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69
  • 꿈이란 개별적이고 주관적인 체험이다. 이러한 꿈의 내용을 분석하고 정신치료에 활용하여 임상적(clinical)인 효과를 보았다고 하더라도, 꿈 분석을 통한 치료 효과를 과학적인 방법으로 검증한다는 것은 또다른 차원의 문제이다. 꿈의 내용분석과 꿈치료 효과를 객관적으로 검증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꿈의 과학은 비약적으로 발전할 수 있다. 과학이 발전하면서 살아있는 사람의 뇌에 대한 관찰이 가능하게 되자, 꿈에 대한 또 다른 비밀의 문이 조금씩 열리기 시작하였다. 그 비밀의 문을 열었던 중요한 인물 중의 한 사람이 독일의 정신과 의사 한스 베르거(Hans Berger)다. 1892년, 젊은 베르거는 말에서 떨어져 길바닥에 쳐박히는 사고를 당한다. 그는 회상했다. ‘19세 대학생이던 나는 뷔르츠부르크에서 군사 훈련을 받다가 큰 사고를 당해 거의 죽을 뻔했다. 나는 가운데가 낮고 양쪽 가장자리가 높은 우묵한 길가에서 말을 타고 가다가 행군하는 대열 속으로 굴러떨어졌다. 포의 바퀴가 곧바로 내 몸을 깔아뭉갤 상황이었다. 말 여섯 마리가 끄는 포가 절체절명의 순간에 멈춰섰고, 소스라치게 놀랐지만 죽음을 모면했다. 그날 저녁 나는 아버지로부터 잘 지내느냐는 문안 전보를 받았다.’ 그는 큰 부상을 당하지 않았다. 신경과학(neuroscience)과 꿈의 생물학(a biology of dreaming)의 미래를 위해서는 무척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베르거는 그 이전이나 그 이후에도 누가 자신에게 그런식으로 안부를 물은 적이 한 번도 없었다고 밝혔다. ‘나와 형제애가 유난히 깊었던 큰 누나가 갑자기 부모님에게 내가 불운을 맞은 것이 틀림없다고 주장했다. 아마도 극한의 위험이 닥치고 확실한 죽음이 눈앞에 다가온 순간, 내가 발신자가 되고 나와 특별히 가깝던 누나가 수신자가 되어 텔레파시(telepathy)를 실행했을 것이다.’ 나중에 정신과의사가 된 베르거는 이것이 텔레파시(한 사람의 생각이 다른 사람에게 전달되는 현상)의 증거라 여겼다. 어느 날 그는 텔레파시가 어떤 ‘심령에너지’의 물리적 전달에 근거한다면, 이를 측정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한다. 1924년 그는 이 가설을 검증해보기로 결심하고 머리피부 안쪽에 두 개의 전극을 넣고 그 사이에서 벌어지는 전기활동을 기록했다. 하나는 머리 앞쪽, 다른 하나는 머리 뒤쪽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전극에는 전기활동이 포착되었다. 하지만 이를 텔레파시의 근거로 내세우기는 너무 미약했다. 그러나 베르거는 인간의 뇌에서 뇌파(brain wave)가 나온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뇌파란 뇌가 활동함에 따라서 뇌의 신경세포가 만들어 내는 전류를 말한다. 1929년, 마침내 그는 뇌파를 증폭하여 기록하는 뇌전도(EEG, Electroencephaleogram)를 이용해서 환자의 머리 표면으로부터 뇌파를 측정하는데 성공했다. 이 뇌파의 기록을 보면, 자고 있을 때와 깨어 있을 때, 뇌의 신경활동이 확실히 다르다. 깨어 있을 때의 뇌파는 주파수(초당 진동수)가 높고, 진폭(진동의 중심으로부터 최대로 움직인 거리)은 낮다. 이에 반해서 보통 잘 때의 뇌는 저주파이고 고진폭의 뇌파를 특징으로 하며, 신경활동이 상당히 감소한다. 이 뇌파는 머리의 표면에서 측정가능할 뿐만아니라 미약하게나마 외부로도 전달된다. 이 뇌전도(EEG)는 임상신경학 분야를 비롯한 수면과 꿈 과학에 혁명을 일으켰다. 이것은 간질 환자뿐만 아니라 정상적인 사람의 뇌에서 일어나는 역동적 활동을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수단을 제공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베르거와 연구자들은 연구의 제약때문에 깊은 수면 후에 일어나는 많은 뇌 활동의 변화를 발견할 수 없었다. 베르거의 실험으로부터 20년 이상이 지나고 나서야 수면 중 꿈 꾸는 뇌의 극적인 변화에 대한 관찰이 객관적을 이루어지게 된다. 한편, 텔레파시의 존재에 대하여 심리학자 융은 확신을 가졌으며, 꿈의 내용을 결정하는 요인 중 하나가 텔레파시라고 분명히 믿었다. 프로이트도 나중에 텔레파시적 꿈을 현실로 받아들였다. 이후 심리학자나 꿈 과학자들이 텔레파시의 존재를 과학적으로 입증하려는 시도가 여러 차레 있었지만, 현재까지도 과학적인 확실한 증거로 뒷받침을 하고 있지는 못하다.
    뇌파의 발견, 꿈에 대한 비밀의 문을 열다
    by 국경복
    2025.07.30 10:59:34
  • 지구가 점점 더 뜨거워지고 있다. 동남아시아의 열대성을 방불케 하는 도심 속에 선 사람들은 '기후'가 아닌 '재난'의 중심에 서 있는 것처럼 느낀다. 기후 위기와 환경 재난은 더 이상 막연한 미래가 아니라, 지금 우리가 직면한 현실이다. 그런 무더운 시간 속에서 예술이 우리에게 줄 수 있는 ‘블루력’은 무엇일까. 냉방보다 오래 지속되고, 차가운 물보다 더 깊이 스며드는 감각. 자연을 관조하며, 순환과 흐름을 새롭게 체감하게 만드는 예술적 경험이다. 최근 예술계에서 현대미술 아티스트들은 두 축, ‘환경에 대한 각성’과 ‘내면적 치유’를 공감각적으로 풀어낸다. 환경에 대한 경각심과 성찰을 유도하는 대표적인 현대미술 사례로는 2019년 베니스 비엔날레 황금 사자상 수상작, 리투아니아 작가 3인(루길레 바르즈쥬카이테, 바이바 그라이니테, 리나 라페리테)의 협업작 ‘태양과 바다·Sun & Sea’를 들 수 있다. 최근 한국에서는 뷰티 브랜드 탬버린즈의 초청으로 서울 성수동에서 국내 첫 공연이 진행되며 다시 한번 화제가 되었다. ‘태양과 바다 : Sun & Sea’는 실내 전시장에 인공 해변을 설치하고, 수십 명의 배우가 하루 종일 해변에서 여유를 즐기는 피서객을 연기하는 구조로 구성된다. 배우들은 해변에 누워 책을 읽거나, 개를 산책시키고, 아이들과 공놀이를 하며 평범한 일상을 이어간다. 관람객은 무대 아래가 아닌 복층 위층에서 내려다보며, 일종의 ‘태양의 시선’으로 휴양지의 한 장면을 조망하는데, 아래에서 들려오는 오페라 형식의 음악은 평화로워 보이는 장면 속에서 은연중에 ‘기후 위기 속, 이 풍경이 언제까지 가능할까’라는 질문을 던지게 만든다. 생태와 기후변화에 대한 사회적 메시지를, 유쾌하고도 날카롭게 전달하기에 성공적이었다. 기후 위기에 대한 예술적 접근이 날 선 경고음이라면, 자연을 마주하는 또 다른 예술의 역할은 감각적 치유에 있다. 정서적 이완과 공감이 가능한 임창민 작가의 작품을 소개한다. 임창민 작가가 담아낸 자연의 장면은 압도적으로 푸르다. 현대적인 건축미가 차갑게 느껴지는 아부다비 루브르 박물관의 실내 창 너머로, 시선이 닿는 끝까지 펼쳐진 수평선 위에 이는 파도와 물결, 그리고 햇빛에 반사되어 반짝이는 윤슬이 실제 바다처럼 느껴지는 아부다비 해변을 고요하게 감상해보자. 스위스 마터호른의 한 호텔 내부에서 창을 통해 고요한 설원 위로 눈발이 흩날리는 풍경이 펼쳐지기도 한다. 이른 아침 새하얀 눈과 푸른 알프스산맥이 맞닿는 장면은 시각적 온도를 단번에 낮추며 관람자의 체온까지 식혀주는 듯한 시원한 몰입감을 유도한다. 이처럼 임창민 작가는 멈춰 있는 실내의 사진과 창밖 자연의 영상 작업을 결합한 독창적인 방식을 통해, 자연의 움직임과 시간의 흐름을 한 화면 안에 담아내 온 작업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이탈리아 돌로미티, 포틀랜드의 폭포와 호수, 한국의 섬진강과 대관령 등 그가 직접 머물며 기록한 아름다운 블루의 풍경을 창을 통해 전달한다. 작품 속에 항상 자리하는 ‘창’이라는 모티프는 단순한 액자가 아닌 ‘시간의 프레임’으로 작동하는데, 자연의 미세한 움직임이 화면 속에 포착되며, 정지된 듯 흐르고 흐르는 듯 멈춰 있는 시공간의 경계를 드러낸다. 이를 통해 관람자는 계절의 흐름, 자연의 호흡, 그리고 자신의 기억과 감각이 겹쳐지는 새로운 감각을 경험한다. 특히 두 장소를 작가의 시선과 기술을 통해 하나의 이미지로 병치시키며, 정제된 공간감과 생명력 넘치는 자연이 공존하는 이중적 풍경을 형성한다. 이러한 시각적 긴장과 조화는 관람자로 하여금 무더운 여름 한가운데서도 잠시 머물고 싶게 만드는 ‘감각적 청량함’을 선사하며 서로 다른 시공간을 넘나드는 비물리적 여행을 유도한다. 폭염 속에서도 전시장을 찾는 이들이 각자의 속도와 온도로, 예술과 공명하며 ‘Chill’해지기를 바란다. 자연의 영속성과 시간의 순환에 대한 현대미술 작가들의 사유는 결국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감각적 생존 전략이며, 무엇보다도 이 여름을 견디게 하는 가장 우아한 ‘블루력’일지도 모른다.
    기후 위기와 예술의 응답, 지금 필요한 ‘블루력’
    by 박소정
    2025.07.16 15:30:54
  • 꿈에서 인간이 동물이나 식물로 변하는 일이 발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장자(莊子, BC369~BC286, 본명은 장주)는 중국 전국시대 사상가 입니다. 그가 어느 날 꿈을 꿉니다. ‘내가 꿈에 나비가 되어 펄럭펄럭 날았는데 유유자적하여 내가 장주인 것을 몰랐다. 그러나 잠에서 깨니 내가 장주인 것을 알자 혼란스러웠다. 나와 나비 사이에는 반드시 구분이 있건만 내가 꿈에 나비가 되었는지 나비가 내가 되었는지 지금 알수가 없구나.’ 중국의 충장세자(忠莊世子) 역시 꿈속에서 자신이 물고기가 되었다가 다시 새로 변하는 꿈을 꾸기도 했습니다. 이 같은 꿈은 과거의 현상만은 아니며, 현대인에게도 발생합니다. 저명한 수면학자 월리엄 디멘트 교수는 자신의 2살도 안된 딸이 꿈에서 깨어나서 ‘아빠, 내가 꽃이었어요’라고 말했다고 전합니다. 이들 꿈에서는 사람이 나비, 물고기, 새나 혹은 꽃으로 변하여 등장합니다. 이같은 현상을 사람이 물화(物化, metamorphosis)되었다고 합니다. 장자나 충장세자는 자신의 삶이 보다 여유있고 자유스러우며, 편안하게 살고 싶은 마음의 일부가 드러난 것입니다. 디멘트 교수의 어린딸은 꽃처럼 예쁘고 사랑을 받고 싶은 심정이 꿈으로 재현된 것입니다. 이같이 꿈에서는 사람이 동물이나 식물 등으로 표상되기도 합니다. 즉, 이들 꿈에서는 꿈 꾼이의 인격의 일부 특성이 꿈으로 투사(projection)되어 나타난 것입니다. 이들 꿈을 게슈탈트 심리치료의 창시자인 펄츠의 방식으로 해석하면, 자신의 심리적인 감정의 일부가 나비, 물고기나 새 등으로 투사된 것입니다. 이들은 해석을 통하여 현실에서 동물처럼 자유롭게 행동하여 체험해 보고 싶은 감정들이 자신의 내면의 일부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이와는 반대로, 꿈꾼이의 내면 감정을 다른 사람에게 투사하는 경우에 투사의 대상이 되는 사람이 물화되어 나타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특히, 트라우마 꿈에서 가해자인 타인은 위협적인 동물로 등장하기도 합니다. 꿈에서 젊은 남성에게 위협과 성폭행을 당했던 여성은 그 남성이 ‘뱀으로 변하더니 그녀의 목을 조르는’ 꿈을 꿉니다. 내가 심리상담을 했던 어느 젊은 여성은 꿈에 뱀이 자신을 쫓아와서 도망가다가 절벽까지 몰립니다. 무서운 뱀이 자신을 공격하는 모습에 크게 놀라서 잠에서 깨어납니다. 자유연상을 통해서 그녀의 억압(repression)되었던 감정이 표출되었는데, 그 뱀은 현실에서 그녀를 괴롭히던 자신과 아주 가까운 사람이었습니다. 어린시절 왕따를 당해 심리적인 고통으로 심한 우울증을 겪고 있던 20대 청년은 심리치료를 받으면서 많은 꿈을 꾸는데 심리상담 중반에 다음과 같은 꿈을 꿉니다. ‘나는 들판에 어떤 사람들과 함께 있다. 그런데 옆에 있던 사람이 괴물로 변한다. 나는 괴물에게 욕하고 소리치고 싸우다가 도망을 간다.’ 2년간의 치유를 받으면서 우울증에서 거의 회복될 무렵에 온전한 자기를 찾는 꿈을 꿉니다. ‘초원에 버섯집이 있다. 버섯 집 문 앞에 화가가 캔버스에 그림을 그리고 있다. 버섯 집 옆에는 풀밭이 있는데 아이들이 뛰어 놀고 있다.’ 그는 자유연상(free association)을 통해서 자신의 꿈을 이해합니다. 꿈에서 화가는 이제는 자신의 마음을 자유스럽게 표현할 수 있는 그 자신이며, 풀밭에 뛰어노는 아이들은 자유를 찾게 된 자신의 내면의 아이라고 받아들입니다. 현대 신경생리학에 의하면 꿈 꾸는 렘(REM)수면 동안에는 현실을 인지하고 판단하는 등 지휘부 역할을 하는 뇌의 전두엽은 활성화되지 않습니다. 이 부분이 활성화되지 않기 때문에 꿈에서는 날기도 하고, 동물이나 식물로 전환이 가능하게 됩니다. 꿈 해석에서 새로운 통찰력을 주었던 프리츠 펄스(Fritz Perls·1893~1970)는 독일출생의 유대계 정신과 의사입니다. 그는 베를린에서 태어나서 성장하였으며 28세에 의학박사 학위를 받습니다. 1926년 프랑크푸르트에서 당시 유명했던 신경정신의학자 골드슈타인(Goldstein)을 만나서, 전체로서 통합된 유기체 이론을 접하고 매우 감명을 받습니다. 1934년 그는 히틀러의 탄압을 피해 남아프리카로 갔는데 거기서 정신분석학회를 창립하기도 하였습니다. 1942년에 프로이트의 공격본능 이론을 비판하는 새로운 이론을 개발하여 ‘자아, 배고픔, 공격’이론 책을 펴고 프로이트 학파와 완전히 결별합니다. 1946년 미국으로 이주하였고, 1950년 ‘알아차림(awareness)'이라는 이론을 정립하는 한편, 처음으로 게슈탈트(Gestalt) 치료라는 용어를 만들어 냈고, 공저로 ‘게슈탈트 치료’라는 책을 펴냅니다. 펄츠는 자유로운 영혼을 지닌 활달한 성격의 소유자였습니다. 엉뚱한 행동으로 사람들을 당황하게 만들었으며 매우 자극적인 쇼맨십으로 좌중을 압도하며 강렬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의 성격에 대한 주변 사람들의 평가는 극단적으로 다양하다. 매우 도전적이고 통찰력이 있으며 영감이 탁월한 사람으로 평가되기도 하는 반면, 엉뚱하고 자기도취적이며 충동적인 사람으로 평가되기도 했습니다. 꿈 해석과 관련해서, 펄스는 융과 마찬가지로 모든 꿈은 꿈꾸는 사람에게 꿈이 보내는 실존적 메시지를 갖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꿈꾸는 사람이 외부의 권위적 인물이 행하는 ‘해석’에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 내면으로부터 그 메시지를 스스로 새롭게 발견할 때 그런 메시지의 존재를 더욱 분명히 느낄 수 있다고 합니다. 꿈에 나오는 모든 요소들은 투사된 자기의 부분들이며, 이들은 이상적으로는 자기에 통합되고 수용될 수 있으며, 적어도 부분적으로라도 자기 것으로 인정될 수 있는 것들이라고 봅니다.
