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418
  • 통일교가 정치권을 흔들고 있는 가운데 일본 사가현 가라쓰(唐津)에 눈길이 간다. 통일교 최대 숙원인 한일 해저터널의 일본 쪽 기점으로 가라쓰가 거론되기 때문이다. 규슈에 위치한 가라쓰는 한반도와 최단 거리에 있는 일본 땅이다. 부산과 가라쓰를 연결하는 한일 해저터널은 과거 정부에서도 심심치 않게 거론됐다. 연간 한일 방문객이 1,400만 명에 달하는 상황에서 해저터널이 열린다면 한일 관계에 폭넓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하지 않다. 부산에서 가라쓰는 200km, 해저 구간만 140km에 이른다. 영국과 프랑스를 잇는 유로터널 50km(해저 38km)와 비교하면 네 배 이상 길다. 또한 대한해협은 수심이 깊고 물살도 거세다. 100조 원을 훌쩍 넘을 것으로 추정되는 사업비에다 지진·단층·수압이라는 기술적 난관도 해결해야 한다. 무엇보다 사업 성격상 양국 정부 동의 없이는 한 발도 나갈 수 없다. 그런데도 통일교는 수십 년째 이 사업에 목을 매고 있다. 왜일까. 지금까지 드러난 언론보도를 종합하면 통일교는 여야를 가리지 않고 접촉했다. 지난 대선에서는 윤석열과 이재명 후보를 놓고 배팅했다. 이들 로비가 향한 종착점은 ‘한·일 해저터널’이었다. 통일교가 해저터널에 집착하는 이유는 교리와 관련됐다. 문선명 총재는 1981년 ‘국제 평화 고속도로’ 구상을 발표했는데, 도쿄-서울-평양-베이징-모스크바-런던-뉴욕을 잇는 도로망이다. 출발점은 한·일 해저터널이다. 그는 한국을 ‘아담(아버지 나라)’, 일본을 ‘하와(어머니 나라)’로 불렀다. 한국과 일본이 연결돼야 ‘새 문명’이 열린다는 것이다. 통일교가 주관하는 한국과 일본 사이 대규모 합동결혼식도 여기에 근거한다. 종교적 교리는 해저터널이라는 토목 사업으로 구체화 됐다. 터널은 교리만으로 뚫리지는 않는다. 예상 노선은 일본 사가현 가라쓰에서 부산 또는 거제도다. 만일 한일 해저터널이 뚫린다면 세계 최장이다. 그러나 해결해야 할 난제는 많고 사업비 또한 천문학적이다. 결국 통일교 단독으로는 불가능하고, 국가 재정과 인허가, 군사·안보까지 고려한 정부 결단이 필요하다. 로비가 ‘필연적 통로’가 되는 구조다. 부산 정치권이 반복적으로 언급되는 이유도 여기 있다. 부산은 한국 측 관문이자, 사업 성패가 달린 곳이다. 보도에 따르면 통일교는 가라쓰 일대 토지 매입까지 마쳤다. 종교 단체가 특정 노선의 기점 토지를 매입하고, 탐사 목적에서 굴착까지 진행했으니 단순한 부동산 투자를 넘어섰다. 정책 결정을 유인하려는 선행 조치다. 정치권에선 그간 가덕도 신공항, 부산항 물류, 남부권 메가시티 같은 개발 의제가 등장할 때마다 해저터널이 끼어드는 장면이 반복됐다. 지역 숙원과 초대형 프로젝트가 맞물리고 막연한 구상이 ‘미래 먹거리’로 포장되면서 복마전 양상을 띠고 있다. 더 불편한 건 역사 속에서 가라쓰가 차지하는 의미다. 가라쓰는 433년 전 임진왜란 당시 왜군 출병지였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조선 침략을 앞두고 가라쓰 나고야성을 쌓고 병참과 지휘 체계를 구축했다. 18만 명에 달하는 왜군은 이곳에서 부산으로 향했다. 그들이 가라쓰를 택한 이유 또한 통일교가 내세우는 ‘최단 거리’와 같았다. 가라쓰는 조선과 가장 가깝고, 배를 숨기기 쉽고, 대군을 집결시키기 유리했다. 결국 가라쓰는 ‘침략의 기억’을 환기하는 땅이다. 이제 나고야성은 폐허로 변해 황량하지만 400년 전에는 조선을 약탈한 불행한 출발점이었다. 한일 해저터널과 관련해 유럽 사례가 소환된다. 유로터널, 그리고 스웨덴 말뫼와 덴마크 코펜하겐을 잇는 외레순 대교는 국경을 넘어 사람과 물류가 오가는 성공 사례로 회자한다. 그러나 거기에는 전제가 있었다. 제도적 정비, 규범과 표준의 조율, 오랜 신뢰와 축적이 있었다. 터널과 교량은 ‘통합의 원인’이 아니라 ‘통합의 결과’였다. 한·일은 아직 그 단계에 있지 않다. 경제 협력 필요성 못지않은 과거사 인식, 안보 환경, 국민 정서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 게다가 어느 쪽에 수혜가 돌아갈지, 불균형은 어떻게 보완할지, 유사시 안보 취약점은 없는지까지 냉정한 계산이 필요하다. 결론은 간단하다. 한·일 해저터널은 ‘종교 단체 비전’도, 선거 때마다 던지는 ‘한 방 공약’도 될 수 없다. 역사와 현실을 직시한 토대 위에서 비용과 위험, 외교·안보 파장을 국민 앞에 투명하게 설명하고 결정할 사안이다. 400여 년 전 가라쓰에서 부산으로 이어졌던 길은 침략의 통로였다. 오늘 ‘연결의 통로’를 말하려면, 신뢰와 성찰이 선행되어야 한다. 가라쓰가 뜬금없이 뉴스로 부상한 현실은 불편하다. 수년 전 가라쓰 성터에서도 착잡한 심경이었다. 그나마 조선 침략을 인정하고 한일 교류 역사에 초점을 맞춘 사가현립박물관에서 불편함을 덜었다. 해저터널은 기술로 연결할 수 있겠지만, 신뢰는 시간이 만든다. 순서를 바꾸지 말자.
    한일 해저터널과 침략의 땅
    by 임병식
    2025.12.23 14:01:29
  • 국내에서 오픈AI의 챗GPT나 구글의 제미나이 등과 유사한 형태로 이른바 법률 AI챗봇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들이 있다. 예컨대 ‘엘박스AI’ 서비스를 하는 엘박스, ‘슈퍼로이버’ 서비스를 하는 로앤컴퍼니 등이 대표적이다. 현재 이 기업들은 ‘변호사’ 인증을 받은 이용자에게만 AI 챗봇 유료 서비스를 하고 있다. 변호사법 제109조 제1호 등에 따르면 변호사가 아닌 자가 금품 등 이익을 받거나 받을 것을 약속하고 법률상담 등 법률사무를 취급하는 경우 형사처벌(7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 원 이하의 벌금) 대상이 된다. 문제는 앞서 언급한 법률 AI챗봇 서비스가 법률사건의 해결에 필요한 실체적 또는 절차적 사항에 관하여 법률적 의견을 제시하는 것을 포함한다고 볼 수 있어 법률사무의 하나인 ‘법률상담’에 해당할 소지가 높다는 점이다. 따라서 변호사가 아닌 기업이 이 같은 서비스를 일반인에게 유료로 제공하면 변호사법 위반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다만 서비스 이용자가 ‘변호사’인 경우에는 해당 서비스가 독자적으로 법률 의견을 제시해 주는 것이 아니라 변호사의 업무를 보조하는 도구로 기능하게 돼 법률상담을 제공하는 것으로 취급되지 않는다. 결국 이 회사들은 일반인에게는 법률 AI챗봇 서비스를 하지 못하고 변호사에게만 할 수 있는 것이다. 반면 챗GPT나 구글의 제미나이 등은 상황이 전혀 다르다. 이들의 유료버전 서비스는 국내 법률 AI챗봇 서비스와 유사한 수준의 법률상담 결과물을 제시하지만 이용자를 가리지 않고 할 수 있다. 국외 기업은 국내 기업과 달리 전혀 제약을 받지 않고 사실상 법률AI챗봇 서비스를 국내에서 자유롭게 제공하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국내 기업만이 국내법을 엄격히 준수하고 있는 반면 동일하거나 유사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오픈AI나 구글 등과 같은 국외 기업에 대해서는 국내법을 위반하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정부나 관할 행정기관 등은 이에 대해 별다른 규제나 조치를 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이로 인해 국내 기업만 역차별 받아 상대적으로 불리한 규제 환경에 놓여 있다. 더 우려스러운 점은 앞서 챗GPT나 제미나이 등은 국내 법령이나 판례 등에 특화되어 있지 않아 국내 기업 서비스에 비해 환각현상이 훨씬 높다는 것이다. 실제 이들 국외 법률 AI챗봇 서비스를 이용해보면 존재하지도 않는 판례를 인용하거나 전혀 관련성도 없는 판례를 제시하는 경우가 적지 않고 법률적 결론도 틀린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럼에도 일반인들은 챗GPT나 제미나이 등이 제시한 결과물을 신뢰할 수 있는 것처럼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의뢰인이 챗GPT나 제미나이 등을 활용해 자신이 찾은 판례라고 하면서 변호사에 ‘왜 이런 내용도 있는데 반영을 안하냐’고 하는 경우도 있으나 법률 검토에 들어가면 오류가 다반사이다. 변호사는 의뢰인에게 이게 왜 잘못되고 틀렸는지에 관해 설명하느라 진을 빼게 된다. 듣기로는 법적 분쟁이 생겼을 때 변호사 비용을 아끼겠다면서 일반인이 직접 챗GPT나 제미나이를 유료로 사용하면서 소송에서 서면 작성 등에 활용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변호사 비용을 아끼려고 법적 규제를 받지 않는 국외 기업의 챗봇 서비스를 이용하지만 되려 낭패를 보는 사례가 발생할 수 있다. 심지어 법률가조차 제대로 된 검토 없이 AI 법률챗봇 결과물을 활용했다가 낭패를 보는 사례도 생긴다. 국외 기업의 서비스가 법적 규제 대상에서 벗어나면서 국내 이용자는 국외 기업에 이용료를 지급하면서도 도리어 더 위험에 처하게 되는 셈이다. 챗봇이 제공하는 결과물이 틀린 법적 의견을 제공해 손해가 발생하더라도 이용약관상 국외 기업에 그 책임을 묻기도 어렵다. 해당 챗봇서비스를 법적 영향이나 중대한 영향을 주는 목적으로 사용할 수 없다는 식으로 규정하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즉 사실상 유료로 법률서비스를 제공을 용인하면서도 그 결과가 잘못되어 손해가 발생하더라도 책임이 없다는 취지로 볼 수 있다. 만약 피해자가 법적 조치를 취하려고 해도 국외 기업의 본사가 미국에 있어 역시 어려움에 처하게 된다. 예를 들어 제미나이의 경우 국내 법인인 구글코리아가 아니라 미국 델라웨어주 법률에 따라 설립되고 미국법에 따라 운영되는 Google LLC가 운영하고 있다. AI 기술이 적용된 서비스들이 등장하면서 국외 기업의 국내 진출은 더욱 빨라지고 광범위해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국외 기업에 제대로 된 규제를 하지 못해 국내 기업을 역차별함으로써 우리 기업의 경쟁력을 떨어뜨려서는 안된다. 하루라도 빨리 국내외 기업간 규제 불균형을 해소하고 최소한의 형평성을 확보해야 한다.
