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51
  • 개인정보보호위원회가 페이스북·인스타그램의 운영사인 메타에 부과한 과징금은 총액이 1000억 원에 달한다. 과징금은 행정청이 법령상 의무 위반에 대해 부과하는 금전적 제재로 해당 행위가 위법하다는 점을 전제로 한다. 그렇다면 메타는 어떤 이유로 큰 법적 리스크를 지속적으로 안고 있는 것일까. 지난 2020년 11월 개인정보보호위원회는 메타가 페이스북 로그인 기능을 제공하면서 사용자에게 별도의 동의를 받지 않은 채 로그인에 필요한 범위를 넘어선 개인정보를 제3자에게 제공했다고 판단해 약 67억 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위원회 조사 결과, 330만 명 이상의 이용자 정보가 동의 여부를 확인하는 절차 없이 1만여 개 제3자 앱에 제공된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메타가 제공한 정보에는 사용자의 ‘친구’ 정보도 포함되어 있었는데, 위원회는 해당 정보는 친구 본인의 개인정보이기도 하므로 별도의 동의가 필요하다는 점을 지적했다. 이에 대해 메타는 사용자의 자발적 동의가 있었고, 공개된 정보만 활용한 것이라며 법적 책임이 없다는 취지로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하지만 1심인 서울행정법원(2021구합57117),과 2심(서울고등법원 2023누64906), 대법원(2024두55440)까지 모두 메타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과징금 부과는 이후에도 계속됐다. 2021년 8월, 동의 없이 얼굴 인식 정보를 수집·활용한 혐의로 약 64억 원의 과징금이 부과됐고, 2022년 9월에는 ‘온라인 행태정보’를 사전 동의 없이 수집·제공했다는 이유로 약 308억 원의 과징금이 부과됐다 온라인 행태정보란 이용자의 웹사이트 방문 이력, 앱 사용 패턴, 검색 및 구매 이력 등으로, 개인의 흥미와 기호, 성향을 분석할 수 있는 정보다. 온라인 행태정보에 관한 과징금 부과 취소 소송에서 메타는 이러한 정보 수집의 주체는 웹·앱 운영자이며, 자신은 광고주로부터 정보를 위탁받는 입장일 뿐이므로 동의를 받을 의무가 없다고 주장했다. 반면, 개인정보보호위원회는 메타가 관련 도구를 직접 제작·배포하고, 이용자 식별자를 생성·수집·보관한 점에 주목했다. 특히 행태정보 수집·전송 과정에서 웹·앱 운영자들은 해당 정보를 직접 취득하지 않았으므로, 동의를 받아야 할 주체는 메타라고 판단했다. 법원은 이번에도 개인정보보호위원회의 손을 들어주었고(서울행정법원 2023구합54259), 현재 항소심(서울고등법원 2025누6020)이 진행 중이다. 지난해 11월에도 또 한 번의 과징금 부과가 이어졌다. 개인정보보호위원회는 메타가 국내 이용자 약 98만 명의 종교적 신념, 정치 성향, 동성 결혼 여부 등 민감정보를 사전 동의 없이 수집하고, 이를 광고 타겟팅에 활용해 약 4,000개 광고주에 제공한 사실을 적발했다. 이에 대해 약 216억 원의 과징금이 부과됐고, 메타는 이번 건에 대해서는 별도의 행정소송을 제기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다면 왜 메타는 반복해서 과징금을 받을까. 메타가 반복적으로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으로 과징금을 부과받는 데에는 단순한 절차상 실수 이상의 구조적 요인이 있다. 메타의 비즈니스 모델은 사용자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정교한 타겟광고에 의존하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이용자의 사전 동의나 민감정보 처리에 대한 법적 요건을 엄격하게 충족시키는 데 한계가 드러나고 있다. 국내 개인정보보호법은 정보 주체의 권리를 핵심에 두고 있으며, ‘동의’의 실질성과 목적 내 활용의 원칙을 엄격히 요구하기 때문에 메타의 사업 운영 방식은 반복적으로 법적 한계에 부딪칠 수밖에 없다. 메타가 ‘제3자 제공이 아니다’, ‘광고주 책임이다’ 등으로 법적 책임의 외부화를 시도하는 것에 대하여 우리 규제 당국과 법원은 단호한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앞으로 디지털 경제가 더 정교해질수록, 개인정보 보호와 활용의 균형 문제는 더욱 복잡해질 것이고, 메타와 같은 글로벌 플랫폼 기업은 더 광범위한 규제적 도전과 법적 책임 앞에 맞서게 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도전과 책임에 관한 비용은 단지 과징금에 그치지 않는다. 신뢰의 상실, 이용자 기반의 이탈, 사업 지속 가능성에 대한 의문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 메타가 더 건전하게 성장하기 위해서는 각국의 법제와 규범을 ‘규제 리스크’로만 볼 것이 아니라, 사업 전략의 핵심 요소로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 국내 기업들 역시 이번 사례를 통해, 글로벌 시장에서 개인정보 보호 규범이 곧 기업 경쟁력의 핵심이라는 점을 다시금 인식해야 할 시점이다.
    메타는 왜 반복적으로 과징금을 받는가
    by 안성훈
    2025.03.30 08:00:00
  • 최근 자본시장의 변화에 발맞춰 상장폐지 요건이 대폭 강화된다. 특히 주목할 부분은 시가총액과 매출액 요건이다. 현재 코스피 시장의 시가총액 및 매출액 기준은 50억원으로 처음 설정된 이후 장기간 유지되어 왔다. 다만, 이러한 지난 10년간 해당 사유로 상장폐지된 사례가 전무할 정도로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밸류업 노력이 부족하거나 성장 가능성이 낮은 기업의 상장을 계속 유지시켜 시장 경쟁력을 저해한다는 취지의 지적이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반영하여 시가총액 및 매출액에 따른 상장폐지 요건이 2026년부터 단계적으로 강화된다. 코스피 시장의 경우 시가총액 요건이 현행 50억원에서 2028년까지 500억원으로 10배 상향되며, 코스닥 시장은 기존 40억원에서 300억원으로 조정된다. 매출액 요건 역시 큰 폭으로 상향된다. 코스피 시장은 현행 50억원에서 300억원으로, 코스닥 시장은 30억원에서 100억원으로 각 상향될 예정이다. 매출은 낮지만 성장 잠재력이 높은 기업들을 보호하기 위한 완충장치도 마련된다. 시가총액이 일정 수준 이상인 기업에 대해서는 매출액 요건을 면제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코스피 시장은 시가총액 1,000억원, 코스닥 시장은 600억원 이상인 기업이 이에 해당한다. 이는 각 시장에서 상향될 최종 시총 요건의 2배 수준으로, 성장성 높은 기업의 조기 퇴출을 방지하면서도 적정 수준의 기업가치는 유지하도록 한 것으로 이해된다. 이러한 요건 강화의 취지는 명확하다. 자본시장의 건전성을 제고하고, 투자자 보호를 강화하는 것이다. 실제로 우리나라의 상장기업 수 증가율은 최근 5년간 17.7%로, 미국(3.5%), 일본(6.8%), 대만(8.7%) 등 주요국에 비해 높은 수준을 보이고 있다. 반면 시가총액 대비 상장기업 수를 비교해보면 우리나라는 0.9에 불과해 미국(22.5), 일본(2.3), 대만(2.0)에 비해 낮은 수준이다. 금번 상장폐지 요건 강화는 기업들의 자발적인 체질 개선을 유도하고, 불가피한 경우 시장에서 퇴출시킴으로써 전반적인 시장의 질적 수준을 제고하는 효과를 가져올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다만, 새로운 기준이 적용되기까지는 3년여의 유예기간이 주어진다. 이는 기업들이 새로운 기준에 적응하고 대응할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해주기 위한 것으로 이해된다. 기업들은 매출액과 시가총액 추이를 면밀히 모니터링하고, 요건 충족이 어려워질 것으로 예상되는 경우 미리 대응 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시가총액의 경우 신규 사업 발굴이나 기업가치 제고 활동을 통해, 매출액의 경우 영업력 강화나 신규 시장 진출을 통해 개선할 수 있을 것이다. 필요한 경우 전문가의 조력을 받아 구체적인 개선 방안을 수립하는 것도 도움이 될 것이다.
    강화된 상폐제도…시총·매출이 핵심
    by 정성빈
    2025.03.08 16:41:07
  • 오늘날 대부분의 기업은 업무의 일부를 다른 기업에 도급하고 있고, 필요에 따라 도급하는 기업의 사업장에 협력업체가 상주하며 도급받은 업무를 수행하기도 한다. 이처럼 협력업체(수급인)가 원청(도급인)의 사업장 내지는 원청이 지배·관리하는 장소에서 작업을 할 때가 안전보건관리의 측면에서는 가장 어렵다. 원청에게는 자신의 근로자가 아니고, 협력업체는 남의 사업장이다 보니 안전보건관리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협력업체의 규모가 영세하여 안전보건관리 역량이 부족한 경우도 많다. 협력업체의 안전보건관리는 무엇이 해법일까. 첫째, 산업안전보건법에서 수급인 근로자가 도급인 사업장에서 작업할 때 도급인의 의무로 정한 순회점검, 안전보건 협의체, 합동점검, 안전보건교육 실시 확인 등만 실질적으로 이행하여도 반은 성공이다. 나아가 수급인 근로자에 대하여 직접 안전보건조치를 취하면 좋겠지만, 그러지 못하더라도 수급인이 안전보건조치를 취하였는지 실질적으로 점검할 수 있다면 바람직하다. 여기서의 키워드는 "실질적으로"다. 어떤 사업장에 가보면 순회점검을 실시하였다면서 점검표는 만들어놓았는데, 점검사항에는 전부 동그라미(양호)로 표시하고 개선사항에는 모두 "없음"으로 기재되어 있다. 정말 양호한 것이라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다면 이러한 순회점검은 하나마나다. 실제 산업재해 예방을 할 수 없음은 물론이고, 재해 발생 시에 순회점검을 실시한 것으로 인정되지도 않는다. 둘째, 협력업체의 위험성평가를 최대한 지원하고 점검할 필요가 있다. ‘사업장 위험성평가에 관한 지침’에서는 도급 사업에서 도급인과 수급인이 각각 위험성평가를 실시하도록 정하고 있다. 즉, 수급인이 수행하는 작업이더라도 그 작업을 맡긴 도급인도 해당 작업에 관한 위험성평가를 실시하여야 하는 것이다. 다만, 고용노동부가 2023년 5월 펴낸 '새로운 위험성평가 안내서'에 따르면, 사업장의 상황에 따라 도급인과 수급인이 함께 위험성평가를 실시하고 각자의 위험성평가 실시규정에 따라 위험성평가 결과를 관리한다면 각각 위험성평가를 실시한 것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중요한 점은 협력업체에 위험성평가 하는 법을 알려주었다고 끝이 아니라, 그 위험성평가 결과를 원청이 검토하여 유해·위험요인이 충분히 파악되었는지, 그 유해·위험요인에 대한 개선대책이 적절히 수립되었는지, 개선대책이 실제로 이행되었는지를 확인·점검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협력업체의 위험성평가만 충실히 이루어져도 중대재해 발생의 위험을 또 절반 이상 줄일 수 있다고 본다.
