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332
  • 지난 6월 기업의인권・환경 실사를 의무화하는 법안이 발의됐다. 이 법안에 따르면 500명이상의 상시 근로자를 고용하거나 연매출액 2000억 원이상인 기업은 매년 1회이상 자사, 자회사, 공급망 전체를 대상으로인권・환경 실사를 수행해야 한다. 기업이 실사 의무를이행하지 않으면이해관계자의 신청 또는 행정청 직권으로 시정명령이 부과되거나 과태료 처분을 받을 수 있고, 시정명령을 불이행하면 5년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원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유럽연합에이어 우리나라에서도인권・환경 실사법 제정이 논의되면서인권경영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인권 실사는인권경영의 핵심 요소로서 기업 경영상 발생했거나 발생 가능한 제반인권 리스크를 식별하여 대응 조치를 취하는 절차이다. 지금까지 국내 여러 기업들은 인권 실사 또는인권영향평가를 실시하고 지속가능경영보고서에 관련 내용을 공시해왔다. 하지만 인권 실사를 통해 기업의인권경영 수준을 한 단계 높였다고 대답하기에 주저하는 모습도 보인다. 이하에서는 바람직한 인권 실사를 위해 염두에 두어야 할 몇 가지를 쟁점을 살펴본다. 첫째,인권실사는 ‘예방적’ 성격의 절차임에 유의해야 한다. 인권 실사라고 하면 인권침해를 유발한 가해자 등을 현장 감사를 통해 사후 적발해 징계하는 절차로 오해하는 경향이 있다. 국제사회에서 말하는 인권 실사(Human Rights Due Diligence)는, 잠재적인권 리스크를 전반적으로 확인하고 그것이 실제 인권침해로이어지기 전에 선제적으로 예방조치를 취하는 것을 주된 목적으로 한다. 인권 실사의 사전예방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회사의 정책・조치・관행 등을 두루 살피며인권 사각지대를 적극적으로 찾아야 한다. 그런데 현업 담당자에게 인권 실사 체크리스트를 제공하고 개별 평가지표에 예/보완필요/아니요 등으로 답변하도록 하면, 회사의 정책이일부 미비하더라도 ‘예’라고 답변하는 경향이 있다. 본인이 속한 부서의 잘못을 들추어 추궁당하는 상황이 부담스럽기도 하고, 타 부서 또는 타 계열사와의 평가 결과 비교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이렇게 하면 수면 아래에 잠재된인권 리스크를 식별하기 어렵다. 경영진과 현업 부서에인권실사의 목적을 명확히 설명하고,인권 리스크를 좀 더 많이 식별할 수 있도록 유인을 제공할 필요가 있다. 둘째, 인권 실사 절차에취약그룹의 참여가 필요하다. 인권 실사의 성공 여부는인권에 취약한이해관계자들이 얼마나 참여하는지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필자는지금까지 수백 명과 인권 실사 인터뷰를 진행했지만 대기업의 정규직 중년 남성으로부터인권 리스크가 식별된 경우는 흔치 않았다. 인권 리스크는 비정규직, 임신・양육기여성, 장애인, 외국인, 고위험 직무종사자, 비조합원, 하청직원 등취약그룹에서 식별될 가능성이 높다. 다만이들은 회사에 의견을 개진하는 것을 상당히 조심스러워하며, 숫자도 상대적으로 소수이기에 인터뷰 진술의 익명성이 보장되지 않을 수 있다. 회사는 누구를취약그룹으로 정의하고 의견을 들어볼 것인지,취약그룹의 참여 장벽이 무엇이며이를 어떻게 해소할 것인지 적극적으로 고민할 필요가 있다(CSDDD 제13조제5항). 셋째,취약그룹의 의견에 온정적으로 접근해 대응 조치를 수립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취약그룹 인터뷰에서 청취한 내용을 회사에 전달하면 그 의견이 사실인지 확인하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다만이러한 사실 확인에 지나치게 엄격한 수준의 증빙을 요구하면 몇 가지 문제가 발생한다. 취약그룹의이슈는 특수하기에 진술자가 특정되거나 진술자를 특정하려는 시도가 생길 수 있고, 진술 내용의 신빙성을 제3자를 통해 확인하는 과정에서 원 진술이 왜곡되거나 2차 피해가 발생할 가능성도 존재한다. 물론 진술의 신빙성을 확인하는 절차는 당연히 필요하다. 하지만 중대한 실제적 법 위반 등이 아닌 잠재적 리스크 단계의 정황에 대해서는, 회사가취약그룹의 진술을 선의로 해석하려고 노력하면서 예방 및 재발 방지 대책을 수립하는 것이인권실사의 취지에 더 부합할 수 있다. 한국의인권경영은 한 단계 도약의 시기를 앞두고 있는 듯하다. 일부경영진과 책임자는 회사의인권정책을 다듬는 것을 넘어 실제 구성원과이해관계자들의인권 수준을 정확히 측정해 개선하는 데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대내외 경영 환경이 녹록치 않지만, 좋은 기업을 만들고 주변에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싶은 마음은 사람의 본성인 듯하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일은, 여러이해관계자를 포용하면서 인권 실사를 진행하되취약그룹과 회사가 함께 공감할 수 있는 작은 성과들을 하나씩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러한 실천이 축적될 때인권실사는 단발성 또는 형식적이벤트에 그치지 않고 기업의 지속가능한 위험관리 시스템으로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인권경영의 과제
    by 민창욱
    2025.08.02 09:00:00
  • 최근 반려동물의 증가와 함께, ‘리얼 베이비돌’ 인형이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실제 아기처럼 정교하게 제작된 인형을 통해 불안 완화와 정서적 안정을 얻는 사람이 늘고 있다. 인형을 통해 외로움과 상실을 치유받는 이들에게 감정과 존재의 경계는 어디까지일까. 위로와 치유의 과정을 보며 자연과 우리의 관계를 질문해 본다. 인간은 문명을 창조했다. 불을 발견하고 바퀴를 만들었으며, 도시를 세우고 산업을 일으켰다. 자연을 정복하고, 기술 발전을 통한 인공지능이 인간의 사고와 노동을 대신하는 지금, 인간은 자연 없이 살 수 있을까. 지난 6월, 강원도 인제에 위치한 DMZ 평화생명동산을 찾았다. 16년째 현장을 가꾸고 있는 정성헌 이사장은 “이곳은 인간이 만든 공간이 아닙니다. 자연이 만든 삶터입니다. 인간은 그저 머물며 치유와 희망을 얻을 뿐이지요.”라고 말했다.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 바람과 흙냄새까지 살아 숨 쉬는 동산. 그곳은 단순한 교육장이 아닌 생명과 평화의 성소였다. 자연은 쉼 없이 자신을 회복하고, 사람들은 그곳에서 진정한 활력을 되찾고 있었다. 개발이 멈춘 DMZ 생태보존지구는 다양한 야생 동식물이 자생하고, 인간의 손이 닿지 않은 공간에서 자연은 본래의 질서를 유지하며 살고 있었다. 그 모습은 기후 위기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자연이라는 ‘비인간 존재’의 강력한 메시지로, 자연을 지키는 일이 단순한 환경보호를 넘어, 인류의 생존 조건이자 평화의 출발임을 각인시켰다. 도시화와 산업화는 우리 삶을 급격히 바꾸었다. 도시는 과밀과 고립에 시달리고, 농촌은 감소와 소멸의 위기를 겪고 있다. 기술과 효율이 지배하는 사회 속에서 인간은 점점 자연과 단절되었고, 단절은 고립과 상실을 넘어 불안으로 되돌아오고 있는 지금이야말로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회복해야 할 때이다. 우리는 그동안 깨끗한 물, 건강한 흙, 맑은 공기의 가치를 너무도 당연하게 여겨왔다. 그리고 인간의 탐욕과 무분별한 개발은 생태계를 파괴했고, 기후 위기로 인한 폭염과 홍수, 가뭄과 산불의 빈번한 자연재해는 우리 스스로가 어떤 존재인지 되묻게 한다. 자연은 더 이상 무한정 제공되는 대상이 아니며, 자연을 지키는 일은 곧 우리 자신을 지키는 일인 것이다. 자연은 인간 생명의 지속이다. 그 안에서 우리는 생명의 균형과 공존의 방식을 배워야 한다. 지금 이 시대는 자연과 공존하는 삶을 이끌 지도자 양성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기술 중심이 아닌 생명 중심의 세계관을 가진 이들, 곧 자연 생태의 가치 철학을 갖춘 이들이야말로 지속 가능한 사회를 만들 수 있다. 프랑스 인류학자 브뤼노 라투르는 “우리는 결코 근대인이었던 적이 없다”라고 말했다. 그는 인간만을 중심에 두는 사고를 넘어, 자연과 비인간 존재들을 ‘행위자(Actant)’로 바라보며 그들과의 평등한 관계를 강조했다. 인간은 자연과 연결된 존재이며, 그 관계없이는 생존할 수 없다. 대형 선박은 정교한 기술의 집약체지만, 위기 상황에서 일부가 붕괴되도록 설계된다. 선체 전체의 위험을 막기 위해 의도된 약점을 도입하는 것이다. 이를 ‘디자인 위크 니스(Design Weakness)’라 한다. 인간도 마찬가지다. 신학적 관점에서 창조주는 인간을 완전한 자립체로 만들지 않았다. 인간은 자연에 의존하도록 디자인되었으며 그 의존성은 계획된 약점이다. 자연과의 연결 없이는 살아갈 수 없도록 만들어진 존재가 인간이다. ‘비인간’은 더 이상 인간이 배제하거나 지배할 대상이 아니다. 자연, 동물, 다양한 생명체들은 인간이 잃어버린 균형을 되찾고, 상처받은 감정을 회복하며, 삶을 지속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존재들이다. 우리는 그들을 통해 배우고, 그들과 함께 해야 한다. 이러한 전환의 실험은 DMZ에서 이미 시작되었고, DMZ가 보여주는 공존의 생태는 농촌에도 뿌리내리고 있다. 농촌은 단지 물리적 공간이 아니라, 자연과 인간이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는 자연 생태 공동체의 가능성을 지닌 곳이다. 이것이 또 하나의 ‘농촌유토피아’이며, 지역의 지속 가능한 경제·문화 모델이기도 하다. 전남 곡성과 충북 괴산에 진행되고 있는 ‘농촌유토피아 선도마을’은 이러한 비전을 실천에 옮기는 중요한 기반이다. 비인간이 인간을 구한다. 자연을 보존하고 되살리는 일은 인간을 구하는 일이다. 자연과 공존하는 삶은 ‘사람이 살 수 있는 자연’을 조성하는 것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이것이 기후 위기와 지역 소멸의 시대를 살아가는 지금, 우리 농촌이 다시 살아나는 길이자 다음 세대를 위한 우리의 책임이다.
