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59
  • 전기차, 스마트폰, 태블릿 등 첨단 제품에 사용되는 핵심 광물은 대부분 복잡한 글로벌 공급망을 거쳐 이동한다. 이 과정에서 일부 지역에서는 광물 채굴 수익이 무장세력의 자금원이 되거나, 아동노동 및 환경오염 등 심각한 인권·환경 침해로 이어지는 사례가 꾸준히 보고되어 왔다. 특히 아프리카 내륙의 콩고민주공화국(DRC)과 인접국에서는 주석, 탄탈럼, 텅스텐, 금(3TG) 등의 광물이 무력 분쟁과 인권 유린을 악화시키는 요인이 되었고, 이에 따라 국제사회는 이른바 ‘분쟁광물’에 대한 공급망 규제를 본격적으로 도입하기 시작했다. OECD는 2011년 광물 공급망 실사를 위한 가이던스를 발표했고, 미국은 도드-프랭크법을 통해 분쟁광물의 원산지 정보 공개를 의무화했다. EU도 2021년부터 ‘분쟁 및 고위험지역’(CAHRAs)에서 조달되는 분쟁광물에 대해 실사 및 공시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민간 부문에서는 ‘책임광물 이니셔티브’(RMI)가 제련소(정련소 포함)에 대한 인증 프로그램(RMAP)을 운영해 왔다. OECD는 제련소를 다양한 광물이 모이는 핵심 통제지점(choke point)로 보고 이들을 통해 상위 공급망(upstream)인 광산 등을 관리하는 구조를 설계했는데, RMI는 제련소가 OECD 기준에 따른 상위 공급망 실사 체계를 구축했는지 평가하여 인증을 부여한 것이다. 글로벌 기업은 자신이 조달하는 광물의 제련소를 추적하여 RMAP 인증을 취득했는지 점검하는 방식으로 광물 공급망 리스크를 관리해 왔다. 다만 기존의 분쟁광물 중심 규제와 민간 인증 시스템에는 일정한 한계가 있다. 최근 인도네시아에서 불법적으로 채굴된 주석이 RMAP 인증 제련소를 통해 유통되었다는 보도가 있었는데, 인도네시아가 ‘분쟁 및 고위험지역’으로 분류되지 않아 인증 심사를 수월히 통과했다는 문제가 제기되었다. 또한 인도네시아는 전 세계 니켈 생산량의 50% 정도를 차지하고 있는데, 술라웨시 지역 등에서는 대규모 니켈 채굴로 인한 식수원 오염, 산림 파괴, 해양 생태계 훼손, 불법적 토지 수탈 등의 이슈가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니켈은 분쟁광물(3TG)로 분류되지 않고 2022년까지도 RMAP 인증 대상이 아니어서 통제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었다. 최근 들어 인도네시아 소재 일부 니켈 제련소가 RMAP 인증을 취득하기 시작했으나, 해당 인증 절차에 광산 현장실사가 포함되지 않기 때문에, 인도네시아의 영세광산(ASM)이나 중간 유통단계에서 발생하는 리스크가 모두 통제된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러한 현실을 반영해 광물 공급망에 대한 규제와 실무 관행도 점차 발전하고 있다. EU는 2023년 배터리규정을 통해 니켈, 코발트, 리튬 등 책임광물 공급망에 대한 추적 및 실사 시스템 구축을 의무화했다. RMI는 올해 4월 보고 양식(EMRT)을 개정해 니켈, 리튬, 천연 흑연 등을 관리 대상 광물 목록에 포함했고, 현대자동차도 올해 5월 관리 대상 광물을 기존 5종(분쟁광물 4종 + 코발트)에서 전기차 배터리 광물을 포함한 20여 종으로 확대하겠다고 발표했다. 일부 글로벌 기업은 제련소의 RMAP 인증 여부를 서류로만 점검하는 데 그치지 않고 광산에 대한 현장실사를 진행하기도 한다. 테슬라는 2024년 보고서에서 인도네시아 니켈 광산 및 제련소를 직접 방문했으며, 광산 3곳에 대해 국제기준에 따른 감사를 실시했다고 밝혔다. 책임광물 공급망 리스크를 효과적으로 관리하는 것은 결코 쉬운 과제가 아니다. 특히 우리 기업과 직접 계약관계를 맺지 않은 해외의 제련소, 광물 중개상, 영세 광산 등의 정보를 정확히 파악해 광물의 원산지나 이동 경로를 추적하는 데는 한계가 따른다. 국내 제조사는 민간의 제련소 또는 광산 인증 정보 등을 1차적으로 활용하되, 해당 인증의 구조적인 한계를 인식하고 이를 보완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 정기적으로 국제기구의 데이터나 NGO 보고서 등을 살펴 인도네시아와 같은 고위험 지역을 선제적으로 스크리닝하는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그 시작이다. 또한 고객사의 요구를 협력사에 일방적으로 전가하기보다는, 자사의 책임광물 조달 기준 및 절차를 국제규범에 따라 명확히 수립한 뒤, 고객사에는 원칙 있게 설명하고 협력사에는 실현 가능한 조치를 책임감 있게 요청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규제와 시장의 변화에 발맞추어 우리의 책임광물 공급망 관리 제도와 실무가 함께 진화해 가기를 기대해 본다.
    책임광물 공급망 리스크의 관리
    by 민창욱
    2025.06.07 08:00:00
  • 서울고등법원이 지난 22일 카카오모빌리티에 대한 공정거래위원회의 시정명령과 271억원 과징금을 전부 취소하는 판결을 내렸다. 공정위가 ‘가맹택시 콜 몰아주기’로 규정한 행위를 법원은 ‘합리적 차별’로 판단한 것이다. 택시 호출 시장을 거의 독점하다시피 한 카카오모빌리티가 어떻게 공정위를 상대로 완승을 거둘 수 있었을까. 카카오모빌리티의 카카오T앱에서는 두 가지 호출 방식이 있다. 가맹호출(유료)과 일반호출(무료)이다. 가맹호출은 카카오T블루 택시만 부를 수 있고, 일반호출은 주변 모든 택시가 대상이다. 그런데 일반호출에서도 가맹택시가 비가맹택시보다 우선적으로 배차를 받는다는 게 공정위의 문제 제기였다. 공정위는 ‘가맹택시나 비가맹택시나 일반호출 앱 이용약관에 똑같이 동의했으니 둘은 동등한 거래상대방이다. 차별하면 안 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법원은 가맹택시와 비가맹택시의 의무가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점에 주목했다. 가맹택시는 별도의 가맹계약을 체결하고, 목적지를 확인하지 못한 채 강제 배차를 받으며, 카카오모빌리티의 각종 정책에 따라야 한다. 반면 비가맹택시는 단순히 앱 이용약관에만 동의하면 된다. 결국 법원은 ‘카카오모빌리티 입장에서 가맹택시와 비가맹택시는 거래조건이 다른 상대방이다. 차별에는 합리적 이유가 있다’고 판결했다. 과거 골프존이 가맹수수료를 내는 가맹점에만 신제품을 우선 공급한 것을 차별이 아니라고 본 것과 같은 논리다. 공정위가 두 번째로 지적한 것은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행위였다. 일반호출 시장에서 90% 넘는 점유율을 가진 카카오모빌리티가 가맹택시를 우대해 가맹시장까지 장악하려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법원은 카카오모빌리티의 차별행위 이후에도 앤모빌리티, 코나투스, 브이씨앤씨, 우티 등 다양한 가맹택시 사업자들이 시장에 신규 진입했다는 점을 들어 경쟁제한 효과가 없다고 판단했다. 사전적 우려보다는 실제적 효과를 중시한 것이다. 공정위의 시장 구분 논리에도 한계가 드러났다. 일반호출 시장과 가맹호출 시장을 별개로 본 것인데, 이는 플랫폼의 양면시장 특성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빠른 호출이 핵심이며, 하나의 플랫폼에서 다양한 옵션을 제공받는 것이 오히려 편익을 증대시킨다는 점이 간과됐다. 알고리즘을 통한 차별의 입증도 쉽지 않았다. 알고리즘의 기술적 작동 방식과 그 결과로서의 차별적 효과 간의 인과관계를 법적으로 명확히 입증하는 것은 여전히 어려운 과제다 그렇다면 공정위가 대법원에서 역전할 가능성은 없을까. 몇 가지 반박 논리를 생각해볼 수 있다. 첫째, 행정기관의 전문성과 정책적 판단에 대한 존중 범위다. 디지털 플랫폼이라는 새로운 영역에서 공정위의 예측·정책적 판단의 합리성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지가 관건이다. 둘째, 시장지배력의 사전적 규제 필요성이다. 카카오모빌리티의 조사 결과 가맹기사와 비가맹기사 간 월평균 수입 차이가 1.04배에서 2.21배에 달했다. 카카오모빌리티의 택시 등 관련 시장 점유율이 압도적으로 높은 상황에서 사후적 경쟁제한 효과만을 기준으로 판단하는 것이 적절한지 의문이다. 셋째, 알고리즘 거버넌스에 대한 새로운 기준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플랫폼 사업자가 알고리즘을 통해 시장 참여자를 차별할 때, 그 기준과 과정의 공개 의무나 공정성 담보 방안에 대한 법리가 정립될 필요가 있다. 이번 판결이 확정되더라도 플랫폼 규제의 근본적 과제는 남아있다. 혁신을 저해하지 않으면서도 공정한 경쟁 환경을 조성하는 것, 이것이 우리 시대가 풀어야 할 숙제다. 공정위는 판결문을 검토한 후 대법원 상고 여부를 결정할 계획이다. 카카오모빌리티 사건을 통해 디지털 플랫폼에 대한 보다 정교하고 균형 잡힌 규제 프레임워크가 정립되기를 기대한다.