    '규제 사각지대·환각현상' 외국 법률 AI챗봇
    by 오정익
    2025.12.22 18:31:52
  • 연말정산은 대부분 2월에 진행되는데 왜 ‘연말(年末)’ 정산이라 불리는 것일까? 이는 1996년까지 연말정산은 12월 월급을 지급할 때 했기 때문이다. 이후 소득세법이 개정돼 정산 시기가 1997년 1월, 2008년 2월로 변경되었으나 명칭은 그대로 연말정산으로 쓰고 있다. 그렇지만 연말정산은 시기가 문제가 아니라 ‘정산’에 핵심이 있다. 우리나라 근로소득에 대한 소득세 과세대상은 일반적으로 1월부터 12월까지 1년분의 소득금액이다. 다만 1년분의 소득에 대해 한번에 소득세를 징수하면 조세저항이 크고 사업주가 세금을 공제해서 납부하는 것이 효율적이어서 ‘원천징수’가 이뤄지고 있다. 원천징수는 월 급여액에 따라 간이세액표에 의해 일괄적으로 징수돼 개별 근로자의 소득공제, 세액공제 상황을 반영한 실제 세액과 차이가 발생한다. 따라서 연말정산을 통해 일괄적으로 1년간의 소득에 대한 세액을 확정짓고, 기납부한 원천징수세액과 차이를 ‘정산’하는 것이다. 연말정산을 앞둔 지금 소득공제 항목 자료가 누락되지 않도록 확인하고 챙겨야 한다. 더 중요한 것은 절세 전략을 잘 짜야 한다. 첫째, 자녀가 있는 맞벌이 가정이라면 자녀를 나와 배우자 중 소득이 높은 쪽의 기본공제대상자로 넣어야 한다. 소득세는 기본적으로 소득이 클수록 세율이 증가하는 누진세 구조를 가지고 있어 이러한 원칙에서 선택할 수 있는 상황에서는 소득이 큰 사람이 공제를 받는 것이 유리하다. 둘째, 저축을 한다면 미래 계획을 고려하여 소득공제를 받을 수 있는 항목으로 선택해야 한다. 총급여 7000만 원 이하인 무주택 세대주 또는 배우자가 주택마련 계획이 있다면 300만원 한도로 저축불입액의 40%를 소득에서 공제해주는 주택마련저축 소득공제를 적용받을 수 있는 주택청약저축을 고려해야 한다. 그리고 은퇴 이후를 생각한다면 일정 한도 내 연금계좌 세액공제(공제율 12% 또는 15%)가 적용되는 연금저축계좌와 퇴직연금계좌를 활용하는 것이 좋다. 또한 ISA계좌는 만기시 연금계좌로 전환납입하는 경우 일정 한도 내 전환금액의 10%를 추가로 공제해주므로, 해당 계좌에서 여유 자금 운용시 향후 받을 수 있는 세제혜택의 폭을 넓혀 준다. 셋째, 소득세법에 따라 근로자는 근로소득 간이세액표 세액의 120% 또는 80%에 해당하는 금액을 원천징수해 달라고 원천징수의무자에게 신청할 수 있다. 80%를 선택한다면 연말정산시 추가납부세액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지만, 매달 월급에서 차감되는 원천징수세액이 줄어들어 자금유동성을 먼저 확보할 수 있다. 따라서 총 부담세액은 같지만 이자부담을 줄일 수 있으며, 적용되는 세율이 높은 고소득 근로자일수록 효과가 크다. 넷째, 본인이 고소득 근로자여서 총 급여의 25%를 초과하여 카드 및 현금영수증을 통한 소비를 할 수 없다면, 배우자에게 그 소비를 몰아주어 배우자가 공제받는 금액을 높이는 것이 좋다. 다만 본인과 배우자에게 적용되는 세율차이가 크고, 배우자의 소비를 본인이 가져올 경우 소비금액이 총 급여의 25%를 넘길 수 있다면 누가 공제를 받는 것이 가구 전체의 세금을 줄이는 데 유리한지 비교해야 한다 다섯째, 법인의 의사결정에 영향력을 가진 주주 겸 임직원이라면 이자와 배당을 합친 금융소득이 연간 2000만 원을 넘지 않도록 급여에서 배당으로 조정하는 것이 유리하다. 배당은 비용으로 인정되지 않아 법인세에서는 불리할 수 있지만, 소득세법 상 2000만 원 이하 금융소득은 15.4% 세율로 타 소득과 분리과세된다. 따라서 소득세율이 40%대까지 치솟는 고소득자는 최대한 분리과세되는 항목을 활용하여야 한다. 연마다 이맘때쯤 되면 근로자는 연말정산 환급에 대한 기대가 차오르고, 국세청은 이러한 기대를 반영해 연말정산 미리보기 서비스를 통해 납세자가 직접 계산해볼 수 있는 시뮬레이션을 제공하고 있다. 그러나 납부시점만 다른 연말정산 정산금에 집중하기보다는 전체적인 세 부담을 낮추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큰 부도 작은 종잣돈에서 시작하므로 소중한 절세액을 미래에 재투자해 보자.
    직장인의 필수 연말정산 전략
    by 황찬
    2025.12.19 13:26:13
  • 광장은 뜨겁다. 주말마다 도심은 서로 다른 깃발과 구호를 든 인파로 뒤덮인다. 이것은 단순한 인상이 아니다. 최근 수년간 영국 킹스칼리지런던 등의 국제 조사에서 한국은 빈부 격차와 이념 등 주요 갈등 항목에서 세계 1위를 기록했다. ‘갈등 공화국’이라는 오명이 국제적인 통계로 입증된 셈이다. 표면적으로 한국 사회는 의사 표현이 넘쳐나는 듯 보이지만, 역설적이게도 진정한 ‘소통’은 실종됐다. 광장에는 자기주장만 쏟아내는 거대한 ‘목소리’들만 공명할 뿐, 상대를 이해하고 합의점을 찾아가는 ‘숙의(Deliberation)’는 자취를 감췄다. 지금 우리 사회의 공공정책 결정 과정은 합리적 토론의 장이 아니라, ‘진영 논리’의 전장(戰場)으로 변질되었다. 정책의 타당성이나 사실(Fact) 관계보다 “누가 제안했는가”가 찬반을 가르는 유일한 기준이 된다. 정부는 반대편을 설득할 생각 없이 일방통행하고, 야당은 대안 없는 반대로 국정의 발목을 잡는다. 내가 지지하는 진영의 정책은 선(善)이고, 상대방은 타도해야 할 악(惡)으로 규정되는 이 적대적 공생 관계 속에서 행정의 본질은 길을 잃었다. 이러한 혼란을 잠재우고 갈등을 넘어설 해법은 결국 ‘공공가치(Public Value)’의 회복에 있다. 공공가치란 정부가 일방적으로 던져주는 시혜가 아니라, 시민과 정부가 함께 규정하고 합의해 나가는 사회적 가치의 총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어느 진영이 이기는가”가 아니라, “무엇이 우리 공동체를 위한 공공가치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이다. 물론 모든 사안을 숙의할 수는 없다. 재난 대응이나 긴급한 경제 위기 앞에서는 리더의 신속한 결단이 곧 공공가치다. 하지만 연금 개혁, 에너지 정책, 의료 문제 등 사회 구조를 바꾸는 거대한 난제들은 속도전으로 풀 수 없다. 여기서 필요한 것이 바로 ‘절차적 정의’와 ‘공정성(Fairness)’이다. 이는 단순히 시간을 끄는 요식행위가 아니라, 공공가치를 구성하는 필수적인 기둥이다. 국민은 결과가 다소 불만족스러워도 그 결정에 이르는 과정이 공정하고 자신의 목소리가 경청되었다고 느낄 때 결과를 수용한다. 그러나 현재 우리 정치권의 대응은 공공가치 실현과는 거리가 멀다. 갈등이 터지면 정부는 사후 약방문식으로 수습하거나 형식적인 위원회 뒤에 숨고, 야당은 이를 정쟁의 도구로만 삼는다. 이는 공정성이라는 가치를 훼손하는 공범 행위다. 숙의를 생략한 채 효율성만을 앞세운 정책은 당장은 빨라 보일지 몰라도, 결국 거센 저항에 부딪혀 사회적 비용만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비효율의 역설’에 빠지게 된다. 이제 행정의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한다. 정부는 단순한 법 집행자를 넘어, 공공가치를 창출하는 플랫폼이 되어야 한다. 정책 설계 단계부터 이해관계자를 참여시키는 것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반대파를 국정 운영의 걸림돌이 아닌, 정책의 사각지대를 비춰주고 공공가치를 더 풍성하게 만드는 파트너로 인정해야 한다. 숙의는 시끄럽고, 지루하며, 고통스러운 과정이다. 때로는 답답해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시간이 걸리더라도 치열하게 토론하고 조금씩 양보하며 합의의 경험을 축적해 나가는 것, 그리고 그 과정에서 공정성이라는 가치를 지켜내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공공가치 창출이다. 행정은 정답을 강요하는 권력이 아니라, 정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관리하며 공공가치를 구현하는 서비스여야 한다. 정부와 야당 모두 진영의 논리를 넘어, 공공가치 중심의 숙의의 장으로 복귀해야 한다. 그것만이 분열된 광장의 소음을 화합의 선율로 바꾸는 유일한 길이다.
    ‘갈등 공화국’의 해법, 진영 논리 넘어 ‘공공가치’로 가자
    by 김호균
    2025.12.19 12:04:55
  • 과거 우주와 국방은 국가의 전유물이었다. 천문학적인 자본과 수십 년의 인내를 감당할 수 있는 정부만이 이 거대한 무대의 주인공이 될 수 있었다. 그러나 민간의 혁신 속도가 공공을 압도하는 ‘뉴 스페이스(New Space)’ 시대는 우리에게 새로운 생존 방정식을 요구하고 있다. 이제 국방 우주 전략의 성패는 첨단 자산을 얼마나 많이 ‘보유’하느냐가 아니라, 민간의 파격적 혁신 기술을 얼마나 유연하게 ‘채택’하고 ‘이용’하느냐에 달려 있다. 구매에서 구독으로 무기체계의 패러다임 전환 방위사업청이 2027년 법 개정을 목표로 추진 중인 ‘무기체계 임차·구독 제도’는 국방 경영의 근간을 뒤흔드는 일대 혁신이 될 것이다. 그동안 무기는 반드시 소유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인공지능(AI) 전장 관리 시스템이나 드론, 위성 소프트웨어처럼 기술 진부화 속도가 빨라진 분야에서는 기존의 획득 방식이 오히려 걸림돌이 될 수있다. 수년간의 개발을 거쳐 전력화하는 순간 이미 ‘과거의 기술’이 되어버리는 모순 때문이다. 임차·구독 방식은 이 고리를 끊고 국방 예산을 효율화하면서도 전장에서 항상 최신 버전의 전투 효율성을 유지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는 우리 군이 지향하는 ‘초연결 지능형 네트워크’와 ‘전영역 통합 작전(MDO)’을 실현할 가장 강력한 엔진이 될 것이다. 민간의 궤도 진입, 국방 전력의 질적 도약 우리 군은 독자적인 정찰위성 배치를 가속화하며 ‘독자적인 눈’을 확보하는 데 매진하고 있다. 그러나 진정한 우주 강국은 군의 자산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국내 우주기업들은 이미 초소형 군집위성과 AI 분석 기술을 통해 고빈도 관측 데이터를 즉각 제공할 준비를 마쳤다. 이제 필요한 것은 기술이 아니라 ‘제도의 마중물’이다.우주항공청이 추진하는 ‘네거티브 규제’로의 전환과 ‘앵커 테넌트(Anchor Tenant, 공공구매형 모델)’ 제도는 민간 우주 생태계에 숨통을 틔워줄 핵심 열쇠다. 정부가 민간 서비스의 ‘첫 번째 고객’이 되어 시장을 열어줄 때, 우리 기업들은 단순 제조사를 넘어 자체 위성을 운영하며 글로벌 시장에서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위성 운영자(Operator)’로 비상할 수 있다. AI·우주·무인기 등 스마트 국방 ‘플랫폼’ 구축 최근 발표된 2026년 국방부 업무보고는 이러한 대전환의 이정표를 명확히 제시했다. 한국형 3축체계 고도화를 위해 전년 대비 21.3% 증액된 8조 8000억 원의 예산은 단순한 장비 구매비가 아니다. 이는 우주, AI, 무인기 기술이 국방의 혈관을 타고 흐르게 만드는 ‘플랫폼 구축’ 비용이다. 우주 영역을 지상·해상·공중과 대등한 주력 전장으로 설정하고, 이를 기반으로 2040년 군 구조 설계의 정점을 찍겠다는 의지는 매우 시의적절하다. 오는 2027년까지 예정된 법적·제도적 정비는 단순한 행정 절차의 개선이 아니다. 우리 군의 전투력을 극대화하는 동시에, 국내 우주 기업들이 글로벌 무대에서 당당히 경쟁할 수 있는 기름진 토양을 만드는 국가적 프로젝트다. 법과 제도가 기술의 발목을 잡는 족쇄가 아니라 성장을 견인하는 디딤돌이 될 때, 대한민국은 비로소 ‘5대 우주 강국’과 ‘4대 방산 강국’이라는 목표에 닿을 수 있다. 이제 ‘소유’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이용’의 미학을 선택하는 결단, 그것이 바로 뉴 스페이스 시대에 우리가 완성해야 할 K-국방 우주의 최종 병기다.