    ‘비인간’이 인간을 구한다
    by 조금평
    2025.08.01 14:05:01
  • 부모라면 누구나 자녀의 건강과 행복을 소망한다. 부모로서 자녀의 행복과 건강을 위해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어떤 방식으로 양육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은 자연스럽고 아이들의 건강한 발달을 지원하는 촉진제로 작용한다. 그렇다면 우리 아이들의 행복을 위해, 영유아기와 아동기에 있어서 무엇을 지원해야 할까. 자녀의 행복을 위한 부모의 역할에 대해 서울대학교 뇌인지과학과 이상아 교수의 아동기 뇌 건강에 관한 연구 결과는 매우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한다. 이 교수는 많은 부모와 교사들이 감정과 인지를 뇌의 서로 다른 기능으로 오해하기 쉽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뇌의 생물학적 기원을 살펴보면, 감정은 생존에 유리한 방식으로 세상을 인식하고 해석하게 돕는 진화적 메커니즘임을 확인할 수 있다. 예컨대, 환경 속에서 위협적이거나 보상적인 자극에 주의를 기울이면, 더 빠르고 적절한 반응이 가능하다. 반면, 감정적으로 눈에 띄는 정보에 지나치게 몰두할 경우, 현재 수행 중인 과제에 필요한 정보를 놓치거나 기억하지 못할 수 있다. 이처럼 감정과 인지는 별개의 기능이 아니라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 그리고 그 상호작용은 아동기부터 형성되기 시작한다. 특히 주의 조절과 감정 조절 능력이 균형 있게 발달하지 않을 경우, 우울, 불안,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 등 정신건강 위험이 커질 수 있다. 따라서 아동기부터 이러한 위험 요소를 조기에 평가하고 개입하는 것이 건강한 뇌 발달을 위해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이를 평가할 수 있는 과학적이고 아동 친화적인 도구가 아직 충분치 않다. 정서와 인지 간의 복잡한 상호작용을 효과적으로 측정할 수 있는 평가 방법이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 의식에서 이 교수 연구팀은 4세부터 10세까지 아동을 대상으로, 감정 처리와 인지 조절 기능의 상호작용을 측정할 수 있는 애니메이션 기반 게임형 과제를 개발하였다. 아동의 정신건강 상태는 자가보고식으로 CES-DC(아동 우울 척도)와 STAI-CH(아동 상태 불안 척도)를 활용해 평가했으며, ADHD 위험도는 부모 보고에 기반한 K-ARS 척도를 사용했다. 해당 연구에서는 아동이 과제를 수행하며 생성한 행동 데이터를 분석하여 △주의력 △선택적 억제력 △감정 민감성 등 세 가지 인지 지표를 도출했다. 그 결과, 일반적인 주의력은 연령이 높아질수록 유의미하게 향상되었지만, 감정과 주의 간의 상호작용은 연령에 따른 뚜렷한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정신건강 지표와 인지 수행 간의 관련성도 확인되었다. 예를 들어, 우울하거나 불안 수준이 높은 아동은 감정 자극에 대한 주의 집중력이 떨어져 반응 시간은 길어지고 정확도는 낮아졌다. ADHD 경향이 높은 아동은 모든 과제에서 정확도가 낮았으며, 이는 충동성이 높아 감정 자극에 대한 반응을 조절하기 어려웠기 때문일 수 있다. 이번 연구는 감정과 인지 기능을 통합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아동 친화적인 디지털 도구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기존 평가 방식으로는 놓치기 쉬운 감정–인지 상호작용을 과학적이고 체계적으로 측정할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문제가 발생한 뒤의 치료보다 더 중요한 것은 조기 개입이다. 감정과 인지를 분리된 기능이 아닌, 긴밀하게 상호작용하는 하나의 통합적 체계로 이해하려는 노력은 아이들의 뇌와 마음이 건강하게 자라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한다. 감정과 인지 발달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와 정밀한 평가는, 아동이 균형 있게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많은 학자들이 아동의 전인적인 발달을 위해서는 사회적, 정서적 발달이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아동기의 정신건강은 단지 그 시기의 정서적 안녕에만 머물지 않는다. 이는 성인이 되었을 때의 정신건강뿐 아니라, 아이들이 일상생활이나 교육 환경 속에서 정보를 처리하고 학습하는 인지적 능력과도 깊이 연결되어 있다. 무엇보다 영유아기와 아동기는 사회관계의 기초를 형성하는 중요한 시기이다. 특히 4세부터 10세까지의 시기는 급격한 감정적, 인지적 발달이 이루어지는 시기에 해당한다. 자녀의 조화로운 발달을 원한다면, 감정과 인지의 상호작용을 이해하고 정신건강 문제를 유발할 수 있는 요소들에 미리 대응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감정과 인지 발달이 조화로운 아이는, 튼튼한 마음과 균형 있는 성장 속에서 행복하고 건강한 아이로 자라날 수 있다.
    뇌와 마음이 건강한 아이들
    by 한서정
    2025.07.30 13:51:15
  • 꿈이란 개별적이고 주관적인 체험이다. 이러한 꿈의 내용을 분석하고 정신치료에 활용하여 임상적(clinical)인 효과를 보았다고 하더라도, 꿈 분석을 통한 치료 효과를 과학적인 방법으로 검증한다는 것은 또다른 차원의 문제이다. 꿈의 내용분석과 꿈치료 효과를 객관적으로 검증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꿈의 과학은 비약적으로 발전할 수 있다. 과학이 발전하면서 살아있는 사람의 뇌에 대한 관찰이 가능하게 되자, 꿈에 대한 또 다른 비밀의 문이 조금씩 열리기 시작하였다. 그 비밀의 문을 열었던 중요한 인물 중의 한 사람이 독일의 정신과 의사 한스 베르거(Hans Berger)다. 1892년, 젊은 베르거는 말에서 떨어져 길바닥에 쳐박히는 사고를 당한다. 그는 회상했다. ‘19세 대학생이던 나는 뷔르츠부르크에서 군사 훈련을 받다가 큰 사고를 당해 거의 죽을 뻔했다. 나는 가운데가 낮고 양쪽 가장자리가 높은 우묵한 길가에서 말을 타고 가다가 행군하는 대열 속으로 굴러떨어졌다. 포의 바퀴가 곧바로 내 몸을 깔아뭉갤 상황이었다. 말 여섯 마리가 끄는 포가 절체절명의 순간에 멈춰섰고, 소스라치게 놀랐지만 죽음을 모면했다. 그날 저녁 나는 아버지로부터 잘 지내느냐는 문안 전보를 받았다.’ 그는 큰 부상을 당하지 않았다. 신경과학(neuroscience)과 꿈의 생물학(a biology of dreaming)의 미래를 위해서는 무척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베르거는 그 이전이나 그 이후에도 누가 자신에게 그런식으로 안부를 물은 적이 한 번도 없었다고 밝혔다. ‘나와 형제애가 유난히 깊었던 큰 누나가 갑자기 부모님에게 내가 불운을 맞은 것이 틀림없다고 주장했다. 아마도 극한의 위험이 닥치고 확실한 죽음이 눈앞에 다가온 순간, 내가 발신자가 되고 나와 특별히 가깝던 누나가 수신자가 되어 텔레파시(telepathy)를 실행했을 것이다.’ 나중에 정신과의사가 된 베르거는 이것이 텔레파시(한 사람의 생각이 다른 사람에게 전달되는 현상)의 증거라 여겼다. 어느 날 그는 텔레파시가 어떤 ‘심령에너지’의 물리적 전달에 근거한다면, 이를 측정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한다. 1924년 그는 이 가설을 검증해보기로 결심하고 머리피부 안쪽에 두 개의 전극을 넣고 그 사이에서 벌어지는 전기활동을 기록했다. 하나는 머리 앞쪽, 다른 하나는 머리 뒤쪽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전극에는 전기활동이 포착되었다. 하지만 이를 텔레파시의 근거로 내세우기는 너무 미약했다. 그러나 베르거는 인간의 뇌에서 뇌파(brain wave)가 나온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뇌파란 뇌가 활동함에 따라서 뇌의 신경세포가 만들어 내는 전류를 말한다. 1929년, 마침내 그는 뇌파를 증폭하여 기록하는 뇌전도(EEG, Electroencephaleogram)를 이용해서 환자의 머리 표면으로부터 뇌파를 측정하는데 성공했다. 이 뇌파의 기록을 보면, 자고 있을 때와 깨어 있을 때, 뇌의 신경활동이 확실히 다르다. 깨어 있을 때의 뇌파는 주파수(초당 진동수)가 높고, 진폭(진동의 중심으로부터 최대로 움직인 거리)은 낮다. 이에 반해서 보통 잘 때의 뇌는 저주파이고 고진폭의 뇌파를 특징으로 하며, 신경활동이 상당히 감소한다. 이 뇌파는 머리의 표면에서 측정가능할 뿐만아니라 미약하게나마 외부로도 전달된다. 이 뇌전도(EEG)는 임상신경학 분야를 비롯한 수면과 꿈 과학에 혁명을 일으켰다. 이것은 간질 환자뿐만 아니라 정상적인 사람의 뇌에서 일어나는 역동적 활동을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수단을 제공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베르거와 연구자들은 연구의 제약때문에 깊은 수면 후에 일어나는 많은 뇌 활동의 변화를 발견할 수 없었다. 베르거의 실험으로부터 20년 이상이 지나고 나서야 수면 중 꿈 꾸는 뇌의 극적인 변화에 대한 관찰이 객관적을 이루어지게 된다. 한편, 텔레파시의 존재에 대하여 심리학자 융은 확신을 가졌으며, 꿈의 내용을 결정하는 요인 중 하나가 텔레파시라고 분명히 믿었다. 프로이트도 나중에 텔레파시적 꿈을 현실로 받아들였다. 이후 심리학자나 꿈 과학자들이 텔레파시의 존재를 과학적으로 입증하려는 시도가 여러 차레 있었지만, 현재까지도 과학적인 확실한 증거로 뒷받침을 하고 있지는 못하다.
    뇌파의 발견, 꿈에 대한 비밀의 문을 열다
    by 국경복
    2025.07.30 10:59:34
  • 여름이 다가올 때마다 올 여름은 또 어떻게 날지 걱정부터 앞선다. 한낮에는 바깥에 잠시 서 있는 것도 버거울 지경이다. 이처럼 가만히 서 있는 것조차 힘든 더위에 더욱 취약한 곳이 있다. 바로 산업현장이다. 그 중에서도 건설현장은 한 줄기 바람 없이 태양이 작렬하는 옥외에서 작업이 이어진다. 폭염에 장시간 노출되어 발생하는 열사병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건설현장에서 발생한 열사병으로 근로자가 사망한 경우에도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하 중대재해처벌법)이 적용된다. 최근 대전지방법원은 A 시공사로부터 철근콘크리트 공사를 하도급 받은 B회사 소속 근로자인 재해자가 2022년 7월초 최고기온이 33.5℃에 이르고 폭염경보 기상특보가 발효된 상황에서 건축물 최상층의 콘크리트 타설 작업을 하다가 열사병으로 사망한 사건에서 A회사의 현장소장과 경영책임자에게 각각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열사병으로 인한 중대산업재해는 사망 사고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에서는 직업성 질병의 하나로 “폭염에 노출되는 장소에서 하는 작업으로 발생한 심부체온상승을 동반하는 열사병”을 정하고 있어 1년에 3명 이상의 종사자가 열사병에 걸릴 경우에도 중대재해처벌법으로 처벌될 수 있다. 고용노동부는 여러 건설현장에서 열사병 환자가 발생할 경우 전체 현장을 합산하여 중대산업재해 해당 여부를 판단한다는 입장이다. 그렇다면 열사병 예방을 위하여 법령에서는 어떤 조치의무를 정하고 있을까. 사업주가 취하여야 할 구체적인 안전보건조치의무를 정한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에서는 근로자가 폭염에 노출되는 장소에서 작업하여 열사병 등의 질병이 발생할 우려가 있는 경우에 사업주로 하여금 △적절하게 휴식을 취하도록 하는 등의 필요한 조치를 하여야 하고 △휴식시간에 이용할 수 있는 그늘진 장소를 제공하여야 하며 △작업 중 땀을 많이 흘리게 되는 장소에 소금과 깨끗한 음료수 등을 갖추어 두도록 정하고 있다. 또한 최근에 △ 냉방 또는 통풍 등을 위한 적절한 온도·습도 조절장치의 설치·가동과 △ 작업 시간대의 조정 △적절한 휴식시간의 부여 △ 체감온도 33도 이상인 작업장소에서 작업 시 매 2시간 이내에 20분 이상의 휴식 부여 등의 의무가 신설되기도 하였다. 경영책임자로서는 중대재해처벌법령에 따라 위험성평가 등 절차를 통하여 폭염에 노출되는 옥외 작업 시에 열사병의 유해요인을 확인하고 이를 개선하기 위한 대책을 수립하여 실행되도록 하여야 한다. 위에서 본 산업안전보건법령 상의 의무가 지켜지는지 반기마다 점검하여야 할 의무도 있다. 경영책임자가 이를 지키지 않아 열사병으로 인한 중대산업재해가 발생할 경우 앞의 A회사 사례처럼 처벌될 수 있다. 타는 듯한 현장에 그늘 한 켠이 근로자와 경영책임자 모두에게 어느 때보다 절실한 때이다.