    카카오모빌리티는 왜 공정위를 이겼을까
    by 안성훈
    2025.05.31 08:00:00
  •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하 중대재해처벌법) 부칙 제1조제1항은 “이 법은 공포 후 1년이 경과한 날부터 시행한다. 다만, 이 법 시행 당시 개인사업자 또는 상시 근로자가 50명 미만인 사업 또는 사업장(건설업의 경우에는 공사금액 50억 원 미만의 공사)에 대해서는 공포 후 3년이 경과한 날부터 시행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위 규정에서 “건설업”의 의미를 “건설업자”로 해석한다면 건설업을 영위하지 않으면서 건설공사를 도급한 경우에는 해당 부칙 조항이 적용되지 않는다. 반면에 “건설업”의 의미를 “건설업에서 행해지는 공사”로 해석한다면 공사금액 50억 원 미만의 건설공사에서 발생한 중대산업재해에 대하여는 건설업을 영위하든 그렇지 않든 그 공사를 도급한 사람이나 수급한 사람 모두 부칙 조항이 적용되어 법 적용이 2024년 1월 26일까지 유예된다. 위 규정상 “건설업”의 의미는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 “건설업자”의 의미로 한정되기보다 “해당 건설공사”의 의미로 해석하는 편이 타당하다고 보인다. 첫째, 죄형법정주의의 원칙상 엄격해석의 원칙과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에게 유리하게’ 해석한다는 형사법의 기본원칙에 입각하여야 한다. 부칙 조항에서 건설업의 경우에 상시근로자 수 대신에 공사금액을 기준으로 한 것은, 건설업의 특성상 상시근로자 수의 판단이 용이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건설업자의 상시근로자 수가 달라질 수 있는 점을 의미하기보다 개별 건설공사에서 공사일마다 출력 인원이 달라지는 점을 의미한 것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 그럼에도 “건설업”의 의미를 ‘건설공사’가 아닌 ‘건설업자’로만 해석하는 것은, 다의적 해석이 가능한 경우에는 피고인에게 유리하게 해석한다는 형사법의 원칙에 정면으로 반한다. 둘째, 해당 부칙 조항의 취지를 고려하여야 한다. 위 부칙 조항의 취지는 영세사업자의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준비기간을 충분히 두기 위하여 유예기간을 두기로 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입법취지를 고려하면, 건설공사의 경우 상시근로자 수가 아닌 공사금액을 기준으로 하는 특성에 비추어 ‘해당 공사의 규모’를 따져 중대재해처벌법의 적용 여부를 판단하여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건설공사의 규모와는 무관한 건설공사를 도급한 사람의 상시근로자 수를 적용하여 법의 적용 여부를 판단하는 것은 위 부칙 조항의 입법취지에도 반한다. 특히 위 규정을 건설업을 영위하는 자에게만 적용되는 것으로 해석하면, 건설공사에 관한 전문성이 높은 건설업자에게는 오히려 법 적용이 유예되는 반면에 건설공사에 무지한 비건설업자에게는 법 적용이 유예되지 않는 불합리한 결론을 낳는다.
     중대재해법상 ‘건설업’은 공사인가, 업자인가?
    by 김동현
    2025.05.24 11:00:00
  • 2019년 직장 내 괴롭힘 관련 조항이 근로기준법에 도입 된 후 직장 내 괴롭힘 조사를 어떻게 진행할지 관련 실무상 여러 쟁점이 문제된다. 직장 내 괴롭힘 조사에 관하여는 근로기준법 제 76조의 2가 전부이다 보니 조사를 진행함에 있어 회사는 여러 의문이 들고 어떻게 처리하는 것이 최선일지 고민이 된다. 구체적으로 괴롭힘 조사 과정에서 회사들이 요즘 로펌에 특히 많이 질문하는 부분이 직장 내 괴롭힘 조사 결과를 제보자 또는 피해근로자에게 알려주어야 하는지, 알려주어야 한다면 어느 정도까지 알려줘야 하는지 관련이다. 우선 직장 내 괴롭힘 조사 후 결과 통지 관련 근로기준법상 조사 결과를 제보자 또는 피해근로자에게 통지해야 한다는 명시적인 규정은 없다. 이때 우선 고려 할 부분이 근로기준법상 비밀유지 의무와의 관계이다. 근로기준법 제76조의3 제7항에 따르면 직장 내 괴롭힘 발생 사실을 조사한 사람, 조사 내용을 보고받은 사람 및 조사 과정에 참여한 사람은 조사 과정에서 알게 된 비밀을 피해근로자 등 의사에 반하여 다른 사람에게 누설해서는 아니 된다. 이 조항은 조사 과정에서 알게 된 정보의 비밀유지 의무를 규정하고 있으며, 제보자가 피해근로자가 아닌 경우 제보자에게 조사 결과를 알려주는 것이 피해근로자의 의사에 반할 수 있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한편 피해근로자인 경우라도 조사 결과를 알려줘야 하는 부분에 대한 명시적 의무 규정은 없다. 다만 실무적인 관점에서 제보자에게 일정 수준의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바람직한 경우가 많다. 피해근로자는 회사가 어떻게 향후 조치를 취할지에 대하여 엄청난 관심을 가질 수 밖에 없는데 피해근로자가 조사 결과 내용을 공유받지 못한다면 피해근로자로서는 사안을 외부 기관으로 확대할 가능성이 매우 높아지며 사안이 커질 수 있다. 아울러 최근 대법원 판결에 의하면 회사는 피해근로자의 의견 청취 의무 관련하여 피해근로자가 향후 어떠한 입장을 취할지 관련하여 일정 부분 정보를 제공받아야 한다는 취지이므로, 이러한 점 또한 고려하여야 한다. 그렇다면 피해근로자에게 조사 결과를 공유 해 줄 경우 구체적으로 어느 정도까지 말해주어야 할지 의문이 들 수 있다. 조사 관련 신고에 따른 조사가 진행되었고 완료되었다는 기본적인 사실 및 조사 결과에 따라 행위자에 대한 적절한 조치가 취해진다는 일반적인 사실은 알려줄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제보한 내용이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하는지 결론은 알려주는 것이 필요할 때가 많다. 다만, 행위자에 대한 구체적인 어떤 수준의 징계(정직, 감봉 등), 인사 조치에 관한 부분은 명예훼손 등이 문제될 수 있어 신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런데 종종 피해근로자 또는 제보자가 제보 행위가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하는지 결론뿐 아니라 그렇게 판단을 한 근거에 대하여 물어보는 경우가 많다. 예컨대 참고인 진술이 구체적으로 무엇이고, 괴롭힘 판단 결과를 도출함에 있어 누구 진술을 더 신뢰했는지에 대한 질문이 있는 경우도 있다. 이 경우 회사로서는 상당히 난처한데 이때는 위에서 언급된 비밀유지 및 나아가 조사 내용이 공유 되었을 경우 직원들 사이에 추가적인 분쟁, 불화가 발생하거나, 조사에 참여한 직원들의 개인정보, 명예가 훼손될 우려가 있다는 점을 설명하며 정보 공유의 범위를 합리적으로 제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결과적으로 근로기준법상 직장 내 괴롭힘 제보자에게 조사 결과를 알려줘야 한다는 명시적인 규정이 없다 보니 실무에서 여러 혼선이 있는데, 피해근로자의 알권리, 의견청취 관련 의무 및 비밀유지 의무, 행위자 및 참고인의 개인정보, 명예훼손 등 여러 요소를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개별 사안에 맞는 조치를 취하는 균형적인 시각이 필요하다.
     부장님 도대체 왜 조사 결과를 안 알려주시나요?  
    by 이태은
    2025.05.18 10:13:21
  • 상장폐지 절차의 장기화는 자본시장의 문제 중 하나로 지적되어 왔다. 최근 5년간 상장폐지 사례(71건)를 분석해보면, 그 중 87%인 62건이 상장폐지 또는 상장적격성 실질심사 사유 발생부터 최종 퇴출까지 1년 이상이 소요되었다. 이러한 지연에 대해 자본의 효율적 배분을 저해하고 시장의 신뢰도를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작용해왔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있어왔다. 기존 절차에 의하면, 코스피 시장의 경우 2심제로 운영되어 최대 4년의 개선기간이 부여될 수 있고, 코스닥 시장은 3심제로 최대 2년의 개선기간이 주어질 수 있다. 여기에 위원회 심의기간(20~30일)이 추가되고, '속개' 제도를 통해 실질적인 개선기간이 더 연장되는 경우도 있었다. 이러한 상장폐지 절차의 지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거래소는 상장폐지 절차를 대폭 간소화하였다. 우선 심의단계가 축소된다. 특히 코스닥 시장의 경우, 상장적격성 실질심사 과정에서 심의주체가 동일한 2심과 3심을 통합하여 2심제로 개편된다. 이는 불필요한 절차 중복을 제거하여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조치로 이해된다. 개선기간도 대폭 축소된다. 코스피 시장의 경우 형식적 사유에 대한 이의신청 시 최대 개선기간이 2년에서 1년으로 줄어들고, 실질심사의 경우 4년(1·2심 각 2년)에서 2년(각 1년)으로 단축된다. 코스닥 시장 역시 실질심사 시 최대 개선기간이 2년에서 1.5년으로 축소된다. 주목할 만한 변화는 형식적 사유와 실질심사 사유가 동시에 발생하는 경우의 처리 방식이다. 기존에는 형식적 사유에 대한 심사를 먼저 진행하고, 그 결과에 따라 실질심사를 진행하는 순차적 방식을 채택했다. 그러나 앞으로는 두 심사를 병행하여 진행하고, 어느 하나라도 상장폐지가 결정되면 최종 상장폐지가 확정되는 방식으로 변경된다. 다만, 기업의 정당한 회생 기회를 보장하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도 마련된다. 개선계획 이행이 임박했거나 조만간 법원 판결이 예정된 경우 등 예외적인 상황에서는 심의단계별로 3개월의 추가 기간이 허용될 수 있다. 또한 회생·워크아웃 기업의 경우 제한적으로 1년의 추가 개선기간이 부여될 수 있다. 이러한 제도 변화는 상장폐지 절차의 신속성과 효율성을 높이는 동시에, 정당한 회생 가능성이 있는 기업에 대한 기회 보장이라는 두 가지 목표의 균형을 추구한 것으로 평가된다. 상장기업들은 이러한 변화에 주목하고 대비할 필요가 있다. 상장폐지 사유가 발생하면 과거보다 훨씬 짧은 시간 안에 개선 조치를 완료해야 하므로, 평상시 재무건전성과 지배구조 관리에 더욱 만전을 기해야 한다. 만약 상장폐지 사유가 발생한 경우라면, 제한된 시간 내에 효과적인 대응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전문가의 조력을 받아 체계적인 개선계획을 수립하고 이행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상장폐지 절차, 이제는 더 빨라진다
    by 정성빈
    2025.05.17 15:54:59