    우리는 왜 ‘장자의 꿈’을 꾸는가
    by 국경복
    2025.07.02 13:48:59
  •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이 익숙한 어린 시절 놀이가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에서는 생존을 건 냉혹한 게임으로 재해석된다. 분홍빛 거대 인형이 “무궁화 꽃이…”를 외치는 동안은 안전하다. 하지만 고개를 돌리며 “피었습니다”라는 외침과 함께 움직임이 감지되면 곧바로 총격이 가해진다. 손에 땀을 쥐는 이 게임은 결승선에 도달할 때까지 이 패턴을 반복한다. 동심의 세계가 무자비한 현실로 전복되는 이 장면은 단순한 놀이를 넘어, 규칙과 긴장, 멈춤의 미학을 내포한 은유적 서사로 작동한다. 어느 순간 에 멈추고 그 상황을 견디어내는 자만이 살아남는 세계. 어쩐지 요즘 현실과 닮아 있지 않은가. 오늘날 국제사회 역시 마치 ‘움직이지 않아야 살아남는’ 게임을 하고 있는 듯하다. 미국 벙커버스터 이란 폭격과 중동의 핵 위협, 일본의 난카이 대지진 전조증상를 비롯한 기후 위기, 경제 불안, 이민자 추방, 글로벌 동맹의 와해 등 복합적인 혼란 속에서 방향을 잃었다. 탈세계화와 다자주의의 약화는 공동체 감각을 붕괴시키고, 국제정치는 피로와 경직으로 가득해졌다. 세계는 정치적·경제적·환경적 스트레스에 시달리며, 일상은 불안과 긴장의 연속이다. 현대인은 마치 만성적인 ‘소화불량’ 상태에 놓인 듯하다. 그렇다면 이런 시대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몸이 불편할 때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위장을 달래줄 무언가를 찾는다. 미국인이라면 분홍빛 소화제 펩토비스몰을 떠올릴 것이다. 지금 이 시대에는 감정과 정신을 안정시켜줄 ‘문화적 소화제’가 절실하다. 흥미롭게도, 그 해답은 한국의 K드라마에서 발견된다. 단순한 스토리텔링을 넘어선 K콘텐츠는 오늘날 문화외교의 새로운 얼굴로 부상하고 있다. 지난 5월 부산 콘텐츠마켓과 칸 국제 페스티벌이 협력하여 칸시리즈 부산(CANNESERIES X BUSAN)을 개최하였다. 매년 프랑스 칸에서 열리는 이 행사는 이번에 부산 벡스코에서 그 상징적 장면을 보여주었다. 그것은 바로 ‘핑크카펫’이다. 전통적으로 붉은 카펫이 권위와 영광의 상징이었다면, 핑크카펫은 친근함과 감성, 위로의 색이다. 이는 정서적 공감과 생명력, 치유의 미학을 품은 K드라마와 맞닿아 있다. 핑크는 단지 시각적 장식이 아니라, 감정의 불안과 트라우마를 다정하게 어루만지는 문화적 치유제다. 많은 이들이 핑크를 ‘귀엽고 여성적인 색’으로 여기지만, 그 이면은 훨씬 깊다. 핑크는 진지함을 전복하고, 권위를 해체하며, 때론 급진적 정치성을 띤다. 역사적으로 핑크는 남성을 상징하기도 했고, 나치 독일에서는 동성애자 탄압의 표식이었으며, 오늘날에는 LGBTQ+ 운동(성소수자 권리운동)의 저항과 해방의 상징으로 재해석되기도 한다. 현대 예술에서는 이러한 핑크를 통해 유희와 자기 표현, 탈중심화의 메시지를 전한다. 예쁜 색을 넘어 사회적 메시지를 담은 다층적 기호인 셈이다. 예술과 철학의 영역에서도 핑크는 단순한 색이 아니다. 페미니스트 이론가 주디스 버틀러는 핑크 옷을 입는 행위조차 젠더 수행(performativity)의 일부라고 본다. 이는 정체성을 해체하는 하나의 정치적 실천이 될 수 있다. 시몬 드 보부아르가 말했듯 “여성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라면, 핑크 역시 사회가 부여한 젠더 코드다. 고정관념을 깨뜨리는 사회적 저항의 형식, 핑크는 색이 아니라 ‘목 소리’다. 핑크는 감각을 자극하고, 기호학적으로 다양한 의미를 내포한다. 이 색은 한편으로는 살갗과 같은 육체성을, 또 다른 한편으로는 순결과 동심, 그리고 에로티시즘을 떠올리게 한다. 퀴어 이론에서는 이분법을 전복하는 유희적 색상으로 핑크를 읽는다. 핑크색 철학은 단순한 색채를 넘어, 문화적 담론 속에서 인간과 사회, 권력과 정체성, 실존을 사유하는 하나의 도구다. 이러한 핑크의 상징성과 K드라마의 감성은 자연스럽게 맞닿는다. K드라마는 한국적 정서, 생명력, 공감의 미학을 바탕으로 복잡한 감정을 섬세하게 다룬다. 폭력적인 현실 속에서도 따뜻한 위로와 희망을 건네며, 세계인의 피로를 달래는 ‘정서적 생존’의 서사를 제시한다. K드라마는 단순한 콘텐츠를 넘어선 소통의 매개이자, 공감과 치유의 외교 수단으로 자리잡는다. 이번 칸시리즈 부산은 단순한 드라마 축제가 아니었다. 50개국, 700개 기업, 2,300여 명의 관계자가 참여한 글로벌 협업의 장이자 새로운 문화외교의 무대였다. 핑크카펫은 그 문을 여는 상징적 열쇠였다. 한류는 단지 인기 콘텐츠를 넘어 세계인과 소통하는 창구로 기능하고 있다. 이와같은 현실 속에서,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외교 정책은 전통적인 ‘가치와 공감’ 중심의 소프트 파워에서 점차 실용주의적 방향으로 선회했다. 경제적 실익, 보수적 가치 확산, 안보 전략과의 연계가 중심이 되며 국제사회의 피로감은 커졌다. 따뜻한 소통보다는 차가운 거래가 지배하는 외교 환경에서, 오히 려 문화의 역할은 더욱 절실해지고 있다. 이러한 피로감에 대한 틈새를 메우는 것이 바로 문화외교다. 그리고 지금 한국은, 인간성을 회복하는 문화적 수단으로서 지친 세계인의 마음을 두드리고 있다. 위태롭고 불안정한 시대에, 핑크는 더 이상 유치한 색이 아니다. 그것은 질문이다. “우리는 어떤 세계를 꿈꾸는가?” K드라마는 그 질문에 대한, 꿈을 현실로 공유하고 실현하는 가장 인간적인 대답이다. 핑크는 바로 그 시대정신의 색이다. 치유와 저항, 공감과 유희, 현실과 상상의 경계를 넘나드는 문화적 펩토비스몰. K드라마는 그 핑크빛 메시지를 담아 세계인을 위로하고 있다. 소통이 단절되고 협력이 무너진 시대에서, 문화외교는 어쩌면 우리의 마지막 생존 게임일지도 모른다. 핑크카펫 위에서 우리는 다시, 유쾌한 생명력을 머금고 ‘움직이지 않고 살아남는 법’을 배우고 있다.
    ‘핑크빛’ 메시지를 담은 K드라마
    by 이경화
    2025.07.01 14:37:38
  •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고조된 감각의 결핍은 오히려 새로운 문화 소비의 흐름을 만들어냈다. 더 이상 공간은 단순한 장소가 아니라, 오감(五感)의 스크립트를 담아내는 감성플랫폼이 되고 있으며, 예술은 그 플랫폼을 작동시키는 정서적 언어로 기능하고 있다. 기업과 브랜드는 공간을 물리적 배경이 아닌, 예술과 경험을 결합한 큐레이션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이 중에서도 각 분야의 아티스트와 협업하는 ‘사운드 브랜딩’은 글로벌 호텔, 자동차 브랜드, 문화 공간 등의 전략적 화두다. 이는 더 이상 예술이 '장식'이나 '배경'이 아닌, 브랜드의 핵심 메시지를 전달하고 소비자와 정서적 공감을 만드는 매개가 되고 있다. 일찌감치 패션 브랜드에 있어서는 루이비통이 브랜드의 현대, 미래적 철학을 강조하고자 미니멀리즘 현대음악의 거장 필립 글래스와 같은 아티스트와 협업해, 패션과 음악의 미니멀 세계관을 연결해왔다. 구찌는 아방가르드한 정체성을 강조하기 위해 실험적인 사운드와 다양한 언더그라운드 뮤지션을, 샤넬은 전통과 현대의 우아함을 전하기 위해 클래식에 대중음악을 선택한다. BMW는 전기차 사운드를 위해 독일의 영화 음악가 한스 짐머와 협업하며 운전 중 사운드의 경험을 브랜드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요소 중 하나로 확장시키기도 했다. 브랜드 전략으로서의 ‘사운드 브랜딩’을 이야기하기 이전, 예술의 본질은 언제나 서로 다른 감각의 대화를 통해 탄생해왔는데, 이 지점에서 순수한 영감의 교류로서 서로의 뮤즈가 되었던 현대미술가와 다양한 분야의 아티스트, 음악가들의 사례는 흥미롭다. 마침 ‘소리는 귀로 듣는 것이 아니라, 공간 전체로 경험하는 것’이라는 브랜드 철학을 가진 영국의 하이파이 스피커 케프 코리아가 신라호텔과 공동으로 주최하는 VIP프로그램의 세션 진행을 필자에게 요청하는 연락이 왔다. 세계적인 산업 디자이너 로스 러브그로브가 조각가 헨리무어 작품에서 영감을 받아 디자인한 케프 ‘뮤온’의 청음회였다. 아트디렉터로서 공간과 음악, 현대미술이 청중에게 하나의 울림으로 전달되도록 예술과 예술을 잇는 여정을 준비했다. 고전부터 동시대 작곡가의 실험적 사운드의 각 곡을 하나의 예술 작품과 짝지어 플레이리스트를 선곡하여 소개하는 방식으로, 이 협업이 단순한 청음회를 넘어, 예술이 삶과 만나는 방식을 새롭게 정의하기를 바랐다. 한때 한국에서 인기가 많았던 ‘에브리바디스 체인징’으로 브리티쉬펍을 대표해온 영국밴드 ‘킨’은 2차원의 사진을 3차원의 조각으로 구현하는 ‘데오도란트’연작을 통해 잘 알려진 국내를 대표하는 현대미술 아티스트 권오상 작가의 팬이다. 킨은 음반을 구상하는 중 권 작가에게 앨범 커버를 위한 작품을 의뢰를 했고, 그는 킨의 멤버 4명을 전신 조각상을 작업하기위한 사진작업을 위해 런던으로 건너갔다. 완성된 조각작품은 킨의 콘서트 무대에 서기도 했고, 킨이 첫 한국 내한을 결심하게 된 인터뷰에서 아티스트 권오상의 추천이 있었다고 이야기를 한 바가 있다. 내한 콘서트에서는 권 작가를 스피커 바로 옆으로 초대했는데, 그 순간 킨의 라이브의 감동이 잊혀지지 않아 작업 중에 그들의 음악을 들으며 작업에 영감을 받는다고 한다. 서로의 뮤즈가 된 셈이다. 회화와 사운드를 하나의 감각적 언어로 스스로 통합해 활동하는 아티스트들도 있다. 현재 활동하는 아티스트 ‘이시 우드’의 회화 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듯한 오브제와 초현실적 정서는, 사운드 작업으로까지 전이시키며 동시대인의 불안과 무의식을 공감각적으로 포착하는 방식으로 주목받는다. 단순히 음악에서 회화적 영감을 받는 것을 넘어, 두 장르 간 경계를 허물고, 오디오와 비주얼의 서사를 일관된 철학으로 풀어내는 것이 특징이다. 이날 밤, 우리는 한 음의 울림이 어떻게 하나의 회화와 연결되고, 한 작가의 숨결이 어떻게 선율과 공명하는지를 경험했다. ‘소리의 예술’이 가질 수 있는 가장 순수한 형태가 아니었을까. 음악과 미술, 서로 다른 감각의 예술이 서로를 비추며 뮤즈가 되는 순간, 예술은 감각을 넘어 우리 내면에 깊이 각인된다.
    뮤즈가 된 음악, 영감이 된 현대미술
    by 박소정
    2025.06.10 14:03:39
  • 물건들이 말을 걸고 스스로 행동하기 시작했다. 인공지능 기술이 들어간 스피커는 사람들과 대화를 주고받고, 냉장고는 카톡으로 메시지를 보내고, 네트워크로 연결된 자동차는 자율 주행을 하고 먼지를 감지한 로봇청소기는 스스로 청소하고 로봇요리사는 혼자 요리를 한다. 전 세계 산업 기술 전 분야에서 인공지능(AI)의 새로운 시대가 열리고 있다. 그 핵심에는 AI 에이전트(Agent)와 이를 기반으로 한 AI 시스템이 있다. AI 에이전트는 데이터와 외부 정보를 통합하고 다른 에이전트들과 협업해 목표를 자율적으로 달성할 수 있다. 인류 문명은 연결(connectivity)의 역사라고 할 수 있다. 이 '연결'에 이전에 보지 못했던 혁명적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바로 AI 기술이 접목된 '초연결(hyper connectivity)'이다. AI 기술의 발달로 모든 영역의 경계가 사라지고 기술이 융합되는 ‘초연결시대’에 접어든 것이다. AI는 학습을 통해 지능을 갖고, 네트워크를 통해 모든 사물이 정보를 주고받으면서 점차 고도화 되고 있다. 초연결시대는 사람과 사람, 사람과 사물, 사물과 사물 사이의 연결이 무한대로 확장되고 AI 기술이 접목되어 지금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세상이 만들어진다. 초연결 시대의 기반은 AI와 연결이다. 사람과 사물, 사물과 사물 사이의 연결을 통해 데이터가 생성되고 클라우드 컴퓨팅을 통해 언제, 어디서든 접근과 공유가 가능하다. 이렇게 생성된 데이터를 AI 기술을 통하여 분석하고 지식을 축적하며, 지능을 업그레이드하고 자동으로 최적의 의사 결정을 하게 된다. 이런 초연결 시대는 지금까지 다른 문화와 경제를 만들어 내고 새로운 사회적 가치를 형성해 나갈 것이다. AGI(Artificial General Intelligence) 즉, 범용인공지능은 인간을 능가하는 수준으로 작동하는 AI를 일컫는 용어다. 영화 아이언맨에 등장하는 만능 비서 ’자비스‘가 바로 AGI다. 아이언맨이 이야기하는 모든 요청 사항을 척척 수행하고 분석, 추론 행위뿐만 아니라 위기 상황에서는 스스로 판단을 내려 행동한다. 오픈AI의 샘올트먼 CEO는 AGI가 4년 안에 완성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유발 하라리(Yuval Noah Harari)는 저서 ‘사피엔스(sapiens)’에서 현생 인류가 인지혁명을 통해 지속적으로 발전했다고 설명한다. 인지혁명은 약 7만 년 전부터 3만 년 전 사이에 출현한 사고방식과 의사소통 방식으로 언어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 언어를 통해 인류는 정보를 공유하고 서로 연결할 수 있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사회적 협력은 우리의 생존과 번영에 핵심적 역할을 한다. 인간의 이런 사회적 본능은 연결의 폭을 점점 더 넓혀 나갔다. 뇌공학자 레이먼드 커즈와일(Raymond Kurzweil)은 그의 저서 ‘특이점이 온다(The Singularity is near)’에서 2029년 인공지능이 모든 인간의 지능을 합친 것보다 더 강력해질 것으로 예상했다. 기술이 기하급수적으로 혁신을 반복해 결국에는 AI가 인류의 지능을 초월하는 특이점이 곧 도래한다는 것이다. 인지과학자 게리 마커스(Gary Marcus)는 그의 저서 ‘2029 기계가 멈추는 날’에서 AI에 인간의 뇌가 가진 상식과 추론 능력인 ‘딥 언더스탠딩(Deep Understanding)’을 부여하여, AI에 인간의 지식체계인 시간, 공간, 인과성이라는 세 개념에 접목해야 한다고 한다. 2029년, 기계가 인간을 초월하는 특이점은 기계가 인간이 되는 조건을 충족할 때 비로소 가능하다는 것이다. 과거의 인류가 언어를 통한 인지혁명을 통해 지속적으로 발전했다면, 현생 인류는 AI를 통하여 새로운 연결혁명을 일으키고 있다. 인간의 연결 능력은 AI를 통하여 사람과 사람, 사람과 사물, 사물과 사물까지 확장하고 있으며, 이는 인류의 능력을 비약적으로 증대시킬 것이다. 인류의 연결은 AI 기술을 통해 더욱 진화하면서 발전할 전망이다. 우리가 만나게 될 인공지능을 통해 모든 것이 연결되는 초연결 AGI 시대, AI가 푸드테크 세상을 한층 앞당길 전망이다.
