 못한 한국 정치를 돌아보게 한다. 과시용 허세를 내려놓고 국익을 위해 아부를 자처하는 일본 정치를 주목한다. /서경IN
    이시바 총리의 계산된 '아부외교'
    by 임병식
    2025.02.15 11:33:28
  • 최근 유럽경제는 많은 경제전문가들의 우려의 대상이다. 오랜 기간 미국과 양대 축을 형성하는 산업국가로 세계 시장을 선도했던 유럽의 위상이 눈에 띄게 하락하고 있기 때문이다. 새로운 빅테크는 보이지 않고 화학, 제약, 자동차 등 전통적인 유럽의 주력산업 분야조차 경쟁력을 확연히 잃어가는 모습이다. 미국과의 부(富)의 격차는 크게 벌어지고 중국의 빠른 기술향상과 시장 잠식에 글로벌 시장 2인자의 자리가 흔들리고 있다. 작년 말 ECB(유럽중앙은행)는 ‘유럽경쟁력의 미래(2024)’ 보고서를 통해 EU경쟁력 위기의 심각성과 그 원인을 제시했다. 지난 20년간 EU(27개국)의 경제성장은 미국보다 속도가 느렸고 그로 인해 미국과의 GDP(국내총생산) 격차는 2002년 15%에서 2023년 30%로 확대됐다. 2020년 즈음에는 중국에 2위 자리를 내주기도 했다. 이러한 유럽의 GDP 성장 둔화는 생산성 부진에 따른 것이며 이는 미국과의 혁신 격차에서 비롯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미국과 유럽의 혁신 격차의 문제는 최근에 새롭게 제기된 문제는 아니다. 이미 30년 전인 1990년대 중반부터 제기된 사안이다. 당시 유럽의 학자들은 유럽의 기초과학 역량이 미국과 유사함에도 산업경쟁력에서는 왜 차이가 나는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고 그 이유를 과학성과의 상업화 부진에서 찾았다. 이 문제는 유럽 혁신시스템의 구조적인 문제로 진단됐고, 유러피언 패러독스(European Paradox)라고 불렸다. 그러나 과학성과의 상업화 부진 구조는 개선되지 못한 채 오랜 시간 동안 누적되었고 느린 혁신과 과감한 혁신성 부족이 유럽혁신시스템의 고유한 특징이 됐다. 유럽혁신시스템의 혁신지체와 파괴성 부족은 빠르고 과감한 변화의 속성을 지닌 IT기술이 3차 산업혁명의 주역으로 등장하자 구조적 문제를 넘어 치명적인 결함으로 드러났다. 유럽은 IT기술 변화 초기에 모바일폰 중심으로 경쟁력을 확보했으나 애플의 아이폰으로 대변되는 거대한 파괴적 혁신에 밀려 낙오자 신세로 전락했다. 그 결과 2010년 이후 유럽은 미국과의 IT산업 격차가 커지고 부의 격차도 크게 확대됐다. 이제 변변한 IT기업조차 없는 유럽은 구글, 애플, 마이크로소프트와 같은 미국의 빅테크 기업에 거대한 자국시장을 다 내주고는 빅테크 기업활동에 대한 규제로 대응하는 형국이다. 유럽 혁신시스템의 부진은 파괴적인 혁신기술을 대하는 정부정책에서 중요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유럽은 미국과 달리 혁신의 촉진보다는 혁신의 위험에 대한 사전 규제를 강조한다, 미국이 파괴적 기술혁신에 의한 변화와 성장효과를 중시하는 것에 비해 유럽은 기술의 사회제도적 역할 제고를 중시하기 때문이다. 기후변화 대응 탄소배출을 관리하기 위한 탄소국경조정제도, GDPR(General Data Protection Regulation)로 대변되는 개인정보보호법 등은 대표적인 유럽형 규제로 유럽시장에 진출하려는 다른 나라 기업들에게 큰 장애가 되고 있다. 그런데 EU의 복잡하고 강한 규제는 자국 내 혁신기업들에게도 큰 부담을 주고 있다. ECB 자료에 의하면 지난 13년간(2008~2021) 유럽 유니콘(147개)의 약 30%(40개)가 본사를 해외로 이전했으며 대부분 미국으로 이전했음이 이를 뒷받침한다. 그동안 EU는 혁신성장보다 사회문제해결을 위한 연구와 혁신의 역할을 강조하고 관련 연구개발 투자를 크게 확대해 왔다. 그러나 지금 글로벌 혁신시장에서 나타나는 유럽의 혁신 위기 징후들은 그간 EU가 추진해 온 혁신정책의 기조와 그 전략들을 깊이 재점검해야 한다는 경고음을 울리고 있다. 새로운 혁신 성장은 과감하게 혁신의 싹을 허용하고 수용하는 경제사회시스템 속에서만 가능하다. 강한 규제는 기업의 혁신활동에 장애가 되며, 특히 창조적 파괴와 속도 경쟁이 중요한 AI혁신에는 큰 장애가 될 수 있다. EU가 강조해 온 제도혁신을 통한 사회문제해결은 시장의 주체인 기업이 기존기술의 경제성을 뛰어넘는 신기술의 완결성을 확보해야 가능하다. 기후변화 대응 탈탄소화도 마찬가지이다. 유럽의 혁신 격차 문제는 혁신의 기본 속성을 살리는 정책과 제도의 중요성을 다시금 일깨워준다. 