     타는 듯한 현장에 한 켠의 그늘을
    by 김동현
    2025.07.30 10:05:00
  • 정연주 전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위원장이 윤석열 전 대통령을 상대로 낸 해촉 처분 취소 소송에서 승소했다. 흥미로운 점은 사건의 여정이다. 정 전 위원장은 같은 사안으로 먼저 집행정지 신청을 냈지만 각하됐다. 그런데 본안 소송에서는 승소 판결을 받았다. ‘각하’는 법원이 아예 본안 심리를 하지 않기로 하는, 말하자면 ‘문전박대’와 같은 것이다. ‘인용’은 소송을 청구한 당사자가 법원의 문턱을 넘어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였다는 것이므로 거리가 매우 멀다. 같은 사안에 관한 사건, 같은 당사자, 같은 쟁점인데도 한 번은 행정소송의 대상이 아니라는 이유로 물러서게 된 반면 최종적으로는 승소했다. 행정소송의 대상 판단이 얼마나 어려운 문제인지를 잘 알려주는 사례다. 이러한 일이 벌어지는 이유는 행정소송의 대상이라는 개념 자체가 상대적으로 추상적이고 또 열려 있기 때문이다. 공권력의 어떤 행위에 대하여 행정소송(취소소송, 무효등확인소송 및 부작귀위법확인소송 등의 항고소송)으로 다투기 위한 전제를 ‘처분등에 해당할 것’으로 삼고 있다. ‘처분등’이란 ‘행정청이 행하는 구체적 사실에 대한 법집행으로서의 공권력의 행사 또는 그 거부와 그 밖에 이에 준하는 행정작용’ 등을 의미한다. 말 자체도 쉽지 않지만 그 개념 하나 하나를 따져보면 만만한 것이 없다. 국가권력이 다양한 주체의 협조를 얻어 이루어지는 복잡하고 다단한 현대의 행정시스템에서는 ‘행정청’의 개념부터 단순하지 않다. 그리고 ‘구체적 사실’이라는 것, ‘법집행으로서의 공권력 행사 또는 그 거부’라는 것도 마찬가지다. 나아가 이에 준하는 행정 작용까지 살피자고 하면 행정소송의 대상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인지 분별하기가 쉽지 않다. 다시 정 전 사장 사건으로 돌아가보자. 집행정지 사건을 심리한 법원에서는 정 전 위원장에 대한 해촉 통지가 공법상 계약에 따른 대등한 당사자의 지위에서 한 의사표시에 해당하여 우월한 지위에서 행한 행정처분이 아니라고 보았다. 공권력의 행사가 아니고 당사자 간의 문제라는 것이 요지다. 그런데 본안 사건에서는 그에 대한 판단을 바꾸었다. 우월적 지위에서 행사한 공권력이라는 취지다. 방심위가 국가기능을 분담하기는 하지만 국가기관과는 독립된 외부 단체라는 점을 고려하면 대통령의 그 위원장직에 대한 위촉이나 해촉은 법 형식적으로 대등한 지위에서의 행위로 볼 여지도 있으나 실질적인 부분까지를 고려하면 우월적 지위에서의 행위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이에 대한 법적 판단은 법원의 입장에서도 직관적이고 단순명료한 것이 아니라 섬세한 검토가 필요한 복잡한 작업이다. 법원이 행정소송의 대상을 넓히는 방향으로 판단을 바꾸어 가고 있다는 이야기들을 많이 한다. 국민의 법적 지위에 영향을 주는 행위라고 판단된다면 적극적인 관점에서 검토하여 행정소송의 본안 심리로 끌어올리는 것이다. 실제로 행정심판위원회에서는 심판대상이 아니라고 하는 것도 법원에서는 행정소송의 대상이라고 보는 등 오히려 행정심판위원회보다 법원이 더욱 유연한 태도를 가지고 있다고도 보인다. 공권력을 법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최후의 보루가 법원이라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하지만 여전히 무엇이 행정소송의 대상이고 아닌지에 대한 기준이 명료하지는 않다. 행정소송의 대상인지 여부에 대하여 하급심과 상급심의 결론을 달리하는 경우도 꽤 많은 편이다. 결국 행정소송을 고려하는 당사자로서는 자신이 문제삼고자 하는 공적 주체의 행위가 법적으로 어떤 성격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하여 치밀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분쟁으로 나설 때에는 그 리스크까지 모두 고려하여 합리적인 판단을 해야 한다.
    같은 사건, 다른 운명
    by 안성훈
    2025.07.27 08:00:00
  • 최근 국내 자본시장에서는 행동주의 펀드의 급부상과 적대적 M&A가 늘어나며, 기업들이 경영권 분쟁에 휘말리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 실제로 최근 몇 년간 행동주의 투자자, 사모펀드(PEF), 소액주주연합의 공격적 움직임이 현저히 늘었으며, 여러 코스피·코스닥 상장사에서 주주총회 안건 상정, 이사 선임·해임 문제를 둘러싼 소송이 빈번하다. 이러한 경영권 분쟁에서 법률적 대응은 필수이며, 그중에서도 가처분은 분쟁 초기에 전세를 뒤집을 수 있는 강력한 무기로 떠올랐다. 가처분은 법원의 본안 판결 이전에 임시적으로 권리를 보호하거나 급박한 손해를 방지하는 긴급조치다. 특히 주주총회 개최, 이사회 결의, 신주 발행 등 중요한 의사결정을 두고 첨예한 대립이 발생할 때, 법원의 가처분 결정은 그 자체로 기업의 경영권 향방을 결정짓는 위력을 발휘한다. 경영권 분쟁 현장에서도 “기업가치가 불확실성으로 인해 빠르게 하락하고 있으니 법원의 신속한 판단이 절실하다”는 호소가 빈번하게 제기될 만큼, 가처분의 신속한 대응은 기업가치 보호와 직결된 필수 절차가 되었다. 경영권 분쟁에서 빈번한 가처분의 유형과 실제 사례 경영권 분쟁에서 자주 사용되는 가처분 유형으로는 의안 상정 가처분, 의결권 행사 금지 가처분, 이사 직무집행정지 가처분, 신주 발행금지 가처분 등이 있다. ①의안 상정 가처분-주주제안권 보호의 수단 경영권 분쟁에서 자주 부각되는 것은 의안 상정 가처분이다. 회사가 소수주주의 정당한 주주제안을 이유 없이 거부할 때, 법원이 개입하여 회사로 하여금 해당 의안을 강제로 주주총회에 상정하도록 하는 조치다. 공격자 측은 일반적으로 정관 변경과 이사·감사의 해임 및 선임 안건을 상정하도록 요구하고, 회사가 이를 거부하면, 법원이 강제상정하도록 명한다. 방어 측은 이러한 가처분 신청이 제기될 경우, 즉시 주주제안의 적법성 여부와 이를 거부할 정당한 사유가 있음을 철저하게 입증해야 한다. 2025년 진원생명과학에서는 2대 주주인 투자조합 측에서 주주제안권을 행사해 이사 선임 등 의안의 주주총회 상정을 요구했으나, 회사 측이 이를 거부하면서 법원에 의안 상정 가처분을 신청했고, 법원이 이를 인용한 사례가 있다. 소수주주가 주주총회 그 자체의 소집을 청구하는 경우도 있는데 회사가 이를 거절하는 경우 비송사건인 임시주주총회소집허가 신청 사건이 제기되기도 한다. ②의결권 행사 금지 가처분-주주 권리 제한의 엄격한 기준 상법상 각종 의결권 제한 규정의 적용을 받거나, 대량보유보고의무를 위반 또는 냉각기간을 위반한 주식을 통해 의결권을 행사하려는 경우, 이를 법원이 강제로 제한할 수 있다. 또한, 의결권 행사 금지 가처분의 변형된 형태로 의결권 행사 허용 가처분이 제기되기도 한다. 실제로 2025년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 과정에서 영풍·MBK 연합이 의결권 행사 허용 가처분을 신청하였으나, 법원은 상법 제369조 제3항(상호주 의결권 제한 규정)을 근거로 의결권 행사 허용 가처분을 기각했다. 따라서 기업은 평소 상호주 관계 등 주요 주주의 지분구조를 철저히 점검하여 법적 취약점을 파악·보완해야 한다. ③이사 직무집행정지 가처분-경영진에 대한 치명적 위협 이사 선임의 주주총회 결의에 하자가 있거나, 이사의 배임·횡령 혐의가 소명되면 법원은 신속히 직무집행을 정지시키고 직무대행자를 선임한다. 이는 경영진에게는 치명적인 조치로, 특히 가처분이 발령되면 해당 이사는 경영 일선에서 배제된다. 기업은 혐의가 사실이 아니거나 경미하다는 점과 함께, 이사의 직무가 중단될 경우 회사가 입을 회복하기 어려운 피해 가능성을 적극적으로 소명해야 한다. ④신주 발행금지 가처분-지분희석에 대한 법원의 엄격한 통제 기존 경영진이 제3자에게 우호적 지분을 부여하는 방식으로 신주를 발행하여 기존 주주의 지분을 희석하려 할 때, 법원은 그 발행 목적의 타당성을 면밀히 검토한다. SM엔터테인먼트의 경우 법원은 신주 발행금지 가처분을 인용한 반면, 한미사이언스는 정당한 자금조달 목적을 인정하여 기각한 사례가 있다. 따라서 방어 측은 신주 발행 목적과 절차의 공정성을 철저히 준비하여 법원의 인용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해야 한다. 법원의 가처분 인용 기준과 대응전략 법원은 가처분 신청에 대해 본안 소송에서의 승소 가능성과 긴급한 보전 필요성이라는 두 가지 핵심 요소를 중심으로 엄격히 판단한다. 이를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명확한 증거와 설득력 있는 논리를 제시해야 한다. 예컨대, 공격자 측은 이사의 위법행위를 구체적으로 입증하거나 주주총회 소집 지연 등으로 인해 회사가 중대한 손해를 볼 우려가 있음을 소명해야 한다. 반면 방어 측은 상대방이 제기한 의혹의 사실관계가 부정확하거나 과장된 것이며, 가처분 조치가 회사에 오히려 심각한 피해를 초래할 것임을 신속하고 명확하게 제시해야 한다. 실무적 가처분 대응전략의 필수 원칙 기업은 상대의 가처분 신청을 예상하여 평소에 계약서, 이사회 의사록, 공시자료 등의 관련 증거를 철저히 보관하고 관리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또한 분쟁 초기 단계에서 상대가 제기할 수 있는 법적 이슈를 미리 파악하고 준비해야 한다. 가처분 신청에 대한 신속하고 정확한 대응은 단순한 법적 절차를 넘어 기업 경영 안정의 근간을 지키는 중요한 전략이다. 또한 가처분이 인용되어 기업이 위기에 처할 경우에도 본안 소송을 철저하게 준비하여 대응하는 것이 중요하다. 본안 소송의 향배에 따라 가처분의 효력을 배제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또한, 본안 소송에서 승소하기 위한 철저한 준비 없이는 궁극적인 승리를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경영권 분쟁에서 가처분이란 단순한 임시적 법적 구제 수단이 아니라 기업의 미래를 좌우하는 전략적 도구다. 적절한 상황에 정확한 시기를 골라 사용한다면, 분쟁에서의 주도권을 잡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하겠지만, 반대로 무리하게 남발하거나 부실한 대응을 할 경우 오히려 회사를 위기에 빠뜨릴 수도 있다. 따라서 가처분 대응전략은 언제나 신중하고 치밀하게 계획되고 준비되어야 하며, 단기적 전술을 넘어 기업 경영의 장기적 안정성을 확보하는 관점에서 접근해야 할 것이다.
    가처분 신청의 전략적 활용과 방어법
    by 최승환
    2025.07.26 09:00:00
  • “첫째도 입지, 둘째도 입지, 셋째도 입지.” 부동산 시장에서 자주 회자되는 이 문장은 부동산 투자를 할 때 입지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강조하는 대표적인 표현이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입지’가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서는 아직까지도 피상적인 이해에 머무는 경우가 많다. 많은 이들이 입지를 지하철역의 거리, 대형마트나 백화점의 유무, 학군과 같은 물리적 요소로만 판단하고 있고 주요 부동산 플랫폼도 이러한 물리적 요인들을 입지의 선택 기준으로 활용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 아파트 가격을 견인하고, 수요자의 심리 이동을 결정짓는 요인은 눈에 보이는 물리적 조건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최근 한 언론사가 발표한 서울 아파트 단지별 연소득 상위 30곳을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강남구, 서초구, 용산구, 성동구, 영등포구 등의 주요 단지가 상위권에 올랐다. 이들 단지의 평균 가구 연소득은 3억 원에서 많게는 10억 원에 이르며 고소득 전문직, 기업가, 자산가들이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이들 단지가 반드시 지하철역이나 대형 상업시설 인근에 위치하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오히려 교통·교육·편의시설 측면에서 일부 열위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 아파트 시세는 같은 구의 다른 아파트들에 비해 상대적인 강세를 유지하고 있었다. 즉 입지를 단순한 물리적 거리의 문제로만 해석하는 기존 접근 방식은 현실의 시장 구조를 온전히 반영하지 못한다고 할 수 있다. 이른바 ‘눈에 보이지 않는 입지’의 핵심은 해당 지역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사회적 특성과 경제적 수준에 있다. 단지에 거주하는 이들의 소득 수준, 직업군, 삶의 방식 등이 집값 형성에 미치는 영향이 물리적 환경보다 더 본질적인 기준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이 같은 경향은 비단 강남 3구에만 해당하지 않는다. 흔히 차상급지로 분류되는 성동구, 마포구, 강동구 등도 강남3구 주요 단지 못지않은 소득 수준을 보여주고 있다. 이 지역들은 특히 한강 벨트를 중심으로 한 핵심 주거지에 고소득 맞벌이 부부의 진입이 활발했던 곳으로, 실거주 수요와 자산 방어력이 동시에 작동하고 있는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 이들 지역 내 주요 단지의 거주자 역시 중위 소득 대비 두 배 이상 높은 연소득을 기록하며 ‘보이지 않는 입지’의 유효성을 입증하고 있다. 우리가 이해해야 할 입지란, 단지 주변에 무엇이 있느냐가 아니라 그곳에 누가 살고 어떤 삶의 수준이 유지되고 있는가에 대한 통합적 개념으로 바뀌고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입지의 평가는 거리 중심의 수치가 아닌 ‘사람’ 중심의 구조로 재편하고 있으며, ‘민도’라는 변수가 아파트 가격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인이 되어가는 것이다. 부동산 시장의 양극화가 더욱 심화되는 흐름 속에서, 입지를 판단하는 시각 또한 보다 정교하게 진화해야 한다. 이제는 눈에 보이는 조건이 아니라 사회적 수준이 높은 집단의 주거 선호를 얼마나 끌어들일 수 있는지가 입지의 핵심 기준으로 자리잡고 있다. 결국 아파트 투자의 성패는 결국 ‘그 단지에 어떤 사람이 사는가’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25년 부동산 시장의 입지 판단 기준은 달라졌다. “첫째도 사람, 둘째도 삶의 수준, 셋째도 그들이 선택한 곳”이다. ‘보이지 않는 입지’를 읽어내는 안목이야말로 지금 이 시장에서 가장 중요한 경쟁력이 아닐까.