     협력업체의 안전보건관리 무엇이 해법일까
    by 김동현
    2025.03.08 09:00:00
  • 내부 신고 시스템은 준법·윤리경영의 필수 요소 중 하나이다. 회사의 내부 신고 시스템이 효과적으로 운영된다면 임직원 등의 위법 행위를 조기에 식별하여 예방할 수 있다. EU는 2019년 ‘내부 신고자 보호지침’(Whistle blowing Directive, 이하 ‘WBD’)을 채택하여 50명 이상의 임직원을 둔 기업은 의무적으로 내부 신고 채널을 설치하도록 했는데, WBD는 전문(前文)에서 “관련 정보가 문제의 근원지에서 조사 및 구제권한자에게 신속히 전달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업무와 관련된 부정행위는 업무 관계자가 가장 잘 파악하고 있으므로, 이들이 사내 절차를 통해 신속히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 문제 해결에 가장 효과적일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상당수 임직원들은 보복에 대한 우려 때문에 회사의 내부 신고 채널에 제보하기를 주저한다. 그래서 내부 신고 시스템은 기밀성 또는 익명성을 보장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기밀성(confidentiality)은 신고자의 신원에 대해 비밀을 유지하는 것이다. EUWBD는 신고자의 신원이 사건 접수 및 조사 관계자에게만 제한적으로 공유되어야 하고, 신고자의 동의 없이 그의 신원을 직·간접적으로 유추할 수 있는 정보를 공개할 수 없도록 규정했다. 실무적으로는 신고 접수, 상담, 조사 등에 관여하는 모든 관계자가 비밀유지서약서를 작성하도록 하고, 비밀유지 위반 시 효과에 대해 반복적으로 교육할 필요가 있다. 실제 국내 법원은 내부 신고자의 신원을 누설한 회사의 직책자에게 손해배상책임을 부과하기도 했다. 익명성(anonymity)의 보장은 신고자의 신원을 보호하는 효과적인 방법 중 하나이다. 국제투명성기구(TI)는 회사가 최소한 1개 이상의 내부 신고 채널을 익명으로 운영할 것을 권고한다. 물론 익명 신고는 신뢰성이 떨어지거나 후속 조사가 어렵다는 비판이 존재한다. 다만 글로벌 기관(Navex Global)의 2020-2023년 통계에 따르면 익명 신고의 신뢰도는 약 33%로서 전체 내부 신고의 신뢰도 약 42%와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익명신고서 제출 후 상담 또는 조사가 진행되는 비율은 약 23%로 밝혀졌는데, 만약 익명신고자와 추가적인 정보 검토가 가능한 전산시스템이 구축된다면 익명신고의 신뢰도가 더욱 높아질 가능성이 있다. 회사는 웹기반의 익명신고 채널을 구축하거나 제3자에게 운영을 위탁하여 신고가 접수된 이후에도 익명신고자와 사실관계 확인을 위한 소통을 이어갈 필요가 있다. 내부 신고의 기밀성과 익명성을 보장하더라도 여전히 신고자 등에 대한 불이익 조치나 2차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 회사는 보복 금지 정책을 엄격히 수립하고 필요한 보호 조치를 시행해야 한다. EUWBD는 내부 신고자가 신고 당시 위반 행위 정보가 사실이라고 믿을 만한 합리적 근거가 있었을 경우 보호 조치를 제공하는데, 보호조치 대상자에게는 해고, 감봉, 계약 갱신 거절, 업무 또는 근무시간 조정, 부당한 성과 평가, 괴롭힘 또는 차별, 소셜미디어를 통한 평판 훼손 등 일체의 불이익 조치가 금지된다. 내부 신고자가 소송에서 불이익을 입었다고 주장하면 이를 회사의 보복행위로 추정하되 그러한 불이익이 내부 신고로 인한 보복행위가 아니라는 점을 회사가 증명하도록 입증책임을 전환했다. 회사는 내규에 보복행위의 정의를 구체적으로 규정하고, 보복행위의 가해자뿐만 아니라 내부 신고를 방해하거나 신원을 누설한 사람 등에 대한 제재를 명시할 필요가 있다. 그 밖에 내부 신고 시스템을 활성화하려면 신고자와 지속적으로 소통하면서 조사 절차를 공정하게 운영해야 한다. 신고자는 제보 후 후속 절차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자신의 신원이 보호되고 있는지, 상급자가 조사 절차에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하지는 않을지 염려한다. 직장 내 성희롱 피해자는 가해자와 같은 근무 공간에 머무는 것이 고통스러워 신고 후 매일 회사의 응답을 기다리기도 한다. 미국 법무부의 컴플라이언스 프로그램 평가지침(ECCP)은 회사가 내부 신고 조사의 신속한 대응을 위해 타임라인을 설정하는지, 조사가 독립적이고 객관적으로 진행되는지 등을 내부 신고 시스템의 효과성 평가 기준으로 제시한다. EU WBD도 회사가 일정 기간 내에 신고자에게 사건 접수 통지를 하고 후속조치 경과 등에 대한 피드백을 제공하도록 의무화했다. 회사는 내부 신고 및 조사 절차의 단계별 타임라인을 공개해 신고자에게 예측가능성을 제공하고 각 단계마다 피드백을 제공할 필요가 있다. 조사 및 징계 절차의 공정성을 담보할 수 있는 방안도 함께 마련한다면 회사의 내부 신고 시스템이 임직원과 이해관계자들로부터 신뢰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내부신고와 윤리경영
    by 민창욱
    2025.03.01 08:00:00
  • 법이란 일반적으로 법률을 의미한다. 국민의 자유와 권리는 법률로만 제한될 수 있다. 그러나 법률에 구체적인 모든 내용을 직접 담을 수 없기 때문에, 법률에서 위임한 사항과 법률을 집행하기 위해 필요한 사항을 대통령령(주로 ‘시행령’)이나 총리령·부령(주로 ‘시행규칙’)으로 정하게 된다. 이는 법규명령이라 하며, 법률을 근거로 해 국가적 범위의 구속력을 발휘한다. 이를 ‘법규성’이라 하며, 법과 법규명령을 함께 ‘법령’이라 부른다. 일반적으로 ‘법해석’이라고 부르는 것은 사실 ‘법령해석’을 의미한다. 법령해석이란 법령을 특정 사실에 적용하기 위해 그 의미를 명확히 밝히는 작업이다. 이를 위해서는 다음 세 가지 단계를 거쳐야 한다. 첫째, 사안을 확정하는 것이다. 해결해야 할 법적 문제가 무엇인지 명확하게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많은 경우, 이 단계에서 혼란을 겪거나 길을 잃기도 한다. 둘째, 적용 가능한 법령을 발견하는 것이다. 대한민국에는 5000개가 넘는 법령이 존재한다. 이들은 일반법과 특별법의 관계를 맺고 있거나 각종 준용 규정을 통해 연결돼 있다. 심지어 한 법령에서 명확히 규정되지 않은 개념을 다른 법령에서 찾아야 하는 경우도 있다. 때로는 국회의 논의 자료를 검토해 입법 의도를 파악해야 한다. 이렇듯 법령 발견은 단순한 작업이 아니라 상당한 경험과 전문성이 필요한 고난도의 작업이다. 셋째, 법령해석 방법에 따라 구체적인 해석작업을 펼치는 것이다. 대표적인 해석 방법으로는 문리해석, 체계적 해석, 역사적 해석, 목적론적 해석이 있다. 문리해석은 법령 규정의 문자를 그대로 해석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언어의 한계로 인해 의미가 하나로 고정되지 않을 수도 있다. 법령이 제정된 시점과 현재의 언어적 의미가 다를 수도 있다. 따라서 문리해석만으로 충분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체계적 해석은 법 체계 전체와 다른 법령과의 관계, 법 규정의 조문 구조 등을 고려해 법령의 의미를 도출하는 방법이다. 특히 행정법령의 경우, 다른 법령과의 관계를 종합적으로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역사적 해석은 법령이 제정된 당시의 역사적 상황을 고려해 입법자의 의도를 파악하는 방법이다. 입법이유서, 국회 의사록 등의 자료를 분석해 법령이 만들어진 배경과 목적을 밝히는 것이 핵심이다. 하지만 입법자의 의도가 현재의 법 현실과 부합하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에, 역사적 해석만을 절대적으로 적용할 수는 없다. 목적론적 해석은 법의 목적을 객관적으로 파악하는 방법이다. 단순히 입법자의 의도를 따르는 것이 아니라, 입법자가 지향한 법의 정신을 현재의 관점에서 재해석하는 것이다. 특히 대법원은 이 방법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법이 현실에서 효과적으로 기능하도록 하고 있다. 목적론적 해석을 통해 법의 이념과 가치, 사회적 현실을 반영한 합목적적 판단을 내리는 것이 중요하다. 법령해석에서 가장 우선시되는 것은 문리해석이다. 법령의 언어나 법 제정상의 한계로 인해 문리해석이 불확실하거나 부조리를 초래할 경우에만 다른 해석 방법을 시도할 수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문리해석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경우가 많아 다양한 해석 방법을 동원하게 된다. 그리고 해석 방법에 따라 결론이 완전히 달라질 수도 있다. 이처럼 법령해석은 단순한 문구 해석을 넘어 법의 본질과 목적을 밝히는 과정이다. 그렇기 때문에 법령해석은 사법작용의 핵심적인 작업이며, 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법률가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진다.