    '연결의 힘'과 AI
    by 안병익
    2025.06.10 11:07:04
  • 26. 모순의 나라 “그건 모순이야!” 카페의 통유리 위로 가랑비가 빗금을 긋는 풍경에 몰두하다가, 나는 소스라쳤다. 누나가 선명한 한국말을 내뱉어서만은 아니었다. 대화를 시작할 때부터 유창한 영어와 미국식 제스츄어로 사람들의 눈길을 끌던 누나는 내 눈동자의 초점이 자기에게로 모이자 다시 되풀이했다. “그건 모순이야.” 여태 영어로 대화를 이어가다가 하필 이 단어를 한국어로 뱉었다. 아버지의 발인 날에 한국에 도착한 누나는 내가 본가에 1주일 머무는 동안에도 계속 외출이 잦아서 이야기할 기회가 없었다. 더구나 지극히 따르던 여동생이 아버지의 죽음 이후로 싸늘하게 변해버려 내상을 입었던 터라 누나도 그러려니 했다. 따로 카페에서 만나자고 제안한 쪽이 누나였다. 누나는 결혼해서 미국으로 떠날 때 유산을 미리 받았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아무것도 남기지 않을 줄은 몰랐다고 섭섭함을 드러내다가, 슬그머니 나에게 남겨진 비밀스러운 유산을 떠보았다. 내가 책 한 권을 받았을 뿐이라고 했을 때, 누나는 이번에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그건 모순이야.” 누나는 자신의 유산에의 불평을 나에게로 돌려 말하기 시작했다. 창끝이 나를 겨냥하듯 날이 선 누나의 눈이 나를 보았다. “아들 하나뿐인데, 어찌 유산이 책 한 권이야?” 이 질문의 대답은 나도 알지 못한다. 나는 침묵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조촐한 유산을 나는 심리적으로 수용한 상태인데, 언론을 통해 이 사실을 알게 된 친지나 친구들은 여러 의미에서 더 난리였다. 그래서 누나가 이어서 던질 질문도 뻔했다. “책의 안을 샅샅이 찾아봤어?”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했듯 똑같이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다른 사람들이 그랬듯이 나는 누나가 던질 또다른 질문도 이미 알고 있다. “뭔가 있을 거야.” 친척들은 백지 수표나 보물섬 지도가 들어 있을 거라고 농담으로 위로했고, 어떤 이는 아버지의 ‘치매기’를 언급하며 위로했고, 어떤 이는 사랑받지 못한 아들을 측은하게 여기는 마음으로 위로했다. 누나는 ‘뭔가’가 있을 거라는 정도의 차이였다. 하지만 나는 여느 때와 다른 심정을 느꼈다. 우선 누나가 내뱉은 ‘모순’이라는 단어 때문에 호흡이 가빠졌다. 나의 현재의 추락은 세계적인 작가와의 대담에서 맞닥뜨린 모순적인 한 문장 때문이었다. 책의 안을 샅샅이 뒤져보라고 다들 권했지만, 아버지는 성경 안에 세상의 물질을 숨길 분은 아니었다. 내가 만일 일말의 그런 의도로 성경을 뒤졌다면 스스로 상처를 더 크게 입었을 것이다. 그런데 누나의 말을 듣자, 아버지는 나에게 ‘뭔가’ 좋은 것을 주려고 했다고 느껴졌다. 나의 침묵에 더 대응할 수 없을 때, 사람들이 던지는 마지막 질문이 이것이었다. “그 책 제목이 뭔데?” 책을 유산으로 받았다고 하면, 제일 먼저 책 제목을 물을 줄 알았다. 신기하게도 사람들은 항상 마지막에, 더 물어볼 말이 없을 때, 비로소 이 질문을 던졌다. 나는 미국인 남편을 둔 누나에게 영어로 대답했다. “Bible!” 기세등등했던 누나가 그 책 제목을 듣자 갑자기 차분해졌다. 몸을 의자 뒤쪽으로 편안하게 뉘었다. 입을 쉴 줄 모르는 누나가 침묵하니 분위기가 일순간에 바뀌었다. 이번에는 내가 물었다. “누나! 유산으로 책 한 권 받은 것이 왜 모순이야?” 나는 진심으로 궁금했다. 누나는 정색했다. “내가 언제 모순이라고 그랬어? 얘 좀 봐. 말귀를 못 알아듣는구나.” 그 책이 성경임을 알게 된 누나는 모순이라는 표현을 당장 거두어들였다. 나는 이 모순적인 상황이 이해되지 않아서 다시 물었다. “누나. 내가 제일 싫어하는 표현이 뭔지 알지? 말귀를 잘 못 알아듣는다는 표현이야.” 외교관인 아버지의 첫 발령지인 튀니지에서부터 나는 말귀를 알아듣지 못한다는 표현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다. 그 후 아버지를 따라 여러 나라를 떠돌며 그곳이 어디서든지 말귀를 알아듣지 못하는 사람이 되곤 했다. 한국에 돌아와서도 또래에게 말귀를 못 알아듣는다는 말을 한국어로 들었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표현이었다. 이것은 아마 한 살 터울인 누나도 마찬가지였겠지만, 누나는 그런 설움의 반작용으로 아예 외국인과 결혼했고, 나는 가는 나라마다 언어를 적극적으로 배워서 언어 능력자가 되었다. 누나는 다시 발뺌했다. “내가 언제 모순이라고 그랬어.” 나는 여러 나라를 돌며 여러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을 접하며 자랐다. 나의 혼란을 줄여주기 위해, 아버지가 ‘창과 방패’의 고사를 들려주셨다. 중국 초나라에 창과 방패를 파는 상인이 있었는데, 그는 사람들에게 “이 창은 워낙 날카로워서 뚫지 못하는 것이 없다”고 외쳤고, 또한 그는 “이 방패는 워낙 단단해서 어떤 것도 뚫을 수 없다”고 외치며 호객 행위를 했다. 그러자 한 사람이 당신의 창과 방패가 같이 싸우면 어떻게 되느냐는 질문을 던졌고, 상인은 대답하지 못했다. 이처럼 서로 어긋나서 맞지 않는 것에서 ‘모순’이 생겼다고 했다. 나는 상인이 두 가지를 한꺼번에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고, 서로 다른 상인이 다른 곳에서 말했다면 문제 될 것이 없었다고 아버지에게 어필했다. 당시 어린 나의 표정을 보며 아버지가 웃으셨던가. 그 후 나는 창의 나라에도 살고 방패의 나라에서도 살았다. 이 나라에서 옳았던 것이 저 나라에서는 옳지 않았다. 덕분에 나는 옳고 그른 기준이 남들보다 넓어졌고, 여러 상황에 관대한 정서를 지니게 되었다. 하지만 지금 누나의 변덕 아닌 변덕, 언어적 배반은 이해하기 힘든 것이다. 두 상인이 창과 방패를 각각 다른 장소가 아니라 같은 장소에서 팔았다면 결국 싸움이 붙었을 것이고, 결판이 났을 것이다. 싸움은 무기만의 문제가 아니라 그것을 다루는 자의 것이기 때문이다. 한쪽은 반드시 지게 되어 있다. 모순은 기다려보면 결판이 난다. 하지만 기다려도 누나는 속 시원한 대답없이 다른 사람들과 비슷한 마무리 말을 했다. “아버지라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분이다.” 나는 누나의 사유 변화 과정이 진심으로 궁금했다. 아버지가 외아들에게 책 한 권을 유산으로 남긴 것이 모순이라고 했다가, 그 책이 성경이라고 했을 때 누나는 단번에 모순의 상태를 벗어났다. 더불어 자신의 유산에 대한 불만에도 입을 다물었다. 나는 이런 누나의 변화와 상황의 변화에 묘한 충격을 받았다. 나는 성경 한 구절 때문에 헤어나올 수 없는 현실적인 딜레마에 빠졌는데, 어떻게 성경 때문에 단번에 모순에서 벗어났는지 누나의 머릿속으로라도 들어가고 싶었다. 누나답지 않은 침묵이 이어졌다. <너희는 값으로 사진 것이니 사람들의 종이 되지 말라> 순간 그 모순적인 문장이 되살아났다. 내가 앞으로도 뒤로도 갈 수 없게 만든 진퇴양난의 문장이다. 나를 가장 수치스럽게 만든 문장이다. 누나의 침묵 속에 이 문장이 창처럼 다시 나에게 날을 세운다. 나는 아버지의 유품을 감히 펼치지 못했다. 나는 어떤 책도 거침없이 독파했지만, 이 책만은 자신이 없다. 이미 실패했기 때문이다. 지금처럼 피폐한 상황에서 성경을 읽게 되면 더 이해할 수 없는 미로에 빠질 것이고, 철저하게 무너져내릴 것이다. 사람들이 진리라고 믿는 길이 나에게는 열리지 않았다. 앞으로도 그럴 것같은 예감으로 두려웠다. 뻔히 무너져내릴 것을 알면서 시작할 수는 없었다. 아예 책장을 들추어 보기조차 싫었다. 그런데 누나의 심리적 전이가 어떻게 가능한지 알아내고 싶었다. 나는 살아오면서 사치스럽고 욕심이 많은 누나를 처음으로 다른 눈으로 바라보았다. ▶ 다음 회에 계속 … 김다은은 ‘당신을 닮은 나라’가 1995년 제3회 국민문학상을 수상하면서 소설가로 등단했다. ‘덕중의 정원’ ‘훈민정음의 비밀’ ‘쥐식인 블루스’ 등 20여권 소설책을 출간하고, 다수 번역돼 해외 소개됐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주관한 폴란드 바르샤바대학 작가 레지던시를 비롯, 청송 객주 문학관, 정선 여량면 아우라지 레지던시, 해남 인송문학촌 토문재 레시던시에 참가했다. 이화여대 불어교육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파리8대학에서 불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추계예술대 문예창작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작권자의 허락없이 무단 부분 혹은 전체 전재, 복사, 배포를 금합니다.)
    종의 기원  <26회>
    by 김다은
    2025.05.26 09:00:00
  • 24세인 간호사 샤론은 어렸을 때 아버지에게서 겪은 성폭행 때문에 권위적인 인물들을 아주 불신하고 있었다. 그래서 심리상담과정에서도 성심을 다해 참여하는 것도 썩 내켜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날 그녀는 꿈을 꾼다. “한 아이가 불길에 둘러싸여 있었는데, 처음에는 무기력하게 지켜보기만 했지만 위험을 무릅쓰고 불길로 들어가 아기를 구해냈어요. 그러고 나서 아기를 안고 상담자의 집으로 달렸습니다.” 이 꿈을 게슈탈트(Gestalt, 독일어로 전체 혹은 형태를 의미) 방식으로 해석하면 다음과 같다. 게슈탈트 꿈 작업은 보통 4단계로 이루어 진다. 첫 단계는 꿈 꾼이에게 자신의 꿈 이야기를 다시 말해보게 한다. 샤론은 자신의 꿈을 보다 구체적으로 말할 수 있다. ‘나는 한 아이가 불길에 둘러싸여 있는 모습을 보았어요. 그 아이가 불에 타서 죽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들었어요. 나는 처음에는 발을 동동구르면서 무기력하게 쳐다만 보고 있었어요. 그러다가 용기를 내서 위험을 무릅쓰고 불길에 뛰어 들어가서 가까스로 아이를 구출했어요. 나는 그 아이를 안고 내가 지금 상담을 받고 있는 상담사의 사무실로 달려가다가 꿈에서 깼습니다.’ 샤론은 자신의 꿈 이야기를 하면서 당시 상황을 생생하게 연상하고 놓치거나 빠진 부분 보완하면서 꿈의 내용을 보다 명료화하게 된다. 두 번째 단계에서 샤론은 꿈에 등장한 요소들을 확인한다. 이 꿈에서는 ‘나, 한 어린아이, 불길, 상담사 등’이다. 세 번째 단계는 게슈탈트 치료자가 샤론에게 꿈의 요소들이 되어보게 한다. 예컨대, ‘당신이 불길에 싸인 어린이가 되어 보세요.’ 등이다. 마지막 단계에서 치료자는 꿈을 해석하기 보다 꿈을 꾼 샤론에게 꿈에서 본 것을 마치 ‘지금-여기(here and now)’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처럼 연기(role play)해보도록 권유한다. 이러한 실연(enactment)을 통해서 샤론은 꿈의 진정한 의도를 깨닭게 된다. 이 방식을 통해서 샤론은 자신의 진정한 감정과 상황을 말하는 시점에서 알아차릴 수 있으며, 꿈을 이해하고 자신의 내면의 진정한 모습을 자각하게 된다. 샤론은 자신이 어린시절 받았던 불안과 공포를 느끼고 있는 자신의 내면 아이의 모습을 보게된다. 결국 그녀는 자신의 내면 아이를 구하고, 자신이 현실에 치료를 받고 있는 상담자를 신뢰하고 있다는 점을 깨닫는다. 게슈탈트 꿈 해석법은 이러한 방식을 통해서 꿈이 주는 존재론적 메시지를 알 수 있게 된다고 본다. 즉, 샤론은 자신의 안에 자리 잡고 있었던 불안과 공포의 여러 측면들을 더 이상 외면하지 않고, 그것도 그녀 자신의 일부라는 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임으로써, 이전에 분리되어 있던 '그녀'의 부분들이 ‘하나의 온전한 자기’로 합쳐지게 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이러한 꿈 해석법을 제안한 사람은 게슈탈트 심리치료의 창시자인 프리츠 펄스(Fritz Perls, 1893~1970)이다. 프리츠 펄스는 칼 융과 마찬가지로 모든 꿈은 꿈꾸는 사람에게 꿈이 보내는 실존적 메시지를 갖고 있다고 본다. 특히, 꿈꾸는 사람이 외부의 권위적 인물이 행하는 ‘해석’에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 내면으로부터 그 메시지를 스스로 새롭게 발견할 때 그런 메시지의 존재를 더욱 분명하게 느낄 수 있다고 보았다. 즉, 펄스는 꿈에 나오는 모든 요소들은 투사된 자신의 부분들이며, 이 요소들은 이상적으로 자기에 통합되고 수용될 수 있다고 보았다. 이는 마치 잃어버렸던 퍼즐 조각을 찾아서 원래 자리에 끼워 넣음으로서 하나의 그림이 완성되는 것과 같다고 볼 수 있다. 그리하여, 프로이트에게 꿈은 ‘무의식으로 가는 왕도’이지만, 펄츠에게는 ‘꿈은 통합으로 가는 왕도’이다.
    ‘온전한 자기’로 통합되는 꿈
    by 국경복
    2025.05.25 11:55:02
  • 우울증을 겪고 있는 어느 여성 환자의 꿈이다. “혼자 벤치에 앉아 있는데 갑자기 심한 눈보라가 몰아쳤습니다. 나는 급히 집으로 들어가 남편에게로 갔기 때문에 다행히 거기에서 도망칠 수 있었어요. 그리고 나는 남편이 신문 광고란에서 적당한 일자리를 찾아내도록 도와주었습니다.” 다음은 심리학자인 아플레드 아들러(Alfred Adler, 1870~1937)의 해석이다. 이 꿈은 남편과 화해하고 싶다는 감정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처음에 그녀는 안락한 가정생활을 구축하는데 실패한 남편의 무력감과 연약함에 불만을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가 꾼 꿈의 의미는 ‘혼자서 난관에 부딫치기 보다는 남편의 곁에서 있는 편이 오히려 낫다’는 것이었다. 한편, 이 꿈에는 그녀가 혼자 있을 때의 위험이 크게 강조되고 있다. 또한 그녀가 용기와 독립과 협동을 드러내고 시행하는 일에 아직도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상태임을 보여준다. 그녀는 이 꿈의 분석을 통해서 자신의 심리적 상태와 앞으로의 삶의 방향성을 정하는데 중요한 단서를 얻게 되었다. 아들러는 말한다. “꿈의 목적은 꿈이 불러일으키는 감정 속에 내재해 있다. 개인이 창출하는 감정은 언제나 그 사람의 생활양식(life style)와 일치한다.” 그의 이러한 심리적 관찰은 탁월한 통찰이라고 본다. 어떤 꿈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감정, 인지, 행동 등을 포함하는 생활양식을 재현한 것이며, 그 안에 자신의 감정이 꿈으로 투사 된 것이다. 꿈으로 드러난 내용은 과거 기억(memory)의 단순한 재현이 아니라, 자신이 가지고 있는 기억에 감정이 이입되고 투사된 회상(recollection)이다. 그러므로 심리적인 꿈에는 자신의 무의식적이고 주관적인 감정이 반영되어있다. 참고로, 뇌과학의 발전으로 렘수면에서 꾸는 꿈은 감정을 담당하는 편도체와 기억을 담당하는 해마가 강하게 활성화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아들러는 1870년 비엔나의 유복한 유대인 가정에서 4남 2녀 중 둘째로 태어났다. 아들러는 병약했으며 동생의 죽음으로 의사가 되고자 결심했다. 아들러의 유년기 특징은 여러 형제자매 속에서 병약함과 열등감을 극복하려는 투쟁과정이었다. 아들러는 초등학교 시절 공부를 못해서 담임교사가 아버지에게 학교를 그만두고 구두수선공 수련을 받게 하라고 조언하였다. 그러나 그의 아버지는 교사의 조언을 일축하고 아들을 격려하였다. 이러한 경험은 그가 개인심리학(individual psychology)의 이론을 형성하는데 많은 영향을 미쳤다. 그에 의하면,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동기는 어린 시절에 최초로 경험한 부적절감, 열등감을 극복하고 우월성 또는 완전상을 추구하는 것이다. 아울러 인간은 생물학적 조건과 환경적 제약을 극복하고 자신의 삶을 선택하고 창조할 수 있다. 1902년부터 1911년까지 아들러는 프로이트와 교류하면서 정신분석 운동의 중추적인 역할을 맡았다. 그러나 견해 차이로 프로이트와 결별하고 난 후 독자적인 이론체계인 개인심리학을 발전시켰다. 1930년대 독일의 나치세력이 오스트리아에서도 점차 강해지자 아들러는 고국을 떠나 미국에 정착하였다. 1937년 5월 28일 아들러는 스코틀랜드 애버딘의 한 대학에서 강연을 앞두고 산책을 하던 중에 갑자기 심장마비로 사망하였다.