    지하철보다 사람, 입지의 기준이 바뀌고 있다
    by 윤수민
    2025.07.26 07:00:00
  • 정책은 이성의 산물일까, 감정의 표현일까. 공공정책이란 이름 아래 제안되는 수많은 제도들은 과학적 근거, 전문가의 논리를 바탕으로 움직이는 듯 보인다. 하지만 실제로 정책을 움직이는 힘은 합리성을 넘어 정서와 감정, 그리고 공감으로 뒷받침된다. 그런 이유에서 ‘정책 브랜드(policiy brand)’란 개념이 새삼 주목받고 있다. 일반적으로 정책을 논할 때의 필요조건은 합리성이다. 문제 진단, 대안 탐색, 비용 편익 분석. 이 모든 과정이 이성적 판단의 영역에 속한다. 그러나 현실의 정책은 종종 그 합리적 울타리를 넘어서는 대중의 정서와 정치적 역학에 좌우된다. 그래서 국민이 정책을 어떻게 기억하고, 어떤 이미지를 가지고 있으며, 그 정책과 어떻게 정서적으로 연결을 맺고 있느냐도 중요하다. 즉 정책은 단순히 이성적 설계물을 넘어 ‘감정적 언어로 포장된 정치적 선택’으로도 표현된다. 때문에 정책이 성공적으로 정착하기 위해서는 논리적 타당성이라는 기초 위에 국민의 공감이라는 정서적 지지대가 굳건히 세워져야 한다. 대부분의 기업은 과학적 근거와 합리적 추론을 내세워 정책 제안을 한다. ‘우리는 이러한 데이터를 갖고 있습니다’, ‘국제 비교 지표가 있습니다’, ‘전문가 검토를 거쳤습니다’와 같은 익숙한 접근을 선호한다. 그리고, 정부의 담당자들이 합리적인 기준에 의해 최적의 선택을 할 것으로 믿는다. 하지만 이미 1940년대에도 행동경제학의 아버지였던 하버트 사이먼은 정부정책의 선택과정에서 공무원 역시 ‘한계적 합리성’의 틀 안에서 최적의 해법보다는 ‘만족스러운 해법’을 찾는 경향이 있음을 밝혔다. 정책결정의 과정에서도 정책의 수용 과정에서도 단순히 합리적인 접근만으로는 정책이 받아들여지기 힘들다. 지난 2005년 경주로 지역선정이 된 중저준위 방사성 폐기물 처리장의 경우만 봐도, 초기 필요성과 방사성 물질이 실제로 위험하지 않다는 주장만 반복하다가 굴업도에서 부안까지 19년 동안 부지선정을 못하고 표류했다. 결국 2005년 전문가뿐만 아니라 시민단체를 설득하고, 지역사회 발전과 실생활에 이점을 준다는 구체적인 스토리를 통해 지역민을 설득하면서 성공적으로 정책을 집행할 수 있었다. 이 외에도 미국산 소고기 사태나, 의대정원 2000명 증원, 초등학교 5세 입학 등 합리적으로는 필요하다고 생각될 수 있는 정책들도 ‘왜, 어떻게’라는 구체적인 스토리라인을 만들지 못하면서 정책과정에서 큰 고통을 겪기도 했다. 이러한 정책실패는 단순히 정책실패에 끝나지 않고 오랜 기간 사회적 후유증을 낳기 때문에 정책의 초기 단계부터 어떻게 정책을 만들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이런 점을 고려했을 때 기업의 정책 담당자들은 회사가 추구하는 정책을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정책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공공의 서사’ 속에 위치시키는 노력을 병행해야 한다. 첫째, 정책에 ‘이야기’를 입히고, 숫자를 넘어서는 서사를 만들어야 한다. 건조한 통계를 넘어 그 정책이 누구의 삶을 어떻게 바꿀 것인지 손에 잡히는 이야기를 보여줘야 한다. 예를 들어, 환경 정책이라면 탄소 배출량 감소 그래프에 그치지 말고, 맑은 공기 속에서 마스크를 벗고 뛰어노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함께 들려주는 식이다. 생생한 스토리는 정치인에게는 명분과 비전을, 국민에게는 공감과 참여의 동기를 제공한다. 둘째, ‘핵심 가치’를 명확히 하고 ‘상징’을 만들어야 한다. 정책은 복잡한 개념의 묶음이어서는 안 된다. 간결하고 강력한 슬로건이나 상징적 이미지를 통해 정책의 본질을 압축해야 한다. 독일의 산업계는 높아가는 임금과 노후화되는 산업시설을 바꾸기 위해 정부의 정책변화가 필요했다. 그들은 정부와 함께 ‘인더스트리 4.0(Industry 4.0)’이라는 슬로건 아래 제조업과 ICT의 결합을 통해 국가차원에서 스마트공장, 디지털 전환을 촉진하는 캠페인을 만들어 냈다. 명확한 아이덴티티를 통해 정치권의 지지층과 국민의 정서적 유대감이 형성했다. 셋째, ‘참여의 장’을 확장해야 한다. 정책은 일방적인 선포가 아니라 소통의 과정이다. 국민과 이해관계자들이 정책 형성 과정에 직접 참여하는 길을 넓히고, 그들의 의견이 반영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단순히 정보 제공을 넘어, 함께 문제를 정의하고 해결책을 모색하는 공동의 경험을 만들어야 한다. 합리적 근거는 전문가의 언어일 수 있으나, 참여는 모두의 언어라는 점을 잊지 말자. 국민은 자신들의 목소리가 담긴 정책에 더 큰 애정을 느낀다. 사소해 보이더라도 국민의 여론을 조사하거나 하는 방법들은 매우 효과적이다. 넷째, 과학과 합리기반의 단어들을 ‘공공의 언어’로 번역해서 설명할 필요가 있다. 정책 제안은 종종 전문가 언어에 갇힌다. 하지만 매력 있는 정책 브랜드는 누구나 이해하고 감정적으로 반응할 수 있는 언어로 말한다. ‘위해 우려’라는 말보다 ‘우리 아이의 안전’이라는 말이 사람들의 마음에 닿는다. 마지막으로 ‘지속적인 소통’으로 신뢰를 쌓아가야 한다. 정책 수립되어 만들어지는 것이 끝이 아니다. 정책이 집행되는 과정에서도 기업에 좋은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는 정책 추진과정에서 정책을 안착시키고 지속될 수 있도록 정부를 지원하고 이해관계자들과 소통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정책과정에서 성공과 실패를 공유하고, 지속적으로 대안을 공유하면서 국민과 이해관계자 모두와 정서적 거리를 계속 좁혀가야 한다. 그래야 정책성과의 열매를 맺을 수 있다. 감정 없는 정책은 제안될 수는 있어도, 살아남기 힘들다. 정책은 정서적 공감대를 형성할 때 비로소 사회적 선택을 받는다. 데이터와 그래프만으로는 부족하다. 정책은 ‘좋은 말’이 아니라 ‘내 이야기’가 될 때 힘을 얻는다.
    정책은 숫자보다 ‘서사’를 만들어야
    by 이보형
    2025.07.24 10:37:56
  • 지구가 점점 더 뜨거워지고 있다. 동남아시아의 열대성을 방불케 하는 도심 속에 선 사람들은 '기후'가 아닌 '재난'의 중심에 서 있는 것처럼 느낀다. 기후 위기와 환경 재난은 더 이상 막연한 미래가 아니라, 지금 우리가 직면한 현실이다. 그런 무더운 시간 속에서 예술이 우리에게 줄 수 있는 ‘블루력’은 무엇일까. 냉방보다 오래 지속되고, 차가운 물보다 더 깊이 스며드는 감각. 자연을 관조하며, 순환과 흐름을 새롭게 체감하게 만드는 예술적 경험이다. 최근 예술계에서 현대미술 아티스트들은 두 축, ‘환경에 대한 각성’과 ‘내면적 치유’를 공감각적으로 풀어낸다. 환경에 대한 경각심과 성찰을 유도하는 대표적인 현대미술 사례로는 2019년 베니스 비엔날레 황금 사자상 수상작, 리투아니아 작가 3인(루길레 바르즈쥬카이테, 바이바 그라이니테, 리나 라페리테)의 협업작 ‘태양과 바다·Sun & Sea’를 들 수 있다. 최근 한국에서는 뷰티 브랜드 탬버린즈의 초청으로 서울 성수동에서 국내 첫 공연이 진행되며 다시 한번 화제가 되었다. ‘태양과 바다 : Sun & Sea’는 실내 전시장에 인공 해변을 설치하고, 수십 명의 배우가 하루 종일 해변에서 여유를 즐기는 피서객을 연기하는 구조로 구성된다. 배우들은 해변에 누워 책을 읽거나, 개를 산책시키고, 아이들과 공놀이를 하며 평범한 일상을 이어간다. 관람객은 무대 아래가 아닌 복층 위층에서 내려다보며, 일종의 ‘태양의 시선’으로 휴양지의 한 장면을 조망하는데, 아래에서 들려오는 오페라 형식의 음악은 평화로워 보이는 장면 속에서 은연중에 ‘기후 위기 속, 이 풍경이 언제까지 가능할까’라는 질문을 던지게 만든다. 생태와 기후변화에 대한 사회적 메시지를, 유쾌하고도 날카롭게 전달하기에 성공적이었다. 기후 위기에 대한 예술적 접근이 날 선 경고음이라면, 자연을 마주하는 또 다른 예술의 역할은 감각적 치유에 있다. 정서적 이완과 공감이 가능한 임창민 작가의 작품을 소개한다. 임창민 작가가 담아낸 자연의 장면은 압도적으로 푸르다. 현대적인 건축미가 차갑게 느껴지는 아부다비 루브르 박물관의 실내 창 너머로, 시선이 닿는 끝까지 펼쳐진 수평선 위에 이는 파도와 물결, 그리고 햇빛에 반사되어 반짝이는 윤슬이 실제 바다처럼 느껴지는 아부다비 해변을 고요하게 감상해보자. 스위스 마터호른의 한 호텔 내부에서 창을 통해 고요한 설원 위로 눈발이 흩날리는 풍경이 펼쳐지기도 한다. 이른 아침 새하얀 눈과 푸른 알프스산맥이 맞닿는 장면은 시각적 온도를 단번에 낮추며 관람자의 체온까지 식혀주는 듯한 시원한 몰입감을 유도한다. 이처럼 임창민 작가는 멈춰 있는 실내의 사진과 창밖 자연의 영상 작업을 결합한 독창적인 방식을 통해, 자연의 움직임과 시간의 흐름을 한 화면 안에 담아내 온 작업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이탈리아 돌로미티, 포틀랜드의 폭포와 호수, 한국의 섬진강과 대관령 등 그가 직접 머물며 기록한 아름다운 블루의 풍경을 창을 통해 전달한다. 작품 속에 항상 자리하는 ‘창’이라는 모티프는 단순한 액자가 아닌 ‘시간의 프레임’으로 작동하는데, 자연의 미세한 움직임이 화면 속에 포착되며, 정지된 듯 흐르고 흐르는 듯 멈춰 있는 시공간의 경계를 드러낸다. 이를 통해 관람자는 계절의 흐름, 자연의 호흡, 그리고 자신의 기억과 감각이 겹쳐지는 새로운 감각을 경험한다. 특히 두 장소를 작가의 시선과 기술을 통해 하나의 이미지로 병치시키며, 정제된 공간감과 생명력 넘치는 자연이 공존하는 이중적 풍경을 형성한다. 이러한 시각적 긴장과 조화는 관람자로 하여금 무더운 여름 한가운데서도 잠시 머물고 싶게 만드는 ‘감각적 청량함’을 선사하며 서로 다른 시공간을 넘나드는 비물리적 여행을 유도한다. 폭염 속에서도 전시장을 찾는 이들이 각자의 속도와 온도로, 예술과 공명하며 ‘Chill’해지기를 바란다. 자연의 영속성과 시간의 순환에 대한 현대미술 작가들의 사유는 결국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감각적 생존 전략이며, 무엇보다도 이 여름을 견디게 하는 가장 우아한 ‘블루력’일지도 모른다.