    법의 의미를 밝히는 법
    by 안성훈
    2025.02.22 08:00:00
  • 상장법인이 영업활동을 통해 손실을 기록하는 것 자체가 문제되는 것은 아니다. 기업의 성장 과정에서 일시적인 손실이 발생할 수 있고, 새로운 사업 기회를 위한 투자 과정에서 손실이 불가피한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속적이고 상당한 규모의 손실이 발생하는 경우는 다르다. 이는 관리종목 지정으로 이어질 수 있으며, 상황이 개선되지 않으면 결국 상장적격성 실질심사까지 받게 될 수 있다. 상장규정에 따르면, 최근 3사업연도 중 2사업연도에 각각 사업연도말 자기자본의 50%를 초과하면서 동시에 10억원 이상의 법인세비용차감전계속사업손실이 발생하고, 최근 사업연도에도 법인세비용차감전계속사업손실이 발생한 경우 관리종목으로 지정된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손실의 '규모'와 '빈도' 두 가지 측면을 모두 고려한다는 것이다. 자기자본의 50%를 초과하면서 동시에 절대적 금액으로도 10억원 이상이어야 하며, 그리고 이러한 상황이 최근 3년 중 2회 이상 발생해야 한다. 다만, 이러한 관리종목 지정 기준에는 예외가 있다. 기술성장기업(우량기업부 기업 제외)의 경우 상장일이 속한 사업연도를 포함하여 3개 사업연도 동안, 이익미실현 기업의 경우는 상장일이 속한 사업연도를 포함하여 5개 사업연도 동안 이 기준이 적용되지 않는다. 이는 혁신 기업들의 특성을 고려한 것으로, 초기 단계에서의 손실을 용인하여 성장의 기회를 제공하고자 하는 취지로 이해된다. 관리종목으로 지정된 이후에도 상황이 개선되지 않는다면 더 엄중한 결과가 따른다. 관리종목 지정 이후 다음 사업연도에도 동일한 사유가 지속되면, 즉 자기자본의 50%를 초과하고 10억원 이상의 법인세비용차감전계속사업손실이 다시 발생하면, 이는 상장적격성 실질심사 사유가 된다. 관리종목 지정은 일종의 '경고'이며, 이후에도 손실이 지속되면 상장 유지 자체를 재검토하겠다는 것이다. 상장법인이 이러한 상황에 직면했을 때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우선 관리종목 지정을 피하기 위해서는 수익성 개선을 위한 선제적 조치가 필요하다. 비용 구조를 재검토하고, 수익성 높은 사업 부문을 강화하거나, 필요한 경우 구조조정을 단행하는 등의 방안을 고려할 수 있다. 만약 이미 관리종목으로 지정되었다면, 다음 사업연도에는 반드시 손실 규모를 축소하여 실질심사 사유 발생을 피해야 한다. 결국 법인세차감전계속사업손실 문제는 기업의 존속 가능성과 직결되는 중요한 지표이다. 특히 관리종목 지정 이후에는 상장적격성 실질심사라는 더 큰 위험이 기다리고 있는 만큼, 경영진의 면밀한 관리와 함께 필요한 경우 전문가의 조력을 받아 종합적인 대응 전략을 수립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법인세비용차감전계속사업손실과 상장적격성 실질심사
    by 정성빈
    2025.02.08 11:00:00
  • 로펌에서 기업 사내조사 관련 자문을 제공하며 가장 많이 질문 받는 유형 중 하나가 개인정보 관련이다. 외국계 회사 중심으로 유럽의 GDPR(일반정보보호 규정)과 유사한 한국 법령이 있는지, 조사 시 개인정보 수집 동의서를 받아야 하는지, 법에 반하여 증거를 수집하여 징계절차에 활용 시 징계 효력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등 질문이 끊이질 않는다. 이중 제일 자주 접하는 질문은 단연코 회사 자산인 노트북, 핸드폰에 대해 직원 동의 없이 조사가 가능한지 관련일 것이다. 사내에서 발생하는 회사 자금, 예산 관련 비위의 경우 매우 은밀히 이루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회사가 조사에 앞서 개인정보 동의서를 징구하면 그 사이에 대상 직원이 비위 흔적을 지울 가능성이 많기 때문에 상당수 회사들은 개인정보 동의서를 징구하기를 꺼린다. 이와 관련, 법원은 회사 소유 전산 기기에 있는 정보 역시 개인정보 보호법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따라서 개인정보 수집에 대한 직원 동의 없이 회사 노트북, 핸드폰의 이메일, 문자 등을 모니터링하는 것은 개인정보 보호법에 반하고, 나아가 통신비밀보호법, 정보통신망법, 형법에 위배될 수 있다. 결국 사내 비위 발생 시 회사 노트북, 서버의 이메일, 메신저 리뷰를 진행함에 있어 대상 직원의 명시적인 개인정보 수집 동의서를 징구하고 조사를 진행하는 것이 안전하다. 그렇다면 입사 시 직원이 작성하는 근로계약서 또는 보안서약서에 이메일 모니터링 등이 가능하다는 문구가 있다면 어떨까? 이에 대하여 명확히 다룬 판례는 잘 보이지 않지만 실제 개인 정보 주체의 의사가 포괄적으로 이메일, 메신저의 내용까지도 구체적으로 회사가 리뷰하는 것에 동의하였다고 보기는 어려워 법 위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법이 이렇게 엄격하다면 거액의 회사 자금 또는 중요 기밀정보가 유출되는 정황이 상당함에도 만연 개인정보 동의서를 징구할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것인지 답답하다는 생각이 들 수 있다. 이에 대하여 판례는 피해자의 범죄 혐의가 구체적이고 합리적으로 의심할 수 있는 상황에서 제한적인 키워드를 사용하고, 입사 시 회사 소유의 컴퓨터를 무단 사용하지 않고 업무 관련 결과물을 모두 회사에 귀속시키겠다고 약정 등이 있는 경우 예외적으로 대상 직원의 동의 없이도 이메일 검색이 가능하다는 취지로 판시한 바 있다. 따라서 개별 상황을 분석 해 보고, 매우 급박한 사정이 있다면 동의 없는 이메일 열람을 진행해 볼 여지가 있을 것이다. 다만 실무에서 위와 같은 급박한 상황이 아님에도 대상 직원의 동의 없이 포렌식 리뷰를 진행하는 경우가 적지 않은데, 이 경우 회사는 관련 법령 위반을 하였다는 이유로 조사의 정당성에 문제 제기를 받을 수 있다. 나아가 이는 징계의 효력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선례를 보면 위법한 방식으로 증거를 수집하더라도 징계 효력에 문제가 없다는 선례도 있지만 그와 반대되는 노동위원회 사례도 보인다. 무엇보다 더 큰 문제는 회사가 사내조사를 통해 달성하려는 컴플라이언스 준수 및 준법 문화 수립에 있어 구성원의 반발에 직면할 수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사내 조사에 앞서 포렌식 리뷰의 적법성을 면밀히 검토하고, 대상 직원의 동의를 얻기 어렵다면 다른 대안을 고민하여 진행해 보는 방법도 적극 고려하여야 한다. 예컨대, 추가적인 면담 조사, 전수조사 또는 사내 리니언시(제보자에 대해 혜택 부여하는 제도) 등을 생각 해 볼 수 있다. 이렇게 적법 절차를 통해 조사가 이루어져야 조사를 통해 회사가 이루려는 컴플라이언스 준수 문화가 보다 효과적으로 달성될 수 있다.
     회사가 동의 없이 제 이메일을 마음대로 읽어도 되나요?  