  • 나는 내 이름이다. 태어나서 이름을 가진 다음에야 하나의 인격이 되고 그 인격을 바탕으로 관계를 맺는다. 그런데 내 이름이 고유의 내 이름대로 불리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여권에 적히는 '로마자 이름'에 관한 이야기다. 서울행정법원 행정12부는 최근 여권 로마자 성명 변경 불가 처분 취소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쟁점은 이름 중 ‘태’의 로마자 표기였다. 원고는 여권을 신청하며 ‘TA’로 표기했지만, 접수 당국은 이는 국어 로마자 표기법에 맞지 않는다며 ‘TAE’로 정정해 여권을 발급했다. 원고는 영어권에서는 ‘TA’가 자연스럽고 널리 쓰이는 표기라며 원래 신청대로 변경해 달라고 요청했으나 거부당했고, 결국 소송에 나섰다. 법원은 ‘국어 로마자 표기법’은 어디까지나 대외적 구속력이 없는 일종의 가이드라인일 뿐이라며 상식적으로도 ‘cap(캡)’, ‘nap(냅)’, ‘fan(팬)’ 등 모음 ‘A’를 ‘애’로 발음하는 단어를 무수히 찾을 수 있다고 하며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우리 사회에서 이름은 대개 한자로 짓는 것이 일반적이었지만, 최근에는 순수한 우리말로만 짓는 경우도 많고 심지어 특정 영어 단어나 발음을 염두에 두고 아예 영어 이름을 우리말로 표기해 이름을 짓는 경우도 있다. 문제는 이러한 이름이 여권 발급 과정에서 원래 의도한 영어 표기와 충돌할 수 있다는 점이다. 국어 로마자 표기법은 한국어를 로마자로 바꾸는 데 유용하긴 하다. 하지만, 실제 음성과 어감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여권법령은 이름을 로마자로 바꿔쓰는 기준의 원칙으로 국어의 로마자 표기법을 제시하고 있다. 출입국 심사 관리나 우리 여권에 대한 대외 신뢰성을 유지하기 위해 일정한 기준을 지킬 필요가 있기 때문에 일정한 기준을 제시하는 것은 합리적인 면이 있다. 하지만 국어의 로마자 표기법 고시가 오래도록 개정이 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다양한 발음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나아가 한국어를 로마자로 단순하게 치환시키는 데는 효과적이나 유연성이 떨어진다. 반대로 영어 등을 한국어로 바꾸는 것에는 기능을 다하기 어렵다는 한계가 있다. 예를 들어보자. ‘Hermione’를 발음해보면 헤르미온느, 헤르미오네 등으로 읽는 게 보통이다. 그런데 실제로 발음할 때는 ‘헐마이오니’라고 읽는다.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헐마이오니를 동경하는 부모가 자녀의 이름을 헐마이오니라고 지었다면, 국어 로마자 표기법으로는 어떻게 써야 할까? Heolmaioni다. 허마이오니라고 지었다면, Heo Maioni라고 적어야 한다. 헤르미오네, 헤르미온느로 짓는다고 해서 Hermione라는 로마자 표기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Hereumione, Hereumionneu, 이렇게 적힌다. 이런 한계 때문에 유연성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 여권법 시행규칙 제2조의2 단서는 로마자로 표기하는 외국식 이름 또는 외국어와 음역이 일치할 경우는 그 외국식 이름 또는 외국어를 여권의 로마자 성명으로 표기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는 애초에 영어와 같은 외국어를 먼저 염두에 두고 지은 이름의 경우 다시 이를 로마자로 표기하는 경우에 잘 적용될 수 있다. 실제로 6월에 태어난 아이라는 점을 기념하고자 ‘June’이라는 영어 이름을 먼저 짓고, 이것을 우리말 이름으로 ‘주은’이라고 지은 게 바로 그런 사례다. 이 사안에서도 외교부는 여권이름 기재를 불허했지만 행정심판위원회에서 그 결정을 바꾸었다. 그런데 이번 판결처럼 애초에 우리말로 ‘태’가 들어가는 이름을 짓고 이를 영문으로 ‘TA’로 기재하는 것은 위와 같은 유연한 규정이 적용되는 상황은 아닐 것으로 보인다. 이에 법원은 ‘로마자 표기법’을 기준으로 하는 것 자체가 법규적 효력이 없다면서 ‘원하는 이름표기를 가질 권리’에 더 힘을 실어준 것이다. 이름의 영문 표기 기준을 정하는 이유는 국가행정의 효율성과 여권의 대외 신뢰도 때문이다. 이것은 아주 중요한 것은 물론이다. 하지만 이름 사용의 맥락이 점차 넓어지고 개인의 정체성과 자율성을 실현하는 방식이 다양해지는 지금의 시대에 영문 이름 짓기에 관해 지나친 엄격성만을 일관할 수는 없는 일이라고 보인다.
    원하는 영어이름을 사용할 권리
    by 안성훈
    2025.04.27 08:00:00
  • 감사의견 미달은 상장폐지의 대표적 사유 중 하나다. 최근 5년(2020~2024년) 간의 통계를 보면 상장폐지 사유 중 감사의견 미달이 236건으로 가장 많았고, 그 뒤를 횡령·배임(71건), 불성실공시(27건)가 따르고 있다. 그동안 감사의견 미달과 관련된 상장폐지 절차는 다소 완화되어 운영돼 왔다. 감사의견 미달은 이의신청이 허용되는 형식적 상장폐지 사유로 분류되는데, 통상 이의신청 시 개선기간이 부여됐다. 또한, 개선기간이 도과한 이후에 추가적인 개선기간이 부여되거나 '속개' 제도를 통해 다다음 사업연도까지 개선기간이 사실상 연장되는 경우도 있었다. 이러한 운영 방식을 악용하는 사례가 발생하기도 했다. 예를 들어, 자본잠식이 우려되는 기업이 즉각적인 상장폐지를 피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감사의견 미달을 선택하는 경우다. 자본잠식은 즉시 상장폐지 사유이지만, 감사의견 미달의 경우 1년 정도의 개선기간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금번에 상장폐지 제도 개선방안은 이러한 감사의견 미달에 대한 규제 강화에 관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핵심적인 변화는 감사의견 미달이 2회 연속 발생할 경우 즉시 상장폐지된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감사의견 미달 사유 발생 이후 다음 사업연도에도 감사의견 미달(사업보고서 미제출 포함)이 발생하는 경우, 이에 대한 이의신청이 불가하도록 하여 곧바로 상장폐지가 결정된다. 다만, 회생·워크아웃 기업에 대해서는 제한적으로 추가 개선기간(1년)이 허용된다. 이는 ① 회생·워크아웃 계획이 최종 승인되었고, ② 계속기업 가정의 불확실성에 따른 감사의견 미달일 것(회계부정이나 감사증거 확보의 어려움 등은 제외), ③ 회생·워크아웃 종료 후 감사의견 변경이 가능하다는 감사인의 의견서가 제출된 경우에 한한다. 또한, 주목할 만한 변화는 감사의견 미달 '해소'를 상장적격성 실질심사 사유로 추가한 것이다. 이는 코스닥 시장에는 이미 도입되어 있던 제도로, 2025년 2월 27일자 유가증권시장 상장규정 시행세칙 개정으로 코스피 시장에도 도입됐다. 즉, 감사의견 미달을 해소하더라도 즉각 매매거래를 재개하지 않고 해당 기업의 상장적격성을 종합적으로 한 번 더 심사하겠다는 것이다. 이러한 제도 변화는 기업들에게 재무제표의 신뢰성과 회계 투명성 확보가 더욱 중요해졌음을 시사한다. 상장기업들은 감사의견 미달이 발생하지 않도록 내부회계관리제도를 강화하고, 외부감사인과의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을 유지하는 등 선제적 대응이 필요하다. 만약 불가피하게 감사의견 미달이 발생한 경우라면, 신속하게 원인을 파악하고 개선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 과정에서 전문가의 조력을 받아 체계적인 대응 전략을 수립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감사의견 미달, 이제는 더 엄격해진다
    by 정성빈
    2025.04.12 11:00:00
  • 그린워싱이란 기업이 환경 친화적으로 보이기 위해 모호하거나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주장을 하는 행위를 의미한다. 친환경(green)과 세탁(white washing)의 합성어인 그린워싱(greenwashing)은 1986년 환경운동가 제이 웨스터벨트가 처음 사용했다. 2000년대 이후 친환경 상품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면서그린워싱이 급격히 확대되었는데, 2009년 환경 마케팅펌 테라초이스(Terra Choice)는 환경성을 주장한 상품의 98%에 그린워싱 요소가 포함되어 있다고 발표했다. 글로벌 ESG 데이터 기업 렙리스크(RepRisk)도 지난 10년(2012-2022) 동안 그린워싱 사례가 유럽과 미주 지역 중심으로 꾸준히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그린워싱은 질적으로도 진화하고 있다. 2023년 발간된 <그린워싱 3.0> 보고서는 그린워싱의 발전 단계를 3단계 모델로 제시한다. 그린워싱 1.0은 기업이 소비자에게 상품의 친환경성을 일방향으로 광고한 단계다. 기업은 ‘무공해’ 등의 모호한 표현이나 녹색 포장재 등을 사용해 친환경 이미지를 홍보했다. 그린워싱 2.0은 기업이 소비자뿐만 아니라 다양한 이해관계자들과 관계를 맺으며 전략적 메시지를 내는 단계다. 기업은 NGO 등의 비판에 대응하고자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발간하거나 환경 인증을 취득했지만, 그 과정에서 오히려 그린워싱이 더욱 정교해졌다. 그린워싱 3.0은 기업이 현재의 상품이나 서비스가 아닌 중장기적 환경 성과에 대한 ‘미래 세탁’(future washing)을 시도하는 단계다. 기업은 투자자들의 요구에 따라 ‘2050년 탄소중립’ 계획을 선언했지만 이를 뒷받침할 구체적 이행 계획이 부족한 경우가 많다. 그린워싱에 대한 규제도 함께 발전했다. 초기에는 기업이 상품 등을 표시·광고할 때 소비자를 오인하는 행위를 금지하는 일반적인 소비자 보호 규제를 통해 그린워싱을 규율했다. 시장에서 그린워싱 기법이 정교해지면서, 환경성 주장이 포함된 표시·광고에 대해 명확성·실증성·전 과정성·완전성 등의 세부 원칙을 요구하는 제도가 생겨났다. 이제 기업은 상품의 생애주기 전반에서 발생하는 탄소배출량을 고려하고, 과학적 근거에 기반해 환경적 효과를 설명해야 한다. 나아가 ESG 시대가 도래하면서 소비자뿐만 아니라 투자자 등 여러 이해관계자에게 기업의 환경 성과를 투명하게 공개하도록 하는 규제들이 등장했다. 녹색 경제활동을 분류하고, 이에 유입되는 자금을 별도로 공시하게 함으로써 자본시장에 대한 그린워싱 감독도 강화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 기업은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우선 자사 상품이나 브랜드와 관련된 환경성 주장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파악해야 한다. 지난해 대한상공회의소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국내 100대 기업 중 43%가 그린워싱 기준을 잘 모른다고 답했다. 기업은 대외에 공개되는 자료 중 어떠한 표현이 환경 관련 표시·광고에 해당하여 규제의 대상이 될 수 있는지 점검할 필요가 있다. 전과정성 원칙을 준수하기 위해서는 공급망의 환경정보를 수집해야 하는데, 국내외 규제상 공급업체에 확인을 요청할 수 있는 정보와 그렇지 않은 정보를 명확히 구분한 뒤 환경성 주장을 개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또한, 환경경영 목표를 수립할 때에는 이사회에서 이행계획의 근거와 타당성을 객관적으로 검토한 후 승인하는 절차를 갖출 필요가 있다. 환경부가 발표한 ‘친환경 경영활동 표시·광고 가이드라인’에서도 환경경영 목표에는 기간별 또는 단계별 세부계획이 제시되어야 하며, 이행을 뒷받침할 인력과 자원 확보 방안이 마련되어 있어야 한다고 권고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그린워싱 규제가 강화될수록 기업이 환경 경영에서 후퇴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굳이 불명확한 선언이나 광고로 비판받을 위험을 감수할 이유가 없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미국 미시건대 라이언(Lyon) 교수는 기업이 반발을 우려해 환경성 주장 자체를 회피한다면 오히려 중요한 비즈니스 기회를 놓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린워싱 규제가 개별 상품 차원을 넘어 경영 일반으로 확대되고 있는 현 시점에서, 환경 성과와 시스템을 차분히 축적해온 기업은 오히려 시장에서 차별화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 환경 정보에 관한 인프라가 보다 체계적으로 구축되고, 책임있는 마케팅 관행이 정착되어, 진정으로 환경 친화적인 기업이시장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시기가 오기를 기대해 본다.