    여성은 왜 눈보라를 피해 남편에게 갔을까
    by 국경복
    2025.04.23 11:06:56
  • 25. 게으른 출발자 간밤에 비가 왔는지 공기가 축축하다. 똥 마려운 강아지 모양 어제 종일 맴돌던 정자 옆은 눈길도 주지 않고, 아파트 정문 밖으로 나왔다. 도로변을 따라 걷다가, 개천으로 이어지는 산책로로 접어들었다. 사람이 없을 줄 알았는데, 우산까지 챙겨 든 노인들이 몇 보였다. 그들은 천천히 그러나 부지런히 걷는 모습이었다. 신속함을 잃어버린 노년의 부지런한 걸음은 애잔하고 감동적이었다. 몸의 아픈 부분을 건드리지 않으려고 저마다 다른 꿈틀거림으로 걸었다. 순간, 나는 껑충 한 발을 건너뛰었다. 발아래 뭔가 꿈틀했기에 반사적으로 한 행동이었다. 분홍과 고동색이 뒤섞인 지렁이가 수분이 말라가는 시멘트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밟지 않고 반사적으로 피한 것이 다행이었다. 다행이다 싶었지만, 결국 다행이지 않을 성싶었다. 아침 해가 점점 올라오는 중이었다. 시멘트 바닥은 점점 뜨거워질 것이다. 지렁이가 왔던 길로 도로 돌아가거나 건너편 흙까지 도달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몸은 점점 말라붙고 말 것이다. 주변의 마른 나뭇가지를 찾아 지렁이를 흙 쪽으로 던져 주었다. 나는 지렁이처럼 아파트에서 꿈틀대다가 아침 산책을 나왔다. 새벽 5시가 훌쩍 넘었으니 밤을 홀딱 새운 셈이다. 정신은 멀쩡했다. 침대에 든다고 잠이 오지 않았다. 아버지가 외아들에게 유일하게 남긴 유산이 책 한 권이라는 것에 충격을 받아서만은 아니다. 아버지는 마지막 남은 재산을 세상에 기부했다. 재산뿐만 아니라 당신의 신장과 각막 등 몸에서 떼어낼 수 있는 것은 전부 다른 이에게 기부했다. 관 안에 들어간 아버지는 그러니까 만신창이가 된 시체였다. 입관할 때 본 아버지의 멀쩡한 모습은 교묘하게 보완 물로 꾸민 상태였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마지막 재산 기부는 비밀리에 이루어졌지만, 세상에 다 알려졌다. 생전의 익명 기부도 여기저기서 밝혀졌다. 그래서 아버지가 나를 위해 비밀리에 유산을 남겨 놓았다는 전언이 믿어지지 않았다. 아버지는 그런 이중적인 행위를 하실 분이 아니었다. 그럴 마음조차 먹지 못할 분이었다. 그런데도 어머니와 진욱을 통해서 은밀하게 유산에 관한 언급이 있었기에 막연하게 기대를 했던 모양이다. 부동산이나 현금은 나도 기대하지 않았다. 하지만 못내 궁금했다. 나에게 가장 필요하고 귀한 것을 남기셨을 것이기 때문이다. 외교관으로 평생 사신 분이니 세계를 두루 다니시며 얻은 귀한 것들이 적지 않았을 것이다. 귀한 자료나 그림 그리고 아버지가 귀하게 여기신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좋다고 생각했다. 나는 밤새 하얀 가죽표지의 책 한 권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새벽 산책을 나온 것이다. 아버지가 비밀리에 나에게 유산을 별도로 줄 분이 아니라는 것을 어머니도 알고 계셨을 것이다. 남기려고 한 것이 재물이 아니라 책 한 권이라는 것도 알고 계셨을 것이다. 진욱이는 그 책의 내용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을 것이다. 아버지는 조가대의 여자를 통해 흰 가죽표지의 책 한 권을 나에게 전했다. 여자가 자신의 출간 책을 홍보하기 위해 장례식장에까지 들고 온 줄 알고, 나는 그 책을 입관실에서 슬그머니 놓아버렸다. 그런데 여자는 그것을 장례식장 식당까지 가져와서 다시 전해주었다. 나와 그 여자 사이에 어머니의 주선이 있었기에 거절할 수도 없었다. 아버지는 그런 식으로 나에게 유일한 유산을 전하신 것이다. 어, 나는 다시 발걸음을 멈춰섰다. 산책로에 지렁이가 여기저기 보였다. 시멘트 바닥의 물기는 거의 빠졌고 아침 햇살이 비치자, 말라가는 피부를 어쩌지 못해 힘없이 비틀거렸다. 풀숲으로 다시 던져 주는 것이 돕는 것인지, 반대로 진로를 방해하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냥 지나치다가, 나는 혀를 찼다. 자전거 바퀴나 인간의 뒤꿈치가 무심코 눌러버린 지렁이의 머리가 납작하게 시멘트에 말라붙은 상태인데, 끔찍하게도 남은 몸쪽이 파충류답게 아직도 살아남아서 움직였다. 아버지의 장례식 이후에 얻은 특이한 증상 중의 하나가 다시 나타났다. 헛구역질이 나왔다. 지렁이들은 왜 안전한 땅속 거처를 포기하고 길을 떠났을까. 시멘트 산책로를 가로질러서 이쪽 흙에서 저쪽 대지로 건너가는 것이 그들의 최대 모험인 걸까. 인간과 함께 이 산책로를 끝없이 따라가는 것이 수도승 지렁이들의 선택인 것일까. 일부 지렁이들은 왜 일부러 길 위에서 최후를 맞이하는 것일까. 프랑스에서 있을 때는 아침 조깅을 즐기곤 했는데, 프랑스의 잔디밭에는 남자 엄지손가락만한 달팽이들이 눈에 띄었다. 지중해 기후여서 야생 달팽이가 많이 돌아다녔다. 프랑스는 달팽이 요리가 유명한 나리이기도 했다. 어느 날 내가 조깅을 하다가 무심코 풀숲의 달팽이 집을 밟아 까뭉개버렸다. 그 곁에 같이 있던 달팽이가 짝을 잃은 것 같아 미안해서 데려와서 유리병 안에 한동안 키웠다. 재미있는 것은 달팽이에게 당근을 주면 분홍색 똥을 싸고, 오이를 주면 푸른 똥을 쌌다. 달팽이에 관한 정보를 찾다가 같은 파충류들에게 대한 정보들을 습득하게 되었다. 달팽이도 지렁이도 자웅동체였다. 자웅동체이지만 그들은 짝을 통해 알을 교환했다. 짝을 찾기 어려울 때 달팽이는 스스로 교배했다. 하지만 지렁이는 암수 동체여도 교배를 통해 알을 교환한다니, 어쩌면 생식을 위해 길을 떠나는 것일 수도 있었다. 생식 때문이 아니라면 목숨을 구하기 위해 길을 떠났을 것이다. 생명을 위해 죽음을 불사해야 하는 경우가 무엇일까. 목숨을 걸고 목숨을 구해야 하는 도전이 무엇일지 궁금했다. 길바닥에서 죽어가는 지렁이는 더 많이 눈에 띄었다. 산책로의 중간지점에서, 나는 방향을 틀었다. 지렁이도 흙 속에 남아 있는 것들과 떠나는 것들이 있듯이, 인간도 두 종류가 있다. 쉽게 떠나는 인간과 쉽게 떠나지 못하는 인간. 나는 여태 전자에 속했다. 목적지가 정해지면 필요한 절차를 몸이 이미 기억하고 있을 정도였다. 자동차로 갈 곳이 아니라면 비행기나 기차 예약을 번개처럼 빠르게 할 수 있었다. 옷가지와 여행에 필요한 기본 용품이 들어 있는 여행 가방을 끌고 나서기만 하면 되었다. 여행 목적에 맞는 준비 서류나 선물들만 추가하면 되니, 그것은 식은 죽 먹기였다. 서류가 미비하면 비행기 안에서 하면 되었다. 필요한 선물은 집에 마련되어 있는 몇 개를 집어넣으면 되고, 그래도 부족하면 비행기 안에서 사고, 아니면 공항의 면세점 안에서 사면 된다. 그렇게 쉽게 떠나던 여행자가 이번에는 쉽게 떠나지 못하고 미적거린다. 여섯 시가 다가오자, 아침 산책자의 숫자가 점점 늘어난다. 반드시 떠나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미적거리는 사람을 나는 게으른 출발자라고 불렀다. 떠나야 하는 것을 알면서도 사람들은 게으름을 피웠다. 특히 연인들이 그랬다. 결국은 헤어져야 하는 인연인 줄 알면서 질질 끌며 버티는 모습을 보면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런 게으른 이별은 고통만 더할 뿐이었다. 반면에 쉽게 떠나는 자들은 결단력 있는 이별을 선택했다. 그래야 새로운 출발에서 강한 추진력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현재 나는 게으른 출발자에 합류한 셈이다. 이전이라면 아버지를 잃은 슬픔을 잊기 위해서라도 박차고 떠났을 것이다. 정자 옆에서 본 얼굴도 모르는 여인 때문만도 아니었다. 정말 여자가 그리우면 나를 위로하기 위해 만나길 원하는 여자들의 문자 메시지가 여러 통 와 있다. 그러므로 특정 사람에게 미련이 남아서도 아니다.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내가 과녁을 알지 못한다고 했다. 내가 과녁을 잘못 알고 쏘고 있다는 것이다. 어쩌면 그럴지도 모른다. 프랑스 작가와의 대담 이전에 나는 삶의 목표가 분명했고, 그 목표를 향해 쉼 없이 달렸다. 하지만 아무리 뛰어난 인간이나 선한 인간이라도 인간의 삶의 종착지가 죽음이라는 것에 충격을 받았다. 내가 어디로 출발해야 하는지 모르게 된 것도 이 때문이다. 정말 나의 과녁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게 된 것이다. 지렁이처럼 무턱대고 떠날 수 없어서 게으른 출발자가 된 것이다. 자칫 잘못 나갔다가는 시멘트 바닥에서 온몸으로 부대끼며 몸부림치다가 서서히 말라갈 것이다. 어이쿠, 나는 순간 발길을 멈추었다. 지렁이 한 마리가 온몸이 상처와 흙투성이로 범벅이 되어 죽은 듯 움직이지 않았다. 아버지의 소원은 내가 참 빛을 찾는 것이었다. 아버지의 소원이나 유언 때문만은 아니었다. 나도 진리를 찾아 한 번은 떠나보고 싶었다. 그러려면 참 빛을 찾아 떠나야 하지만, 그 빛의 방향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다. 참 빛은 하늘의 태양 빛도 아니다. 참 빛은 ‘길’이라고 하는데 내가 밟고 있는 시멘트나 흙 땅에 난 길도 아니다. 또한, 참 빛은 ‘생명’이라는데, 사람의 목숨도 아니다. 참 빛은 길이자 생명이라는데, 그 빛은 어디에 있고, 그 길은 어디에 있으며, 그 생명은 어디에 있단 말인가. 지렁이는 무엇을 찾아 떠났을까. 빛을 찾아 떠났다가 빛에 말라 죽어가고 있는 것일까. 길을 찾아 떠났다가 길 위에서 바짝 말라가고 있는 것일까. 생명을 찾아 떠났다가 죽음을 맞이하고 있는 것일까. 내가 게으른 출발자가 된 것은 지렁이 같은 결과를 예견하기 때문일 것이다. ▶ 다음 회에 계속 … 김다은은 ‘당신을 닮은 나라’가 1995년 제3회 국민문학상을 수상하면서 소설가로 등단했다. ‘덕중의 정원’ ‘훈민정음의 비밀’ ‘쥐식인 블루스’ 등 20여권 소설책을 출간하고, 다수 번역돼 해외 소개됐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주관한 폴란드 바르샤바대학 작가 레지던시를 비롯, 청송 객주 문학관, 정선 여량면 아우라지 레지던시, 해남 인송문학촌 토문재 레시던시에 참가했다. 이화여대 불어교육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파리8대학에서 불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추계예술대 문예창작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작권자의 허락없이 무단 부분 혹은 전체 전재, 복사, 배포를 금합니다.)
    종의 기원  <25회>
    by 김다은
    2025.04.07 09:00:00
  • 지난달 경남북 지역을 잿더미로 만든 산불이 겨우 일주일만에 진화되었다. 그 피해는 역대 산불 가운데 최악이라는게 산림당국의 분석이다. 유행할게 없어서 전세계적으로 산불이 유행하는가. 할리우드가 재난 영화를 즐기지만, 최근의 산불 사태는 가상의 영화 장면이 아니었다. 그 대표적인 사례로 지난 1월에 있었던 미국 로스엔젤레스 대화재를 기억할 것이다. 캘리포니아 퍼시픽 팰리세이드에서 시작된 이 대형 화재는 단순한 자연재해를 넘어 사람들에게 깊은 충격을 안겼다. 마치 악마의 바람을 타고 토네이도처럼 거세게 몰아친 불기둥은 괴물이 온 동네를 불태우는 ‘지옥’과 같은 상황이었다. LA에서 라이브 뉴스를 지켜보던 필자는 불길이 할리우드 힐스 인근까지 번지는 모습을 보며 몸서리 칠 수 밖에 없었다. 화재피해 지역중 하나인 이곳은 서울과 LA를 오가며 지내는 필자의 동네 부근이었다. 산불이 확산되던 상황에서 머릿속이 하얘지고 무엇을 챙겨야 할지, 어떻게 대피해야 할지 막막했다. 퍼시픽 팰리세이드 화재는 진압용 물 부족으로 급기야 환경 전문가들이 지적한 토양 생태계 파괴, 비행기 기체 금속 부식의 원인까지 감수하며 바닷물을 퍼내는 상황에 이르렀다. 이는 단순한 재난을 넘은 문제였다. 팰리세이드의 낙원이 신을 질투하게 만들었을까. 지역 주민들이 겪은 초자연적인 분노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집에 가봤자 물도 안 나오고 전기도 안 들어오고… 어렸을 때부터 살던 동네 전체가 잿더미가 됐어.” 전화기 너머로 친구의 목소리가 들렸다. 가족과 샌프란시스코로 피신했던 그는 LA의 유명 영화 프로듀서이자 스타 배우 스티븐 연과 함께 백남준 다큐멘터리를 제작했다. 그가 살던 동네는 멜깁슨을 비롯한 할리우드 스타와 패리스 힐튼, 바이든 전 대통령 아들 헌터 바이든, 금융계 거물들이 사는 고급 주택가였다. 그들의 집과 소장한 앤디 워홀의 예술품과 20세기 혁명적 작곡가 쇤베르크의 오리지널 악보는 모두 화마에 잿더미로 변했다. 설상가상으로 그의 집 주변 한 블록만 살아남았고, 다행히 큰 피해는 없었지만 여전히 인프라 공급망이 파괴되어 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있었다. 화재로 인한 피해는 개인 재산을 넘어 LA의 예술계에도 심각한 영향을 미쳤다. 예술가들은 그들의 작품과 삶의 터전을 잃었다. 그러나 이처럼 극심한 피해속에서도 예술은 중요한 회복의 도약대가 되었다. 당초 취소될 가능성이 높았던 ‘프리즈 LA 아트페어’는 2월에 당당히 문을 열었다. 전 세계 약 100여개의 갤러리들이 참여하였고 이 아트페어는 재난 상황에서 예술이 어떻게 사회적 연대를 이끌어낼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예가 되었다. 산타모니카 공항에서 개최된 프리즈는 산불 피해자들을 돕기 위한 예술적 연대의 상징이 되었다. LA의 예술계는 도시의 문화 회복을 돕기 위해 즉시 게티 (The Getty Foundation), 포드 (Ford Foundation), 스필버그 (The Spielberg Foundation), 앤디 워홀 재단 (Andy Warhol Foundation)으로부터 1,200만 달러의 기금을 조성하여 피해 예술가와 예술 종사자들에게 제공할 보조금을 모았다. 또한 도시의 3대 미술관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뮤지엄(LACMA), LA현대미술관(MOCA), 해머미술관(HAMMER Museum)이 협력해 전례 없는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지역 예술가들이 예술 작품을 기증하거나 자선 공연을 열어 복구 기금을 모았다. 기존의 전통적 방식 외에도, 디지털 플랫폼을 활용해 물리적 공간에서 활동하기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예술가들은 창작을 멈추지 않았다. 화재 피해를 입은 갤러리와 예술 공간은 온라인으로 선보였고, 디지털 미디어를 활용한 활동도 이어졌다. 공공 예술 프로젝트는 피해 지역에 새로운 작품을 만들어 주민들에게 희망을 주고 지역 사회 재건을 위한 중요한 역할을 했다. 예술은 물리적 공간 복구를 넘어 정서적 치유의 중요한 도구로 자리 잡았다. 피해를 입은 예술가들을 지원하기 위한 프로그램도 다수 진행되었다. 로스앤젤레스의 예술 단체들은 피해 예술가들이 재정적 어려움을 극복하고 창작 활동을 재개할 수 있도록 크라우드 펀딩 기금을 마련하였으며 이러한 캠페인은 빠르게 확산되어 많은 사람들의 참여를 끌어냈다. 경험 많은 예술가들은 후배 예술가들과 멘토링을 하거나 협업을 통해 창작 활동을 이어갔고, 소셜 미디어를 통해 심리적 지원과 위로를 주고 받았다. 또한 UCLA 파울러 박물관에서는 ‘불의 혈연 Fire Kinship·남부 캘리포니아 토착 생태와 예술’이라는 ‘불’을 주제로 한 전시회가 열렸다. 현대 예술가들은 비디오, 조각, 초상화, 설치 작품등을 통해 재난을 예술적 관점에서 바라보며 ‘불’에 대한 깊은 사유를 풀어냈다. 이 전시는 이를 통해 예술이 재난 복구와 사회적 치유에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입증했다. 이처럼 예술가들의 애도 속에서 희망의 불씨는 남아 있었다. 이번 화재는 단순히 물리적 피해를 남긴 것이 아니라,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되돌아보게 하는 중요한 사건이었다. 마치 불사조의 신화처럼, 예술은 불멸의 상징을 다룬다. 불사조는 스스로를 태워 죽고 그 재 속에서 다시 살아난다고 전해진다. LA 예술계는 화재라는 큰 시련을 거쳐 새로운 창조의 힘을 만들어내고 있다. 철학자 다나 해러웨이는 불안정한 시대에서 ‘트러블’을 이야기하며, 파괴된 현상을 한탄하기보다는 삶의 가능성을 찾아온 우리의 역사를 돌아본다. 뒤죽박죽 혼탁한 시대에, 생태적으로 함께 살아가는 법을 묻고, 고통과 즐거움이 얽힌 시대에서 서로 창의적으로 연결될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제시한다. 예술은 바로 이러한 연결을 가능하게 하며, 인간의 회복력과 창의력을 통해 새로운 길을 여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번 화재피해는 단순한 재난이 아니었다. 그것은 예술을 통한 사회적 연대와 공동체 회복의 중요성을 일깨운 사건이었다. 비단 미국과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산불과 같은 자연재해는 계속해서 일어날 것이며, 인류세로 불리는 현시대는 단순히 특정 지역의 문제를 넘어서, 전 지구적인 생태적 문제로 연결된다. 기후 변화가 야기하는 재난은 우리가 처한 시대의 중요한 문제 중 하나이다. 우리도 앞으로 이러한 재난사태에 대한 철저한 대비책으로 정부와 시민단체, 문화예술계가 할 수 있는 역할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잿더미에서도 피어나는 예술의 힘