    by 이태은
    2025.02.08 09:00:00
  • 컴플라이언스(Compliance)는 조직이 법령이나 규범 등을 준수하는 일련의 활동이다. ESG가 화두가 되면서 기업의 컴플라이언스 기능이 변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다. 기관투자자를 포함한 이해관계자들은 기업에 법령 준수를 넘어 환경적 지속가능성이나 사회적 책임을 함께 고려하도록 요구하므로, 기업도 정부의 규제뿐만 아니라 다양한 글로벌 기관이 제시하는 공시 기준, 평가 지표, 이니셔티브 등을 파악하고 이를 준수할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는 것이다. ESG 시대의 컴플라이언스에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첫째, 기업이 관리해야 할 위험이 ‘법적 위험’에서 ‘지속가능성 관련 위험’으로 확대되었다. 전통적 컴플라이언스는 법령상 금지 또는 의무사항을 유형화하고 임직원이 이를 위반했을 때 발생할 벌금이나 손해 등을 법적 위험으로 정의했다. 우리 법원은 실효적 준법감시는 법적 위험의 평가로부터 시작되며 기업은 과거뿐만 아니라 미래에 발생 가능한 법적 위험을 미리 예상하고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고 봤다. 그런데 ESG는 국내 법령에 명시되지 않은 국제 인권·환경 규범 위반으로 인한 위험뿐만 아니라, 기후변화로 인한 물리적·전환 위험이나 기업이 의존하는 생물다양성 손실에 따른 위험 등도 관리 대상에 포함하고 있다. 둘째, 기업의 자체 사업장뿐만 아니라 공급망에서 발생한 위험도 관리해야 한다. 전통적 컴플라이언스는 임직원의 고의 또는 과실로 인한 위법 행위를 통제했지만 공급망에서 자체적으로 발생한 위반 행위까지 관리하지 않았다. 임직원 또는 회사에 귀책사유가 없는 협력사의 비위행위는 회사가 책임을 부담해야 하는 법적 위험이 아니며, 그렇기 때문에 기업은 공급망에서 문제가 발생했을 때 ‘우리와 무관하다’고 주장하면서 법적 책임을 최소화할 방안을 강구했다. 그러나 ESG는 기업의 제품 또는 서비스와 관련된 가치사슬에서 발생한 환경·인권 위험에 기업이 ‘연루’되지 않을 것을 요구한다. 주요 구매처는 산림전용 없이 재배된 원재료만을 조달한다고 선언했고, 미국과 EU 등은 강제노동이 결부된 상품에 대한 수입을 금지하고 있다. 셋째, 컴플라이언스 기능이 기업의 경영전략과 연계될 필요가 있다. 전통적 컴플라이언스는 준법 점검을 통해 사내 위법 행위를 적발하고 이를 통제하는 것에 그친 측면이 있다. 준법지원인의 역할은 임직원의 탈법을 억지하는 문지기(Gate keeper)였다. ESG는 한 걸음 더 나아가, 기업이 지속가능성 ‘위험’을 해소하고 이를 사업 ‘기회’로 전환할 수 있는 전략을 수립할 것을 기대한다. 원재료 조달 단계에서 강제노동에 연루된 위험을 발견했다면, 단순히 해당 업체와 법적 계약관계를 단절하는 것을 넘어 다른 조달 루트를 확보하거나, 저비용에만 의존하는 구매관행을 개선하거나, 필요 시 사업모델을 변경해 기업의 중장기적 가치를 높일 것을 요구한다. 넷째, 기업은 정기적으로 위험관리 활동을 공시해야 한다. 전통적 컴플라이언스에서 준법지원인은 준법 점검 활동을 경영진 또는 이사회에 보고하면 됐다. 물론 법적 소송을 염두에 두고 수사기관 또는 법원에 내부통제 시스템이 효과적으로 작동했다는 점을 보여주기 위한 증거기록을 모아둘 필요는 있었지만, 준법 점검 성과를 외부 이해관계자들과 매번 공유할 필요까지는 없었다. 그런데 ESG는 기업이 지속가능성 관련 위험·기회와 영향을 관리하는 절차뿐만 아니라, 이와 연계된 기업의 중·장기 전략과 거버넌스 체계, 지속가능성 목표와 성과 관리를 위한 지표 등도 함께 공시할 것을 요구한다. 특히 기업의 재무상태나 이해관계자에 지위에 중요한 영향을 미칠 지속가능성 사안은 반드시 공시해야 한다. 다섯째, 기업이 자율규제(self-regulation) 시스템을 구축할 것을 요구한다. 전통적으로 국가는 법령에 개별적인 금지 및 의무사항을 열거하고 이를 위반하는 행위를 직접 규제해왔다. 그런데 ESG는 기업이 지속가능성 관련 위험을 스스로 점검하여 공시하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시장과 정부가 이러한 기업의 자율규제 시스템이 작동하는지 감시하는 ‘간접규제’ 환경을 조성했다. 시장의 ESG 평가기관은 기업이 인권경영 정책을 수립했는지, 그 정책에 따른 위험관리 활동을 이행했는지, 이사회가 위험관리 활동을 보고받고 검토했는지 살핀다. EU 정부는 기업이 실사 정책을 수립해 회사와 공급망의 인권·환경 위험을 자체적으로 실사하도록 하면서(CSDDD), 실사 절차에서 취득한 정보를 토대로 이중 중요성 평가를 실시해 지속가능성 제표를 공시하도록 했다(ESRS). 이러한 간접 규제의 흐름을 ‘자율규제에 대한 규제’ 또는 ‘메타규제’(meta-regulation)라 부른다. ESG는 기업의 컴플라이언스 기능에 적잖은 과제를 던져주었다. 컴플라이언스 담당자의 역할이 메타규제 법령의 벌칙 조항만을 분석하는 것에 그쳐서는 안 될 것이다. 컴플라이언스 책임자는 변화된 규제 환경을 이해하고, 지속가능성 정책 수립부터 위험관리 및 공시까지 이어지는 기업의 ‘자율규제 시스템’을 만드는 데 적극 참여할 필요가 있다. 컴플라이언스 조직이 사내외 다양한 조직과 소통하면서 기업의 지속가능한 성장과 책임 경영을 이끌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ESG와 컴플라이언스
    by 민창욱
    2025.02.01 08:00:00
  • 최근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 의결을 둘러싸고 법원들의 여러 판단이 있었다. 주된 쟁점은 2명의 위원 만으로 의결하는 ‘2인 체제 결정’이 방통위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방통위법) 제13조 제2항 ‘위원회의 회의는 재적위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의결한다’는 규정을 위반했는지 여부였다. 써있는 말 그대로를 단순하게 보면 재적위원의 수에는 제한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재적위원이 1명이나 2명 뿐이라면 ‘여러명이 숙의를 거쳐 결정해야 한다’는 ‘합의제 행정기관의 설치 목적’에는 부합하지 않아 보인다. 여기에서 법 해석의 논란이 시작되는 것이다. 먼저 서울행정법원의 판결을 보자. 서울행정법원은 최근 일련의 판결에서 ‘2인 체제 결정’을 위법하다고 판단했다.(2024. 10. 17. 선고 2024구합46245, 2024. 12. 10. 선고 2024구합54829, 2024구합54409 판결) 각 판결은 공통적으로 방통위가 MBC에 대해 내린 제재 처분을 취소하며 ‘합의제 행정기관 의사 결정의 절차적 하자 판단 기준’을 제시했다. ‘외형상 법령에서 정한 절차적 테두리 안에서 이루어진 것처럼 보일지라도, 사실상 그 절차가 합의제 행정기관의 존재 의미를 무의미하게 할 정도로 형식적으로 이루어졌다면’ 절차적 정당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방통위법의 입법 목적, 합의제 행정기관으로서의 방통위의 성격, 관계 법령의 문언 및 체계 등을 종합하면, 2인 체제 결정은 ‘합의제 행정기관의 존재 의미를 무의미하게 할 정도로 형식적’인 절차밖에 형성할 수 없기 때문에 ‘문언에도 불구하고’ 2인 체제 결정의 절차적 적법성이 인정되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 논리에 따르면 방통위와 같은 합의제 행정기관에서는 최소 3인 이상 구성원의 존재와 그 출석 기회가 부여될 것이 요구된다. 그런데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달랐다. 헌법재판소는 2025. 1. 23. 이진숙 방통위원장 탄핵심판청구를 기각하면서 서울행정법원과는 다른 해석론을 법정 의견으로 정했다. 즉, 2인 체제 결정이 위법하지 않다는 것이다. 특히 문언에 따른 해석의 원칙을 내세우면서 법규범의 해석을 할 때 ‘그 말의 뜻을 완전히 다른 의미로 변질시켜서는 아니 된다’고 하면서 서울행정법원의 해석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입장을 취했다. 헌법재판소는 방통위를 합의제 행정기관으로 설치한 취지에 따르면 5인의 위원이 모두 심의·의결에 참여하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2인 간에도 서로 다른 의견의 교환이 가능하고 토론을 통해 합의에 도달해야 의결 정족수를 충족한다고 보았다. 따라서 방통위를 합의제 기관으로 설치한 입법취지로부터 반드시 ‘위원 3인 이상’을 요구하는 법해석이 논리필연적으로 도출된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다만, 그 취지에 따르더라도 ‘1명’의 위원만으로 어떤 결정을 할 수는 없다고 보이므로 나름대로 문언을 제한하여 해석하고 있다고 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된다). 이에 대해서는 법정의견과 같은 수의 반대의견이 팽팽하게 맞섰다. 반대의견은 서울행정법원의 견해와 유사하다. 그렇다면 방통위법 제13조 제2항에 대한 ‘법원’의 입장은 무엇일까? 헌법 제101조는 사법권이 법원에 속하고 법원 중 최고 법원은 대법원임을 규정하고 있다. 그렇기에 법률해석권은 최종적으로 대법원에 귀속된다. 그러나 헌법재판소는 법률의 위헌심사, 탄핵심판, 정당해산심판, 권한쟁의심판, 그리고 헌법소원심판 등에서 독자적 권한을 가지며, 이러한 고유권한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법률해석이 수반된다. 따라서 헌법재판소도 그 권한 범위 내에서 법률해석권을 가진다고 할 수 있다. 여기에서 대법원과 헌법재판소의 갈등이 발생하기도 하며, 서로의 해석을 인정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법원 및 각급 법원과 헌법재판소 모두를 아울러 넓은 의미에서 ‘법원’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법원에 속하는 기관들이 각기 다른 해석을 내놓은 상황에서 국민은 아직 방통위법 제13조 제2항의 의미를 확정하지 못한 상태에 있다. ‘위원회 회의는 재적위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의결한다’는 간단한 문장의 법적 의미를 규명하는 것에 앞으로도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법해석이란 이처럼 어려운 과제임을 방통위 2인 체제 결정을 둘러싼 논쟁은 잘 보여주고 있다.
    ‘방통위 2인 체제 결정’에 대한 ‘법원’ 입장에 관하여
    by 안성훈
    2025.01.26 08:00:00
  • 대구지방법원 서부지원은 지난해 12월 19일 자동차부품제조회사 A회사 사업장 내에서 발생한 근로자 사망 사고와 관련해 대표이사를 포함한 피고인 전원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플라스틱 소재의 수공구가 압축성형기에 끼어 압착되다가 튕겨 나오면서 사내협력업체 소속 근로자가 사망한 사고다. 위 사건의 사고는 A회사의 사내협력업체 근로자에 의하여 발생하였다. 협력업체 근로자는 압축성형기에 원재료를 투입하는 작업을 하고 있었는데, 원재료가 잘 투입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작업표준에 없는 수공구로 원재료를 두드려 투입했다. 문제는 작업자가 사용하던 수공구를 실수로 설비 내에 둔 채 옆의 설비로 작업을 위하여 이동하면서 발생했다. 설비에 둔 수공구가 설비 내부의 압축 진공 챔버로 빨려 들어갔고, 진공 챔버 내에서 압착되다가 설비 밖으로 튕겨져 나간 것이다. 튕겨나간 수공구가 약 7m 거리에서 작업을 하고 있던 같은 협력업체 소속의 다른 근로자 이마를 강타했고, 그 자리에서 쓰러진 근로자는 치료를 받던 중 결국 사망했다. 법원은 이 사건 사고가 합리적으로 예견하기 어려운 사고라고 보았다. 사고가 발생한 압축성형기는 200톤의 압력과 180도의 고온으로 작동하는 기계다. 이러한 조건에서 끼어들어간 물체가 녹거나 부서지지 않고 압착되다가 튕겨져 나올 것을 예상하기란 어렵다고 판단했다. 다만 법원은 중대재해처벌법에 따른 의무 중에 A회사의 안전보건 전담조직 구성에는 미흡한 점이 있다고 판단했다. 그럼에도 중대재해처벌법위반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하였는데, 이는 이 사건 사고가 안전보건 전담조직을 두지 않아 발생하였다고 볼 수는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중대재해처벌법은 경영책임자 등이 안전보건 확보의무를 이행하지 않아 중대재해에 ‘이르게’ 한 경우에 처벌 대상이 되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즉, 중대재해처벌법령에 따른 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것이 중대재해 발생의 원인이 되어야 처벌 대상이 된다. 이 사건에서 비록 안전보건 전담조직은 설치되지 않았지만, 안전관리자가 사업장 순회점검을 통하여 유해·위험요인을 수시로 점검하였음에도 수공구의 사용이나 그로 인한 위험요인을 발견할 수 없었다. 안전보건 전담조직이 있었다고 하여 이러한 사정이 달라지지는 않았으리라 본 것이다. 이처럼 중대재해처벌법상 의무 이행에 미흡한 점이 있더라도 합리적으로 예견 가능한 위험을 예방하기 위한 안전보건조치를 다하였다면 그러한 범위를 넘어서는 사고에 대하여는 면책될 여지도 있다. 이 사건이 주는 교훈은 무죄의 결과보다도 위와 같이 합리적으로 예견 가능한 안전보건조치의 중요성이다.