    그린워싱의 진화
    by 민창욱
    2025.04.07 15:54:00
  • 개인정보보호위원회가 페이스북·인스타그램의 운영사인 메타에 부과한 과징금은 총액이 1000억 원에 달한다. 과징금은 행정청이 법령상 의무 위반에 대해 부과하는 금전적 제재로 해당 행위가 위법하다는 점을 전제로 한다. 그렇다면 메타는 어떤 이유로 큰 법적 리스크를 지속적으로 안고 있는 것일까. 지난 2020년 11월 개인정보보호위원회는 메타가 페이스북 로그인 기능을 제공하면서 사용자에게 별도의 동의를 받지 않은 채 로그인에 필요한 범위를 넘어선 개인정보를 제3자에게 제공했다고 판단해 약 67억 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위원회 조사 결과, 330만 명 이상의 이용자 정보가 동의 여부를 확인하는 절차 없이 1만여 개 제3자 앱에 제공된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메타가 제공한 정보에는 사용자의 ‘친구’ 정보도 포함되어 있었는데, 위원회는 해당 정보는 친구 본인의 개인정보이기도 하므로 별도의 동의가 필요하다는 점을 지적했다. 이에 대해 메타는 사용자의 자발적 동의가 있었고, 공개된 정보만 활용한 것이라며 법적 책임이 없다는 취지로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하지만 1심인 서울행정법원(2021구합57117),과 2심(서울고등법원 2023누64906), 대법원(2024두55440)까지 모두 메타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과징금 부과는 이후에도 계속됐다. 2021년 8월, 동의 없이 얼굴 인식 정보를 수집·활용한 혐의로 약 64억 원의 과징금이 부과됐고, 2022년 9월에는 ‘온라인 행태정보’를 사전 동의 없이 수집·제공했다는 이유로 약 308억 원의 과징금이 부과됐다 온라인 행태정보란 이용자의 웹사이트 방문 이력, 앱 사용 패턴, 검색 및 구매 이력 등으로, 개인의 흥미와 기호, 성향을 분석할 수 있는 정보다. 온라인 행태정보에 관한 과징금 부과 취소 소송에서 메타는 이러한 정보 수집의 주체는 웹·앱 운영자이며, 자신은 광고주로부터 정보를 위탁받는 입장일 뿐이므로 동의를 받을 의무가 없다고 주장했다. 반면, 개인정보보호위원회는 메타가 관련 도구를 직접 제작·배포하고, 이용자 식별자를 생성·수집·보관한 점에 주목했다. 특히 행태정보 수집·전송 과정에서 웹·앱 운영자들은 해당 정보를 직접 취득하지 않았으므로, 동의를 받아야 할 주체는 메타라고 판단했다. 법원은 이번에도 개인정보보호위원회의 손을 들어주었고(서울행정법원 2023구합54259), 현재 항소심(서울고등법원 2025누6020)이 진행 중이다. 지난해 11월에도 또 한 번의 과징금 부과가 이어졌다. 개인정보보호위원회는 메타가 국내 이용자 약 98만 명의 종교적 신념, 정치 성향, 동성 결혼 여부 등 민감정보를 사전 동의 없이 수집하고, 이를 광고 타겟팅에 활용해 약 4,000개 광고주에 제공한 사실을 적발했다. 이에 대해 약 216억 원의 과징금이 부과됐고, 메타는 이번 건에 대해서는 별도의 행정소송을 제기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다면 왜 메타는 반복해서 과징금을 받을까. 메타가 반복적으로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으로 과징금을 부과받는 데에는 단순한 절차상 실수 이상의 구조적 요인이 있다. 메타의 비즈니스 모델은 사용자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정교한 타겟광고에 의존하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이용자의 사전 동의나 민감정보 처리에 대한 법적 요건을 엄격하게 충족시키는 데 한계가 드러나고 있다. 국내 개인정보보호법은 정보 주체의 권리를 핵심에 두고 있으며, ‘동의’의 실질성과 목적 내 활용의 원칙을 엄격히 요구하기 때문에 메타의 사업 운영 방식은 반복적으로 법적 한계에 부딪칠 수밖에 없다. 메타가 ‘제3자 제공이 아니다’, ‘광고주 책임이다’ 등으로 법적 책임의 외부화를 시도하는 것에 대하여 우리 규제 당국과 법원은 단호한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앞으로 디지털 경제가 더 정교해질수록, 개인정보 보호와 활용의 균형 문제는 더욱 복잡해질 것이고, 메타와 같은 글로벌 플랫폼 기업은 더 광범위한 규제적 도전과 법적 책임 앞에 맞서게 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도전과 책임에 관한 비용은 단지 과징금에 그치지 않는다. 신뢰의 상실, 이용자 기반의 이탈, 사업 지속 가능성에 대한 의문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 메타가 더 건전하게 성장하기 위해서는 각국의 법제와 규범을 ‘규제 리스크’로만 볼 것이 아니라, 사업 전략의 핵심 요소로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 국내 기업들 역시 이번 사례를 통해, 글로벌 시장에서 개인정보 보호 규범이 곧 기업 경쟁력의 핵심이라는 점을 다시금 인식해야 할 시점이다.
    메타는 왜 반복적으로 과징금을 받는가
    by 안성훈
    2025.03.30 08:00:00
  • 최근 자본시장의 변화에 발맞춰 상장폐지 요건이 대폭 강화된다. 특히 주목할 부분은 시가총액과 매출액 요건이다. 현재 코스피 시장의 시가총액 및 매출액 기준은 50억원으로 처음 설정된 이후 장기간 유지되어 왔다. 다만, 이러한 지난 10년간 해당 사유로 상장폐지된 사례가 전무할 정도로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밸류업 노력이 부족하거나 성장 가능성이 낮은 기업의 상장을 계속 유지시켜 시장 경쟁력을 저해한다는 취지의 지적이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반영하여 시가총액 및 매출액에 따른 상장폐지 요건이 2026년부터 단계적으로 강화된다. 코스피 시장의 경우 시가총액 요건이 현행 50억원에서 2028년까지 500억원으로 10배 상향되며, 코스닥 시장은 기존 40억원에서 300억원으로 조정된다. 매출액 요건 역시 큰 폭으로 상향된다. 코스피 시장은 현행 50억원에서 300억원으로, 코스닥 시장은 30억원에서 100억원으로 각 상향될 예정이다. 매출은 낮지만 성장 잠재력이 높은 기업들을 보호하기 위한 완충장치도 마련된다. 시가총액이 일정 수준 이상인 기업에 대해서는 매출액 요건을 면제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코스피 시장은 시가총액 1,000억원, 코스닥 시장은 600억원 이상인 기업이 이에 해당한다. 이는 각 시장에서 상향될 최종 시총 요건의 2배 수준으로, 성장성 높은 기업의 조기 퇴출을 방지하면서도 적정 수준의 기업가치는 유지하도록 한 것으로 이해된다. 이러한 요건 강화의 취지는 명확하다. 자본시장의 건전성을 제고하고, 투자자 보호를 강화하는 것이다. 실제로 우리나라의 상장기업 수 증가율은 최근 5년간 17.7%로, 미국(3.5%), 일본(6.8%), 대만(8.7%) 등 주요국에 비해 높은 수준을 보이고 있다. 반면 시가총액 대비 상장기업 수를 비교해보면 우리나라는 0.9에 불과해 미국(22.5), 일본(2.3), 대만(2.0)에 비해 낮은 수준이다. 금번 상장폐지 요건 강화는 기업들의 자발적인 체질 개선을 유도하고, 불가피한 경우 시장에서 퇴출시킴으로써 전반적인 시장의 질적 수준을 제고하는 효과를 가져올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다만, 새로운 기준이 적용되기까지는 3년여의 유예기간이 주어진다. 이는 기업들이 새로운 기준에 적응하고 대응할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해주기 위한 것으로 이해된다. 기업들은 매출액과 시가총액 추이를 면밀히 모니터링하고, 요건 충족이 어려워질 것으로 예상되는 경우 미리 대응 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시가총액의 경우 신규 사업 발굴이나 기업가치 제고 활동을 통해, 매출액의 경우 영업력 강화나 신규 시장 진출을 통해 개선할 수 있을 것이다. 필요한 경우 전문가의 조력을 받아 구체적인 개선 방안을 수립하는 것도 도움이 될 것이다.