    by 이경화
    2025.04.04 18:21:40
  • 24. 아버지의 유일한 유산 “진욱아.” 십자매 한 쌍의 본래 주인이었던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 그래! 담자야.” 핸드폰을 통해 전해오는 진욱의 목소리는 부드럽고 진중했다. 장례식장에서도 진정 위로가 되었던 목소리였는데, 그때보다 따뜻함이 더 묻어 있었다. “아버지 장례식에 와서 긴 시간 함께 해주어서 고맙다. 아버지는 항상 네가 내 곁에 친구로 남아 있기를 바라셨지.” “나야말로 아버님을 많이 좋아하고, 아버님을 가장 존경했잖아. 아버님 덕분에 내가 그나마 사람이 된 것 같아. 곁에 안 계셨으면 부정(父情)을 모르고 자랄 뻔했다. 너는 모르겠지만, 나는 늘 아버님께 감사하며 살았다. 등록금이 없어서 쩔쩔맬 때도 아버님은 나에게 일을 시키고 돈을 주시곤 했지. 공짜로 주지 않으신 이유를 어른이 되니까 알겠더라. 그건 그렇고, 많이 힘들었지. 너를 좀 더 챙겨야 했는데, 아내 출산 때문에 미처 그러지 못했구나.” “어, 아기가 나왔냐?” “엄마를 닮은 이쁜 공주님이 나왔어.” “그랬구나. 네 목소리가 본래 다정하지만 뭐랄까 부드러우면서도 생명력이 더 느껴졌거든. 정말 축하한다. 많이 기다린 아기잖아. 이럴 때, 친구로서 어떻게 기쁜 마음을 전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꽃다발은 도리어 아기의 호흡에 해가 될 것 같고, 과일이 산모에게 유익한가? 아, 유모차가 필요한가?” “아직 유모차를 탈 시기는 아냐. 미란 씨가 몸을 좀 추스르면 너 보러 갈게.” “그것보다 내가 부탁할 것이 있어서. 새를 좀 부탁할까 하고, 여행 가려고.” “그렇구나. 지금 몇 마리지?” “한 마리 남았어. 아버지 장례식에서 돌아오니, ‘그리’가 거의 죽어가고 있더라고. 더 기가 막힌 것은 ‘그리’가 죽자 남은 ‘도리’가 목소리를 잃어버렸어. 이놈을 보고 있으려니 너무 괴롭고 애처롭고,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겠다.” “내가 6년 전 해외여행 떠나면서 너에게 맡긴 새들의 후손인데, 당연히 내가 맡아야지. 그런데 미란 씨가 임신하면서부터 내 결정력이 없어졌어. 아기에게 해로운 것은 어떤 것이건 허용되지 않아서. 아내가 아끼며 키우던 개도 친정집으로 돌려보냈거든. 아기에게 해롭다고 일체 동물을 못 들이게 해서……미란 씨에게 물어보고 대답해도 될까?” “그렇구나. 그렇다면 내가 다른 곳에 알아볼게. 출산한 곳에 기쁜 것을 보내주어야 하는데 노래도 부르지 않는 우울한 새를 보내는 것이 왠지 마음에 걸렸거든. 하지만 너에게 맡기지 않고 다른 곳에 맡기면 네가 섭섭해할 것 같아서 먼저 물어본 거야.” “그럼 어디에 맡기려고?” “어머니 댁에. 어머니도 적적하실 테니 새가 가면 친구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아. 어머니는 사람의 마음을 풀어주는 능력이 있으시니까 어쩌면 새의 마음도 풀어줄 수 있을지도.” “어머님을 두고 떠나려고? 어머니 곁에 당분간 있는 것이 좋을 듯한데.” “어머니와 1주일을 같이 보냈어. 나와 함께 있는 것이 익숙하지 않으신 것 같아.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데 내가 계속 분주해 보인다고 하시더라고. 1주일이 지나자 내 아파트로 돌아가라고 하시더라.” “…….” “이상하지. 어머니와 있을 때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어머니는 내가 계속 분주하다는 거야.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어.” “지금은 어때? 네 아파트에 있으니까 분주하니 아니면 조용하니?” “오늘 종일 아파트 빈터를 왔다 갔다 한 것이 전부야.” “네가 매우 분주하게 살긴 했지. 그것을 갑자기 멈추니까 공허해서 그럴 거야. 다시 일을 시작하면 지금 느끼는 허망함이나 슬픔은 점점 가라앉을 거야. 한 생명이 가면 다른 생명이 오는 것이 인생이더라고. 나도 부모님이 다 돌아가시고 고아가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내 몸에서 새로운 생명이 왔다고 생각하니 얼마나 놀랍고 신비로운지 몰라.” “네 집에서는 아기 울음소리가 드높겠구나. 나는 여태 혼자 살면서도 외로움을 느낀 적이 별로 없었고, 집안이 조용하게 유지되는 것이 좋았다. 그런데 갑자기 집안이 조용한 것이 아니라 끔찍한 침묵 속으로 점점 빠져드는 느낌이야. 새가 울지 않다니! 사람이 울지 못한다는 사실보다 더 끔찍해.” “담자야! 어머님도 울지 않는 새를 바라보는 것이 좋지 않을 것 같아. 우리 집에는 아기 울음이 있으니 도리어 새가 울 수도 있을 것 같아. ” “아니야. 울지도 않는 새 한 마리를 아기 출생 축하 선물로 보내고 싶지 않다. 하지만 어머니는 도리어 새를 회복시키기 위해 애쓰시면서 슬픔을 잊을 수도 있을 거야. 어머니는 그런 분이시잖아. ” 새 한 마리 때문에 여행을 떠나기도 힘든 것이 인간인데, 아버지는 어떻게 나나 어머니를 두고 이 세상을 떠날 수 있었을까 생각하니 무섬증이 들었다. “진욱아, 아버지가 그립다. 너는 어릴 때 아버지를 잃었는데, 어떻게 견뎠니? 내가 그런 감정을 전혀 몰라서 너를 돌아보지 못했다.” “무슨 소리! 아버님이 나를 아들처럼 대해도 너는 질투도 잘난 척도 하지 않았다. 지금에야 말하지만, 미란 씨를 만나게 된 것도 네 덕분이잖아. 이쁜 아기를 얻은 것도 네 덕분이야. 네가 내 짝을 찾아주었으니, 내가 네 짝을 찾아줄 수 있는 능력이 있으면 좋으련만.” “하하. 아버지가 되더니 농담도 다 하네. 네가 내 짝을 찾아주다니…….” 갑자기 목이 메었다. “새도 짝을 잃었다고 울지 않는 것을 보니 짝의 의미가 처음으로 진하게 다가오긴 한다.” “그런데 왜 떠나려고 해. 공식적인 일로 떠나는 거야?” “내 삶을 좀 정리할 필요가 있어서.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이미 마음이 정해져 있었어. 세계적인 작가와의 대담에서 완전히 실패하면서 내가 많이 무너졌거든. 그렇게 간단하게 나를 무너뜨린 것은 단 한 문장 때문이었어.” 나는 그것이 성경에 있는 한 문장이라는 말을 덧붙이려다가 말았다. “그래서 버릴 것은 버리고 떠나기로 마음이 정해져 있었다. 그런데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여행이 스톱 된 거야.” 나의 대담을 보시고 아버지가 충격받아서 돌아가셨을 가능성이 있다는 말을 덧붙이려다가 말았다. “그랬구나!” “아버지 생전에 원하는 것을 이루어드리고 싶었다. 아버지는 내가 참빛을 찾기를 원하셨어. 진리 말이야.” 내 말을 들은 진욱이 움찔 놀라는 움직임이 전해져왔다. 진욱은 더 가라앉은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담자야. 아버님이 병원에 계시는 기간에 전화로 나에게 부탁한 것이 있었어. 그것을 네게 전해 줘야 할 것 같아.” 순간, 나에게 남겨진 유산이 진욱에게 맡겨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다운 결정이었다. 아버지는 나뿐만 아니라 진욱에게도 필요한 만큼의 유산을 남겼을 것이다. 진욱은 나의 의형제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아버님이 너에게 꼭 남기고 싶은 책 한 권이 있다고 하시더라.” “책 한 권?” “아마 유산에 관한 정보가 있나 봐. 그 안에 모든 보화가 들어 있다고 하시더라.” “네가 가지고 있니?” “아니. 아버님은 네게 말을 전하기만 하라고 하셨어. 어머니가 가지고 계시는 것 아닐까.” “어머니는 너와 비슷한 말씀을 하시긴 했지만, 책인 것조차도 알지 못하셨어. 아버지가 나에게 전해지도록 조치해놓으셨을 것이라고만 하시더라.” “분명 책 한 권이라고 하셨다. 그런데 그 안의 내용이 무엇인지 모르고, 그것을 전달하는 방법이나 전달할 사람을 나도 알지 못해.” “…….” “언론을 통해 아버님이 전 재산을 다른 이들을 위해 기증했다는 소식은 나도 읽었어. 너에게 남긴 유산은 비밀인 셈이지. 걱정하지 마. 다른 사람에게는 밝히지 않을게. 하얀 가죽으로 싼 책이라고 했어. 너에게 어떤 식으로 건 전달되도록 해두셨을 거야.” ▶ 다음 회에 계속 … 김다은은 ‘당신을 닮은 나라’가 1995년 제3회 국민문학상을 수상하면서 소설가로 등단했다. ‘덕중의 정원’ ‘훈민정음의 비밀’ ‘쥐식인 블루스’ 등 20여권 소설책을 출간하고, 다수 번역돼 해외 소개됐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주관한 폴란드 바르샤바대학 작가 레지던시를 비롯, 청송 객주 문학관, 정선 여량면 아우라지 레지던시, 해남 인송문학촌 토문재 레시던시에 참가했다. 이화여대 불어교육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파리8대학에서 불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추계예술대 문예창작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작권자의 허락없이 무단 부분 혹은 전체 전재, 복사, 배포를 금합니다.)
    종의 기원  <24회>
    by 김다은
    2025.03.31 09:00:00
  • “꿈에서 나는 시골에 있는 동안 내 아파트를 빌려 주기로 한 남자와 결혼했어요. 그런데 그는 한 푼도 없는 빈털터리였습니다. 그는 정직하지도 않고 직업이 있는 사람도 아니었어요. 그가 아파트 비용을 지불할 수 없었기 때문에 나는 그를 나가게 할 수밖에 없었죠.” 알프레드 아들러(Alfred Adler, 1870~1937)는 당시에 서른 두살인 이 여성의 신경증을 치료하고 있었다. 그녀는 한 유부남과 연애를 하고 있었는데 그 애인이 사업에 실패해 버렸다. 그와 결혼하는 것이 그녀의 소원이었지만 그 남자는 자신의 부인과 이혼하지 못했었다. 어느 날 그녀는 위와같은 꿈을 꾼 것이다. 그녀는 꿈을 통해서 스스로에게 자문하였다. ‘그는 내 아파트를 빌렸는데 집세를 지불할 수 없다. 그런 임차인을 나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 대답은 ‘그는 나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녀는 결혼이라는 문제를 마치 ‘한 남자가 나의 아파트를 빌린다. 그가 집세를 지불할 수 없다면 그는 쫓겨나야만 한다’ 즉, 그녀의 진실된 무의식적인 감정은 파산한 남자와 결혼을 하고 싶지 않은 것이었다. 아들러는 이 꿈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해석했다. ‘이 꿈의 목적은 그 결혼에 반대하는 감정을 북돋는 일이었다. 그녀는 야심적인 여성이었으며 가난한 남자와 결합되는 걸 바라지 않았다.’ 아들러는 프로이트나 융과는 다소 다른 관점에서 꿈을 해석한다. 그는 ‘꿈은 꿈 꾼 사람의 생활양식(life style)을 반영한 것’이라고 본다. 즉, 개인의 감정은 자신의 꿈에 반영되는데, 그 감정은 자신의 생활양식과 언제나 일치한다. 여기서 생활양식이란 자신, 타인과 세상을 바라다보는 스스로의 신념체계와 일상생활을 인도하는 감정과 행동양식을 의미한다. 이러한 생활양식은 어린 시절의 경험, 가족 관계, 사회적 환경 등 다양한 요인에 의해 형성되며, 개인의 사고방식, 감정, 행동 패턴에 영향을 미친다. 아들러에 의하면, 꿈은 현재 그가 가지고 있는 삶의 문제를 표현하며 그가 현실에서 생각해 온 것을 반영한 것이다. 즉, 꿈은 단순히 무작위적인 이미지의 나열이 아니라, 개인의 삶의 방식, 가치관, 목표, 그리고 해결해야 할 과제들을 보여주는 거울과 같다. 꿈을 통해 우리는 자신의 삶의 패턴과 심리적 상태를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꿈은 자신의 무의식적인 내면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창문과도 같다. 꿈의 해석을 통해서 자신을 더 깊이 이해하고, 더 나은 삶을 만들어가는 데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이 결혼할 남성을 쫓아낸 여성의 꿈
    by 국경복
    2025.03.24 16:27:00
  • 23. 고도를 기다리며 어디선가 숨소리가 들렸다. 아니, 숨소리 같은 것이 들렸다. 이 새벽에, 무슨 숨소리일까. 가만히 귀 기울여 들어보니, 내 숨소리는 아니었다. 내 숨은 몸 안에 들어있어서 들리지 않았고, 내 상체를 부풀렸다 가라앉혔다 할 뿐이었다. 들리는 숨소리는 내 몸 밖에서 나는 것이다. 더구나 내 숨보다 두 배 정도 주기가 빨랐다. 위층이나 아래층 사람의 코 고는 소리가 새벽의 조용한 기운 때문에 내려왔거나 올라왔을 수도 있었다. 새벽에 부부가 나누는 애정의 소리가 벽을 타고 들려온 것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숨소리는 분명 내 침실에서 났다. 분명 내 곁에, 내 귓가에서 나는 소리였다. 나는 누운 채 고개를 돌렸다. 아무것도 없었다. 그런데도, 여전히 확실하게 숨소리가 귓가에서 들렸다. 나는 그 근원지를 탐색하기 위해 몸을 뒤집었다. 나는 잠을 깊이 자기 위한 캐노피 침대를 사용한다. 마치 유럽의 왕실 침대처럼 프레임을 세우고 천을 덧씌워 방의 시야를 가린 것이다. 한국의 모기장도 캐노피 침대를 닮았지만, 침대의 캐노피에는 아주 부드러운 천이나 장식이 달려있어 창문을 통해 바람이 흘러들면 미세한 소리가 날 때가 있다. 지금은 창문이 모두 닫힌 상태다. 더구나 이 소리는 사물이 내는 소리가 아니라, 어떤 종류의 생명이 내는 소리다. 파리나 모기도 아니다. 고양이나 개가 들어왔을 리도 없다. 나는 침대 프레임 위로 걸쳐놓은 긴 망사 천을 들추어보았고, 덮고 있던 이불 밑도 찾아보았다. 그러다가 소리의 근원지를 따라서 시선이 한곳에 머물렀다. 베개였다. 내가 밤새도록 베고 잔 베개였다. 나는 고개를 숙여 베개에 다시 귀를 대보았다. 베개가 숨소리를 내고 있었다. 베개 앞뒤를 샅샅이 살펴보았다. 아무것도 없었다. 베갯잇을 열어 안도 살펴보았다. 베개를 두드려도 보았다. 여전히 아무것도 없었다. 내가 활발하게 베개를 까뒤집고 털은 후 다시 귀를 기울여 보았다. 숨소리는 가라앉아 멈춘 상태였다. 나는 제자리에 베개를 가만히 내려놓았다. 이른 새벽에 깨어서 별일을 다 겪는 것 같지만, 나는 이런 현상에 대해 많이 놀라는 사람은 아니다. 우리의 가시적인 것을 넘어서는 미스터리 한 일들이 우주에는 끊임없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어쩌면 매일 아침 베개는 숨소리를 내었는데, 오늘만 내가 들었을 수도 있다. 초등학교 때 이런 비슷한 경험을 이야기했을 때, 또래들은 나를 미친놈 취급했다. 당시 젊은 외교관이었던 아버지의 첫 발령지인 튀니지에 거주하고 있었기에, 나는 그들의 몰이해가 이해되었다. 서로 언어 소통이 잘되지 않아서라고 생각했다. 인간의 가시적인 것과 비가시적인 것의 경계에 믿지 못할 일이 일어나고 있다고 설명해도 소용이 없었다. 모든 존재는 저마다 에너지를 뿜어내기 때문이다. 사람이나 동물이나 바퀴벌레나 심지어 베개도 다른 에너지를 뿜어낸다. 그러므로 그 에너지들은 서로 만나고, 튕겨 나가거나, 서로 섞인다. 이런 내 생각이 틀리지 않은 것을 물리학은 알고 있다. 모든 물질은 분자여서 끊임없이 서로 경계 없이 섞이고 있다. 내 머리카락의 분자와 공기의 분자도 지금 눈에 보이지 않게 섞이고 있을 것이다. 내 숨소리가 베개에서 난 이유는 간단하다. 내 숨의 미소한 일부를 베개가 빼앗았기 때문이다. 나는 허약해졌고, 피폐해졌으며, 희망을 잃고 허망한 상태다. 베개는 나를 받치는 역할을 하면서 도리어 약해진 나에게서 에너지를 흡수해서 스스로 강해졌을 것이다. 베개는 내 숨을 가장 먼저 마실 수 있는 위치에 있다. 