    기후 위기와 예술의 응답, 지금 필요한 ‘블루력’
    by 박소정
    2025.07.16 15:30:54
  • 제주에 머문 지난주, 많은 건축물을 보고 다녔다. 소문난 건축물을 순례하는 내내 왜 건축을 예술 영역에 포함시키는지 어렴풋하니 수긍했다. 또 세계적으로 일본 건축이 강한 이유도 헤아려봤다. 제주를 대표하는 현대 건축물은 수풍석 뮤지엄과 본태박물관, 방주교회, 포도호텔, 유민미술관, 글라스 하우스다. 이들 건축물만 보러 오는 여행객도 꽤 된다. 모두 일본과 연관돼 있다. 본태박물관과 유민미술관, 글라스 하우스는 안도 다다오(Tadao Ando) 작품이다. 나머지 수풍석 뮤지엄과 방주교회, 포도호텔은 재일 한국인 건축가 이타미 준(Itami Jun)이 설계했다. 둘 다 일본에 뿌리를 뒀다. 볼거리가 흔전만전 널린 제주에서 멋진 건축물과 만남은 색다른 경험이다. 본태박물관과 수풍석 뮤지엄, 방주교회, 포도호텔은 서로 가깝다. 본태박물관은 전시 작품도 수준급이지만 건축물 자체로도 멋지다. 안도는 건축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프리츠커 상을 수상한 세계적인 건축가다. 그의 건축 철학은 자연과 조화, 즉 자연과 조응하는 것이다. 오사카 ‘빛의 교회’와 시코쿠 나오시마 ‘지추(地中)미술관’은 안도를 세계에 알린 걸작이다. 안도는 빛을 활용하는데 탁월하다. 빛의 교회와 지추미술관은 정점에 있다. 안도는 바다와 인접한 지추미술관을 땅 밑으로 설계함으로써 자연을 존중했다. 수년 전 이곳에서 강렬한 인상을 받았다. 버려진 섬을 예술 섬으로 바꾼 것도 놀랍지만 미술관에 대한 고정 관념을 바꿨다. 섭지코지 유민미술관과 강원도 원주 뮤지엄 산(SAN)도 안도 작품이다. 이들은 지추미술관과 여러 면에서 닮았다. 노출 콘크리트를 기본으로 빛과 물을 차용해 비슷한 느낌이다. 유민미술관 역시 수평선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전시공간을 땅 속으로 설계했는데 편안하다. 정원과 전시공간을 잇는 통로는 기발한 발상이었다. 한쪽 벽면을 창으로 뚫었는데 그 프레임 속으로 푸른 파도와 성산이 한 눈에 들어온다. 본태박물관 또한 안도의 건축 철학에 충실하다. 노출 콘크리트와 빛, 물이 어울려 ‘本態, 본래의 모습’이라는 의미를 제대로 살렸다. 관람 동선 끝에 배치한 수련 연못 또한 설계자 의도가 반영된 결과물이다. 유민미술관 앞 ‘글라스 하우스’는 TV 드라마 ‘꽃보다 남자’에 등장한 핫 플레이스다. 바다를 향해 두 팔을 뻗은 V자 건물은 그대로 풍경이 됐다. 건물 안으로 들어서면 천장까지 닿은 바다가 보이는 통유리가 시원스레 펼쳐 있다. 글라스 하우스에서는 제주 농산물로 빵을 굽는다. 제주의 바람과 물, 흙이 키운 당근과 감자, 마늘, 호박, 꿀이 주된 식재료다. 안도의 작품이 한국과 일본에서 사랑받는 이유는 두 나라 정서가 비슷한 때문이다. 두 나라 국민들은 여백 미와 사색에 잠겨도 좋을 단아한 분위기에 푹 빠진다. 제주에서 안도와 함께 거론되는 스타 건축가는 이타미 준이다. 한국명은 유동룡이다. 그는 김수근 건축상과 프랑스 예술훈장 슈발리에와 레지옹 도뇌르 훈장, 일본 최고 건축상인 무라노 도고상을 수상했다. 방주교회와 포도호텔, 수·풍·석 뮤지엄에는 이타미 준의 건축 철학이 온전히 반영돼 있다. 이타미 준 또한 자연과 조화를 지향한다. 현지인보다 관광객들이 더 많이 찾는 방주교회도 각별하다. 물위에 떠 있는 노아의 방주를 형상화했는데, 삼방산을 향해 나갈 채비를 마친 모습이다. 최근 내부 문제로 소란스럽다니 안타깝다. 비오토비아 수풍석 뮤지엄은 물과 바람, 돌을 모티브 삼았다. 많은 이들은 이곳에서 위안을 얻는다. 수 박물관은 천단을 연상케 하며, 풍박물관에서는 무시로 바람 소리를 듣는다. 이타미 준의 딸은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2024년 제주 저지마을에 유동룡 박물관을 열었다. 두 사람 외에도 일본에는 내로라하는 건축가가 즐비하다. 우리는 한 명도 없는 프리츠커 상을 무려 10명이나 받았다. 안도 다다오, 단게 겐조, 카즈요 세지마, 이소자키 아라타, 이토 토요, 쿠마 켄코 류에 니시자와 등이다. 지난해 도쿄여행 당시 들린 네즈 미술관도 프리츠커 상을 받은 쿠마 켄고(Kengo Kuma) 작품이다. 네즈 미술관은 미술관 자체가 빼어난 작품이다. 대나무와 목재로 설계한 진입부는 인상적이다. 이 길에 서자 어린시절 추억이 되살아났다. 하코네 폴라 미술관도 매력적이다. 푸른 숲 속에 서 있는 미술관은 한 마리 학을 닮았다. 흰색과 강렬한 절제미로 눈길을 끈다. 일본 건축은 왜 이렇게 잘 나갈까. 장인정신과 섬세함이 바탕에 있다. 일본에는 수 백 년 된 기업이 흔한데, 건축 또한 이런 토양에서 구축됐다. 자연과 조화를 추구하는 정신문화도 다른 요인이다. 한국과 일본 건축은 검소하나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나 사치스럽지 않다는 ‘검이불루 화이불치(儉而不陋 華而不侈)’ 정신을 가장 잘 구현하고 있다. 지진과 쓰나미, 화재 등 잦은 자연재해와 두 차례 원폭, 도쿄공습 등 대규모 전쟁도 건축 발전으로 이어졌을 것으로 짐작한다. 다시 짓고 튼튼하게 짓고 아름답게 지으려는 과정에서 세계 최고 수준 건축문화를 낳았다. 1995년 대지진 참사를 겪은 고베가 건축학도들에게 실험장인 이유다. 한국에도 프리츠커 수상자가 나오길 기대하는 이들에게 제주 건축기행을 권한다. /서경IN
    ‘프리츠커 상’ 10명 배출한 일본 건축의 저력
    by 임병식
    2025.07.15 16:01:39
  • 최근 미국의 '골든 돔 법안(Golden Dome Act)'과 관련 논의는 미사일 방어 체계의 미래가 어떻게 진화하고 있으며, 이러한 변화가 한국의 안보 전략에 어떤 함의를 가지는지에 대한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과거 아이언 돔(Iron Dome)이 보여준 근접 방어의 성공 사례를 넘어, '골든 돔'이라는 새로운 개념은 광범위하고 다층적인 방어망 구축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톰 크래머(Tom Cramer) 상원의원과 댄 설리번(Dan Sullivan) 상원의원이 발의한 '골든 돔 법안'은 미사일 방어 시스템의 통합과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는 단순히 새로운 미사일 요격기를 추가하는 것을 넘어, 기존 및 신규 역량을 조화롭게 연결하여 하나의 거대한 방어망을 구축하려는 시도이다. 특히, 우주 기반 센서와 인공지능(AI) 기술의 적극적인 활용은 '골든 돔'이 지향하는 미래형 미사일 방어의 핵심 요소이다. 즉, 오늘날 미사일 방어 시스템은 특정 위협에 대한 대응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골든 돔'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부터 극초음속 미사일에 이르기까지 모든 유형의 미사일 위협에 대한 포괄적인 방어 능력을 목표로 한다. 이는 다양한 속도와 고도에서 작동하는 요격 미사일, 첨단 레이더,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우주 기반 추적 및 탐지 시스템의 통합을 요구한다. 한반도의 특수한 안보 환경을 고려할 때, '골든 돔' 개념은 한국의 미사일 방어 전략에 다음과 같은 시사점을 제시한다. 첫째, 다층 미사일 방어 체계의 고도화이다. 현재 한국은 한국형 미사일 방어 체계(KAMD)를 구축하고 있지만, 북한의 미사일 능력 고도화, 특히 극초음속 미사일 개발에 대한 대응 역량 강화가 시급한 실정이다. '골든 돔'이 제시하는 다층 방어망 개념은 한국이 이미 운용 중이거나 개발 중인 패트리어트, 천궁-II, L-SAM 등을 더욱 유기적으로 연결하고, 상층 방어 역량을 강화하는 데 활용될 수 있다. 둘째, 우주 기반 자산의 중요성 증대이다. '골든 돔'은 우주 기반 센서 네트워크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한국 역시 정찰 위성 개발 및 운용을 통해 북한 미사일 발사 징후를 조기에 탐지하고 추적하는 역량을 강화하고 있는데, 이와 더불어 저궤도 위성군을 활용한 미사일 경보 및 추적 시스템 구축을 장기적인 목표로 추진해야 한다. 이는 지상 레이더의 한계를 극복하고, 발사부터 요격까지의 시간을 확보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할 것이다. 셋째, 인공지능(AI) 및 데이터 통합의 가속화이다. '골든 돔'은 방대한 센서 데이터를 통합하고 분석하며, 최적의 요격 솔루션을 도출하는 데 AI 기술을 활용한다. 한국군도 미사일 방어 시스템에 AI를 도입하여 의사 결정 속도를 높이고, 오탐지율을 줄이며, 복합적인 위협에 대한 대응 능력을 향상시켜야 한다. 다양한 센서에서 수집되는 데이터를 효율적으로 통합하고 분석할 수 있는 플랫폼 구축이 동시 개발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넷째, 한미 동맹과의 협력 강화이다. '골든 돔' 법안 자체가 미국의 국가 미사일 방어 전략의 일환인 만큼, 한미 동맹 간의 미사일 방어 협력을 더욱 강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미국의 새로운 기술과 개념을 공유하고, 연합 훈련을 통해 상호 운용성을 높이며, 궁극적으로는 한미 양국이 하나의 통합된 미사일 방어 체계로 기능할 수 있도록 상호 운용성에도 노력해야 한다. 끝으로 '골든 돔' 개념을 당장 한국에 적용하는 데에는 막대한 비용, 기술적 난이도, 그리고 정치적 고려사항 등 여러 도전 과제가 존재한다. 하지만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이 고도화되고 있는 현실에서, 미사일 방어 능력의 혁신적인 발전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이다. 우리는 최근 발표된 나토의 '상업우주 전략'에서 얻은 교훈처럼, 민간 우주 기업의 혁신적인 기술을 국방에 적극적으로 통합하고, 국제사회와의 협력을 강화하며, AI와 같은 첨단 기술을 선도적으로 도입하여 미래형 미사일 방어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골든 돔'이 제시하는 비전은 단순히 미사일을 막아내는 것을 넘어, 평화와 안정을 유지하기 위한 강력한 억제력을 제공할 것으로 한국도 '골든 돔'의 개념을 바탕으로 더욱 견고하고 포괄적인 방어막을 구축하여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켜낼 때이다.