    ‘소유’의 집착을 넘어 ‘이용’의 미학으로: K-국방 우주가 가야 할 길?
    by 최성환
    2025.12.19 12:04:46
  • 작년 12월 3월 불법적인 비상계엄 사태를 계기로 올 상반기까지 우리나라의 정치적 대혼란은 과학기술·외교 현장에도 뚜렷한 악영향을 남겼다. 갑작스러운 계엄 사태부터 대통령 탄핵까지 약 6개월간의 국가 리더십 공백은 전방위적인 국가 전략 결정의 지연과 국제사회에서 협상력 약화로 이어졌다. 특히 미국과의 관세·기술·투자 협상에서 사실상 정부 리더십의 공백으로 인해 민관 모두 허둥지둥대야 했다. 오히려 미국 측에서 우리 측의 명확한 정책 방향과 일관된 리더십 부족에 대한 아쉬움을 드러낼 정도였다. 그 결과, 우리 당국은 상대국과의 세부 조건 타결에 있어 정책 우선순위의 혼선과 책임소재의 불분명함을 노출했고 기업들은 대외 투자·협력 계획 재조정이라는 비용을 치러야 했다. 다행히 올 6월 4일 새 정부가 출범하며 정치적 리더십 부재 사태에 종지부를 찍은 뒤 우여곡절 끝에 한미 협상을 타결지었으나 우리가 감당해야 할 부담은 여전히 만만찮은 게 현실이다. 그러나 국가 리더십 표류에 대한 안타까운 경험은 과학기술 분야에서 그대로 재현되고 있다. 지금 세계는 인공지능(AI)과 반도체를 비롯한 첨단기술을 둘러싼 사실상의 기술패권 전쟁을 지속하고 있다. 이 전쟁의 승패는 예산의 규모보다 ‘결정의 속도’와 ‘리더십의 선명성’에서 갈린다. 그러나 정권 교체 이후에도 국가 연구개발(R&D)의 중추인 대학과 정부출연연구원의 기관장 공백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과학기술 경쟁력 상승에 지장을 초래하고 있다. 기초과학연구원(IBS)과 한국과학기술원(KAIST)을 비롯한 핵심 연구기관에서 사실상 전략적 의사결정이 멈춰선 것이다. 연구원들은 자리를 지키고 있지만 항로를 결정할 선장이 사실상 없어 비전과 방향, 전략을 놓고 혼선이 초래되는 양상이라고 볼 수 있다. 이미 한국에너지공대(2023년 12월), 한국한의학연구원(2024년 4월), 기초과학연구원(2024년 11월), 한국뇌연구원(2024년 12월), KAIST(지난 2월), 국가녹색기술연구소(올해 11월)의 장이 이미 임기가 만료됐다. 이달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과 한국원자력연구원을 시작으로 다음달 한국전기연구원, 내년 3월 한국화학연구원의 장도 임기가 만료된다. IBS의 경우 2019년 취임한 노도영 원장이 작년 11월 임기 만료 후 1년 넘게 후임자 인선을 기다리다가 절차가 진행되지 않자 지난달 사표를 내고 광주과학기술원(GIST)으로 복귀했다. KAIST의 경우에도 지난 3월 3배수로 차기 총장 후보를 선출한 이후 모든 절차가 중단된 상태인데 이사진(15명) 중 내년 2월 5명, 내년 5월 2명의 이사 임기가 종료될 예정이어서 조속한 결정이 요구된다. 기초과학연구원과 KAIST 등은 단순한 연구기관이나 대학이 아니다. 국가 R&D 생태계의 중심축이자 기초 연구와 산업 응용을 잇는 전략적 허브다. 그럼에도 이들 기관의 리더십이 공백 상태로 방치되면서 중장기 연구 방향 설정, 대형 과제 결정, 국제 협력의 최종 판단이 지연되고 있다. 연구는 진행되지만 어디로 가는지 명확하지 않고, 결정은 쌓이지만 책임질 주체가 보이지 않는다. 학계와 협력해야 하는 기업 입장에서 이러한 리더십 부재는 치명적이다. 수년간 공들여 준비한 산학 공동 연구가 기관장의 부재로 최종 승인 단계에서 멈춰서고 새로운 대형 과제는 책임질 주체가 없다는 이유로 첫발조차 떼지 못하고 있다. 기업은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기술 시장에서 과감한 투자를 결정해야 하지만, 파트너 기관의 리더십이 비어 있는 상황에서는 그 어떤 리스크도 감당하기 어렵다. 이는 단순한 행정 지연이 아니라 국가 전체의 기술 축적 시간을 갉아먹는 손실로 돌아올 것이다. 정부도 이 문제를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계엄 사태를 통해 국가 리더십 공백을 메우기 위해 우리가 얼마나 많은 비용을 치렀는지, 그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기회가 허공으로 사라졌는지 누구보다 뼈저리게 경험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결론은 명확하다. 국가 핵심 R&D 기관의 수장 공백은 행정 절차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안보의 문제로 다뤄야 한다. 기관장 임명은 단순한 ‘자리 채우기’가 아니라 멈춰 선 국가 경쟁력의 시계를 다시 돌리는 일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과학기술은 시간이 축적되어야 성과가 나지만 그 시작과 끝에는 반드시 책임 있는 리더십이 있어야 한다. 리더십의 부재에 따른 혹독한 대가를 우리는 이미 확인했다. 과학기술계만큼은 같은 실수가 반복돼선 안 된다. 새 정부 출범 6개월이 넘은 시점에서 대학과 정부연구기관의 리더십을 조속히 정상화하고 산학연정이 뭉쳐서 뛰는 토대를 만드는 것이 어찌보면 가장 시급한 국가 전략 중 하나일 것이다.
    국가 R&D 리더십, 제자리 찾아야 할 때
    by 이보형
    2025.12.16 10:26:55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다시 칼을 빼들었다. 이번 타깃은 인공지능(AI) 규제다. 핵심은 ‘원 룰(One rule)’이다. 미국의 50개 주마다 따로 움직이던 AI 규제를 연방 차원의 단일 규칙으로 통일하겠다는 행정명령에 서명한 것이다. ‘기업이 새로운 서비스를 낼 때마다 50개 주의 승인을 받는 나라에 혁신이 있을 수 없다’는 그의 말이 정치적 수사처럼 들릴 수 있지만 행정명령에 담긴 내용은 미국이 기술패권을 잃지 않겠다는 선전포고다. 연방 규제와 충돌하는 주법을 법무부가 태스크포스까지 꾸려서 소송을 통해 제압하겠다는 구상은 ‘AI 패권 경쟁에서 규제 난립은 용납하지 않겠다’는 의지다. 유럽연합(EU)은 정반대의 길을 간다. EU의 인공지능법(AI Act)은 위험 기반 규제를 전면에 내세워 고위험 분야에 촘촘한 의무와 금지 규정을 부과한다. 회원국마다 샌드박스를 의무 설치하도록 하고 개인정보보호법(GDPR)과의 중첩 규제까지 겹치면서 기업의 준수 비용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그 부담을 감당할 체력이 있는 기업은 빅테크뿐이다. 결과는 뻔하다. 스타트업은 줄고 벤처 투자는 위축되며 유럽의 디지털 경쟁력은 뒷걸음쳤다. 규범은 강화됐지만 속도는 떨어졌다. 한국은 미국과 EU의 중간 어디쯤 서있다. AI·자율주행 기술만 보면 격차는 있지만 미국과 중국 등 선도국의 바로 다음 위치에 있다고 평가된다. 문제는 제도다. 한국은 미국처럼 시장 규율과 사후 책임을 중시하는 기업자율형 규제도 아니고 유럽처럼 규범을 수출할 정도의 위치도 아니다. 잘못하면 EU식 엄격함에 한국식 행정주의가 더해진 최악의 규제 조합이 현실이 될 수 있다. 복잡한 절차와 부처 간 충돌은 이미 여러 산업 분야에서 익숙한 풍경이다. 2017년 정부가 가상자산공개(ICO)를 사실상 전면 금지한 사례는 뼈아프다. 국내 기업들은 싱가포르와 스위스로 옮겨가 토큰을 발행했고 혁신과 일자리, 그리고 우수한 인재는 해외로 빠져나갔다. 반면 해외에서 발행된 토큰은 국내 투자자에게 팔리는 기형 구조가 만들어졌다. 규제를 택했지만 위험은 국내에 남고 기회는 해외에 뺏긴 셈이다. ‘모르는 것은 일단 차단하라’는 손쉬운 선택이 가져온 값비싼 대가였다. AI·자율주행은 그보다 훨씬 큰 무대다. 한국이 다시 ‘위험은 일단 막자’를 반복한다면 인재와 스타트업은 미국·중국 등으로 이동할 것이다. 국내 기업은 규제 불확실성을 이유로 투자를 미룰 것이고 국민은 해외 플랫폼이 제공하는 AI에 의존하게 될 것이다. 기술은 수입하고 규제만 국산인 나라가 되는 것이다. 무엇보다 지금 필요한 것은 방향성의 재정립이다. 우선 미국처럼 ‘원 룰’은 어렵더라도 최소한 ‘원 스톱(One-stop)’은 해야 한다. AI·자율주행 인허가를 위해 여러 부처를 전전하는 구조를 방치하면서 혁신을 말할 수는 없다. 부처 간 충돌을 조정할 상설 기구를 두고 인허가의 단일 창구를 명문화해야 한다. 둘째, ‘고위험만 강하게, 나머지는 가볍게’라는 원칙이 필요하다. 의료·금융 등 생명과 재산이 걸린 영역 중 민감한 부분은 강한 사전 규제를 두되 다른 서비스는 사후 책임·투명성·시장 경쟁으로 통제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모든 AI를 잠재적 ‘위험물’로 취급하는 순간 한국은 스스로 경쟁력을 제한하는 꼴이 된다. 셋째, 규제 샌드박스를 제도의 주변부가 아니라 중심으로 가져와야 한다. 유럽이 샌드박스 설치를 의무화한 이유는 간단하다. 신기술은 실험과 학습 없이는 규제도 성숙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국도 모든 신기술은 원칙적으로 샌드박스를 통해 빠르게 실험과 학습을 할 수 있는 구조로 바꿔야 한다. 위험을 상상해 막는 것이 아니라 데이터와 근거를 기반으로 규제를 설계해야 한다. 기업의 역할도 중요하다. 기업이 취할 AI 시대의 비시장 전략은 더 이상 정부의 규제 대응에 멈춰서는 안 된다. 규제 설계 자체가 기업의 경쟁력을 좌우하는 시대다. 기업은 기술 가이드라인, 안전 기준, 데이터 거버넌스를 정부보다 먼저 설계해 제안해야 한다. 정부가 참고할만한 규범의 초안을 만드는 기업이 규제의 방향을 결정한다. 글로벌 규제 포트폴리오를 분석해 어디서 개발하고 어디서 출시할지 전략을 정하는 일, 외국과 공동 테스트베드를 구축해 국제 레퍼런스를 확보하는 일도 이제 기업의 퍼블릭어페어즈(PA) 부서가 맡아야 한다. 트럼프의 행정명령은 단순히 미국 국내용이 아니다. AI 패권 경쟁의 룰을 미국식으로 세팅하겠다는 지정학적 선언이다. AI 시대의 규제 전쟁에서 뒤처지지 않으려면 과잉 규제를 경계하면서도 가장 영리한 규칙을 가장 먼저 실험하는 나라가 돼야 한다. 우리가 머뭇거리는 사이 자칫 규칙은 남이 정하고 비싼 사용료는 우리가 치르는 시대가 올 수 있다. 기술은 수입해서 쓰고 규제만 국산인 나라가 된다면 결코 우리의 미래를 담보할 수 없다. 보다 자신감을 갖고 AI 등 첨단산업의 규제를 대폭 정비해 기업이 맘껏 뛸 수 있도록 뒷받침할 때다.