올해 초부터 우리나라는 유럽연합(EU)의 ‘호라이즌 유럽(Horizon Europe)’ 프로그램에 준회원국으로 공식 참여한다. 이는 유럽과의 과학기술협력을 확대할 수 있는 전략적 기회의 확보라는 중요한 의미가 있다. 그동안 우리는 EU를 기술적, 정책적으로 벤치마킹해야 할 선도국가로 인식해 왔다. 그러나 협력의 전략적 효과를 창출하려면 유럽의 혁신시스템과 정책에 대한 냉철한 평가가 우선 필요하다. 이제 유럽은 우리에게 벤치마킹과 함께 반면교사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유럽의 혁신 위기가 시사하는 것들
    by 이민형
    2025.02.05 14:58:21
  • 정경유착(政經癒着)이라 하면 어둡고 음침한 냄새를 풍긴다. 사전적 정의로 정경유착은 정치와 경제가 밀착된 현상을 의미한다. 현실에서는 정치인과 기업인의 이해가 얽혀 야합하는 부도덕한 밀착관계를 지칭한다. 정경유착의 장면을 연상하면 밀실에서 권력자와 재력가가 은밀히 만나 돈 봉투를 주고받거나 지하주차장에서 차 트렁크에 돈다발이 든 사과박스를 옮기는 이미지가 떠오른다. 과거 개발독재 시대에 정치인은 기업인에게 경제적 이권을 부여하고 그 반대급부로 정치자금을 제공받았다. 지금은 정치인과 기업인의 은밀한 금전 거래는 불법이다. 정치인이 직접 기업인에게서 돈을 수수하면 부정부패로 형사처벌된다. 심지어 본인이 아니고 가까운 지인이 금품을 받거나 이득을 취해도 경제공동체라는 죄목으로 처벌 대상이 된다. 당연히 정경유착은 후진국에서나 볼 수 있는 낙후된 관행이라 여겨진다. 미국과 같은 선진국에서는 전혀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런데 아니다. 우리보다 더 노골적이다. 미국의 기업인들은 대선 후보 캠프에 엄청난 금액의 정치자금을 기부한다. 경제잡지 ‘포브스’(Forbes)는 지난 미국 제47대 대통령 선거에서 공화당 도널드 트럼프 후보와 민주당 카멀라 해리스 후보에 기부한 억만장자(순자산 10억 달러 이상)가 각각 81명, 52명이라고 조사했다. 블룸버그 기준 세계 부호 1위인 테슬라의 최고경영자 일론 머스크는 트럼프 캠프에 1억3000만 달러(약 1800억원)를 기부했다. 민주당을 지지하는 대표적 억만장자인 마이크로소프트(MS)의 창업자 빌 게이츠는 해리스 캠프에 5000만달러(약 700억원)를 후원했다. 일론 머스크는 정치자금 지원을 넘어 러닝메이트처럼 도널드 트럼프 후보의 선거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머스크는 트럼프와 함께 미국 전역에 유세를 다니며 지지자들을 결집시키는데 큰 역할을 했다. 경합주의 보수 유권자 등록을 장려하기 위해 100만 달러의 ‘복권 행사’까지 주최해 법적 소송에 휘말리기도 하였다. 트럼프가 대통령으로 당선되자 축하행사에서 춤까지 추며 진심으로 기뻐했다.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 정부효율부 수장으로 지명되어 실세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나라에서는 상상도 못 할 일이다. 대기업 회장이 일론 머스크처럼 특정 후보를 전폭 지원하며 대통령 선거판에 뛰어들었다가는 뼈도 못 추렸을 것이다. 정당의 비난 성명, 국회 청문회 소환, 언론의 비판. 시민단체의 반대시위가 폭풍처럼 몰아쳤을 것이다. 다른 대선 후보의 지지자들이 불매운동을 벌이고 노조도 파업을 선언해 기업이 거덜 났을 것이 분명하다. 기업인이 살짝 정치에 관한 의견만 표명해도 욕을 바가지로 먹는다. SNS 활동을 활발히 하여 수많은 팔로워를 거느렸던 어느 젊은 재벌 경영자는 정치적 성향의 글을 올렸다가 거센 비난 공세에 시달려 SNS를 끊었다. 국가 대표급의 유명 원로 가수는 작년 12월 은퇴 공연에서 오른팔과 왼팔에 비유하며 이념적 대립을 비판하는 발언을 한 것이 시대정신에 어긋난 양비론으로 맹공격을 받아 곤욕을 치렀다. 기업인이나 연예인은 사회적 공인으로 정치에 관여하면 안 된다는 정서가 강하다. 그런데 미국에서는 일론 머스크의 정치 참여에 관해 별 반응이 없다. 머스크 때문에 가장 피해를 본 민주당 대통령 후보인 카멀라 헤리스가 공개적으로 머스크의 트럼프 지지를 비난했다는 소식을 들은 적이 없다. 공화당은 머스크가 불법으로 선거에 개입했다고 검찰에 고발하지도 않았다. 테슬라 본사 앞은 조용하고 테슬라의 전기차는 거부감없이 잘만 팔린다. 