    강화된 상폐제도…시총·매출이 핵심
    by 정성빈
    2025.03.08 16:41:07
  • 오늘날 대부분의 기업은 업무의 일부를 다른 기업에 도급하고 있고, 필요에 따라 도급하는 기업의 사업장에 협력업체가 상주하며 도급받은 업무를 수행하기도 한다. 이처럼 협력업체(수급인)가 원청(도급인)의 사업장 내지는 원청이 지배·관리하는 장소에서 작업을 할 때가 안전보건관리의 측면에서는 가장 어렵다. 원청에게는 자신의 근로자가 아니고, 협력업체는 남의 사업장이다 보니 안전보건관리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협력업체의 규모가 영세하여 안전보건관리 역량이 부족한 경우도 많다. 협력업체의 안전보건관리는 무엇이 해법일까. 첫째, 산업안전보건법에서 수급인 근로자가 도급인 사업장에서 작업할 때 도급인의 의무로 정한 순회점검, 안전보건 협의체, 합동점검, 안전보건교육 실시 확인 등만 실질적으로 이행하여도 반은 성공이다. 나아가 수급인 근로자에 대하여 직접 안전보건조치를 취하면 좋겠지만, 그러지 못하더라도 수급인이 안전보건조치를 취하였는지 실질적으로 점검할 수 있다면 바람직하다. 여기서의 키워드는 "실질적으로"다. 어떤 사업장에 가보면 순회점검을 실시하였다면서 점검표는 만들어놓았는데, 점검사항에는 전부 동그라미(양호)로 표시하고 개선사항에는 모두 "없음"으로 기재되어 있다. 정말 양호한 것이라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다면 이러한 순회점검은 하나마나다. 실제 산업재해 예방을 할 수 없음은 물론이고, 재해 발생 시에 순회점검을 실시한 것으로 인정되지도 않는다. 둘째, 협력업체의 위험성평가를 최대한 지원하고 점검할 필요가 있다. ‘사업장 위험성평가에 관한 지침’에서는 도급 사업에서 도급인과 수급인이 각각 위험성평가를 실시하도록 정하고 있다. 즉, 수급인이 수행하는 작업이더라도 그 작업을 맡긴 도급인도 해당 작업에 관한 위험성평가를 실시하여야 하는 것이다. 다만, 고용노동부가 2023년 5월 펴낸 '새로운 위험성평가 안내서'에 따르면, 사업장의 상황에 따라 도급인과 수급인이 함께 위험성평가를 실시하고 각자의 위험성평가 실시규정에 따라 위험성평가 결과를 관리한다면 각각 위험성평가를 실시한 것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중요한 점은 협력업체에 위험성평가 하는 법을 알려주었다고 끝이 아니라, 그 위험성평가 결과를 원청이 검토하여 유해·위험요인이 충분히 파악되었는지, 그 유해·위험요인에 대한 개선대책이 적절히 수립되었는지, 개선대책이 실제로 이행되었는지를 확인·점검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협력업체의 위험성평가만 충실히 이루어져도 중대재해 발생의 위험을 또 절반 이상 줄일 수 있다고 본다.
     협력업체의 안전보건관리 무엇이 해법일까
    by 김동현
    2025.03.08 09:00:00
  • 내부 신고 시스템은 준법·윤리경영의 필수 요소 중 하나이다. 회사의 내부 신고 시스템이 효과적으로 운영된다면 임직원 등의 위법 행위를 조기에 식별하여 예방할 수 있다. EU는 2019년 ‘내부 신고자 보호지침’(Whistle blowing Directive, 이하 ‘WBD’)을 채택하여 50명 이상의 임직원을 둔 기업은 의무적으로 내부 신고 채널을 설치하도록 했는데, WBD는 전문(前文)에서 “관련 정보가 문제의 근원지에서 조사 및 구제권한자에게 신속히 전달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업무와 관련된 부정행위는 업무 관계자가 가장 잘 파악하고 있으므로, 이들이 사내 절차를 통해 신속히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 문제 해결에 가장 효과적일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상당수 임직원들은 보복에 대한 우려 때문에 회사의 내부 신고 채널에 제보하기를 주저한다. 그래서 내부 신고 시스템은 기밀성 또는 익명성을 보장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기밀성(confidentiality)은 신고자의 신원에 대해 비밀을 유지하는 것이다. EUWBD는 신고자의 신원이 사건 접수 및 조사 관계자에게만 제한적으로 공유되어야 하고, 신고자의 동의 없이 그의 신원을 직·간접적으로 유추할 수 있는 정보를 공개할 수 없도록 규정했다. 실무적으로는 신고 접수, 상담, 조사 등에 관여하는 모든 관계자가 비밀유지서약서를 작성하도록 하고, 비밀유지 위반 시 효과에 대해 반복적으로 교육할 필요가 있다. 실제 국내 법원은 내부 신고자의 신원을 누설한 회사의 직책자에게 손해배상책임을 부과하기도 했다. 익명성(anonymity)의 보장은 신고자의 신원을 보호하는 효과적인 방법 중 하나이다. 국제투명성기구(TI)는 회사가 최소한 1개 이상의 내부 신고 채널을 익명으로 운영할 것을 권고한다. 물론 익명 신고는 신뢰성이 떨어지거나 후속 조사가 어렵다는 비판이 존재한다. 다만 글로벌 기관(Navex Global)의 2020-2023년 통계에 따르면 익명 신고의 신뢰도는 약 33%로서 전체 내부 신고의 신뢰도 약 42%와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익명신고서 제출 후 상담 또는 조사가 진행되는 비율은 약 23%로 밝혀졌는데, 만약 익명신고자와 추가적인 정보 검토가 가능한 전산시스템이 구축된다면 익명신고의 신뢰도가 더욱 높아질 가능성이 있다. 회사는 웹기반의 익명신고 채널을 구축하거나 제3자에게 운영을 위탁하여 신고가 접수된 이후에도 익명신고자와 사실관계 확인을 위한 소통을 이어갈 필요가 있다. 내부 신고의 기밀성과 익명성을 보장하더라도 여전히 신고자 등에 대한 불이익 조치나 2차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 회사는 보복 금지 정책을 엄격히 수립하고 필요한 보호 조치를 시행해야 한다. EUWBD는 내부 신고자가 신고 당시 위반 행위 정보가 사실이라고 믿을 만한 합리적 근거가 있었을 경우 보호 조치를 제공하는데, 보호조치 대상자에게는 해고, 감봉, 계약 갱신 거절, 업무 또는 근무시간 조정, 부당한 성과 평가, 괴롭힘 또는 차별, 소셜미디어를 통한 평판 훼손 등 일체의 불이익 조치가 금지된다. 내부 신고자가 소송에서 불이익을 입었다고 주장하면 이를 회사의 보복행위로 추정하되 그러한 불이익이 내부 신고로 인한 보복행위가 아니라는 점을 회사가 증명하도록 입증책임을 전환했다. 회사는 내규에 보복행위의 정의를 구체적으로 규정하고, 보복행위의 가해자뿐만 아니라 내부 신고를 방해하거나 신원을 누설한 사람 등에 대한 제재를 명시할 필요가 있다. 그 밖에 내부 신고 시스템을 활성화하려면 신고자와 지속적으로 소통하면서 조사 절차를 공정하게 운영해야 한다. 신고자는 제보 후 후속 절차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자신의 신원이 보호되고 있는지, 상급자가 조사 절차에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하지는 않을지 염려한다. 직장 내 성희롱 피해자는 가해자와 같은 근무 공간에 머무는 것이 고통스러워 신고 후 매일 회사의 응답을 기다리기도 한다. 미국 법무부의 컴플라이언스 프로그램 평가지침(ECCP)은 회사가 내부 신고 조사의 신속한 대응을 위해 타임라인을 설정하는지, 조사가 독립적이고 객관적으로 진행되는지 등을 내부 신고 시스템의 효과성 평가 기준으로 제시한다. EU WBD도 회사가 일정 기간 내에 신고자에게 사건 접수 통지를 하고 후속조치 경과 등에 대한 피드백을 제공하도록 의무화했다. 회사는 내부 신고 및 조사 절차의 단계별 타임라인을 공개해 신고자에게 예측가능성을 제공하고 각 단계마다 피드백을 제공할 필요가 있다. 조사 및 징계 절차의 공정성을 담보할 수 있는 방안도 함께 마련한다면 회사의 내부 신고 시스템이 임직원과 이해관계자들로부터 신뢰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내부신고와 윤리경영
    by 민창욱
    2025.03.01 08:00:00
  • 법이란 일반적으로 법률을 의미한다. 국민의 자유와 권리는 법률로만 제한될 수 있다. 그러나 법률에 구체적인 모든 내용을 직접 담을 수 없기 때문에, 법률에서 위임한 사항과 법률을 집행하기 위해 필요한 사항을 대통령령(주로 ‘시행령’)이나 총리령·부령(주로 ‘시행규칙’)으로 정하게 된다. 이는 법규명령이라 하며, 법률을 근거로 해 국가적 범위의 구속력을 발휘한다. 이를 ‘법규성’이라 하며, 법과 법규명령을 함께 ‘법령’이라 부른다. 일반적으로 ‘법해석’이라고 부르는 것은 사실 ‘법령해석’을 의미한다. 법령해석이란 법령을 특정 사실에 적용하기 위해 그 의미를 명확히 밝히는 작업이다. 이를 위해서는 다음 세 가지 단계를 거쳐야 한다. 첫째, 사안을 확정하는 것이다. 해결해야 할 법적 문제가 무엇인지 명확하게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많은 경우, 이 단계에서 혼란을 겪거나 길을 잃기도 한다. 둘째, 적용 가능한 법령을 발견하는 것이다. 대한민국에는 5000개가 넘는 법령이 존재한다. 이들은 일반법과 특별법의 관계를 맺고 있거나 각종 준용 규정을 통해 연결돼 있다. 심지어 한 법령에서 명확히 규정되지 않은 개념을 다른 법령에서 찾아야 하는 경우도 있다. 때로는 국회의 논의 자료를 검토해 입법 의도를 파악해야 한다. 이렇듯 법령 발견은 단순한 작업이 아니라 상당한 경험과 전문성이 필요한 고난도의 작업이다. 셋째, 법령해석 방법에 따라 구체적인 해석작업을 펼치는 것이다. 대표적인 해석 방법으로는 문리해석, 체계적 해석, 역사적 해석, 목적론적 해석이 있다. 문리해석은 법령 규정의 문자를 그대로 해석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언어의 한계로 인해 의미가 하나로 고정되지 않을 수도 있다. 법령이 제정된 시점과 현재의 언어적 의미가 다를 수도 있다. 따라서 문리해석만으로 충분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체계적 해석은 법 체계 전체와 다른 법령과의 관계, 법 규정의 조문 구조 등을 고려해 법령의 의미를 도출하는 방법이다. 특히 행정법령의 경우, 다른 법령과의 관계를 종합적으로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역사적 해석은 법령이 제정된 당시의 역사적 상황을 고려해 입법자의 의도를 파악하는 방법이다. 입법이유서, 국회 의사록 등의 자료를 분석해 법령이 만들어진 배경과 목적을 밝히는 것이 핵심이다. 하지만 입법자의 의도가 현재의 법 현실과 부합하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에, 역사적 해석만을 절대적으로 적용할 수는 없다. 목적론적 해석은 법의 목적을 객관적으로 파악하는 방법이다. 단순히 입법자의 의도를 따르는 것이 아니라, 입법자가 지향한 법의 정신을 현재의 관점에서 재해석하는 것이다. 특히 대법원은 이 방법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법이 현실에서 효과적으로 기능하도록 하고 있다. 목적론적 해석을 통해 법의 이념과 가치, 사회적 현실을 반영한 합목적적 판단을 내리는 것이 중요하다. 법령해석에서 가장 우선시되는 것은 문리해석이다. 법령의 언어나 법 제정상의 한계로 인해 문리해석이 불확실하거나 부조리를 초래할 경우에만 다른 해석 방법을 시도할 수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문리해석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경우가 많아 다양한 해석 방법을 동원하게 된다. 그리고 해석 방법에 따라 결론이 완전히 달라질 수도 있다. 이처럼 법령해석은 단순한 문구 해석을 넘어 법의 본질과 목적을 밝히는 과정이다. 그렇기 때문에 법령해석은 사법작용의 핵심적인 작업이며, 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법률가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진다.