    ‘원 룰’은 못해도 ‘원 스톱’은 하자
    by 이보형
    2025.12.15 17:36:59
  • 최근 아이돌 그룹 뉴진스 멤버들과 소속사의 전속계약 분쟁이 큰 화제를 모았다. 이 사건은 오늘날 K팝 산업에서 전속계약 분쟁이 어떤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초기 아이돌들의 전속계약 분쟁은 존재 자체가 드러나기 어려웠다. 불공정하다고 느끼면서도 문제를 제기할 수조차 없던, 이른바 ‘침묵의 시대’였다. “잠잘 시간 없이 일했지만 손에 쥔 돈이 없었다”는 회고가 상징하듯 당시에는 계약서 사본조차 받지 못한 채 수년간 활동하거나 약속을 지키지 않는 소속사에 항의조차 하지 못하는 일이 흔했다. 이러한 구조를 근본적으로 흔든 계기는 2009년 동방신기 멤버들의 전속계약 무효 소송이었다. 무려 13년에 달하는 계약기간과 중도해지 시 과도한 위약금이 알려지며 ‘노예 계약’ 논란이 본격화되었고, 법원은 해당 조항들이 아티스트의 직업선택의 자유를 과도하게 제한한다며 일부 무효로 판단했다. 이 사건은 결국 공정거래위원회의 표준 전속계약서 도입으로 이어졌고 K팝 산업에 큰 전환점을 남겼다. 표준계약서는 계약기간을 최대 7년으로 제한하고 정산 주기와 방법을 명확히 하며, 부당한 위약금 조항을 금지하는 등의 내용을 담았다. 다만 표준 전속계약서가 업계의 기준으로 정착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다. 도입이 강제되지 않았던 탓에 아예 사용하지 않거나 일부만 반영하는 경우도 많았다. 이에 대해 법원은 계약기간이나 위약금 등 핵심 조항이 표준계약서보다 불리한 경우 잇달아 무효 판단을 내렸다. 이러한 시행착오를 거쳐 표준계약서는 비로소 업계의 ‘최소 기준’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계약서 자체에는 문제가 없지만 수익 배분과 정산의 투명성 문제로 인한 분쟁도 많았다. 이승기와 전 소속사 간의 분쟁 역시 이런 경우다. 이승기는 데뷔 후 18년간의 음원 수익 정산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의혹을 제기하며 법적 분쟁을 겪었다. 이러한 정산의 불투명성은 소속사의 대형화·글로벌화와 함께 점진적으로 개선되었고 현재의 K팝 전속계약은 과거에 비해 상당한 수준의 공정성을 확보한 상태다. 이런 맥락에서 최근의 뉴진스 사태는 또 다른 국면을 보여준다. 뉴진스 멤버들은 계약기간이나 정산 등 전통적인 ‘경제적 불만’을 전면에 내세우지 않았다. 대신 함께 일해온 대표이사의 해임, 모기업 산하 레이블 간 갈등 등 비경제적 요소가 전속계약상 의무 위반 또는 신뢰 관계의 파탄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이들 주장의 타당성이나 배경은 별론으로 하더라도 뉴진스 사태는 전속계약 분쟁의 중심축이 달라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분쟁의 핵심이 더 이상 ‘돈’에만 머물지 않고, 매니지먼트의 전문성, 세심한 배려, 원하는 프로듀서와의 협업, 안정적인 활동 환경 등으로 확장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최근에는 자신이 원하는 음악과 일하는 방식을 지키기 위해 회사를 떠나 1인 소속사를 설립하는 아이돌들도 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전속계약의 본질적 성격을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과거 전속계약이 투자자(소속사)와 상품(아이돌)의 관계를 규율하는 문서에 가까웠다면 이제는 장기간의 파트너십을 설계하는 계약이어야 한다. 불공정 조항의 제거를 넘어 신뢰를 어떻게 유지하고 커리어를 어떻게 함께 설계할 것인가가 핵심 과제가 된 것이다. 이러한 변화에 맞춰 몇가지 제언을 하고자 한다. 소속사는 눈높이가 높아진 아티스트에게 겉만 화려한 계약서를 내미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안정적인 활동 환경, 전문적인 매니지먼트, 투명한 의사결정 등 ‘매니지먼트의 질’을 실질적으로 높여야 한다. 아티스트에 대한 투자비 회수가 소속사의 중요한 과제임은 분명하지만 그 방식이 아티스트에 대한 과도한 통제로 이어질 경우 관계는 오래 지속되기 어렵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섣불리 가르지 않고 계속 잘 보살펴서 장기간 협력할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한 시대이다. 아이돌 지망생이나 신인 아티스트 역시 유의할 점이 있다. 현재의 전속계약서는 이미 상당히 고도화된 문서이기에 한 번 서명하면 되돌리기 어렵다는 사실을 명확히 인식해야 한다. 실무에서 가장 안타까운 순간은 의뢰인이 “그때 제대로 읽어볼 걸”이라며 뒤늦게 후회할 때다. 계약서는 서명과 동시에 법적 효력을 갖는 문서이며 ‘몰랐다’거나 ‘이해하지 못했다’는 사정은 법정에서 거의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특히 본인이 중요하게 여기는 협업 방식이나 활동 조건은 반드시 계약서에 명문화해야 한다. 해외 진출이나 특정 프로듀서와의 협업을 기대하며 불리한 조건을 감수했음에도 계약서에 명시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약속이 무시되는 사례는 비일비재하다. 분쟁에서 중요한 것은 증거이지 마음속 기대가 아니다. K팝 시장의 폭발적인 성장에 발맞추어 이제는 최저 기준을 보장하던 표준계약서를 넘어 개별 아티스트의 환경과 가치, 커리어에 맞춘 맞춤형 계약을 논의해야 할 시점에 이르렀다. 뉴진스 사태는 그 과도기적 진통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으로 보인다. 소속사와 아티스트가 상생을 넘어 압도적인 시너지를 창출하는 새로운 K팝 계약의 시대가 열리기를 기대한다.
    뉴진스 사태로 본 K팝 계약의 진화
    by 이수지
    2025.12.15 17:36:38
  • 국가의 영공을 지키는 일은 어떤 정치적 이념이나 경제 위기보다 앞선다. 그러나 아르헨티나는 지난 수십 년 동안 이 기본 원칙을 지키지 못한 대표적 국가였다. 경제 회복이 더 시급하다는 사회적 인식, 말비나스 전쟁의 상처, 군부 독재에 대한 불신이 겹치며 국방은 정치적 관심에서 밀려났다. 그 결과 전투기를 보유하고도 제대로 띄울 수 없는, 형식적 공군만 존재하는 상태가 수십 년 지속되었다. 이런 현실 속에서 최근 덴마크 공군이 운용하던 중고 F-16 전투기 6대가 아르헨티나에 도착했다. 이는 총 24대 구매 계약 중 첫 인도분이다. 밀레이 대통령은 이 전투기들을 “국민을 지키는 천사들”이라 부르며 “오늘부터 아르헨티나가 조금 더 안전해진 날”이라고 말했다. 정치적 수사처럼 들리지만, 지난 40년의 공백을 돌아보면 결코 가벼운 표현이 아니다. 말비나스 전쟁 이후 아르헨티나는 군에 대한 투자를 사실상 멈췄고, 그 결과 조종사 양성은 중단되다시피 했으며 노후한 기체는 사고와 부품 부족으로 퇴역했다. 공군력의 붕괴는 국가 자존심의 문제를 넘어 주권 기능 자체가 흔들린 문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도입은 냉혹한 경제 현실과 맞물려 있다. 아르헨티나는 극심한 인플레이션, 부채 상환 압박, 국제 금융시장의 신뢰 부재 속에서 긴축에 의존해 국가 재정을 유지하고 있다. 최신형 4.5세대 전투기나 5세대 기종은 선택지조차 될 수 없었다. 가격뿐 아니라 장기 운용비, 정비·훈련 체계까지 감당할 수 없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결국 F-16은 현실적으로 접근 가능한 거의 유일한 대안이었다. 문제는 주변국과의 비교에서 드러난다. 콜롬비아는 최근 덴마크·스웨덴 Saab사의 Gripen E 15대, Gripen F 2대 도입 계약을 체결했고, 페루 역시 24대 규모의 신형 전투기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브라질은 이미 스웨덴과 Gripen을 공동 생산해 배치하고 있다. 이러한 현대화 흐름 속에서 아르헨티나가 40년 된 4세대 기종을, 그것도 중고로 도입해야 하는 상황은 국가적 자존심을 자극하기 충분하다. 신형과 중고 전투기가 맞붙었을 때의 성능 격차는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그러나 국방에서 중요한 것은 ‘가장 좋은 선택’이 아니라 ‘가능한 선택’이다. F-16은 세계 26개국에서 운용되는 검증된 플랫폼이며 유지비가 상대적으로 낮고 정비체계가 안정적이다. 아르헨티나의 현재 상황을 고려하면 “현실 안에서 최선을 다한 선택”이라 할 수 있다. 영국의 무기 금수 조치로 인해 부품 하나까지 영국산 여부를 확인해야 했던 구조적 제약 속에서, 중고 F-16 도입은 합리적 해법이었다고 볼 수 있다. 더욱이 구매 대금의 5년 무이자 분할 조건은 극도로 열악한 재정 여건을 감안할 때 이례적으로 유리한 계약이다. 물론 전투기만 들여온다고 공군이 재건되는 것은 아니다. 조종사 양성, 정비 인력 훈련, 기지 인프라 개선, 안정적 국방 예산 구조 등 뒤늦게 무너진 모든 요소를 다시 세워야 한다. 장비는 시작일 뿐이며, 국방은 결국 사람과 체계가 만든다. 경제가 회복되어야 군사력도 회복된다. 전투기는 국가 체력의 결과이지, 그 자체가 체력을 대신할 수는 없다. 아르헨티나는 여전히 위기에 놓여 있지만, 동시에 거대한 잠재력을 지닌 나라이다. 농업과 광물 자원, 젊은 인구, 문화적 영향력은 이 나라가 다시 일어설 기반이 될 수 있다. 이번 F-16 도입이 굴욕의 상징이 아니라 오히려 정상국가로 돌아가기 위한 첫 단추가 되기를 바란다. 언젠가 아르헨티나가 자존심이 아니라 능력으로 자신의 하늘을 지키는 날이 다시 오기를, 중남미를 오래 지켜봐 온 한 사람으로서 조용히 응원의 마음을 전한다.
    아르헨 중고 F-16으로 본 국가의 자존심과 현실
    by 박선태
    2025.12.13 00:01:07
  • 1716년 ‘해적공화국’(Republic of Pirates)이 활개를 칠 무렵, 대형 상선이 카리브해에 나타났다. 당시 최강의 해적 연합함대를 이끌던 벤자민 호르니골드는 해적들의 주장을 한사코 물리치며 상선을 공격하지 않았다. 영국 국기를 달았다는 이유다. 호르니골드는 윤리 기준과 애국심이 강해 스스로 해적이 아니라고 여겼다. 비록 영국 왕의 면허장을 받지 못했지만 사략선(私掠船)을 운영한다고 규정하고, 스페인이나 프랑스 같은 적국의 배만 공격했다. 점점 불만이 쌓이면서, 연합함대의 해적들은 총사령관에 대한 신임을 투표에 부쳤다. ‘블랙샘’(Black Sam) 사무엘 벨라미가 추대되고, 호르니골드는 ‘검은 수염’(Black Beard) 에드워드 티치와 함께 연합함대를 떠났다. 1년 남짓 함께 해적질을 계속하던 호르니골드는 1717년 말 의견 차이로 ‘검은 수염’과 헤어졌다. 호르니골드는 영국 왕 조지 1세를, ‘검은 수염’은 전임 앤 여왕을 각각 지지했다. ‘검은 수염’은 ‘앤 여왕의 복수’(Queen Anne‘s Revenge)를 이끌고 떠났다. 18세기 초, 호르니골드는 카리브해의 해적 사이에서 가장 존경받는 우두머리였다. 해적 공동 자치제인 해적공화국을 건설하고, 민주적이고 공정한 해적규약(The Articles of Agreement)도 만들었다. 전투 경험이 많은데다 연합작전으로 능력을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그의 리더십 아래 ‘검은 수염’과 ‘블랙샘’을 비롯해서, 찰스 베인, ‘캘리코 잭’, 헨리 제닝스, 스티브 보넷, 토머스 바웬처럼 내로라 하는 해적들이 몰려들었다. 바야흐로 ‘해적의 황금시대’(Golden Age of Piracy)다. 정치적인 노선 차이가 이토록 무서울까? 해적에게도 1718년 조지 1세가 해적에게 사면령을 내리자, 호르니골드는 바로 해적생활을 청산하고 동료 해적들을 설득했다. 윤리의식과 충성심이 너무 강해서 그랬을까? 그는 우즈 로저스 바하마 총독의 제안을 받고 해적을 토벌하는 해적사냥군으로 변신했다. 갑자기 배신자로 돌변한 그는 ‘검은 수염’, ‘블랙샘’, 찰스 베인을 쫓아다녔지만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하다가, 이듬해 배가 난파하는 바람에 물에 빠져 죽었다. 향년 39세. 호르니골드의 ‘맏형’ 리더십은 ‘링크드인’(LinkedIn) 창업자 리드 호프만의 네트워킹 경영과 닮았다. 호르니골드가 유명한 해적 선장들과 연대해서 ‘해적공화국’을 설립하고 ‘해적의 황금시대’를 이끌었다면, 호프만은 실리콘밸리에서 창업자와 투자자를 연결해서 스타트업 혁신 생태계를 조성해냈다. 무질서한 오합지졸(烏合之卒)을 끌어 모아, 네트워크와 연대를 기반으로 새로운 시대를 연 전략가인 셈이다. 해적의 대부는 그냥 되는 게 아니다. ‘연결’이다. 호르니골드는 나포한 배를 ‘검은 수염’을 비롯한 다른 해적에게 지휘를 맡기는 방식으로, 한 때 해적선 5척에 해적 350명까지 거느리기도 했다. 호프만은 ‘링크드인’ 창업자답게 ‘페이팔’(PayPal) 마피아로 시작해서 ‘페이스북’(FaceBook)과 ‘오픈AI’(OpenAI)에 이르는 여러 스타트업을 연결하고 투자했다. 단연 ‘최고 네트워커’(Networker-in-Chief)이자, ‘엔젤 투자자의 엔젤’(Angel Investor’s Angel)이다. 원칙을 지키고 윤리를 따르는 성향도 비슷하다. 호르니골드가 민주적인 해적규약을 제정한 것처럼 호프만은 철저하게 ‘인간 중심’(Human-Centered)을 추구했다. ‘AI 윤리·거버넌스 기금’(Ethics & Governance of AI Fund)을 출범시키고, 스탠퍼드 대학에 연구보조금(Hoffman-Yee Grant)을 지원했다. 또 스타트업이 눈앞의 단기적인 수익에 집착해 개인 정보를 함부로 다루고 사회 양극화를 무시하는 ‘단기주의’를 강력하게 경고했다. 호르니골드가 사면을 받아들인 건 신뢰를 뒤집은 기만적인 변절일까, 평소 소신을 지킨 실용적인 판단일까? 연결은 신뢰를 기반으로 한다. 호프만은 ‘신뢰가 없으면 관계도 없다’며, ‘베풀면 신뢰를 쌓는다’고 말했다. 호프만이 주장하는 ‘블리츠 스케일링’(Blitzscaling), 곧 전격적인 폭풍 성장은 강력한 신뢰를 토대로 한다. 세상이 너무 빠르게 바뀌어 판단에 필요한 정보를 충분히 갖출 수 없기 때문이다.