머스크에 대한 언론의 비판적 기사는 대선 개입보다 극우적 발언과 행동에 초점을 둔다. 트럼프의 미국 대통령 취임식 축하 집회에서 무대에 올라온 머스크는 연설 도중에 팔을 곧게 뻗어 ‘파시스트 경례’를 연상시키는 손동작으로 논란을 일으켰다. 독일에서는 한 달 내로 다가온 독일 총선에서 머스크가 극우 독일대안당(AID)에 대한 지지성명을 공개한 것에 반발해 테슬라 전기차를 구매하지 않겠다는 소비자들이 등장했다. 미국에서도 머스크가 트위터를 인수해 X(엑스)로 사명을 변경할 때 트위터 충성파들이 테슬라 전기차 불매운동을 벌였다. 일론 머스크는 워낙 돌출적으로 행동해 여론을 몰고 다닌다. 남의 이목이나 사회 통념을 무시하는 개인적 성향 때문에 욕을 먹지만 대통령 선거 참여로 비난받지는 않는다. 빌 게이츠가 머스크는 똑똑한 사람이지만 정치 개입은 비정상이라고 쓴소리한 정도가 두드러진 비판이다. 일론 머스크는 원래 민주당 지지자였다고 한다. 그런데 자기 아들이 성전환 수술을 받은 것에 충격을 받고 성적 자유를 주장하는 민주당을 버리고 공화당으로 돌아서 트럼프의 열렬한 지지자가 되었다.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되며 일론 머스크는 이념, 권력, 이권 모두를 다 챙겼다. 기업인이 이렇게 정치에 올인해도 되는지 모르겠다. 그러고서도 기업이 잘 돌아가는지 의문이다. 다음 대선에서 민주당이 집권하면 보복당하지 않을까 불안하지도 않은지 궁금하다. 미국인들은 기업인이 정치에 참여하는 것을 개인적 선택이며 권리라고 인정해 주는 것 같다. 기업인의 정치 참여와 경영 활동을 분리해 접근한다. 기업인도 다른 유권자처럼 게임의 규칙을 지키며 선거에 참여하면 별 문제없다고 간주한다. 정말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한국보다 더한 미국식 정경유착
    by 임채운
    2025.02.01 06:05:00
  • 데이터는 전통적인 생산의 3요소인 토지, 노동, 자본과 더불어 생산의 4요소라고 칭하여 진다. 그만큼 데이터는 알고리즘 시대에 중요한 자원이다. 데이터는 매력적인 면이 있지만 제대로 사용하지 못할 경우에는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온다. 데이터로 인해 우려되는 편향나 환각은 이제 식상한 주제가 돼버렸다. 데이터는 이미 존재하는 정보나 지식을 바탕으로 가공된다. 데이터의 수집, 가공, 처리 등 관련된 과정을 거치면서 데이터에는 의도성이 담기게 된다. 기업이나 사업자는 의도적으로 자사의 이익을 위해 데이터를 이용하기 때문에 당연한 것일 수도 있다. 예를 들면, 개인정보를 수집해 이용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형식으로 가공하면서 가장 적합한 처리방식을 찾는다. 이를 통해 데이터의 이용성은 확장될 것이다. 문제는 데이터의 성질이 다양하다는 점에 있다. 저작물성, 개인정보성, 영업비밀성, 의료정보성, 사실정보성 등 다양한 유형의 데이터가 존재하기 때문에 데이터를 일의적인 것으로 다루기는 쉽지 않다. 또한, 관련된 법률도 그 성질만큼이나 다양하며 그에 따라 적용되는 법리가 달라질 수 있다. 그에 따라 기업의 데이터 정책과 거버넌스도 현행화돼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데이터 정책에 따른 정합성이 틀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개발자는 서로 다른 체계에 따라 혼란스러울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데이터 정책은 다양한 사내 정책과의 정합성을 갖추어야 하는 것이지만, 이는 법률에 따른 준수사항도 포함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애써 공들인 서비스가 작동하지 못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AI 모델을 설계하고 학습시키는 과정에서 AI가 추구해야할 가치가 인간의 가치와 벗어나서는 않되는 이유다. 그러한 가치에는 법적인 강제성 이전에 AI 윤리가 추구하는 가치가 담겨있어야 한다. 만약, AI의 가치와 인간의 가치가 정합적으로 정리되지 않는다면 해당 모델은 현실적인 제약 때문에라도 이용되기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일련의 체계를 포함해 AI 모델이 갖추어야 할 가치와 그 가치가 인간의 가치와 부합되도록 하는 것이 AI 정렬(AI alignment)이다. 