    법의 의미를 밝히는 법
    by 안성훈
    2025.02.22 08:00:00
  • 상장법인이 영업활동을 통해 손실을 기록하는 것 자체가 문제되는 것은 아니다. 기업의 성장 과정에서 일시적인 손실이 발생할 수 있고, 새로운 사업 기회를 위한 투자 과정에서 손실이 불가피한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속적이고 상당한 규모의 손실이 발생하는 경우는 다르다. 이는 관리종목 지정으로 이어질 수 있으며, 상황이 개선되지 않으면 결국 상장적격성 실질심사까지 받게 될 수 있다. 상장규정에 따르면, 최근 3사업연도 중 2사업연도에 각각 사업연도말 자기자본의 50%를 초과하면서 동시에 10억원 이상의 법인세비용차감전계속사업손실이 발생하고, 최근 사업연도에도 법인세비용차감전계속사업손실이 발생한 경우 관리종목으로 지정된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손실의 '규모'와 '빈도' 두 가지 측면을 모두 고려한다는 것이다. 자기자본의 50%를 초과하면서 동시에 절대적 금액으로도 10억원 이상이어야 하며, 그리고 이러한 상황이 최근 3년 중 2회 이상 발생해야 한다. 다만, 이러한 관리종목 지정 기준에는 예외가 있다. 기술성장기업(우량기업부 기업 제외)의 경우 상장일이 속한 사업연도를 포함하여 3개 사업연도 동안, 이익미실현 기업의 경우는 상장일이 속한 사업연도를 포함하여 5개 사업연도 동안 이 기준이 적용되지 않는다. 이는 혁신 기업들의 특성을 고려한 것으로, 초기 단계에서의 손실을 용인하여 성장의 기회를 제공하고자 하는 취지로 이해된다. 관리종목으로 지정된 이후에도 상황이 개선되지 않는다면 더 엄중한 결과가 따른다. 관리종목 지정 이후 다음 사업연도에도 동일한 사유가 지속되면, 즉 자기자본의 50%를 초과하고 10억원 이상의 법인세비용차감전계속사업손실이 다시 발생하면, 이는 상장적격성 실질심사 사유가 된다. 관리종목 지정은 일종의 '경고'이며, 이후에도 손실이 지속되면 상장 유지 자체를 재검토하겠다는 것이다. 상장법인이 이러한 상황에 직면했을 때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우선 관리종목 지정을 피하기 위해서는 수익성 개선을 위한 선제적 조치가 필요하다. 비용 구조를 재검토하고, 수익성 높은 사업 부문을 강화하거나, 필요한 경우 구조조정을 단행하는 등의 방안을 고려할 수 있다. 만약 이미 관리종목으로 지정되었다면, 다음 사업연도에는 반드시 손실 규모를 축소하여 실질심사 사유 발생을 피해야 한다. 결국 법인세차감전계속사업손실 문제는 기업의 존속 가능성과 직결되는 중요한 지표이다. 특히 관리종목 지정 이후에는 상장적격성 실질심사라는 더 큰 위험이 기다리고 있는 만큼, 경영진의 면밀한 관리와 함께 필요한 경우 전문가의 조력을 받아 종합적인 대응 전략을 수립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법인세비용차감전계속사업손실과 상장적격성 실질심사
    by 정성빈
    2025.02.08 11:00:00
  • 로펌에서 기업 사내조사 관련 자문을 제공하며 가장 많이 질문 받는 유형 중 하나가 개인정보 관련이다. 외국계 회사 중심으로 유럽의 GDPR(일반정보보호 규정)과 유사한 한국 법령이 있는지, 조사 시 개인정보 수집 동의서를 받아야 하는지, 법에 반하여 증거를 수집하여 징계절차에 활용 시 징계 효력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등 질문이 끊이질 않는다. 이중 제일 자주 접하는 질문은 단연코 회사 자산인 노트북, 핸드폰에 대해 직원 동의 없이 조사가 가능한지 관련일 것이다. 사내에서 발생하는 회사 자금, 예산 관련 비위의 경우 매우 은밀히 이루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회사가 조사에 앞서 개인정보 동의서를 징구하면 그 사이에 대상 직원이 비위 흔적을 지울 가능성이 많기 때문에 상당수 회사들은 개인정보 동의서를 징구하기를 꺼린다. 이와 관련, 법원은 회사 소유 전산 기기에 있는 정보 역시 개인정보 보호법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따라서 개인정보 수집에 대한 직원 동의 없이 회사 노트북, 핸드폰의 이메일, 문자 등을 모니터링하는 것은 개인정보 보호법에 반하고, 나아가 통신비밀보호법, 정보통신망법, 형법에 위배될 수 있다. 결국 사내 비위 발생 시 회사 노트북, 서버의 이메일, 메신저 리뷰를 진행함에 있어 대상 직원의 명시적인 개인정보 수집 동의서를 징구하고 조사를 진행하는 것이 안전하다. 그렇다면 입사 시 직원이 작성하는 근로계약서 또는 보안서약서에 이메일 모니터링 등이 가능하다는 문구가 있다면 어떨까? 이에 대하여 명확히 다룬 판례는 잘 보이지 않지만 실제 개인 정보 주체의 의사가 포괄적으로 이메일, 메신저의 내용까지도 구체적으로 회사가 리뷰하는 것에 동의하였다고 보기는 어려워 법 위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법이 이렇게 엄격하다면 거액의 회사 자금 또는 중요 기밀정보가 유출되는 정황이 상당함에도 만연 개인정보 동의서를 징구할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것인지 답답하다는 생각이 들 수 있다. 이에 대하여 판례는 피해자의 범죄 혐의가 구체적이고 합리적으로 의심할 수 있는 상황에서 제한적인 키워드를 사용하고, 입사 시 회사 소유의 컴퓨터를 무단 사용하지 않고 업무 관련 결과물을 모두 회사에 귀속시키겠다고 약정 등이 있는 경우 예외적으로 대상 직원의 동의 없이도 이메일 검색이 가능하다는 취지로 판시한 바 있다. 따라서 개별 상황을 분석 해 보고, 매우 급박한 사정이 있다면 동의 없는 이메일 열람을 진행해 볼 여지가 있을 것이다. 다만 실무에서 위와 같은 급박한 상황이 아님에도 대상 직원의 동의 없이 포렌식 리뷰를 진행하는 경우가 적지 않은데, 이 경우 회사는 관련 법령 위반을 하였다는 이유로 조사의 정당성에 문제 제기를 받을 수 있다. 나아가 이는 징계의 효력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선례를 보면 위법한 방식으로 증거를 수집하더라도 징계 효력에 문제가 없다는 선례도 있지만 그와 반대되는 노동위원회 사례도 보인다. 무엇보다 더 큰 문제는 회사가 사내조사를 통해 달성하려는 컴플라이언스 준수 및 준법 문화 수립에 있어 구성원의 반발에 직면할 수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사내 조사에 앞서 포렌식 리뷰의 적법성을 면밀히 검토하고, 대상 직원의 동의를 얻기 어렵다면 다른 대안을 고민하여 진행해 보는 방법도 적극 고려하여야 한다. 예컨대, 추가적인 면담 조사, 전수조사 또는 사내 리니언시(제보자에 대해 혜택 부여하는 제도) 등을 생각 해 볼 수 있다. 이렇게 적법 절차를 통해 조사가 이루어져야 조사를 통해 회사가 이루려는 컴플라이언스 준수 문화가 보다 효과적으로 달성될 수 있다.