    합리적인 안전조치 다했다면…중대재해처벌법 위반 무죄
    by 김동현
    2025.01.18 09:00:00
  • 특례상장제도의 도입으로 혁신성장 기업들의 자본시장 진입이 한결 수월해졌다. 이른바 '테슬라 요건'으로 불리는 이익미실현 기업의 상장 제도는, 현재 적자를 기록하고 있더라도 미래 성장 가능성이 높은 기업들에게 상장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다만, 이러한 특례상장의 기회는 상장 이후의 책임과 의무를 동반한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특히 이익미실현 요건으로 상장한 기업들은 관리종목 지정 유예기간 중의 매출액 요건을 각별히 주의할 필요가 있다. 상장규정은 이익미실현 기업이 관리종목 지정 유예기간 중에 최근 3사업연도 연속으로 매출액이 5억원 미만이면서 동시에 전년 대비 50% 이상의 매출액 감소를 기록하는 경우, 상장적격성 실질심사 대상이 되도록 규정하고 있다. 여기서 '최근 3사업연도'는 상장일이 속한 사업연도부터 계산하는 것이 원칙이나, 상장일로부터 해당 사업연도 말일까지의 기간이 6개월 미만인 경우에는 그 다음 사업연도부터 계산한다. 이는 상장 시기에 따른 형평성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것으로 이해된다. 이러한 규정의 취지는 명확하다. 이익미실현 기업에게 상장의 기회를 제공하되, 상장 이후에도 지속적인 성장을 보여주지 못하거나 오히려 매출이 급감하는 경우에는 상장 적격성을 재검토하겠다는 것이다. 특히 매출액을 기준으로 삼은 것은, 이익미실현 기업의 특성상 당장의 수익성보다는 시장에서의 성장성과 사업의 지속가능성이 더욱 중요하다고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실무적으로 이익미실현 기업들이 주의해야 할 점은 크게 두 가지이다. 첫째, 매출액 기준을 단순히 '5억원'이나 '전년 대비 50%'로만 이해하면 안 된다는 점이다. 이 두 조건은 '동시에' 충족되어야 하며, 이러한 상황이 '3년 연속'으로 발생해야 한다. 따라서 어느 한 해라도 두 조건 중 하나만 충족되지 않으면 실질심사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 둘째, 이러한 요건은 '관리종목 지정 유예기간 중'에 적용된다는 점이다. 관리종목 지정 유예기간이 종료된 이후에는 일반적인 상장폐지 요건이 적용되므로, 유예기간의 종료 시점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결국 이익미실현 기업이 상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매출 창출과 성장이 핵심이다. 상장 시점의 성장 가능성이 실제 매출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그것은 곧 상장폐지의 위험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익미실현 기업들은 매출 추이를 면밀히 모니터링하고, 필요한 경우 사업 포트폴리오를 조정하거나 신규 사업을 발굴하는 등 선제적인 대응이 필요하다. 이 과정에서 전문가의 조력을 받아 상장 유지를 위한 구체적인 전략을 수립하는 것도 도움이 될 것이다.
    이익미실현 기업의 상장유지, 매출이 핵심
    by 정성빈
    2025.01.04 09:20:00
  • 행정청은 정책을 결정하거나 직무를 수행하는 데 필요한 정보나 자료를 수집하기 위해 현장조사를 할 수 있다. 그러나 권력이 국민의 생활 영역에 개입하기 위해서는 언제나 ‘적법한 절차’를 준수해야 한다. 이에 따라 행정조사기본법에서는 조사원이 가택·사무실 또는 사업장 등에 출입하여 현장조사를 실시하는 경우, 반드시 조사 목적, 조사 기간과 장소, 조사원의 성명과 직위, 조사 범위와 내용, 제출 자료 등이 기재된 문서와 권한을 나타내는 증표를 제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제11조). 이러한 규정은 행정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현장조사가 필요한 개별 법률에서도 반복적으로 규정되고 있다. 예를 들어, 산업표준화법 제20조 제5항과 의료법 제61조 제1항에서는 각각 KS인증 조사나 의료법 위반 조사 시 권한을 나타내는 증표와 현장조사를 위한 문서를 제시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행정조사에서 권한을 나타내는 증표와 현장조사를 위한 문서를 제시하는 것은 수사 절차에서 압수·수색 영장을 제시하는 것과 유사한 절차적 요구사항이다. 압수·수색 영장의 제시 없이 압수·수색을 강행하는 것이 위법한 것처럼, 권한을 나타내는 증표와 현장조사를 위한 문서를 제시하지 않고 현장에 출입해 조사를 수행하는 것 역시 위법하다. 법원도 이러한 절차적 요구를 강조하고 있다. 부산고등법원은 ‘조사 대상자가 조사 개시 시점에 담당 공무원으로부터 권한을 증명하는 증표를 제시받고, 조사 기간, 조사 범위, 조사 담당자, 관계 법령 등이 기재된 문서를 받아야 하는 것은 조사 대상자가 누릴 수 있는 절차적 권리의 핵심 사항’이라고 하면서 ‘권한을 증명하는 증표와 현장조사를 위한 문서는 조사 개시와 동시에 제시되어야 하며, 조사 개시 이후에 이를 사후적으로 제시하는 것은 위법하다’고 판결하였다(부산고등법원 2021. 8. 27. 선고 2021누21163 판결). 이러한 행위는 압수·수색 영장을 제시하지 아니한 채 압수·수색을 실시한 다음, 사후에 비로소 영장을 제시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또한, 권한을 나타내는 증표나 현장조사서를 조사 개시 시점에 제시하지 않으면, 이후 조사 대상자로부터 위반 사실을 인정받기 위해 작성된 ‘확인서’를 제출받더라도 위법성을 해소하기 어렵다(서울행정법원 2022. 12. 22. 선고 2021구합5352 판결)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제 현장에서는 조사를 나온 사람이 권한을 나타내는 증표나 현장조사에 관한 구체적인 사항이 기재된 문서를 제시하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다. 절차를 단순한 형식적인 문제로 간주하고 결과의 타당성만을 중시하는 관행도 여전히 남아 있다. 하지만 적법한 절차를 준수하는 것은 권력 행사를 정당화하기 위한 최소의 조건이다. 법치주의는 아주 사소한 균열로도 무너질 수 있는 약한 이념이다. ‘그깟 종이 한 장’을 제시하지 않았다는 사소함이 얼마나 파괴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지 인식할 필요가 있다.