    ‘골든 돔’과 한국의 우주안보 전략 
    by 최성환
    2025.07.13 17:19:58
  • 소위 ‘티메프 사태’가 발생한 지 1년이 되었다. 티메프 사태는 싱가포르에 설립된 한국계 이커머스(e-commerce) 업체인 큐텐과 한국 내 계열회사인 티몬, 위메프가 플랫폼 내 판매업체들에게 정산 대금을 제대로 지급하지 못하게 되면서 대규모 소비자 피해로 이어진 사건이다. 이보다 3년 전인 2021년 8월 전국을 뒤흔들었던 소위 ‘머지포인트 사태’를 계기로 선불업 등록 면제기준 강화, 선불전자지급수단 할인발행 제한, 선불충전금 보호 등을 주요 내용으로 전자금융거래법이 개정되었는데, 공교롭게도 개정법 시행(2024년 9월) 직전에 티메프 사태가 터진 것이다(티메프 사태에서도 무분별한 상품권 할인발행을 통한 정산대금 돌려막기가 문제되었다). 티메프 사태 발생 이후 정부 차원의 TF가 구성되었다. 금융당국은 판매업체들에게 유동성을 지원하고 소비자들의 결제취소·환불 절차를 도왔고, 관계부처 논의를 거쳐 2024년 9월 전자지급결제대행(PG)업 제도 개선안을 발표했다. 이 개선안에서는 PG사의 정산자금 보호장치 마련, PG업 진입규제 강화, 경영지도기준 미준수 시 행정조치 근거 마련 등 PG업에 대한 규제를 대폭 강화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전자금융거래법 개정 방향이 제시되었다. 금감원은 올해 초 검사업무 운영 계획을 배포하면서 대형 전자금융업자(빅테크사)에 대해 올해부터 정기검사를 실시할 예정이라고 밝혔고, 5월에 네이버파이낸셜에 대한 정기검사를 개시했다. 상기 논의를 반영한 전자금융거래법 개정안도 발의되었다. 이와 관련하여 주목할 점은 이커머스 등의 영업 특성을 고려한 PG업의 범위 조정이다. PG업은 본질적으로 “제3자(타인) 간”의 대금결제를 대행하는 영업이다. 그런데 현행 법규정과 그간 금융당국 실무해석에 따르면 이커머스와 같은 일반 상거래 업체들이 “자기 사업” 영위의 일환으로 수행하는 내부 정산 업무까지 모두 PG업의 범위에 해당하게 되는데, 이것은 과도한 규제라는 지적이 예전부터 있어 왔다. 이를 고려해서 전자금융거래법 개정안은 PG업을 (자기사업이 아닌) 제3자 간 거래의 대가 수수·정산업무를 의미하는 것으로 명확히 하고, 이커머스, 대규모유통업자, 프랜차이즈본사(가맹본부) 등이 자기사업을 영위하는 과정에서 각각 판매업체, 납품업자, 가맹점사업자에 대한 관계에서 처리하는 내부정산업무는 PG업의 범위에서 제외하고 있다. 이에 맞추어 (내부정산업무를 수행하는) 일정 규모 이상의 이커머스업체를 대규모유통업자로 의제하고 판매대금 별도관리의무 및 정산기한 준수의무를 부과하는 내용의 대규모유통업법 개정안도 발의되었다(소위 ‘티메프 방지법’). 문제는 작년에 발의된 개정안이 대통령 탄핵과 대선 정국을 거치면서 반년이 넘도록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그 사이에 올해 3월 온라인 명품 거래 플랫폼 발란의 판매대금 미정산 사태가 터졌고, 발란은 회생절차에 들어갔다). 규제 공백을 해소하고 제도를 정비하기 위한 방법론을 논의하는 데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는 것은 물론이다. 다만 논의가 지연되는 와중에 또 다른 ‘OO 사태’가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규제당국과 국회, 관련 업계가 지혜를 모아 속도감 있게 제도를 정비하고 대응해 나갈 필요성이 제기되는 시점이다.
    티메프 사태, 그 후
    by 유정한
    2025.07.12 09:00:00
  • 기업분할은 경영 효율성 제고와 기업가치 극대화를 위한 중요한 전략적 도구다. 특히 인적분할을 통해 신설법인을 설립하고 이를 별도로 상장시키는 분할재상장은 사업부문별 전문성을 높이고 각각의 고유한 가치를 인정받기 위한 목적으로 활용돼 왔다. 그러나 최근 상장폐지 제도 개선으로 분할재상장 시 존속법인에 대한 심사가 대폭 강화돼 주목을 받고 있다. 기존에는 코스피시장의 경우 분할재상장 시 신설법인에 대한 상장심사에만 집중했을 뿐, 존속법인에 대해서는 별도의 요건 적용이나 심사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는 코스닥시장과는 대조적인 모습이었다. 코스닥시장은 이미 분할재상장 시 신설법인에 대한 상장심사와 별개로 존속법인이 최소요건(자기자본 30억원, 자본잠식 없을 것, 매출액 100억원 또는 당기순이익 20억원 또는 자기자본 이익률 10% 등)을 충족하지 못하는 경우 이를 상장적격성 실질심사 사유로 규정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차이로 인해 우량한 사업부문은 신설법인으로 이전하고, 부실하거나 수익성이 낮은 사업을 존속법인에 그대로 남겨두는 구조의 분할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었다. 이러한 형태의 분할은 존속법인 주주들의 이익을 침해할 뿐만 아니라 시장 전체의 건전성을 해치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코스피시장에도 분할재상장 시 존속법인에 대한 규제가 적용된다. 구체적으로는 존속법인이 최소요건을 충족하지 못하는 경우 이를 상장적격성 실질심사 사유로 추가하는 것이다. 코스피시장의 최소요건은 코스닥시장의 최소요건을 기준으로 하되, 시장 간 차이를 고려하여 더 높은 수준으로 설정될 예정이다. 이러한 제도 변화가 실무에 미치는 영향은 상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먼저, 분할을 계획하는 기업들은 신설법인뿐만 아니라 존속법인의 사업 경쟁력과 재무 건전성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 특히 존속법인에 남게 될 사업의 수익성과 성장성을 면밀히 검토하고, 필요한 경우 사업 포트폴리오를 재조정하는 등의 사전 준비가 필요하다. 또한, 분할 과정에서 자산과 부채의 배분, 인력과 조직의 재편 등을 보다 신중하게 계획해야 한다. 존속법인이 상장을 유지할 수 있는 최소한의 요건을 충족하면서도, 동시에 지속적인 성장이 가능한 사업 구조를 갖추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분할재상장을 고려하는 기업들은 이러한 변화에 선제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 분할 계획 수립 단계부터 존속법인의 상장 유지 가능성을 면밀히 검토하고, 필요한 경우 분할 구조나 일정을 조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 과정에서 상장규정에 대한 깊은 이해와 실무 경험을 보유한 전문가의 조력을 받는다면, 보다 안전하고 효과적인 분할재상장을 추진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이번 제도 개선은 분할재상장이 진정한 기업가치 제고와 주주 이익 증대를 위한 도구로 활용되도록 하는 취지로 이해된다. 편법적인 구조조정이 아닌, 실질적인 경쟁력 강화를 위한 분할재상장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기업들의 신중한 접근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분할재상장과 존속법인의 상장유지…이제는 더 까다로워져
    by 정성빈
    2025.07.05 11:00:00
  • 꿈에서 인간이 동물이나 식물로 변하는 일이 발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장자(莊子, BC369~BC286, 본명은 장주)는 중국 전국시대 사상가 입니다. 그가 어느 날 꿈을 꿉니다. ‘내가 꿈에 나비가 되어 펄럭펄럭 날았는데 유유자적하여 내가 장주인 것을 몰랐다. 그러나 잠에서 깨니 내가 장주인 것을 알자 혼란스러웠다. 나와 나비 사이에는 반드시 구분이 있건만 내가 꿈에 나비가 되었는지 나비가 내가 되었는지 지금 알수가 없구나.’ 중국의 충장세자(忠莊世子) 역시 꿈속에서 자신이 물고기가 되었다가 다시 새로 변하는 꿈을 꾸기도 했습니다. 이 같은 꿈은 과거의 현상만은 아니며, 현대인에게도 발생합니다. 저명한 수면학자 월리엄 디멘트 교수는 자신의 2살도 안된 딸이 꿈에서 깨어나서 ‘아빠, 내가 꽃이었어요’라고 말했다고 전합니다. 이들 꿈에서는 사람이 나비, 물고기, 새나 혹은 꽃으로 변하여 등장합니다. 이같은 현상을 사람이 물화(物化, metamorphosis)되었다고 합니다. 장자나 충장세자는 자신의 삶이 보다 여유있고 자유스러우며, 편안하게 살고 싶은 마음의 일부가 드러난 것입니다. 디멘트 교수의 어린딸은 꽃처럼 예쁘고 사랑을 받고 싶은 심정이 꿈으로 재현된 것입니다. 이같이 꿈에서는 사람이 동물이나 식물 등으로 표상되기도 합니다. 즉, 이들 꿈에서는 꿈 꾼이의 인격의 일부 특성이 꿈으로 투사(projection)되어 나타난 것입니다. 이들 꿈을 게슈탈트 심리치료의 창시자인 펄츠의 방식으로 해석하면, 자신의 심리적인 감정의 일부가 나비, 물고기나 새 등으로 투사된 것입니다. 이들은 해석을 통하여 현실에서 동물처럼 자유롭게 행동하여 체험해 보고 싶은 감정들이 자신의 내면의 일부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이와는 반대로, 꿈꾼이의 내면 감정을 다른 사람에게 투사하는 경우에 투사의 대상이 되는 사람이 물화되어 나타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특히, 트라우마 꿈에서 가해자인 타인은 위협적인 동물로 등장하기도 합니다. 꿈에서 젊은 남성에게 위협과 성폭행을 당했던 여성은 그 남성이 ‘뱀으로 변하더니 그녀의 목을 조르는’ 꿈을 꿉니다. 내가 심리상담을 했던 어느 젊은 여성은 꿈에 뱀이 자신을 쫓아와서 도망가다가 절벽까지 몰립니다. 무서운 뱀이 자신을 공격하는 모습에 크게 놀라서 잠에서 깨어납니다. 자유연상을 통해서 그녀의 억압(repression)되었던 감정이 표출되었는데, 그 뱀은 현실에서 그녀를 괴롭히던 자신과 아주 가까운 사람이었습니다. 어린시절 왕따를 당해 심리적인 고통으로 심한 우울증을 겪고 있던 20대 청년은 심리치료를 받으면서 많은 꿈을 꾸는데 심리상담 중반에 다음과 같은 꿈을 꿉니다. ‘나는 들판에 어떤 사람들과 함께 있다. 그런데 옆에 있던 사람이 괴물로 변한다. 나는 괴물에게 욕하고 소리치고 싸우다가 도망을 간다.’ 2년간의 치유를 받으면서 우울증에서 거의 회복될 무렵에 온전한 자기를 찾는 꿈을 꿉니다. ‘초원에 버섯집이 있다. 버섯 집 문 앞에 화가가 캔버스에 그림을 그리고 있다. 버섯 집 옆에는 풀밭이 있는데 아이들이 뛰어 놀고 있다.’ 그는 자유연상(free association)을 통해서 자신의 꿈을 이해합니다. 꿈에서 화가는 이제는 자신의 마음을 자유스럽게 표현할 수 있는 그 자신이며, 풀밭에 뛰어노는 아이들은 자유를 찾게 된 자신의 내면의 아이라고 받아들입니다. 현대 신경생리학에 의하면 꿈 꾸는 렘(REM)수면 동안에는 현실을 인지하고 판단하는 등 지휘부 역할을 하는 뇌의 전두엽은 활성화되지 않습니다. 이 부분이 활성화되지 않기 때문에 꿈에서는 날기도 하고, 동물이나 식물로 전환이 가능하게 됩니다. 꿈 해석에서 새로운 통찰력을 주었던 프리츠 펄스(Fritz Perls·1893~1970)는 독일출생의 유대계 정신과 의사입니다. 그는 베를린에서 태어나서 성장하였으며 28세에 의학박사 학위를 받습니다. 1926년 프랑크푸르트에서 당시 유명했던 신경정신의학자 골드슈타인(Goldstein)을 만나서, 전체로서 통합된 유기체 이론을 접하고 매우 감명을 받습니다. 1934년 그는 히틀러의 탄압을 피해 남아프리카로 갔는데 거기서 정신분석학회를 창립하기도 하였습니다. 1942년에 프로이트의 공격본능 이론을 비판하는 새로운 이론을 개발하여 ‘자아, 배고픔, 공격’이론 책을 펴고 프로이트 학파와 완전히 결별합니다. 1946년 미국으로 이주하였고, 1950년 ‘알아차림(awareness)'이라는 이론을 정립하는 한편, 처음으로 게슈탈트(Gestalt) 치료라는 용어를 만들어 냈고, 공저로 ‘게슈탈트 치료’라는 책을 펴냅니다. 펄츠는 자유로운 영혼을 지닌 활달한 성격의 소유자였습니다. 엉뚱한 행동으로 사람들을 당황하게 만들었으며 매우 자극적인 쇼맨십으로 좌중을 압도하며 강렬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의 성격에 대한 주변 사람들의 평가는 극단적으로 다양하다. 매우 도전적이고 통찰력이 있으며 영감이 탁월한 사람으로 평가되기도 하는 반면, 엉뚱하고 자기도취적이며 충동적인 사람으로 평가되기도 했습니다. 꿈 해석과 관련해서, 펄스는 융과 마찬가지로 모든 꿈은 꿈꾸는 사람에게 꿈이 보내는 실존적 메시지를 갖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꿈꾸는 사람이 외부의 권위적 인물이 행하는 ‘해석’에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 내면으로부터 그 메시지를 스스로 새롭게 발견할 때 그런 메시지의 존재를 더욱 분명히 느낄 수 있다고 합니다. 꿈에 나오는 모든 요소들은 투사된 자기의 부분들이며, 이들은 이상적으로는 자기에 통합되고 수용될 수 있으며, 적어도 부분적으로라도 자기 것으로 인정될 수 있는 것들이라고 봅니다.