    신뢰로 연결하라: 벤자민 호르니골드 & 리드 호프만
    by 허두영
    2025.12.10 15:09:49
  • ‘미쉐린 가이드’, ‘식신’, ‘블루리본 서베이’ 등 주요 미식(美食) 안내 기업의 올해 평가가 마무리 수순을 밟고 있다. 미식 가이드들은 미식의 기준을 잡기 위해 각기 다른 가치와 고유한 방식의 평가를 지향한다. 소수 전문가 중심의 평가를 추구하는 ‘미쉐린 가이드’, 실제 사용자 빅데이터 분석으로 대중적인 인기와 맛, 만족도를 평가하는 ‘식신’, 그리고 지역별 평가단을 기반으로 식당을 평가하는 ‘블루리본 서베이’는 각기 다른 매력으로 소비자에게 맛집을 추천한다. 미쉐린 가이드에서 한 개 이상 별을 받은 식당은 서울 36곳, 부산 3곳이다. 식신에서 가장 높은 등급인 별 세개를 받은 전국 식당은 총 70곳이다. 지역별로는 서울 강북 39곳, 서울 강남 22곳, 경기 7곳, 부산 2곳, 대전 2곳, 제주 2곳, 그리고 인천, 대구, 충남, 경남, 전남, 전북 각 1곳 씩이다. 블루리본 서베이에서 가장 높은 리본 세 개를 받은 식당은 총 43곳이다. 미쉐린 가이드의 별 한 개 이상과 식신의 별3개에 동시에 선정된 곳은 총 15곳으로 밍글스, 스와니예, 에빗, 레스토랑 알렌, 솔밤, 제로컴플렉스, 강민철레스토랑, 세븐스도어, 정식당, 온지음, 소수헌, 무오키, 라연 등의 식당이었다. 미쉐린 가이드의 별 한 개 이상과 식신의 별 2개를 받은 곳은 알라프라마, 라망시크레, 유유안, 빈호, 기가스, 소울, 소설한남, 이스트, 라미띠에, 익스퀴진, 호빈 등이었다. 미쉐린 가이드와 식신에서 각각 별 1개를 받은 곳은 권숙수, 이타닉가든, 비채나, 무니, 뛰뚜아멍, 스시 마츠모토, 윤서울, 고료리켄, 레귬, 에스콘디도, 스시하네 등이었다. K-미식의 핵심인 한식당의 경우 미쉐린 가이드의 별 한 개 이상과 식신의 별 3개에 동시에 선정된 곳이 밍글스, 스와니예, 에빗, 레스토랑 알렌, 솔밤, 강민철레스토랑, 세븐스도어, 정식당, 온지음, 라연 등 10곳에 달했다. 한식의 멋과 맛이 앞으로 K-미식을 이끌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미쉐린 가이드는 프랑스 타이어 회사 미쉐린이 약 110년 전부터 시작한 레스토랑 평가서로 레스토랑 및 셰프 평가에 있어서 세계적으로 권위를 인정받는다. 한국은 아시아에서는 4번째 미쉐린 가이드 발간국이다. 이를 통해 외국인들한테 한국의 미식에 관한 위상도 덩달아 높아질 수 있었다. 자연스럽게 서울은 도쿄, 홍콩, 싱가포르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아시아의 미식 도시가 되었다. 미쉐린 가이드에서의 최고 등급인 별 3개는 ‘요리를 맛보기 위해 여행을 떠나도 아깝지 않은 식당’을, 별 2개는 ‘요리를 맛보기 위해 멀리 찾아갈 만한 식당’을, 별 1개는 ‘요리가 특별히 훌륭한 식당’을 뜻한다. 별은 아니지만 합리적 가격으로 훌륭한 음식을 제공하는 식당은 ‘빕 구르망’이라 하여 미쉐린 타이어 마스코트가 붙는다. 식신은 구내식당은 물론 기업 직원들과 식당들을 연결하는 전자식권업을 하면서 약 75만 개에 달하는 한국의 모든 레스토랑을 객관적으로 평가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온라인 사용자 리뷰 및 평점으로 1차 선별 과정을 거치고 최종 전문가 평가를 종합하여 별 1~3개, 더테이블 등급을 부여한다. 식신의 별 3개 등급은 ‘꼭 한 번 가야 하는 그 분야 최고의 레스토랑’, 별 2개는 ‘지역에 방문하면 가봐야 할 최우수 레스토랑’, 별 한 개는 ‘인기 있고 추천할 만한 우수 레스토랑’, 더 테이블은 ‘방문객들의 만족도가 높은 레스토랑’이다. 식신은 2010년 위치기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출발한 국내 최대 맛집 추천 서비스이다. 월간 370만 활성사용자(MAU)에 달하는 데이터를 분석해 별 맛집을 2016년부터 엄선하여 선정하고 있다. 현재 식신의 별 맛집은 총 5836곳으로 별 3개 레스토랑 70곳, 별 2개 레스토랑 707곳, 별 1개 레스토랑 2357곳, 더테이블 레스토랑 2702곳이다. 식신의 별 맛집은 한국의 모든 음식점을 대상으로 하며 사용자 데이터를 기반으로 해서 보다 객관적으로 검증된 대중적 인기를 확인할 수 있다. 현재 기준 별 맛집은 전체 음식점의 약 0.9%에 불과하다. 식신은 지난해 큰 인기를 끌었던 넷플릭스 시리즈 ‘흑백요리사’에서 그 가치를 인정받았다. ‘흑수저’ 셰프들은 대부분 유명하지 않은 재야의 고수들이었지만 식신에서는 이미 명성을 얻고 있었음이 확인되었기 때문이다. 1라운드 생존 셰프 20명 중 11명이 식신의 별 맛집에 선정된 식당에 속했는데 당시 레스토랑을 운영하지 않은 5명을 제외하면 무려 73%나 식당 별 맛집과 관계된 것으로 나타났다. 식신을 경영하는 벤처기업인의 입장에서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 될 수도 있겠지만 새해에는 미쉐린 가이드의 명성에 도전해보겠다는 꿈을 품어본다.
    대한민국 미식(美食) 가이드: 미쉐린·식신·블루리본
    by 안병익
    2025.12.10 15:09:39
  • 중대재해처벌법(중처법)은 기업이 영위하는 사업에 관하여 대표이사 등 경영책임자가 취하여야 하는 경영상, 관리상의 조치를 정하고 있다. 즉, 기업의 안전보건관리체계를 위하여 인력을 충원하거나 예산의 증액, 조직의 개편, 절차·규정·매뉴얼 등의 제·개정 등을 시행하는 것이 중처법에서 정한 의무 내용이다. 이는 현장에서 이행하여야 하는 안전보건조치와는 구분된다. 예컨대 현장의 안전설비가 설치되어 잘 작동 중인지를 확인하는 것은 현장책임자의 몫이고, 경영책임자는 현장에서 안전설비를 잘 구비할 수 있도록 관련 예산을 편성해주는게 그의 일이다. 이처럼 중처법에 따른 의무가 현장에서 취하여야 하는 직접적·구체적인 안전보건조치의무와 구분됨에도 양자를 혼동하는 경우가 종종 발견된다. 대표적인 것이 위험성평가다. 산업안전보건법상 위험성평가는 산업현장에서 해당 현장의 책임자(안전보건관리책임자 또는 안전보건총괄책임자)의 총괄 관리 하에 실시되는 것임에도, 중처법 위반 사건에서 사고의 원인이 된 유해·위험요인이 위험성평가표에 없으면 곧바로 위험성평가 절차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것으로 평가되는 사례가 종종 있다. 현장에서 위험성평가를 다소 미흡하게 실시하였다고 하여 경영책임자가 위험성평가 절차 자체를 제대로 만들지 않았다고 볼 수는 없음에도 말이다. 올해 선고된 중처법 위반 판결 중에는 위와 같은 점을 정확히 지적한 판결이 있다. 춘천지방법원 영월지원은 D공사의 광업소에서 죽탄(물과 석탄이 섞여 반죽의 형태가 된 상태)에 매몰되어 근로자가 사망한 사건에서 D공사의 경영책임자 등에게 무죄를 선고하며, 중처법에 따른 의무가 현장의 직접적·구체적인 안전보건조치의무와는 구분된다는 점을 명시하였다. 그러면서 위 판결은 중대재해처벌법상의 의무가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른 현장의 직접적인 안전보건조치의무와 달리 경영책임자가 안전보건관리체계를 구축하고 재해재발방지 대책, 매뉴얼 등을 수립하는 등 중대재해가 일어나지 않도록 인적·물적·제도적 시스템을 마련하고 그 시스템이 잘 운영되는지를 점검하는 의무라고 판단하였다. 즉, 경영책임자가 위험성평가 절차를 수립하여 운영하면서 정기적으로 그 작동 상황을 점검하고 미비점을 개선하였다면, 설령 해당 절차에서 지적되었던 유해·위험요인이 실현되어 중대재해가 발생하였어도 경영책임자가 위험성평가 절차를 마련하고 점검하지 않았기 때문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중처법에 따른 의무의 내용과 취지를 정확히 짚은 대목으로 보인다.
     중대재해처벌법에 따른 의무는 현장의 의무와 구분돼야
    by 김동현
    2025.12.06 11:00:00
  • 유럽연합(EU)의 ‘포장 및 포장폐기물 규정’(PPWR)이 2026년 8월 12일부터 본격 시행된다. 이번 규정은 ‘유럽 그린딜’(European Green Deal)과 ‘순환경제 행동계획’(CEAP)에 따라 2025년 2월 11일 발효되었으며, 기존의 지침(PPWD)을 대체하는 EU 단일 규정이다. PPWR은 EU 시장에 유통되는 모든 포장재가 재사용・재활용 가능하도록 설계될 것을 요구하며, 포장 최소화, 재사용 시스템 확대, 재활용성 등급제 도입, 재활용 플라스틱 의무 사용 등을 핵심 의무로 담고 있다. 포장재는 제품 보호와 물류 과정에서 필수적인 요소다. 포장 제조업은 EU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상당한데, 2018년 EU 포장 제조업의 매출은 이미 3550억 유로(약 530조 원)에 이르렀다. 하지만 포장재 사용이 급증하면서 환경 부담도 빠르게 확대되었다. EU 집행위원회(EC)가 PPWR 제정을 위해 작성한 2022년 입법영향평가보고서는 포장 분야의 구조적 문제로 ① 포장폐기물의 지속적 증가, ② 재활용을 저해하는 비표준화된 설계・라벨링, ③ 재활용 품질 저하와 낮은 재활용원료 사용률을 지적하며, 이러한 구조적 한계가 자원 낭비와 환경 오염을 심화시키고 있다고 평가한다. 실제로 2023년 EU의 1인당 포장폐기물은 177.8㎏이고, 포장재는 EU 전체 플라스틱 사용량의 약 40%를 차지한다. 또한 EC의 보고서는 포장 시스템의 전체 환경 영향을 분석하면서, 포장재로 인해 발생하는 온실가스 배출량이 헝가리 전체의 연간 배출량과 유사한 규모에 달한다는 점도 지적한다. 즉, 폐기물 증가와 재활용 구조의 비효율성에 탄소 배출 부담까지 더해지며, EU는 포장 분야의 전면적이고 통합적인 규제 개편이 불가피하다고 판단하게 되었다. 사실 EU는 이미 1994년 제정된 ‘포장 및 포장폐기물 지침’(PPWD)을 통해 포장재의 구성 제한, 재사용・재활용 가능성, 특정 물질 사용 제한 등 기본 요건을 규율해 왔다. 그러나 지침(Directive)은 회원국이 각자 국내법으로 전환하는 방식이어서 국가별로 해석과 적용 기준이 달라지고, EU 시장 전역에서 통일된 규제가 작동하지 않는 문제가 발생했다. 포장재는 생산부터 유통・폐기까지 국경을 넘나드는 초국경적 제품이기 때문에, 이러한 불일치는 내부시장 기능을 약화시키는 ‘규제 실패’로 평가되었다. 이번에 PPWR을 EU 전체 회원국에 통일적으로 적용되는 단일 규정(Regulation) 형태로 제정한 것도 이러한 배경에서다. PPWR은 산업・상업・가정 등 모든 분야의 포장재에 적용되며, 화장품・식품・생활용품과 같은 소비재뿐 아니라 전자・기계 부품 등 B2B 포장재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EU 시장에 제품을 공급하는 한국 기업은 이제 포장 최소화 기준, 재사용・재활용성 설계, 재활용 플라스틱 사용 의무 등을 점검하고, 적합성 선언서(DoC)와 기술문서(TD)를 준비해야 한다. 또한 재활용성 등급, 분리배출 라벨링 등 나머지 요건도 함께 검토할 필요가 있다. PPWR은 단순한 환경 규제가 아니라, 기업의 포장 전략 전반을 재구성하는 제도적 전환에 가깝다. 한국 기업들은 공급망을 아우르는 포장재 정보를 체계적으로 수집・파악하고, 포장 감축 및 재설계 가능성을 검토하며, 재활용성 중심의 디자인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 이는 규제 대응을 넘어, 글로벌 순환경제 체제에서의 새로운 경쟁력 확보로 이어질 수 있다.