    적법 절차·권력 행사 정당화 위한 최소 조건
    by 안성훈
    2024.12.29 08:00:00
  • 미국 제47대 대통령 선거에서 트럼프 후보가 당선되면서 ESG 정책이 후퇴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그동안 화석연료 산업 지지와 파리협약 탈퇴를 공언해왔기에 미국의 기후·환경 정책에는 어느 정도 변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글로벌 공급망에서 노동·인권 침해에 대한 미국의 규제는 트럼프의 재집권 후에도 계속 유지되거나 오히려 강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자국 노동자들을 보호하는 데 민주당과 공화당의 이해관계가 일치할 뿐만 아니라, 트럼프 1기 행정부 시절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추진했던 통상 규제가 바이든 정부를 거치며 더욱 공고화되었기 때문이다. 미국은 오래전부터 무역과 노동을 연계하는 통상정책을 폈다. 대표적으로 1930년 제정된 미국 관세법 제307조는 강제노동을 통해 전부 또는 부분적으로 채굴, 생산 또는 제조된 모든 제품의 수입을 금지한다. 이 법률은 인도주의적 목적보다는 미국 노동자들과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도입됐다. 미국은 1865년 노예제도를 공식 폐지했는데, 해외에서 강제노동을 통해 생산된 제품이 자국 내에서 유통되면 미국 노동자들의 경쟁력이 저하될 수 있기에 관세법 제307조를 만든 것이다. 당시의 관세법 제307조는 미국 내 소비 수요가 높은 제품에 대한 예외를 규정했는데, 커피·차·고무 등 미국 노동자들이 직접 생산하지 않지만 미국 국민들이 널리 소비하는 제품은 강제노동에 연루됐더라도 수입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보편적 인권이란 가치가 미국 국민의 후생보다 우선할 수는 없었다. 미국 강제노동 규제의 주된 타겟은 중국이다. 미국 관세국경보호청(CBP)이 1990년부터 2021년까지 부과한 강제노동결부 제품에 대한 인도보류명령(WRO) 61건 중 43건이 중국산 제품에 대한 처분이다. 2022년 6월 21부터는 ‘위구르 강제노동방지법’(UFLPA)이 시행됐다. 이제 중국 신장위구르자치구에서 생산되거나 미국 정부가 지정한 제재 대상 기업이 만든 제품은 강제노동결부 제품으로 추정되어 미국 내 수입이 금지된다. UFLPA가 시행된 후 현재까지 1만 1334건의 통관보류 조치가 집행됐고 이 중 4899건은 최종적으로 통관이 거부됐다. 제재대상 기업의 숫자도 최초 20개에서 109개까지 늘어났다. 트럼프 당선자가 국무장관 후보자로 지명한 마코 루비오 상원의원은 2020년 UFLPA 발의를 주도한 인물이다. 트럼프 2기에도 UFLPA의 엄격한 집행 기조는 유지될 가능성이 높다. 미국은 국가 간 협정을 통해 강제노동 규제를 확대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2020년 ‘미국-멕시코-캐나다 무역협정’(USMCA)에 서명하면서, 북미 3국이 강제노동결부 제품의 수입을 금지하고 해당 제품의 식별 및 이동을 위한 협력 체계를 구축한다는 합의를 이끌어냈다. 이후 멕시코와 캐나다도 강제노동결부 제품의 수입을 금지하는 국내법을 제정했다. 다만 미국은 양국의 현행법이 충분하지 않다는 입장이며, UFLPA에 따라 미국 통관이 거부된 제품이 캐나다나 멕시코로 수출될 우려가 있으므로 북미 3국의 세관 당국이 더욱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마코 루비오를 포함한 미국의 의원들은 2024년 9월 캐나다와 멕시코에 공개 서한을 보내 양국도 UFLPA처럼 신장 자치구에서 생산된 제품을 강제노동결부 제품으로 간주해 북미 수입을 금지하는 법률을 만들 것을 촉구했다. 미국의 통상규제는 강제노동뿐만 아니라 노동·인권 일반으로 확산될 조짐이 보인다. 미국 무역대표부(USTR)는 2024년 12월10일 ‘1974년 무역법’ 제301조에 따라 중앙아메리카에 위치한 니카라과의 노동권 침해에 대한 조사를 시작했다. 무역법 제301조는 외국 정부의 불합리하거나 차별적 관행을 조사해 관세 등 보복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한 규정이다. 종래 무역법 제301조는 지적재산권 침해, 보조금 지급 등 전형적인 통상 이슈에만 적용됐다. 그런데 미국은 이번에 처음으로 니카라과 정부의 결사의 자유 침해나 아동·강제노동 등의 인권 이슈를 ‘불합리한’ 관행으로 보아 조사를 개시한 것이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미국 노동부 산하 국제노동국은 ‘인신매매피해자 보호 재승인법’(TVPRA)에 따라 격년 단위로 아동노동 또는 강제노동으로 생산된 제품의 리스트를 공개하는데, 2024년 9월 공개된 ‘TVPRA 리스트’에 한국이 추가됐다. 미국 노동부는 한국에서 생산한 인듐에 아동노동으로 만든 볼리비아산 아연이 사용됐다고 밝혔다. 한국은 2022년 볼리비아에서 3억 8500만달러 상당의 아연 농축물을 수입해 인듐을 생산했는데 위 수입품에 볼리비아 아동들이 광산에서 채굴한 아연이 포함됐다는 것이다. 인듐은 터치스크린 장착 기기, TV, 핸드폰, 태블릿, 반도체, 태양광 패널 등에 두루 사용되며, 한국의 인듐 생산량은 세계 2위로 2022년 전 세계 공급량의 22.2%를 차지한다. 글로벌 공급망에 속한 국내 기업은 언제든지 인권 침해에 연루되거나 제재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유럽연합도 2024년 11월 19일 강제노동 금지 규정을 채택했다. 트럼프 2.0 시대에 미국과 EU는 제품의 전 생산 과정에서 강제노동에 부분적으로나마 연루된 제품을 시장에서 퇴출하는 데 일치된 목소리를 낼 것으로 보인다. 우리 기업은 국제적으로 승인된 노동·인권 규범을 준수하면서도, 주요국 통상규제의 의도와 내용을 면밀히 살펴 대응할 필요가 있다.
    트럼프 2.0 시대의 노동·인권 규제
    by 민창욱
    2024.12.28 09:00:00
  • 2019년 직장 내 괴롭힘 관련 규정이 근로기준법에 도입 된 후 사내조사가 급격하게 증가하였다. 이후 사내조사 과정상 기존에 잘 다뤄지지 않은 다양한 쟁점이 문제되고 있다. 그 중 사내 조사에 참여하는 직원들의 권리의식이 커지면서 변호사와 함께 조사 면담 또는 징계위원회에 참여하겠다는 경우가 굉장히 많다. 이러한 직원들의 요청을 받았을 때 변호사가 조사 과정에 참여하면혹시 조사가 지연되는 것은 아닌지, 회사 인사 운영에 저해가 발생하는 것은 아닌지 고민이 될 수 있다. 사내 조사 과정에서 변호사의 참여가 허용되는지에 관하여 판례의 입장이 명확하지 않다. 취업규칙 등 사규에 변호인의 조력권에 대하여 규정을 하였다면 이를 따르면 되겠으나, 이러한 조사의 구체적인 내용에 관하여 취업규칙 등 사규에 다루고 있는 회사는 많지 않을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하여 직접적으로 다룬 사례 자체가 많지 않지만 관련 법원 선례를 보면 징계절차에 있어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가 당연히 보장된다고 보기 힘들다는 취지로 판시하고 있다. 관련 판결에 의하면 내부조사 과정 또는 징계위원회 절차에서 변호인의 조력을 받지 못하더라도 징계의 효력에는 별다른 영향은 없는 것으로 이해된다. 한편 실무상 회사 입장에서 직원의 변호사 대동 요청을 받았을 때 어떻게 대처하는 것이 바람직한지 고민이 될 수 있다. 일률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원칙은 없으나 변호사의 참여를 요청받은 회사는 이를 허용하는 방안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변호사의 참여를 요구한 직원은 조사 절차 및 공정성에 강한 문제 의식을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변호사를 조사 절차에 참여시킴으로 회사가 절차적인 부분에 있어 직원의 의견을 충분히 반영하여 객관적인 조사를 진행하였다는 정당성을 구비할 수 있다. 조사의 지연 및 변호사의 과도한 면담 개입에 대하여는 변호사가 면담에 어떻게 참여할지 원칙을 미리 정하여 요청하는 직원이 이를 수용함을 전제로 변호사 참여를 허용하는 방식을 고려 해 볼 수 있다. 가령 면담 전에 변호사가 면담 대상 직원의 사실(fact)에 관한 진술 시 말을 가로막지 않고 최대한 대상 직원이 발언하도록 하는 등 원칙을 수립함으로써 절차 지연을 방지할 수 있다. 한편 변호사가 조사 절차에 참여하는 것은 조사 진행에 도움이 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직장내 괴롭힘 또는 성희롱 관련 조사 시 회사가 직접 직원과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과정에서 감정이 격화되고 2차 가해 주장이 나올 때가 많은데, 이때 회사는 변호사와 커뮤니케이션을 하며 조사의 결과 및 조사 이후 조치에 대하여 좀 더 합리적으로 조율할 여지가 높아진다. 구체적으로 회사는 변호사를 통하여 제보 직원 또는 행위자의 진의를 명확히 파악하게 됨으로써 사안이 분쟁으로 확대되지 않고 원만하게 해결될 가능성이 많아진다. 이상과 같이 사내 조사 과정에서 회사가 변호사의 참여를 인정할 법적 근거가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변호사의 참여를 요청 받았을 시 이를 조사의 객관성을 확보할 수 있는 기회로 생각하고, 제보자 및 행위자 모두 납득하도록 조사를 종결하는데 활용하는 부분을 진지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다.
     “차장님, 월요일 면담에 변호사님과 함께 가겠습니다.”
    by 이태은
    2024.12.21 10:00:00
  • 기업 분할은 양날의 검과 같다. 분할은 경영 효율성을 높일 수 있는 기회이지만, 동시에 상장폐지의 위험도 존재한다. 기업들은 이러한 리스크를 충분히 인지하고 대비해야 하며, 투자자들 역시 이러한 상황을 주의 깊게 모니터링할 필요가 있다. 상장규정은 분할 또는 분할합병 후 존속법인이 일정 요건을 충족하지 못할 경우, 상장적격성 실질심사 대상이 될 수 있음을 명시하고 있다. 이와 같은 요건은 자본시장 내 신뢰와 안정성을 보장하기 위한 최소 요건으로 평가된다. 구체적으로, 자기자본 30억 원 이상(벤처기업의 경우 15억 원 이상), 자본잠식이 없을 것, 이익요건 충족, 감사인의 적정 검토의견 확보 등이 포함된다. 자기자본 30억 원 기준은 분할 존속법인의 최소한의 재무 건전성을 담보하기 위한 기준이다. 자본잠식은 기업의 존립 기반이 흔들리는 신호로 해석될 수 있으며, 투자자에게 심각한 불안을 야기한다. 이익요건 충족은 기업의 지속 가능성과 수익성을 보여주는 핵심 지표로서, 단순히 형식적 요건이 아니라 시장의 신뢰를 유지하는 데 중요한 부분이다. 감사인의 적정 검토의견은 이러한 요건의 실질적 충족 여부를 증명하는 보증서와 같다. 이러한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 기업은 상장적격성 실질심사 대상이 될 뿐 아니라, 시장 내 신뢰를 상실해 주가 급락 및 자금조달의 어려움에 직면할 가능성이 크다. 더 나아가, 상장법인이 비상장법인과 합병한 후 3년 이내에 분할을 결의하고, 분할 존속법인의 주요 영업부문이 합병 당시 비상장법인의 영업부문에 속할 경우 상장적격성 실질심사 대상이 될 수 있다. 이는 합병 후 곧바로 분할을 단행하며 편법적 우회상장을 시도하는 사례를 방지하려는 목적이다. 이러한 규정은 시장의 공정성을 보호하기 위한 제도로, 비상장법인의 영업부문이 편법적으로 존속법인의 주력 사업으로 둔갑해 상장 요건을 왜곡하는 상황을 방지하고자 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합병 후 분할이 정당한 경영적 목적이 아니라 시장 질서를 교란하려는 의도로 사용될 경우, 이는 투자자의 피해뿐 아니라 자본시장 전체의 신뢰도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 이러한 규정은 우회상장을 시도하려는 기업들에 대한 경고이며, 동시에 투자자들에게는 기업 경영진의 의도를 세심히 검토할 필요성을 상기시킨다. 이처럼 분할·분할합병은 단순한 경영 전략이 아니라 자본시장 내 신뢰의 문제와 맞닿아 있다. 기업은 분할이나 합병 과정에서 상장규정의 요건을 준수하며, 재무 건전성을 유지할 수 있는 구체적이고 투명한 계획을 수립할 필요가 있다. 또한, 이러한 과정에서 투자자와의 신뢰를 유지하기 위해 공시를 충실히 이행하고, 회계 투명성을 강화할 필요도 있겠다. 투자자들 역시 기업의 분할이나 합병 결정이 기업의 지속 가능성에 미칠 영향을 꼼꼼히 분석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분할·합병 과정은 단순한 경영 효율화 도구가 아닌, 기업과 투자자가 신뢰를 함께 구축하는 장기적 프로젝트로서 기업과 투자자가 모두 상생할 수 있는 방식으로 활용되기를 바란다.