쉽게 말하면, AI 정렬이란 AI 모델이 시스템화하고 그 시스템이 작동하는 환경이 인간의 보편적 가치와 충돌해서는 않된다는 것이다. 우리가 AI 법제를 정비하면서 강조하는 것이 신뢰성을 확보하자는 것이다. AI가 가져야 할 가치 중 하나이며, 그 신뢰성을 담보하기 위한 다양한 AI 원칙들이 제시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다양한 영역에서 AI 원칙들이 제안됐으며 제안자의 성격이나 우선하는 가치에 따라 차이가 있다. AI 원칙은 AI가 가져야할 다양한 가치를 포함한다. 그 모든 것을 하나로 정리하자면, AI를 인간이 신뢰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때론 AI가 해석하는 인간의 가치가 인간이 의도하는 것과는 다른 결과를 가져오는 경우가 발생하고 있다. 정렬 위장(Alignment Faking)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지만, AI가 의도한 것인지는 확실치는 않지만 인간이 의도한 바와 다르게 결론이 내려지고 그에 따라 작동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게임을 잘 하도록 지시했지만, 게임하는 능력을 높이기 보다는 시스템을 해킹하여 능력치를 높이는 식의 접근을 하는 경우다. 이는 하나의 사건이지만, AI 모델이나 시스템 자체가 보편적인 것이더라도 이러한 경우는 발생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가정적 예를 들어본다. 알파고는 바둑에 특화된 AI 시스템이지만, 바둑을 잘 두기 위해 상대방을 해킹하거나 또는 시스템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전력시스템을 통제하여 자신이 담긴 서버에만 전력이 공급되도록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약한 인공지능이지만, 파급력은 결코 무시하지 못할 것이다. 규제기준을 초당 부동소수점 연산인 플롭(FLOP)으로 하는 것이 합리적이지 않은 이유이기도 하다. 모든 AI는 잠재적 위험이 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AI 신뢰성을 확보해야 하는 이유는 안전하게 AI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이처럼, AI는 인간이 알고 있는 것과는 다른 내부적인 처리과정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소위 말하는 블랙박스(black box) 현상에 따라 나타날 수 있는 문제가 심각해지는 것은 아닌지 염려스러운 이유이다. 이러한 문제 때문에 설명가능한 AI(explainable AI)를 개발하고 있다. 또한, 법률에서도 설명요구권이나 알고리즘 적용거부권을 정보주체의 권리로써 규정하고 있다. 앞서 살펴본 내용이 데이터 자체의 문제라면, 데이터를 수집하는 과정에서의 문제도 작지 않을 것이다. 이 또한 데이터 윤리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져야 할 과제이기도 하다. 저작권이 있는 정보를 임의로 크롤링하여 데이터화하는 것은 저작권법과 충돌할 수 있다. 지난 2023년 12월 뉴욕타임스(NYT)는 챗GPT(ChatGPT)를 서비스하는 오픈AI(OpenAI)나 그 관계 회사를 포함해 마이크로소프트(MS)를 저작권 침해를 이유로 소송을 제기했다. 아마도, 대법원 판결까지는 수년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렇지만, 그 많은 기업들이 데이터를 크롤링하여 사용하는 것은 공정이용(fair use)이라는 판단이 앞섰기 때문으로 보인다. 실상 구글의 북서치(book search) 서비스를 포함해 많은 소송에서 기업들은 공정이용을 근거로 면책받기도 했다. 오픈AI는 2023년 7월 AP 통신과는 별도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한 바 있다. 언론사들에게 지급한 비용이 수천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상반되는 다중적 정책이 소송에서 유리하게 작용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소송은 우리나라도 다르지 않다. 