더구나 내가 잠든 시간은 절호의 기회였다. 내가 내 숨결을 지키지 못한 것이다. 베개에게 빈틈을 보인 것이다. 내가 다른 사물들보다 강한 에너지를 유지하지 못한 것이다. 베개의 숨소리가 내 숨보다 빨랐던 것은, 사물 주제에 사람의 숨을 감당해내려니 힘들어서였을 것이다. 내가 뺏긴 것은 숨만이 아니었다. 특권처럼 누리던 신사의 품격이 거의 모두 제거된 상태였다. 장례식을 끝내고 나니, 아버지가 살아계실 때와 다른 위치로 내가 자연스럽게 내려앉는 느낌이었다. 반대로 아버지는 살아 계실 때보다 죽음 후에 사람들에게 더 존경을 받았다. 외교관으로 활동했던 몇 나라들의 심장병 아이들을 위해 아버지는 유산 전액을 기부한다는 유서를 남기셨다. 아버지가 나에게 남긴 귀중한 것이 있다고 어머니가 따로 말씀하셨지만, 아버지가 어떤 방식으로 나에게 전달할지는 어머니도 모른다고 했다. 침대 프레임에 걸터앉아 있으니, 하루아침에 털이 다 뽑힌 새 같았다. 아침마다 나를 깨우던 십자매 ‘도리’의 아름다운 목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나는 베란다의 새의 정원으로 나갔다. ‘도리’가 혼자 베란다 정원의 포도나무 가지에 앉아 있었다. 나를 보면 강아지처럼 흔들던 하얀 깃털이 아무런 반응이 없다. 어떤 소리도 내지 않았다. 노랫소리도 슬픈 울음소리도 없었다. 세상사의 명예에 목을 매달 때라면, 짝을 잃어 목소리를 잃은 버린 ‘도리’의 상태를 글로 써서 일간지에 당장 내놓았을 것이다. 독자들은 신기해하며 인간보다 낫다는 반응을 했을 것이다. 나는 그런 독자의 반응을 즐겼을 것이고, 한두 출판사는 내 새 이야기를 책으로 내자는 제안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제 ‘도리’의 슬픔을 내 명예나 경력을 위해 사용하고 싶지 않았다. ‘도리’는 나처럼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존재를 잃은 상태였다. 내 고통과 슬픔이 오죽하면 내가 베개에게 숨을 빼앗겼을까. 먹이를 줘도 ‘도리’는 날아서 가지에서 내려오지 않았다. 양 눈이 옆으로 붙어 있는 탓에, 나를 더 잘 보기 위해 사시처럼 눈을 떠든 귀여운 모습도 사라지고 없었다. 장례식 기간을 포함하여 지난 2주간의 일정은 저절로 취소되었지만, 앞으로 이 주간의 일정은 내가 문자로 일방적으로 취소해버렸다. 해외문학 독서토론회에서 요청한 사뮈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에 관한 초청 강연과, 희곡집들만을 파는 ‘아름다운 고집’이라는 작은 서점에서 있을 작은 공연 관람도 취소했다. 마감해야 하는 원고가 3개가 있었지만, 아버지의 죽음을 빌미로 양해 메시지를 보냈다. 일방적인 취소임에도 위로의 메시지와 함께 이해한다는 답장들이 돌아왔다. 아파트 인터폰이 울려서 나가보았더니, 우편함이 넘쳐서 관리실에서 플라스틱 바구니에 우편물을 모아서 내 아파트 문 앞에 놓았다고 했다. 나는 우편물을 아파트 안으로 끌어넣고, 시계를 보았다. 7시 30분에 가까웠다. 나는 아파트주변을 조금 산책하고 싶었다. 아파트 단지 바깥으로 나가지 않고, 내 아파트 건물 앞과 옆 건물의 공터를 왕복해서 걸었다. 공터의 정자 옆을 지나가고, 다시 돌아서 정자 옆을 지나가고, 다시 돌아서 정자 옆을 지나가고, 다시 돌아서 내 결핍의 정자 옆을 지나갔다. 누군가 내려다본다면, 공터의 이쪽에서 저쪽으로 반복해서 오가며 매우 열심히 운동하고 있다고 여길 것이다. 나는 이 목적없는 왕복 산책을 하다가 아버지가 마지막으로 했다던 이야기를 문득 떠올렸다. 올림픽에서 한 선수가 자신의 표적이 아니라 경쟁자의 표적에 사격한 실수에 관한 것이었다. 어머니는 그 이야기를 들려주시고 나서, 내가 삶의 과녁을 잘못 조준하고 있다고 아버지가 하신 말씀을 마저 전했다. 이 되돌이표 아침 운동도 과녁이 없는 행동임에는 분명했다. 과녁은 없다 해도, 무의식적인 욕망이 있었다. 나는 끊임없이 왔다 갔다 걷고 있었지만, 정자 옆 빈터를 계속 확인했다. 그곳에 서 있던 여자가 도대체 누구일까. 이 아파트 안에 사는 여자인지 방문한 여자인지, 나와 같은 아파트 동에 사는 여자인지, 옆 동에 사는 여자인지, 그리고 다시 만날 수 있을지, 만나면 어떻게 할지, 히드라처럼 얽히는 정서적인 감정이 치밀고 올라왔다. S와 이별 이후에 이렇게 간절히 원한 여자가 없었다. 하지만 내가 알지도 모르는 여자에게 들떠서 이렇게 헤매는 것부터가 과녁이 없는 화살 상태였다. 올림픽에서 경쟁자의 과녁에 발사한 선수가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알지 못하는 여자에게 화살을 쏘려는 이 비참한 한 남자의 행동은 더 이해하기 어려웠다. 세상의 모든 성공과 성취를 내려놓았는데도, 내가 왜 이렇게 분주한지 알 수 없었다. 공허함을 채우려고 몸을 쉴 새 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그럴수록 얼굴도 모르는 여자의 얼굴이 보고 싶어서 미칠 것 같았다. 내가 마치 사무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에 나오는 인물 같았다. 무엇을 기다리는지 모르면서 기다리고 있었다. 고도를 기다리는데, 고도가 무엇인지도 알지 못했다. 나는 다시 방향을 틀어서 걸었다.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를 본 산울림 극단이 갑자기 떠올랐다. 아버지를 따라 외국을 떠돌다가 한국으로 돌아와서 처음으로 ‘고도를 기다리며’를 관람한 곳이었다. 한국처럼 빠르게 변하는 나라에서 내가 어릴 때 본 극단이 어른이 되어서도 그대로 그 자리에 있는 것을 보고 놀랐었다. 경제적 효용성이 적은 극단을 그토록 오랫동안 유지하려면 연극을 매우 사랑하지 않고는 가능하지 않았다. 아직도 남아 있는지 가보고 싶었다. 연약한데도 도도하게 부서지지 않은 것을 보고 싶었다. 내가 믿었던 세계와 내가 세운 세계가 차례차례 무너져내리는 것을 보고 나서, 부서지지 않는 것을 갈망하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나도 고도를 기다리기 시작한 것이다. ▶다음 회에 계속 … 김다은은 ‘당신을 닮은 나라’가 1995년 제3회 국민문학상을 수상하면서 소설가로 등단했다. ‘덕중의 정원’ ‘훈민정음의 비밀’ ‘쥐식인 블루스’ 등 20여권 소설책을 출간하고, 다수 번역돼 해외 소개됐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주관한 폴란드 바르샤바대학 작가 레지던시를 비롯, 청송 객주 문학관, 정선 여량면 아우라지 레지던시, 해남 인송문학촌 토문재 레시던시에 참가했다. 이화여대 불어교육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파리8대학에서 불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추계예술대 문예창작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작권자의 허락없이 무단 부분 혹은 전체 전재, 복사, 배포를 금합니다.)
    종의 기원  <23회>
    by 김다은
    2025.03.17 09:00:00
  • 22. 결핍의 정자 내 아파트 단지 앞에는 육각형의 나무 정자(亭子)가 있다. 옆 동과 중간지점이어서 사선으로 눈길이 가는 곳이다. 아침부터 창문을 열어놓고 자꾸 그곳을 쳐다보았다. 급기야 시선이 그곳에 머물러 꼼짝도 하지 않았다.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정자 옆에는 벤치들도 드문드문 놓여 있다. 새벽이건 밤이건 사람들이 쉬는 곳은 주로 벤치쪽이었다. 벤치에서는 핸드폰을 들여다보거나, 담배를 피우거나, 음악을 듣거나 했다. 벤치에는 혼자 앉아 있어도 자연스럽지만, 정자에는 혼자 앉아 있기에 쑥스러운 공간 같았다. 옛 마을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어 담소하던 공동의 공간이어서 그럴 것이다. 노인들도 제법 있었지만, 서로 대화 나눌 만큼 친분이 없는지 정자에서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정자는 그저 풍경에 그쳤다. 그렇게 아무도 찾지 않는 정자에 내가 왜 끌림을 느꼈을까. 정확하게는, 정자가 아니라 정자 곁의 한 모퉁이 빈터였다. 그 사실을 깨닫자, 번개처럼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저 빈터는 …… 그 여자가 … 서 있었던 곳이다! 쓰레기 수거 날이었으니, 2주 전 수요일이었다. 옆 동 앞에 빈 종이상자들과 신문지 등 종이무더기가 산을 이루며 쌓이고, 그 곁으로 플라스틱류나 비닐류로 채워진 거대한 포대기가 작은 섬들처럼 놓여 있던 날이었다. 그 전날인 화요일부터 시작된 분리수거는 운반 트럭이 오는 수요일 아침까지 이어졌다. 나는 내 아파트 안에서 밖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침 7시 40분경에 대형 크레인이 들어섰다. 트럭이 멈추자 뒤쪽에서 무시무시한 철제집게가 땅으로 내려왔다. 순간 화들짝 놀라서 창밖으로 몸을 내밀었었다. 강력한 철제집게가 나무 정자 옆에 서 있는 한 여자의 머리를 쳤기 때문이다. 너무 놀라 작은 비명을 질렀는데 ……, 여자는 아무 탈이 없었다. 내 시선의 위치 때문에 그렇게 보인 것이었다. 대형 크레인은 무자비하게 종이상자들과 종이 쓰레기들을 움켜쥐고 마치 외계 비행선으로 옮기는 것처럼 하늘로 끌고 올라갔다. 여자의 시선이 집게발을 따라 하늘로 올라가면서 고개가 뒤로 젖혀졌고, 나는 쭉 휘어지고 뻗은 여자의 라인을 보려고 창밖의 몸이 아래서 더 내려갔었다. 짧은 반바지에 푸른 티셔츠의 여자! 나는 그곳에 서 있던 여자의 실루엣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젊은 여자가 짧은 반바지를 입은 풍경은 신선했다. 프랑스에서 조깅하러 나온 여자의 모습과 유사했다. 챙이 긴 모자를 쓴 것으로 보아 진작 운동을 하러 나온 것인지도 몰랐다. 모자 때문에 얼굴은 전혀 알 수 없었는데, 모자를 벗어도 모르는 여자였을 것이다. 그녀의 스타일로만 봐도 이전에 보았다면 기억했을 것이다. 하늘로 끌려 올려지는 쓰레기들을 부러운 듯 바라보며 몸이 뒤로 휘는 모습이 눈을 휘감았었다. 다들 바쁜 아침에 저렇게 여유를 부리는 여자가 있구나 싶어서 여운이 남았었다. 그런데, 내 삶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던 것들이 안개처럼 사라져 가버린 지금, 안개 뒤의 나타난 선명한 물체처럼 그 여자가 떠올랐다. 그러니까 은연중에 나는 본능적으로 여자에게 끌리는 남자로 되돌아온 것이다. 정자의 모퉁이 빈터에 서 있던 여자의 실루엣이 너무나 생생해서 착각이 일 정도였다. 보이지 않지만 보였다. 보였지만 보이지 않았다. 오늘은 쓰레기 수거 날도 아니고, 여자가 그곳에 올 이유가 없었다. 쓰레기 수거 날이라도 그날과 같은 모습으로 서 있을 리가 만무했다. 하지만 그녀를 생각하자, 몸 안의 수컷 정서가 춤을 추듯 흔들렸다. 한 마디로, 여자가 그립다. 돌아가신 아버지를 애도해야 하는 시기에, 인간의 육체적 메커니즘은 이렇게 터무니가 없다. 부도덕하게 느껴져서 심란한 것이 아니었다. 수많은 파티에서 만난 국내외 커리어우먼, 영화 레드카펫을 걸었던 아름답고 화려한 배우들, 외교계나 예술계의 세련되고 심지어 특이한 여자들을 무수히 수첩에 적어두고서도, 세상의 쓰레기에 매료되어 눈을 떼지 못하는 한 여자에게 빠진 나의 취향이 당황스러운 것이다. 세상에서 추락하니 여성에 관한 취향도 저절로 바뀐 것이라면 몰라도 말이다. 그녀가 어떤 여자이건 간에 참으로 오래간만에 찾아온 감정이었다. 문제는 미치도록 보고 싶은 것이다. 갑자기 몸 안으로 도파민이 폭발했다. 아버지의 죽음을 맞닥뜨렸던 상황에서 강렬한 아드레날린이 몸을 휩쓸고 지나갔다면, 당연한 수순처럼 도파민이 이어서 폭발했다. 새로운 동기부여나 목표물을 찾아 집중도를 높이기 위해 나오는 몸의 신경전달 물질이었다. 불안과 좌절에 침체 되었던 인간이 다시 희망을 찾으려는 본능 때문에 솟구치는 도파민! 그런데 그것이 여자 쪽으로 흘렀다. 세상의 명예나 돈 그리고 물질에서 이미 가치를 상실한 인간이 다시 동일한 분야에서 동기나 목표를 찾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래서 여자라도, 세상의 멋진 여자가 아니라 전혀 모르는, 몰라도 되는 미지의 여자를 새로운 동기부여로 삼았는지도 모른다. 이런 분석은 불필요한 것이다. 몸을 꿈틀거리게 만드는 욕정이 다시 돌아온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세월이 많이 흘렀다. 여전히 기억의 저장고에 남아 있는 여자 S. 육각 정자 모퉁이의 여자가 S와 뭔가 공통점이 있었다. 얼굴도 모르고 이름도 모르고 대화를 나눠보지도 않았는데, 처음 본 순간부터 광기에 빠져버리는 징후가 비슷했다. 사람들은 이런 것을 운명의 상대라고들 한다. 하지만 나는 첫눈에 반하는, 소위 운명의 상대라고 빠져드는 남녀관계의 위험성을 이미 S를 통해 체험했다. 그 위험한 운명이 다시 시작되었다면, 저 정자의 모퉁이에서였을 것이다. S와의 광기 어린 경험이 끝나고 나는 여자에게 관심을 잃었다. 그런 강렬한 감정과 몸정을 대신할 여자가 있을 수 없었다. 더구나 지속적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여자에게 안정감을 주어야 하는데, 나는 그런 성향을 갖지 못했다. 여자들이 원하는 충분한 시간과 다정함과 배려를 주기는 역부족이었다. 그래서 아름답지만 쉬크하게 자신에게 집중하는 여자와 연인처럼 지내다가 스스로 떠나가면 끝을 맺곤 했다. 그래서 끊어진 관계인지 아닌지 구분하기 어려워서, 다시 연락하면 다시 만나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여자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아무런 감정이 없는 지금, 나는 쓰레기에 반한 여자에게 반해버린 것이다. 지금 느끼는 정욕은 그래서 육체적인 것이 아니라 정신적인 결핍에 가까웠다. 내가 바람둥이여서가 아니다. 나는 짧은 시간에 물질적으로 그리고 정신적으로 가장 중요한 것을 잃었고, 생애 처음으로 최고의 결핍 상태이다. 모든 것이 충족되던 과거의 시간은 사라졌고, 충족했던 시간 속에 있던 여자들도 의미가 없어져 버렸다. 반면에 세상의 보석이나 명품 가방이 아니라 세상의 쓰레기를 바라보며 서 있던 여자가 궁금해서 미칠 것 같았다. 세상의 쓰임새를 다하고 버려지던 쓰레기에 시선을 맞추고 있던 여자! 어쩌면 나도 세상의 쓰레기에 시선을 맞추고 매료된 채 살아온 것 같았다. 나는 이미 그녀에게서 나의 페르소나를 보았다. 그녀가 집게발의 철퇴를 맞는 듯한 순간에, 창밖으로 내밀었던 내 몸에 어떤 에너지가 강렬하게 휘감았었다. 여자를 끊임없이 더듬고 있는 것은, 내가 나를 찾고 싶어서일 것이다. 잃어버린 나를 다시 찾는, 내가 나와 다시 한 몸이 되고 싶은 욕망이었다. 결핍의 정자는 보통의 성욕보다 강했다. 나를 낳아준 아버지의 죽음을 보고 온 후 아들의 온몸은 생명을 갈구했고, 가장 쉽게 여자를 탐하고 싶었다. 뱀과 새 사이의 유혹의 계략이 이런 것이었다. 뱀과 새의 실험에서 나는 새였다. 나는 케이지 안에서 혼자 자유롭게 날고 있었는데, 이어서 뱀이 내 케이지 안으로 들어왔다. 그것은 나에게 어떤 위해도 가하지 않고 밑에서 기다렸다. 시간이 지나자 새는 점점 아래로 내려간다. 나는 그 여자가 궁금해서 시선을 맞추고 대화하고 싶다. 아니 가까워지고 싶다. 나는 꿈틀거리는 뱀의 관능적인 몸을 접촉하고 싶다. 만지면 매우 매끄럽고 아름다울 것이다. 나는 낮은 가지로 점점 내려가서 여자 앞까지 가고 싶다. 더 다가가고 싶다. 그리고 그 여자의 쩍 벌린 입안으로 들어가고 싶다. 그리고, 정말이지, 삼켜지고 싶다! ▶다음 회에 계속 … 김다은은 ‘당신을 닮은 나라’가 1995년 제3회 국민문학상을 수상하면서 소설가로 등단했다. ‘덕중의 정원’ ‘훈민정음의 비밀’ ‘쥐식인 블루스’ 등 20여권 소설책을 출간하고, 다수 번역돼 해외 소개됐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주관한 폴란드 바르샤바대학 작가 레지던시를 비롯, 청송 객주 문학관, 정선 여량면 아우라지 레지던시, 해남 인송문학촌 토문재 레시던시에 참가했다. 이화여대 불어교육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파리8대학에서 불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추계예술대 문예창작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작권자의 허락없이 무단 부분 혹은 전체 전재, 복사, 배포를 금합니다.)