    분할 존속법인의 부실화와 상장폐지
    by 정성빈
    2024.12.07 14:56:04
  • 생활임금(living wage)이란 근로자와 그 가족이 적절한 생활 수준을 누릴 수 있도록 지급되는 임금이다. ESG 모범기업인 파타고니아는 2025년까지 1차 공급업체 전체에 생활임금을 적용하겠다고 선언했다. 글로벌 인권경영평가지표(CHRB)는 기업이 자체 인력과 공급망에 대한 생활임금 지급 목표를 공개하도록 요구하고 있고, 유럽연합의 ‘기업지속가능성 실사지침’(CSDDD)은 실사의 항목에 적절한 생활임금의 보장을 포함했다. 이제 ESG 경영을 잘하는 기업이 되려면 소속 직원뿐만 아니라 공급망까지 생활임금을 지급하고 생활임금 미충족 여부를 정기적으로 실사해야 하는 시대가 도래했다. 생활임금은 최저임금과 다르다. 최저임금은 국가가 법으로 정한 최저수준의 임금으로, 우리나라는 비혼 단신 근로자의 생계비와 유사 근로자의 임금수준 등을 기준으로 최저임금을 결정한다. 그런데 생활임금은 개별 근로자가 아니라 ‘근로자와 그 가족’이 기준이다. 즉, 생활임금은 근로자와 그 가족이 ‘적절한 생활수준’(decent standard of living)을 누리기 위해 필요한 비용을 토대로 산정된다.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앵커(Anker) 방법론에 따르면, 생활임금은 근로자와 그 가족이 거주하는 지역에서 영양가 있는 식단, 건강한 주거, 교육과 의료, 기타 비상지출 등을 보장하기 위해 요구되는 금액을 조사하여 결정된다. 생활임금은 대부분의 국가에서 최저임금보다 높은데, 예를 들어 2021년 기준 방글라데시의 법정 최저임금은 생활임금의 49% 수준이다. 국제사회가 생활임금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이유는 생활임금의 미지급이 다른 인권의 침해로 이어지는 원인이 되기 때문이다. 개발도상국의 근로자들은 가구 소득의 대부분이 근로소득이다. 개별 근로자가 지급받는 근로소득으로 가족을 부양하기 어렵다면, 그 근로자는 비자발적 연장근로 등 강제노동에 노출될 위험이 커진다. 부모가 생활임금을 받지 못하면 자녀들이 아동노동에 동원되거나 충분한 교육 기회를 제공받지 못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처럼 생활임금이 근로자와 그 가족들의 교육, 의료, 주거, 문화 등의 경제·사회적 권리 전반과 연계되어 있기에, 국제노동기구(ILO)는 올해 3월 생활임금 정책에 대한 합의문을 채택하여 생활임금의 산정 및 이행 원칙을 제시했다. 물론 기업이 공급업체 직원 가족의 생계까지 책임져야 하는지 의문이 들 수 있다. 다만 일부 윤리적 동기에서 시작된 기업의 생활임금 정책은 비즈니스에도 어느 정도 효과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영국은 생활임금 제공 기업을 인증하는 제도를 두고 있는데, 2016년 약 2800개 인증 기업을 대상으로 실시한 전수조사에서 참여 기업의 절반 이상이 생활임금 도입 후 근로자 퇴사율이 감소했다고 응답했다. 직원과의 관계 개선에 도움이 되었다는 답변은 55%, 기업의 전반적 평판이 높아졌다는 답변은 78%였다. 페이팔(PayPal)은 2019년 저임금 근로자의 순 가처분소득(NDI)을 4%에서 16%로 높이는 정책을 시행했는데 기업의 수익성이 28% 증가했다고 밝혔다. 생활임금의 도입 자체만으로 이러한 경제적 효과가 발생했다고 보기는 어렵겠지만, 적어도 생활임금은 근로자의 장기근속을 유도하고 업무 만족도를 높이는데 일부 기여하는 것으로 보인다. 공급업체 직원에게 생활임금이 보장된다면 기업이 지속가능한 조달을 받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기업은 생활임금 정책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 우선 국내외 사업장에 소속된 근로자들이 지급받는 임금이 생활임금 기준을 충족하는지 점검할 필요가 있다. 근로자들이 실제 수령하는 임금 중에는 국제기준상 생활임금에 포함되는 항목과 그렇지 않는 항목이 존재하는데, 회사의 현행 급여체계와 생활임금 사이의 격차(gap)를 분석해 생활임금 충족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 생활임금은 지역별 생활수준 등에 따라 달라지므로, 생활임금을 산정할 때 신뢰할 수 있는 데이터를 활용하고 노사협의 절차 등을 거치는 것이 바람직하다. 나아가 회사의 생활임금 정책을 공급망으로 확대하는 것도 필요할 것이다. 특히 생활임금 리스크가 가장 취약한 지역과 업종의 공급업체를 식별하여, 그 업체의 직원들이 생활임금을 지급받을 수 있도록 회사의 구매 정책과 관행을 개선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아직 국내 기업에서 생활임금 논의는 초기 단계에 있다. 생활임금을 산정하고 적용하는 데 실무상 어려움도 적지 않다. 다만 앞으로 좀 더 많은 기업들이 생활임금 정책을 발표하고, 소비자와 시장이 생활임금 지급 기업에 대한 인식을 제고할 수 있다면, 공급망에서 더 많은 직원과 가족들이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생활임금에 관한 우리 기업의 정책과 실무가 조금씩 발전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생활임금과 지속가능한 조달
    by 민창욱
    2024.11.30 09:00:00
  •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하 중대재해처벌법)이 2022년 1월 27일 시행된 이래 처음으로 무죄 판결이 선고됐다. 대구지방법원 영덕지원은 올해 10월 16일 건설회사 사업장에서 폐콘크리트 상차 작업을 하던 중에 소속 근로자가 사망한 사건에서 해당 건설회사 및 그 대표이사에게 중대재해처벌법위반에 대한 무죄를 선고하였다. 법 시행 이후로 현재까지 약 30건의 판결이 선고된 가운데 중대재해처벌법 위반에 대하여 무죄가 선고된 판결은 이번이 처음이다. 무죄가 선고된 이유는 중대재해처벌법 부칙의 유예 조항 때문이다. 중대재해처벌법 부칙 제1조제1항은 “이 법은 공포 후 1년이 경과한 날로부터 시행한다. 다만, 이 법 시행 당시 개인사업자 또는 상시 근로자가 50명 미만인 사업 또는 사업장(건설업의 경우에는 공사금액 50억 원 미만의 공사)에 대해서는 공포 후 3년이 경과한 날부터 시행한다.”고 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공사금액 50억 원 미만의 공사에 대하여는 올해 1월 26일까지 중대재해처벌법 적용이 유예됏고, 위 판결에서 문제된 공사금액은 약 42억 원(변경 후 약 38억 원)에 불과했다. 검사도 위와 같은 부칙 규정을 모를 리 없다. 그럼에도 이 사건이 기소되어 재판까지 진행되며 쟁점이 된 부분은 ‘관급자재비’다. 검사는 공사금액에 관급자재비 약 10억 원이 포함되어야 한다며 이 경우 공사금액이 50억을 넘으니 이 사건에도 중대재해처벌법이 적용된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재판부는 헌법상 형벌법규 엄격해석의 원칙 및 부칙 조항의 입법취지를 고려할 때 △공사 계약금액을 기준으로 공사금액을 판단하는 것이 계약당사자에게 중대재해처벌법 적용대상인지에 대한 명확한 기준을 제공할 수 있는 점 △당사자 간 계약된 금액을 공사금액으로 보는 것이 영세사업자의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준비기간을 두기 위한 부칙 조항의 입법취지에도 부합하는 점 △관급자재비를 공사금액에 포함시킨다는 법률 규정이 없음에도 입법목적을 앞세운 해석을 통해 처벌의 대상을 확대시키는 것은 죄형법정주의 원칙에 반하는 점 △관급자재비용이 공사계약금액에 포함되지 않고 분리 발주된 경우에도 공사금액에 관급자재비를 포함하는 것은 피고인에게 불리한 해석인 점 △변경 후 공사금액에 관급자재비를 더하더라도 약 48억 원으로 50억 원에 미달하는 점을 이유로 이 사건에는 중대재해처벌법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판단하였다. 부칙 조항의 문언과 입법취지를 고려하면 타당한 해석이다. 항소심에서도 같은 판단이 내려질지 귀추가 주목된다
     중대재해처벌법 무죄 선고 이유는
    by 김동현
    2024.11.23 08:00:00
  • 정보공개법은 공공기관이 보유하고 있는 정보를 모두 공개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다만 법정된 비공개 사유가 있는 경우에만 예외적으로 정보를 공개하지 않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공공기관은 있는 그대로의 정보가 아니라 다소간의 검색과 편집을 거쳐야 하는 자료라고 하더라도 이 같은 작업을 거쳐 청구인에게 정보를 제공해야 할 의무가 있고(대법원 2010. 2. 11. 선고 2009두6001 판결 등), 공개 대상 정보의 양이 너무 많다는 것도 비공개의 이유가 될 수 없다(정보공개법 제13조 제3항). 다른 사람에게 공개해서 이미 알려졌다거나 관보 등으로 공개해서 인터넷 검색이나 도서관 열람 등으로 쉽게 알 수 있는 정보라고 하더라도 당연히 공개 청구의 대상이 된다(대법원 2010. 12. 23. 선고 2008두13392 판결 등 참조). 이렇게 정보공개법은 공공기관의 정보공개 의무를 매우 엄격한 기준으로 부과하고 있다. 공공기관의 정보를 국민에게 공개하는 것은 국민 알권리를 위해 중요한 것일 뿐 아니라 국가의 주인인 공공기관을 감시하기 위한 기본적 단계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실제로 우리가 공공기관으로부터 제대로 된 정보를 얻어내는 것이 어려운 경우가 많다. 특히 개인정보와 관련되었다거나 관련된 업무가 진행 중이라거나 재판 등이 진행 중이라는 이유로 정보를 공개하지 못한다는 회신을 받는 경우들이 있다. 물론 정보의 공개가 공정한 업무의 집행 등에 방해가 된다면 비공개를 하는 것이 타당하다. 하지만 공공기관이 자신들이 정보를 ‘보유하고 있지도 않으면서’ 청구한 정보의 제목만 보고 비공개 사유를 붙여 비공개하는 경우도 있다. 이 경우는 아주 중대한 위법이라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공공기관이 정보를 비공개할 경우에는 대상이 된 정보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확인·검토해 어느 부분이 어떠한 법익 또는 기본권과 충돌돼 정보공개법 제9조 제1항 몇 호에서 정하고 있는 비공개사유에 해당하는지를 주장·증명하여야만 하기 때문이다(대법원 2018. 4. 12. 선고 2014두5477 판결 등 참조). 이러한 법리에 따르면 ‘존재하지 않는 정보’에 대하여 그 존재 유무조차 확인하지 않고 비공개처분을 하는 것은 그 자체로 중대하고 명백한 위법이라는 판단을 면할 수 없는 것이 된다. 공공기관이 그 정보가 있는지 없는지조차 살펴보지 않고 비공개사유를 기재하여 비공개한다면 국민은 ‘해당 정보의 존재’라는 기본적인 사항 조차 알 수 없게 되기 때문에 그러한 행위는 국민의 권리를 심각하게 침해하는 것이다. 법원은 ‘존재하지 않는 정보’에 대하여 ‘정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유를 들어 공개를 거부한 처분’에 대한 행정소송은 법률상의 이익이 없다며 ‘각하’ 판결을 하고 있지만 ‘존재하지 않는 정보’에 대하여 ‘정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유가 아니라 다른 법정된 비공개사유를 들어 비공개처분을 한 사건에 대하여는 입장을 일관되게 정리하고 있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존재하지 않는 정보에 관해 ‘정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유’로 비공개처분한 것과 달리 존재하는 정보에 대해 그 정보 내용의 비공개 사유를 검토를 하는 것에는 이르지도 않고 정보의 존재 자체조차 확인하지 아니한 채 비공개처분을 하는 것은 공공기관이 정보공개법상 부담하는 아주 기본적이고 단순한 의무조차 행하지 않은 것이므로 이는 ‘중대하고도 명백한 위법’으로 보아 무효라고 판단하여야 한다. 부존재 하는 정보에 대해 부존재를 이유로 비공개 처분하는 사안과는 달리 이 같은 경우라면 이 사건 처분이 위법·무효임을 선언해 피고가 정보공개법상의 기본적인 의무를 이행하지 않아 사건 소가 제기된 법적인 책임을 오로지 피고가 부담하도록 해야 한다.