    EU의 PPWR과 포장재의 미래
    by 민창욱
    2025.12.06 09:00:00
  • 30여 년간 칠레 통신 인프라를 지배해온 스페인 자본이 물러나고 있다. 그 자리를 멕시코 자본이 빠르게 메우면서, 중남미 통신 권력의 중심축이 스페인에서 멕시코로 이동하고 있다. 칠레는 이 변화가 가장 극적으로 드러나는 무대다. 이는 단순한 기업 간 인수합병(M&A)이 아니라 디지털 인프라 패권의 이동이라는 상징적 사건이다. 1980년대 말 칠레는 군사정권 하에서 기간산업 민영화를 추진했다. 당시 국영 통신사 CTC는 기술 경쟁력이 취약해 외자 유치가 필요했다. 스페인의 텔레포니카(Telefonica)는 1989년 지분 43%를 인수하며 칠레 시장에 진입했다. 스페인은 자본·기술을, 칠레는 제도 안정성과 수요 기반을 제공하며 통신 현대화를 이끌었다. 텔레포니카는 칠레를 교두보로 페루, 아르헨티나, 콜롬비아, 브라질로 확장했다. 1990년대 말 중남미 통신시장에서 40% 이상의 점유율을 확보하는 등 사실상 독점적 지위를 누렸다. ‘총칼이 아닌 통신망으로 지배한다’는 신(新)식민주의 논란까지 촉발될 정도였다. 그러나 2000년대 중반 이후 4세대(4G)·5세대(5G) 전환에 따른 투자 부담과 포화 경쟁 환경 속에서 텔레포니카의 수익성은 악화되기 시작했다. 이 틈을 타 멕시코의 통신재벌 카를로스 슬림이 부상했다. 그의 어메리카 모빌(AMX)은 공격적 가격 정책과 인수합병으로 남미 22개국에서 수억 명의 가입자를 확보하며 역내 최대 통신 기업으로 성장했다. 칠레에서는 2022년 Claro와 VTR을 합병해 모바일과고정 광대역을 통합 지배할 기반을 갖췄다. 텔레포니카는 결국 남미 사업을 단계적으로 정리하기로 했고, 칠레 법인인 모비스타 칠레(Movistar Chile) 역시 매각 대상으로 지목됐다. 스페인 자본의 퇴장 준비가 본격화된 것이다. 공백을 노리는 기업은 AMX와 칠레 최대 사업자 엔텔(Entel)이다. 칠레 유력 일간지 라 테르세라(La Tercera)는 두 기업이 한때 공동 인수전을 논의했으나 최근 각자 독자 입찰로 선회했다고 보도했다. 칠레 경제지 디아리오 피난시에로(Diario Financiero)는 “누가 인수하든 멕시코 자본의 영향력 확대는 불가피하며, 이는 칠레 통신시장 지배 구조의 근본적 재편을 뜻한다”고 분석했다. 주목할 점은 이 변화를 칠레 사회가 주권과 자존심의 문제로 본다는 것이다. 칠레는 중남미에서 가장 먼저 통신 민영화를 성공시킨 국가다. 이 성취는 ‘남미 기술 선도국’이라는 국가적 자부심을 뒷받침해 왔다. 그런데 그 상징적 자산이 같은 라틴아메리카의 경쟁자에게 넘어간다는 상황은 정치·사회적 감정을 자극하고 있다. 디아리오 피난시에로는 “우리가 이 정도도 스스로 지키지 못하는가”라는 비판 여론을 전했고, 라 테르세라는 이번 인수전이 “남미의 데이터 혈관을 누가 지배할 것인가”라는 디지털 주권 전쟁의 본질을 드러냈다고 해석했다. 통신망은 금융, 보안, 콘텐츠, AI 생태계를 아우르는 국가 주권의 핵심 기반이다. 그러나 감정과 현실은 다르다. 광대역 투자, 5G·인공지능(AI)·보안 인프라는 모두 막대한 자본이 필요한 영역이다. 글로벌 경쟁 환경 속에서 칠레 기업 단독 생존은 어렵다. 시장 논리가 자존심을 압도하는 국면인 것이다. 칠레 통신망의 지배권이 스페인에서 멕시코로 이동한다는 것은 곧 라틴아메리카 디지털 권력의 재편을 의미한다. 한 시대를 지배했던 스페인의 통신 제국은 종말을 맞고, 그 자리를 멕시코가 차지하고 있다. 칠레는 지금 글로벌 디지털 패권 이동의 최전선에 서 있다. 이 변화는 단순한 인수전이 아니라 새로운 권력 구조의 시작이다. 결국 이 질문이 남는다. “누가 중남미의 데이터 혈관을 지배할 것인가.”
    30년 칠레 통신 패권의 전환
    by 박선태
    2025.12.05 16:56:07
  • 지난 6월 스스로 30년간의 공직생활에 마침표를 찍었다. 많은 분들이 걱정하면서 만류했고 조직에서 나가라고 하지도 않는데 굳이 그만두려는 이유를 궁금해했다. 자진 퇴직의 이유를 하나하나 열거하자면 108개도 넘을 것이다. 하지만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죽음이었다. 살다보면 이유 없이 나를 좋아하는 분과 이유 없이 나를 싫어하는 분이 간혹 있다. 이모 선배는 이유 없이 필자를 좋아해 주셨던 분이었다. 대기업 이사까지 한 후 홀로 고향으로 내려가 거동이 불편한 노부모를 모신 분이었다. 노인 아들이 노인 부모를 봉양하는 이른바 노노(老老)봉양을 실천한 것이다. 때마다 지역특산물인 대추도 보내주시고 직접 농사지은 것이라면서 고구마를 보내주시곤 했다. 필자가 감사한 마음으로 약간의 사례라도 하려고 하면 손을 절레절레 흔드시며 완강하게 거절했다. 그냥 하염없이 주시려고만 했지 뭔가를 일절 받으려고 하지 않았다. 그런데 마른 하늘의 날벼락처럼 이 선배가 숨졌다는 부고 문자가 왔다. 처음에는 믿지도 않았고 믿고 싶지도 않았다. 아침에 그의 아버지가 아무리 흔들어 깨워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 어떤 유언도 남기지 못하고 그야말로 느닷없이 세상을 떠났다. 세상에 둘도 없는 효자가 부모보다 먼저 가는 불효를 저지르고 만 것이다. 그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오랜 벗의 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 소아과 의사로 엄청난 부를 모았지만 그 대부분을 사회에 기부하셨고 심지어 약간의 빚도 남기셨다고 한다. 대입 학력고사가 끝나 천방지축으로 돌아다니던 우리 친구들에게 삶의 방향성을 알려주시면서 처음으로 술을 따라줬던 어른이셨다. 선하디 선한 분이었지만 병원에서 꽤 오랫동안 고생하시다가 연명치료를 거부하고 돌아가셨다. 두 어르신의 죽음을 보면서 남의 일처럼 느껴졌던 죽음이 바로 눈 앞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더구나 필자는 그분들에 비하면 효자도 아니요, 기부 액수도 미미하다. 앞으로도 그분들에 비해 효자의 삶을 살 것 같지도 않고 사회에 크게 기부하면서 살 것 같지도 않다. 하늘은 나 정도의 사람을 데려가기로 마음먹는 것에 전혀 거리낌이 없을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죽는다. 자다가 죽을 수도 있고 오랜 기간을 병상에 누워 의료기계에 의존해 숨만 쉬다가 죽을 수도 있다. 두렵다. 한 마디도 남길 수 없는 순간 찾아오는 죽음도, 고통과 같이 와서 서서히 말려 죽이는 죽음도 두렵다. 죽음을 두려워하면서 하루하루 살얼음판을 걸어가듯 살 것이 아니라면 결국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무엇일까? 그 어떤 죽음 앞에서도 후회없는 삶을 살았다고 말할 수 있는 길은 무엇일까? 그래 그거였다. 죽기 전에 내가 좋아하는 일,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어린 시절 딱지치기 하듯 신나게 하는 것이었다. 천상병 시인은 ‘귀천’이라는 시에서 인생살이를 소풍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지금까지의 삶이 전쟁이었다면 지금부터라도 소풍을 떠나자. 단 하루를 살더라도 내가 좋아하는 일,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자. 마음이 여기에 이르니 그 어떤 말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다행스럽게도 나에게는 좋아하는 일, 하고 싶은 일이 있지 않은가. 무엇을 더 주저할 것인가. 나의 이야기를 덤덤히 쓰고 강의하면서 살자. 두 어르신의 명복을 진심으로 빌면서 다시 한 번 다짐해본다. 내가 좋아하는 일,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신나게 하면서 살리라!
    30년 공직을 내려놓은 이유
    by 유상조
    2025.12.05 16:55:57
  • 프랑스의 작가인 생텍쥐페리(1900~1944년)의 소설 ‘어린 왕자’를 보면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아”라는 구절이 나온다. 그러나 요즘의 교육이나 양육을 보면 많은 부모들이 눈에 보이지 않는 중요한 것들보다는 눈에 보이는 것들을 더욱 중시하는 안타까운 모습을 보인다. 아이의 키가 얼마나 자랐는지, 어떤 영어 단어를 말하고 쓸 수 있는지, 학습지 문제를 얼마나 맞추었는지 등과 같은 보이는 결과에 매달리느라 정작 보이지 않는 것들을 보이게 하는 힘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해 볼 여유가 없는 까닭이다. 아이가 태어나기 전에는 어떠했을까? 아이가 태어나기 전 부모들은 보이지 않는 것들을 위해 애를 쓴다. 태아는 엄마의 뱃속에 있기에 눈으로 직접 볼 수는 없지만 태아의 생명력은 온전히 엄마에게 고스란히 전달되어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때로는 발로 차기도 하고 움직이기도 하는 태아를 위해 많은 엄마들이 태교를 한다. 태교는 교육의 시작점이라고도 볼 수 있다. 아이는 세상의 빛을 보기 전, 엄마의 뱃속에 있을 때부터 부모가 자신을 향해 들려주는 많은 이야기들을 통해 정서적인 유대감과 부모를 향한 신뢰라는 보이지 않는 뿌리를 형성한다. 뇌과학적인 측면에서도 태아기에 엄마가 느꼈던 평온함이라든가 가슴 벅찬 감정 등과 같은 긍정적인 정서는 아이의 뇌 발달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이루어지는 엄마와 아이의 따뜻한 교감은, 아이가 세상을 향해 첫발을 내딛었을 때 자존감의 형태로 드러나게 된다. 태교가 교육의 출발점이라면, 실질적인 영유아기 교육 역시 눈에 보이는 물질적인 것들보다 보이지 않는 것들, 예를 들면 인성이라든가 창의성, 상상력, 자존감, 신뢰, 애정 등과 같은 정서적 가치에 중점을 두어야 하지 않을까? 영유아기, 우리 아이들은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고 커나간다. 아이의 자연스러운 발달을 지지해 주고 돕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지만, 정작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에 올라오는 다른 아이들의 사진이나 영상을 보면서 비교하게 되고 보이는 것들에 집착을 하기가 쉽다. 누구 아이는 벌써 걷는다더라, 누구는 벌써 말을 하고 글도 읽는다더라 하는 등과 같이 보이는 성장에 조바심을 내게 되면, 정말 중요한 보이지 않는 성장은 들여다보지 못하게 된다. 예를 들어 아이가 블록 놀이를 할 때, 잘못 쌓아서 무너뜨린 후 다시 블록을 쌓는 모습을 보았을 때 보이는 성장에만 주목하면 ‘왜 다른 아이는 잘 쌓는데 우리 아이는 제대로 쌓지 못할까?’ 라고 실망감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성장에 주목한다면, 내 아이는 실패한 것이 아니라 다시 도전하는 보이지 않는 힘인 회복 탄력성을 가진 특별한 아이가 된다. 친구의 울음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다가가 위로할 줄 아는 보이지 않는 공감 능력이 따뜻한 인성의 아이로 성장하게 만들며, 호기심에 가득 차 동식물을 관찰하는 아이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 탐구능력이 되어 창의력과 과학적 사고의 토대가 된다. 이렇듯 교육은 보이지 않는 것을 단숨에 나타나게 하는 마술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씨앗 안에 꽃과 열매가 들어있음을 믿고 기다리며 물을 주는 인내의 과정이다. 그래서 교육을 백년지대계(百年之大計)라고들 하며, 영유아기는 백 년 교육의 뿌리라 할 수 있다. 태교부터 시작된 교육은 보이지 않는 태아를 향한 부모의 사랑이었으며, 아이가 태어나 자라는 영유아기의 교육은 보이지 않는 것들을 보이게 만드는 힘을 키우는 뿌리 교육이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 아이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당장 보이는 것들에 집착하는 모습으로 아이 역시 보이는 것들만 중시하게 만들 것인지, 보이지 않는 것들도 볼 수 있게 만드는 힘을 키워 아이 스스로 자신에게 숨겨진 보이지 않는 거대한 우주와도 같은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도록 할 것인지 고민해 보아야 하지 않을까? 백 년의 계획이자 백 년을 준비하는 중요한 교육에 있어서 스스로 사고하며 이를 행동으로 옮길 줄 아는 아이, 타인과 협력하는 아이,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아이로 키우는 것은 부모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보이지 않는 것들을 보이게 만드는 힘을 가진 아이가 성장하여 우리 사회를 이끌 때, 비로소 보이는 놀라운 성과가 나타날 것이다.