    종의 기원  <22회>
    by 김다은
    2025.03.04 09:00:00
  • 칼 융(Carl Gustav Jung, 1875~1961)이 세상을 떠나기 약 두 달 전에 꾼 꿈이다. ‘꿈에 그는 낯선 곳에서 볼링겐(Bollingen)에 있는 ‘그의’ 성탑으로 다가갔다. 그 성탑은 완전히 금으로 되어 있었다. 그는 손에 열쇠를 쥐고 있었는데, 어떤 목소리가 ‘탑’이 완성되어 그가 들어갈 수 있다고 말했다. 완전한 고독(주위에는 사람이 없었다)과 그 장소의 절대적인 고요함이 그의 관심을 끌었다. 그리고는 바닷가를 보았다. 이미 담비 한 마리가 새끼에게 물에서 헤엄을 어떻게 치는지 가르치고 있었는데, 새끼는 아직 혼자서는 헤엄을 칠 수 없었다.’ 이 꿈을 제대로 해석하기 위해서는 볼링겐이라는 장소적 의미를 알아야 한다. 볼링겐은 스위스 취리히의 루체른(Lucerne)에 있는 호숫가 한 마을에 있는 융의 별장이다. 융에게 이 자그마한 성탑은 이미 지상의 형태로 있는 더 큰 내면의 인간, 또는 자기의 그릇이었다. 이 성탑에 대해서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처음부터 성탑은 내게 성숙의 장소가 되었다. 어머니의 품이거나 어머니의 모습이며, 그 속에서 나는 다시 존재할 수 있었다. 내가 어떠하며, 어떠했으며, 어떻게 될 것인가…. 볼링겐에서 나는 나의 가장 진정한 존재 속에, 나에 상응하는 것 속에 있었다. 나는 때때로 시골 경치와 사물 속으로 뻗어나갔고, 각각의 나무 속에서, 파도가 첨벙거리는 소리 속에서, 구름 속에서, 오가는 동물 속에서, 그리고 모든 사물 속에서 살았다…” 융은 자신의 꿈을 이렇게 해석했다. “자신의 성채가 내세에 있는 그의 원래의 형태, 즉 자기(Self, 개인의 의식과 무의식을 통틀어 일컫는 전체 정신)의 지상에 있는 모상(模像, 모방하여 만든 상)일 뿐이다. 꿈은 이제 ‘내세에 있는’ 자신의 집이 이주할 수 있도록 완성되었음을 나에게 말한 것이다.“ 1961년, 융은 삶을 마감한다. 그의 나이 86세였다. 자신의 죽음을 예지한 이 꿈에서는 평생 동안 인간의 정신을 깊이 탐구했던 달관한 학자의 인생관이 엿보인다. 꿈에서 융은 완전한 고독과 절대적인 고요함이 깃든 완성된 탑에 들어갈 것이라는 의미를 알아차린다. 아마도 그는 평화로운 마음으로 자신의 마지막을 맞이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의 영혼에게 영원한 안식을 줄 탑이 금으로 된 탑이다. 금탑은 그가 평생 쌓은 학문적으로 업적일 것이고, 금은 변하지 않고 고귀한 속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가 세운 업적은 사후에도 변함없이 값진 평가를 받게 될 것임을 예지하고 있다. 1875년, 융은 스위스의 한 호수가 마을인 캐스빌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목사였고, 어머니는 몸이 아파서 요양생활을 했기 때문에 주로 아버지와 생활을 했다. 아버지는 친절하고 정열적이며 학구적이었다. 융은 아버지에 대해 “그 시절에 언제나 의지할 수 있는 존재였다”고 회상했다. 1900년, 프로이트가 ‘꿈의 해석’을 발표했던 바로 그해, 당시 25세였던 융은 의과대학을 마치고 스위스 취리히 대학의 한 정신병원에 조수로 취직했다. ‘... 이런 상황에서 프로이트는 나에게 중요한 인물이 되었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히스테리와 꿈의 심리학에 대한 기본적인 탐구를 그가 했기 때문이었다. 프로이트의 견해는 나에게 개별적인 사례들에 대한 보다 폭넓은 연구와 이해의 길을 열어주었다. 프로이트 자신은 정신의학자가 아니고 신경학자였지만 심리적인 문제를 정신의학에 도입했다.’ 1907년, 융은 비엔나에 있던 프로이트를 방문하고 그가 명석하고 비범한 인물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1909년 융은 다시 프로이트를 만났는데, 과학성과 초과학성에 대한 토론과정에서 상당한 거리감을 느끼게 되었다. 한때 융은 프로이트의 열렬한 지지자였지만, 프로이트의 성(sex)에 관한 이론과 꿈의 해석 등에 대해 회의를 품고 결국 결별한다. 융은 자신이 새롭게 창설한 학파의 이론을 ‘분석심리학’이라고 불렀다. 1916년에 무의식의 구조를 발표했는데, 여기서 그는 개인무의식과 집단무의식, 페르소나, 아니마, 아니무스, 개성화 등의 개념도 밝혔다. 또한, 오늘날 잘 알려져 있는 성격심리에 대한 MBTI도 융의 이론을 기초로 만들어졌다. 융은 처음에 자신의 자서전 출간을 거부했으나, 자신이 죽은 후를 조건으로 동의했다. 융이 사망한 다음해인 1962년, 그의 자서전 ‘카를 융, 기억 꿈 사상’이 출판되었다. 1959년, BBC와의 인터뷰에서 기자는 그에게 질문했다. “당신은 신을 믿었습니까?” “예, 믿었습니다” “지금은요?” “...나는 신을 압니다”
    금으로 만든 성탑에 들어가는 열쇠를 쥔 융
    by 국경복
    2025.02.25 10:01:30
  • 21. 반려 내 집에 십자매 한 쌍이 들어온 계기는 친구의 외국 여행 때문이었다. 잠깐 맡기겠다고 하더니, 웬일인지 여행을 마치고도 차일피일 되찾아가지 않았다. 그 사이, 새 부부는 하얀 알을 낳더니, 꼬물꼬물 새끼가 나왔다. 마흔 중반의 미혼 남자가 생명 탄생의 순간을 직접 볼 일이 없었기에 신기하기 그지없었다. 나는 친구를 재촉하지 않았다. 도리어 새끼들이 태어나면서 주인이 애매해졌다고 농담을 했더니, 아예 주인이 바뀌고 말았다. 그렇게 수년에 걸쳐 새끼가 새끼를 낳아 7마리까지 불어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리’와 ‘도리’ 한 쌍만 남은 상태였다. 몇 대 손(孫)인지 알 수 없다. ‘그리’의 본래 짝은 ‘도리’가 아니라 ‘왕비’였다. ‘왕비’는 몇 년 전에 죽었다. ‘왕비’라고 부른 이유는 워낙 도도한 자태를 지녔기 때문이었다. 새들은 하루에 한 번 목욕하는 습관이 있다. ‘그리’는 매일 물통에 들어가서 목욕했지만, ‘왕비’는 절대로 스스로 목욕하지 않았다. ‘그리’가 깃털로 물방울을 열심히 튀겨주면, ‘왕비’는 온몸에 떨어지는 물방울들로만 몸을 단장했다. ‘그리’가 자신의 반려를 위해 얼마나 열심히 깃털로 물방울을 날려주는지 보고 있노라면 애틋하기 그지없었다. 허공에서 떨어지는 보석 같은 투명한 작은 물방울을 맞으며 몸을 단장하는 ‘왕비’의 자태는 나의 웃음의 원천이기도 했다. 그 도도함이 몸의 불편함에서 나온 것임을 안 것은 한참 후였다. 어느 날 ‘왕비’가 사시나무 떨듯이 떨어서 살펴보니, 한쪽 다리가 거무스름하게 변한 상태였다. 동물병원에 가도 고개를 가로저었다. 며칠이 지나자 그을린 성냥개비처럼 새까맣게 변했다. 치료할 방법을 찾아 헤매는 사이, 한순간에 검은 다리의 절반이 절단되고 말았다. 아마 물에 발을 담그지 않는 이유도 이 때문이었을 것이다. 주변에 물어보니, 근친교배를 계속하면 장애가 점점 생겨난다고 했다. ‘그리’와 ‘왕비’도 같은 배에서 나온 오누이지만, 반려였다. 새들은 날아다니다가 발가락으로 나뭇가지를 움켜잡아야만 쉴 수 있다. 나뭇가지를 잡을 수도 없으니 ‘왕비’는 제대로 날지 못했다. 한쪽 다리가 절반으로 잘라나간 상태니 바닥에도 제대로 설 수 없었다. 며칠을 넘기지 못할 줄 알았는데, ‘왕비’는 절단되지 않은 다리를 쭉 뻗은 상태에서 절단된 다리로 총총 뛰면서 움직였다. 바닥에서 맴돌며 먹이를 주워 먹었다. ‘왕비’가 위험한 상태에 놓이면 ‘도리’가 나에게 울음으로 SOS를 청하기도 했다. 밤이 문제였다. 내가 퇴근해서 돌아오면, 둘 다 둥지 안에 들어간 날도 있지만, ‘왕비’가 들어가지 못한 날도 있었다. 그런 날에는 어둠 속에 ‘왕비’ 혼자 불편하게 앉아 있었다. 깃털로 물방울 목욕을 시킬 순 있어도, ‘그리’도 ‘왕비’를 업어 옮기지 못했다. 나는 종일 뻗어 있어야 하는 ‘왕비’의 긴 다리를 마사지해서 둥지 안에 넣어주곤 했다. 그리고 아침이 되면 다시 둥지에서 꺼내어 주었다. 왕비님은 결국 8개월 만에 죽었다. 그렇게 해서 혼자가 된 ‘그리’의 짝으로 데려온 것이 ‘도리’였다. 같은 배에서 나온 새가 아니라 다른 배에서 나온 어린 새를 사 와서 외롭지 않게 짝을 맞춘 것이다. 청계천에서 여러 상점을 돌아다니며 암컷을 구했다. 대부분 도리질을 했고, 웃돈을 주고 겨우 산 암컷이 ‘도리’였다. 의심스러운 것은 ‘도리’의 목소리가 암컷치고는 너무나 아름다웠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도 알을 낳지 않았다. 나는 새 장수에게 속아 그렇게 ‘그리’에게 남자 반려를 만들어주고 말았다. 그들은 서로를 무척 위했기에 다시 떼어놓기에도 너무 늦었다. 더구나 ‘그리’는 나이가 들어서 이미 앞을 볼 수 없는 상태였고, ‘도리’는 그런 ‘그리’를 잘 돌봤기 때문이다. ‘왕비’는 절름발이로, ‘그리’는 장님으로, 그리고 아버지는 뇌경색으로 죽음을 맞이했다. 나는 ‘도리’가 ‘그리’의 죽음을 인지하도록 하루 정도 그대로 둘 생각이었다. 베란다의 푸른 슬리퍼 안에 놓아두었다. 나는 여러 번 새의 죽음을 겪었는데, 이번에는 이전과 달랐다. 나이가 어려서 그런지 ‘도리’는 ‘그리’의 죽음을 이해하지 못했다. 죽은 ‘그리’를 새장 안으로 데리고 들어가려고 계속 주변을 돌며 꼭꼭 쪼았다. 기가 찰 노릇이었다. 여느 때와 달리, 끊임없이 콕콕 쪼며 밤이 깊어도 혼자 들어가지 않았다. 해결책이 없었다. 나는 참다 못해서 죽은 ‘그리’를 새장의 둥지 안에 넣어주었다. ‘도리’는 그렇게 죽은 ‘그리’와 자신들의 둥지 안에서 하룻밤을 잤다. 아침에 번쩍 눈을 뜨자 뭔가 이상했다. 창문으로 들어온 햇살을 보니, 습관적으로 깨는 시간이 훌쩍 지났지 싶었다. 나는 언제나 ‘도리’의 아름다운 노랫소리를 들으며 깨곤 했는데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도리’는 내가 여태 키운 새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목소리를 지닌 새였다. 악기보다 놀라운 음색이었다. 시계를 보니, 내가 깨어야 하는 시간보다 한 시간 반이나 지나 있었다. 나는 벌떡 일어나서 새의 정원 쪽 베란다 문을 열었다. 나를 반기는 ‘도리’의 부산한 움직임도 들리지 않았다. 새장 안 지푸라기 둥지에는 죽은 ‘그리’만 굳어 있었다. 고개를 드니, 도리는 여느 아침처럼 높은 포도나무 가지 위에 올라가 있었다. 내가 인사를 해도 이름을 불러도 반응하지 않았다. 나를 반갑게 맞이하던 깃털의 날렵한 움직임도 사라져버렸다. 노래는커녕 어떤 소리도 내지 않았다. 나는 어젯밤 둥지 안에 죽은 ‘그리’를 함께 넣은 것을 후회했다. 자신의 반려가 죽었다고 목소리를 잃어버린 새 이야기를 누가 믿을까. 사랑하는 아버지의 죽음에도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던 내 모습이 ‘도리’에서 보였다. 슬프지 않아서가 아니었다. 나도 ‘그리’처럼 충격을 받고 상심해서 울 수 없었던 모양이다. 혹여 벌레라도 생길까 봐 이전의 새들은 반드시 바깥에 묻었다. 그런데 ‘그리’의 사체가 완전히 사라지면 ‘도리’가 창문에 머리라도 박을까 봐, 자살이라도 할까 봐 두려웠다. 나는 ‘도리’를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내가 선택한 마지막 배려는 ‘그리’의 사체를 바깥에 내버리지 않고 베란다 정원의 흙에 묻어 주는 것이었다. 나는 비로소 아버지를 묻듯이 ‘그리’를 땅에 묻었다. 눈물이 비로소 줄줄 흘렀다. ▶다음 회에 계속 … 김다은은 ‘당신을 닮은 나라’가 1995년 제3회 국민문학상을 수상하면서 소설가로 등단했다. ‘덕중의 정원’ ‘훈민정음의 비밀’ ‘쥐식인 블루스’ 등 20여권 소설책을 출간하고, 다수 번역돼 해외 소개됐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주관한 폴란드 바르샤바대학 작가 레지던시를 비롯, 청송 객주 문학관, 정선 여량면 아우라지 레지던시, 해남 인송문학촌 토문재 레시던시에 참가했다. 이화여대 불어교육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파리8대학에서 불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추계예술대 문예창작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작권자의 허락없이 무단 부분 혹은 전체 전재, 복사, 배포를 금합니다.)
    종의 기원  <21회>
    by 김다은
    2025.02.24 12:33:00
  • 최대 9일까지 쉴 수 있었던 올해 설 연휴는 ‘출근 포비아’를 겪는 대부분의 직장인들에게 더 없이 특별한 선물이었다. ‘출근 포비아’는 직장인들이 출근길 지옥철부터, 업무와 관련된 스트레스, 조직 내 갈등, 또는 개인적인 이유로 인해 출근 자체를 두려워하거나 회피하고 싶어 하는 상태를 말한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많은 국내외 기업들은 유연근무제와 원격근무를 도입, 사내 웰빙 프로그램과 정신건강을 지원하는 등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렇다면 출근하는 것이 좀 더 즐거워지는 기업이 될 수는 없을까. 경쟁이 치열한 글로벌 시장에서 우수 인재를 확보하고 유지하기 위해서는 직원의 만족도가 곧 기업의 지속 가능성과 경쟁력과 직결되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기업의 성과를 극대화한다는 신념으로 성숙한 조직문화를 강조하고 있는 전 세계적인 글로벌 기업의 사례를 보자. 그들은 출근에 대한 두려움을 줄이고 긍정적인 업무 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방법으로 ‘예술과 디자인’을 조직 문화의 중요한 요소로 삼고, ‘아트 오피스’의 개념을 적극적으로 도입한다. 단순히 사옥의 인테리어나 장식적인 요소를 넘어서, 지역 작가들과의 협업, 예술 작품을 통한 환경 조성, 아트 프로그램 지원 등 다양한 형태로 아트 오피스 캠페인을 확장해 왔다. 구글의 글로벌 오피스는 지역의 문화를 반영한 예술 작품과 디자인을 통해 독창적인 환경을 제공한다. 다양한 색상의 벽화가 사옥 곳곳 예술작품으로 채워져 있으며, 직원들이 영감을 받을 수 있는 공용 예술 공간을 마련하여 직원들에게 창의성을 자극하는 예술적 공간 자체가 되도록 한다. 회사를 단순한 업무 공간이 아니라, 영감을 주는 장소로 탈바꿈 시켜 업무 만족도와 몰입도를 높이는 의도다. 링크드인의 실리콘밸리 본사 역시 다양한 현대 미술 작품과 설치 미술이 연출돼 있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대형 공용 라운지에는 인터랙티브 아트 디스플레이가 설치되어 직원들이 예술과 상호 작용하도록 유도한다. 기업 사옥 라운지가 인터랙티브 전시관이 되는 셈이다. 이러한 예술적 환경은 직원 간 소통을 촉진하여 업무에 대한 부담을 줄이고, 협력과 유대감을 느낄 수 있게 한다. 이외 본사 캠퍼스와 글로벌 오피스에 소장품들을 배치해 ‘예술과 기술의’조화를 강조하는 마이크로소프트, 사내 예술 프로그램을 통해 임직원이 창작활동에 직접 참여할 기회를 만들어 주는 페이스북, 애플 등이 대표적이다. 이처럼 현대의 글로벌 기업들이 아트 오피스를 도입하는 가장 큰 이유는, ‘예술’이 가진 힘에 있다. 예술은 인간의 감성과 직관을 자극하며, 고정된 사고를 넘어서 새로운 아이디어와 접근 방식을 만들어낸다. 우리가 주말에 갤러리와 미술관을 찾아 전시를 감상하는문화생활을 하며 일상에서 지친 감정적 환기를 통해 활력을 얻는 이유다. 직원들이 창의적이고 자유로운 사고를 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고 편안하고 열린 마음으로 업무에 임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바로 아트 오피스의 핵심이다. 아트 오피스가 출근 포비아를 극복하는데 효과적인 이유다. 더불어 아트 오피스를 도입해야 하는 기업이나 조직은 반드시 글로벌 기업들에 한정되지 않는다. 상대적으로 제도권 안에서 경직된 공공기관의 공무원 조직, 보수적인 위계질서가 존재하는 기업, 전통적인 생산 라인에서도 큰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보수적인 기업문화에서는 직원들이 규칙과 절차를 따르도록 유도하는 반면,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사고는 종종 위축된다. 아트 오피스는 직급에 관계없이 모두가 자유롭게 의견을 제시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된다. 제조업과 같은 산업에서도 창의적인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는데, 예술적 요소는 생산자들이 반복적인 작업에 갇히지 않도록 동기를 부여하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실험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기도 한다. 대형 자동차 제조업체들 역시 기술 혁신뿐만 아니라 디자인과 생산성 향상을 위해 창의적 환경을 필요로 한다. 아트 오피스는 디자인, 공학, 그리고 생산 공정 등에서 혁신적인 해결책을 제공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 이러한 변화들을 통해 보수적인 조직 문화와 위계질서가 강한 기업들 역시 미래지향적인 업무 환경을 구축할 수 있게 된다. 때마침 최근 기아차가 임직원 문화복지를 위한 아트 오피스 캠페인을 시작한다고 한다. 기아 본사 사옥의 비상계단실과 공용 라운지가 예술과 함께하는 아트오피스로 새롭게 단장할 예정이다. 국내를 대표하는 글로벌 대기업의 경우에는 한발 더 나아가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 설립된 해외 지사 들과 연계 아트 오피스 캠페인까지의 확장을 기대해 본다.