     회사가 동의 없이 제 이메일을 마음대로 읽어도 되나요?  
    by 이태은
    2025.02.08 09:00:00
  • 컴플라이언스(Compliance)는 조직이 법령이나 규범 등을 준수하는 일련의 활동이다. ESG가 화두가 되면서 기업의 컴플라이언스 기능이 변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다. 기관투자자를 포함한 이해관계자들은 기업에 법령 준수를 넘어 환경적 지속가능성이나 사회적 책임을 함께 고려하도록 요구하므로, 기업도 정부의 규제뿐만 아니라 다양한 글로벌 기관이 제시하는 공시 기준, 평가 지표, 이니셔티브 등을 파악하고 이를 준수할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는 것이다. ESG 시대의 컴플라이언스에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첫째, 기업이 관리해야 할 위험이 ‘법적 위험’에서 ‘지속가능성 관련 위험’으로 확대되었다. 전통적 컴플라이언스는 법령상 금지 또는 의무사항을 유형화하고 임직원이 이를 위반했을 때 발생할 벌금이나 손해 등을 법적 위험으로 정의했다. 우리 법원은 실효적 준법감시는 법적 위험의 평가로부터 시작되며 기업은 과거뿐만 아니라 미래에 발생 가능한 법적 위험을 미리 예상하고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고 봤다. 그런데 ESG는 국내 법령에 명시되지 않은 국제 인권·환경 규범 위반으로 인한 위험뿐만 아니라, 기후변화로 인한 물리적·전환 위험이나 기업이 의존하는 생물다양성 손실에 따른 위험 등도 관리 대상에 포함하고 있다. 둘째, 기업의 자체 사업장뿐만 아니라 공급망에서 발생한 위험도 관리해야 한다. 전통적 컴플라이언스는 임직원의 고의 또는 과실로 인한 위법 행위를 통제했지만 공급망에서 자체적으로 발생한 위반 행위까지 관리하지 않았다. 임직원 또는 회사에 귀책사유가 없는 협력사의 비위행위는 회사가 책임을 부담해야 하는 법적 위험이 아니며, 그렇기 때문에 기업은 공급망에서 문제가 발생했을 때 ‘우리와 무관하다’고 주장하면서 법적 책임을 최소화할 방안을 강구했다. 그러나 ESG는 기업의 제품 또는 서비스와 관련된 가치사슬에서 발생한 환경·인권 위험에 기업이 ‘연루’되지 않을 것을 요구한다. 주요 구매처는 산림전용 없이 재배된 원재료만을 조달한다고 선언했고, 미국과 EU 등은 강제노동이 결부된 상품에 대한 수입을 금지하고 있다. 셋째, 컴플라이언스 기능이 기업의 경영전략과 연계될 필요가 있다. 전통적 컴플라이언스는 준법 점검을 통해 사내 위법 행위를 적발하고 이를 통제하는 것에 그친 측면이 있다. 준법지원인의 역할은 임직원의 탈법을 억지하는 문지기(Gate keeper)였다. ESG는 한 걸음 더 나아가, 기업이 지속가능성 ‘위험’을 해소하고 이를 사업 ‘기회’로 전환할 수 있는 전략을 수립할 것을 기대한다. 원재료 조달 단계에서 강제노동에 연루된 위험을 발견했다면, 단순히 해당 업체와 법적 계약관계를 단절하는 것을 넘어 다른 조달 루트를 확보하거나, 저비용에만 의존하는 구매관행을 개선하거나, 필요 시 사업모델을 변경해 기업의 중장기적 가치를 높일 것을 요구한다. 넷째, 기업은 정기적으로 위험관리 활동을 공시해야 한다. 전통적 컴플라이언스에서 준법지원인은 준법 점검 활동을 경영진 또는 이사회에 보고하면 됐다. 물론 법적 소송을 염두에 두고 수사기관 또는 법원에 내부통제 시스템이 효과적으로 작동했다는 점을 보여주기 위한 증거기록을 모아둘 필요는 있었지만, 준법 점검 성과를 외부 이해관계자들과 매번 공유할 필요까지는 없었다. 그런데 ESG는 기업이 지속가능성 관련 위험·기회와 영향을 관리하는 절차뿐만 아니라, 이와 연계된 기업의 중·장기 전략과 거버넌스 체계, 지속가능성 목표와 성과 관리를 위한 지표 등도 함께 공시할 것을 요구한다. 특히 기업의 재무상태나 이해관계자에 지위에 중요한 영향을 미칠 지속가능성 사안은 반드시 공시해야 한다. 다섯째, 기업이 자율규제(self-regulation) 시스템을 구축할 것을 요구한다. 전통적으로 국가는 법령에 개별적인 금지 및 의무사항을 열거하고 이를 위반하는 행위를 직접 규제해왔다. 그런데 ESG는 기업이 지속가능성 관련 위험을 스스로 점검하여 공시하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시장과 정부가 이러한 기업의 자율규제 시스템이 작동하는지 감시하는 ‘간접규제’ 환경을 조성했다. 시장의 ESG 평가기관은 기업이 인권경영 정책을 수립했는지, 그 정책에 따른 위험관리 활동을 이행했는지, 이사회가 위험관리 활동을 보고받고 검토했는지 살핀다. EU 정부는 기업이 실사 정책을 수립해 회사와 공급망의 인권·환경 위험을 자체적으로 실사하도록 하면서(CSDDD), 실사 절차에서 취득한 정보를 토대로 이중 중요성 평가를 실시해 지속가능성 제표를 공시하도록 했다(ESRS). 이러한 간접 규제의 흐름을 ‘자율규제에 대한 규제’ 또는 ‘메타규제’(meta-regulation)라 부른다. ESG는 기업의 컴플라이언스 기능에 적잖은 과제를 던져주었다. 컴플라이언스 담당자의 역할이 메타규제 법령의 벌칙 조항만을 분석하는 것에 그쳐서는 안 될 것이다. 컴플라이언스 책임자는 변화된 규제 환경을 이해하고, 지속가능성 정책 수립부터 위험관리 및 공시까지 이어지는 기업의 ‘자율규제 시스템’을 만드는 데 적극 참여할 필요가 있다. 컴플라이언스 조직이 사내외 다양한 조직과 소통하면서 기업의 지속가능한 성장과 책임 경영을 이끌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ESG와 컴플라이언스
    by 민창욱
    2025.02.01 08:00:00
  • 최근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 의결을 둘러싸고 법원들의 여러 판단이 있었다. 주된 쟁점은 2명의 위원 만으로 의결하는 ‘2인 체제 결정’이 방통위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방통위법) 제13조 제2항 ‘위원회의 회의는 재적위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의결한다’는 규정을 위반했는지 여부였다. 써있는 말 그대로를 단순하게 보면 재적위원의 수에는 제한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재적위원이 1명이나 2명 뿐이라면 ‘여러명이 숙의를 거쳐 결정해야 한다’는 ‘합의제 행정기관의 설치 목적’에는 부합하지 않아 보인다. 여기에서 법 해석의 논란이 시작되는 것이다. 먼저 서울행정법원의 판결을 보자. 서울행정법원은 최근 일련의 판결에서 ‘2인 체제 결정’을 위법하다고 판단했다.(2024. 10. 17. 선고 2024구합46245, 2024. 12. 10. 선고 2024구합54829, 2024구합54409 판결) 각 판결은 공통적으로 방통위가 MBC에 대해 내린 제재 처분을 취소하며 ‘합의제 행정기관 의사 결정의 절차적 하자 판단 기준’을 제시했다. ‘외형상 법령에서 정한 절차적 테두리 안에서 이루어진 것처럼 보일지라도, 사실상 그 절차가 합의제 행정기관의 존재 의미를 무의미하게 할 정도로 형식적으로 이루어졌다면’ 절차적 정당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방통위법의 입법 목적, 합의제 행정기관으로서의 방통위의 성격, 관계 법령의 문언 및 체계 등을 종합하면, 2인 체제 결정은 ‘합의제 행정기관의 존재 의미를 무의미하게 할 정도로 형식적’인 절차밖에 형성할 수 없기 때문에 ‘문언에도 불구하고’ 2인 체제 결정의 절차적 적법성이 인정되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 논리에 따르면 방통위와 같은 합의제 행정기관에서는 최소 3인 이상 구성원의 존재와 그 출석 기회가 부여될 것이 요구된다. 그런데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달랐다. 헌법재판소는 2025. 1. 23. 이진숙 방통위원장 탄핵심판청구를 기각하면서 서울행정법원과는 다른 해석론을 법정 의견으로 정했다. 즉, 2인 체제 결정이 위법하지 않다는 것이다. 특히 문언에 따른 해석의 원칙을 내세우면서 법규범의 해석을 할 때 ‘그 말의 뜻을 완전히 다른 의미로 변질시켜서는 아니 된다’고 하면서 서울행정법원의 해석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입장을 취했다. 헌법재판소는 방통위를 합의제 행정기관으로 설치한 취지에 따르면 5인의 위원이 모두 심의·의결에 참여하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2인 간에도 서로 다른 의견의 교환이 가능하고 토론을 통해 합의에 도달해야 의결 정족수를 충족한다고 보았다. 따라서 방통위를 합의제 기관으로 설치한 입법취지로부터 반드시 ‘위원 3인 이상’을 요구하는 법해석이 논리필연적으로 도출된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다만, 그 취지에 따르더라도 ‘1명’의 위원만으로 어떤 결정을 할 수는 없다고 보이므로 나름대로 문언을 제한하여 해석하고 있다고 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된다). 이에 대해서는 법정의견과 같은 수의 반대의견이 팽팽하게 맞섰다. 반대의견은 서울행정법원의 견해와 유사하다. 그렇다면 방통위법 제13조 제2항에 대한 ‘법원’의 입장은 무엇일까? 헌법 제101조는 사법권이 법원에 속하고 법원 중 최고 법원은 대법원임을 규정하고 있다. 그렇기에 법률해석권은 최종적으로 대법원에 귀속된다. 그러나 헌법재판소는 법률의 위헌심사, 탄핵심판, 정당해산심판, 권한쟁의심판, 그리고 헌법소원심판 등에서 독자적 권한을 가지며, 이러한 고유권한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법률해석이 수반된다. 따라서 헌법재판소도 그 권한 범위 내에서 법률해석권을 가진다고 할 수 있다. 여기에서 대법원과 헌법재판소의 갈등이 발생하기도 하며, 서로의 해석을 인정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법원 및 각급 법원과 헌법재판소 모두를 아울러 넓은 의미에서 ‘법원’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법원에 속하는 기관들이 각기 다른 해석을 내놓은 상황에서 국민은 아직 방통위법 제13조 제2항의 의미를 확정하지 못한 상태에 있다. ‘위원회 회의는 재적위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의결한다’는 간단한 문장의 법적 의미를 규명하는 것에 앞으로도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법해석이란 이처럼 어려운 과제임을 방통위 2인 체제 결정을 둘러싼 논쟁은 잘 보여주고 있다.