    보이지 않는 것들을 보이게 하는 힘
    by 한서정
    2025.12.02 13:31:16
  • 아내와 함께 영화 ‘국보’를 봤다. 모처럼 나를 영화관으로 이끈 건 가부키(歌舞伎)라는 독특한 소재 때문이다. 어둠 속에서 막이 오르자, 수년 전 다녀온 시코쿠가 떠올랐다. 벚꽃 흩날리던 그해 봄날 나는 시코쿠 고토히라의 가나마루 극장에서 가부키 공연을 관람했다. 일정에 없던 방문이었고, 내 인생 첫 가부키였다. 애초에는 고토히라 궁만 들릴 생각이었기에, 현지에 가서야 공연 일정을 확인했다. 15만 원짜리 1등 좌석만 남았다는 말에 잠시 망설였지만 결국 잘한 선택이었다. 1835년에 건축돼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가부키 전용 극장에서 전통 가부키를 경험했으니 행운이었다. 그날 공연은 낯설지만 강렬했다. 퀴퀴한 다다미 냄새와 세월이 눌어붙은 나무 기둥으로 구성된 극장은 200년 시간을 고스란히 견디고 있었다. ‘온나가타(여장 남자 배우)’의 미세한 몸짓과 떨림에 객석은 숨을 죽였다. 그 적막과 긴장을 나는 지금도 선명히 기억한다. 온나가타는 여성을 연기하지만 결코 여성이 될 수 없다. 그 모순은 긴장을 만들고, 긴장은 또다시 아름다움으로 이어진다. 그날 가부키 관람은 일본 전통예술과 장인정신을 깊이 체감한 시간이었다. 물론 그때까지만 해도 가부키는 나에게 여전히 이해하기 어려운 세계였다. 영화 ‘국보’를 보면서 비로소 실마리를 찾았다. 야쿠자 집안에서 태어나 가부키 가문으로 들어간 키쿠오, 명문 가부키 집안의 적자인 슌스케. 두 사람은 피와 재능 사이에서 흔들리고 질투하며 또 서로에게 기대며 성장한다. 무대 위에서는 한 몸처럼 호흡한다. 그러나 막이 내리면 각자 출발선으로 돌아가 갈등한다. 영화는 이들의 몸짓과 표정, 작은 진동까지 정교하게 잡아냈다. 예술영화임에도 상영 3시간 내내 어느 한 군데 걸림 없다. 감독은 군더더기 없는 언어와 탁월한 영상 미학으로 가부키를 재해석했다. 덕분에 관객들은 ‘가부키가 이렇게 흥미로운 장르였나’ 하며 감동한다. 영화는 재능은 부족해도 안정적인 금수저와, 뛰어난 재능에도 불구하고 한계를 절감하는 흑수저를 대비시킨다. 이는 재일교포 3세인 이상일 감독이 스스로 ‘경계인’이라는 점에서 특별한 울림을 준다. 그는 일본에서 태어나 일본어로 영화를 만들지만, 이름 앞에는 늘 ‘재일’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붙는다. 일본 사회에서 재일교포는 경계선에 서 있다. 어쩌면 감독은 아직도 혈통과 가문을 중시하는 일본 사회에서 자신처럼 경계인이 겪는 소외를 에둘러 말하는지 모른다. 주인공 키쿠오의 절망이 감독의 고백처럼 다가오는 이유다. 가부키 역사는 약 400년에 달한다. ‘기울다, 기괴하게 꾸미다’를 뜻하는 ‘카부쿠(傾く)’에서 유래한 가부키는 당시 기준으로 ‘튀는 춤’이었다. 초기에는 여성 배우들이 활동했으나 곧 남성 중심으로 전환되었다. 여장 남성 배우의 연기는 야릇한 분위기를 자아내며 유사 에로티즘으로 연결된다. 가부키가 서민 예술로 자리 잡은 건, 에도 중기 상업·도시 문화가 발달하면서다. 지금도 많은 일본인들은 가부키를 즐긴다. 연기·무용·노래·악기·무대미술·의상·분장·기계장치가 결합한 종합예술이기 때문이다. 명문 가부키 가문에 각별한 예우를 보내는 것도 장인을 대하는 연장선이다. 전통 가문을 향한 팬심은 K-pop 팬덤과도 닮았다. 무엇보다 가부키는 일본인의 밑바닥 정서를 관통한다. 주군이나 연인을 위해 목숨을 버리는 이야기, 사무라이 미의식, 전통 의상, 운율 있는 대사는 일본인에게 친숙하다. 최근에는 현대적 재해석과 콘텐츠화를 통해 지평을 넓히고 있다. 젊은 배우들은 영화·드라마·예능·광고에 등장하며 현대적 가부키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서울 ‘윤별발레컴퍼니’가 전통 갓을 발레와 결합해 새로운 표현을 만든 것과 같은 맥락이다. 해외에서 가부키는 ‘세계에 내놓을 일본 대표 예술’로 평가받고 있다. 가부키와 비슷한 우리 창극도 부활 조짐을 보이고 있으니 다행이다. 우리 창극이 그랬듯 가부키 역시 극장과 배우, 관객 모두 감소 추세에 있다. 대신 색다른 일본문화를 찾는 외국 관광객들이 그 자리를 메운다. 도쿄·교토·후쿠오카·오사카·시코쿠 가부키 극장에는 외국인 관객이 꾸준하다. 이들은 가부키를 보면서 일본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인증 샷을 남긴다. 시코쿠 가나마루처럼 극장 투어만 하는 관광객도 상당하다. ‘국보’가 일본 실사 영화 1위에 오른 데는 이런 분위기가 밑바탕 됐고, 열기는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영화 성공은 가부키가 한층 대중적이고 생명력 있는 장르로 확장될 가능성을 열어놨다. 영화관을 나서며 시코쿠 가나마루 극장과 우치코 극장을 떠올렸다. 당시에는 그 공간들이 훗날 일본 실사영화 역대 흥행 1위 기록, 그리고 재일교포 감독의 집요한 시선으로 이어지리라 상상하지 못했다. 일본에서 가부키는 먼지 쌓인 박제가 아니다. 오랜 세월을 딛고 감성을 흔들며 일본은 무엇인지 묻고 있다. 일본을 이해한다는 건 결국 그들이 집요하게 추구하는 아름다움의 형식을 이해하는 일지도 모른다. 봄이 오면 다시 시코쿠 가부키 극장을 찾고 싶다.
    영화 '국보'를 계기로 살핀 가부키 문화
    by 임병식
    2025.12.02 13:31:05
  • 새 정부 들어 앞으로의 경제활력은 인공지능(AI)에서 찾고 AI를 기반으로 삼아 세계 경제를 이끌어 가겠다는 전략이다. 식품분야에서도 마찬가지로 AI 기반산업으로 K-푸드 세계 시장을 이끌 수 있도록 정책적인 측면에서 잘 준비해야 한다. 그러나 정부의 이러한 AI 분위기를 타고 일부 분야의 이익을 위해서 자칫 정부 정책이 잘못가게 하는 위험성이 곳곳에서 보인다. 마치 지난 윤석열 정부에서 ‘푸드테크’가 다 해결해주는 것처럼 호도하여 식품산업정책이 잘못된 것처럼 그럴 개연성이 보인다. 식품분야에서 AI를 이용한다는 것이 어떤 면이고 우리가 경계하여야 할 무엇인지 주목하고자 한다, 우선 제일 경계해야 할 분야가 AI를 이용하면 새로운 식품을 새로 개발할 것이라는 측면이다. AI를 이용하면 표준화하여 대량생산이나 자동화를 통하여 가격경쟁에 우위를 점할 것으로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아마 AI를 기술혁명으로 잘못 인식하고 있는 사람들의 주장이다. 식품은 공산품만이 아니다. 먹는 사람들마다 기호성과 느낌, 선택성이 각각 다르다. AI 시대는 식품업은 농업에서 각 개인의 식탁에 이르기까지 각각 다른 소비자의 욕구와 건강을 도우는 방향으로 매우 차별적으로 독특하게 연결되어 가는 구조이다. 이 주장은 생산적인 측면만 내세우는 구조이기 때문에 정부가 이 방향으로 갈까 염려하는 부분이다. 미래 식품 AI 산업은 자연과 친화하고, 전통과 문화 그리고 맛과 건강이 있는 식품을 AI가 소비자에게 맞추어 정확하게 연결해주는 것이 핵심이다. 이렇게 소비자와 생산자가 연결되는 AI 경쟁력이 음식·식품 분야의 플랫폼 개발을 선도적으로 개발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착각하는 것이다. 물론 중요하지 않다고 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에 정부가 집중할 정도는 아니다. AI 플랫폼은 미국, 중국, 한국 등 세계적인 기업이 경쟁할 것이다. 우리나라 기업이 이 경쟁에서 뒤진다고 우리나라 식품과 음식이 죽는 것은 아니다. 플랫폼의 경쟁력을 과소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어차피 경쟁에서 살아남은 하나의 플랫폼일 것이므로 조용히 지켜보는 것이다. 어느 플랫폼이든 이 플랫폼 안에서 우리나라 음식과 식품이 다른 나라 식품과 경쟁에서 이기면 되는 것이다. 어떤 플랫폼에서도 우리나라 식품업은 다른 나라 음식과 경쟁에서 이길 수 있는 잠재력이 맛, 건강, 문화, 다양성 측면에서 충분히 있다. 식품업에서 우리 AI 플랫폼이나 피지컬 AI가 식품 제조와 유통 연결에서 세계를 통일하게 하는 것이 우리 농업과 음식이 발달하는 것으로 연결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 나라 음식과 식품이 세계 사람들의 선택을 받게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한편으로는 식품산업 업자들이 디지털전환 디바이스 개발 문제에 식품산업의 AI 성공여부라고 열심히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는 데 이 또한 플랫폼 개발과 같이 잘못된 방향이다. 하나의 디바이스만 살아남게 될 것이고 우리는 우리 기업이든 미국이나 중국 기업이든 상관없이 이용하면 된다. 물론 우리 기업이 최종 승자가 되었으면 바람에는 이견이 없다. 그러면 미래 AI 시대 우리나라 식품업이 성공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가 세계 식품시장에서 K-푸드 즉 우리 식품이 세계 사람들이 건강하고 맛있는 식품으로 사랑받고 선택받게 하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AI 시대에 K-푸드가 맛이 있고 건강성이 있는 다양한 식품으로 AI가 인식하고 이를 소비자에게 알려주는 것이 AI 시대에 우리 나라 음식, 식품, 농업, 식당이 사는 길이다. AI가 어떤 사람의 건강상태나 식생활에 맞추어 어떤 음식을 먹을 것인지를 알려주고, 밀키트 같은 것으로 식재료를 제공해주거나, 맞는 레스토랑을 소개해주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나라 음식에 대한 컨텐츠, 즉 역사 문화, 맛과 건강요소, 농업 생산과 재료에 관한 모든 자료가 AI 플랫폼에 들어가야 한다. 그러나 여기에 들어갈 우리 음식의 데이터나 콘텐츠가 없다. 이렇게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역대 정부가 아예 이런 콘텐츠 창출에는 관심이 없었다. 지금 정부도 잘 인식하지 못할까 두렵다. 오직 기업에 제품개발하여 기업이 돈 버는 구조에만 관심이 있었고, 문화적인 콘텐츠의 중요성도 K-푸드 열풍을 타고 인식되고 있다. AI 시대에는 맛과 건강, 역사와 문화에 대한 정확하고 과학적인 콘텐츠를 정확하게 갖는 것이 미래 AI 시대 핵심 경쟁력이다. 이러한 과학기술 발전에 발맞춰 AI 시대 식품업 시장에서 개인 맞춤형 식품시장이 가장 활성화될 것이며, 이 시장에서 우리나라 K-푸드가 가장 경쟁력이 있다. AI는 잘못된 정보에 의한 오류를 매우 혁신적으로 극복할 것이다. 또한 생명과학의 발전으로 인간의 물리적 환경과 생물학적 특성의 표현이 AI가 구분할 수 있도록 더욱 세밀하고 정확해질 것이며 AI에 의하여 인간의 생물학적 요구에 맞춤형 음식이나 식품이 정확하고 연결될 것이다. 맞춤형 식품의 시대를 열고 선도하기 위해서는 기술적인 문제가 핵심이 아니라, 얼마나 정확한 데이터나 컨텐츠가 있느냐가 핵심 경쟁력이다. 이를 위하여 우리나라 정부 연구자가 데이터 창출에 힘을 쏟아야 한다. 동시에 우리 몸이 갖고 있는 생물학적 특징, 개인 맛 기호성, 후성유전학적인 특성에 대한 데이터 뿐만 아니라, 다양한 음식이 갖고 있는 지리, 역사, 농업, 음식 특성, 환경, 민족문화, 미식, 건강성에 대한 수많은 데이터를 창출하는 것이 중요하다. 기술만 강조되는 요즘 시대에는 놓치기 쉬운 중요한 문제입니다. 미래 AI 시대 개인 맞춤형 음식 시대의 도래와 그에 대응하는 식품으로 한국 식품이 세계를 제패할 수 있도록 차분히 준비하여 나가야 한다.