    우리는 왜 ‘장자의 꿈’을 꾸는가
    by 국경복
    2025.07.02 13:48:59
  • 유네스코에서 발표한 2050년 교육에 대한 일곱 가지 예측을 보면, 영유아 교육의 방향이 왜 놀이와 오감교육, 창의성에 중점을 두어야 하는지 알 수 있다. 유네스코는 미래 사회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세상과 함께하는 방법을 배우는 학습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더불어 협력적 회복과 사회적 존재이자 생태적 존재로서 인간의 성장은 창의성과 지속가능성이 바탕이 되었을 때 비로소 가능해진다고 이야기한다. 인공지능(AI) 시대의 생존을 위한 교육의 방향을 ‘창의성’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인공지능은 어느새 우리 사회 곳곳에 자리하고 있다. 반복적이고 복잡한 일을 인공지능이 대신하면서 우리의 삶은 편리해지고 있지만, 그 이면에는 인공지능의 급격한 발전이 가져올 여러 문제에 대한 위기 인식이 대두되는 상황이다. 무엇보다 우리의 아이들은 지금보다 훨씬 진일보한 디지털 시대에서 인공지능과 경쟁하면서 같이 살아가야 하는 만큼, 지금부터라도 인공지능 시대를 대비한 영유아 교육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인공지능 기술을 적절하게 사용하는 데 있어 문제를 직접 해결하고 논리적으로 사고하는 능력은 매우 중요하다. 그리고 인공지능과 공존해야 할 우리의 아이들에게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개발할 수 있는 창의융합적 사고와 스마트 기술 역량이 요구되고 있다. 이러한 창의융합적 사고와 스마트 기술은 주입식 교육이나 일률적인 학습 커리큘럼으로는 키워지기가 어렵다. 그렇다면 인공지능 시대를 살아갈 우리의 아이들에게 필요한 교육은 어떤 교육일까. 바로 영유아의 자율성과 선택이 보장되는 교육, 자연스러운 놀이를 통해 오감으로 체험하며 스스로 창의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교육, 언어와 인지 능력, 창의력과 상상력 등을 키울 수 있는 독서 교육 등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문화산업을 대표하는 할리우드와 첨단기술 IT산업의 발전을 견인하고 있는 실리콘밸리로 유명한 캘리포니아에서는 아이들을 위한 교육에 있어서 행동을 통해 스스로 동기를 부여하고 새로운 방법을 발견함으로써 자신만의 창의적인 결과물을 완성하게 만드는 ‘창의행동력’을 강조한다. 이를 위해 아이들에게 스스로 놀이를 선택할 권리를 부여하고, 책을 통해 타인의 삶을 간접적으로 경험하게 만들며 상상력을 키우고 융합적인 사고능력을 확대시킨다. 여기에 오감 교육과 독서 교육을 통해 지적 능력과 육체적 능력의 균형을 맞출 수 있도록 지원한다. 세계적으로 항상 행복지수 상위권에 머물러 있는 북유럽 국가들의 사례를 보더라도 인공지능 시대에 대응하여 영유아 교육의 핵심을 창의성에서 찾고 있다. 스웨덴, 핀란드, 덴마크 등에서는 전인 교육과 놀이 중심 교육을 통해 개개인의 특성을 존중하며 아이들이 서로 존중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 이렇게 각자의 개성에 맞추어 창의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가 유아교육 단계에서부터 형성되어 있다. 게다가 아이들은 자유롭게 야외 놀이를 즐기며 최대한 원형의 상태로 유지되어 있는 자연환경 속에서 오감을 발휘하여 창의성을 증진할 수 있다. 이러한 창의성은 곧 융복합적 사고로 확장되어 인공지능 시대에 대비할 수 있는 경쟁력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이렇게 선택과 자유가 보장되고 창의력을 중시하는 해외 유아교육의 목표는 미래 인공지능 시대에 대응할 수 있는 역량을 키우는 것에 있다. 우리에게도 아이들의 성장 과정과 조화를 이루는 놀이 중심, 오감 발달, 독서 등을 통해 이루어지는 영유아 교육이 필요하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지나친 경쟁의식 속에서 아이들을 놀이보다는 과도한 학습으로 내몰고, 창의력과 스마트 기술의 습득을 디지털 기기에만 의존하고 있다는 문제를 가지고 있다. 인공지능과 경쟁하며 미래 사회를 이끌어야 할 아이들이 창의적으로 사고하고 행동할 수 없게 된다면, 인공지능 시대를 제대로 살아가는 것이 어려울 수밖에 없다. 지금부터라도 인공지능 시대에 대비한 영유아 교육의 변화가 필요하다. 인공지능 시대의 핵심 역량인 창의융합력과 스마트 기술 역량을 자연스럽게 획득할 수 있도록, 우리의 아이들에게 놀이와 오감을 통해 창의적인 경험을 쌓고 이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융합하여 활용할 수 있는 경험을 쌓을 수 있도록 말이다.
    AI 시대를 대비한 영유아 오감놀이교육
    by 한서정
    2025.07.01 14:55:24
  •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이 익숙한 어린 시절 놀이가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에서는 생존을 건 냉혹한 게임으로 재해석된다. 분홍빛 거대 인형이 “무궁화 꽃이…”를 외치는 동안은 안전하다. 하지만 고개를 돌리며 “피었습니다”라는 외침과 함께 움직임이 감지되면 곧바로 총격이 가해진다. 손에 땀을 쥐는 이 게임은 결승선에 도달할 때까지 이 패턴을 반복한다. 동심의 세계가 무자비한 현실로 전복되는 이 장면은 단순한 놀이를 넘어, 규칙과 긴장, 멈춤의 미학을 내포한 은유적 서사로 작동한다. 어느 순간 에 멈추고 그 상황을 견디어내는 자만이 살아남는 세계. 어쩐지 요즘 현실과 닮아 있지 않은가. 오늘날 국제사회 역시 마치 ‘움직이지 않아야 살아남는’ 게임을 하고 있는 듯하다. 미국 벙커버스터 이란 폭격과 중동의 핵 위협, 일본의 난카이 대지진 전조증상를 비롯한 기후 위기, 경제 불안, 이민자 추방, 글로벌 동맹의 와해 등 복합적인 혼란 속에서 방향을 잃었다. 탈세계화와 다자주의의 약화는 공동체 감각을 붕괴시키고, 국제정치는 피로와 경직으로 가득해졌다. 세계는 정치적·경제적·환경적 스트레스에 시달리며, 일상은 불안과 긴장의 연속이다. 현대인은 마치 만성적인 ‘소화불량’ 상태에 놓인 듯하다. 그렇다면 이런 시대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몸이 불편할 때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위장을 달래줄 무언가를 찾는다. 미국인이라면 분홍빛 소화제 펩토비스몰을 떠올릴 것이다. 지금 이 시대에는 감정과 정신을 안정시켜줄 ‘문화적 소화제’가 절실하다. 흥미롭게도, 그 해답은 한국의 K드라마에서 발견된다. 단순한 스토리텔링을 넘어선 K콘텐츠는 오늘날 문화외교의 새로운 얼굴로 부상하고 있다. 지난 5월 부산 콘텐츠마켓과 칸 국제 페스티벌이 협력하여 칸시리즈 부산(CANNESERIES X BUSAN)을 개최하였다. 매년 프랑스 칸에서 열리는 이 행사는 이번에 부산 벡스코에서 그 상징적 장면을 보여주었다. 그것은 바로 ‘핑크카펫’이다. 전통적으로 붉은 카펫이 권위와 영광의 상징이었다면, 핑크카펫은 친근함과 감성, 위로의 색이다. 이는 정서적 공감과 생명력, 치유의 미학을 품은 K드라마와 맞닿아 있다. 핑크는 단지 시각적 장식이 아니라, 감정의 불안과 트라우마를 다정하게 어루만지는 문화적 치유제다. 많은 이들이 핑크를 ‘귀엽고 여성적인 색’으로 여기지만, 그 이면은 훨씬 깊다. 핑크는 진지함을 전복하고, 권위를 해체하며, 때론 급진적 정치성을 띤다. 역사적으로 핑크는 남성을 상징하기도 했고, 나치 독일에서는 동성애자 탄압의 표식이었으며, 오늘날에는 LGBTQ+ 운동(성소수자 권리운동)의 저항과 해방의 상징으로 재해석되기도 한다. 현대 예술에서는 이러한 핑크를 통해 유희와 자기 표현, 탈중심화의 메시지를 전한다. 예쁜 색을 넘어 사회적 메시지를 담은 다층적 기호인 셈이다. 예술과 철학의 영역에서도 핑크는 단순한 색이 아니다. 페미니스트 이론가 주디스 버틀러는 핑크 옷을 입는 행위조차 젠더 수행(performativity)의 일부라고 본다. 이는 정체성을 해체하는 하나의 정치적 실천이 될 수 있다. 시몬 드 보부아르가 말했듯 “여성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라면, 핑크 역시 사회가 부여한 젠더 코드다. 고정관념을 깨뜨리는 사회적 저항의 형식, 핑크는 색이 아니라 ‘목 소리’다. 핑크는 감각을 자극하고, 기호학적으로 다양한 의미를 내포한다. 이 색은 한편으로는 살갗과 같은 육체성을, 또 다른 한편으로는 순결과 동심, 그리고 에로티시즘을 떠올리게 한다. 퀴어 이론에서는 이분법을 전복하는 유희적 색상으로 핑크를 읽는다. 핑크색 철학은 단순한 색채를 넘어, 문화적 담론 속에서 인간과 사회, 권력과 정체성, 실존을 사유하는 하나의 도구다. 이러한 핑크의 상징성과 K드라마의 감성은 자연스럽게 맞닿는다. K드라마는 한국적 정서, 생명력, 공감의 미학을 바탕으로 복잡한 감정을 섬세하게 다룬다. 폭력적인 현실 속에서도 따뜻한 위로와 희망을 건네며, 세계인의 피로를 달래는 ‘정서적 생존’의 서사를 제시한다. K드라마는 단순한 콘텐츠를 넘어선 소통의 매개이자, 공감과 치유의 외교 수단으로 자리잡는다. 이번 칸시리즈 부산은 단순한 드라마 축제가 아니었다. 50개국, 700개 기업, 2,300여 명의 관계자가 참여한 글로벌 협업의 장이자 새로운 문화외교의 무대였다. 핑크카펫은 그 문을 여는 상징적 열쇠였다. 한류는 단지 인기 콘텐츠를 넘어 세계인과 소통하는 창구로 기능하고 있다. 이와같은 현실 속에서,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외교 정책은 전통적인 ‘가치와 공감’ 중심의 소프트 파워에서 점차 실용주의적 방향으로 선회했다. 경제적 실익, 보수적 가치 확산, 안보 전략과의 연계가 중심이 되며 국제사회의 피로감은 커졌다. 따뜻한 소통보다는 차가운 거래가 지배하는 외교 환경에서, 오히 려 문화의 역할은 더욱 절실해지고 있다. 이러한 피로감에 대한 틈새를 메우는 것이 바로 문화외교다. 그리고 지금 한국은, 인간성을 회복하는 문화적 수단으로서 지친 세계인의 마음을 두드리고 있다. 위태롭고 불안정한 시대에, 핑크는 더 이상 유치한 색이 아니다. 그것은 질문이다. “우리는 어떤 세계를 꿈꾸는가?” K드라마는 그 질문에 대한, 꿈을 현실로 공유하고 실현하는 가장 인간적인 대답이다. 핑크는 바로 그 시대정신의 색이다. 치유와 저항, 공감과 유희, 현실과 상상의 경계를 넘나드는 문화적 펩토비스몰. K드라마는 그 핑크빛 메시지를 담아 세계인을 위로하고 있다. 소통이 단절되고 협력이 무너진 시대에서, 문화외교는 어쩌면 우리의 마지막 생존 게임일지도 모른다. 핑크카펫 위에서 우리는 다시, 유쾌한 생명력을 머금고 ‘움직이지 않고 살아남는 법’을 배우고 있다.