    ‘방통위 2인 체제 결정’에 대한 ‘법원’ 입장에 관하여
    by 안성훈
    2025.01.26 08:00:00
  • 대구지방법원 서부지원은 지난해 12월 19일 자동차부품제조회사 A회사 사업장 내에서 발생한 근로자 사망 사고와 관련해 대표이사를 포함한 피고인 전원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플라스틱 소재의 수공구가 압축성형기에 끼어 압착되다가 튕겨 나오면서 사내협력업체 소속 근로자가 사망한 사고다. 위 사건의 사고는 A회사의 사내협력업체 근로자에 의하여 발생하였다. 협력업체 근로자는 압축성형기에 원재료를 투입하는 작업을 하고 있었는데, 원재료가 잘 투입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작업표준에 없는 수공구로 원재료를 두드려 투입했다. 문제는 작업자가 사용하던 수공구를 실수로 설비 내에 둔 채 옆의 설비로 작업을 위하여 이동하면서 발생했다. 설비에 둔 수공구가 설비 내부의 압축 진공 챔버로 빨려 들어갔고, 진공 챔버 내에서 압착되다가 설비 밖으로 튕겨져 나간 것이다. 튕겨나간 수공구가 약 7m 거리에서 작업을 하고 있던 같은 협력업체 소속의 다른 근로자 이마를 강타했고, 그 자리에서 쓰러진 근로자는 치료를 받던 중 결국 사망했다. 법원은 이 사건 사고가 합리적으로 예견하기 어려운 사고라고 보았다. 사고가 발생한 압축성형기는 200톤의 압력과 180도의 고온으로 작동하는 기계다. 이러한 조건에서 끼어들어간 물체가 녹거나 부서지지 않고 압착되다가 튕겨져 나올 것을 예상하기란 어렵다고 판단했다. 다만 법원은 중대재해처벌법에 따른 의무 중에 A회사의 안전보건 전담조직 구성에는 미흡한 점이 있다고 판단했다. 그럼에도 중대재해처벌법위반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하였는데, 이는 이 사건 사고가 안전보건 전담조직을 두지 않아 발생하였다고 볼 수는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중대재해처벌법은 경영책임자 등이 안전보건 확보의무를 이행하지 않아 중대재해에 ‘이르게’ 한 경우에 처벌 대상이 되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즉, 중대재해처벌법령에 따른 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것이 중대재해 발생의 원인이 되어야 처벌 대상이 된다. 이 사건에서 비록 안전보건 전담조직은 설치되지 않았지만, 안전관리자가 사업장 순회점검을 통하여 유해·위험요인을 수시로 점검하였음에도 수공구의 사용이나 그로 인한 위험요인을 발견할 수 없었다. 안전보건 전담조직이 있었다고 하여 이러한 사정이 달라지지는 않았으리라 본 것이다. 이처럼 중대재해처벌법상 의무 이행에 미흡한 점이 있더라도 합리적으로 예견 가능한 위험을 예방하기 위한 안전보건조치를 다하였다면 그러한 범위를 넘어서는 사고에 대하여는 면책될 여지도 있다. 이 사건이 주는 교훈은 무죄의 결과보다도 위와 같이 합리적으로 예견 가능한 안전보건조치의 중요성이다.
    합리적인 안전조치 다했다면…중대재해처벌법 위반 무죄
    by 김동현
    2025.01.18 09:00:00
  • 특례상장제도의 도입으로 혁신성장 기업들의 자본시장 진입이 한결 수월해졌다. 이른바 '테슬라 요건'으로 불리는 이익미실현 기업의 상장 제도는, 현재 적자를 기록하고 있더라도 미래 성장 가능성이 높은 기업들에게 상장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다만, 이러한 특례상장의 기회는 상장 이후의 책임과 의무를 동반한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특히 이익미실현 요건으로 상장한 기업들은 관리종목 지정 유예기간 중의 매출액 요건을 각별히 주의할 필요가 있다. 상장규정은 이익미실현 기업이 관리종목 지정 유예기간 중에 최근 3사업연도 연속으로 매출액이 5억원 미만이면서 동시에 전년 대비 50% 이상의 매출액 감소를 기록하는 경우, 상장적격성 실질심사 대상이 되도록 규정하고 있다. 여기서 '최근 3사업연도'는 상장일이 속한 사업연도부터 계산하는 것이 원칙이나, 상장일로부터 해당 사업연도 말일까지의 기간이 6개월 미만인 경우에는 그 다음 사업연도부터 계산한다. 이는 상장 시기에 따른 형평성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것으로 이해된다. 이러한 규정의 취지는 명확하다. 이익미실현 기업에게 상장의 기회를 제공하되, 상장 이후에도 지속적인 성장을 보여주지 못하거나 오히려 매출이 급감하는 경우에는 상장 적격성을 재검토하겠다는 것이다. 특히 매출액을 기준으로 삼은 것은, 이익미실현 기업의 특성상 당장의 수익성보다는 시장에서의 성장성과 사업의 지속가능성이 더욱 중요하다고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실무적으로 이익미실현 기업들이 주의해야 할 점은 크게 두 가지이다. 첫째, 매출액 기준을 단순히 '5억원'이나 '전년 대비 50%'로만 이해하면 안 된다는 점이다. 이 두 조건은 '동시에' 충족되어야 하며, 이러한 상황이 '3년 연속'으로 발생해야 한다. 따라서 어느 한 해라도 두 조건 중 하나만 충족되지 않으면 실질심사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 둘째, 이러한 요건은 '관리종목 지정 유예기간 중'에 적용된다는 점이다. 관리종목 지정 유예기간이 종료된 이후에는 일반적인 상장폐지 요건이 적용되므로, 유예기간의 종료 시점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결국 이익미실현 기업이 상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매출 창출과 성장이 핵심이다. 상장 시점의 성장 가능성이 실제 매출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그것은 곧 상장폐지의 위험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익미실현 기업들은 매출 추이를 면밀히 모니터링하고, 필요한 경우 사업 포트폴리오를 조정하거나 신규 사업을 발굴하는 등 선제적인 대응이 필요하다. 이 과정에서 전문가의 조력을 받아 상장 유지를 위한 구체적인 전략을 수립하는 것도 도움이 될 것이다.
    이익미실현 기업의 상장유지, 매출이 핵심
    by 정성빈
    2025.01.04 09:20:00
  • 행정청은 정책을 결정하거나 직무를 수행하는 데 필요한 정보나 자료를 수집하기 위해 현장조사를 할 수 있다. 그러나 권력이 국민의 생활 영역에 개입하기 위해서는 언제나 ‘적법한 절차’를 준수해야 한다. 이에 따라 행정조사기본법에서는 조사원이 가택·사무실 또는 사업장 등에 출입하여 현장조사를 실시하는 경우, 반드시 조사 목적, 조사 기간과 장소, 조사원의 성명과 직위, 조사 범위와 내용, 제출 자료 등이 기재된 문서와 권한을 나타내는 증표를 제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제11조). 이러한 규정은 행정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현장조사가 필요한 개별 법률에서도 반복적으로 규정되고 있다. 예를 들어, 산업표준화법 제20조 제5항과 의료법 제61조 제1항에서는 각각 KS인증 조사나 의료법 위반 조사 시 권한을 나타내는 증표와 현장조사를 위한 문서를 제시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행정조사에서 권한을 나타내는 증표와 현장조사를 위한 문서를 제시하는 것은 수사 절차에서 압수·수색 영장을 제시하는 것과 유사한 절차적 요구사항이다. 압수·수색 영장의 제시 없이 압수·수색을 강행하는 것이 위법한 것처럼, 권한을 나타내는 증표와 현장조사를 위한 문서를 제시하지 않고 현장에 출입해 조사를 수행하는 것 역시 위법하다. 법원도 이러한 절차적 요구를 강조하고 있다. 부산고등법원은 ‘조사 대상자가 조사 개시 시점에 담당 공무원으로부터 권한을 증명하는 증표를 제시받고, 조사 기간, 조사 범위, 조사 담당자, 관계 법령 등이 기재된 문서를 받아야 하는 것은 조사 대상자가 누릴 수 있는 절차적 권리의 핵심 사항’이라고 하면서 ‘권한을 증명하는 증표와 현장조사를 위한 문서는 조사 개시와 동시에 제시되어야 하며, 조사 개시 이후에 이를 사후적으로 제시하는 것은 위법하다’고 판결하였다(부산고등법원 2021. 8. 27. 선고 2021누21163 판결). 이러한 행위는 압수·수색 영장을 제시하지 아니한 채 압수·수색을 실시한 다음, 사후에 비로소 영장을 제시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또한, 권한을 나타내는 증표나 현장조사서를 조사 개시 시점에 제시하지 않으면, 이후 조사 대상자로부터 위반 사실을 인정받기 위해 작성된 ‘확인서’를 제출받더라도 위법성을 해소하기 어렵다(서울행정법원 2022. 12. 22. 선고 2021구합5352 판결)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제 현장에서는 조사를 나온 사람이 권한을 나타내는 증표나 현장조사에 관한 구체적인 사항이 기재된 문서를 제시하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다. 절차를 단순한 형식적인 문제로 간주하고 결과의 타당성만을 중시하는 관행도 여전히 남아 있다. 하지만 적법한 절차를 준수하는 것은 권력 행사를 정당화하기 위한 최소의 조건이다. 법치주의는 아주 사소한 균열로도 무너질 수 있는 약한 이념이다. ‘그깟 종이 한 장’을 제시하지 않았다는 사소함이 얼마나 파괴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지 인식할 필요가 있다.
    적법 절차·권력 행사 정당화 위한 최소 조건
    by 안성훈
    2024.12.29 08: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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