    AI 시대 식품 분야에서 무엇을 대비하여야 할 것인가?
    by 권대영
    2025.12.02 13:30:43
  • 주식투자의 수익률제고를 위해서는 장기투자가 필요하다고 한다. 장기투자의 장점은 많은 통계가 보여준다. 통계는 주식이 다른 자산군에 비해 높은 수익률을 보인다고 설명하는데, 이는 주식의 장기간 보유를 전제로 한다. 하지만 장기투자를 일관되게 실천하기란 말처럼 쉽지 않다. 시시각각 쏟아지는 다양한 정보는 기존에 구축된 의사결정을 흔들기 때문이다. 장기투자는 고사하고 잦은 매매로 인해 기대하는 성과보다는 매매비용만 지불하는 역설을 맞게 되는 경우도 흔하다. 장기투자를 실행하는데 가장 좋은 방법은 트렌드를 이해하는 것이다. 트렌드에 대한 일관된 판단이 서게 되면 다양한 정보의 유혹에 흔들리지 않는다. 과거에도 그러한 사례는 많이 발견된다. 특히 100년 전 미국에서 전개되었던 전자제품과 자동차의 대중화 과정을 보면 여러 시사점을 얻을 수 있다. 당시 신기술은 뚜렷한 트렌드를 형성하면서 1920년대 내내 주식시장을 강세장으로 이끌었다. 지금의 모빌리티, 인공지능(AI) 등의 기술 혁신이 새로운 트렌드를 형성하는 것과 유사하다. 신기술의 확산과정에는 공통적인 성장 궤적이 존재한다. 초기에는 혁신수용자 중심으로 급성장하다 대중시장으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증가세가 일시적으로 둔화되는 캐즘(Chasm) 현상을 겪는다. 이 일시적 둔화기를 지나 특이점을 통과하면 대중으로의 확산 모멘텀이 매우 강해지는 패턴인 이른바 ‘옆으로 누운 S커브’ 곡선을 그리며 성장한다. 전기차(EV) 생태계도 이러한 흐름을 그대로 따라가고 있다. 문재인 정부 시절 전기차 생태계를 육성하기 위한 노력이 범정부적으로 추진되었다. 전기차 확산을 위해서 보조금 등 재정투입을 통해 전기차 충전 인프라를 우선 조성하였다. 공공재라는 인식 아래 정부 주도로 완속, 급속충전 인프라를 빠르게 확산시킨 것이다. 문제는 큰 길을 닦았는데, 그 길을 달리는 자동차 확산이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는 점이다. 충전 인프라 기반을 계획대로 조성해 큰 길을 만들어 놓았지만, 전기차 판매량 증가세는 내연기관차 대비 높은 자동차 가격, 화재 위험 등으로 인해서 주춤했다. 중국, 유럽에서 전기차 판매 증가율이 20~40% 씩 성장하는 흐름과 달리 한국에서는 오히려 2023년과 지난해 전기차 판매 증가율이 감소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트렌드의 힘과 그에 따른 궤적 형성은 전기차 판매량에서도 예외 없이 확인되고 있다. 올해들어 한국의 전기차 신차 판매량이 20만 대를 넘어 역사적 최고치를 기록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캐즘을 벗어나는 조짐이다. 가격 인하, 기술 발전, 충전 인프라 등이 결합하면서 소비자가 체감하는 내연기관차 대비 소유 비용과 효용이 개선되고 있다는 인식이 트렌드 회복의 원동력이다. 인프라 산업의 방향을 결정하는 데 있어, 정부의 정책 의지와 대안은 매우 중요하다. 정부는 강력한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NDC)를 천명하며 2030년까지 전기차 판매 목표를 400만 대 이상으로 제시하고 있다. 충전 인프라 확산을 위한 노력도 병행하고 있다. 향후 5년 동안 전기차 판매는 4배, 전기차 충전 인프라는 2배로 확충하겠다는 구체적 목표를 제시했다. 여기서 충전 인프라 확대를 위한 다양한 민간 참여 방안이 더 폭넓게 검토되어야 한다. 정부의 재정 투입이 마중물 역할을 수행했다면 이제는 풍부한 민간의 장기 투자자금이 충전 인프라 시장으로 유입되도록 제도적 혁신을 강화해야 한다 전기차 충전산업은 안정적인 장기 현금흐름이 꾸준히 발생하는 대표적인 인프라 비즈니스이다. 안정적인 현금 흐름이 장기투자를 필요로 하는 일반 개인, 또는 장기 기관투자가들의 수요와 연결되도록 세제 및 금융 솔루션이 유기적으로 결합되어야 한다. 특히 캐즘을 벗어나려는 시기에 추진되는 정책 믹스는 정책의 마중물 효과를 극대화시킬 수 있는 촉매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관점에서 지난주 안호영, 강득구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이 공동주최하고 한국전기자동차협회가 주관해 국회에서 열린 ‘전기차리더스 포럼’은 그 의미가 컸다. 탄소중립 목표 달성을 위한 전기차 대전환 가속화를 위한 방안과 역할을 논의하는 자리였다. 기후에너지환경부와 국토교통부 등 정부와 산·학·연 등에서 보여준 생태계 발전을 위한 지대한 관심은 추운 날씨를 녹이는 뜨거운 열기처럼 느껴졌다.앞으로 혁신적인 전기차 생태계를 구축해 기후위기에도 능동적으로 대응하고 미래 성장동력도 재점화하기 위해 사회적 관심을 모을 때다.
    전기차 2차 성장과 투자 생태계 전환
    by 김세중
    2025.12.01 17:44:36
  • 최근 서울 집값 과열에 따른 주택 규제가 다시 강화되는 가운데, 지방 부동산 시장에도 전세 가격에 이어 매매 가격이 상승 전환하는 변화의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지난 2~3년간 침체가 깊었던 지방 주요 도시들에서 최근 들어 거래량이 살아나고, 일부 지역에서는 매도 호가도 상승하는 추세다. 이런 상황 속 새 정부가 제시한 ‘5극 3특’ 전략이 더해지며 지방 부동산 시장에는 오랜만에 훈풍이 불어오길 기대하는 심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 지방 시장에서 이 정책이 특히 중요한 이유는, 단순한 경기 반등을 넘어 앞으로 지역 구조를 재편할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5극 3특은 전국을 다섯 개의 광역 경제권(수도권·동남권·대경권·중부권·호남권)으로 묶고, 별도로 세 개의 특화 권역(제주·강원·전북)을 설정해 지역별 강점을 극대화하는 초광역 전략이다. 과거에는 각 도시가 자체적인 성장 전략을 추진했다면, 이제는 광역권을 하나의 경제·생활권 단위로 묶어 효율성을 높이고 역할을 분담하는 방향으로 전환되고 있다. 실제로 최근 발표되는 각 지자체의 도시기본계획에서도 이러한 흐름이 뚜렷하게 드러난다. 계획의 핵심으로 도시 간 이동 시간 단축, 생활권 확장, 산업 기능의 광역 배치 등이 제시됐으며, 이를 구체적으로 실현할 교통·산업·주거 전략도 상세히 담겨 있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역시 광역 교통 인프라 분야다. 예를 들어 동남권에서는 부전–마산 철도와 동해선 광역철도 확충, 그리고 부산·양산·울산을 하나의 생활권으로 묶으려는 광역전철 사업이 도시기본계획에 명시되며 권역 통합의 속도를 높이고 있다. 대경권은 대구경북신공항을 중심으로 공항철도와 중앙선 복선화가 추진되고 구미·경산·의성·영천을 연결하는 광역 교통축이 강화되는 중이다. 중부권에서는 광역철도 1·2단계 사업과 세종–대전 BRT 고도화가 진행되고, KTX 세종역 논의가 더해지며 사실상 단일 생활권으로의 통합이 가속화되고 있다. 호남권 역시 광주도시철도 2호선, 광주–나주 광역철도, 전라선 고속화 등 다양한 교통망 개선이 병행되며 도시 간 접근성이 크게 높아질 전망이다. 특화권역인 강원 역시 동서고속철도와 춘천–속초 고속철도 같은 굵직한 사업을 통해 관광·산업 기능을 강화하려는 흐름이 나타난다. 이처럼 각 권역에서 추진되는 교통망 확충은 단순히 ‘이동이 편해진다’는 수준을 넘어 도시의 생활권과 가치 축을 완전히 재편하는 힘을 갖는다. 지방 부동산을 바라보는 기준도 기존의 소규모 도시 단위에서 대규모 ‘권역 단위’로 확대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렇다면 이런 변화 속에서 각 권역의 새로운 핵심지는 어디가 될까. 서울 강남처럼 전국적 상징성을 갖춘 지역이 아니더라도, 광역 교통망의 중심이 되거나 교육 인프라가 집중된 지역은 앞으로도 꾸준히 중심축 역할을 강화할 가능성이 크다. 특히 지방은 인구·경제학적으로 학군지의 영향력이 수도권보다 더 크게 작용하는 특징이 있다. 대표적으로 대구 수성구나 광주 봉선동처럼 교육·생활 인프라가 집적된 지역은 광역 생활권 확장 속에서도 자연스럽게 중심지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모든 지역이 같은 속도로 성장하는 것은 아니다. 광역 생활권의 혜택이 집중되는 지역이 있는가 하면, 교통망과 산업 배치에서 상대적으로 소외되는 지역도 생길 수 있다. 즉 광역화가 균형 발전을 목표로 하더라도 실제 시장에서는 중심부와 주변부 간 격차가 오히려 커질 가능성이 존재한다. 그렇기 때문에 단순히 ‘어느 권역에 속하는가’가 아니라, 그 권역 안에서도 어떤 지역이 교통·학군·일자리라는 세 가지 핵심 축을 확보하느냐가 향후 가치의 분기점으로 작용할 것이다. 5극 3특 전략은 지방 부동산 시장에 오랜만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광역 생활권의 확장은 지방 시장의 잠재력을 넓히는 동시에, 그 안에서 새로운 중심지가 어디가 될지를 재정의하고 있다. 향후 지방의 주거 전략을 세울 때는 ‘지역 전체’가 아니라 ‘권역의 중심축’에 대한 면밀한 분석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변화의 흐름을 정확히 읽는다면 지방 부동산에서도 충분한 기회가 열릴 수 있다.
    '5극 3특'이 지방 부동산 시장에 일으키는 새로운 변화
    by 윤수민
    2025.11.29 07: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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