    ‘핑크빛’ 메시지를 담은 K드라마
    by 이경화
    2025.07.01 14:37:38
  • 최근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한 정신적 스트레스를 호소하며 병가를 신청하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 특히 상급자의 괴롭힘을 이유로 진단서를 첨부하여 휴직을 요청하는 경우, 회사는 이를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고민이 깊어진다. 2019년 직장 내 괴롭힘 금지 조항이 근로기준법에 도입된 이후, 이와 관련된 휴직 처리는 인사담당자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실무 쟁점 중 하나로 부상했다. 우선 병가휴직의 법적 지위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병가휴직은 근로기준법에서 직접 규정하고 있지 않은 선택적 제도다. 고용노동부 역시 "병가는 근로기준법에 규정되어 있지 않으므로 병가 사용에 대하여는 단체협약 및 취업규칙 등에 규정되어 있는 경우 그에 따라 처리하면 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따라서 회사는 병가휴직 승인에 있어 폭넓은 재량권을 가지며, 취업규칙에 따라 연차휴가를 먼저 사용하도록 요구하는 것도 기본적으로 가능하다. 법원 역시 직원의 병가신청을 승인할지 여부에 대하여 사용자의 넓은 재량을 인정하고 있다. 이와 같이 회사에 병가신청을 승인할지에 있어 넓은 재량이 있다면 설령 직장 내 괴롭힘이 성립하더라도 사용자는 임의로 이를 부여하지 않을 수 있을까? 선례를 보면 사용자에게 병가 부여에 관한 재량이 있더라도 이러한 인사 재량권을 남용하여서는 안 된다고 보고 있다. 병가를 신청한 직원이 직장 내 괴롭힘을 주장하기 전이나 괴롭힘 조사가 진행 중에는 직장 내 괴롭힘이 객관적으로 성립할지 여부가 불분명하고, 마냥 병가 신청을 승인할 경우 유사한 병가신청 사례가 쇄도할 수 있어 병가신청 승인에 좀 더 넓은 재량이 인정될 것이다. 다만 내부 조사 등을 통하여 직장 내 괴롭힘 성립 여부가 다소 명확해지고, 병원의 진단서도 제출 되었다면 회사가 직원의 병가신청을 거부하는 경우 재량권 일탈 남용으로 위법한 인사조치가 될 수 있다. 심지어 병가승인 거부가 새로운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할 수도 있다. 참고로 최근 사례를 보면 회사 직원이 직장 내 괴롭힘으로 스트레스를 받았다며 근로복지공단에 산재 요양급여를 신청하는 경우 직장 내 괴롭힘이 인정된다고 볼 수 있는 사정이 있다면 요양급여 신청이 매우 넓게 받아들여지는 경향이 있어 보인다. 다만 직장 내 괴롭힘이 어떤 경우에 인정될지 명확하지 않고 또 병원에서 발급받는 진단서의 내용도 천차만별이라 사용자 입장에서 병가승인 요청을 모두 수용해야 할지 적지 않은 의문이 있을 수 있다. 병가 휴직은 직원과 회사 모두에게 매우 중요한 문제이고 적지 않은 조직 내 혼란을 야기할 수 있어 명확한 승인 및 관리 기준을 수립하여 합리성을 확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이를 위해 회사는 다음을 고려 할 수 있다. 첫째, 직원과의 심층 면담을 통해 휴직 신청 사유, 발병 원인, 현재 건강 상태 및 업무 수행의 어려움 등을 파악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직장내 괴롭힘 신고가 있다고 볼 수 있으면 객관적인 조사를 통하여 주장 내용이 근거가 있는지를 파악해야 한다. 둘째, 동료들의 진술서와 해당 직원의 과거 업무 내역 및 현재 업무 진행 상황을 파악하여 업무 수행 능력 저하 여부와 업무에 미칠 영향을 객관적으로 확인해야 한다. 셋째, 가급적 종합병원 또는 대학병원 진단서를 제출하도록 요청하고, 단순히 '임상적 추정'이 아닌, 질병이 업무 및 일상생활에 미치는 구체적인 영향, 필요한 치료 계획 등 전문의의 상세한 소견을 요청하는 부분을 적극 고려할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휴직 승인 후에는 휴직의 목적 외 사용(장기간 해외여행, 겸직 등) 여부를 정기적으로 확인하고, 적절한 인사 조치를 통해 병가 휴직 제도의 공정성을 유지해야 한다. 이러한 체계적인 접근은 직원의 권리를 보호하면서도 회사의 효율적인 인사 운영을 돕고, 상호 간의 신뢰를 높이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차장님이 힘들게 해서 저 한달만 쉴게요"
    by 이태은
    2025.06.28 11:00:00
  • 2025년 현재, 자금난에 직면한 의료재단, 학교법인, 종교법인 등 특수법인의 회생 문의가 급증하고 있다. 고정적인 운영비 지출, 수익사업의 둔화, 부동산 경기 침체가 겹치며 이들 비영리법인도 더는 예외일 수 없게 된 것이다. 이들 법인은 정관상 목적사업의 제약, 설립허가권자의 감독, 영리 추구 금지 등 고유한 법적 특성을 지니고 있어, 회생절차에서도 일반 기업과는 다른 접근이 요구된다. 특수법인의 회생에서는 △정관상 목적사업 제한으로 인한 수익구조 확보의 어려움 △의료법 등 특별법에 따른 영업양수도 제한 △설립허가권자의 감독 및 개입 등 여러 특수성이 장애요소로 작용한다. 그러나 이러한 제약 속에서도 실질적인 회생이 가능하도록 하기 위한 전략적 설계는 충분히 가능하다. 돌파 전략 ① : 수익사업 구조 재정비와 외부 위탁 운영 최근에는 의료재단이나 학교법인의 부속시설을 분리하여 외부에 위탁 운영하고, 법인은 재정적 주체로서 채무만 정리하는 방안이 주목받고 있다. 예컨대 의료법인의 경우, 의료기관의 개설·운영 주체는 여전히 의료법인으로 유지하면서도, 외부 투자자로부터 자금을 출연 또는 대여받고 임원 추천권 등을 부여하는 방식으로 회생계획을 수립한 사례가 있다. 이러한 구조는 법인의 공익적 정체성을 유지하면서도 회생 가능성을 확보할 수 있는 실질적 해법으로 기능한다. 돌파 전략 ② : 자산 양도와 채무 조정의 분리 설계 특수법인의 회생계획은 자산의 환가를 전제로 한 채무정리 구조를 별도로 설계하는 방식이 효과적이다. 이는 법인의 존속을 최소화하면서도, 채무정리 기능만을 수행하도록 하는 구조이다. 실제 종교법인 사례에서는, 회생계획안이 “본점 부동산의 매각과 그 대금을 통한 채권자 일괄변제”를 중심으로 구성되었고, 이는 정관 목적과 종교활동을 침해하지 않으면서도 실질적인 회생을 가능케 했다. 돌파 전략 ③: 설립허가권자와의 사전협의 및 의견청취 절차 활용 특수법인의 회생절차에서는 설립허가권자의 개입이 실질적인 장애가 될 수 있다. 따라서 회생 개시 전부터 주무관청과 비공식적으로 협의하고, 회생계획안 초안을 공유하며, 공익성과 재정건전성 확보 계획을 사전에 제시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채무자회생법상 관계인의 의견청취 절차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공식적인 갈등이 발생하기 전에 공감대를 확보하는 전략이 유효하다. 특히 사전계획안 제출 제도를 활용하면 회생절차 개시 전부터 주요 이해관계자의 동의를 얻어, 절차의 예측가능성과 실행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 특수법인의 회생은 그 자체로 진입 장벽이 있지만, 불가능한 절차는 아니다. 회생계획안 설계의 전략성, 감독 관청과의 조율, 채권자들의 실질적인 수용 가능성 확보가 핵심이다. 단순한 채무조정 수단을 넘어서, 회생의 구조 자체를 새롭게 설계하는 접근이 필요하다. 외부 위탁운영 모델, 자산 환가와 채무 조정의 분리, 설립 허가권자와의 전략적 협의 등을 종합적으로 활용한다면, 특수법인 역시 재정위기 상황을 타개하고 새로운 출발점을 마련할 수 있다.
    특수법인 회생, 실질적 전략에 관하여
    by 이응교
    2025.06.28 09:00:00
  • A씨는 평범한 어느 날 오후, 화성시로부터 예상치 못한 휴대전화 문자 메시지를 받았다. 내용을 확인해보니 ‘자신이 버린 폐기물을 치우라’는 조치 명령이었다. A씨는 당황스러웠다. 이런 중요한 행정명령을 마치 친구와 주고받는 일상적인 문자 메시지처럼 보내는 것이 과연 적절한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시 당국의 입장은 달랐다. 담당 공무원들은 이미 여러 차례 같은 내용을 전자우편으로 발송했으나 A씨가 이를 무시했고, 따라서 문자 메시지로 송달하는 것도 충분히 적법한 절차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우리가 일상에서 사용하는 간편한 소통 수단이 국가기관의 공식적인 행정처분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을까? 이 같은 논란에 대해 대법원은 지난 2023년 명확한 기준을 제시했다.(대법원 2024. 5. 9. 선고 2023도3914 판결). 판결은 단순히 개별 사건의 해결을 넘어서, 디지털 시대 행정처분의 송달 방식에 대한 중요한 법적 원칙을 확립한 의미를 갖는다. 행정처분의 효력은 그 내용이 적법하다고 해서 자동으로 인정되는 것이 아니다. 처분의 내용 만큼이나 ‘어떻게’ 처분을 하느냐, 즉 절차적 적법성이 매우 중요하다. 행정절차법 제24조 제1항은 “행정청은 처분을 하는 경우에는 문서로 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는 행정처분이 국민의 권리와 의무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행위이기 때문에 전달 방식에서도 신중함과 정확성이 요구됨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문자 메시지는 법적으로 어떤 지위를 갖는가? 대법원은 문자메시지가 ‘전자문서’에 해당한다고 명확히 인정했다. 전자문서 및 전자거래 기본법에 따르면 전자문서도 서면문서와 동등한 효력을 갖는다. 따라서 문자메시지라는 형식 자체만으로 그 효력이 부인되지 않는다. 하지만 여기에는 중요한 전제 조건이 있다. 전자문서가 행정처분의 문서로서 유효하려면 반드시 당사자의 동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행정절차법 제24조 제1항 단서 및 제1호) 이는 국민이 자신의 권익에 영향을 미치는 행정처분을 어떤 방식으로 받을지에 대해 선택권을 가져야 한다는 민주적 원칙을 반영한 것이다. 이 사건에서 특히 주목할 점은 A씨가 과거에 같은 내용의 폐기물 조치명령을 전자우편으로 받고도 별다른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행정청 입장에서는 “이미 전자적 방식의 문서 수신에 동의한 것으로 볼 수 있지 않느냐”고 주장할 수 있는 대목이었다. 그러나 대법원은 이러한 논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과거에 전자우편 송달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는 사정만으로는 휴대전화 문자메시지 송달에 동의하였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묵인을 단순하게 동의로 볼 수 없다는 것이 대법원의 입장인 것으로 보인다. 물론 법은 모든 상황을 경직된 기준으로 규율하지는 않는다. 행정절차법 제24조 제2항은 예외적 상황을 인정하고 있다. '공공의 안전 또는 복리를 위하여 긴급히 처분을 할 필요가 있거나 사안이 경미한 경우'에는 말, 전화, 휴대전화를 이용한 문자전송, 팩스 또는 전자우편 등 문서가 아닌 방법으로도 처분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예외 규정의 적용은 매우 제한적이다. 이 사안에서 대법원은 그러한 긴급한 사유를 인정하지 않았다. 폐기물 치우라는 조치명령이 생명에 위험을 초래하거나 즉각적인 공공의 안전을 위협하는 긴급 상황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대부분의 일반적인 행정처분에서 이러한 긴급 사정을 인정받기는 어렵다. 이 같은 법원의 엄격한 기준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과거 가수 유승준씨의 병역 관련 비자 발급 거부 사건에서도 법원은 ‘전화 통보’ 방식으로 이루어진 행정 처분이 위법하다고 판단한 바 있다. 이는 행정처분의 송달 방식에 대한 법원의 일관된 원칙을 보여준다. 현재 우리는 전례 없는 디지털 전환의 시대를 살고 있다. 정부 역시 ‘디지털 정부’를 표방하며 각종 행정 서비스의 전자화를 적극 추진하고 있다. 온라인을 통한 민원 처리, 모바일을 활용한 각종 신청 서비스, AI를 활용한 행정 업무 등이 일상화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분명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 국민들은 더 빠르고 편리하게 행정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고, 정부는 업무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 특히 코로나19 팬데믹을 겪으면서 비대면 행정 서비스의 중요성은 더욱 부각되었다. 하지만 효율성과 편의성만을 추구할 수는 없다. 특히 행정 처분과 같이 국민의 권익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영역에서는 더욱 그렇다. 문자 메시지나 간단한 온라인 알림으로 중요한 법적 의무나 권리가 결정된다면, 이는 적법절차의 원칙에 어긋날 수 있다. 이번 대법원 판결은 디지털 시대에도 변하지 않는 법치주의의 기본 원칙을 재확인한 의미를 갖는다. 기술의 발전이 가져오는 편리함과 효율성은 분명 중요하지만, 그것이 국민의 기본권과 적법절차를 대체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행정의 디지털화는 시대적 흐름이며 필요한 변화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국민의 권익과 절차적 보장이 소홀히 되어서는 안 된다. 진정한 디지털 정부는 기술을 활용하되 그 기반 위에 견고한 법적 원칙과 민주적 가치를 세우는 것이어야 한다. A씨가 받은 그 문자 메시지 한 통은 작은 사건일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던지는 질문은 결코 가볍지 않다. 우리는 어떤 미래의 행정을 원하는가? 편리하지만 자의적일 수 있는 행정인가, 아니면 다소 번거롭더라도 국민의 권익을 확실히 보장하는 행정인가? 이번 판결은 그 답을 명확히 제시하고 있다.
    문자 한 통으로 행정처분…효력 있을까?
    by 안성훈
    2025.06.28 08: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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