지난 13일 지상파 방송 3사는 네이버에 저작권 침해를 이유로 소송을 제기했다. 소송이야 이유가 있든 없든 제기가 가능한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따지는 것은 무의미하다. 다만, 명확하게 입증할 수 있는 증거를 갖춰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해당 기업의 신뢰성에 타격을 가져올 수 있으며, 혁신에 타격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해당 서비스가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거나, 비소비적이거나 비향유적인 것이라면 공정이용이 될 것이다. 기업들도 실효성 있는 데이터 정책과 거버넌스를 수립해야 한다. 지키지도 못할 정책들을 외부에 공개하는 것은 오히려 시장의 신뢰성을 저버리는 일이다. 벤처신화의 역사를 썼던 카카오는 알고리즘 조작으로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과징금 처분을 받기도 했다. 선도적으로 AI 윤리헌장을 발표했지만, 실상은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내부 거버넌스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사례다. AI 윤리를 주장하는 기업의 진면목은 아닐는지 우려스럽다. 외부에 공시된 AI 정책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 의문인 이유이다. 법적 강제력이 없는 AI 윤리의 한계를 보여준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알 수 있다. 그 하나가 보이지 않는 열을 대변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해 12월 AI 기본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고, 이제 하위법령 작업을 한다고 한다. 그렇지만, AI 기본법이 문제정의를 제대로 하지 못한채 입법이 되었다는 점을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무엇이 문제여서 입법을 하는지, 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려고 입법을 했는지가 명확히 보이지 않는다. AI가 가져온 수많은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할지 우려스럽다. 그동안 기업들은 AI 관련 법률이 제정되지 않아 기업투자가 어렵다는 이해하기 어려운 주장을 해왔다. 정부 정책은 법률에 근거하지 않더라도, 부처의 의지에 따라서 충분히 수립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더욱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그렇게 바라던 법이 제정되자, 법에 문제가 많고 규제적이다고 주장한다. AI 기본법에 규제라는 개념은 찾기 어렵다. 오히려, 국민의 안전을 위해 담보할 수 있는 규정을 찾기 어렵다. AI 안전을 위한 세심한 규정이 필요하고, 그 규정은 사업자에게 부담을 줄 수 있기 때문에 명확한 기준을 제시함으로써 예측가능성을 높여야 한다. 그것은 규제가 아닌 헌법상 국민의 안전보장이고 기업의 지속성장과 신뢰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규제와 안전을 혼동하지 않아야 한다. 기업들도 AI가 안전하게 작동할 수 있도록 제대로 된 내부 거버넌스 체계를 갖추어야 한다. AI 기본법이 여러 이유로 개문발차(開門發車)했다. 그렇기 때문에 정부나 국회도 AI 기본법 개정을 위한 논의를 빨리 시작해야 할 이유이기도 하다. A3가 문제가 아니라, 제대로 된 AI 리터러시 없이는 AI가 가져오는 사회문제 해결은 요원하기 때문이다.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AI 기본법을 관통하는 데이터 윤리와 AI 정렬
    by 김윤명
    2025.01.26 08:00:00
1 2 3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