    출근 포비아와 아트 오피스
    by 박소정
    2025.02.18 17:54:22
  • III. 유혹의 계략 20. 뱀의 치명적 유혹 커다란 새장 안에 나뭇가지들을 장식하고, 새 한 마리를 넣었다. 작은 새가 그 안에서 자유롭게 돌아다닐 즈음, 뱀 한 마리를 다시 새장에 들어가게 했다. 자기 몸집보다 몇십 배나 큰 뱀이 미끄러져 들어오는 모습을 본 새는 소스라치게 놀라서 오갈 바를 몰라 소리를 지르기도 하고, 푸드덕거렸다. 생명의 위협을 느끼며 가장 높은 가지 위로 올라갔다. 뱀은 즉각 새를 공격하지 않았다. 공격하지 않고 가만히 아래쪽에 꼼짝 않고 기다렸다. 시간이 얼마간 지나자, 새는 윗가지에서 아래 가지로 조금씩 내려왔다. 심지어 호기심을 가지고 뱀 주변을 맴돌기 시작했다. 새가 코앞까지 가깝게 다가오자, 드디어 뱀은 입을 크게 쩍 벌렸다. 새는 스스로 뱀의 입안으로 들어갔고, 뱀은 간단하게 먹이를 삼켰다. 차창으로 빗방울이 흘러내렸다. 장례식장에 갈 때도 비가 내렸는데, 돌아오는 길에도 비가 내렸다. 장례 절차를 마무리하기 위해 부모님 댁에서 거의 1주일을 머물러야 했다. 10일 만에 아파트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그동안 내 존재에 대한 가치가 천지 차이로 변해버린 듯했다. 새와 뱀에 관한 한 과학적인 실험이 떠오른 것은 ‘내가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던졌을 때였다. 장례식장에 가기 전, 나는 프랑스 작가와의 대담으로 명예와 자존심을 다쳐 1주일가량 두문불출했던 상태였다. 당시 내 최악의 모습을 보고 있다고 여겼고 처참했다. 그때 곡기를 끊었던 것도 나를 다시 회복시킬 자신이 있었기에 벌인 발악이었다. 장례식장에 갈 때만 해도, 내가 나를 믿던 시절의 나의 비참함을 나름 즐겼을 것이다. 본래의 나로 되돌릴 수 있다고 믿었다. 비참한 모습이었지만 확실하게 ‘나’라는 존재가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나’라는 존재를 자각할 수가 없었다. 아버지의 임종을 지키지 못하고도 나는 장례식 내내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었다. 그런 나의 모습을 발견하면서 스스로 진저리가 쳐졌다. 아픈 아버지와 집안일을 돌보던 어머니가 실상 돌봄을 받아야 하는 건강상태임을 깨달았고, 비로소 나는 몰인정하고 무심하고 독선적인 자의 자만을 보았다. 내가 알던 나의 멋짐이나 명예가 오만이었고 부끄러움이었다. 여태 뭔가 착각을 하면서 산 것 같았다. 든든한 보호자이자 버팀목이었던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그가 공급하던 영혼의 에너지가 끊겼는지 머리가 텅 빈 듯하고 먹먹했다. 다시 아파트로 돌아가는 지금 내가 누구인지 알 수가 없었다. 아예 내 안의 ‘나’가 빠져나가 버린 듯 허망하고 허전했다. “어디로 갔어?” 내가 무심코 작은 소리를 지른 모양이었다. 아버지의 기사가 자동차 백미러로 나를 살폈다. 아버지의 죽음으로 상심한 아들의 돌발적인 언행이라고 느꼈는지 캐묻지 않았다. “키우는 새들이 제대로 있는지 갑자기 생각나서요.” 나는 스스럼없이 거짓말을 하는 자신에게 놀랐다. 아니 나는 이런 식으로 항상 나 자신을 방어하며 보호해왔을 것이다. 말을 하고 나자 비로소, 집에 남겨둔 ‘그리’와 ‘도리’가 떠올랐다. 방치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들은 내가 그대로 포기하면 아파트 안에서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들이었다. 내가 없으면 더 목숨을 이어갈 수 없는 존재들! 이런 존재가 가족이라고 아버지가 말했었다. 나는 그들을 키우는 보호자였다. 나의 아버지가 나의 의지처이자 보호자였듯이. 순간 울컥하는 심정이 올라왔다. 아버지의 죽음에도 눈물이 나지 않았는데, 한갓 새들의 죽음을 상상하면서 슬픔을 느끼는 내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무슨 새를 기르세요?” “십자매!” “그렇게 바쁘신데도 생명을 키우시네요. …… 십자매라면 독수리 종류인가요?.” “아하, 십자매는 참새 크기의 새입니다. 몸의 길이가 10㎝ 정도 되는 작은 새예요. 십자‘매’라는 표현 때문에 사람들이 아주 큰 매 종류를 생각하기도 하죠. 제가 독수리를 키운다는 소문이 퍼진 적도 있었지요. 사람들은 실제를 보지 않고 자신들의 생각이나 공상으로 뭔가를 만들어내죠.” 막상 말하고 나니 기사를 비난한 꼴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마지막 말은 나 자신에게 한 말이었다. 내가 나의 실제를 보지 못하고 내 생각으로 만든 공상의 산물로 산 것 같았기 때문이다. “말씀하셨으면 제가 아파트에 한두 번 들러서 먹이와 물을 줄 수도 있었을 텐데요.” “한 달 정도는 나 없이도 지낼 수 있게 조치가 되어 있어요. 새장에서 마음대로 나와서 수도꼭지에서 흘러내리는 물통의 물을 먹을 수 있고, 먹이도 충분히 공급되어 있으니까요. 여행이나 출장을 가도 신경 쓰이지 않도록 베란다 하나를 완전히 개조하여 새의 정원을 만들었거든요. 두 마리 중에 한 마리가 나이가 많아서 앞이 잘 보이지 않는데, 괜찮나 걱정이 되네요. 보통 5년 정도 사는 새인데, 거의 10년을 살았으니까요. 사람 나이로 치면 백 살쯤 되었죠.” “앞이 보이지 않는데 …… 새가 날아다닐 수가 있나요?” “10년을 같은 공간에서 살았으니 기억에 의존해서 조금씩 날고, 나뭇가지나 벽을 타고 다니고, 보통은 바닥에서 돌아다녀요. ‘그리’의 짝인 ‘도리’가 소리로 길을 안내하기도 해요. 제법 두 마리가 도우며 잘 살아요.” 차는 조금씩 막히기 시작했다. 기사는 앞을 묵묵하게 바라보았다. 막상 이야기를 꺼내니, 빨리 ‘도리’와 ‘그리’가 보고 싶었다. 그러다가 그들이 뱀에게 잡아 먹히는 상상으로 이어지자 몸서리가 쳐졌다. 그리고 갑자기 ‘그리’가 불안해졌다. 창밖에 비가 멎은 듯했다. 새와 뱀의 실험! 이 이야기를 어디서 들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들었을 당시에는 천적의 관계만을 생각했다. 그러니까 천적을 만나면 몸이 마비되어 저항이나 달아날 생각도 하지 못하고 잡아먹힌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실험이 천적에 관한 것이 아니라 유혹에 관한 것이 아닌가 싶었다. 유혹에 이끌리면 생명을 잃을 수도 있는데도, 그것에 시선을 맞추기 시작하면 점점 그것에 매혹당하는 것이다. 스스로 이끌리고, 공격하지 않아도 스스로 다가간다. 커다란 뱀 앞으로 스스로 다가가서 총총거리며 뽐내고 즐긴다. 그때 기다리던 뱀은 입을 쩍 벌리고 새가 스스로 그 안으로 날아드는 것이다. 내가 무엇인가에 삼켜지려는 순간처럼 갑자기 다급해졌다. 아파트로 들어가자마자 베란다 문을 급하게 열었다. 나는 맨발로 베란다로 뛰어나가 ‘그리’와 ‘도리’의 이름을 마구 불렀다. 하얀 깃털의 ‘도리’가 나를 알아보고 부산하게 울었다. 하지만 회색 깃털의 ‘그리’의 울음은 들리지 않았다. ‘할머니 그리’는 평소에도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듣기가 힘들 정도로 작은 목소리로 울었다. ‘그리’가 어디 있는지, 새장 안에도 찾아보고, 수돗가의 물항아리 주변도 찾아보고, 그들의 정원을 샅샅이 살펴도 보이지 않았다. 베란다 창문은 닫혀 있기에 밖으로 나갈 수도 없었다. 나는 ‘도리’에게 ‘그리’가 어디에 있는지 물었지만, ‘그리’는 울기만 했다. 떨어진 나뭇잎 아래까지 아무리 뒤져보고도 찾을 수가 없어서 목말라하며 거실로 막 들어오려는 순간이었다. 거실 유리문 앞에 놓인 베란다용 슬리퍼 안에 뭔가가 주저앉아 있었다. 새들이 내 슬리퍼 위에 올라올 때는 나를 보고 싶을 때였다. 나를 기쁘게 하거나 나에게 필요한 것이 있을 때 슬리퍼 위에 와서 놀았다. 내가 생활하는 거실과 자신들이 거주하는 베란다를 이어지는 물건이었기 때문이다. “오! 그리!” 나는 푸른 슬리퍼 안쪽에 웅크리고 있는 ‘그리’를 손으로 집어 올렸다. 아무런 저항도 반가움도 표현하지 못하고 가만히 있었다. 온기로 보아 목숨은 붙어 있었다. 제대로 먹지 못해 마치 작은 솜뭉치같이 가벼웠다. 반면에, ‘도리’는 나의 귀가에 매우 기뻐하며 베란다 천장을 힘차게 날아다녔다. 안도와 원망이 섞인 목소리로 울었다. 내가 ‘그리’를 돌보면 회복하리라고 여길지도 몰랐다. “그리! 그리! 기운 내. 내가 왔어.” 나는 ‘그리’의 이름을 마구 불렀다. ‘그리’는 닫히지 않은 남은 한쪽 눈꺼풀 안의 동공으로 나를 보았다. 장님 새의 동공이었지만, 그리는 마음의 눈으로 나를 보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나를 향한 검은 동공은 여린 빛을 품고 있었다. 나는 ‘그리’의 애틋한 홍채를 바라보며 마지막 순간임을 직감했다. 죽음에 삼켜지기 전에, 나를 마지막으로 보기 위해 끝까지 버틴 것이다. 순간, 소설 ‘인공낙원의 문’의 버려져 있던 아기가 떠올랐다. 관 안의 아기의 열린 실눈이 온 생명을 다해 단테를 바라보던 모습이 기억났다. 결국, 악당들은 돈벌이가 되는 여자 사체를 포기하고 골칫거리가 될 생명을 안고 달아났다. 그 실눈 안의 눈빛 때문에 아기를 포기하지 못하고 관에서 건져 올리라고 말하던 악당 두목 단테의 마지막 남은 양심이 떠올랐다. 나도 단테처럼 ‘그리’의 생명을 연장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리’는 나를 보고 죽기 위해 마지막까지 기다린 것이다. 아버지도 이런 심정으로 나를 기다렸을까. 비로소 눈에 눈물이 고여 들었다. 나를 마지막으로 보고 가려고 온몸으로 버티셨을 것이다. 내가 아파트에 숨어서 뒹굴며 곡선의 시간을 사는 동안에도 아버지가 얼마나 나를 간절히 기다렸을지 비로소 느껴졌다. ‘그리’를 품에 안고 바닥에 주저앉았다. 뭔가 심상치 않다고 느꼈는지 ‘도리’가 울면서 우리 주변을 맴돌았다. ‘그리’는 보이지 않는 눈으로 나를 보았고, 마지막 작별인사를 하듯 마지막 실눈을 스르르 감았다. 내가 손에 안아 올린 지 3분도 채 지나지 않아서, ‘그리’는 몸이 굳더니 고개를 뚝 떨구었다. ▶다음 회에 계속 … 김다은은 ‘당신을 닮은 나라’가 1995년 제3회 국민문학상을 수상하면서 소설가로 등단했다. ‘덕중의 정원’ ‘훈민정음의 비밀’ ‘쥐식인 블루스’ 등 20여권 소설책을 출간하고, 다수 번역돼 해외 소개됐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주관한 폴란드 바르샤바대학 작가 레지던시를 비롯, 청송 객주 문학관, 정선 여량면 아우라지 레지던시, 해남 인송문학촌 토문재 레시던시에 참가했다. 이화여대 불어교육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파리8대학에서 불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추계예술대 문예창작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작권자의 허락없이 무단 부분 혹은 전체 전재, 복사, 배포를 금합니다.)
    종의 기원  <20회>
    by 김다은
    2025.02.17 13:53:45
  • 태몽이란 임신 혹은 출산을 예고하는 예지적인 꿈 중 하나이다. ‘나의 태몽은 큰 밤 한톨입니다.’ 태몽의 주인공인 김성희(가명)씨가 말했다. “아버지 누나인 고모가 꾼 태몽이에요. 꿈에 고모의 남동생인 저의 아빠가 몸을 굽혀서 똘망똘망한 큰 밤을 주웠대요. 그런데, 옆에 있던 아빠의 형님인 큰아빠가 시샘하면서 ‘나도 주워야지’ 하고 찾았답니다. 결국, 큰아빠도 밤 한 톨을 주었대요.” “엄마는 처음에 저의 임신 사실을 모르고 있다가 병원에 가서 확인하고 알게 되었대요. 이 꿈을 꾼 후, 1998년 5월에 제가 태어났고, 제 사촌은 한 달 후인 6월에 태어났어요.” 이 태몽은 김성희씨의 어머니가 임신한 사실을 모르는 상태에서 그녀의 새언니가 꾸었다. 새언니(김성희씨의 고모)의 꿈은 임산부의 임신 사실보다 시간상으로 앞서고 꿈 꾼이와 임신한 사람이 공간적으로도 서로 다르다. 임신이라는 물리적 사실과 태몽이라는 정신현상 사이에 인과관계는 드러나지 않고 있지만, 의미상으로는 일치를 이룬다는 점이다. 이같은 예지적인 꿈의 현상을 이론적으로 규명하려고 노력한 학자들이 있었다. ‘정신 세계와 물질 세계를 깊이 탐구했던 두 학자의 만남’ 이들은 분석심리학의 창시자인 심리학자 융(Jung)과 양자물리학자인 볼프강 에른스트 파울리(Wolfgang. E. Pauli, 1900~1958)이다. 전혀 서로 다른 분야를 탐구했던 이 두 천재의 만남은 우연한 계기로 시작된다. 1930년, 당시에 30세였던 파울리는 융을 찾아온다. 융의 나이는 55세였다. 융이 파울리 보다 25살이나 더 많았다. 당시에 파울리는 심리적인 고통때문에 극심한 혼란을 겪고 있었다. 겉으로는 뛰어한 실력을 갖춘 양자물리학자였지만 속마음으로는 나약하고 취약한 한 인간에 불과했다. 파울리는 불행한 유년기를 보냈다. 그의 아버지는 오스트리아 빈 대학의 유명한 화학 교수였는데, 성실한 가장과는 거리가 먼 바람기 많은 위인이었다. 파울리의 어머니는 이를 비관하고 결국 음독 자살한다. 파울리는 젊은 시절 물리학을 연구하면서도, 매음굴에도 자주 출입하면서 방탕하게 지냈다. 그러다 어느 카바레의 무희와 결혼했는데, 1년이 채 못 되어 파국을 맞이한다. 자신의 인생에 중요한 두 명의 여인, 즉 어머니의 죽음과 아내와의 이혼으로 그의 정신은 파국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주색에 빠진 파울리는 여러 차례 뜻하지 않은 망신을 당하게 되자 두려움이 엄습했고, 급기야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이 원수처럼 여기던 아버지의 권고를 받아들여 심리 치료를 받게 된다. 처음 만난 융은 파울리의 꿈에서 여성 문제가 있음을 파악하고, 당시 자신의 문하로 있던 여의사인 로젠바움에게 보낸다. 그리고 융은 파울리와 지적인 대화를 시작한다. 인간 내면의 정신 세계를 탐구하는 융과 물질의 본질을 연구하는 파울리가 만나게 된 것이다. 어느날 융이 파울리에 대해서 묘사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자신의 궤도에서 이탈한 32세의 매우 지적인 남자’ 그는 ‘명석한 두뇌를 놓고 따진다면, 아마도 파울리를 능가할 사람이 없을 것’이라는 평가를 받는 천재였다. 사실, 융을 찾아오기 6년 전인 1924년, 파울리는 양자역학의 기념비적 성과 중의 하나인 배타원리(exclusion principle)를 발표한다. 1945년, 파울리는 아인슈타인의 추천으로 노벨물리학상을 받는다. 둘은 꿈 분석을 중심으로 한 심리치료를 이어갔다. 파울리는 치유와 더불어 자기성찰의 길을 걷게 되었고, 1945년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한 이후에도 융과는 치료사와 내담자와의 관계를 넘어선 교류를 하게 된다. 이후 융과 파울리는 거의 26년 동안 치료자와 내담자, 사제 관계, 동료 교사의 관계를 갖는다. ‘태몽현상을 설명해 줄 수 있는 동시성이론’ 1952년, 스위스 취리히에서 융과 파울리는 공동으로 ‘자연의 해석과 정신(The Interpretation of Nature and The Psyche)’을 발간한다. 융과 파울리의 공동 작업은 그 자체로서 기록될 만한 독특한 사건이다. 동시성 현상(synchronicity phenomena)을 통해물리학적 발견과 심리학적 발견이 어떻게든 서로 포옹해야 하는 공동의 지점을 탐구한 것이다. 태몽도 동시성 현상이 발현되는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이다. 융이 동시성 현상에 관심을 갖게 된 배경에는 본인 스스로가 예지적인 꿈을 여러 번 꾸게 된 경험이 있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융은 인생의 중요 단계에서 이러한 ‘큰 꿈’, 혹은 ‘의미있는 꿈’을 꾼다고 말했다. 그의 제자인 마리 루이즈 폰 프란츠 (Marie Louise von Franz, 1915~1998) 박사는 “이 같은 꿈의 모티브는 임신·출산, 학교의 시작, 사춘기, 결혼, 인생의 위기, 죽음의 준비 등 매우 중요한 과도기적 단계에서 자주나타난다”고 한다. 1958년, 58세인 파울리는 췌장암으로 먼저 세상을 떠나면서 마지막 말을 남긴다. "지금, 나는 아직도 오직 한 사람 융과 이야기하고 싶구나."
    태몽 현상을 설명해 줄 수 있는 이론이 있나요?  
    by 국경복
    2025.01.25 07:00:00
1 2 3 4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