    ‘보지도 않고 비공개’…사실 존재치 않는 정보였다니[안성훈 변호사의 ‘행정법 파보기’
    by 안성훈
    2024.11.16 08:00:00
  • 기존 주주가 아닌 제3자에게 신주를 배정하는 방식인 제3자배정 유상증자는, 본래 기업이 신기술 도입, 재무구조 개선 등의 경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필요한 자금을 조달하는 수단이다. 이는 새로운 자본을 유치하고, 기업의 성장과 발전을 도모하기 위한 목적으로 특정 제3자를 통해 빠르게 자본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점에서 효율적인 방법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이러한 취지에서 벗어나 악용되는 사례들이 종종 발생하고 있다. 주주배정이나 일반공모가 어려운 상황에서 특정 외부 세력에게 유리한 조건으로 신주를 배정하거나, 자본을 편법적으로 돌려받는 등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상장규정은 제3자 배정 유상증자를 악용한 편법적 자금 회수를 방지하기 위해 관련된 상장적격성 실질심사 사유를 규정하고 있다. 특히, 관리종목 또는 투자주의 환기종목으로 지정된 상장법인이 제3자 배정 유상증자를 통해 자본을 조달한 후 단기간 내에 자금을 회수하는 경우가 그 대상이 된다. 상장규정에 따르면, 관리종목 또는 투자주의 환기종목으로 지정된 상장법인이 제3자 배정 방식으로 신주를 발행한 뒤, 그 신주를 취득한 자에게 6개월 이내에 선급금 지급, 금전의 가지급, 금전 대여, 증권 대여, 출자 등의 형태로 자금을 상환한 사실이 공시 등을 통해 확인되는 경우, 이는 상장적격성 실질심사 사유에 해당된다. 이는 자본을 건전하게 확충해야 할 유상증자가 자금 순환이나 불법 자금 회수의 도구로 사용되지 않도록 하기 위한 규정이다. 다만, 선의로 자금을 운용한 기업들도 자칫 불투명한 자금 흐름으로 인해 오해를 받을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기업은 자금 운용의 투명성을 철저히 공시하고, 내부 관리 체계를 강화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특히 관리종목이나 투자주의 환기종목으로 지정된 기업들은 제3자배정 유상증자 과정에서 발생하는 모든 이벤트에 주의를 기울여야 하며, 그 절차가 실질심사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지 꼼꼼히 검토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과정에서 전문가의 자문을 적시에 받아 억울한 상황을 방지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부실징후기업의 제3자배정 유상증자
    by 정성빈
    2024.11.02 08:00:00
  • 협력사에서 발생하는 ESG 리스크를 어떻게 예방할 수 있을까? 가장 통용되는 방법은 기업이 ‘협력사 행동 규범’(supplier code of conduct)을 만들고 협력사로 하여금 이를 준수하도록 하는 것이다. 즉, 기업은 자신과 거래하는 협력사가 지켜야 할 노동·인권·환경·윤리 등에 관한 준칙을 문서로 제정하여 공표한다. 기업은 협력사에 이 문서를 준수할 것을 권고하거나, 협력사로부터 행동 규범 준수에 관한 서약서를 받거나, 협력사와의 계약서에 행동 규범 준수 조항을 삽입하기도 한다. 행동규범을 지키는 협력사에 인센티브를 부여하기도 하고, 행동 규범을 위반하는 협력사가 있는지 정기적으로 점검하여 시정조치를 취하기도 한다. 행동 규범의 내용은 점점 진화했다. 한 연구 결과에 의하면, 2008년부터 2019년 사이 S&P500 기업이 공시한 행동 규범의 길이는 29% 증가했다. 애플의 협력사 행동 규범 및 부속문서의 분량은 206쪽이다. 전 세계적으로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기대 수준이 높아지고 해외 사업장에서 준수할 ESG 규제가 늘어났다. 기업은 투자자, 고객사, NGO 등의 요구사항을 행동 규범에 반영해 더 많은 글로벌 준칙을 준수하겠다고 선언했다. 행동 규범은 기업이 자율적으로 정하는 규칙에서 시작했지만, 이제 법령상 의무가 되었다. EU의 ‘기업 지속가능성 실사지침’(CSDDD)은 기업이 자사, 자회사 및 협력사에 적용될 행동 규범을 제정하도록 규정했다. 행동 규범은 조달·고용·구매 결정 등 기업의 모든 기능과 운영에 반영되어야 하며, 기업은 직간접 협력사에 행동 규범의 적용을 확대하고 이행을 검증하는 조치도 마련해야 한다. 예를 들어 CSDDD는 기업이 협력사로부터 행동 규범을 준수하겠다는 ‘계약상 보증’(contractual assurance)을 받고, 협력사가 이를 준수하는지 독립적 제3자를 통해 검증할 수 있도록 했다. 조금 의문이 든다. 더 많은 글로벌 준칙을 기업의 행동 규범에 포함하고 협력사에 이를 준수하도록 요구하면, 공급망에서 ESG 리스크의 발생을 줄일 수 있는가? 물론 기업의 윤리적 행동에 대한 기대 수준을 전반적으로 높이는 것은 바람직하다. 다만 중소 규모 협력사는 인력과 자원이 한정되어 있기에 ESG 리스크를 효과적으로 통제하기 어려울 수 있다. 그렇다고 주거래처가 요구한 행동 규범의 준수 및 검증에 관한 계약 조항에 날인을 거절하기도 쉽지 않다. 문제 해결 역량이 부족한 협력사에 계약상보증을 요구하는 것만으로 공급망에서 인권·환경 침해를 실질적으로 예방하기 힘들 수 있는 것이다. 협력사에 요구사항을 전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협력사에 책임을 다하는 것도 필요하다. 독일 정부는 공급망 실사법 해설 가이드에서 기업이 개별 사안에 따라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다음의 사례를 예시했다. A기업의 한 협력사에서 최저임금 미지급 이슈가 불거졌다. A기업은 협력사 행동 규범에 ‘적정임금의 보장’이 명시되어 있다며 협력사들에 시정 및 검증을 요구했다. 확인해보니 최근 최저임금이 상승했지만 A기업의 구매대금은 그대로여서 협력사들이 직원들에게 최저임금을 지급하기가 구조적으로 어려운 상황이었다. A기업은 기존의 구매대금 결정 기준 및 지급 관행을 개선하는 조치를 취함으로써 최저임금 미지급 이슈를 실질적으로 해결하게 되었다. 회사와 협력사, 대기업과 중소기업은 공급망 ESG 리스크를 예방하기 위해 함께 노력해야 한다. 협력사는 행동 규범을 성실히 이행하고, 회사는 책임 있는 구매 관행을 정립해 협력사를 지원할 필요가 있다. 또한 대기업과 중소기업은 서로 동등한 조건에서 ESG 책임을 약속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CSDDD도 “계약상 보증은 회사와 협력사가 책임을 적절히 분담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야” 하며, “중소기업으로부터 계약상보증을 받거나 중소기업과 계약을 체결할 때 사용되는 조건은 공정하고 합리적이며 비차별적이어야 한다”고 명시했다. 우리 공급망에서 책임 있는 기업 행동과 구매 관행이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협력사에 대한 요구, 협력사에 대한 책임
    by 민창욱
    2024.10.26 09: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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